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알렌 앤더슨, "왜 역경을 겪는가?", 리아호나 2005년 7월호]

왜 역경을 겪는가?
Why Adversity?

   디 알렌 앤더슨 장로
   칠십인 지역 관리 역원
   아시아 지역

   (왜 역경을 겪는가?, 디 알렌 앤더슨, 리아호나 2005 7월호, 28)

문제 없는 인생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이 너무나 크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왜 우리는 불쾌하고 힘든, 고통과 슬픔과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들과 종종 마주치게 됩니까? 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역경을 겪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공정하지 못해 보입니다.

우리 인생의 역경에는 어떤 원인들이 있습니까? 베냐민 왕은 죄라는 주제의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죄를 범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모두 너희에게 일러 줄 수 없나니”(모사이야서 4:29) 마찬가지로 역경도 이 지상에서 겪어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들은 우리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또 어떤 것들은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그밖에 우리가 필멸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연유되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 오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상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앙이 없이는, 구원의 계획과 전세와 내세의 존재에 대한 진실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생의 모든 어려움에 대처할 효과적인 방도 또한 없습니다.

 

징계

우리 삶에서 이러한 모든 어려운 일들을 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우리의 개인적인 선택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과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다른 모든 일들에서 비롯되는 것의 두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의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성도들이 큰 박해를 당하는 시기에 그들이 미주리 주 잭슨 군의 집에서 추방당하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범법의 결과로 나 주는 그들이 겪은 고난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용납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101:2) 우리의 행위의 결과로서 직접적으로 오는 고난과 어려움은 아마도 이해하기 가장 쉬운 것일 것입니다. 주님은 “무릇 징계를 견디려 하지 아니하고 나를 부인할 자는 모두 성결하게 될 수 없도다.(5)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결과에 맞서서 우리의 책임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우리를 징계하시는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거나, 아니면 참을성 있게 감수하고 배우며 의로움으로 발전하는 자들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브리서 12:6) 채찍질은 고통이 따르는 과정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7, 11)

 

하나님의 크신 지혜

우리는 또한 인생의 다른 역경들도 만나는데 이 역경들은 우리들이“이 고난을 감수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현재 모습과 장래의 모습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제겐 한 명의 영웅이 있습니다. 그녀는 제가 자기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줄 모릅니다. 저는 그녀를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은 제게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후에 저는 선교사들과 그녀의 스테이크 회장 및 선교부 회장에게 그녀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고 그녀를 존경할 더 많은 이유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녀는 타이완 타이난 스테이크의 예 후이 후와 자매입니다. 저는 스테이크 대회를 위해 타이난을 방문했을 때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집회소 마당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일하는 모습에서 눈에 띌 정도로 그녀를 감싸고 있던 행복감에 이끌렸습니다. 우리가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간증과 많은 축복에 대한 감사를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넘치는 기쁨으로 인해 빛나는 영을 느끼고, 제가 받은 축복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그 한 번의 만남에서 떠났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물질면에서는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제가 만났던 어떤 사람 못지 않게 평화와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았고 그래서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아냈습니다.

독신 회원으로서 그녀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소망이 컸지만 재정적으로 부모님께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신에 그녀는 일을 하고 그 수입을 사랑하는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훌륭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후, 그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선교사들이 그녀와 가족을 방문했고 그들은 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오랫동안 건강 문제를 겪다가, 생계 수단이 거의 없는 예 자매와 세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녀들이 선교사로 나갈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저축했습니다. 지금 그녀의 자녀 세 명 모두는 선교 사업을 마쳤습니다. 두 명은 타이완에서 봉사했고 한 명은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템플 스퀘어 선교부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녀의 아들 중 한 명은 귀환 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교사들이 저의 요청에 따라 예 자매와 얘기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왜 이런 고난을 겪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지혜에 따른 것이라는 신앙을 갖고 있어요.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저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킬 때만 우리를 위한 그분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여기에 있도록 허락하신 것에 대해 매일 감사하고 있어요. 고난을 당할 때 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기억해요. 만약 누군가가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는 그들을 돕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지를 알려달라고 기도하며, 그렇게 할 때 주님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도록 인도해 주셔요.

선교사들은 집회소 주변을 정리하고 나뭇가지를 손질하고 있는 예 자매를 볼 때 종종 다정하게 “예 엄마”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그녀가 모든 선교사들의 “두 번째 엄마”이며, 예 자매도 그들을 자기 자녀들처럼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원리

타이난 집회소 마당에서 손에 정원용 도구를 들고 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있는 행복한 예 자매님의 모습은 제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교육이나 물질적인 혜택의 기회도 잃었고 가까운 사람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거듭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생에서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을 욕하고 죽”(욥기 2:9)는 자들과 예 자매님을 구별짓는 신앙의 원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구세주께서 우리 각자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분들은 깊은 지혜와 크신 안목으로 우리가 잘 대처했을 때 우리에게 영원한 유익이 되지 않을 어떤 시련도 겪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리버티 감옥에서 받으신 권고에서 큰 위안을 얻습니다. 주님은 엄청난 고난의 목록을 열거하십니다. 그런 뒤에 위안과 권고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내 아들아, 이 모든 일이 네게 경험이 되고 네 유익이 될 줄 알라.

“인자는 그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갔었느니라. 네가 그보다 크냐?

“그러므로, 너의 길을 계속 가라. 그리하면 신권은 너와 함께 머물러 있으리라. 무릇 그들의 한계는 정하여져 있어 지나갈 수 없느니라. 너의 날은 알려져 있고 너의 해는 더 짧게 헤아림을 받지 아니할 것인즉,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두려워 말라. 이는 하나님이 영원무궁토록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교리와 성약 122:7~9)

짧은 구절 속에 담긴 참으로 훌륭한 권고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더 심한 역경과 슬픔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하실 수 있으며 역경과 슬픔 가운데에 있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의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그분이 정해 놓으신 경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경전과 선지자들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들과 고난들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현명한 권고를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는 인내와 신앙으로 고난에 대처해야만 합니다. 여러 달 동안 리버티 감옥에서 고통을 겪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성도들의 시련을 줄여달라고 주님께 간청했습니다. 주님은 부분적으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네 영혼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역경과 네 고난은 잠시 뿐이리니,

“그러고 나서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내면,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들어 올리실 것이요, 너는 너의 모든 원수를 이기리라.(교리와 성약 121:7~8)

주님은 또한 미주리 주에서 받은 박해에 관한 한 계시에서 선지자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에 관하여는 너희 마음에 위로를 받으라. 이는 모든 육체는 내 손안에 있음이니,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교리와 성약 101:16)

 

봉사를 통해 얻는 기쁨

이 지상 생활의 시련에 대처함에 있어 신앙과 인내 이상으로 더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까? 저는 또 다른 열쇠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예 자매가 시련에서 헤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생의 기쁨을 발견하게끔 해 준 열쇠입니다. 구세주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모범이십니다.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큰 고통을 겪기 바로 직전, 자신이 몇 시간 이내에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맞게 될 것을 아셨던 그때에 이 열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한 다락방에서 그분의 사도들과 만나 그들에게 성스러운 의식과 원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그 절박한 시간에 그분은 위안과 도움을 구하기 위해 그분이 가장 사랑했던 자들에게 의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신 다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한복음 13:5, 14~15, 17)

가장 큰 시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의 주님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예 자매가 찾았던 비밀이며,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위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련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과 인내는 우리에게 위안과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봉사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구세주의 모범을 따릅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갈 때 우리의 모든 고난은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유익이 됨을 알도록 합시다.

(왜 역경을 겪는가?, 디 알렌 앤더슨, 리아호나 2005 7월호,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