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중에서 몇 가지 뽑은 글]

채근담 중에서 몇 가지 뽑은 글

(아하 채근담, 진동일譯, 도서출판 대흥)

(채근담은 동양의 팡세로 불리는 동서고금의 수신서중 하나이며 저자는 1580년경 명나라때의 가난한 선비였던 홍자성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채근담의 제목이 송나라 학자 왕시민의 사람이 늘 나물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능히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 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듯이 채근담은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골고루 맛본 이에 의해서 가꾸어졌다.)

사나운 말도 잘 길들이면 명마가 되고 품질이 나쁜 쇠붙이도 잘 다루면 훌륭한 그릇이 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천성이 좋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하면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 해도 얼렁뚱땅 세월을 좀먹으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떤 비전도 기대할 수 없으며 또한 사회의 낙오자가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 육신의 병이 많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아무 고민도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내 덕을 후하게 해서 이를 맞이할 것이고, 하늘이 내 몸을 수고스럽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안정시켜 보충하고,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한다면 나는 내 도를 깨쳐 트이게 하겠다.  그러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역경 속에 있을 땐 그 주위가 모두 침이 되고 약이 되어 절개와 행실이 갈고 닦여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순조로운 처지에 있을 땐 눈앞에 있는 것이 모두 칼이 되고 창이 되어 기름이 녹고 뼈가 깎여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더웠다 차가웠다 하는 마음의 변화는 빈천한 사람보다도 부귀한 사람이 더욱 심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은 육친이 남보다 더 심하다.  이런 처지에서 냉정한 태도로 대처하지 않고 억제하지 않으면 번뇌 속에 빠지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남들이 나를 받드는 것은 높은 관과 큰 허리띠를 받드는 것이다.  천하게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본래의 나를 받드는 것이 아닌데 어찌 내가 기뻐하며, 본래의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데 어찌 내가 화를 내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이룬 공적이나 학문을 남에게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이외의 것으로 얻은 것이므로 참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마음의 본바탕이 찬란히 빛나 언제나 변함없이 본래의 바탕을 잃지 않는다면, 설사 공적이 없고 지식이 변변치 못하다고 치더라도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라.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위로를 받아 자연히 원망스럽던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해이해지고 나태해질 때는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분발의 촉진제가 생겨 나태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낚시질은 한가한 일이지만 살리고 죽이는 권세를 쥐고 있고, 바둑과 장기는 고상한 놀이지만 전쟁하는 마음으로 움직여진다.  일을 좋아하는 것은 한가히 지냄만 못하고, 재능이 많은 것은 재능이 없어 본래의 마음을 보전하는 것만 못함을 알 수가 있다.

정욕이 불길처럼 치솟다가도 병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금세 흥이 식어 버린다.  또 부귀의 맛이 엿처럼 달다가도 빈손으로 죽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부귀가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가를 알게 돼, 그 엿 맛이 초를 씹는 맛으로 변한다.  그런즉 항상 병과 죽음을 생각하고 산다면 인간의 헛된 욕심은 부리지 않게 되고 영원토록 참된 마음을 갖게 된다.

뗏목을 겨우 타자마자 뗏목을 버릴 생각을 한다면 그는 진리를 깨달아 번뇌에서 벗어난 도인이다.  만일 나귀를 타고서도 또다시 나귀를 찾는다면 그는 끝내 깨닫지 못한 사이비 중에 그치고 만다.

자식을 낳을 땐 어머니가 위태롭고 돈이 쌓이면 도둑이 엿보니 어느 기쁨인들 근심이 아니랴.  가난은 씀씀이를 절약할 수 있고 병은 몸을 보전할 수 있게 하니 어느 근심인들 기쁨이 아니랴.  그래서 통달한 사람은 순경과 역경을 똑같이 보며 또 잊어버리는 것이다.

본래 덕과 의리를 지키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근면이라 말하건만, 세상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 재산을 모으는 것을 근면이라고 생각한다.  또 본래 재물이나 이권을 탐내지 않는 것을 검약이라 말하건만,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재물에 인색한 것을 두고 검약이라고 한다.  근면과 검약은 군자의 예이며 도리거늘, 애석하게도 소인들은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덕을 삼가 이루려거든 작은 일에서 조심하고, 은혜를 베풀려거든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라.

절개가 청운을 내려다볼 만하고 문장이 백설보다 높을지라도, 만약 덕성으로 단련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사사로운 혈기와 말단의 재주가 되고 만다.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에게는 닥치는 일마다 모두가 약이 될 것이요, 남을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생각마다 모두 창과 칼이 된다.  하나는 모든 선의 길을 열어 주고 다른 하나는 모든 악의 근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그 양자는 하늘과 땅만큼 큰 거리가 있다.

푸른 하늘의 태양처럼 빛나는 드높은 절개는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길러진 것이며, 천지를 뒤 흔드는 뛰어난 경륜도 깊은 연못가에서 살얼음을 밟듯 조심스럽게 마련된 것이다.

작은 일도 빈틈없이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며, 실패를 하고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아하 채근담 진동일譯 도서출판 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