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1월 30일 축복은 어떻게 오는가? (수원 스테이크 신갈와드)]

[위로]


축복은 어떻게 오는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는 이러한 기회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 와드가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쁩니다.  감독단을 위시하여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희생이 이러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씀 주제로 축복은 어떻게 오는가?”라는 주제를 받았습니다.  축복은 어떻게 받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오는가로 주제를 정하신 데에도 영감이 있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먼저 우리가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축복이 와도 온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복은 무엇인가?”  축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먼저 축복의 특징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축복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축복은 매우 드라마틱하고 변화무쌍하여 우리가 그 축복을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의 이야기는 가장 놀라운 반전 드라마일 것입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모함에 걸려 감옥에 갇혔지만, 요셉은 왕의 꿈을 현명하게 해몽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한편 오랜 기근에 시달린 야곱의 가족은 요셉의 형들을 애굽으로 보내 양식을 구하도록 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동생인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양식을 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신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형들이 가져온 돈을 곡식 주머니에 다시 넣게 하여 돌려보냅니다.  형들은 돌아가는 길에 가져왔던 돈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다시 기근이 심해지자 아들들의 간청에 못이겨 야곱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였던 라헬의 유일한 남은 아들인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37~50장 참조)

동생을 알아본 요셉은 이번에도 돈을 다시 곡식 주머니에 넣도록 지시하고, 자신의 아끼는 물건을 베냐민의 곡식 주머니에 넣도록 하여, 사랑하는 동생을 가까이 두려고 합니다.  그러자 형들의 눈물 어린 간절한 호소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요셉은, 마침내 자신이 동생임을 드러내고 아버지 야곱과 그의 모든 식솔을 기근에서 구해내어 애굽으로 들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감독보다도 더 놀라운 반전전문 감독이자 연출가이시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못지 않게 이러한 반전의 감동을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가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나중에 축복이나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점에서 조금 헷갈린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축복의 또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둘째. 축복은 조건부로 주어집니다. 교리와 성약 130편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 130:20-21) 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하늘에서 변경될 수 없게 선포된 율법이 있어 모든 축복은 이에 근거를 두나니 -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어떠한 축복을 얻을 때에는 그것이 근거를 두고 있는 그 율법을 순종하였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니라.”

축복의 문은 순종이라는 열쇠를 통해서 조건부로 열리게 됩니다.  제가 받은 축복사의 축복에는 많은 훌륭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문의 맨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모든 약속된 축복의 실현은 그대의 합당하고 충실한 생활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

축복은 인내의 열매입니다.  축복은 로또가 아닙니다.  축복은 오랜 노력과 대가를 지불한 결과 받는 반대급부 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 급부 또는 보상이 즉각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축복의 다음과 같은 또 다른 특징 때문입니다.

 

셋째. 축복은 지연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축복 가운데에는 약속된 축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약을 맺을 때 우리에게는 축복이 약속됩니다.  이러한 약속된 축복 가운데 어떤 것은 이 생에서는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갈망하고 간구하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님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젊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가족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거나 변사를 당할 때, 우리는 많은 사람이 비판을 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적으로 기도하다가 그 응답이 없으면 원망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거룩한 신권을 지닌 사람들이 행한 엄숙한 병자 축복이 별로 효과가 없거나, 계속하여 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회복도 없는 것 같으면, 신앙을 잃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아픈 사람들이 모두 다 고침을 받고, 의로운 자들이 보호를 받고, 사악한 자들이 멸망하게 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계획은 아무런 뜻이 없는 것이 되고, 복음의 근본 원칙과 선택의지는 끝장이 나게 됩니다.

“악한 행위로 인하여 즉시 고통과 슬픔과 온갖 벌을 받게 된다면, 악행을 되풀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선한 행위자가 즉시 기쁨과 평화와 보상을 받는다면 악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선행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선행이 옳기 때문이 아니고 그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능력의 시험이나 개성의 발전, 능력의 성장, 선택의지가 없고 오직 사탄의 지배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기도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편협한 이해에 따라 즉시로 응답된다면 고통이나 슬픔, 실망이나 죽음까지도 없게 될 것이며, 이러한 것들이 없음은 곧 기쁨과 성공, 부활과 영생도 없고, 하나님처럼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비극이냐 운명이냐”, 성도의 벗, 1978 7월호, 19~20)

 

넷째. 축복에는 일반적인 축복도 있겠지만 보다 더 근본적이고도 영원한 축복이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110편은 이 마지막 경륜의 시대의 최초의 성전인 커틀랜드 성전에서 주어진 시현입니다.  1836 4 3일 안식일인 이날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카우드리에게 주님께서 시현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 곧이어 모세가 선교사업의 열쇠를 지니고 나타났으며, 이어서 12절에 보면 이 일 후에 일라이어스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복음의 경륜의 시대를 맡기며 이르기를, 우리와 우리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우리 뒤의 모든 세대가 복을 받으리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현 후에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하늘로 들리운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죽은자의 구원을 위한 성전사업의 열쇠를 회복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나타난 일라이어스와 그가 회복한 아브라함의 경륜의 시대의 열쇠가 과연 무엇일까요?  또 그가 말한 우리와 우리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우리 뒤의 모든 세대가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본부 상호부조회장인 줄리 비 벡 자매는 아브라함의 축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인용을 시작합니다.우리가 [청소년들을] 실제로 준비시키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값진 진주 아브라함서 1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2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위한 더 큰 행복과 평화와 안식이 있음을 알고, 나는 조상의 축복을 구하고

우리는 종종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조상은 누구였습니까? 아담, 노아, , 그리고 고대 선지자들, 이러한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알았던 조상들이었으며, 아브라함은 그 계획과 그들의 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축복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조상의] 축복을 베푸는 직분에 성임 될 권리를 구하였느니라. 나는 내 자신이 의의 추종자였으므로 또한 큰 지식을 지니는 자가 되며, 의의 더 큰 추종자가 되고, 더 큰 지식을 지니며, 많은 민족의 조상과 평화의 왕자가 되기를 원하였으므로, 그리고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였으므로, 나는 조상에게 속한 권리를 지닌 정당한 상속인이요 대제사장이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서 1:2)

우리 시대에는 어디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고, 어디에서 이 축복들을 받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이 “정당한 상속인이 되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성전 축복을 원했습니다. 그 축복은 오직 성전 인봉과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만 옵니다. 함께 인봉된 아내가 없이는 많은 민족의 조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내 없이는 조상들, 즉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에게 속한 권리를 지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성전 축복을 원했고 구했습니다. …

저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브라함이 이 축복들을 원했다면, 그에게 아내는 매우 중요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금쪽같은 독자인 이삭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기 위해 이 축복들을 원했다면,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는 얼마나 중요했겠습니까?

이삭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이 축복들을 받을 수 있[게 되]기 위해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을 보내 적절한 여성을 찾게 했습니다. 성약을 지킬 여성, [] 영원한 가족을 형성하고, 그 축복들을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여성을 찾게 했습니다. …

“[창세기 24] 60절에서, 우리는 리브가가 자신의 오빠에게서 이 축복을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우리는 [오늘날] 이런 축복들을 어디에서 받습니까? [바로] 성전에서 받습니다. 리브가는 축복을 받았고 이 축복들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모든 가족과 자신의 이전 생활을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리브가는 이 축복들을 매우 원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기다릴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떠나겠습니다.” (창세기 24:61 참조) 그렇게 해서 이삭과 리브가는 영원한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 중 한 명[인 에서]는 성약 밖에서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리브가가 [아들 에서의 아내이자 며느리들인] 헷의 딸들 때문에 피곤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약 안에 있지 않은 [며느리]들이었습니다. 창세기 27 46절에서 리브가는 이삭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리브가는 [야곱과 함께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했었습니다. 가족과 자기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축복들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리브가의 아들 중에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 땅의 딸들 중에서는 리브가의 아들과 영원한 결혼을 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신권의 축복과 열쇠가 의로운 아들에게 전수되는 것을 보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지키기 위해, [신권의] 열쇠를 지닌 [남편]과 영향력을 지닌 [그의 아내]가 함께 일하는 완벽한 예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는 약속에 대해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아들인] 야곱의 아내는 얼마나 중요했겠습니까? 매우 중요했습니다. 리브가의 영향력과 이삭의 신권 열쇠 때문에, 지금 이 지상을 채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원한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를 낳아 가르치는 것은 그 계획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책임들을 이해하는 남자와 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인용을 마칩니다 (줄리 비 벡 자매,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 세미나리 및 종교교육원 위성방송 • 2009 8 4컨퍼런스 센터 강당)

 

아브라함은 주님께 영원한 축복을 구했고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아내와 함께 신앙을 행사했습니다. 영원한 축복은 성약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이해하는 가족들에게, 그들의 충실함과 신앙의 선택에 따라 오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받는 몇 가지 축복보다 더 근본적인 축복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 너와 네 자녀가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으리라는 축복, 곧 승영과 영생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삼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고 그 자녀들이 복음 안에서 행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크고 영원한 아브라함의 축복이며 궁극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183643일 커틀랜드 성전에 방문한 일라이어스가 조셉과 올리버에게 부여한 아브라함의 축복의 열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3대 사명 가운데 하나인 성도를 온전케 함이라는 목표이며, 이 교회의 감독과 스테이크 회장에게 부여된 신권의 열쇠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아브라함의 신권의 열쇠를 따른 축복인, 아브라함의 축복의 열쇠입니다.  교회의 부름이 축복인 이유는, 그 부름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의 열쇠를 사용하여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축복은 상대적입니다.  나보다 많이 가진 자를 보면 내가 보잘것없어 보일 것입니다.  나보다 적게 가진 자를 보면 내가 가진 것이 많아 보일 것입니다.  찬송가 142세상모든 풍파 너를 휩쓸어에는 그 원리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휩쓸어, 잃은 것을 생각해 낙심할 때, 네가 받은 복을 모두 세어라. 주의 크신 복에 네가 놀라리.

주가 주신 복을 세어라. 주가 하신 일을 알리라. 크신 복을 세어 보아라. 주가 주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으로 시달려, 십자가가 무겁게 생각될 때, 네가 받은 복을 모두 세어라. 너의 모든 의심 사라지리라.

다른 사람 재물 네가 볼 때에, 한량 없는 허락 생각하여라.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축복과, 하늘에서 받을 보수 세어라.

세상 권위 네 앞 길을 막으나, 낙심 말라 주는 능히 이기리. 천사들이 네게 도움 위안을, 너의 여행 끝날까지 주리라.

여러분 가운데 받은 축복이 보잘것없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이 지금 갖고 있는 것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보다 훨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여러분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금 현재 받고 있는 축복이 크고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째. 축복은 구하는 자에게 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3 14:7-12)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임이니라.

또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느냐? 또는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선물로 너희의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임이니라.”

 

축복(祝福)이라는 한자 단어의 뜻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복을 빌거나 구함

2.     복 자체인 행복

3.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

축복(祝福)이라는 말의 뜻에는 복을 축원한다구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성도들의 의무요 계명일 뿐만 아니라 축복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 주제인 축복은 어떻게 오는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축복은 하늘의 뜻과 우리의 의지가 합하여 오게 됩니다.  축복은 변화무쌍하여 알아차리기 어렵고, 때때로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하며, 신앙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축복은 상대적이므로 우리가 현재 받은 것에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이고도 영원한 축복인 아브라함의 축복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재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하며 기도와 신앙을 행사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받은 축복들에 감사 드립니다.  저에게 이 복음을 알게 해 주신 선교사들께 감사 드립니다.  저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용서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에게 이 훌륭한 복음을 가르쳐 주고 모범을 보여주신 여러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늘 인내와 사랑의 미소를 잃지 않는 제 아내에게도 감사 합니다.  또 부족한 아비를 따라 묵묵히 순종하는 저의 자녀들에게도 감사 합니다.

이 복음은 회복된 참된 복음입니다.  이 교회는 축복의 열쇠를 지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선지자가 계시는 참된 교회입니다. 최근에 힝클리 회장님의 저서인 “Standing for Something” 번역판을 교정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마치 경전을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현대의 살아계신 선지자가 쓰신 권고의 말씀이야말로 바로 현대의 경전이라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경전과 선지자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저는 엄숙히 간증 드립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축복과 그 원리를 분명히 이해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또 신앙을 행사하는 가운데 그러한 축복의 열매를 취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11 130, 수원 스테이크 신갈와드 성찬식에서, 구승훈 형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