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지극한 정성을 모아: 가족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로버트 디 헤일즈,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부모의 지극한 정성을 모아:
가족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With All the Feeling of a Tender Parent:
A Message of Hope to Families

  세상이 아무리 악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가족은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한다면 우리는 인도와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로버트 디 헤일즈, 부모의 지극한 정성을 모아: 가족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제174차 연차대회, 리아호나 2004 5월호, 88)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는 “고통하는 때”(디모데후서 3:1)에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마음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제3니파이 2:3) 그의 영향력이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족은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한다면 우리는 인도와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개척자 선조들이 자주 부른 찬송가에 있는 “팔을 걷고 용기내자 하나님 보호하리라”는 가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줍니다.3 그런 용기와 신앙이 바로 이 말일에, 부모로서, 그리고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리하이는 아버지로서 그런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고 몇몇 자녀들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 “레이맨과 레뮤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열매를 먹지”않았을 때는 분명히 마음이 아팠을것입니다. 그는 “레이맨과 레뮤엘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하[였으며] … 그들이 주의 면전에서 쫓겨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니파이전서 8:35~36)

모든 부모는 그런 두려움의 순간을 맞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가르치고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신앙을 행사할 때, 우리의 두려움은 줄어듭니다. 리하이는 허리를 동여매고, 신앙으로,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혹 주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실]”것이라 느껴, “애정 깊은 부모의 정감을 다하여 [자녀들을] 권면”했습니다. 또 그는 “주의 계명을 지키라고”했습니다.(니파이전서 8:37~38)

우리 또한 자녀들을 가르치고 자녀들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할 신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선택이 우리의 신앙을 약하게 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합당성이 그들의 의로움에 따라 측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리하이는 레이맨과 레뮤엘이 생명의 나무 열매를 취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생명의 나무를 흡족히 취하는 축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들이 실수를 하거나 방황할 때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자녀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기도하고, 보살핀 어떤 부모도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 기도, 노력이 자녀들의 유익에 기여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모인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에 따라 네 자녀에게 빛과 진리를 가르치[라] … 네 자신의 집에 질서를 세울지니라. ... 삼가 그들이 가정에 더 부지런하고 마음을 쓰[게 하라]”(교리와 성약 93:42~43, 50)

어느 가족도 완전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저는 오늘 여러분께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가족은 필멸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선택의지, 즉 스스로 선택하여 그 결과로부터 배우는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어느 누구나 배우자, 자녀, 부모, 또는 확대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즉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고통 받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 역시 이런 환란을 때때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필멸의 세상은 쉬운 곳이 아닙니다.

각 가족은 나름대로 특수한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어려움에 대한 답을 줍니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복음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의로움으로 양육하고, 그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켜 주며,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어디서 살든지 법률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도록 가르쳐야 할 거룩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남편과 아내 곧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의무의 이행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7

이런 의무를 성취하는 것이 이 말일에 우리의 가족을 보호하는 열쇠입니다.

모세는 “이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 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권고했습니다.(신명기 6:7) 우리는 가족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는 지속적인 가르침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어려운 시기에 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바로는 애굽에 있는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를 강물에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부모로서의 자신들의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경전에는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 석 달 동안 숨겨 [그의 부모들이] 왕의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브리서 11:23) 모세가 자라 숨기기가 힘들게 되었을 때, 그의 모친 요게벳은 갈대로 정교한 상자를 만들어 역청과 나무 진을 발라 방수를 하고는 그 안에 아들을 넣었습니다. 그녀는 그 작은 배를 강 아래의 안전한 장소, 즉 바로의 딸이 목욕하는 곳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요게벳은 영감 받은 조력자인 15세 된 딸, 미리암을 보내어 지켜보게 했습니다. 바로의 딸인 공주가 그 아기를 발견했을 때, 미리암은 용감하게 히브리 유모를 부를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 유모는 바로 모세의 모친, 요게벳이었습니다.10 모친의 충실함으로 인해 모세는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며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아니”하였습니다.(히브리서 11:24~27 참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고, 부모로서 우리의 책임을 이해하며, 어둠의 왕자인 사탄의 노함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일에서 저는 곳곳에 있는 충실한 부모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신뢰합니다.

요게벳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악하고 적대적인 세상, 즉 바로가 다스리던 애굽 왕궁처럼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의 가족을 키웁니다. 그러나 요게벳처럼 우리 또한 자녀들 주위에 보호 상자, 즉 “가족”이라 불리는 상자를 만들어 그들을 안전한 장소로 인도합니다. 가정과 교회라는 안전한 곳에서 우리의 가르침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가장 위대한 배움의 집, 즉 거룩한 성전으로 인도하고 그곳에서 그들은 언젠가는 충실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현세와 영원을 위해 합당한 배우자에게 인봉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배운 것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영원한 가족 사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때때로 자녀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질 때, 주님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영감받은 “미리암”과 같은 사람들, 즉 신권 및 보조조직 지도자, 교사, 확대 가족, 그리고 합당한 친구들과 같은 특별한 조력자들을 주십니다. 때때로 영은 우리 자신의 능력을 초월해서 의사나 치료사와 같은 전문가들을 통해서 특별한 도움을 구할 것을 부모인 우리에게 속삭여 줍니다. 그런 도움을 얻어야 하는 때와 방법도 영이 지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을 위한 가장 큰 도움은 복음을 통해서, 즉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성신의 인도를 통해서, 교리와 원리로, 신권을 통해서 옵니다. 가족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녀 양육의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를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족 평의회를 가지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자녀들을 두려워합니다. 자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그들과 함께 상의하지 못합니다. 우리 가족 개개인의 삶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며 가족들과 함께 상의할 때 얻어지는 아주 소중한 축복들이 있습니다. 가정의 밤이나 다른 특별한 모임의 일부로 갖는 가족 평의회에 모든 가족들을 참여시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들 하나하나와 개별적으로 만나 정규적으로 상담해야 합니다.

이런 일 대일 상담을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갖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아빠나 엄마 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고 믿기 쉽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말을 가로막지 않을 때, 우리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도록 영이 도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의 결과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동의 결과가 그들 자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들이 이해하도록 도울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가르침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 그리고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하도록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가족, 특히 부모에 대한 강력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둘째아들은 “스스로 돌이[킨]”후에(누가복음 15:17) 집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거부하지 않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가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시절의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오해, 갈등, 어리석음이 있었을지라도, 저는 그의 아버지가 이해하려는 측은한 마음, 유순한 대답, 경청하는 귀, 용서의 포옹으로 그를 기다렸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아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따뜻한 집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입을 맞추”었습니다.(누가복음 15:20)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문을 열어 놓고 계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너를 사랑한단다”, “미안하구나”, “용서해라”등과 같은 간단한 말로 우리와 자녀들 사이에 문을 여는 것이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을 또한 간증드립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게 될 가정을 만드는 일을 현재뿐 아니라 영원의 관점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순종적인 자녀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고마움을 표시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이 형제 자매의 회개를 기뻐하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이 용서의 문을 열어 놓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 이렇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경전을 우리 생활에 적용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종종 경전의 내용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여러 해 전에 저는 어린 아들에게 야렛의 동생의 생애와 경험에 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였지만 아들은 새겨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그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그것이 너에겐 어떤 의미가 있지?”라고 물을 때 더 효과적입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시잖아요, 조셉 스미스가 숲 속에서 기도하고 응답을 얻었을 때 했던 일과 거의 비슷한 데요 뭘.”

제가 말했습니다. “너도 당시 조셉의 나이와 비슷하단다. 기도가 네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별안간 우리가 저 먼 나라에서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에 관해, 즉 그의 삶, 그의 필요 사항, 기도가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경전을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모든 부분을] 우리[와 자녀들]에게 비유하[도록]” 자녀들을 돕는 책임은 부모로서 우리의 몫인데, 이는 “[우리 가족의] 유익과 배움이 되”기 때문입니다.(니파이전서 19:23)

우리는 자녀들의 모든 복음 경험을 그들의 실제 필요 사항에 적용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어려움에 닥칠 때 그들에게 성신의 은사, 회개, 속죄, 성찬, 성찬식의 축복에 관해 가르치고 있습니까? 공식적인 모임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임이 충분히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매일 주어지는 가르침의 기회를 활용하십시오.

이런 기회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 시간은 우리가 일할 때, 놀 때, 함께 고민할 때 찾아옵니다. 그 시간이 찾아올 때, 주님의 영은 우리가 말해야 할 바를 알게 도와 주고 또 자녀들이 우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도와 줍니다.

우리 가정에 영을 지니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요 축복입니까! 경전을 공부하면서 친절하게 말하고, 서로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면서 기도를 통해 영을 불러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앨마가 아들을 위해 간구했을 때처럼 “많은 신앙”(모사이야서 27:14)을 갖고 기도하고, 영혼의 모든 힘을 다해 금식하며, 경전을 찾고, 우리 죄를 회개하고, 성신이 우리의 마음을 사랑과 용서, 동정심으로 채우게 함으로써 가르칠 기회를 준비합시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의 집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런 후

선한 목자를 신뢰하십시오.

모세의 모친 요베겟은 “[우리] 영혼의 목자”(베드로전서 2:25)를 믿는 신앙을 갖고 아들이 강물에 흘러내려가도록 인도했습니다. 부모로서의 우리 또한 우리를 인도하고 지시하는 선한 목자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분이 젊은이들에 대한 책임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온순히 인도”(이사야 40:11)하실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분은 자녀들이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릴 때조차 우리가 선택의지, 상대되는 것, 그리고 속죄의 원리들을 믿고 존중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자녀들의 삶에서의 모든 어려움, 시련, 환란을 그들이 누구인지를 앎으로써, 즉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함으로써 극복하도록, 그분의 영을 통해 우리가 그들을 가르치게 도우실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18 “대적의 불화살”을19 “믿음의 방패”20와 “성령의 검”21을 가지고 견딜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우리에게 영감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자녀들이 영적으로 무장되고 강화될 때, 그분은 그들을 축복하셔서 충실하게 끝까지 견디고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면전에 합당하게 서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족들이 필멸의 세상에서 돌팔매와 화살을 경험하는 것을 보는 슬픔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내리신 구세주의 사랑에 크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분으로 인해 매질이 그들을 망가뜨리거나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부드럽게 하고, 강화시키고, 정화시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전세계 곳곳에 계신 부모와 가족들에게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치유자, 구속주이시며 아흔 아홉을 두고 하나를 찾아 구해내시는 목자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가족 안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면, 그들은 이미 그분의 팔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우리가 복음에 따라 충실하게 생활하고, 성전에서 인봉되며, 그곳에서 맺은 성약에 참되게 생활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구하시는 그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한 올슨 에프 휘트니 장로의 말씀으로부터 부모들은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충실한 부모들의 영원한 인봉과 진리의 대업에서 행하는 용감한 봉사에 대해 그들에게 주신 신성한 약속에 따라 그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구원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이보다 더 위안을 주는 교리를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양들의 일부가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으나 목자의 눈은 그들 위에 머물며, 그들은 조만간 그들을 우리로 다시 모으시려는 거룩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든지 다음 세상에서든지 그들은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공의에 대한 그들의 부채를 갚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을 겪을 것이며 어쩌면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마침내 돌아온 탕자처럼 사랑하고 용서할 아버지의 품과 집으로 그들을 이끌기만 한다면 그 고통스러운 경험은 헛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의 조심성 없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으로 그들을 붙드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때 까지 계속 희망을 가지고 신뢰하십시오.”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든 가족들의 구원과 승영을 가능케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는 저의 특별한 간증을 전해 드립니다. 부모의 지극한 정성을 모아 저는 저의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에게 전해 드립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우리의 허리를 동여매고]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신앙, 용기, 그리고 사랑으로 가족은 진실로 영원해 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로버트 디 헤일즈, 부모의 지극한 정성을 모아: 가족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제174차 연차대회,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88)

3.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찬송가, 16장.
7. 리아호나, 1998년 10월호, 24쪽.
10. 출애굽기 2:3~10; 또한 제리 더블류 허드, Our Sisters in the Bible(1983), 36~37쪽 참조.
18. 에베소서 6:11, 13 참조; 또한 교리와 성약 27:15 참조.
19. 니파이전서 15:24; 교리와 성약 3:8; 또한 에베소서 6:16 참조.
20. 에베소서 6:16; 교리와 성약 27:17.
21. 에베소서 6:17; 또한 교리와 성약 27:18 참조.
22. 대회 보고, 1929년 4월, 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