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호나 선집
(The Selected Work from Liahona)

(2003 1월호 ~ 2006 12월호)

 

아호나 및 기타 기사 모음

 

 

 

“나는 그들에게 올바른 원리를 가르쳐 주어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합니다.

(조셉 스미스, Millennial Star, 1851년 11월 15일, 339)

 

“참된 원리는 가장 혼란스럽고 격심한 상황 아래에서도 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줍니다. 

(리차드 지 스코트, 성도의 벗, 1994 1월호, 86)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수원 스테이크
역원 훈련 자료

 

l      리아호나 이외에서 발췌한 기사 및 오래된 성도의 벗 기사 목록

해롤드 비 리 회장(1899-1973),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설교와 저서와 발췌문                30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1978 5월호, 1973              36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함", 성도의 벗, 1986 7월호            41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교만을 조심하십시오", 성도의 벗 1989 7월호              42

마빈 제이 애쉬튼(1915~1994),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성도의 벗 1992 7월호                    46

댈린 에이치 옥스, "일생의 헌신",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2005년 5월 1일, CES모임                     68

제프리 알 홀런드, "제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2000년 2월 15일, CES모임               93

제프리 알 홀런드, "테러, 승리, 결혼 잔치", BYU, 2004년 9월 12일, CES모임                          101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조던, 2006년 2월 3일, CES모임                       117

메릴 제이 베이트먼, "신앙의 눈으로 바라 보십시오", BYU, 2006년 3월 5일, CES모임                136

존 에이 윗소(1872-1952), "왜 성전에서 결혼하는가?", 1952, '증거와 화해: 저서'                  146

스펜서 더블류 킴볼 외, "어머니가 가정 밖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1976, 정선된 가르침           148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1895-1985), "결혼과 이혼", BYU, 1976년 9월 7일, CES모임              152

호머 엘스워스 박사, "복음에 입각한 가족계획", 성도의 벗, 1980 6월호, 질의응답                   158

Patricia T 홀런드 “필요한 한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더 큰 신앙을 지닌 여성이 됨, 1987        159

 

l      교회 관련 사이트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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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경전, 리아호나, 개인간증 등

2007 1 1 현재

안내문

친애하는 스테이크의 모든 역원 여러분에게,

이 ‘선집’은 2007년 수원 스테이크 목표인 “깨어나 빛을 발하라” (교리와 성약115:5 참조)는 주제와 함께, 모든 교회 역원들이 선지자의 말씀을 스스로 공부하고 서로 가르침으로써 영적으로 일어나도록 돕고자 준비되었습니다.  “… 너희는 지혜의 말씀을 부지런히 구하고 서로 가르치라. 그러하도다, 가장 좋은 책에서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 (교리와 성약 109:7)

이 선집은 2003 1월부터 2006 12월까지 ‘리아호나’에 게재된, ‘교회 총관리 역원’ 및 ‘지역 칠십인’, 그리고 ‘본부 보조조직 역원’의 선별된 말씀을 중심으로, ‘영원한 결혼: 학생교재’의 지도자 말씀과 각종 기사가 포함된 것입니다.  또 교회 교육기구 모임 말씀이 일부 포함되었습니다.  이 선집은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PDF 포맷의 리아호나 파일’을 가감없이 변환하여 정리한 것이며, 다만 2005 7월 이전의 말씀은 교회 명칭 변경 지침에 따라 각종 명칭과 경전 인용 구절을 한글 개역판 기준으로 수정한 것입니다.

이 선집의 말씀은 ‘교회의 3가지 사명’을 주제로 분류하였습니다.  특히 ‘성도를 온전케 함’ 주제는 ‘가족을 강화함’ 이라는 주제를 별도로 떼어내어, ‘가족선언문’과 함께 ‘가족 강화 관련’ 말씀만을 한 곳에 모았습니다. ‘성도를 온전케 함’ 주제의 말씀은 여러분이 쉽게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작고하신 총관리 역원의 말씀에 이어 현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원회 일원의 말씀을 부름과 날짜 순으로 정렬하여 배치하였습니다.  기타 주제는 날짜 순으로 정렬하였습니다.  ‘말씀 전문’이 수록된 경우에는 마지막의 ‘아멘’이라는 부분까지 그대로 실었으며, 일부 내용을 “…” 등의 표시로 생략한 경우에는 그 부분도 함께 생략하였습니다.  리아호나 이외의 자료에서 인용한 말씀과 오래된 성도의 벗 기사는 목차의 제목 오른쪽 끝에 굵게 표시를 하였습니다.  마지막 ‘신권’ 관련 주제는 형제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가르치거나 말씀할 때 훌륭한 참고가 될 말씀을 우선적으로 선별하였습니다.  회원들과 역원들에게 도움이 될 주제의 말씀을 선택하였습니다.  2003~2006 리아호나의 총관리역원 말씀 중 약 50%정도가 이 선집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선집에서 제외된 말씀과 기타 기사를 살펴보기 원하는 분은 다음 웹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www.koreanlds.org) 이곳에는 본 선집에서 축약되거나 제외된 모든 리아호나의 말씀 전문과 참조 자료 등이 연사의 사진등과 함께 링크되어 있습니다.  또 선집 뒷면에는 리아호나 외에서 발췌한 기사 리스트와, 교회관련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가 안내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후기 성도를 어떻게 다스립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올바른 원리를 가르쳐 주어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합니다. (quoted by John Taylor, in Millennial Star, 1851년 11월 15일, 339)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원리들을 탐구하십시오.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세부적인 내용으로부터 그 핵심이 되는 원리들을 추려내십시오. 원리는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농축된 진리입니다. 참된 원리는 가장 혼란스럽고 격심한 상황 아래에서도 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배우는 진리들을 단순한 원리의 말씀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성도의 벗, 1994 1월호, 86)

십이사도 정원회의 헨리 비 아이어링 장로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권고의 말씀을 통해 어디서 슬픔과 죄로부터 안전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고를 인식할 수 있는 한 가지 열쇠는 그러한 경고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반복된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렇게 축복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감사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선지자들의 권고에서 안전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신앙이 강한 사람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성도의 벗, 1997 7월호, 25)

 

매월 리아호나를 읽고나면 이 훌륭한 책이 책장에 꽂혀 먼지만 쌓여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몇 년 치 잡지를 모두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교회 영문 홈페이지에 여러 지도자들의 말씀이 풍성히 제공되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도 이러한 ‘주옥 같은 말씀’들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저는 평소에 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집을 구성하면서 저는 ‘리아호나’야말로 참으로 표준경전에 버금가는 ‘선지자의 말씀’이며 ‘가장 좋은 책’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7년은 우리 모두가 말씀을 ‘흡족히 취하[] (니파이후서 31:20) ‘영적인 지식’과 ‘참된 원리’를 부지런히 탐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전할 때 강한 영이 함께 함을 저는 압니다. 이 선집을 잘 활용하시기 바라며 여러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선집을 인쇄하는 데 지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丁亥年 元旦 2007年 1月 1日, 수원 스테이크 회장 구승훈

목차

안내문... 1

목차... 2

가. 복음을 전파함... 4

1.     “회원 선교사업의 필수적 역할", 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4

2.     “복음을 나누는 것에 관한 7가지 교훈”, 클레이튼 엠 크리스턴슨 장로, 리아호나 2005년 2월호.. 6

3.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의 힘", 리차드 지 스코트, 리아호나 2005년 5월호.. 9

4.     “선교사가 됨",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11

5.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듦", 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14

나. 죽은 자를 구속함... 16

1.     “구세주께서 영의 세계를 방문하심", 스펜서 제이 콘디, 리아호나 2003년 7월호.. 16

2.     “여러분의 가족 역사: 일을 시작함",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 리아호나 2003년 8월호.. 19

3.  제일회장단 서한, "성전 참석 격려", 리아호나 2004년 3월호.. 22

4.     “하나로 묶인 마음들", 헨리 비 아이어링, 리아호나 2005년 5월호.. 22

다. 성도를 온전케 함... 25

1.     “동산에서 무덤까지", '존 테일러 회장(1808-1887)외', 리아호나 2006년 4월호, 1882년.. 25

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올슨 에프 휘트니(1855-1931), 리아호나 2003년 12월호, 1931년.. 27

3.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해롤드 비 리 회장(1899-1973), 설교와 저서와 발췌문... 31

4.     “선지자의 특성”, 휴 비 브라운 회장(1883~1975), 리아호나 2006년 6월호, 1955년.. 34

5.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1978년 5월호, 1973... 37

6.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함",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성도의 벗, 1986년 7월호... 41

7.     “교만을 조심하십시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43

8.     “혀는 날카로운 같도다" 마빈 제이 애쉬튼(1915~1994)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46

9.     “순결해야 이유들",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리아호나 2003년 3월호, 1981년.. 49

10. “소중한 약속(신성한 성품)",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리아호나 2004년 4월호, 2002년.. 53

11. 제임즈 이 파우스트 회장, "그들의 눈에서 발하는 빛",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56

12. 제임즈 이 파우스트 회장, ”영의 음성” 리아호나, 2006년 6월호.. 59

13. 러셀 엠 넬슨, "성찬식 예배", 리아호나 2004년 8월호.. 61

14. 댈린 에이치 옥스, "계시가 있는 8가지 이유", 리아호나 2004년 9월호, 1981년 9월 29일.. 63

15. 댈린 에이치 옥스, “주님의 타이밍(선택의지) 리아호나 2003년 10월호, 2002년 1월 29일.. 66

16. 댈린 에이치 옥스, "일생의 헌신",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2005년 5월 1일, CES모임... 69

17. 엠 러셀 밸라드, "순수한 간증",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75

18. 엠 러셀 밸라드, “오 지혜로우라 (우선순위, 자기관리)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78

19. 조셉 비 워스린, "세상의 부채, 하늘의 부채",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80

20. 조셉 비 워스린, "우리의 기도를 향상시킴", 리아호나 2004년 8월호.. 83

21. 조셉 비 워스린, "전진하라” (신앙),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86

22. 리차드 지 스코트, "불확실과 시험의 시기에 지켜주는 신앙의 ",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89

23. 로버트 디 헤일즈, "신앙으로 가르침", 리아호나 2003년 9월호, 2002년 2월 1일.. 91

24. 제프리 알 홀런드, "제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2000년 2월 15일, CES모임... 95

25. 제프리 알 홀런드, "가르침, 설교, 병고침" 리아호나 2003년 1월호, 2000년 8월 8일.. 98

26. 제프 알 홀런드, "테러, 승리, 결혼 잔치", BYU, 2004년 9월 12일, CES모임... 103

27. 헨리 비 아이어링,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켜 몰몬경", 리아호나 2004년 2월호.. 109

28. 헨리 비 아이어링, "주의 힘을 의지하여",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113

29.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우리를 들어올려 주는 2005년11월호.. 115

30.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개인적인 간증의 힘",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117

31.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신앙으로 학문을 구함", 조던, 2006년 2월 3일, CES모임... 119

32.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재활동)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125

33.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보고 깨닫는 것이 빠름", 리아호나2006년12월호, 2005년5월10일.. 127

34. 퀜틴 엘 쿡, "푯대를 지나쳐” (극단적인 복음취미 추구), 리아호나 2003년 3월호.. 130

35. 월터 에프 곤잘레스, "구세주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르침", 리아호나 2004년 9월호.. 132

36. 존 에이치 그로버그, "하나님이 지니신 사랑의 힘",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134

37. 제이 이 젠슨, “간증을 함” 리아호나, 2005년 10월호.. 137

38. 메릴 제이 베이트먼, "신앙의 눈으로 바라 보십시오", BYU, 2006년 3월 5일, CES모임... 139

39. 윌리엄 알 워커, “주님께 봉사함 (부름과 해임) 리아호나, 2006년 8월호.. 145

라. 가족을 강화함... 148

1.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제일회장단 및 십이사도 평의회, 1995년 9월 23일.. 148

2.     " 성전에서 결혼하는가?", 존 에이 윗소(1872-1952), 1952년, '증거와 화해: 저서' 149

3.     "어머니가 가정 밖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스펜서 더블류 킴볼 외, 1976년, 정선된 가르침... 151

4.     "결혼과 이혼",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 BYU, 1976년 9월 7일, CES모임... 155

5.     "산아 제한에 대하여", 호머 엘스워스 박사, 성도의 벗, 1980년 6월호, 질의응답... 160

6.     “필요한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닌 여성이 됨, Patricia T 홀런드 1987... 162

7.     "가정의 밤", 고든 비 힝클리 회장, 리아호나 2003년 3월호.. 168

8.     “가족 평의회: 밸라드 장로 부부와의 대담", 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3년 6월.. 170

9.     “아버지, 영원한 부름", 엘 톰 페리,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173

10.부모의 지극한 정성을 모아:가족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로버트 디 헤일즈 2004년 5월호.. 175

11. “데이트를 잔잔한 항해처럼", 수잔 더블류 태너 자매, 2004년 10월호, 2003년 11월 18일.. 178

12. “우리 삶에서의 여성", 고든 비 힝클리 회장,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181

13. “가정과 교회에서의 신권의 권세", 댈린 에이치 옥스,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184

14. “부모의 성스러운 책임", 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6년 3월호.. 187

15. “부모는 거룩한 의무를 지닙니다”, 보니 디 파킨 자매, 리아호나, 2006년 6월호.. 190

16. “결혼은 그분의 영원한 계획에서 필수적입니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리아호나2006년6월호.. 193

마. 신권 정원회와 그 목적... 197

1.     "이스라엘의 목자들 (교회의 감독들에게)", 고든 비 힝클리,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197

2.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열쇠", 제임즈 이 파우스트 회장,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199

3.     "정원회란 무엇입니까", 엘 톰 페리,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202

4.     “신권의 열쇠”, 러셀 엠 넬슨, 리아호나 2005년 10월호.. 204

5.     "신권 정원회", 헨리 비 아이어링,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206

. 복음을 전파함

 

1. “회원 선교사업의 필수적 역할", 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3 5월호

 

우리는 선교사들을 도와 기꺼이 회복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절은 기독교 사회가 우리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이 한 순간의 사건이 모든 것을 영원히 변화시켰습니다. 우리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바로 구세주께서 제거하셨습니다. 그 대신,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9~20)

같은 메시지를 담은 보다 친밀한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구세주는 매번 베드로에게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치라 …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15~17)

“그분의 양을 먹이라”는 구세주의 열정적인 분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고대의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처럼, 오늘날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복음을 세상 모든 곳에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임을 한시도 등한히 하지 않습니다. 모든 총관리 역원들은 선교사로서의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세주는 단지 사도들에게만 말씀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또한 복음을 듣고 그분의 교회 회원이 되는 축복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셉 스미스에게 주신 계시에서, 주님은 그 사실을 아주 간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미 경고를 받은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이웃을 경고할 책임이 있느니라. (교리와 성약 88:81)

지난 연차 대회에서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보다 잘 준비하라는 목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합당하고, 자격을 갖추고, 영적으로 열성적인 선교사가 되도록 요청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 세대” (엠 러셀 밸라드, “가장 위대한 선교사 세대”, 리아호나, 2002 11월호, 46)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완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복음 교사로서 새로운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열정적이고 자발적이며 헌신적으로 봉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회복되었다는 메시지를 알아야 하며 성령의 인도와 영향력으로 자신의 말로 그것을 힘있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어느 곳에서나 우리는 모든 선교사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노력은 “빗장을 들어올리는 것”, 곧 “표준을 높이는 것”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들과 감독님들과 스테이크회장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의 표준에 따라 기꺼이 살고자 하는 교회의 충실한 청소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그분을 섬기고자 준비하는 여러분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속적으로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임무 수행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이려면, 선교의 의무를 실행하는 모든 교회 회원들의 임무 수행에 대한 기대 수준 또한 높아져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선교사들이 더욱 많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찾아 침례 줄 수 있도록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데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선교사들을 돌보고 보호하며 그들에게 영감을 주어야 합니다. 표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더욱 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교사들을 도와 기꺼이 회복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상품을 팔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팔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우리의 숫자나 성장으로 감명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 양육하고, 그분의 교회로 안전하게 데려오도록 권한을 위임받고 보내심을 받은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원들입니다.

영원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하려는 일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해 보이지만, 회원 선교 사업은 어렵고 때로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신성한 책임을 수행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세 가지 일을 제언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가족으로서 기도하고 신앙을 행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을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 길을 열어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선교사들이 여러분의 집에서 누군가를 가르칠 날짜를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하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변함없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게 하십시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십시오. 결코 미리 판단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말하며, 여러분이 전할 말을 알려 주는 약속된 영의 권세를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의 초대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그들이 결정하게 하십시오. 시간이 되면, 주님께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양을 아시며, 그들도 여러분을 통해 전달되는 그분의 음성을 알고 그분을 따를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참조)

힝클리 회장님은 최근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전세계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와드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지원할 방편을 주님께 간구할 때, 참으로 훌륭한 날이 될 것입니다. (“선교사 봉사” 제1회 전세계 지도자 훈련 모임, 2003 1 11)

 

둘째, 지도자는 모범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영은 우리의 메시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찾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이끌어 인도하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합당하다면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선교사를 돕도록 회원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용기와 영적인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수년 전에 충실한 개종자인 조지 맥로클린 형제님은 메인 주 파밍데일에서 회원 20여 명의 조그만 지부를 이끌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유 배달로 생계를 꾸려 가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금식과 진지한 기도를 통해, 그는 자신과 지부 회원들이 그 지역에서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관해 영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커다란 신앙과 끊임없는 기도와 강력한 모범을 통해 회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나누어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이야기로, 이 경륜의 시대에 펼쳐진 위대한 선교사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일년 내에, 그 지부에 450명의 개종자 침례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해에 추가로 200명의 개종자가 생겨 났습니다. 맥로클린 지부장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부장으로서의 제 직무는 [새로운 개종자들]에게 어떻게 몰몬이 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에서 말씀과 공과를 어떻게 전하는지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가르쳐야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회원들이 강한 회원들이 되도록 훈련했습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불과 5년이 지난 후에, 오거스타 메인 스테이크가 조직되었습니다. 새로 조직된 그 스테이크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파밍데일 지부의 개종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시에 어떻게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하고 질문해 본다면, 아마도 교회를 강화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같은 절박한 필요성은 오늘날 교회의 모든 단위 조직에서도 그 때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는 선교 사업이 와드 중심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스테이크회장과 감독은 회원들이 마음이 청결한 자들을 찾고, 그들이 침례를 받고 와드와 스테이크 내에서 봉사하는 생활을 하도록 준비시킬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교회의 모든 감독님들께 제언드리고 싶습니다. 회원들에게 ‘와드 [성장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하자’라는 표어를 주십시오.(“양을 찾고 먹이라”, 리아호나, 1999 7월호, 120)

워싱턴 주의 한 감독님은 기도하는 자세로 그 권고에 따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실행했던 바를 보여 줍니다. 신권 및 보조 조직 지도자들을 통해, 와드 평의회는 와드 내의 선교 사업을 조정합니다. 선교사들은 와드 평의회 모임에서 자신들의 사업에 대해 의논하게 되어 있습니다. 회원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구도자 방문에 참여하도록 임무 지명을 받습니다. 회원들과 선교사들은 활동이 저조한 회원과 일부만 회원인 가족을 방문합니다. 지난해에 이 와드는 46명의 새로운 회원들에게 침례를 주고 확인 의식을 했으며, 새로운 회원의 지속적인 활동률 또한 매우 높습니다. 신권 및 보조 조직들이 와드 평의회를 통해 감독 지시에 따라 개종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 와드에서 교회에 나오거나 활동화 된 회원들은 많은 친구를 갖게 됩니다. (Ward Council Is Secret of Centralia Ward Success,Church News, 1 Feb. 2003, 5 참조)

감독 여러분,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와드 전체를 참여시키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과 회원들을 많은 개종자와 많은 재활동 회원들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선교 사업은 와드 평의회의 의제일 뿐만 아니라 장로 정원회, 상호부조회, 기타 정원회, 그룹 및 보조 조직 등의 의제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녀를 함께 침례 주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도록 돕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권 및 보조 조직 지도자들의 선교 사업은 와드 평의회를 통해 와드 선교 책임자와 감독에 의해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개종자들은 그들의 와드에서 완전히 활동적인 회원이 될 것입니다.

2003 4월 엔사인 [Ensign] 지에 동봉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찾음”이란 DVD를 사용하여 복음을 나눌 특별한 기회가 현재 회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부활절 기간에 이웃이나 친구들을 초대하여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역, 영광스런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또한 선교사들을 참석하게 하여 주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그분의 교회를 어떻게 회복하셨는지 가르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셋째, 회원 선교 사업은 전략이나 수단의 개발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 곧 주님을 믿는 참된 신앙과 신뢰를 필요로 하며, 또한 진실한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첫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 39)

따라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 사업 동료,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기타 여러 사람들과 복음을 나눌 때 사랑의 힘이 우리를 인도하게 합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욕망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를 원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봉급 인상, 큰 집, 새 차, 오락 기구 등은 지속적인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이 우리의 기쁨과 평화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나옵니다. 행복은 구세주를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에서 옵니다. 행복은 복음의 가치관들에 기초를 둔 강한 가족 및 교회 관계에서 나옵니다.

어떤 회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복음을 나누기가 두렵습니다.” 경험에 의하면, 사랑의 영과 관심으로 복음을 나눌 때 사람들의 기분은 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저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이 지시하는 대로 말한다면 어느 누구의 기분이 상하겠습니까?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는 우리가 단지 임무를 수행하고 참된 관심과 사랑을 보이지 못할 때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와여러분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참된 교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의회복된 복음은 우리가 일생 동안은 물론 영원토록 소중하게 간직할 만한, 인간의 영혼에 깊고 변함없는 행복을 가져다 줄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들을 교회에 들어오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의 충만함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력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강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메시지는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영혼에서 영혼으로, 영에서 영으로, 좋은 이웃이 되어 돌봐 주고 사랑을 보임으로써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생활에서 복음을 드러낼 수 있고 복음이 가져다 주는 축복들을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훈계에 따르도록 합시다. “결국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 큰 의무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History of the Church 2: 478; “증인이 되어”, 제프리 알 홀런드, 리아호나, 2001 7 월호, 17)

우리는 더 나은 형제 자매가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회복된 복음을 전하는 전임 선교사들을 돕는 일에 우리 개개인이 적극 참여하도록 주님께서 신앙과 용기를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하게 간구합니다. 아멘.


(엠 러셀 밸라드, 회원 선교사업의 필수적 역할, 173차 연차대회, 리아호나 2003 5월호, 37)

 

2. “복음을 나누는 것에 관한 7가지 교훈”, 클레이튼 엠 크리스턴슨 장로, 리아호나 2005 2월호

 


구세주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몇 안 되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 (마태복음 28:19)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과중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 대리이신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님은 우리에게 신앙으로 행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과제를 시도해 보지도 않고 ‘이런, 그건 불가능해!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우리는 단순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나누는 능력은 몇몇 후기성도에게만 주어지고 나머지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그러한 “은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주님의 방법으로 이 일을 실행한다면, 선교사들에게 가르칠 사람들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쉽고 자연스런 일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 그분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된 일곱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몰몬들”과 “깊은 우정”

훌륭한 회원 선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초기에 우리가 알게 된 첫 두 가지 교훈은 우리가 복음을 나누는 일을 훨씬 쉽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복음에 관심을 가질지 가지지 않을 지를 단순히 예측할 수 없으며, 우정을 쌓는 일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배우도록 권유하는 것에 있어 전제 조건이 아닙니다. 신혼 부부였을 때 우리는 와드의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도록 요청했습니다. 그 때 이 원리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명단 맨 위에 적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열두 단계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기로 했습니다. 먼저,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다음에는 문화 행사에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및 여덟 번째 단계는 그들을 교회에 초대하고 몰몬경을 주며, 그들에게 선교사 토론을 들어 보도록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열두 번째 단계인 침례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충실하게 이 명단을 만들면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복음에 가장 관심이 많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명단 맨 위에 적었습니다. 그들은 깨끗한 삶, 가족에 대한 충실함과 같은 우리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상적인 몰몬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후 바쁜 우리 생활에 친목 행사들을 추가했고, 그들과 좀더 깊은 우정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번째에서 여덟 번째 단계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복음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우리의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우리의 권유가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에 대한 현재 그들의 접근 방식에 만족한다고 정중히 말했습니다. 여러 달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우리는 복음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후 새로운 선교사들이 우리 와드에 왔습니다. 그들은 그간 우리가 한 일을 전혀 모르고 우리 집에 와서 동일한 계획표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으며, 그들이 복음을 가르치기 전 준비 단계로, 우리가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미 해보았어요. 그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열성을 다해 노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도자 소개가 절실히 필요했던 선교사들은 간청했습니다. “우리가 방문할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초기 명단에서 제외시켰던 네 부부의 성명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 중에 테일러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름을 변경했음) 우리는 장로들이 테일러 부부의 집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시간 낭비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켄은 모든 종교 조직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거친 럭비 선수였고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셨습니다.

나중에, 장로들은 신이 나서 돌아왔습니다. 테일러 부부는 그들을 집으로 들어오게 했고 첫 번째 토론을 들었으며, 다시 와서 두 번째 토론을 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테일러 부부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으며, 선교사 토론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교회에 대해 배우는 것에 누가 관심을 가질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활 방식이나, 습관, 외모가 부적절해 보이는 후보자들은 명단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처음 교회를 알게 되었을 당시의 그들 중에는 우리가 만든 “회원이 될 것 같은 사람”명단에 오를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있거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앨마서 32:2~3) 복음에 따라 살면서 그들은 변화됩니다. 모든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미리 판단하지 않고, 구세주를 따르도록 그들에게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에게 복음을 배우도록 권유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더 깊은 우정으로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이웃, 학급 동료, 직장 동료, 가게 점원,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이것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전임 선교사들은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합니다. 신뢰 관계는 그들이 가르칠 기회를 갖게 될 때 쌓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관계의 깊이와 어떤 사람이 복음을 배우는 일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 간에는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항상 사실입니다. 권유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최종적으로 침례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더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우리는 또한 사람들이 우리의 권유를 거절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도록 그들에게 권유하는 데 있어, 그들이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개인적이고 중요한 어떤 것을 나누고 싶어할 만큼 그들에게 신경을 써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선교사를 신뢰함

우리는 선교사들이 우리 집에서 제 남편인 클레이튼의 동료인 잭을 가르칠 때 세 번째 교훈을 얻었습니다. 후임 장로는 이제 막 선교사로 나왔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그의 선임 동반자는 아직도 영어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질문이 생길 때마다, 잭은 본능적으로 클레이튼에게 질문을 했고, 클레이튼은 자신이 이 장로들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장로들이 개념을 가르치면 잭이 질문하고, 클레이튼이 거기에 대답을 하고 나면 다시 장로들이 다음 개념을 가르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잭은 클레이튼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클레이튼이 잠시 머뭇거리자, 아르헨티나에서 온 장로는 영에 의해 아주 심오한 대답을 했습니다. 잭이 다음 질문을 했을 때, 클레이튼은 이 장로가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기다렸고,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나누는 것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선교사들의 경험 부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복음을 잘 가르칠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네 번째 통찰력은 클레이튼이 가정 복음 교육 대상 회원인 한 연로한 자매님의 집 지하실에서 낡고 오래된 냉장고를 옮겼을 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도와 줄 와드의 또 다른 회원을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도움이 절실했던 우리는 이웃의 비회원인 짐에게 부탁을 했고 그는 기꺼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 날은 매우 덥고 몹시 습도가 높은 여름 날이어서, 우리의 옷은 곧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우리가 계단의 첫 번째 모퉁이에 도달해 냉장고를 반듯이 내려놓았을 때, 짐이 말했습니다. “그럼 몰몬 교회에 대해 좀 얘기해 주세요.

이마를 훔치며, 클레이튼이 대답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그런 후 그는 가정 복음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고 이 자매님이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 지역에서는 대학원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항상 이사를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자주 누군가가 트럭에서 짐을 내리거나 싣는 일을 도와 준다고 말했습니다.

짐은 믿기 어려워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냥 설교를 듣기만 해요, 그리고 집으로 가죠. 누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나는 전혀 모릅니다. 요청 받은 적도 없고, 도움을 제공할 방법도 없어요. 일손이 더 필요하시면 또 부탁해 주시겠어요? 전 이런 일 하는 걸 좋아합니다.” 과거에 클레이튼은 짐이 교회에 관한 토론을 듣도록 노력했었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고, 짐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에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여기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많은 사람들은 봉사를 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이런 소망을 갖게 합니다. 교회에 대해 알아보라고 권유할 때, 우리가 교리를 강조한다면, 우리는 종종 그들이 처음에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그들을 연계시킬 때, 그들은 종종 교회가 중요한 의무를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에서의 우리 일을 돕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그들이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고 영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느낌들이 올 때, 많은 사람들은 종종 그제서야 무언가가 자신들의 삶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도움으로써, 대화를 통해서나 와드 행사에 참석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보다 교회에 대해 훨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짐은 그 이후 선교사 토론을 들어 보라는 우리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무엇이 성공인가?

우리 교회에 있는 많은 진리와 선을 보았음에도, 짐은 세 번째 토론 후에 공부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교회에 대해 공부하는 일을 중단한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복음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일에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에게 회원 선교 사업에 관한 다섯 번째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교사로서 성공했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짐은 우리의 훌륭한 친구가 되었고, 우리는 그에게 더욱 깊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침례의 물 속으로 들어가든 그렇지 않든, 그는 그 자신의 영원한 진보의 길에서 한 발자국을 내딛었으며, 몇 가지 중요하고 옳은 선택들을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회원 선교사로서 성공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사람들에게 진리를 배우고 받아들이도록 권유할 때, 복음을 나누는 데 방해가 되었던 대부분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최종 기한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님의 권고에 따르면서 우리는 여섯 번째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쁜 생활에서 우리가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최종 기한이 필요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특정한 시간까지 끝내야 할 일들은 마치게 되지만,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활동들은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명확한 최종 기한이 없이는, 선교 사업과 같은 영원한 중요성을 띠는 가치 있는 일도 쉽게 연기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밸라드 장로님은 정기적으로 “날짜를 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성명을 적어 놓을 필요는 없다고 분명하게 권고하셨습니다. 그보다도, 밸라드 장로님은 주님께 드리는 약속으로서 날짜를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에 관해 말할 모든 기회를 찾는다면, 주님은 그 날짜까지 선교사를 만나 보라는 우리의 권유를 받아들일 누군가를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장로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밸라드 장로님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매년 선교사가 가르칠 누군가를 찾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날짜를 정할 때마다, 주님은 우리가 가르칠 사람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사람들 중에 쉽게 찾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기에는 매일의 기도와, 자주 드리는 금식, 복음에 관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만드는 일 등이 요구되었습니다. 우리는 대화에서 교회 활동, 선교 사업을 하는 우리 아이들, 교회의 임무 지명을 통해 배웠던 경험 등을 설명하는 “몰몬”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할 때, 그것은 마치 우리가 문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안으로 들어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권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문으로 들어오지 않지만, 괜찮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관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질문에 답합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여겨지면, 두 번째 문을 열어, 그들을 교회 모임에 초대하거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집으로 초대합니다. 우리가 권유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거절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입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사랑을 느낀다면, 자신들을 초대할 만큼 신경을 써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수와 변수

우리는 이 경험에서 일곱 번째 교훈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바쁘게 봉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우리를 축복하셔서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니파이전서 3:7 참조) 우리가 선교사들이 가르칠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등식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상수이지 변수가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약속을 지키십니다. 유일한 변수는 우리가 행하고, 순종하고 기적을 기대할 신앙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회원들보다도 더, 우리 와드와 스테이크(혹은 지부와 지방부)를 이끄는 바쁜 형제들과 자매들이 이 단순한 신앙을 행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약 복음을 나누는 것에 대해 현재 시제와 1인칭 화법으로 말할 수 없다면, 그들은 회원 선교 사업을 하라는 우리 선지자의 부름을 다른 사람들이 성취하도록 그들을 고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선교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아주 쉽게 복음을 나누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이 일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이 일을 불편해 하고 겁을 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들을 배우고 따르는 것은 우리가 매우 자연스럽게 복음을 나누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나누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축복과 우정이 우리의 삶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축복이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정기적으로 선교사들과 함께 성신의 권세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과 오래된 친구들에게 복음을 가르침으로써, 우리 다섯 자녀들의 신앙은 큰 영향을 받았으며 우리의 가정에는 하나님의 영이 깃들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에 관한 일곱 가지 교훈, 클레이튼 엠 크리스턴슨 장로와, 리아호나 2005 2월호, 16)

3.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의 힘", 리차드 지 스코트, 리아호나 2005 5월호

 

저는 여러분에게 이 비범한 자료가 어떻게 여러분의 선교 사업을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을 권고드립니다.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복에 관한 영광스러운 메시지를 보다 쉽게 전하도록 해 줄 고무적인 발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그것은 우리 선교사들의 마음과 정신에 불을 붙였는데, 이는 그들의 메시지를 권세로 가르치고 정해진 토론의 대화에 구애 받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 및 그분의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 관해 간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로 전임 선교사가 사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자료가 자녀들이 선교사로 나가도록 준비시키는 부모들에게도 정말 유익하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청남 청녀들뿐만 아니라 부부들도 선교사 훈련원에 입소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기 위해 이 자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부 신권 지도자들은 이 자료가 아론 신권 소유자들의 선교 사업 준비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 도구는 신권 및 보조 조직 지도자들이 새로운 회원들의 간증과 순종심을 강화시키도록 돕는 데도 매우 소중한도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새로운 지도서인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와 그에 부속된 선교사 일일 계획서와 같은 계획 도구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관해 제가 이렇게 열정적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전례 없이 선교 사업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선교사들에게 “선교 사업의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해 왔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저마다 상당히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명확한 목적이 없었습니다. 이 지도서의 첫 페이지는 이런 참된 목적에 선교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대한 신앙, 회개, 침례, 성신의 은사 및 끝까지 견딤을 통해 회복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움으로써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도록 권유한다.그 내용에는 영의 인도를 받아 그렇게 하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종전의 선교사 자료는 당시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세상이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사회의 기초를 구성하는 가치관이 사탄과 그 세력에 의해 공격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다시 주신 충만한 진리를 나누기 위해 향상된 방법이 시급히 필요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행복의 계획과 그것이 그분의 위대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어떻게 지상에 회복되었는가에 관한 설명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신권 권능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시 한 번 완전하게 지상에 회복되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이에 대해 이와 같이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선교사 표준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상당히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방법은 너무 많은 경우에 암기하여 발표했으므로 영과 개인적인 확신이 결여되었습니다 …

[선교사들은] 토론의 개념을 완전히 습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을 영의 인도 하에 자신의 말로 가르쳐야 합니다.이 원리가‘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의 근간 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이제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회복에 관한 메시지, 구원의 계획, 필수적인 계명, 복음의 율법과 의식을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로 이런 내용들을 영의 인도에 따라 가르칠 것입니다. 이렇게 집중한 결과 선교사업의 성과가 급격히 향상되고 있습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에는 영의 인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에 관해 지극히 귀중한 정보를 주는 장이 몇 개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개인 토론 기술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관한 성구도 있습니다. 한 장은 몰몬경이 우리 종교의 종석이 되는 이유, 그 책이 영혼에서 나오는 심오한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는지, 어떻게 신앙을 키우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돕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몰몬경이 어떻게 우리 메시지의 참됨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자료가 되는지를 보여 주는 추가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소망, 자애, 사랑과 같은 그리스도와 같은 속성을 추구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는 사랑이 가장 뜻깊은 선교 사업을 위한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제언도 나와 있습니다. 선교사가 시간을 보다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돕기 위한 명확하고 매우 효과적인 시간 계획 도구도 제공되어 있습니다. 가르칠 개인을 찾고 준비시키는 검증된 방법들도 들어 있습니다. 침례, 확인,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결심을 하고 지키도록 돕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도 들어 있습니다. 이 지도서에는 전임 선교사들, 스테이크 및 와드 지도자들, 회원들의 노력을 통합하는 도구가 있습니다. 그런 도움을 통해 더 많은 신회원은 보다 확고하게 교회 가족으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침례 및 확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인생 내내 그분의 약속된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보다 큰 확신이 있습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있는 영감에 찬 내용을 활용함으로써 많은 선교사들이 확신을 갖고 가르치고 성신의 확인과 증거를 불러오는 능력을 급격히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두 명의 선교부회장 보조에게 저를 구도자로 생각하고 조셉 스미스의 시현에 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그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을 해야겠다고 계획했습니다. 연습이었지만 그들의 진지한 메시지, 그 순수한 의도, 전하는 기술이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향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토론 1 을 가르치게 해 보십시오. 영의 인도를 받아 그들은 자신의 말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복의 계획을 그분의 자녀들에게 전하시기 위해 각 시대마다 어떻게 선지자들을 활용하셨는가를 설명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던 신성한 시현에 대해 간증할 때 그들의 간증을 느껴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권능을 가지고 지상에 다시 충만한 복음을 회복시켰던 그 후의 사건들을 능숙하게 펼쳐 보일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선교사들과 함께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영감에 찬 진리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하면 이런 소중한 진리를 처음 듣는 사람들을 크게 강화시켜 줄 것입니다.

제일회장단, 십이사도 정원회, 다른 총관리 역원들과 매우 헌신적이고 경험 많은 유능한 실무 팀이 각각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와 계획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개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기획하고 체계를 잡고 최종 마무리 과정에서 성신을 통해 주어진 주님의 영감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14개 선교부에서 광범위한 시험을 거친 끝에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가 편집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가 검토하고 수정하고 승인했습니다. 2004년 10월 15일 전세계 위성 방송을 통해 선교부회장들과 선교사 지도자들에게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소개했습니다. 세계 곳곳의 모든 선교사들이 영문판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몰랐지만 그들은 선교 사업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일부 선교사들이 영어를 배우겠다는 동기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올해 초에 일본어, 한국어, 스페인어 및 포르투갈어판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가 배부되었습니다. 올 연말까지 선교사들이 쓰는 대부분의 언어로 이 지도서를 배부할 예정입니다.

 

선교사들만이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서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 한 선교부회장의 아내는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있는 모든 참조 성구를 포함하여 모든 내용을 공부하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런 다음 용기가 부족해 하지 못했었던 일을 했으며, 가까운 친척에게 몰몬경을 읽고 공부하고 깊이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녀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다른 가족은 자녀들의 선교 사업 준비를 돕기 위해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활용했습니다. 그들은 “열일곱 살 된 자녀가 제일 먼저 그 임무를 맡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 아이는 그 책에서 가장 짧은 부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20분 동안 성구와 간증을 완벽하게 곁들여 그 원리에 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과를 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아들을 선교사로 준비시키던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제게 인생의 목적, 교회 회원이자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저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 통찰과 보다 명확한 이해를 주었습니다. … 이 책은 또한 그런 일들을 더 잘하도록 하는 확실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어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가 소개된 지 7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훌륭한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특별한 선교 도구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될 때 가장 훌륭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침례 성약을 맺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 동안 교회 회원이라는 충만한 열매를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회장단에서, 신권 집행 위원회에서, 와드 평의회에서 이 자료를 사용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침례 받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발전 기록부를 사용하여 회원들과 선교사들의 노력을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과 선교사들이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있는 원리를 사용하여 함께 일할 때 보다 많은 새로운 개종자들이 활동적으로 남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망을 성취하기가 보다 쉬울 것이라고 저는 확신 합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있는 다음과 같은 제일회장단 메시지는 선교사들에게 보다 큰 동기를 주고 또 여러분의 선교 사업에 격려가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칭찬할 만하거나 … 일은 없습니다. …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여러분이 더 잘 준비되고, 영적으로 더 성숙한 선교사가 되고, 더욱 설득력 있는 교사가 되도록 돕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 우리는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사업을 돕겠다는 각오를 한층 더 새롭게 하도록 권고합니다. … 주님은 여러분이 겸손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섬길 때 여러분에게 보상하시고 풍성하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비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이 선교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시작할 때 저처럼 여러분도 흥분될 것입니다. 종전의 전임 선교사 자료와는 달리,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교회 배부 센터를 통해 모든 지도자와 회원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의 영감 받은 내용을 이해하고 적용할 때 오는 성장 때문에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의 가장 큰 혜택을 앞으로 더 강한 부모, 더 유능한 교회 지도자, 그리고 더 훌륭한 직업인이 될 귀환 선교사들의 삶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전세계의 우리 선교사들을 대신하여 우리는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의 준비, 인쇄, 배부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의 효과적인 사용을 터득하고 있는 선교 부장과 선교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영감을 주신 주님께 크나큰 감사를 드립니다. 자녀에게 선교 사업을 준비시키는 부모이든, 새로운 개종자를 돕는 교회 지도자이든, 복음을 나누는 회원이나 봉사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든 어느 쪽이든 저는 여러분에게 이 비범한 자료가 어떻게 여러분의 선교 사업을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권고드립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행할 때, 구세주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영감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리차드 지 스코트,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의 힘, 175차 연차 대회, 리아호나 2005 5월호, 29)

 

4. “선교사가 됨",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리아호나 2005 11월호

 

여러분과 저는 오늘 그리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회복의 메시지를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선교 사업은 우리의 영적인 신원과 유산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거룩한 신권을 받은 우리 모두는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의식들을 합당한 권세에 의해 받도록 권유함으로써 이 지상의 나라들과 가족들을 축복할 성스러운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전임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일부는 지금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평생 동안 선교사로서 지금 봉사하듯이 앞으로도 봉사를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매일 선교사입니다. 나이와 경험과 삶에서의 상황을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선교사 입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우리가 주기적 혹은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선교사로서의 우리의 봉사는 분명 젊은 시절이나 노후에 하게 되는 전임 선교사의 짧은 기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는 우리가 받아들인 신권에 속한 맹세와 성약에서 오는 고유한 임무입니다. 선교 사업은 본질적으로 신권의 책임이며, 신권을 소유한 우리 모두는 이 지상에서 주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 받은 종으로서 언제 어디서나 선교사이며, 또한 항상 그럴 것입니다. 신권 소유자로서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도 우리의 참된 정체성은 주로 복음을 선포하는 책임에 의해 정의됩니다.

오늘 제 메시지는 복음을 선포하는 신권의 의무에 있어서 우리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권 모임에서의 제 특별한 목적은 선교사의 부름을 준비하고 있는 교회의 청남들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눌 원리들은 간단하면서도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며, 그 원리들이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고, 평가하고, 향상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중대한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는 동안 저와 여러분에게 성신이 함께하기를 간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들

세계 각지의 교회 청소년들과 모임을 하면서, 저는 종종 참석한 청소년들에게 질문하도록 권유합니다. 제가 청남들로부터 가장 자주 받는 질문들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전임 선교사가 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준비하려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질문에는 마땅히 진지한 답변이 주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남 형제 여러분, 선교사의 부름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기 이전에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제 대답에서 나가는 것보다 되는 것을 강조했음을 주목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통상적인 교회 용어에서, 우리는 자주 교회에 간다, 성전에 간다, 그리고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감히 가는데 중점을 둔 이 통상적인 표현이 중요한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성약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가거나 참석하고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영과 성약과 주님의 집의 의식들을 우리의 마음에 지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선교사가 되어 온 마음과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일생 동안 봉사하는 것입니다. 한 청남이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서 선교사가 되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며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청남 개개인에게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소망은 여러분이 단지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선교사 추천서를 제출하기 훨씬 전에, 여러분이 선교사 부름을 받기 훨씬 전에, 스테이크 회장에게서 성별 받기 훨씬 전에, 그리고 선교사 훈련원에 입소하기 훨씬 전에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되는 것의 원리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은 단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을 성취하기보다 무엇인가가 되라는 과제에 대해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가르침과 교사가 주어진 이유를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과정에는 그저 지식을 얻는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참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의해 개종되도록 행동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제도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도록 가르치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무언가가 되도록 권유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통과 의례를 치르듯 몸짓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복음에서 요구되는 계명과 의식과 성약들은 하늘의 어떤 예금 계좌에 적립해야 할 예금 목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되기를 바라시는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들을 보여주는 하나의 계획입니다”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과제',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리아호나, 2001 1월호, 40)

형제 여러분,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는 과제는 선교 사업의 준비에 정확하고도 완전히 적용됩니다. 물론 선교사가 되는 과정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학교에 가는 것이나, 또는 취침 및 기상에 있어 선교사 지침을 따르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런 사고 방식을 지지하시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려는 소망 (교성 4:3 참조)을 증대시킬 수 있고,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선교사들이 읽는 것을 읽고, 선교사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선교사들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신을 물러가게 하는 세상적인 영향력을 멀리할 수 있고, 영적인 속삭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따르는 데 있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말씀을, 교훈에 교훈을,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여러분은 차차 여러분이 되고자 원하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교사 훈련원의 정문을 들어서는 날 갑자기 마술처럼 잘 준비되고 순종적인 선교사로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교 사업 전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쌓아온 모습이 곧 선교사 훈련원에서의 여러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선교사 훈련원에서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선교사가 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발전을 측정하는 좋은 지표가 될 것입니다.

선교사 훈련원에 입소하면, 여러분은 분명 여러분의 가족이 그리워질 것이고, 여러분의 하루 시간표는 여러 면에서 새롭고 도전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될 준비를 잘 갖춘 청남은 선교 사업의 엄격한 기본 사항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이에 대해 부담 또는 강요받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기 전에 선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의 주요 요소는 표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아들이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선교사가 되도록 도와 주는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계십니까?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내는 아들이 선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신권 및 보조 조직 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은 부모들을 돕고 모든 청남이 선교 사업 이전에 선교사가 되는 것을 돕는 책임을 인식하고 계십니까? 부모들과 모든 교회 회원들을 위한 표준도 높아져야 합니다. 되는 것의 원리(principle of becoming)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아들이나 여러분이 봉사하는 청남들의 구체적인 필요 사항에 맞는 영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설명하고 있는 이 준비란 단지 열 아홉이나 스물, 또는 스물 한 살의 청년으로서의 선교 사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평생 동안의 선교 사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권 소유자로서 우리는 항상 선교사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기 이전에, 그리고 선교 사업 임지에서 선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진실로 발전 한다면, 전임 선교사로서 명예롭게 귀환하는 그날이 올 때 여러분은 수고한 임지를 떠나 여러분의 가족에게로 돌아오겠지만 결코 선교 사업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권 소유자는 언제 어디서나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란 신권 소유자요 아브라함의 후손인 바로 우리의 신분 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과 성약의 상속자들을 아브라함의 후손 (Bible Dictionary, Seed of Abraham, 771쪽 참조)이라 부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법과 의식들에 순종함으로써만 옵니다. 형제 여러분, 선교사가 되는 과정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를 구하는 훌륭한 선지자였고 그의 소중한 아들이었던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계명을 포함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계명에 순종했습니다. 그의 굳건함과 순종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충실한 자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브라함과 성약을 맺으시고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크나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 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수많은 후손을 약속 받았고, 또한 그 후손을 통해 지상의 나라들이 축복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약속 받았습니다.

지상의 나라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축복을 받을까요?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브라함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너로[아브라함] 큰 나라가 되게 하겠고 내가 네게 한량 없이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모든 나라 가운데서 크게 할 것인즉, 너는 네 뒤를 이을 네 자손에게 복이 되리니,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이 성역과 신권을 지니고 모든 나라에게 전하리라.

"또 내가 네 이름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을 주리니,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마다 네 이름으로 불리울 것이요, 네 자손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그들은 일어나 너를 그들의 조상으로 찬양하리라. (아브라함서 2:9~10)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아브라함의 충실한 상속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축복과 신권의 권세를 받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역과 신권을 지니고 모든 나라에 전하리라”는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의식들을 합당한 신권의 권세에 의해 받도록 권유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후일의 이 시대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막중한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과 축복들은 오늘날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직접적인 혈통으로든 입양으로든, 오늘 제 음성을 듣고 있는 모든 남성과 소년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정당한 상속자들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우리가 축복사의 축복을 받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더 확실히 이해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인식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오늘 그리고 언제나 지상의 모든 나라의 모든 민족을 축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그리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회복의 메시지를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그리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의식을 받도록 권유할 의무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시간제 신권 업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잠시 동안 우리가 참여하는 활동이 아니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도 아닙니다. 올바로 말해, 선교 사업은 우리의 영적인 신원과 유산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세에서 예임되었고 아브라함에게 주어 진 성약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 현세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신권을 영화롭게 하고 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지금 이곳 지상에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리고 언제나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 주며,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음악이나 운동을 즐기거나, 또는 기계를 다루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며, 훗날 무역이나 전문직이나 예술 분야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활동이나 직업들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지는 않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충실하여 내가 말한 이 두 신권을 얻고 자기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영으로 성결하게 되어 몸이 새로워 짐이라.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아들들이 되고, 아브라함의 씨와 교회와 왕국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가 되리라. (교리와 성약 84:33~3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았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청남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더 깊이 이해하고 선교 사업을 하러 나가기 훨씬 전에 선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가정과 가족에게로 돌아온 후에도, 여러분 귀환 선교사들은 항상 선교사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일어나 지금껏 가져 본 적 없는 큰 간증과 영적인 힘으로 지상의 나라들을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구주시며 구속주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 영광스런 사업에서, 신권 소유자로서의 우리가 오늘 그리고 언제나 그분의 대표자임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선교사가 됨, 175차 반연차 대회, 리아호나 2005 11월호, 44)

 

5.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듦", 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6 5월호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몇 주 전에 저는 양 무릎에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은 인사치레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회복 기간 동안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과 고난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압도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견디셨는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께 감사드리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이 그분을 사랑합니다.

저는 또한 선지자 조셉의 출생지에서 힝클리 회장님과 함께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회복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본질이나 그분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신성한 본질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영원한 본질을 이해하거나 가족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선지자 조셉에게 나타나신 그 놀라운 첫 번째 시현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계속 말씀하신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선지자이신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에 의해 인도된다는, 위안이 되는 확신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회복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오직 성경에서만 찾아야 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귀중하고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도와주는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는 몰몬경과 후일의 다른 경전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회복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세와 영원한 세상에서 효력이 있는 신권 의식의 축복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회개의 조건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회복의 실재성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신을 끊임없이 동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할 때, 이러한 영원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감싸며, 그것이 우리 마음과 영혼에 깊이 스며들 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크나큰 변화를” 경험합니다. (앨마서 5:14 참조) 우리는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차게 됩니다. 선지자 앨마가 적었듯이, 우리는 들으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속하시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자” (앨마서 5:26) 함을 느끼게 됩니다.

앨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내가 천사라면, 그리하여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나팔로, 땅을 흔들 음성으로 말하여, 모든 백성에게 회개를 외칠 수 있다면!

“참으로 내가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각 영혼에게 회개와 구속의 계획을 선포하여, 그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여, 온 지면 위에 슬픔이 더 이상 있지 않게 하였으면 좋겠노라. (앨마서 29:1~2)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토록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을 나누기 위해 필요한 동기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복음의 회복에 대한 감사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를 행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자신의 간증을 나누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우리 선교사들은 복음을 나눌 때 간증에 바탕을 둔 이러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손수 표시를 하고 열심히 공부한 선교사 지도서,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갖고 선교사 훈련원에 입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사용하여,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자신의 말로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또 가르치는 사람들의 필요 사항에 맞도록 토론을 더 잘 조정할 수 있다는 보고를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르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 들입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회원들이 찾고 가르치는 과정에 참여할 때 가장 좋은 토론 상황이 전개됩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께서 이전에 들어 본 것들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선교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이 긴장을 풀고 걱정을 젖혀 놓고 대신 주님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 그분의 영원한 실재성에 대한 여러분의 간증, 그분이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에 초점을 맞출 것을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사랑과 간증과 감사함으로 동기 부여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모세서 1:39) 일에서 주님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할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그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구주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와서 보라”고 권유하셨을 때 그들은 그가 “계신 데를 보고 … 함께 거”했으며 그때 그분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9) 주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전의 기록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저는 그것이 편안함이나 편리함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늘 그렇듯이 그분은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와서 그분의 훌륭한 메시지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권유하는 것보다 그들을 가르치는 더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언행을 통해 직접 복음을 경험할 때 우리 가정은 복음을 나누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격식을 차린 토론을 갖지 않고도 복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 자체가 공과가 될 수 있으며, 가정에서 발산되는 영이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은 우리가 가정으로 데려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될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에서 생활함으로써 우리의 간증은 더 강해지고 또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향상될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회개하도록 도울 때 우리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62:3 참조)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와 그분의 사랑에 담긴 구속의 권능을 느끼도록 도울 때 우리는 기쁨을 얻습니다. (교리와 성약 18:14~16) 부모와 자녀 모두의 간증과 신앙이 커질 때 우리 가족은 축복을 받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인도를 위해 기도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신체적, 영적 복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선교사가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앨마 시대에 복음을 나누는 가정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영혼의 복리를 위하여 함께 금식하고 간절히 기도” (앨마서 6:6) 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부모로 구성된 가족이 있는 전통적인 가정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생들은 그들 숙소의 벽을 세상적인 것들 대신 영적인 추구를 반영하는 사진들로 장식할 때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연로한 부부들과 독신 회원들은 새로운 이웃을 환영하고 교회 참석을 권유하며 그들 가정을 방문할 때 복음을 나누는 가정의 좋은 예가 됩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은 이웃집 아이들이 와서 놀기에 좋고,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과 가족을 교회와 가정의 밤, 그리고 다른 활동에 참석하도록 초대하는 가정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방문하는 십대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질문을 하거나 그 가족과 함께 기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은 매우 평범합니다. 그 가정은 항상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거나 자녀들이 완벽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분명히 사랑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영을 느끼는 곳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할 때, 복음을 나누는 가정이 아닌 것은 어떤 것인지 파악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 방식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드는 것은 우리 친구들과 이웃을 계속 가족 활동과 교회 활동에 초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친구들을 이런 활동을 함께 하도록 초대할 때, 그들 또한 영을 느낄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 복음을 함께 나누려는 친구들을 만나고 우의를 다지는 데에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 생활로 들어올 것이며, 만일 우리가 처음부터 교회 회원이라는 것을 밝힐 경우, 별로 오해를 살 위험 없이 서로의 관계에 쉽게 복음 토론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친구와 친지들은 이것이 우리 정체성의 일부라고 받아들일 것이며, 그들은 편안하게 질문할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은 우리가 사람들과 접촉한 결과로 인해 그들이 교회에 들어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회와 책임은 돌보고, 나누고, 간증하고, 초대하고, 그런 다음 개인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에 관계없이 회복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권유할 때 우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우리는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들과 보람 있는 관계를 갖게 되며, 계속 그들과 우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에서는 단순히 전세계에 있는 선교사들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자신이 복음을 나눌 경험과 기회를 갖기를,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면서 받은 느낌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께 약속드리건대,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20여년 전에 저는 성공적인 회원 선교 사업의 열쇠는 신앙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는 신앙을 나타내 보이는 한 가지 방법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날짜를 정하고 선교사와 만날 누군가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신앙을 행사한 회원들에게서 수백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비록 가족들이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아무도 마음 속에 떠올리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날짜를 정하고, 기도하고, 그런 다음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며 그분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분의 양을 아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나누는 일에서 그분의 신성한 도움을 구할 때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프랑스에 있는 한 자매는 성공의 비결에 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기쁨을 나눌 뿐입니다. 저는 이미 모든 사람이 교회 회원인 것처럼 그들을 대합니다. 만일 제가 줄을 서서 어떤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경우, 일요일에 교회 모임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직장 동료가 ‘주말 어떻게 보냈어?’ 라고 물을 때, 저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합니다. 교회에 가서 무슨 말씀을 들었고, 성도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과 나눕니다. 제가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복음을 나누는 가정에서는 개인적으로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노력이 가족 평의회와 토론의 화젯거리가 됩니다. 한 충실한 가족은 각 가족 구성원이 모범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관해 함께 의논했습니다. 나중에 아들의 고등학교 코치가 교회로 기증품을 보냈는데, 그는 회원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팀원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정화하자고 말한 이 청소년의 용기가 그에게 감명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나누는 가정에 속한 사람들의 생활에서 목격한 영과 태도로 인해 교회로 들어온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교회 책자나 DVD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이 교회를 알 수 있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성찬식에서 말씀하는 것을 듣거나 가족 일원의 침례식에 참석하거나 집회소를 둘러보라는 권유 또한 회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지표를 통해 볼 때, 우리 중 그 누구도 우리의 친구들에게 성찬식에 함께 참석하기 위해 “와서 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와드 지도자들을 지지하고 또 와드 선교 계획이 효과적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의 교회 부름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신권 및 보조조직 지도자들이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방문자들을 환영하고 참여시키며, 새로운 회원들과 우정을 증진하도록 돕습니다. 여러분은 선교사들에게 일일 계획서를 보여 달라고 부탁해 그들이 목표를 성취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하면서 복음을 나누는 가정의 영은 우리의 예배당, 공과 교실, 활동실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런 간단한 일들 가운데 몇 가지만이라도 행할 경우,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어 복음을 배울 준비가 된 수많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찾게 될 것이라고 간증드립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그분의 속죄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감사,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에게 나아오게 하는 그분의 사명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해 필요한 동기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회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지금 손을 내밀 때 주님께서 보다 큰 신앙과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빌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간구합니다. 아멘.


(엠 러셀 밸라드, 복음을 나누는 가정을 만듦, 176차 연차 대회, 리아호나 2006 5월호, 84)

 

. 죽은 자를 구속함

 

1. “구세주께서 영의 세계를 방문하심", 스펜서 제이 콘디, 리아호나 2003 7월호

 

예수께서 그분의 사망과 부활 사이의 시간 동안 하신 일은 성전 건축을 위한 교리의 기초가 됩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분의 불멸의 영은 육신을 떠났습니다. 생명 없는 육신은 무덤에 뉘어졌으며 돌이 그 입구를 막았습니다.

얼마 후에 천사들이 무덤가에 모여 있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누가복음 24:6) 예수님의 영은 다시 그분의 몸으로 들어가 결코 다시는 나뉘지 않을 영과 육의 영광스러운 결합체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신조로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실 때까지 그분의 불멸의 영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후기성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분께서 하신 일의 중요성은 온 세상에서 행해지는 성전 건축을 위한 교리의 기초가 됩니다. 더욱이,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증언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침례의 필요성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영의 세계를 방문하신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그분이 첫번째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날 밤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지명도 때문에 구세주를 찾아와 그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를 여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인정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2~3, 5)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면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지상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유일하게 죄가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이 보편적인 요구 조건에 응하셨습니다. (니파이후서 31:5~7 참조)1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자비와 공의

주님의 구원의 계획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자비의 계획” (앨마서 42:15)입니다. 자비는 애정과 용서를 의미하는 반면, 공의는 형벌과 응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공의에는 평등과 공평을 포함하여 보다 부드러운 어떤 특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수십 억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거나 침례를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죽었는데도 각 사람에게 그것을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그분의 계획이 자비롭거나 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대비책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그리스도를 의미함]으로서 불의한 자[여러분과 저를 의미함]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의 은사를 주시기 위해 이 일을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19)

영의 세계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이미 죽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부는 노아의 시대에 불순종한 사람들로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의 세계에서 수천 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

왜 영의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까? 죽은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비와 공의가 요구하는 것은 필멸의 세상에서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영의 세계에서 그러한 기회를 받는 것입니다. 자비와 공의는 또한 이생에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 다시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순종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생활한 사람들도 영의 세계에 거합니다. 선지자 에녹은 세상의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땅이 신음하며 바위가 쪼개지”는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시에 “성도들이 일어나 인자의 우편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영의 세계에 있던 순종하는 자들이 영화로운 부활체의 몸으로 나아오는 반면 “나머지는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모세서 7:56~57) 이처럼 의로운 자들은 영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의 부활의 날을 기다립니다.

선지자 앨마는 순종하는 자들은 기다리는 동안 “낙원이라 일컫는 행복의 상태, 곧 안식의 상태, 평화의 상태로 영접되어, 그 곳에서 그들의 모든 곤경과 모든 염려와 슬픔에서 놓여 쉬게 [될것](앨마서 40:12)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분의 방문은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음

구세주께서 영의 세계를 방문하심으로 인해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이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 (1838~1918)이 보신 시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구세주께서 영의 세계에 도착하시기 직전의 그곳을 보았습니다. 순종한 영들이 “한 곳에 모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들의 구원의 날이 임박하였으므로 함께 기뻐하[였습니다.](교리와 성약 138:12, 15)

구세주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영원한 복음, 그리고 타락에서 구원 받고 회개의 조건 하에서 개인의 죄로부터 풀려 나는 인간의 [부활과] 구속에 관한 교리를” (교리와 성약 138:19)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아담과 이브, 노아 및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몰몬경의 선지자들도 그 영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영들을 가르치셨고,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들이 부활할 권세를 그들에게 주시어 그의 아버지의 왕국으로 들어가[](교리와 성약 138:51) 하셨습니다.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구세주께서 죽음과 부활 사이의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영의 세계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스미스 회장님은 “그는 악한 영들에게는 가지 아니하셨으며, … 몸을 더럽힌 불의한 영들과 회개하지 않은 영들에게 그의 음성을 높여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러나 보라, 그는 의로운 영들 중에서 택하여 그의 군대를 조직하시고 사자들을 임명하시어 … 포로된 자들, 진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영들에게 자유를 선언하더라.

“이와 같이 복음은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죄를 짓고 죽었거나 선지자들을 배척하며 범법하고 죽은 모든 자에게 전파되었느니라. (교리와 성약 138:20, 30~32)

침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업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세주께서 침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에게 보내는 사자들 가운데는 현재의 경륜의 시대에 살다가 죽은 교회의 충실한 회원들도 포함됩니다. 이는 현세를 떠나는 이 경륜의 시대의 충실한 장로들이 회개와 하나님의 독생자의 희생을 통한 구속의 복음을 죽은 자의 영들이 거하는 광대한 세계에서 어둠 가운데 죄로 속박되어 있는 영들에게 계속해서 전파하[](교리와 성약 138:57)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위한 사업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대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난제는 거룩한 성전에서만 행해지는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을 통해 해결됩니다. 우리가 합당하다면, 여러분과 저는 성전에 가서 죽은 자를 대신해 침례 의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침례는 베드로와 바울 시대의 성도들 사이에서도 실시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 가르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느냐” (고린도전서 15:29)

죽은 자를 위한 침례와 죽은 자를 위해 집행되는 다른 성스러운 의식들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세상에 회복되었습니다. 이 성스러운 의식들은 현재 100여 개가 넘는 성전에서 집행되고 있습니다. 이 성전들은 이 세상과 영의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는 사업의 실재에 대한 우리의 간증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그 사업은 구세주께서 의로운 죽은 자들을 방문하심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질문들

죽은 자를 위한 의식에 관한 이러한 교리에 대해서는 다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때로는 일부 후기성도들도 질문을 합니다. 다음은 이러한 일반적인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죽은 사람이 회개를 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침례의 축복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있거나 영의 세계에 있거나 모든 사람이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자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계획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집행하는 의식을 강제로 받아들이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은 자를 위한 침례는 기회를 제공할 뿐 개인의 선택의지를 무력한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을 위해 의식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침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선택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지상 생활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의도를 나타내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람을 위해 침례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한때 다음과 같이 말한 앰율레크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알려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앨마서 10:6) 앰율레크는 나중에 이 백성의 위대한 선교사와 교사가 되었습니다.

몰몬경에는 좀더 의로운 레이맨인들이 마음이 지극히 강퍅한 개다이앤톤 도적들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으며, 그들은 “더욱 간악한 무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던지라. 마침내 레이맨인들 가운데서는 이 도적의 무리가 온전히 진멸되었” (힐라맨서 6:37)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 누가 주님께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나머지 일들은 죽은 자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들을 위해

구세주께서는 영의 세계에 있는 순종하는 자들을 방문하시기를 크게 고대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25)

그분의 방문은 영의 세계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시작케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순종하다가 죽은 자들은 낙원이라 부르는 행복과 평안의 상태에서 “충만한 기쁨을” (교리와 성약 138:17; 또한 앨마서 40:12 참조) 얻을 때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아 바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거부하고 죽은 자들은 어둠, 곧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앨마서 40:14; 교리와 성약 138:2 참조) 그러나, 그분의 방문으로 인해 우리는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전에 가서 그들을 위해 열쇠를 돌려 하늘의 문을 열고, 우리의 봉사를 통해 우리 자신을 위한 문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 온전함을 이룰 수 없다 - 함과 같이 우리의 죽은 자가 아니면, 우리도 온전함을 이룰 수 없” (교리와 성약 128:15)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비와 공의가 연합하여 우리 아버지의 모든 자녀들에게 다시 그분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구세주께서 영의 세계를 방문하심, 스펜서 제이 콘디, 리아호나 2003 7월호, 26)

 

2.  “여러분의 가족 역사: 일을 시작함",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 리아호나 2003 8월호


 몇년 전에 패커 자매와 저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록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를 여행해야 하는 교회에서의 책임과 대가족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의 임무로 인해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역사에 관한 책임 때문에 계속 마음이 편치 않은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중에 약간의 시간이 있어 드디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정상적인 일과로 돌아가자 우리는 매일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갖고 있는 모든 자료를 모았습니다. 몇 주 동안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명을 받은 것은 우리가 그 일을 하는 데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과, 장막 저편에 있는 영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일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일로 여행을 하는 중에도 이 문제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많은 간증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록을 정리하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우리가 그 일을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궁금하게 생각해 온 자료들을 찾아냈습니다. 의외로 너무도 쉽게 그 자료들을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더 훌륭했던 것은, 우리가 전혀 꿈꾸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가족에 대한 탐구 작업이 영감 받은 사업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감이 주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시작하는 일입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자 일할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다른 모든 책임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는 삶에서 더 큰 영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결정과 실행은 개인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가족 역사와 성전 사업에 대한 간증을 얻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 사업에 대해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예가 여기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코네티컷 하트포드 스테이크의 스테이크 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테이크회장단 전원에게 가족 역사 사업을 주제로 말씀하도록 3개월 전에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스테이크회장단에 있던 보좌 한 분은 그 대회에서 스테이크 축복사로 지지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사건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는 가족 역사 사업에 관한 간증을 갖고 있었음에도 막상 그 일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록으로 개인의 역사를 준비하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 그는 출생 증명서 외에는 유년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에 관해 아무 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에서 이민왔으며, 그는 11명의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이 교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생애에 관해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으며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그가 갖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양소에 계시던 연로한 어머니가 이탈리아에 있는 고향에 다시 한번 가고 싶어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의사는 그녀가 이러한 소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가족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가족 가운데서 유일한 교회 회원인) 이 형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이탈리아에 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조상의 고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례 받은 교구의 교회들을 모두 방문했습니다. 그는 많은 친척들도 만났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그 교구에 500년 전까지의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기록을 살펴보기 위해 읍 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매우 협조적이었습니다. 사무소의 서기는 그에게 지난 여름에 가톨릭 신학도와 수녀가 함께 와서 이 형제의 가족에 관한 기록을 찾았으며, 그들도 그 가족의 역사를 수집하고 있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서기는 그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알려 주었으며, 덕분에 그는 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이탈리아에 그 가족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있다는 것도 알아 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연차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솔트레이크시티로 오는 길에 그는 그의 가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를 들러 왔습니다. 그 곳에서 별 설득도 없이 가족 문중을 구성하고 가족 친목 모임이 계획되었으며, 그 계획에 따라 모임도 실행되었습니다.

그 후, 항상 그렇듯이 고모나 삼촌, 형제와 자매 같은 일부 친척들이 그로서는 결코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그의 생애에 관한 사진과 자료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다시 한번, 이 일이 영감에 의한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여러분이 일을 시작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제 가족의 경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난 이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제가 여덟 권에 달하는 가족 기록을 가족 및 교회 역사부로 갖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전문가 수준의 가족 역사 사업으로 완성된 6,000매에 달하는 패커 가족의 가족 기록서였습니다. 그 모든 것은 원래 학교 교사요, 루터 교도인 오하이오 출신의 워렌 패커가 편집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30년이라는 세월을 이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이제 그 기록에 두 권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그 오랜 기간 동안 이 사업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가족 역사 사업의 정신도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영국에 있는 패커 조상의 가정을 찾아내고 방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영국에 있는 많은 영주들의 대저택이 최근 일반에게 공개되었지만 이 가정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 저택은 영국 런던 성전에서 15분 거리에 있었으며, 주위가 못으로 둘러 싸인 고대 성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1600년대 초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조상들의 초상화는 대략 300년 전에 걸려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성곽에는 조그만 예배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 창은 1625년에 새겨진 패커 가문 문장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가 일을 시작하고 나자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 역사 탐구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에게 헌신적입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기록을 토대로 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시작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 자료들을 단순히 순서대로 정리하는 일이라도 시작한다면, 모든 일들은 마땅히 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시작하는 방법

문제는 시작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니파이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알고 있었던 원리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리 알지 못한 채 영에 의해 이끌렸느니라.(니파이전서 4:6)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면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어떤 기록을 수집해야 하고, 어떻게 수집해야 할지를 모른다면,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는 것으로 시작하십시오. 시작해야 할 곳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간단한 두 가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여기 있습니다.

우선 상자를 하나 구하십시오. 어떠한 상자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파 옆이나 식탁 위와 같이 쉽게 눈에 띄는 장소에 두십시오. 그런 다음 몇 주 동안 출생 증명서, 축복 증서, 침례 증서, 성임 증서, 졸업 증서 등과 같은 모든 기록들을 모아 그 상자에 담아 두십시오. 졸업장, 각종 사진, 훈장이나 상장, 일기, 그리고 자신의 생애에 관해 기록되거나 등록된 모든 것, 혹은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것과 그 동안의 업적을 증명하는 모든 기록들을 수집하십시오.

이것을 하루에 다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시간 나는 대로 하십시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것들은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상자에 담긴 채 차고에 있는 신문지 더미 아래 놓여 있을 수 있으며, 또 어떤 것은 서랍이나 다락에, 혹은 또다른 장소에 보관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어떤 것들은 성경책 갈피 속에 끼여 있거나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수집하여 상자에 담아 두십시오. 여러분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다 모을 때까지 그것들을 그 곳에 보관해 두십시오. 그런 다음 식탁 한쪽이나 마룻바닥에 공간을 마련하고 수집한 모든 것을 분류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세 가지 기간으로 나누십시오. 교회는 그러한 방법을 채택합니다. 교회에서 시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범주, 즉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성인으로 나뉩니다.

유년기의 기록부터 시작하되 출생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모든 기록, 사진, 침례 기록 등을 열두 살까지 연대순으로 정리하십시오.

그런 다음 청소년기에 관한 모든 것을 12세부터 18세까지, 혹은 결혼할 때까지 하나로 묶으십시오. 모든 것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십시오. 증서나 사진 등과 같은 기록들도 순서대로 정리하여 다른 상자나 봉투에 넣어 두십시오.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생애에 관한 기록도 정리하십시오.

일단 이렇게 하고 나면 여러분은 자신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춘 것입니다. 간단히 출생 증명서를 보고 다음과 같이 쓰기 시작합니다. “나는 1924년 9월 10일 유타 주 브리감시티에서 이라 더블류 패커와 엠마 젠슨 패커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 번째 자녀이자 다섯째 아들이다.

생애의 일들을 글로 쓰거나 녹음을 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집한 기록들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합니까? 생애에 관한 역사를 날짜별로 요약한 후에는 수집한 모든 자료들을 어떻게 합니까?

물론 그것은 여러분에게 기억의 책이 될 것입니다. 필요할 경우 종종 떼어낼 수 있도록 책장에 가볍게 붙여 둡니다. 여러분은 비로소 자신의 기억의 책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일단 여러분이 이 일을 시작하고 나면 매우 흥미 있고 고무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일에 관한 영을 지니지 않고, 적어도 직계 가족 안에서 이것에 관해 말하지 않으면서 이 일을 이만큼 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자신의 가족 역사 사업에 관심을 나타낼 때 매우 흥미 있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확고한 원리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아주 많은 간증들이 있고,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모는 여러분이 증조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증조부께서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모가 그 사진을 보여 줍니다. 분명 증조부께서 어린 아기인 여러분을 안고 있는 사진입니다. 기록을 조사하면서 여러분은 증조부가 여러분이 태어난 이듬해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가족 역사에서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정확한 자료는 무엇인가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사진 뒷면에 적힌 이름이 의미하는 바도 남다릅니다. 당장은 그것을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은 조상 중 누군가를 위한 성전 사업의 열쇠가 됩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침례가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침례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침례의 중요성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한 명 한 명씩 다 침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지상에 살아 있는 동안 침례를 받거나, 죽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신약전서는 주님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 사업에 적용되는 모든 경전의 말씀과 동기를 부여하는 내용은 죽은 자를 위한 의식 사업에도 적용됩니다.

여러분은 이제 작성된 자신의 가족 역사를 갖고 있으며, 기억의 책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나 쉬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니파이처럼, “해야 할 일을 미리 알지 못한 채 영에 의해 이끌[] (니파이전서 4:6)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자를 하나 구해서 쉽게 눈에 띄는 곳에 놓아 두고 자료들을 모아 넣기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그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킬 때

가족 역사 사업은 죽은 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산 자를 위해서도 똑같은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가족 역사 사업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영을 정화하고 강화시켜 줍니다. 그리고 지상에 살아 있는 가족과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함께 묶어 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가족 역사 사업은 성전 의식에 필요한 어떤 이름이 승인 받지 못할지라도 그 자체 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름들을 탐구하는 절차와 찾아내는 방법은 여러분의 모든 노력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 대한 것을 찾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그 이름들이 특정 사람을 나타낸다는 것을 모르고는 그것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혈통을 탐구할 때 우리는 성전 의식에 사용될 이름이나 숫자 이상의 것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그러한 관심은 우리의 마음을 조상에게 돌리게 하며, 그들을 찾아내게 하고, 알게 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보이드 케이 패커, 여러분의 가족 역사: 일을 시작함, 리아호나 2003 8월호, 12)

이 기사는 패커 회장의 저서인 거룩한 성전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가족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 대리

가족 역사 및 성전 사업에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은 일부가 재조정되거나 프로그램의 접근 방법에서 다소 변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본적인 책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애에 관한 역사를 편찬해야 합니다.

2. 우리는 각자 기억의 책을 보관해야 합니다.

3. 우리는 개인과 가족으로 각자 4대부터 시작하여 돌아가신 친척을 찾아내야 하며, 그 후에는 할 수 있는 한 멀리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4. 우리는 요청을 받을 경우 성명 초출과 같은 가족 역사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합니다.

5. 우리는 가족 조직을 갖추고, 여러 가지 친목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6. 성전에 갈 수 있을 경우, 우리는 각자 가능한 한 자주 성전에 가서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우선은 자신을 위해, 그런 다음에는 조상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직접 수집하지 않은 다른 모든 성명을 위해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3.  제일회장단 서한, "성전 참석 격려", 리아호나 2004 3월호

 

제일회장단은 성찬식에서 낭독하도록 2003년 3월 11일자로
신권 지도자에게 다음의 서한을 보냈다.

 

 “전세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성전 수가 증가한 것에 감사드리며, 성인 회원들은 유효한 성전 추천서를 받아 좀더 자주 성전을 방문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시간과 사정이 허락하는대로, 회원들은 여가 활동 대신 성전을 방문하시도록 권고합니다.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성전 의식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이 지상에 살았습니다. 우리는 특히 새로운 교회 회원들과 12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합당하게 생활하여 침례와 확인을 위한 대리인으로 봉사함으로써 이 위대한 사업을 돕기를 권고드립니다.

“지역 신권 지도자들은 성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회원들에게 낮에 좀더 자주 성전에 참석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도록 권고할 것을 요청합니다. 가정 복음 교사와 방문 교사들은 특히 낮에 교통편이 필요한 회원들을 위해 교통편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집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식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성에 관한 중요한 기본적 교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 참석을 위해 우리의 노력과 충실함을 배가할 때, 주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제일회장단 서한, 성전 참석 격려, 리아호나 2004 3월호, 47)

 

4.     “하나로 묶인 마음들", 헨리 비 아이어링, 리아호나 2005 5월호

 

여러분이 침례를 받을 때, 조상들은 소망을 갖고 여러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 그들은 … 후손 하나가 그들을 찾겠다는 성약을 맺는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저의 메시지는 교회 개종자들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현재 교회 회원의 절반 이상이 8세 이후에 침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교회에서 소수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하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그분이 여러분께 얼마나 많이 의지하시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침례를 받을 때 여러분은 최소한 어느 정도 그분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오래 전에 저는 20 세쯤 되는 한 젊은이를 침례의 물가로 데려갔습니다. 동반자와 저는 그에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회복된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침례를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영의 간증으로 인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던 구세주의 모범을 따르고 싶어했습니다.

그 젊은이를 침례의 물 속에서 일으켰을 때, 그는 팔로 제 목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면서 제 귀에 대고 “저는 깨끗합니다. 깨끗해요.”라고 속삭여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가 멜기세덱 신권의 권능으로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신의 은사를 부여한 후에, 그 젊은이는 “축복을 주실 때 불 같은 것이 머리 위에서 내려와 제 몸을 거쳐 발끝까지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나름대로 특별한 경험을 했겠지만 자신에게 온 축복의 크기를 어느 정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약속과 여러분이 맺은 약속이 실재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여러분은 침례 받을 때 온 깨끗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신이 여러분의 동반자가 될 때 여러분은 마음에서 변화를 느꼈습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개종자라고 말하면 저는 “가족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또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라는 대답 뒤에 부모나 형제 자매나 조부모의 인생에 일어난 행복한 기적에 대한 신나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가족 중에서 어떤 사람이 축복과 행복을 나누게 될 때 기쁨이 따릅니다. “없습니다, 아직은 저만 회원입니다.” 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들은 거의 항상 부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아직 아닙니다만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종자들의 음성을 통해 그들이 결코, 정말 결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축복이 되는 성약을 받도록 주님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택하셨을 때 여러분에게 이런 느낌이 있을 것임을 그분은 아셨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로 들어올 때 느낀 축복을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느낄 것임을 아셨습니다. 나아가 그분이 거룩한 성전에서 주신 약속의 기쁨을 여러분이 알게 될 때 그 소망이 커지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그곳에서 성약을 맺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충실하다면 다가올 세상에서 가족으로서 영광 중에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사랑에 찬 친절로 그분은 여러분이 부모와 조부모와 영원히 결속되고자 하는 소망을 갖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제가 방문을 하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셨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제 사촌이 똑같이 느꼈다고 말할 때까지는 할아버지가 저를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돌아 가셨습니다. 조부모들과 조상들 모두 돌아 가셨습니다. 여러분의 조상 중 많은 분들이 복음을 접하는 기회도 없이, 여러분이 받은 축복과 약속을 받을 기회도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공평하시고 사랑에 찬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받은 모든 축복들을 우리의 조상들에게 전하겠다는 마음의 소망을 갖게 하는 방법 역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계획이 태초부터 있었습니다. 주님은 오래 전에 그분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전서의 마지막에는 선지자 말라기가 쓴 책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말씀은 달콤한 약속이며 강한 경고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4:5~6)

이 말씀 중 일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은 세상의 종말입니다. 여호와, 즉 메시야께서 영광 중에 오실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모두 멸망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겠다고 약속한 일을 행할 충분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권세를 지닌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신 가장 큰 권세를 지녔습니다. 그는 인봉의 권세, 즉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는 권세를 지녔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사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은 엘리야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복음이 회복된 이후로 처음 세워진 커틀랜드 성전의 헌납 직후인 1836년 4월 3일 엘리야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왔습니다. 조셉은 이 성스러운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 시현이 닫힌 후에 또 다른 크고 영화로운 시현이 우리에게 갑자기 나타났는데 이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하늘로 들리운 선지자 엘리야가 우리 앞에 서서, 이르기를,

“보라, 말라기의 입으로 말한 바 된 그때가 완전히 이르렀나니 - 그가 증거하기를,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그(엘리야)가 보내심을 받아 -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온 땅이 저주로 치심을 당할까 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 경륜의 시대의 열쇠들이 너희 손에 맡겨지나니, 이로써 너희가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 수 있으리라. (교리와 성약 110:13~16)

 

교회에 들어왔을 때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이 가족, 즉 살아 있는 사람들과 영의 세계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이 그런 느낌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도록 돕기 위해 또 다른 시현을 주셨습니다.

조셉 스미스 이후에 주님은 교회를 인도하시기 위해 다른 선지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조셉 에프 스미스가 그들 중 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구세주께서 사망과 부활 사이에 영의 세계에 나타나셨을 때 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시현으로 보았습니다. (교리와 성약 138편 참조스미스 회장님은 구세주께서 죽음의 사슬을 끊으셨으며 또 속죄로 인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영들이 알았을 때 느낀 기쁨을 보았습니다. 모든 영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또 여러분이 받고 또 조상들이 받기를 원하는 성약과 축복을 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영들 사이에서 그분의 종들을 조직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있어야 했습니다.

스미스 회장님은 또한 영의 세계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구세주께서 부르신 지도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일부를 거명했습니다. 시조 아담과 이브, 노아, 아브라함, 에스겔, 엘리야, 우리가 몰몬경에서 알고 있는 선지자들, 그리고 조셉 스미스, 브리감 영, 존 테일러, 윌포드 우드럽을 포함하여 말일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가르치고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들 선교사들의 권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후기성도의 조상들은 구원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임을 믿는다고 윌포드 우드럽이 살아 생전에 말씀했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신 여러분의 많은 조상들은 그 선교사들의 메시지가 참되다는 간증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간증을 얻었을 때 선교사들에게 침례를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 있는 이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의식은 오직 이 세상에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생에 있는 누군가가 거룩한 성전에 가서 영의 세계에 있는 사람을 대신하여 성약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책임을 갖고 조상들의 이름을 찾아서 우리의 도움 없이는 그 곳에서 받을 수 없는 것을 우리가 그분들께 드리는 이유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기에 기다리는 제 조상들뿐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선교사들에게도 제 마음을 돌립니다. 저는 영의 세계에 있는 그 선교사들을 보게 될 것이며,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했고 가르쳤던 사람들, 즉 여러분의 조상들과 함께 그 곳에 있는 한 선지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개종시켰으나 여러분이 구조할 때까지는 침례를 주거나 가족에게 인봉시킬 수 없었던 여러분의 조상과 그 선지자에게 여러분이 다가설 때 그 선교사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그려 보십시오. 어떤 절차가 그런 곳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는 여러분의 목을 끌어안고 흘리는 그분들의 감사의 눈물을 생각해 봅니다.

그 선교사와 여러분 조상들의 미소를 상상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구세주를 만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분과 접견을 할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의 자녀들 모두의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이시며,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한 사랑을 지니고 계시므로 인봉하고 축복하는 신권의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생에서 여러분이 복음을 듣게 하고 또 여러분이 경험한 소중한 기회를 갖지 못했던 조상들에게 그것을 전할 책임을 받아들일 기회를 주셨습니다. 조상들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조상들의 이름을 찾아 그들에게 영생, 곧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큰 은사를 제공하기 위해 행함과 신앙으로 그 값을 치르는 사람들에 대해 그분이 갖고 계신 감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그들에게 무한한 희생을 주셨습니다. 영생이라는 그분의 제의를 조상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어떤 값이라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을 그분은 사랑하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이미 돌렸기 때문에 그 값이 비싸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순한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의 가족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적으십시오. 부모와 조부모의 이름을 출생일이나 사망일이나 결혼일과 함께 적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장소를 적어야 합니다. 일부는 기억을 더듬어야 알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의 친척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출생, 결혼 또는 사망 증서를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복사하여 정리하십시오. 그분들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적어서 보관하십시오. 그냥 이름만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을 때 여러분이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영원히 그들의 마음과 결합될 것입니다.

 

현재부터 몇 세대를 올라가 조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많은 조상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와드나 지부에는 여러분이 성전에 이름을 제출할 준비를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조상들은 자기들을 영옥에서 자유롭게 하고 가족, 여러분의 가족 안에 자기들을 영원히 묶어 놓아 줄 성약을 그 곳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만들어 주는 기회와 책임은 세계 역사상 지금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성전이 곳곳에 있습니다. 온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과 그들의 조상의 생애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라고 그들에게 촉구하는 엘리야의 영을 느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분의 조상을 찾기 위한 많은 자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적처럼 보이던 기술을 통해 그 정보들을 세계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지식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런 기회로 인해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지키는 데 필요한 더 큰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8 참조처음 몇 세대를 찾고 나면 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일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록이 미약해집니다. 가족들 중 다른 사람들이 조상을 찾을 때처럼, 여러분은 자신이 찾은 조상이 이미 성전의 충만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어렵고도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힘든 탐구 사업을 그만두고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다음에 하고 싶은 충동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 일을 계속해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 찾기 힘든 그 이름들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해 주었고 영의 세계에서 다시 만나게 될 실재 인물들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침례를 받을 때 조상들은 소망을 갖고 여러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여러 세기 만에 후손 하나가 그들을 찾아 자유를 주겠다는 성약을 맺는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다시 만날 때 여러분은 그들의 눈에서 감사 아니면 처절한 실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러분과 묶여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여러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수고하여 찾겠다고 선택할 때 자신의 힘 이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모르는 이름들과 조금밖에 읽을 수 없는 날짜가 적힌 흰 종이를 보았습니다. 일어나서 저의 가족 기록을 찾았습니다. 종이에 적힌 마지막 이름은 이튼 브레이라는 곳에서 300년 전에 어머니의 가계로 들어온 가계도에 있었습니다. 누군가 오랫동안의 기다림이 끝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어 우리의 가족을 구속하는 이 성스러운 사업, 곧 그분의 사업이요 영광이며 우리가 마음을 쏟아 행하는 이 사업에 도움을 주시리라는 확신을 다시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헨리 비 아이어링, 하나로 묶인 마음들, 175차 연차 대회, 리아호나 2005 5월호, 77)

 

. 성도를 온전케 함

 

1. “동산에서 빈 무덤까지", '존 테일러 회장(1808-1887)', 리아호나 2006 4월호, 1882

 


겟세마네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1862~1933)

“겟세마네-이 명칭은 ‘착유기’를 뜻하는데, 아마도 이 동산에서 재배된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기 위해 그곳에 있던 물방앗간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요한은 이곳을 동산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명칭을 근거로 그곳이 울타리로 둘러싸인 개인 소유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 또는 제자들과 함께 은밀히 대화하기 위해 외진 곳을 찾으셨을 때 종종 방문하신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는 것을 요한이 지적해 주고 있다. (요한복음 18:1, 2) (예수 그리스도, 3[1916] 620~621)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1876~197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시어 그의 손발에 못이 박혔을 때가 바로 그의 수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육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여-내가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 하게 하였느니라- [교리와 성약 19:18]

“그것은 그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동산에서였습니다. 그가 육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동산에서 였습니다.

“저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고통을 겪어 봤고, 여러분도 고통을 겪어 보셨으며, 고통은 때때로 매우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피가 땀처럼 몸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고통,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인 그러한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끔찍하고 무서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간구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구원의 교리, [1954~1956] 브르스 알 맥콩키, 124~125)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예수님은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열두 제자 중 세 명을 데리고 겟세마네라 하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모든 인류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시고, 우리의 허물로 찔림을 받으셨으며, 우리 모두의 죄악을 몸소 자진해서 감수하시면서 하나님만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사야 53:4~6 참조)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몸소 짊어지신 곳은 겟세마네였으며, 겟세마네에서의 그분의 고통은 모든 인류의 누적된 무거운 짐의 무게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그분은 모든 인류가 회개하여 그에게로 올 수 있도록 만물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고통의 폭이나 깊이나 높이는 물론이며, 우리에 대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며, 혀로도 표현할 수 없고 글로도 나타낼 수 없습니다. (The Teachings of Ezra Taft Benson[1988], 14)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

“그리스도께서 동산에서 겪으셨던 고뇌가 얼마나 격심했으며, 그 고뇌의 큰 뜻이 무엇인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 그것은 그로 하여금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는 아픔을 느끼게 한 육체적 고통도 정신적인 고뇌만도 아니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경험하실 수 있는 영혼의 영적인 고뇌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리 강인한 인내력을 가진 자라 하더라도 그러한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인체 기관이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무의식과 망각의 가사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고뇌로 괴로워하던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사탄, 곧‘이 세상 임금’이 위협하는 모든 공포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셨다.

“어느 의미로는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구주께서는 아담의 때로부터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죄의 짐을 몸소 짊어지셨다. (예수 그리스도, 613~614)

 

존 테일러 회장(1808~1887)

“나약한 인류가 피했던 응집된 짐, 이 혹독하고 불가해한 압박, 신성한 공의에 의한 이 엄청난 강요 하에 신음하면서, 또한 커다란 핏방울을 땀처럼 흘리면서 겪었던 고뇌를 통해 그분은 외치게 되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그분은 광야에서 그의 위에 지워진 무거운 짐과 씨름하셨다. 만물 아래에 놓여져 정신은 고뇌와 고통으로 넘치며 외롭게, 또한 보기에는 아무런 도움도 없이 버려진 채, 고뇌로 땀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그를 그곳에 풀어놓은 어둠의 권세와 투쟁하셨다. (The Mediation and Atonement [1882], 150)

갈보리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

“십자가에 못박힘에 따르는 무서운 고통에 더하여, 겟세마네 동산의 고통이 재생되어 인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된 것 같다. 그 가장 비통한 시간에 죽어 가는 그리스도는 홀로 계셨으며 가장 끔찍한 현실 가운데 외로이 계셨다. 아들의 극히 중요한 희생의 뜻을 모두 완전히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친히 함께 하시는 격려를 거두시고 죄와 사망의 힘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의 영광을 인간의 구주께 남겨 주신 것 같다.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낀 연약한 기간은 곧 지나가고, 육체의 자연적인 욕구가 다시 나타났다.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괴로움 중 가장 어려운 것은 타는 듯한 갈증인데, 이러한 육체적 고통을 주께서는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인인지, 유대인인지, 제자인지 또는 불신자인지 기록되지 않았으나 옆에 서 있는 사람 중 하나가 급히 해융에 신포도주를 담뿍 적시어 갈대 또는 우슬초의 줄기 끝에 꿰어 주님의 타는 입술에 대었다.

“자기가 이제는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그의 대속하는 희생을 아버지께서 받으신 것과 육신을 입은 상태에서의 그의 사명이 영광스러운 성취를 이룬 것을 완전히 깨닫고, 그는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라는 성스러운 승리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존경과 복종과 안심을 갖고 그는 아버지께 이렇게 아뢰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6) 그는 머리를 숙이고 자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돌아가셨다. 그의 생명은 그가 허용치 않았더라면 빼앗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까지의 고난 중, 초기에 고통을 벗게 하는 죽음은 달갑고 반가운 것이었겠지만, 그는 모든 것이 정한 대로 완성될 때까지 사셨다. (예수 그리스도, 660~661)

빈 무덤

존 테일러 회장

“하나님으로서, 그는 만물보다 낮아지셨으며 자신을 인간의 타락한 상태로 전락시켰으며 인간에게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그는 세상에서 모든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다른 인간들보다 더 많은 기쁨을 타고 나는 축복을 받으신 그분은 세상과 지옥이 연합한 권세 및 사람과 악마의 권세와 싸워 이기시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세의 도움을 받아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이기시고 승리를 거두시었으며, 필경에는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로서 그에게 맡겨진 대속에 관한 일을 마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원하신 아버지시요, 메시아, 평강의 왕이시며, 구속주,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존 테일러, 43)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1895~1985)

“하나님만이 이러한 부활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의로움의 교사로서, 예수님은 영혼을 선으로 인도하고 선지자로서 미래를 예견할 수 있으며, 인류의 지적 지도자로서 교회를 조직하고, 신권을 소유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로서 병든 자를 고칠 수 있고 장님이 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으며 심지어 죽은 자도 일으킬 수 있지만, 그분은 오직 하나님으로서만 죽음을 극복하고 친히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하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인간의 손도 봉해진 문을 제거하거나 주님을 소생시키거나 회복시키기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마법사나 마술사도 그를 구원하기 위해 그곳에 가지 않았고, 치유를 위한 다른 사람에 의한 신권의 행사도 없었지만,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거두신 그 하나님은 신성한 권능으로 자신의 생명을 회복하셨습니다 …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맡겨진 영혼은 후에 그분이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영의 세계에 갔다가 돌아왔으며, 꿰뚫을 수 없는 벽을 무시하고 무덤으로 다시 들어가 육체로 다시 들어가셨고, 모든 능력이 예리하고 기민한 상태로 썩지 않는 불멸의 육체로 변화하셔서 돌문을 옆으로 치우고 다시 사셨습니다.

“설명할 수 없다구요? 그렇습니다! 또한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 500명 이상의 나무랄 데 없는 목격자들이 그분과 접촉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걷고 그분과 함께 이야기했으며, 그분과 함께 먹고, 그분의 육신을 만지고 옆구리와 발과 손의 상처를 보았으며, 그들과 그분에게 일상적이던 주제를 토론했고, 여러 가지 틀림없는 증거에 의해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 및 최후의 가장 두려운 적, 즉 사망을 극복하셨다는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와 그 안에 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 이전에 지상에 여러 차례 나타나신 존재,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불멸의 몸이 되셨으며, 이 위대한 부활과 불멸의 축복은 우리의 구속주를 통해 이제 인류의 유산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간증합니다.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 Edward L. Kimball [1982], 17~18)

 

고든 비 힝클리 회장

“그런 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님의 안식일, 즉 일주일의 첫째 날이 밝아 왔습니다. 슬픔으로 괴로워하며 무덤에 왔던 사람들에게 그곳에 있던 천사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누가복음24:5)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태복음 28:6)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전에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분은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외롭게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셋째 날에 그분은 권세와 아름다움과 생명 속에서, 즉 잠자는 모든 자의 첫 열매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2)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확신 속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갈보리에서 그분은 죽어 가고 있던 예수였습니다. 무덤에서 그분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유다의 배신이라는 쓴 열매, 베드로의 부인의 결과였습니다. 빈 무덤은 그분의 신성함에 대한 간증, 영생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욥기 14:14)라는 욥의 응답 받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습니다.

“구주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죽음의 상징물을 우리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사용합니까? 그 어떤 표적이나 예술 작품, 형태의 묘사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과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어떤 것이 그러한 상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그분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고는 천하거나 허울만 있거나 불쾌한 것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또는 우리가 짊어져 온 그분의 이름이라는 상징을 더욱 빛나게 갈고 닦지 않고서는 선하고 점잖고 관대한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의미 있는 표현,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가 지닌 간증의 선언으로서 우리의 삶을 상징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상징”, 리아호나, 2005 4월호, 4~6)


(동산에서 빈 무덤까지, 사도들의 가르침, 리아호나 2006 4월호, 8)

 

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올슨 에프 휘트니(1855-1931), 리아호나 2003 12월호, 1931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구속주의 성스러운 특성과 사명을 의심하고 있는 때에 아직도 “세상에서 믿음” [누가복음 18:8], 즉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인류의 구세주로, 그리고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고 또 예임된 사자로 믿는 신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축하하고 기뻐할 만한 이유가 됩니다.

이러한 확신을 굳게 갖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후기 성도들이 있습니다. …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시온의 청남 청녀들의 표어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개인적인 간증을 지킨다”라는 말이 새겨진 깃발을 휘날리고 있습니다.

간증은 어떻게 오는가

그러한 간증은 오직 한 가지 방법, 즉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옵니다. 책이 그것을 줄 수 없습니다. 학교도 그것을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인간적인 권세도 그것을 줄 수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로서 높은 곳에서 오는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계시에 의해 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수석 사도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15~17)

그것이 베드로가 지닌 간증의 기초였으며, 그것은 비슷한 특성을 가진 모든 참된 간증의 기초입니다. 그것들 모두는 같은 토대 위에 있습니다.

간증은 증거를 의미하며, 그것은 여러 가지 것들, 즉 복음의 다양한 은사라는 열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시현, 예언, 방언과 그 해석, 병 고침, 그리고 성스러운 영의 나타남 등, 이 모든 것들이 그 범주 안에 포함됩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

그러나 모든 간증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강하게 확신을 주는 것은 구세주께서 떠나신 후에 그분이 그들과 함께 머무르게 하고, 과거의 일들을 기억나게 하며, 과거, 현재, 그리고 장래의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면서 다가올 일들을 그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그 보혜사, 즉 성신의 권세로 복음을 배우고 이해하는 영혼의 능력입니다.

 

가장 위대한 은사

그런 영에 의해, 오직 그에 의해서만 사람은 하나님, 그리고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알고 또 그 지식을 가지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모든 은사들 가운데 가장 큰 그 은사를 얻는 방법을 아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일이, 육신으로 있는 동안 사람에게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을 알아야 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로 보낸 분께서 자신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 필멸의 생을 마치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위대한 내세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꼭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이러한 지식, 곧 사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지식의 근원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에 신성하신 존재 이셨듯 현재에도 신성하신 분이라는 간증이 옵니다.

 

시대를 이어온 간증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기 19:25], 의로운 욥이 격심한 시련과 고난을 인내하며 영혼의 깊은 곳에서 분출했던 이런 당당한 외침은 10,000명 아니 10,000명의 10,000배 이상 되는 충실하고 의로운 사람들의 가슴에서 메아리치고 있으며, 그들의 영감 받은 간증은 아담의 시대부터 조셉 스미스의 시대까지 이어져 전해오면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성스러운 경전은 수많은 기적과 이적에 의해 입증된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간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스러운 삶과 죽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기적도 행하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 물 위를 걸으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악마를 내쫓으시고, 눈먼 사람에게 시력을 주시고, 다리 저는 사람을 걷게 하시는 등의, 초자연적이라고 여기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그분의 신성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있는 행위나 처신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적을 용서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고 가르치시며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던] (사도행전 10:38) 그분의 생애보다 더욱 신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죽음의 고통을 겪으시며 십자가 위에 달리시는 동안 자신을 죽이는 살인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심으로써 하나님다운 크나큰 관대함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무엇이 그보다 더 신성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 외에 어느 누가 그러한 시간에 그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13] 그러나 자신의 친구들뿐 아니라 적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어떤 필멸의 인간도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 친구뿐 아니라 원수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명 위에 신성이라는 도장을 찍기에 충분합니다.

 

알고 있는 사람들

십이사도는 그분의 특별한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위치만으로도 그들은 그분께서 자신이 어떠한 분이라고 주장하셨는지를 의심의 여지없이 알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부활을 증거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나오시기까지는 이 지구에 부활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가 되셨습니다.

사도들은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셨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견해이며 확신입니다.” 그러한 말이 죄로 완악해진 세대에게 어떤 감동을 주겠습니까? 그들의 경우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알아야 했고 또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보았고 그분에게서 들었으며, 심지어는 그분이 참으로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그분을 만져 보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사명에 따른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이러한 지식을 지니는 것은 그들의 권리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도들이 그분에 관해 증거하는 것을 믿도록 요구 받습니다.

 

믿음과 지식

표적을 구하는 것은 불순한 성향을 나타내는 가증한 일입니다. 사람이 지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목적 가운데 하나인 영적인 발전은 신앙의 행사에 의해 오기 때문에 보지 않고 믿을 때 축복을 받습니다. 반면에 지식은 신앙을 삼킴으로써 신앙의 행사를 방해하고 나아가 그러한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물론 “지식은 힘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적절한 때에 알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섣부른 지식, '그릇된 시각으로 아는 것'은 발전과 행복에 치명적입니다.

사도들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아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그 강력한 간증에 필수적인 힘과 권세를 실어주기 위해서도 그런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오는 권세

그러나 그들의 경우에서조차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고 그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귀로 듣는 것 이상의, 손으로 만지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했습니다. 부활 이전에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성스러운 계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십이사도들도 똑같은 방법에 의해 같은 지식을 받을 자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명에 대한 자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 이외에도 어떤 것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나타나심 이후에 그리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가셔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15]고 명령하신 이후에, 그들이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누가복음 24:49]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명을 그분에게서 받았다는 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순종했고, 그 능력은 그들에게 왔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으며] …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2~4)

사도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런 의식을 집행하는 성스러운 권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침례를 받아 깨끗하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그와 똑같은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들도 성신을 받고 계속된 순종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후기의 간증

고대에 있었던 일은 이 정도에서 끝내겠습니다. 이제 현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9세기 초반에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께서 자신들을 나타내셨던 대상이었고, 또 영원한 복음을 고대의 모든 은사들과 축복들과 함께 가장 위대한 후기의 경륜의 시대의 초입에 회복시키는 도구였던 조셉 스미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시드니 리그돈과 함께 보고 영원한 세계의 영광을 바라보았던 조셉 스미스, 커틀랜드 성전에 있는 연단의 벽 위에 서 계신 여호와,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올리버 카우드리와 함께 보았던 조셉 스미스, 이 사업의 기초를 놓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 강력한 간증 이상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충실한 성도들이 그런 간증으로 인해 기뻐했고 또 기뻐하고 있으며, 성신의 권세를 통해 모든 것이 그들에게 확인되었습니다.

 

선교 임지에서

참으로 중요한 이 주제의 수많은 증거들에 저의 작은 증거를 더해 드리고 싶습니다. 50여 년 전에 저는 젊은 선교사로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었습니다. 저는 진리에 대한 간증을 간구하고 있었으나, 막상 선교 사업에는 그다지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교 사업에 경험이 많았던 제 동반자가 부지런히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저를 나무라며 말했습니다. “장로님은 교회 서적들을 공부해야만 합니다. 장로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지, 신문 기사를 쓰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제가 당시에 그런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제가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점에 스스로 매혹되어 있었고 또 스물한 살의 청년으로서 선교 임지로 가라는 부름을 받아들이면서 포기했던 [연극]을 제외한 그 어떤 다른 직업보다도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여전히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어느 날 밤 저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꿈이라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아무튼 저는 구세주의 고통의 증인으로서 겟세마네 동산에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 계신 회중을 분명하게 보듯이 저는 그렇게 그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바로 앞에 있는 나무 뒤에 서서 저를 보이지 않고서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제 오른편에 있던 작은 쪽문으로 오셨습니다. 세 명의 사도들에게 무릎 꿇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 곳을 떠나 다른 편으로 건너가셔서 그분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기도와 똑같았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6~44; 마가복음 14:32~41; 누가복음 22:42 [참조])

그분께서 기도하실 때 저를 향한 그분의 얼굴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그 광경에 너무도 감동된 나머지 저 또한 그분의 크나큰 슬픔에 동참하여 순수한 연민으로 울었습니다. 제 온 마음이 그분에게로 다가섰습니다. 저는 온 영혼을 다해 그분을 사랑했고 그분과 함께 있기를 갈망했기에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곧 그분은 일어나셔서 무릎 꿇고 있다가 이내 잠들어 버린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그들을 흔들어 깨우시고는 최소한의 분노나 꾸짖음도 없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무라시며 한 시간이라도 함께 깨어 있을 수는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곳에서 그분은 그분의 예민한 영혼을 괴롭히는 모든 남자, 여자, 어린이의 고통과 함께 세상의 죄의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지셨습니다. 그들은 그 짧은 한 시간 동안도 그분과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셔서 그분은 다시 기도하셨으며 그리고 또다시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가셔서 자고 있는 그들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그들을 깨워서 훈계하신 후 돌아오셔서 전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저는 그분의 얼굴, 형태, 움직임 등 그분의 모습을 완전히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기품 있는 풍채와 당당한 모습을 지니셨습니다. 몇몇 화가들이 그렸던 것처럼 약하고 남자답지 못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계신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온유하고 마음이 낮은 분이셨습니다.

잠시 후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변한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광경은 똑같았습니다. 앞에서 있었던 상황과는 달리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였으며, 그 세 사도들과 함께 구세주께서는 이제 제 왼편에 있던 한 무리 속에 계셨습니다. 그들은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나무 뒤에서 뛰쳐 나가 그분의 발 아래 엎드리고는 무릎 주위를 꽉 껴안고 저도 같이 데리고 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몸을 굽혀 저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껴안아 주시던 그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생생하고, 너무도 현실 같아서 저는 그분의 품안에서 정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런 후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내 아들아. 이들은 그들의 일을 끝냈으니 나와 함께 갈 수 있다만 너는 머물러 너의 일을 끝내야 하느니라. 그래도 저는 여전히 그분께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분의 키가 저보다 크셨기 때문에 그분의 얼굴을 응시하며, 저는 정말 진지하게 그분께 간구했습니다. “그럼, 마지막 날에 주님께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제게 약속해 주십시오.”그분은 기분 좋게, 부드럽게 웃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네 자신에게 달려 있느니라. 저는 목메인 채 깨어났고 때는 아침이었습니다.

 

이야기의 교훈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제가 꿈 이야기를 동반자(에이 엠 머서 장로)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분명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저는 제가 사도가 되거나 교회에서 그 어떤 다른 직분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그 당시에는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잠을 자고 있던 사도들이 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어떤 한 가지 일을 하라는 성스러운 지명을 받았음에도 다른 일을 하는 어느 남자나 여자처럼 제 임무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영 회장의 권고

그 시간 이후 모든 것이 변해 저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고향 신문에 제가 기고했던 몇 편의 글을 보신 브리감 영 회장님 [1801~1877]께서 “글 쓰는 은사”가 저의 재능이라고 하시며 “지상에 진리와 의를 세우기 위해” 장래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계발하라고 충고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분이 제게 주신 마지막 권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해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당시 오하이오 주에서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계속했지만 그것은 교회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일이었습니다.

 

연사의 간증

그 후 성스러운 계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꿈이나 시현이나 여러 가지 것이 결합된 다른 나타냄보다 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촛불, 즉 성신의 은사에 의해 저는 그 당시까지 제가 결코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고,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전에는 결코 그만큼 사랑하지 못했을 정도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저의 영혼은 만족하게 되었고, 저의 기쁨은 충만했는데, 이는 제가 진리에 대한 간증을 얻었으며 또 오늘날까지 그것이 제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구속주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욥조차도 그것을 좀더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갖고 있으며, 이것이 제가 오늘 밤 우리가 수호하는 표어를 휘날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개인적인 간증을 지니고 또 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이유입니다.


(올슨 에프 휘트니(1855~1931),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리아호나 2003 12월호, 12)

 

3.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해롤드 비 리 회장(1899-1973), 설교와 저서와 발췌문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 교사로서의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는 우리 각자를 인간의 신체 네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갑주를 입은 무사로 묘사했습니다. 이 네 부분은 물론 사탄과 그 추종자들에게 가장 취약한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의의 적들은 인간의 영혼에 접근하여 침투하는 것입니다. 여기 그의 영감 받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구원의 투구[] 가지라” (에베소서 6:14~15, 17)

여러분은 보호해야 할 신체의 네 부분이 어디인지 아시겠습니까?

1. 허리에 띠를 띤다.

2. 가슴에 호심경(가슴판)을 붙인다.

3. 발에 신을 신는다.

4. 머리에 투구를 쓴다.

허리는 갈비의 아래 부분과 엉덩이 사이에 있어 중요한 생식 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경전과 다른 영감 받은 기록에서 허리가 덕과 도덕적인 순결 그리고 활력을 상징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이 가르침은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가슴(마음)일상 생활의 행동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4~35)

발은 인생의 여정에서 가야 할 길을 상징합니다. 머리는 물론 지성을 나타냅니다.

갑주의 여러 부분들을 만드는 재료를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덕성과 활력을 보호하려면 진리로 여러분의 허리 띠를 매어야 합니다. 진리가 어떻게 가장 치명적인 죄 중의 하나인 불순결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우선, 진리에 대한 정의를 살펴봅시다. 진리는 지식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사물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지식이니,(교리와 성약 93:24) 젊은이들의 영원한 적인 부도덕을 피하게 할 절대적인 지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후손이며 그의 형상에 따라 필멸의 인간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육신의 첫 번째 부모에게 주어진 첫 계명 중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계명은 신성한 가르침으로서 충실하고 참된 모든 후기 성도 부부에게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 거룩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창조주께서는 모든 진실한 남자와 여자의 마음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강한 힘을 주셨으며, 서로 알게 되면 우정이 싹트고, 그런 다음에는 구애의 로맨스를 통해 결국은 결혼으로 성숙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코 그러한 계명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은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심으로써 그것을 살인 다음으로 중하게 다루셨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모든 불법적인 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간음과 사통이라는 말을 번갈아 사용하시면서 성적인 불순결을 정의하셨으며, 그것은 모든 경륜의 시대에 권능을 갖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강력하게 정죄되었습니다.)

성전에서 현세와 영원을 위한 새롭고도 영원한 결혼 성약을 맺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사람은 영원히 계속되는 해의 왕국에서 영원한 가족을 위한 최초의 초석을 놓은 것입니다. 그들이 받게 되는 보상은 “저희 머리 위에 영광이 영원토록 더하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해 믿을 경우 이 영원한 진리는 여러분이 생명을 보호하듯 덕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에 두르는 띠가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방법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위에서 인용한 진리의 정의를 말씀하신 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더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태초부터 거짓말하는 자인 저 사악한 자의 영이니라. (교리와 성약 93:25)

여러분이 복장을 단정하게 입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또는 음란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구애를 함부로 하도록 유혹 받을 때 여러분은 사탄의 놀이를 하는 것이며, 그의 거짓된 혀의 희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 결혼의 신성한 목적, 그리고 영원한 미래에 대한 견해를 의심하게 하는 인간의 헛된 논리를 허용할 경우 여러분은 거짓의 아비의 희생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을 위험에서 구해 주는 진리에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생에서 마음이나 행동을 보호하는 호심경(가슴판)은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가슴판이 ''라고 불리는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의롭지 아니한 사람보다 우위에 있지만 겸손하며,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벗은 것을 감추듯이 덕을 감춥니다. 의로운 사람은 매일매일 자기의 잘못이나 게으름을 뉘우치고 회개해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얻는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더 걱정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하루를 끝낼 때에는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께, 그가 그 날 행한 모든 일들을 최선을 다해 행했노라고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몸은 방탕한 삶이 가하는 짐으로 인해 낭비되거나 약화되지 않습니다. 그의 판단은 젊음의 어리석음으로 불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한 비전과 예리한 지성과 튼튼한 몸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마음은 깨끗하기 때문에 의의 가슴판은 그에게 큰 힘을 줍니다.

갑주에 대해 계속하겠습니다. 인생의 목표 또는 목적을 나타내는 여러분의 발은 신을 신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신을 신습니까?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습니다. 이 글을 쓴 사도는 실제 경험-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준비가 승리하는 길이요 영원한 경계가 안전의 열쇠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은 준비하지 않고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형벌입니다. 말씀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신체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전쟁을 하든 최종적인 승리는 준비한 사람의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고 말한 것을 보면 고대의 철학자들은 이 준비를 인생의 초기에 시작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옛 속담은 같은 진리를 말해 줍니다. “강을 따라가면 바다에 이른다.” 또 다른 것은 이러한 경고를 해 줍니다. “쉬운 길을 따라가면 사람과 강이 굽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율법자인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한 “너희는 … 말라”는 분명하고도 금지를 나타내는 계명으로서, 나중에 산상수훈에서는 “… 하라”는 긍정적인 내용으로 선포된 바, 이는 여러분의 삶의 훌륭한 지침이 됩니다. 복음의 계획은 우리에게 기도하고, 올바르게 생활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게으름을 그치라고 말해 줍니다. 악한 날에 견딜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가르침의 준비로 신을 신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을 극복함으로써” 평안을 얻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연고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24~25 참조) 그러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갑작스런 공격에 정복되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비상시에 대비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갑주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 알아 봅시다. 우리는 투구를 머리에 씁니다. 머리는 몸을 통제하는 지체입니다. 이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언 23:7)이라는 말과 같이 원수로부터 잘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투구가 효력을 발생하게 하려면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모든 의의 적과의 영원한 전쟁에서 효율적인 것이 되도록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것은 “구원의 투구”여야 합니다. 구원이란 필멸의 세상에서 선한 생활을 한 보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의 면전에서 살 수 있는 영원한 권리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의 눈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는 구원의 목표와 더불어, 행동을 결정하는 생각과 결정은 영광스러운 미래의 상태를 위태롭게 하는 것에 항상 도전할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도 없이 지적인 것만 갖고 있는 사람은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의 지식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며 무덤은 생명에 대한 승리요, 희망과 포부와 인생의 성취를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라 우리는 내일 죽으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입니다.

몇 년 전 이 나라를 휩쓸었던 “학생 자살” 풍조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유명한 성직자로 이루어진 한 위원회가 도달한 결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밝혀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숨을 끊은 학생들은 종교에 대해 결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며, 시련이 닥쳤을 때 매달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비참한 모습과 반대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필멸의 상태에서 자신이 바친 노력에 대해 영원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고대하는 사람은 깊은 시련을 통해 꾸준히 자신을 지탱해 나갑니다. 시련을 당했을 때 그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절망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파괴가 미래를 앗아갔을 때 그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높은 곳에 살며 구원에 대한 목표를 결코 잃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호되는 우리의 지성인들은 항상 다음과 같은 복음의 기준에 의해 학문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은 옳은가? 그것은 고무적인 일인가? 그것은 인류에게 유익을 주는가? 인생의 모든 선택, 즉 친구, 교육, 직업, 배우자 등을 선택하는 모든 일과 그 이상의 것들은 영생만을 전념하여 구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교제가 영감을 주고 고무적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부터 고무적이고 순수해야 합니다. 살인을 하지 않으려면 먼저 화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적인 죄를 짓지 않으려면 부도덕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도죄로 감옥에 가는 형벌을 피하려면 탐내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위대하신 교사요 구주이신 예수께서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5:21~28 참조)

“오 악한 자의 저 간교한 계획이여! 오 사람들의 헛됨과 나약함과 어리석음이여! 그들이 학식을 얻으매 자신이 현명하다 생각하며,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아는 듯 여겨 하나님의 권고를 옆으로 제쳐 놓음이라. 그런즉 그들의 지혜는 어리석음이요, 그것이 그들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나니 그들이 멸망하리라. (니파이후서 9:28)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쓴 성약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의 기쁨이 그들 안에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입고 있는 갑옷에 대해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후방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갑옷도 없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영원한 전쟁에 필수적인 또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게 아닐까요? 적으로부터 도망을 침으로써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쟁은 마주 대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지난 세계 대전 때 제일회장단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분명하게 권고해 주었습니다. “젊은 형제 여러분, 자신을 깨끗이 지키십시오. 깨끗하게 죽는 것이 더럽게 되어 귀향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옳은 것에 대한 용기와 결의와 끊임 없는 적극성은 인생의 전쟁에서 필요한 특성이며, 그 외에 우리의 보호를 위해 세상에서 제언하는 모든 갑옷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처럼 안팎으로 무장을 하고 나면 우리는 준비가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살펴 봅시다. 우리는 싸워야 할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적의 공격 목표일 뿐입니까? 위대한 사도이자 교사인 바울이 우리가 지녀야 할 무기에 대해 말한 것을 읽어봅시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6~17)

믿음의 방패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이며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아무리 밤이 어둡더라도 등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등불을 믿음이라고 부른다. 사업적인 위기와 관련하여 위대한 산업 분야의 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썼습니다. 믿음의 방패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생의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적의 협공 작전과 같이 아무런 쓸모 없는 세상의 가르침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옳고 그름 간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전쟁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으며,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행복해 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시험 받고 검증된 검소와 자기 희생, 그리고 절약의 미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무모한 소비와 이기심을 비롯해 일반적인 사회의 덕성과 도덕의 표준을 무시하는 등의 악덕을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임시 막사를 짓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들의 노력에 대해 축복을 간구한 것은 개척자 조상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농작물이 자라나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비가 내리고 땅이 비옥해지며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호하심에 대해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했습니다. 죽음과 슬픔 속에서, 홍수와 폭풍우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임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신앙으로부터 그들에게는 여러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 신앙을 갖고 그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든 성공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위대하신 창조주의 후손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똑같은 표시로써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은 전쟁 시에 증오를 몰아내고 그 대신 원수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 있는 질투는 신앙의 눈으로 보게 되면 단지 어린이가 고통 가운데 성장하듯 더 나은 이해의 과정으로 성숙해 가면서 어른이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으로써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의 장애와 실망을 극복하고, 우리가 성공하지 못할 때 경험과 발전에 필요한 것으로 해석하며, 우리 개인의 능력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우리의 능력은 기대하지 않던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신앙에 의해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개척자가 되며, 이웃을 위한 봉사의 대가가 순교자의 면류관이라 하더라도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믿음의 방패”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이 어떻게 “의의 무기를” 가진 사람의 손에서 완벽하게 협력하여 함께 일하는지 살펴보십시오. 경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백병전에서 칼도 없이 오직 방패만 갖고 싸우는 사람은 곧 싸움에서 지듯이, 경전과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지 않은 우리의 신앙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현대적 파괴주의자들 앞에서 약해지게 됩니다. 신앙을 방패로 삼을 때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으로 알려진 계명은 단순한 철학자의 말씀에서 위에서 임하는 우뢰 같은 권능의 음성이 되며, 경전의 가르침은 우리를 해의 왕국의 집으로 인도하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가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 (로마서 13:1~2)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국법에 순종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하게 되면, 인생의 전쟁과 고단함으로 인해 사라진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이 우리를 비통하게 하거나, 좌절하게 만들고, 절망에 빠져 “오, 무엇 때문에 애를 쓰는가?”라고 부르짖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은 신앙으로써, 우리는 인생을 영혼의 훈련을 위한 위대한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주관하심 아래, 우리는 “우리가 겪는 것”을 통해 배우고,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힘을 얻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두려움을 정복해야 합니다. 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고 하신 예수님의 높은 표준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생에서 우리가 겪는 과정이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혹독한 징계라 하더라도 우리의 유익과 영원한 혜택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 (히브리서 12:6)

그처럼 암흑의 세력과 영적인 사악함에 맞서도록 훈련 받고 단련된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 (고린도후서 4:8~9)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로마서 13:12~13)

시온의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십시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해롤드 비 리, 너희는 거룩한 곳에 설지어다: 설교와 저서와 발췌문, 330~339, “영원한 결혼”:학생교재 223페이지)

 

4. “선지자의 특성”, 휴 비 브라운 회장(1883~1975), 리아호나 2006 6월호, 1955

사람은 오직 성령의 속삭임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일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속삭임을 통해 저는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잠시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시대에 회복되었으며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님의 지시로 조직된 이 교회가 그분의 교회라는 주장을 지지하는 증인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신앙과 교회에 충성하는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 제가 영국 런던에서 나누었던 한 대화에 대해 말씀드림으로써 제 의도를 더 빨리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하원 의원이며, 이전에 영국 대법원 판사였던 저명한 신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 신사와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그러한 주제들이 “영혼의 고민거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업과 법률, 정치, 국제 관계와 전쟁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종교에 대해서도 종종 토론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제게 전화를 걸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복음의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곧 전쟁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전쟁이 나면 귀하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임박한 전쟁과 우리가 만날 수 없게 되리라는 가능성에 대한 그의 말은 예언처럼 입증되었습니다. 제가 그의 사무실로 갔을 때, 그는 제가 그에게 말해 준 몇 가지 사실이 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게 몰몬이즘에 대한 개요를 작성해서 … 법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듯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하는 조셉 스미스가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나사렛 예수가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난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논리와 증거에 대해 훈련을 받은 캐나다의 법률가이자 변호사이신 분이 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귀하가 내게 조셉 스미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 같지만, 귀하가 최소한 3일 동안 개요를 준비하셔서 내가 그것을 살펴보고 그에 대해 귀하에게 질문하도록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즉시 착수하여, 발견된 증거심문 절차 (examination for discovery), 즉 고소 사건에서 원고와 피고가 그들의 변호사와 함께 상대방의 주장을 심리하고 합의할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쌍방이 만나는 간단한 모임을 갖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법정에서 소요될 시간을 줄이자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저의 “믿을 수 없는” 신념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몇 가지 공통된 기반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내가 “선지자의 특성”이라고 부른 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 우리는 다음 특성들에 의해서 자신이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구별해 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대담하게 주장한다.

.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고귀한 메시지를 가진 고귀한 사람일 것이다. 테이블에 뛰어오르거나, 죽은 자로부터 속삭임을 듣거나, 투시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적인 진리의 말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리고 대중의 의견에 양보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의 메시지를 선포할 것이다.

. 그가 하나님을 대변하여 말한다면,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새롭고 시대의 가르침에 역행한다고 해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선지자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며, 논쟁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메시지이다.

. 그런 사람은 모세, 여호수아 및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주님의 이름으로“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느니라”라고 말한다.

. 그런 사람은 이사야와 에스겔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며, 그것들은 이루어진다.

. 그는 자신의 시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니엘, 예레미야 및 다른 사람들처럼 종종 미래의 모든 시대를 위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 그는 베드로, 바울 및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가 지지하는 대의를 위해 박해를 견디고, 필요할 경우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충분한 용기와 신앙을갖고 있다.

. 그런 사람은 두려움 없이 사악함을 꾸짖는다. 그는 일반적으로 그 시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박해당하지만, 후세대 사람들, 즉 그를 박해한 자들의 후손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다.

. 그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초인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전한 메시지와 업적의 결과는 선지자로서 그의 부름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20]

. 그의 가르침은 경전과 완전히 일치하며, 그의 말씀과 기록은 경전이 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1)

 

저는 여러분에게 요점만을 말씀드렸을 뿐이며, 나머지는 여러분이 채우고 덧붙여서 다른 선지자의 업적과 고매함을 통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50년 이상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생애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저는 … 이러한 기준에 근거해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조셉 스미스가 선지자처럼 말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죽임을 당한 이래로 선지자들이 늘 했던 주장, 즉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처럼 살고 죽었습니다. 저는 그가 모든 계시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계시를 이 세상에 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그가 일어난 많은 일들,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 예언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요한계시록 19:10] 조셉 스미스가 예수에 대한 증언을 갖고 있었다면 그는 예언의 영을 갖고 있었던 것이며. 그가 예언의 영을 갖고 있었다면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저는 그가 고대의 사도들처럼 주님을 보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세상에 살았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예언의 영을 지니고 있었다고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 간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부름에 대한 증거를 더 많이 남긴 사람의 이름을 들 수 있다면 누구든지 그렇게 해 보십시오.

 

저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초인적인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한 가지는 몰몬경을 번역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몰몬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초인적인 일을 했다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러분께 고대 미대륙의 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시라고 청합니다. 그가 했던 것처럼 아무런 참고 자료도 없이 써 보십시오. 여러분의 이야기에 54장의 전쟁 기사, 21장의 역사적인 내용, 55장의 시현과 계시를 포함시키고, 시현과 예언에 관해 쓸 때 여러분의 기록은 성경과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교리와 권고에 관해 71장의 내용을 기록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여러분은 모든 말씀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성역에 관해 21장의 내용을 기록해야 하며 그가 말하고 행동했다고 여러분이 주장하는 모든 것과 여러분이 그에 대해 기록하는 모든 간증이 신약전서에 있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런 일을 해 보시겠습니까? 또한 반드시 언어의 상징, 비유, 은유, 해설, 설명, 묘사, 수사, 서사시, 서정시, 논리 및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해 보시겠습니까? 몰몬경을 번역한 사람은 여러분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젊은이였지만, 그는 그 책을 두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에 수정한 곳이 있다고 해도 아주 적게, 구술해서 받아쓰게 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100년 이상,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과 학자들이 성경을 통해 몰몬경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애썼지만, 조셉이 쓴 내용 중 어떤 것이라도 성경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누구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다른 초인적인 일들을 하고자 나섰으며 성취했습니다. 그 중 다음 사항을 열거합니다. 그는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인간에 의해 쓰여진 어떤 헌법, 심지어 미국 헌법도 수정이나 개정 없이 100년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교회의 기본적인 율법이나 규정은 변경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나라에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착수했으며 이 초인적인 일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에 의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시온에 집합시키기 위한 책임을 졌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사업을 제정했으며 그 목적을 위해 성전을 건립했습니다. 그는 믿는 자들에게 분명한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이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저는 제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의원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어째서 그들이 스스로 선언하는 사실, 즉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진리를 입증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사람을 박해하고 죽였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조셉이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했거나, “그리스도란 없다.” 라고 했다면, 혹은 그가 다른 어떤 사람을 가리켜 그가 그리스도라고 했다면 저는 사람들이 그를 박해하는 것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그를 반대한 정당한 근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섬긴다고 주장하는 그를 내가 선언하노니 … 나는 그분을 보았으며 그와 대화했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왜 그러한 사실로 나를 박해합니까?”…

 

아마도 어떤 분들은 그 판사가 우리의 토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그는 앉아서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런 후 그는 매우 날카롭고 심오한 몇 가지 질문을 했으며 끝날 때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브라운 씨, 나는 귀하의 교회 회원들이 귀하가 말한 메시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고 계십니까? 귀하가 내게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천사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선포한 이래로 이 세상에 온 가장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판사이자 훌륭한 정치가였으며 높은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귀하는 귀하가 말한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까?”라는 도전적인 말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되어야 한다는 것은 하늘이 아십니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누군가 세상에 나타나서 권위 있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느니라.’하고 말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는 몇 가지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는 성신의 계시에 의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증거와 인용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증거들은 사람이 지적인 확신을 갖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반면, 사람은 오직 성령의 속삭임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일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속삭임을 통해 저는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 지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휴 비 브라운 회장(1883~1975), 선지자의 특성 리아호나 2006 6월호 10-15)

1955 10 4,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전한 말씀의 편집 및 출판된 버전에서 발췌함.

 

5.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1978 5월호, 1973

 


최근에 나는 아내와 함께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로 인해, 가족으로 인해, 후일에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영원한 복음의 회복으로 인해 우리가 받게 된 수많은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의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 토론은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애에 있었던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었나요?

즉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생애에 있었던 가장 큰 축복은 1937년 10월 13일, 오전11,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을 내 영원한 동반자로 맞았을 때였소.

“그 시험에는 합격했군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후기 성도가 해야 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일은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권능에 의해 올바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선지자 엘리야가 회복하신 권세와 권능으로 인봉된 후에, 모든 후기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맺은 성약대로 생활하여 현세뿐 아니라 영원히 결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는 모든 면에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제언은 잘 인도되기만 하면 모든 면, 적어도 모든 중요한 활동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특히 다른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영원한 결혼 문제에 적용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서 살고 있었을 때 우리는 선택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기회, 즉 특권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살고 있었을 때 그에게도 같은 권세가 있었으며, 현재 우리도 그 권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여 받은 은사와 재능과 능력과 감각과 판단력과 선택의지를 행사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는 주님을 찾고 그의 영을 구하며 계시와 영감의 영을 받도록 노력할 것을 명령 받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 합법적인 의식 집행자는 우리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신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신의 은사를 받게 되는데, 성신의 은사란 충실하게 생활할 때 신회의 구성원인 성신의 끊임 없는 동반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명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영감의 영 즉 계시의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선택의지로써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가져다주며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영원한 보상을 가져다 주는 과정을 우리가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 두 가지 명제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전세에서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살펴보셨으며, 우리가 그분의 면전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며 모든 가르침이 그분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우리가 알 때, 그 율법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행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가 신앙으로 행하고 그의 면전을 떠나 그분으로부터 받은 개인적인 권고가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해야 할 때,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세 가지 사례 연구를 제시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사례 연구로부터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규정지어져야 할 실질적이고 건전한 결론을 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들을 저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에서 찾고자 합니다.

 

“너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나니”

사례 연구 1: 올리버 카우드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그는 선지자의 일을 도운 서기였습니다. 성령이 임할 동안 그는 선지자가 번역하는 내용을 받아 적었습니다. (몰몬경을 번역하고 있을 때였음) 그 당시 카우드리 형제는 영적으로 아직 미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역량 이상의 것을 해보고 싶어했습니다. 번역을 하고 싶어서 선지자에게 졸라댔습니다. 선지자는 이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를 주셨습니다. “올리버 카우드리여,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고대의 것이며 나의 영의 나타냄으로 이야기된 내 경전의 그 부분이 들어 있는 새겨진 옛 기록, 즉 고대 기록에 관한 지식을 네가 받게 되리라 믿으면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것에 관한 지식을 네 하나님이요 네 구속주인 주께서 살아 계심같이 확실히, 참으로 그와 같이 분명히 너는 받게 될 것이니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시면서 주님께서는 이 일과 이와 비슷한 상황에 해당되는 원리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임하여 네 마음에 거할 성신으로 말미암아 네 생각과 네 마음에 말하리라. 이제 보라, 이것은 계시의 영이니, (교리와 성약 8:1~3)

올리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했을 법한 것을 한 셈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것은 신앙을 갖고 하나님께 구하면 번역할 수 있는 권능을 얻게 될 것이라는, 표면상의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었던 그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실로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신앙을 보이고, 기도의 응답을 얻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간구했으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혀 번역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지자와 그는 걱정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다시 주님께 여쭈어 보게 되었으며, 주님께서는 왜 그가 번역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보라, 너는 이해하지 못하였나니,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내게 간구하기만 하면, 내가 네게 그것을 줄 줄로 여겼도다.(교리와 성약 9:7)

신앙으로 구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다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신앙으로 구한다는 것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지 행해야 한다는 선행 조건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선택의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란 몰몬경 번역일 수도 있고, 아내를 택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직업 선택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될 수많은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이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 그러고 나서 그것이 옳은지를 내게 물어야 하나니, 만일 그것이 옳으면, 내가 네 가슴을 네 속에서 뜨겁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는 그것이 옳은 줄 느끼게 되리라.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아니하면, 네게는 그러한 느낌이 없을 것이요, 도리어 생각이 둔하여져 그른 것을 잊어버리게 되리니, 그러므로 내게서 네게 주어지지 아니하면, 너는 성스러운 것을 기록할 수 없느니라. (교리와 성약 9:8~9)

여러분은 어떻게 아내를 택합니까? 브리검 영 대학교나 그 밖의 다른 곳에서 나는 젊은이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영감을 느껴야 합니다. 계시를 받아야지요. 금식하고 기도하여 주님께서 제가 누구하고 결혼해야 할지를 보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일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 번도 주님께 내가 누구와 결혼해야 할까를 간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주님께 여쭈어봐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나가서 내가 원하는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맞는 여인이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평가하고 판단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100% 완벽한 여인이었습니다. 내가 일을 완전하게 행했더라면 주님께 상의해야 했을 터이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일은 주님께 기도로써 내가 내린 결정과 관련된 지침과 인도를 구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좀더 완전하게 일을 처리했다면 그와 같은 결정에 대해서도 주님께 상의해야 했을 테고, 내가 나의 선택의지와 능력으로 내린 결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얻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내게 청함이 어쩜이냐?

사례 연구 2: 고대 기록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단지 야렛의 형제이라고만 불리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자료에는 그의 이름이 모리앤쿠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야렛인들의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이 바벨탑으로부터 약속된 미대륙으로 오기 시작할 때 그는 그들 민족에 필요한 지시와 영적인 인도를 주님께 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몇 가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건너야 할 바다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는 “배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님은 배를 짓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야렛의 형제는 과거에 배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계시가 없어도 배를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배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특별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될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좀더 필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우선 공기가 필요했습니다. 이 문제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주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 문제는 완전히 그의 능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주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이러이러하게 하면 공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확신을 갖게 된 야렛의 형제는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말씀드리지 않고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배 안에 빛이 없나이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배 안에 빛을 갖도록 내가 어떻게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더서 2:23) 이 말씀을 풀이하면 이와 같습니다. “왜 나에게 구하느냐? 이것은 너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주님께서는 조금 더 말씀하신 다음 질문의 요점을 다시 반복하셨습니다. “너희가 바다 깊은 곳에 삼키울 때에 너희가 빛을 갖도록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예비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더서 2:25) 다시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모리앤쿠머야, 이것은 네 문제이다. 왜 나를 괴롭히느냐? 나는 너에게 선택의지를 주었고 너는 행할 능력을 부여 받았다. 나가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라.

야렛의 형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셀렘이라 하는 산에 올라 가서, “작은 돌 열여섯 개를 녹여내었으니, 그것들은 투명한 유리같이 희고 맑았더라. (이더서 3:1)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렛의 형제는 열여섯 개의 작고 투명한 돌을 (전부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기록에는 “그가 그것들을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이시여 이러이러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묻지 않고 다만 영감을 받아 스스로의 판단력을 사용하여 결정한 다음 주님께 그것에 대해 간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리앤쿠머는 주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주의 손가락으로 이 돌들을 만지사, 그것들이 암흑 중에 빛을 발하도록 예비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시오면 그것들이 우리가 예비한 배 안에서 우리에게 빛을 발하리니, 우리가 바다를 건너는 동안 우리에게 빛이 있으리이다. (이더서 3:4)

주님께서는 야렛의 형제가 구하는 대로 행하셨으며, 야렛의 형제가 주님의 손가락을 본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는 그 때까지의 어느 선지자가 받았던 계시보다 더욱 큰 계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 때까지 밝혀졌던 것보다 더 많이 그분의 성품과 인격에 대해 밝혀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모두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스스로 행했고 주님께 상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택의지와 영감 사이에는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다한 후에 주님으로부터의 응답 즉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확신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기치 않았던 진리와 지식을 더 얻게 됩니다.

“저들은 나와 의논하여야 할지니”

사례 연구 3: 교회사 초기에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미주리 주의 특정한 곳으로 모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모이라”는 이 명령은 특히 “감리 감독은 나와서 이러이러한 일을 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나의 종 에드워드 파트리지에 관하여 말한 대로 이 땅은 그와 또 그가 자기 보좌로 임명한 자들이 거주할 땅이요, 또한 나의 창고를 관리하도록 내가 임명한 자들이 거주할 땅이니라.

“그런즉 그들은 그들과 나 사이에서 상의하는 대로 자기 가족을 이 땅으로 데려올지니라. (교리와 성약 58:24~25)

주님께서는 시온으로“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어떠한 상황으로 모이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이도록 명령 받은 자들의 선택의지에 따라 결정하도록 맡겨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과 의논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의논할 때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저는 자녀들 문제도 무엇에 대해 의논할 때는 아이들을 불러 의논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해야 할 바를 이야기하지 않고, “네 생각은 어떠니? 너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니? 이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책이겠니?”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의견을 저에게 말합니다. 그 문제에 관해 저도 지혜와 판단이 서게 되면, 제 의견을 말해 줍니다. 주님께는 모든 지혜와 지식과 권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완전한 율법으로 통치하고 제어하며 지시할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도록 해 주시지만 그에 대해 그분과 의논할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주께서 이를 교회 감리 감독에게 말씀하신 후, 이러한 상황을 다스리는 원리를 주셨으며, 이 원리는 모든 상황을 지배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은 영광스러운 계시의 하나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내가 범사에 명령해야 함은 적절하지 아니함이라. 무릇 범사에 강요당하는 자는 게으르고 현명하지 못한 종이니, 그런즉 그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사람은 모름지기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자유의사로 많은 일을 행해야 하며 많은 의를 이룩해야 하느니라.

“이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 이로써 그들이 스스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가 되는 까닭이니, 사람이 선을 행하는 만큼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명령을 받기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명령을 받고 그것을 게을리 지키는 자, 그는 정죄를 받느니라. (교리와 성약 58:26~29)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후기 성도를 어떻게 다스립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올바른 원리를 가르쳐 주어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합니다.

이것이 곧 하늘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운영 방법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가 채택하여 사용해야 할 운영 방법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후에 그것을 주님께 말씀드려 그분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할지니”

지금 살펴본 것이 세 가지 사례 연구였습니다. 이제는 결론을 내려보기로 하겠습니다. 앨마라 하는 힘세고 위대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힐라맨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모범을 따른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앨마는 힐라맨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그리하여 네가 젊었을 때에 지혜를 배우라. 참으로 네가 젊었을 때에 하나님 계명 지키기를 배우라. 참으로 또한 하나님께 부르짖어 네 모든 도움을 구하라. (앨마서 37:35~36) 만일 여러분이 물질적인 면에서나 영적인 면에서나 기도로써 주님께 도움을 구하라는 권고를 받았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기도문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여러분은 사막 한 가운데나 높은 산 꼭대기로 나아가 온 심혈을 기울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만 하겠습니까? 아니면 밭에 나가 곡식을 뿌리고 채소를 재배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겠습니까?

경전에는 다음과 같이 계속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네 모든 행위로 주께 드리는 것이 되게 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안에서 행하도록 하라. 참으로 네 모든 생각으로 주를 향하게 하라. 참으로 네 마음의 사랑을 영원히 주께 두도록 하라. (앨마서 37:36) 다음 구절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너의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유익하도록 지도하시리라. (앨마서 37:37)

올리버 카우드리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내게 간구하기만 하[] … 도다. …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 (교리와 성약 9:7~8)

여러분은 아내를 원하십니까? 무엇이든지 옳고 바른 것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나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여러분의 선택의지와 능력과 힘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능력을 사용하고, 가능한 한 그 문제에 집중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린 다음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주님과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말씀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성신에게서만 올 수 있는 고요하고 따뜻한 확신이 마음에 느껴지면 여러분은 올바른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면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손이 그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신의 은사를 받은 교회 회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재가를 받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네가 밤에 누울 때 주께로 누워, 그로 네가 자는 동안 너를 지키시게 하고, 네가 아침에 일어날 때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네 마음이 가득 차게 하라. 이렇게 하면 마지막 날에 네가 들리움을 받으리라. (앨마서 37:37)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택의지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결정하려고 노력하며, 올바르고 건전한 결론에 도달한 후 하나님과 의논하여 여러분이 내린 결론에 대해 재가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계시를 받은 것이며, 또한 영생이라는 위대한 상을 받고 마지막 날에 들리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러한 능력과 재능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또다른 능력과 재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재능을 사용한다면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언젠가 조지 워싱턴 탄생일인 월요일에 저는 뒤뜰에 나아가 통나무를 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제게 몇 가지 지시를 하시고 제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하는 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대로 통나무를 켜지 못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조금 있다가 동생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뒤뜰에 나가서 형을 좀 도와 주고 형이 제대로 잘하는지 살펴보려무나.”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르스는 아무래도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은가 보구나.

그래서 저는 제가 현재 처한 곳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제가 지닌 재능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영원한 진리의 원리를 제 삶에 적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늘 주님과 상의하고 그분의 권고를 들었습니다. 제가 어느 곳에 처하건 복음은 저를 앞으로 그리고 위로 나아가게 했으며, 이 생에서 저를 기품있게 하고 성결케 하며 또 향상시키어 마침내 내세에서 영광과 영예와 존귀를 주게 될 축복들이 제게 넘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을 지니고 있음

이제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원리가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앨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모두가 아니니라. 너희는 내가 스스로 이러한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앨마서 5:45) 그것이 그가 그들에게 사례 연구로 준 것이고 계시를 인용한 것이며, 그 후에 그는 자신의 간증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이와 같이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가르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복음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마칠 때 우리가 한 말이 옳은지를 알게 될 것이며, 사업의 신성과 진실성은 물론 우리가 반포하는 교리와 우리가 설명하는 영원한 진리가 옳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음성이라는 간증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사업과 이 교리에 대한 영광스럽고 놀라운 일은 그것들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사업이 진실한 것이며, 주님의 영향력이 여기에 미치고 있다는 것에 비교할 만한 진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신의 은사와 권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 간증의 영, 예언의 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와 왕국에 있지 아니한 것일 뿐 아니라 주님의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영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계시는 역사하고 있습니다. 계시를 받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조셉 스미스는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이사도에게 알리실 것을 제외하고는 조셉에게 아무 것도 밝혀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성도라 할지라도 조셉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149) 우리는 계시의 영을 받기 전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올바른 방법과 절차와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다음에 주님과 의논한 다음,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성령의 재가를 얻는 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이 재가가 곧 계시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에 대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설 수 있고 우리의 선택의지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용기와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겸손하고 영에 따름으로써 주님의 뜻 앞에 우리의 뜻을 굽히고, 그분의 재가 곧 승인을 확인하시는 인을 받고, 계시의 영이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할진대, 결과에 대한 의심이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란 이 생에서의 화평이요, 영광과 존귀와 위엄인 것입니다.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성도의 벗, 1978 5월호, 31; “영원한 결혼”:학생교재 193페이지)

 

6.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함",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성도의 벗, 1986 7월호

 


본질적으로 교만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나의 뜻”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파수꾼 여러분, 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시온에서 모든 것이 잘되고 있지는 않다는 응답을 해야 합니다. 모로나이가 권고한 대로, 우리는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우리 가족을, 마지막으로는 교회를 깨끗이 해야 합니다.

변화된 사람들

주님의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좋은 것이 자라는 데 따라서 나쁜 것을 쳐 버려서, … 좋은 것이 나쁜 것을 이기고, 나쁜 것은 찍혀 불에 던지워, 내 포도원의 땅을 버리지 않게 되기까지” (야곱서 5:66) 그것은 시온의 백성들이 시온의 사회를 만들게 해 주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교만

이제 우리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주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교만에 관한 것입니다.

경전에는 의로운 교만과 같은 말은 없습니다. 그것은 항상 죄로 간주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가장 잘 형성되는 자신의 가치에 관한 건전한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 말했듯이 보편적인 죄로서의 교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몬은 “이 나라 곧 니파이 백성의 교만이,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의 멸망이 되었도다.(모로나이서 8:2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교리와 성약에서 “교만을 조심하여 옛 니파이인과 같이 되지 말라.(교리와 성약 38:39)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본질적으로 교만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나의 뜻”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 온유함, 순종 또는 온순함입니다. (앨마서 13:28 참조)

회복된 교회의 초기 시대에 주님은 두 회원에게 교만에 관해 훌륭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그분은 “유혹에 들지 아니하도록 교만을 조심하라. (교리와 성약 23:1)고 하셨고, 에머 스미스에게는 “온유한 심령 안에 거하고, 교만을 조심하라. (교리와 성약 25:14)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네 마음에 교만하지 말지니, (교리와 성약 42:40)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몰몬경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함을 믿으라. (모사이야서 4:10)고 말합니다.

지구가 후일에 불로써 깨끗하게 될 때 교만은 초개와 같이 될 것입니다. (3니파이 25:1; 교리와 성약 29:9, 62:24 참조)

리하이가 본 크고 넓은 건물은 세상의 교만이었고, 그 안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니파이전서 11:35~36 참조) 곧고 좁은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취하는 사람들을 그 건물에 있는 자들은 놀리고 조롱했습니다. (니파이전서 8:20, 27, 33, 11:25 참조)

“그리스도를 겸손히 따르는 몇몇”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니파이후서 28:14)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우러러보지 않으며 옳은 것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을 곁눈질로 보며 누가 옳은가에 대해 논쟁합니다. 교만은 분쟁하는 마음에 나타납니다.

사탄이 악마가 된 것은 교만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는 봉사하기를 원했습니다. 사탄은 다스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자신의 위치로 데려오기를 원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위에 올라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완전한 생에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에서 나에게 무엇을 하게 하실 것인가?”보다는 “나는 이 생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에 의해 특징지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자신의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우리 주위 사람들의 필요 사항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세상 사람들의 찬사가 그들의 귓전에 맴돌겠지만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칭찬이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교만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으로 기쁨을 얻습니다. 주님은 어느 형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뛰어나기를 구하며 내 앞에서 충분히 온유하지 아니하므로, 나 주가 그를 크게 기쁘게 여기지 아니함이니라.(교리와 성약 58:41)

“학식 있는 자와 부한 자”

교만으로 인해 큰 고난을 받았던 몰몬경에 나오는 두 무리는 “학식 있는 자와 부한 자” (니파이후서 28:15)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교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앨마서 4:19 참조)

교만에는 큰 저주가 따르지만 겸손에는 많은 축복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너는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손을 잡고 너를 인도할 것이요, 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네게 주리라.(교리와 성약 112:10)고 하셨습니다. 겸손은 “그들이 겸손한 만큼, 강하게 되게 하며, 높은 곳에서 오는 복을 받게 하며, 시시로 지식을 받게” (교리와 성약 1:28) 합니다. 주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자비로[](교리와 성약 61:2)십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분노를 거둘 수 있습니다. (힐라맨서 11:11 참조)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해야 함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개인의 생활과 가족과 교회에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교만은 변화하여 발전하려 하지 않고 합리화하여 자신의 위치를 방어하려 합니다. 회개는 변화를 의미하며 그것은 겸손한 사람을 변화시켜 줍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느 정도 놀라운 발전을 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걸음의 폭을 넓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깨어 일어나서,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거둘 수 있도록 몰몬경을 올바로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겸손하여 교만을 극복함으로써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능히 할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이 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행하신 일과 앞으로 하시게 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나의 축복을 전해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함,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 성도의 벗, 1986 7월호, 4, 6, “영원한 결혼”:학생교재 268페이지)

 

7. “교만을 조심하십시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1899~1994), 성도의 벗 1989 7월호

교만은 널리 행하여 지고 있는 죄이며, 큰 악입니다. … 교만은 시온에 큰 장애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다시 맞는 영광스런 교회의 연차 대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전세계에서 헌신적인 교회 회원들의 사랑과 기도와 봉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몰몬경으로 온 세상을 덮고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우고자 노력하시는 충실한 모든 성도들에게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우리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몰몬경을 보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활과 온 지상에 그 놀라운 메시지를 더욱 더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책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 쓰여졌습니다그 경전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니파이전서 19:23참조)

교리와 성약은 몰몬경이 “타락한 백성의 기록” (교성20:9) 임을 말해줍니다. 왜 그들은 타락 했습니까? 그것이 몰몬경의 주요 메시지의 하나입니다. 몰몬경은 끝 부분의 장에서 이와 같이 답해줍니다. (모로나이서 8;27) “볼지어다, 이 나라 곧 니파이 백성의 교만이,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의 멸망이 되었도다.” 우리가 그 타락한 백성들로부터 나온 중요한 몰몬경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게 하시려, 주님은 교리와 성약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그러나 너희가 옛날의 니파이인같이 되지 않도록 교만을 조심하라. (교성38:39)

나는 간절히 여러분의 신앙과 기도의 도움을 구하며, 이 몰몬경 메시지인 '교만이라는 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이 메시지는 얼마 동안 나에게 큰 부담이 되어 왔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이제 이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원하심을 압니다.

전세의 회의에서, 아침의 아들인 루시퍼가 떨어져 나간 것은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종말에 불로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실 때, 교만한 자는 초개와 같이 될 것이며, 온유한 자는 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에서 주님은 “교만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세 번 하셨는데, 교회의 두 번째 장로인 올리버 카우드리와 선지자의 아내인 에머 스미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이 포함됩니다. (교성23:11, 25:14, 38:39 참조)

교만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죄이며, 많은 사람들이 무지에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many are sinning in ignorance.)  경전에는 의로운 교만과 같은 말은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죄로 간주됩니다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말하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이해하여 경전에 나오는 단어를 알고 거기서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교만을 자기 중심, 자만, 자랑, 거만함 또는 오만함으로 생각합니다이러한 것은 모두 죄의 요소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교만의 중심적인 양상은 적대감,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대감입니다적대감이란 증오의 감정, 적개심, 또는 반목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능력으로 사탄은 우리를 지배 하고자 합니다.

교만은 근본적으로 경쟁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우리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 대로가 아니라 내 뜻대로 하려 들게 됩니다. 바울이 말 한대로, 그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 (2;21) 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뜻에 더 치중하면 소망, 욕망과 같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

교만한 자는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지혜보다는 그들의 진리에 대한 인식을, 하나님의 신권 권능보다는 그들의 능력을, 주님의 놀라우신 업적보다는 그들의 성취를 더 내세웁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적대감은 반항, 강퍅한 마음, 완고함, 회개치 않음, 자랑, 쉽게 성 내고 표적을 구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뜻에 동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그들의 의견을 바꾸는 데는 흥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널리 퍼져 있는 '교만이라는 죄'의 다른 중요한 면은 우리 이웃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게 생각하고 그들을 낮추어 보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의 지성과 의견, 행실, , 재능 또는 기타 세상적인 평가 기준을 내세움으로써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듭니다. ‘시 에스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은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데서 즐거움을 얻기보다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비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