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31일 “간증, 말씀, 공과의 차이점” (교사 자질 향상 프로그램) (수원 스테이크 신갈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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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31일 “간증, 말씀, 공과의 차이점” (교사 자질 향상 프로그램) (수원 스테이크 신갈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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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말씀, 공과의 차이점” (교사 자질 향상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 프로젝터를 사용하는 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의 공과나 말씀이나 훈련모임에서 프로젝터를 사용하면 사전에 정해진 각본대로만 진행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프로젝터를 사용하다가도 중간 중간에 잠깐 차단하고 여러분의 견해를 듣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개신교에서 교회와 회원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여론조사를 한 결과 나온 첫 번째 사항은 훌륭한 교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우리교회의 교재만큼은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 교회의 참고서, 공과교재, 종교교육원 교재들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영감받은 교사들이 교재를 썼고 면밀히 검토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은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도 두 번째로 중요한 사항은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 제가 전할 공과의 주제는 간증, 말씀, 공과 등 세 가지 우리 교회의 주된 발표형식에 대한 것인데 그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간증도 말씀같고, 공과도 말씀같은 것은 문제이지요.  말씀은 회원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간증도 말씀처럼하고 공과도 말씀처럼 하는 교사가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간증은 간증다워야 하고, 공과는 공과다워야 정상이겠지요.

간증은 순수한 간증이 가장 중요한 주체일 것입니다. 말씀에는 말씀도 있지만 간증도 있지요.

공과에는 이 외에도 무엇이 있을까요? 토론, 경전지식, 발표, 질문, 기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간증에는 구도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침례받은지 얼마 되지 않는 회원들도 자발적으로 간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말씀은 침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감독단으로부터 임무지명을 받게 됩니다.

공과는 어떨까요?  공과 교사 부름은 언제 받게 될까요? 공과 교사 부름에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전지식이 필요함. 시간이 필요함. 기술과 방법이 필요. 많은 공과를 지켜보고 어떻게 하는 지 안 뒤에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간증은 가장 쉽고 공과 교사 부름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간증과 말씀 및 공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간증과 말씀은 일방적이지만 공과는 참여, 토론, 발표 질문이 필요합니다. 간증, 말씀 공과를 비유로 생각해 보았는데, 간증을 생방송에 비유하면, 말씀은 영화나 드라마, 공과는 예능 프로그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도 사전 각본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자가 재치있게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갑니다. 공과가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말씀은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그대로 주욱 발표하는데 반해, 간증은 즉석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발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간도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간증은 일반적으로 3분 이내로 하도록 권고받고 있습니다.  말씀은 10-15분 내외, 공과는 최소한 40분 이상 진행됩니다. 공과 교사는 말씀하는 사람이 아닌 일종의 진행자, 조정자이며, 순발력과 재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공과 교사의 임무에 대해 정확히 지적해 주신 경전 구절이 있습니다. 교사의 역할이 이 구절에서 보면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 사회자, 진행자 입니다. “동등한 특권이 무엇일까요?  발표할 수 있는 특권, 질문, 참여의 특권입니다.

간증, 말씀, 공과 중에서 영이 함께하신다면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일까요? 간증이 가장 쉽겠죠,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공과왜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까?

간증은 간증을 할 때 주님의 영이 함께해야 되겠죠.

말씀은 어떻습니까? 연차대회 말씀을 준비하는 사도들은 연차대회 당일에 말씀을 즉석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합니다. 몬슨 회장님이 어느 연차대회에서 말씀하실 때 연차대회 말씀을 준비하느라 밤새도록 타이핑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휴지통에 버리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과는 준비할 때 뿐만 아니라 발표할 때에도 영이 함께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과는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공과는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과 교사를 해 보신 분은 모두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준비한 대로 공과가 진행이 안 되는 이유는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거나 아니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전안내서에 가르치는 자는 영에 의해 지시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저도 여러분에게 임무 지명하고 지적하고 질문하고 하는 모든 행동에도 영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과는 사전각본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원고는 각본이지만 진행은 영에 의해 진행하는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84:85의 주님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1006절에서 하신 말씀도 읽어 봅시다.

4214절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옛날 초역에서는 영을 받지 못하면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영어를 보면 못하면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니하거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간증에 대해서 우흐트도르프 회장님이 사전적 정의를 해 주셨습니다.

롬니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증은 "영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확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젠슨 장로님의 말씀도 읽어 봅시다. 간증에 대하여 선포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간증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간증시간에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간증시간에 경전구절을 인용하면서 회원들에게 권고하거나 회개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간증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는 회원들이 종종 있습니다. 간증은 권고가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간증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험일 뿐이고 마지막에 하는 말이 간증입니다. 앞의 경험을 짧고 간결하게 해야 합니다.  앞부분은 간증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스토리며 서론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결론 부분이 바로 간증입니다.

간증시간이 어떤 형제가 이 자리를 빌어서 제 아내와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간증이 아닙니다. 공개적인 사랑 고백도 간증이 아닙니다.

앞에서 길게 설명한 것이 간증이 아니라 마지막에 알고 있다고 한마디 한 것이 바로 간증인 것입니다.

간증할 때 감사, 사랑, 고백을 하다보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는 것에 대하여 유의할 점이 있다고 헌터 회장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참된 간증이 무엇인지 살펴 봅시다. 익숙하시죠?  우리는 이런 간증을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영어의 “I know” 라는 표현을 우리 말로 간증할 때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잘못 표현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관행적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간증할 때 "I have known"이라고 현재완료형으로 말하는 것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압니다"라고 현재형으로 간증하는 것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애당초 통역이 이 부분을 잘못 통역하였거나 관행적으로 그렇게 굳어진 것 같습니다.

간증이 선포하는 것이라면 우리말도 영어처럼 현재형으로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압니다  또는 아예 이 부분을 찬송가 68장의 내 구주 살아 계시다(I know that my Redeemer lives)처럼 안다는 부분을 빼고 입니다로 번역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는 기도할 때 기도 드립니다라고 해야지 기도 드렸습니다또는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처럼 과거 또는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말씀을 했습니다.

 간증에 대해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선교부 임지에서의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있는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필요한 만큼 발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응당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선교부의 영성을 높이기 위해 연속적인 지역(zone) 대회를 열었습니다. 선교 사업의 방법에 대한 계획 지침보다 간증 모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 대회를 할 때 겸손한 장로 한 명의 간증에서 저는 문제의 답을 찾았습니다. 이 신임 장로가 떨면서 나눈 간결한 간증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채 일 분도 안 되는 동안 서 있었지만 저는 그의 간증으로부터 놓치고 있던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선교사들로부터 들었던 간증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선교사로 나온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 사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훌륭한 동반자와 일합니다. 저는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는 가가호호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고는 선교사는 경험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 다음 그들은 ‘저는 선교사로 나오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나는 복음에 대한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하고 간증을 끝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장로는 뭔가 달랐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오래 서 있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는 간단히, 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재빨리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압니다. 저는 교회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계심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이것이 간증이었습니다. 그것은 경험도 아니었고 감사의 표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선언이었고 증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장로들이 ‘나는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 장로는 단 몇 마디로 직접적이고 기본적인 자신의 간증을 증명하듯이 강력하게 전했습니다.

그 후, 저는 선교부에 뭔가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간증을 가졌음을 시인하면서 이야기를 전하고 감사를 표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을 증명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보이드 케이 패커, Teach Ye Diligently, 개정판(1991년), 323~324쪽)

이 구절에서 주님의 말을 선포하려 힘쓰지 말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내 말을 선포하려 힘쓰지 말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젠슨 장로님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섣부른 간증으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보다는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집중할 때,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간증할 때 경전 구절을 거의 인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공과 시간에는 경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교리와 성약 42: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교리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패커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로 가르치는 것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이해를 돕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쉽다. 신앙이 각각 다르며 받아들이는 정도가 틀리기 때문에 각자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제가 방금 드린 사과나무 이야기는 간증일까요 비유일까요? (비유)

간증시간에 비유를 해 놓고 간증이라고 착각하는 회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은 상관없지만 간증시간에 장황하게 자신의 경험을 늘어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짤막하게 하는 말이 간증입니다.

공과 교재 여러 곳에 반원들의 답변을 제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이런 문구가 있을까요? (제지할 경우 무시당하는 느낌이 있을 수 있음)

개종 초기 신권회 교사경험

오래 전에 제가 선교사들과 공부할 때, 당시 집회소가 선교사 숙소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작은 전도소였고 이제 막 ‘지부’를 조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회원이 되기 전에 저는 선교사들 및 회원들과 함께 새로 얻은 교회 전세 건물에 칸막이를 하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주 작은 지부였습니다.  회원이라고 해야 모두 2~30여명 정도였고 대부분이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아파트 건물에 있었습니다.  1층에는 ‘중국집’이 있었고 예배 모임시간에 고소한 자장면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도 했었습니다.  아파트 일부분이 학원으로 개조되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의 ‘아름다운 회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건물이 아니라 ‘회원’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친절’이 기억납니다.  제가 개종한지 얼마 안되어 복음 지식에 대하여 목말라 할 때, 그들이 저에게 복음 원리를 가르쳤고 이 교회의 제반 관행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항상 그들은 밝은 미소로 저를 대해 주었습니다.  침례 받기 전이나 갓 회원이 된 후나, 그들은 한결같이 저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지부장님은 침례 받은 지 일주일 뒤에 저에게 아론신권을 주셨고, 다시 다음 주에 저를 신권회 교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회원들 앞에 서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제가 성찬식 모임에서 처음으로 회원들 앞에 서서 간증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무슨 간증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제 두 다리가 덜덜 떨렸고 온몸이 떨렸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반원들 앞에 처음 섰던 일이 기억납니다.  무엇인가 가르쳐야 하는데 제가 부족함을 심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주 중에 공과책과 경전을 열심히 읽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공과가 끝나면 회원들이 저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어느 날 당시 스테이크장단이 우리 지부를 방문하셨습니다.  당시 스테이크장님이 지금 칠십인 지역 관리 역원이신 고원용 장로님이셨고, 두 보좌는 나중에 모두 스테이크장으로 봉사하신 구본동 부장님과 김병희 부장님 이었습니다.

당시에 ‘신권’에 대하여 공과를 했었습니다.  제가 그 분들 앞에서 ‘우리 교회에는 신권이 둘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앙과 경륜이 깊은 분들 앞에서 공과를 하는데 매우 떨렸습니다.  모든 공과가 끝난 후 그분들이 저에게 악수를 하면서, 웃으면서 아주 친절하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구 형제!  교회에는 신권이 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분명히 제가 공과를 가르치는 도중에, 제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들의 그러한 친절과 사랑이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위대한 설교’ 보다는 ‘작은 친절과 사랑’인 것 같습니다.(2002년 5월 26일, 구승훈)

"참 사랑"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영어의 charity 입니다.

애쉬튼 장로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우리 자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로마서 나머지 전문을 살펴 봅시다.

2011731, 수원 스테이크 신갈와드 신권회-상호부조회 합반 모임에서, 구승훈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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