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CES모임, 조던 종교 교육원, 2006년 2월 3일★]

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Seek Learning by Faith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CES종교 교육가들에게 하신 말씀, 2006 2, 3, 조던 종교 교육원)

 여러분을 향한 제 사랑을 전하며 또한 여러분이 전세계에 있는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미치고 있는 의로운 영향력에 대해 총관리 역원들의 감사를 전합니다. 새로운 세대를 축복하고 강화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특별한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성신이 축복해 주고 교화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동반자 원리: 영으로 전파하고 신앙으로 배움

우리는 경전에서 영의 권능으로 복음 진리를 전파하라고 반복해서 권고 받았습니다.(교리와 성약 50:14 참조) 저는 우리 대부분이 교회에서 부모와 교사로서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그 원리를 적용하려고 그에 필요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가 중요하지만, 그 원리는 훨씬 더 큰 영적인 패턴에서 한 요소일 뿐입니다. 우리는 또한 자주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교리와 성약 88:118 참조) 영으로 전파하는 것과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동시에 그리고 꾸준히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동반 원리입니다.

저는 우리가 신앙으로 배우는 학습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영으로 가르치는 교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입니다. 분명한 점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원리와 절차가 모두 영적으로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는 이 순간 앞으로 세상이 더 없이 혼란하고 거친 세상이 되리라는 점을 예상하면, 우리 모두가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과 교회 생활에서 영적인 지식을 신앙으로 얻고 적용하려고 노력하면 영적인 힘과 인도 및 보호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받게 될 것입니다.

니파이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성신의 권능으로 말할 때에는 성신의 권능이 [메시지를] 사람의 자녀들의 마음에 전함이라.”(니파이후서 33:1) 영의 권능은 메시지를 마음에 전할뿐, 반드시 마음속으로 전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교사는 설명하고, 시연하고, 설득하고, 간증할 수 있으며, 위대한 영의 권능으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메시지의 내용과 성신의 증거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것을 허용할 경우에만 마음속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엽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신앙으로 학문을 구해야 하는,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책임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교사로서 이 원리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보겠습니다.

 

행동의 원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사도 바울은 신앙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했습니다.(히브리서 11:1 참조) 앨마는 신앙이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앙이 있을 경우,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앨마서 32:21 참조) 또한 신앙 강좌에는 신앙이란 “계시된 종교의 첫째 원리이며…모든 의의 기초“이고“모든 지적 존재의 행동 원리”라고 나와 있습니다.(조셉 스미스, comp., 신앙 강좌(Lectures on Faith) [1985년], 1쪽)

바울과 앨마의 가르침과 신앙 강좌에 있는 이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신앙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강조합니다. 첫째, 참된 것을 바라는 확신으로서의 신앙, 둘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로서의 신앙, 셋째, 모든 지적 존재의 행동 원리로서의 신앙입니다. 저는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고, 과거를 돌이켜보며, 현재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관점에서 구주를 믿는 신앙의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선 미래를 내다보는, 참된 것을 바라는 확신으로서의 신앙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신뢰에 기초를 둔 이 확신을 통해 불확실하고 때로는 힘든 상황에서조차 구주를 섬기는 일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니파이후서 31:20)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니파이는 놋쇠판을 얻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당시 정확하게 이러한 종류의 미래,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한 채 영에 의해 이끌렸[습니다.] 그럼에도 니파이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니파이전서 4:6~7)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속과 승영을 바라는 소망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동시에 그 소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확신과 소망을 통해 빛의 가장자리를 걸어가면서 빛이 길을 밝혀주리라는 기대와 신뢰로 어둠 속에서 몇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게 됩니다.(보이드 케이 패커, “The Candle of the Lord,”Ensign, 1983년 1월호, 54쪽) 확신과 소망이 하나가 되게 하면 바로 실행으로 옮기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로서의 신앙은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참됨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확신과 소망을 갖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딘 우리는 빛이 실제로 움직여 필요한 조명을 제공해 주는 순간 증거와 확신을 얻습니다. 신앙의 시련을 겪은 후에 얻은 증거(이더서 12:6 참조)를 통해 확신이 커지고 견고해집니다.

확신, 행동 및 증거는 진행 과정 동안 상호 작용합니다. 이 나선은 마치 코일처럼 위로 소용돌이치며 올라가며 점점 확장되어 넓어집니다. 신앙의 이 세 가지 요소, 즉 확신, 행동 및 증거는 서로 떨어진 개체가 아니며, 오히려 상호 작용하여 지속적으로 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갑니다. 이 과정을 가능케 하는 신앙은 발전하고 진화하며 변화합니다. 우리가 방향을 돌려 불확실한 미래를 직면하는 순간, 확신은 행동으로 이어져 증거를 낳으며 그 증거를 통해 확신은 증가합니다. 우리의 확신은 말씀에 말씀을, 교훈에 교훈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더해가면서 더욱 강해집니다.

우리는 확신, 행동 및 증거가 상호 작용한 강력한 예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언약궤를 운반했던 상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여호수아 3:7~17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에 이른 후 물이 갈라져, 즉 물이 “한 곳에 쌓여 서리라”(여호수아 3:13)는 약속을 받게되는 과정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흥미있는 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면서 강둑에 섰을 때는 물이 갈라지지 않고 오히려 물이 갈라지기 전에 발바닥만 젖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물이 갈라지기 전에 물 속으로 걸어갔다는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미래에 대한 신앙, 즉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에 직면하여 요단 강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걸어가자 물은 갈라졌습니다. 마른 땅을 건너면서 뒤를 돌아볼 쯤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증거를 보게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확신으로서의 신앙은 행동으로 이어졌으며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에 대한 증거를 낳았습니다.

참된 신앙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항상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행동 원리로서의 신앙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여러 경전 말씀에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22)

“그러나 보라, 만일 너희가 너희의 능력을 일깨우고 환기시켜, 참으로 내 말을 시험하기에 이르며, 신앙을 행사하려 할진대”(앨마서 32:27)

행동의 원리로서 신앙은 영적인 진리를 배우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핵심이 됩니다.

 

신앙으로 배움: 행하는 것과 행함을 받지 않는 것

모든 지적 존재의 행동 원리로서 신앙은 어떻게 복음을 배우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신앙으로 학문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크게 구분하면 행하는 것과 행함을 받는 것이 있습니다.(니파이후서 2:13~14 참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서 우리는 선택의지의 은사, 즉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능을 축복받았습니다. 선택의지를 받아 행위를 하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행위를 하도록 되어 있지 행함을 받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영적인 지식을 구하고 적용하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신앙으로 배우는 것과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행복의 계획에서 핵심적인 두 가지 특징입니다. 구주께서는 속죄를 통해 도덕적 선택의지를 보존하셨으며 우리가 신앙으로 행동하고 배우는 일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계획에 대항하는 루시퍼의 반란은 인간의 선택의지를 멸하려 한 것이며 그 의도는 오직 배우는 자로서 우리가 행함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라고 물으신 질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 아버지께서는 아담이 어디 숨었는지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현명하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배우는 과정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단순히 행함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일방적인 설교로 불순종하는 자녀에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아담이 배우고, 행위를 하는 자로서 행하고 선택의지를 올바르게 행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니파이는 부친 리하이가 생명 나무의 시현에서 본 것들에 관해 어떻게 알고 싶어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흥미 있는 점은 주님의 영이 니파이에게 “보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니파이전서 11:2)라고 질문함으로써 개별 지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영은 니파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질문을 했을까요? 성신은 니파이가 배우는 과정에서 단순히 행함을 받지 않고 행하도록 도왔습니다.(저는 여러분이 나중에 니파이전서 11~14장을 공부하여 영이 적극적으로 배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즉 질문을 하고 니파이에게 “보라”고 격려하는 이 두 요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살펴보시도록 권유드립니다.)

이러한 몇 가지 예에서 우리는 배우는 자로서, 단순히 말씀을 듣고 행함을 받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행하고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며 행위를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가르침과 행함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입니까? 우리의 학생들은 신앙으로 행하고 학문을 구합니까? 아니면 가르침과 행함받기를 기다립니까? 여러분과 저는 우리가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도록 격려하고 돕습니까? 여러분과 저와 학생들은 질문하고, 구하고, 두드리는 일에 열의를 갖고 참여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제3니파이 14:7 참조)

정확한 원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선택의지를 행사하여 배우는 사람은 성신이 찾아오도록 마음을 열어놓아 성신의 가르침, 간증하는 권능, 확신을 주는 증거가 찾아옵니다. 신앙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영적, 정신적 및 신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건 우리가 신앙으로 가득찬 행위를 충실히 그리고 성실히 나타냄으로써 성신으로부터 기꺼이 배우고 가르침을 받겠다는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의 진지함과 일관성입니다. 따라서,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토대로 행하기 위해 도덕적인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것을 포함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를 유일하고 참된 교사인 주님의 영으로부터 구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어떻게 구도자가 신앙으로 배우도록 돕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몰몬경을 공부하고 몰몬경에 대해 기도하며, 교회 모임에 참석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 등과 같은 영적인 결심을 하고 지키려면 구도자는 신앙을 행사하고 행해야 합니다. 선교사들의 기본적인 역할 가운데 하나는 구도자가 신앙으로 행하고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것을 존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권고하고,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구도자에게 회복된 복음이 참되다는 증거를 결코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구도자가 신앙을 통해 행동하게 되고, 마음의 길을 열 때에만 성신이 확신을 주는 증거를 전하게 됩니다. 선교사들은 반드시 영의 권능으로 가르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 중요한 것은 구도자들이 신앙으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책임이 선교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명하는 배움은 단순히 인식하는 이해력과 정보를 보유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배움의 종류는 우리가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버리고(모사이야서 3:19 참조), 마음을 변화시키고(모사이야서 5:2 참조), 주께로 돌이키고 다시는 떨어져 나가지 않게끔 하는 배움입니다.(앨마서 23:6 참조)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진심과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교리와 성약 64:34 참조) 모두를 요구합니다.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성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마음에, 그리고 마음속으로 전해 주는 결과입니다.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강연과 시범, 혹은 경험에 의거한 실습을 통해 교사에게서 학생에게로 이전될 수 없으며, 학생 스스로 지식을 얻기 위해 신앙을 행사하고 행해야 합니다.

어린 소년 조셉 스미스는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생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하나는 신약전서 야고보서에 있는 기도와 신앙에 관한 구절을 읽은 조셉 스미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야고보서 1:5~6 참조) 조셉은 이 구절을 통해 집 근처 나무 숲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영적인 지식을 구하라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조셉이 머리로 품고 있었으며 가슴속에서 느끼고 있던 그리고 후에 숲에 들어가 물었던 질문들을 잘 살펴 보십시오. 조셉은 “믿음(신앙)으로 구하”(야고보서 1:6)고 행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언쟁과 의견의 혼돈 속에서 나는 종종,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교파 중에 누가 옳은가? 아니면 그들 모두가 다 그릇된 것인가? 만일 그들 중 어느 하나가 옳다면, 그것은 어느 것이며, 나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내가 주께 묻기 위해 갔던 목적은 모든 교파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가를 알아 어디에 가입해야 할지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정신을 차려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나는 즉시 내 위에 빛 가운데 계시는 두 분께 모든 교파 중에 어느 것이 옳으며 … 내가 어디에 가입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조셉 스미스-역사 1:10, 18)

조셉의 질문은 자신이 알아야 했던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행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유의하십시오. 조셉이 한 첫 질문은 행동과 행해져야 할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기도는 단순히 어느 교회가 옳은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은 자신이 어느 교회에 가입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셉은 신앙으로 알기 위해 숲으로 갔습니다. 행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신앙으로 배우고 영적인 진리를 적용해야 할 책임은 개별적으로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세상에서 점차 증가할 심각하고 중요한 책임입니다. 배우는 내용, 방법, 시기는 교사와 발표 방법, 혹은 특정 주제나 공과 형태들로 보충은 되지만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필멸의 지상 생활의 큰 도전 중 하나는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제가 설명하고자 하는 배움의 절차와 결과를 가장 잘 요약해 주었습니다. 가르침을 원하던 십이사도들의 요청에 따라 조셉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진리와 지혜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신성한 가르침을 얻는 것입니다.”(History of the Church, 4:425).

또 다른 때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나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를 읽는다 하여 현 우리 상태와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에 대해 포괄적인 시야를 지닐 수 없습니다.”(History of the Church, 6:50)

 

교사인 우리를 위한 함축된 의미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진리, 즉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교사인 우리에게 함축된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이 세 가지 함축된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함축된 의미 1. 성신은 유일하신 참된 교사입니다.

성신은 신회의 세 번째 구성원이자 모든 진리에 대한 교사이며 증인입니다.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간에게 성역을 베푸는 성신의 직분은 경전에 설명되어 있다. 성신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교사이다. 성신은 그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혼의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신앙개조, 12판. [1924년], 162쪽)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내용은 성신은 올바른 초대가 있을 경우 배우는 자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교사라는 점입니다. 참으로 여러분과 저는 성신으로 그리고 성신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한 신앙으로 배움이라는 과정의 필수 요건으로서 영, 보혜사의 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50:14 참조) 이 점에 관해서 여러분과 저는 아주 먼 곳까지 광 신호를 보내는 광섬유 케이블의 길고 가느다란 유리 섬유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케이블에 있는 유리가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빛을 보내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없어야 하듯이, 우리도 주님의 영이 작용하는 합당한 도관이 되고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봉사하는 일에서 빛이 아니라, 도관과 통로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의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태복음 10:20) 빛이 결코 저나 여러분은 아닙니다. 사실상 교사로서 여러분과 제가 전달하는 메시지, 전달 방법, 또는 개인적 행동에서 자신이 주목의 대상이 되게끔 알고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는 성신의 가르침의 효과를 저해하는 사제술의 한 형태입니다.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를 전파하느냐?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하느냐? 만일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할진대,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니라.”(교리와 성약 50:17~18)

 

함축된 의미 2. 신앙으로 배우는 것을 격려하고 장려하는 교사가 가장 효과적인 교사입니다.

어느 사람에게 한 마리의 생선을 주는 것은 한 끼의 식사 만을 주는 것이라는 속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 사람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평생을 먹여 주는 것입니다. 복음 교사로서 여러분과 저는 고기를 나누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고 영적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목적은 배우는 자들에게 정확한 원리에 따라 행동하도록 격려하고 장려할 때, 즉 행위로써 배우도록 도울 때, 가장 잘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주니어스 에프 웰즈 형제가 1875년에 교회 청남을 조직하도록 부름을 받았을 당시 웰즈 형제가 브리검 영 회장에게서 받은 권고에 실려 있는 실천에 관한 함축적인 의미를 잘 살펴보십시오.

“모임에서 형제님은 출석부 맨 위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회원들에게 간증하도록 부탁하고 다음 모임에서는 중단한 회원부터 시작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참여하여 일어서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할 간증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일으켜 세우면 그들은 전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많은 진리들을 주님께서 말할 내용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증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일어서서 간증하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간증을 얻었습니다.”(Junius F. Wells, “Historic Sketch of the YMMIA,”Improvement Era, 1925년 6월호, 715쪽).

우리 시대에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님은 비슷한 권고를 주셨습니다.

“오, 만일 제가 여러분에게 이 한 가지 원리, 즉 간증은 간증할 때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딘가 영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곳에, 철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신앙의 도약’이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빛의 가장자리에 이르러서 어둠으로 발을 내딛자 한두 발자국 앞에 있는 길에 빛이 비추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때입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사람의 영혼[영]은’참으로‘여호와의 등불‘입니다.(잠언 20:27)

“여러분이 읽었거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내용에서 증거를 얻는 것은 필요한 시작이기는 하지만 여러분이 간증한 것이 참되다고 하는 것을 영이 여러분 마음에 확신케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간증을 나눌 때 그것이 보충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을 줄 때, 그것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더 많은 것이 채워집니다!”(Ensign, 1983년 1월호, 54~55쪽)

저는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사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도록 도왔습니다. 어려운 질문에 쉬운 대답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가리키고 스스로 발을 내딛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늘 이 방법을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준 답은 대개 기억에 남더라도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신앙을 행사함으로써 발견하거나 얻은 대답은 평생 남습니다.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들은 교육이 아닌 체험을 통해 얻는 것들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받도록 축복된 영적인 이해, 즉 우리의 마음속에 참된 것으로 확인된 영적인 이해는 다른 사람에게 단순히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근면과 신앙으로 배우는 것의 대가는 그러한 지식을 얻고 개별적으로“소유”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오직 그 방법을 통해서만 머리 속의 지식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지식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사람이 영적인 지식과 다른 사람의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게 되며, 그러한 축복들을 스스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직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앞으로 올 일에 대해 영적으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구와 또한 신앙으로 학문을 구”(교리와 성약 88:118)해야 합니다.

 

함축된 의미 3. 다른 사람들이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도록 돕는 교사는 강화됩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는 성신”(요한복음 14:26 참조)은 우리가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행사할 때 열심히 돕고자 합니다. 흥미 있는 점은 배움의 과정에서 받게되는 신성한 도움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지명을 받고 가르칠 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로마서 2:21)

교리와 성약에 있는 다음 구절을 보고 부지런히 가르침으로써 하늘의 은혜와 가르침을 어떻게 받게 되는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한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왕국의 교리를 서로 가르칠지니라.”

“너희는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리하면 나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이는 너희가 이론에 있어서, 원리에 있어서, 교리에 있어서, 복음의 법에 있어서, 너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 있어서 더욱 온전히 가르침을 받게 하려 함이요.”(교리와 성약 88:77~78)

이 성구에 설명되어 있는 축복들은 특별히 교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리하면 [교사인 너희가 가르침을 받도록] 나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똑같은 원리가 교리와 성약 같은 편 122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교사 한 사람을 지명하여 모두가 동시에 말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고, 한 번에 한 사람이 말하게 하여 모두가 그의 말하는 것을 듣게 하라. 그리하여 모두가 말하고 난 후에 모두가 모두에게서 교화되며, 또 모든 사람이 동등한 특권을 누리게 하라.”(교리와 성약 88:122)

경건하고 질서 정연한 방법으로 모두가 말하고 모두가 들을 때, 우리 모두가 교화됩니다. 구주를 믿는 신앙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서로 다같이 행사하면 주님의 영으로부터 가르침과 힘을 받게 됩니다.

 

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최근의 예

우리는 모두 2005년 말까지 몰몬경을 읽으라는 제일회장단의 권고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몰몬경을 읽도록 권유하시면서 이 단순한 읽기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준수한다면 우리의 삶과 우리 가정에 “더욱 충만한 주님의 영이,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여 생활하겠다는 더욱 확고한 결심이,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살아 계시다는 더욱 강한 간증이 ”찾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가슴 설레는 참된 간증”, 리아호나, 8월호, 6쪽 참조)

이 영감에 찬 권고가 어떻게 신앙으로 배우는 것의 전형적인 예가 되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여러분과 저는 읽으라는 명령이나 강요, 혹은 요구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행위를 하는 자로서 선택의지를 행사하고 정확한 원리에 따라 행하도록 권유 받았습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영감 받은 지도자로서, 우리에게 단순히 행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궁극적으로 이 권고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이 일을 끝까지 해낼 것인가에 관해 스스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둘째, 읽고 행하라는 권고를 제의하면서 힝클리 회장님은 우리 각자에게 신앙으로 배움을 구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교회 회원들에게 어떤 새로운 학습 자료를 배부하지 않았고, 어떤 추가 공과, 수업, 혹은 프로그램도 교회에서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몰몬경이 있었고 또한 우리는 제일회장단이 주는 권고를 받아들이고 구주를 믿는 신앙을 행사함으로써 우리 마음에 이르는 길이 더 넓게 열렸습니다. 그리하여 유일하고 참된 교사인 성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최근 몇 주간 너무나 많은 회원들이 몰몬경을 읽은 최근 경험에 관해 간증하는 것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중요하고 시의 적절한 영적인 교훈을 배웠으며, 삶이 더 좋게 변화되었고, 약속된 축복들을 받았습니다. 몰몬경,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성신은 그처럼 참으로 단순한 것입니다. 저의 신앙과 다른 총관리 역원들의 신앙은 우리가 힝클리 회장님의 권유를 받아들였을 때, 그리고 너무나 많은 여러분이 신앙으로 행하고 배우는 것을 보았을 때 강화되었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신앙으로 학문을 구해야 하는 책임은 우리 각자가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며, 이 책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점점 더 혼란스럽고 어지러워질 때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신앙으로 배우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이고, 영적인 발전과 이 후일에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참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성신으로 배부르게 되어(제3니파이 12:6 참조) 신앙으로 학문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이심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주요 구속주이십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온유함으로 행할 때(교리와 성약 19:23 참조), 영적인 힘과, 보호와 평안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저는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고자 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도록 적절하게 돕고자 하는 여러분의 소망과 능력이 증가되고 향상되기를 간구합니다. 이 축복은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그리고 여러분이 가르치고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지식의 커다란 보화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CES종교 교육가들에게 하신 말씀, 2006년 2월, 3일, 조던 종교 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