길 잃고 헤매는 소중한 양들
제임즈 이 파우스트 부대관장
대관장단 제2보좌

의롭고 부지런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지녔으나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마음의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우리는 선한 목자가 그 자녀들을 살펴보고 계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친구 여러분, 오늘 아침 저의 메시지는 사랑과 헌신이 깃든 의로움 속에서 자녀들을 키우고자 최선을 다해 왔으나 자녀들이 거역하거나 악과 파멸의 길을 따라간 연고로 상심한 부모들에게 주는 희망과 위안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깊은 고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저는 “라마에서 …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라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다음과 같은 고마운 확신을 주셨습니다. “네 울음 소리 … 를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1

이 교회에서 부모에게 주는 주님의 말씀이 교리와 성약 68편에 있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가르침에 담겨 있다는 간증을 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또 시온 또는 조직된 시온의 스테이크 안에 자녀를 가진 양친이 있으면 그 자녀의 나이 여덟이 되었을 때 회개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침례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 등의 교리를 자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죄는 부모의 머리에 머물러 있느니라.”2 부모는 “자녀에게 기도할 것과 주 앞에서 올바르게 생활할 것을 가르[치]”3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로서 저는 이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저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하게 이 권고에 따를 것을 권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부모입니까? 그들은 “기도할 것과 주 앞에서 올바르게 생활할 것”4을 모범과 훈계로써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사랑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노력해 온 사람들입니다. 이 점은 일부 자녀들이 불순종하거나 세속적인 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맞는 말입니다. 자녀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영과 개성을 가지고 이 세상으로 옵니다. 어떤 자녀들은 “아마도 어떠한 부모나 어떠한 환경 하에서도 다루기 힘[들 것이며] … 마찬가지로 어떠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자녀들도 있을 것입니다.”5 성공적인 부모는 그들의 가족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희생을 하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온 사람들입니다.

자녀에 대해 부모가 지닌 사랑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다른 관계와도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을 능가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연속적이고 비통과 실망을 넘어섭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소망하고 간구합니다. 순종하고 책임감 있는 자녀는 끊임없는 자부심과 만족을 부모에게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충실하고 사랑이 많은 부모가 가르쳐 온 자녀들이 거역을 하거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날 때는 어떻습니까? 희망이 있습니까? 거역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슬픔은 거의 위로가 불가능합니다. 다윗 왕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친형제 가운데 한 명을 죽이고 또한 아버지에 대해 반역을 이끌었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에 관해 듣자마자 다윗 왕은 울며 자신의 슬픔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6

부모의 이런 사랑은 또한 탕자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역한 아들이 방탕한 생활로 유산을 허비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화를 내는, 순종한 다른 아들에게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7라고 말하며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방탕한 아들이 돌아온 것을 축하했습니다.

저는 올슨 에프 휘트니 장로의 위로에 찬 다음 말씀을 믿고 또 받아들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충실한 부모들의 영원한 인봉과 진리의 대업에서 행하는 용감한 봉사에 대해 그들에게 주신 신성한 약속으로 인해 그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이보다 더 위안을 주는 교리를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양들의 일부가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으나 목자의 눈은 그들 위에 머물며, 그들은 조만간 자신에게 뻗쳐 우리로 다시 모으시려는 거룩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든지 다음 세상에서든지 그들은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공의에 보응하는 빚을 갚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을 겪을 것이며 어쩌면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그들을 마침내 돌아온 탕자처럼 사랑하고 용서할 아버지의 품과 집으로 이끌기만 한다면 그 고통스러운 경험은 헛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의 조심성 없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으로 그들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볼 때까지 계속 희망을 가지고 계속 신뢰하십시오.”8

이 말씀에 있는 원리로서 종종 간과되는 것 한 가지는 자녀들이 완전히 회개하고 “자신의 죄로 고통을 겪으며” 또 “공의에 그들의 부채를 지불” 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지금이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할 때임을 알고 있습니다.9 만일 빗나간 자녀들이 이생에서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인봉의 끈이 그들이 회개를 이룰 만큼 강하게 남는 일이 여전히 가능하겠습니까? 교리와 성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죽은 자의 영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집행되는 의식에 따름으로써 구속받을 것이며,

“또한 그들의 범법에 대한 형벌을 받고 깨끗해진 후에 그들의 업적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리니, 이는 그들이 구원의 상속자가 됨이니라.”10

우리는 탕자가 자신의 유산을 허비하여 탕진했을 때, 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것을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가족으로서 환영을 받았지만, 그의 유산은 다 없어졌습니다.11 자비가 공의를 빼앗아 가지는 못할 것이며, 충실한 부모의 인봉의 권세는 오직 회개와 그리스도의 속죄를 조건으로 하여 빗나간 자녀들을 요구할 것입니다. 회개한 빗나간 자녀들은 구원과 그에 부수되는 모든 축복들을 누릴 것이지만, 승영은 훨씬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충만하게 얻어야 합니다. 누가 승영에 이를 것인가에 관한 질문은 자비로우신 주님에게 맡겨져야 합니다.

거역과 악한 행동이 너무도 커서 “회개할 수 없을 정도의 죄를 지은”12 사람은 정말로 거의 없습니다. 그런 심판 또한 주님에게 맡겨져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거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을 요구하노라.”13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운 부모의 인봉의 끈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인내력을 갖는지 우리는 아마도 이생에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작용하는 보다 유용한 근원이 아마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14 사랑하는 조상들의 영향력이 장막의 저편에서 계속 우리와 함께 하는 것과 같은 강력한 가족의 힘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워드 더블류 헌터 대관장님은 “회개는 영혼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일 뿐이며, 부모의 끊이지 않는 보살핌은 하나님의 지칠 줄 모르는 용서가 가장 분명한 형태로 지상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세주께서 그 사명을 통해 세우고자 했던 것에 가장 근접한 것이 바로 가족이 아니겠습니까?15

우리는 부모로부터 부모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배웁니다. 제 부친에 대한 저의 사랑은 그 분이 친절하고, 인내하며, 이해하실 때 더욱 깊어졌습니다. 제가 가족의 차를 망가뜨렸을 때, 그 분은 온화하고 용서하는 마음이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그대로 밝히지 않거나 계속 규칙을 어길 때 특히 어머니에게 무례하게 굴 때는 강한 훈계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반세기가 지났으나 저는 아직도 그 분에게 가서 현명하고 사랑에 찬 권고를 구할 수 있었던 때가 몹시도 그립습니다. 종종 그 분의 권고를 의심했던 때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저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은 결코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결코 그 분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사랑에 찬 확고한 훈계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녀들을 훈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나 자녀들이 좋아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회가 그 일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도 자녀 훈육의 일부입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 정직한 일의 미덕입니다. 수고 없는 지식은 무익합니다. 수고가 있는 지식은 하나의 지혜입니다.”16

도처에서 사탄의 덫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녀를 키우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또 교회 봉사와 활동이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잠시나마 잘못 행동하고 또 길에서 벗어난다면, 일부 자녀들이 그 본을 받아서 그릇된 행동을 하기기 쉽습니다.

이제 이 일에는 언급해야 할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설사 부모가 해야 하는 것 만큼 잘 하지 못 했더라도 자녀에게 도움을 주려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있는 자녀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모에게 비판적인 자녀들도 다음과 같이 말한 모로나이의 현명한 권고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으로 하여 나를 비난하지 말며 나의 부친이나 그 전에 기록하신 이를 각각 저들의 부족함으로 비난하지 말라. 다만 너희에게 우리의 부족함을 알게 하시어 너희로 우리보다 더욱 현명하게 되도록 가르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17

1823년, 모로나이가 젊은 예언자 요셉 스미스를 방문했을 때, 엘리야의 사명에 관한 다음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저는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자녀의 마음에 심을 것이요, 자녀의 마음을 그 조상에게 돌이키게 하리라.”18 저는 모든 자녀가 결국 그들의 마음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돌이키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 알고 있었던 어느 훌륭한 부부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거역하여 가족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년에 그는 부모와 화해를 했으며 자녀들 가운데서 가장 보살피고 돌보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늙어감에 따라, 장막 저편에 계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으로부터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꿈 속에서 우리를 찾을 때 그것은 정말로 감미로운 경험입니다.

일부 자녀들이 거역하고 부모의 가르침과 사랑을 저버리고 멀어졌다고 해서 성실하고 충실한 부모를 비판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불친절한 일입니다. 위안과 만족을 가져다주는 자녀와 손자녀를 둔 부부들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불손종하는 자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합당하고 의로운 부모들에게 이해심을 보여야 합니다. 저의 한 친구는 “만약에 자녀들과 어떤 문제도 없었다면,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자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의 장모님은 다른 자녀들이 잘못 행동하는 것을 보시면, “난 내 자녀들이 그런 일을 안 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 때 아이들이 밖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부모가 불순종하고 빗나간 자녀들 때문에 슬퍼하고 있을 때, 우리들은 동정심을 갖고 “먼저 돌로 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19

익명의 한 교회 회원은 남동생으로 인해 부모가 계속적으로 느낀 마음의 고통에 관해 적어 보냈습니다. 그는 마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통제하고 훈계하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부정직하고 반항적이었습니다. 탕자와는 달리 이 방황하는 아들은 자발적으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그의 행동의 결과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2년 동안 그의 부모는 빌의 치료 프로그램을 뒷받침했으며 결국 그는 마약에서 벗어났습니다. 후에 빌의 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은 빌이 그 자신과 가족에게 저지른 일들을 나무라시고 혐오하셨지만, 빌에 대한 사랑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빌이 힘든 시절을 참아 내고 보다 튼튼한 토대 위에 서는 데 필요한 어떤 일이든 뒷받침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결심이 단단하셨습니다. 그 분들은 떨어져 나간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깊이, 더욱 섬세하게, 더욱 광범위하게 실천하셨습니다.”20

우리 자녀들이 주님의 방법에 대한 우리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존경한다면 지나치게 자랑하지 말고 도리어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합시다. 의롭고, 부지런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지녔으나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마음의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우리는 선한 목자가 그 자녀들을 살펴보고 계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깊은 슬픔을 알고 이해하십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위안으로 삼으십시오. 그리하면 자녀들이 “대적의 땅에서 돌아[올]”21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고 간구 드립니다. 아멘. 

 

             1.          예레미야 31:15~16.

             2.          교리와 성약 68:25.

             3.          교리와 성약 68:28.

             4.          교리와 성약 68:28.

             5.          하워드 더블류 헌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심”, 성도의 , 1984년 1월호, 96쪽.

             6.          사무엘하 18:33.

             7.          누가복음 15:32.

             8.          올슨 에프 휘트니, Conference Report, 1929년 4월, 110쪽.

             9.          앨마서 34:32.

             10.        교리와 성약 138:58~59.

             11.        누가복음 15:11~32 참조.

             12.        Alonzo A. Hinckley, Conference Report, 1919년 10월, 161쪽.

             13.        교리와 성약 64:10.

             14.        존 케이 카먹 장로, “우리 자녀들이 실족할 때”, 리아호나, 1999년 3월호, 29~30쪽 참조.

             15.        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ed. Clyde J. Williams(1997년), 32쪽.

             16.        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1997년), 704쪽.

             17.        몰몬서 9:31.

             18.        요셉 스미스서 2:39.

             19.        해롤드 비 리, Decisions for Successful Living(1973년), 58쪽.

             20.        “With Love-from the Prodigal’s Sister”, Ensign, 1991년 6월호, 19쪽.

             21.        예레미야 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