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의 책

(1982 ~ 2005)

 

구승훈

 

 

기억의 책을 작성하는 자들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지 작성은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는 방법이며, 후손을 위해 이러한 축복의 재산을 남겨 주는 것입니다. (스펜서 W. 킴볼 대관장, 성도의 벗, 1978 10월호)                          (기억의 책 작성, 11페이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수원 스테이크

 

 

홈페이지: www.DNAtree.co.kr (유전자나무)

e-메일: gm4220@chol.com

 

목차

목차... 2

서문... 6

요약... 7

가)     개종 이야기 (1982년 3월). 10

1. “몰몬경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 10

2. “속죄의 기적”. 10

가)     끊어진 다시 이어’ (계보 사업, 1985년 10월). 11

나)     선교 활동 기록 모음 (1985년 11월 ~ 1988년 1월, 부산 선교부). 12

1. “선교 일지 요약”. 12

2. “가장 영적인 경험”. 15

3. “기억의 작성”. 17

4. “가장 기쁜 날”. 19

5. “귀환 간증”. 21

6. “선교 사업 마지막 날”. 22

다)     말씀 및 간증 기록 모음 (1988년 10월 ~ 2001년 10월). 30

1. “기도”. 30

2. “졸지 마십시오”. 32

3. “막대기를 굳게 잡음”. 33

4. “수원 스테이크 30년사 자료 요청” (서신). 34

5. “우리의 부름과 그리스도의 속죄와의 관계”. 35

6. “간절한 기도”. 38

7. “고통의 가지 이유”. 40

8. “원칙 중심의 지도력”. 43

9. “선교 사업을 향상시킴”. 46

10. “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0). 48

11. “생명의 밧줄을 던짐”. 50

12. “경전을 상고함”. 53

13. “사랑하는 OOO 형제님에게” (서신). 55

14. “달란트를 남김” (마25:21). 57

라)     말씀 및 간증 기록 모음 (2001년 10월 ~ 2005년 6월). 59

1. “스테이크장으로 부름 받던 날” (2001년 10월 27~28일). 59

2. “부름에 임하며”. 63

3. “간절한 마음” (행17:11). 65

4. “감사를 표하는 것은 사랑의 위대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67

5.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하심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강하니라.(고전1:25). 69

6.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은 에라야 증거를 얻겠음이라.(이더12:6). 71

7.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73

8. “신약 성경 읽기 목표” (서신). 76

9. “지혜의 본질”. 77

10. “개인적인 계시의 열쇠”. 80

11.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언 23:7). 83

12. “다단계 판매업 종사자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취해야 할 입장”. 86

13.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 87

14. “먼저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릇 바깥도 깨끗하게 닦으라” (앨60:23). 89

15.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10:4). 91

16. “이러므로 …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눅7:47). 92

17.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왕하20:5). 95

18. “[항상] 죄 사함[이 유지될] 것이라 (모사4:12). 97

19. “그러므로 선을 심으면 선을 보상으로 얻으리라.(성6:33). 100

20. “천사의 성역”. 102

21. “마음 가운데서 간악한 뜻의 뿌리를 뽑고” (앨22:15). 104

22. “두려움을 극복함”. 105

23.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 이로다.(시37:24). 107

24. “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느니라. (막9:23). 109

25.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68:19). 111

26. “부름의 무게”. 113

27. “ 주는 끝까지 의와 진리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DC76:5). 114

28. “신앙의 뿌리”. 117

29. “모든 요긴한 것을 준비하라. (교성88:119). 120

30. 인간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큼을 기억하라. (교성18:10). 123

31. “개인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지녀야 할 일곱 가지 성품”. 127

32. “일곱 가지 질문”. 132

33.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와 감추인 보화까지 찾으리니” (교성89:19). 135

34. “실패와 성공”. 138

35.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인정을 받는 자에게 모든 것이 잘 되리로다.. 141

36.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요20:25). 144

37.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 이루어 지리라고 믿나이다” (앨19:9). 147

38. “복음을 나누는 자가 지녀야 할 세가지 준비”. 150

39. “신앙의 자세”. 153

40.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신23:14). 156

41. “초심으로 돌아가라”. 157

42.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마5:47). 161

43.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 주리라(교성84:88). 166

44.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 (교성64:33). 170

45. “너는 겸손 하라 그리하면 …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 (교성112:10). 173


  
이 책자를 받으시는 분께,

저의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작은 책자를 여러분께 드립니다.

원래 이 책자는 수원 스테이크 성도들에게 지역 대회 준비를 격려코자 준비한 것이지만 약간의 여분이 있어, 그 동안 저를 알고 저에게 많은 충고와 사랑과 격려를 베풀어 주신 지인 여러분께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5 7 7, 수원 스테이크, 구승훈 형제 드림


친애하는 수원 스테이크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기록을 인쇄하게 된 동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근 7 1일자로 우리는 교회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표준 경전 및 각종 역원의 호칭 변경까지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를 기다리던 지난 6월 말경, 제가 지금까지 불러왔고 또 인용해온, 지도자의 호칭과 경전 구절 등이 모두 바뀌기 전에, 나의 과거의 기록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모든 기록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며 인쇄를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저의 기억의 책은 모두 네 권이 될 것입니다.  2권과 이 책 3권은 정리되었지만 4권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2005년 7월 1일 저의 개인적인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1권은 저의 가족과 조상의 역사 기록이 될 예정입니다.  내용의 편집에 약 이틀이 걸렸고 인쇄에 하루가 소요되었습니다.

새로 배부된 몰몬경 합본을 받자마자 이틀간 집중적으로 읽어 보았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깨달은 것은, 이 새로운 개역판 합본 경전은, 예전의 익숙했던 경전을 읽는 방식처럼 속독으로 읽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번역의 문체직역에 익숙해질 때 까지는, 매우 신중한 태도로 한 구절 한 구절 새롭게 다가오는 단어와 문장들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회 전까지 경전의 어느 부분을 다 읽는다든지, 몰몬경을 전체 다 읽겠다든지 하는 무리한 목표를 갖지 말고, 새로운 번역판에서 영감과 감동을 찾겠다는 자세로,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꾸준히, 연필 등을 들고 느낌이 오는 부분에 줄을 그어가면서 읽으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사실 저는 몰몬경을 통해서 개종한 회원으로서, 한인상 장로님께서 번역하신 몰몬경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이 구 번역판 경전도 하나님의 은사와 권세로써 번역된 참된 경전임을 저는 믿습니다.  몰몬경은 우리 교회의 종석이며 복음과 교리의 종석입니다.  새로운 번역판 몰몬경은 영문 단어 하나 하나를 면밀히 분석하여 상당히 신중하게 번역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단어 하나 하나에 바로 이 참된 복음의 원리가 담겨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번역판 경전을 읽으면서 왜 번역이 이런 식으로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기 보다는, 새로운 단어를 통해 어떤 복음 원리와 교리를 떠올려야 하나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 번역 몰몬경과 마찬가지로 이 개역 한글판 몰몬경 합본도 하나님의 은사와 섭리에 따라 번역된 참된 말씀임을 믿습니다.  사소한 오류는 인쇄가 거듭될 때마다 순리대로 고쳐지리라 생각합니다.

결점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몰몬경 합본을 읽는다면, 이 책에서 아무런 유익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경전을 통해 마음에 양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쓸데없는 의혹과 의문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몰몬은 금판 맨 앞장 표제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에 이제, 만일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실수라, 그러한즉, 너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흠 없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것을 정죄하지 말지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정죄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이 기록의 번역을 위해 그 동안 수고하신, 조셉 스미스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경전을 열심히 상고합시다.  새로운 경전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저의 기억의 책몰몬경에 대한 간증으로 시작하여 지역대회 준비를 당부하는 말씀으로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지역 대회를 기다리면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경전을 상고하며, 금식과 성전 방문을 통해, 겸손한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저의 가장 훌륭한 선물은, 바로 이 복음에 대한 간증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저의 간증과 사랑을 담아 여러분께 이 작은 책자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5 7 5, 수원 스테이크 회장, 승훈 형제 드림

 

서문

2005 7 1은 우리 성도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 교회 명칭의 한글 번역 표기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로 바뀌게 되며, ‘몰몬경교리와 성약값진 진주등의 한글판이 새롭게 번역되어 발표됩니다.

한국에서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역사 50여년에 있어서, 이 날은 마치 마라톤에서의 반환점과도 같은 날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저의 과거의 기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 삶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이러한 개인적인 기록도 저에게는 반환점과 같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니파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나 니파이는 기록할 바를 기록하였으며, 이를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며, 특히 나의 백성들에게 소중한 것이라 여기는도다. … 또 주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나의 기도를 성별하실 것을 내가 알며, 내가 기록한 바 나약한 것들을, 저들에게 강하게 전하실 것을 내가 앎은,

나의 말이 저들에게 선한 것을 권고함이며, 저들의 조상에 대하여 알게 하며, 예수를 전하여 저들로 예수를 믿게 하며, 끝까지 견디어 영생을 얻도록 권고함이라. (니파이233:3~4)

저 또한 니파이처럼 저의 인생의 기록들을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여 왔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러한 기록과 간증들이 저의 후손 및, 주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선하게 쓰여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기록들 대부분은 새벽에 기록된 것들입니다.  새벽은 미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하루 중 가장 경건한 시간인 새벽시간을 좋아합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저의 거의 대부분의 말씀이 새벽에 기록됩니다.  이 시간은 주님의 영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신 이러한 간증과 경험들을 전함으로써, 제가 어떠한 영예나 존귀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복이 있나니 너희 간증은 하늘에 기록되어 천사들이 볼 것 임이라. 천사들은 너희로 인하여 기뻐하며 너희 죄는 사함 받았도다. (교리와 성약 62 3)

저는 우리의 말과 행실이 모두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간증과 말씀이 하늘에 기록된다는 위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기록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하늘에 기록되었고 그러한 기록들이 마지막 날 심판 때에 저를 심판하는 자료로 쓰여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록하는 이유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일회성으로 끝나기 보다는 잘 기록되고 정리되어 후세에 남겨진다면,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유산 중에 이보다 값진 유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가 없이 어찌 배울 수 있겠습니까?  간증하는 자가 없이 어찌 신앙이 전파되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간증은 하늘에 기록된다는 위 말씀에 따라, 저는 저의 간증과 말씀들을 그 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공개하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전혀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던 한 영혼이, 이렇게 발전하여 간증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것에는, 그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과 섭리가 작용했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특별히 저에게 한량없는 자비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 간증과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는 것이며, 그러한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자신의 삶을 기록할 때 다른 사람의 삶의 기록을 읽는 것보다, 몇 배 강한 영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기록을 하여 우리 말일 성도 2세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2005 6 30, 구승훈 형제

 

요약

책을 읽어감에 따라 나는 내가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많이 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큰 고통을 느꼈다.  몰몬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의 마음을 마치 날카로운 창으로 찌르며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이 여겨졌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몰몬경은 나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주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허가하시는 용서와 화평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책이었다.

(몰몬경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 10페이지)

 

 

영성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우리의 신앙과 성품이 더욱 온전해지고, 우리의 영적인 역량이 뛰어난 수준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성은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되더라도, 우리를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도록 하고, 어떠한 유혹이 닥친다 하더라도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됩니다.  이러한 힘은 평소에 쌓아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중의 하나가 바로 경전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경전을 상고함, 53페이지)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계획에 관한 지식과 그에 대한 간증은, 공부해서 얻기 보다는 순종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얻은 지식은 단순한 지식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계획의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OOO 형제님에게, 55페이지)

 

 

 문제가 있는 곳에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은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돋보이게 됩니다.  약하고 부족할수록 우리의 신앙을 개발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을 행사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작은 짐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하심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강하니라, 69페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 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입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은,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지혜롭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확실히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지혜의 이러한 가장 중요한 속성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을 통하여, 항상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분께서 옆에서 충고와 자문을 해 주신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혜의 본질, 77페이지)

 

 

계시는 왜 그럴까? 하는 의문, 깊은 생각인 명상, 그리고 영적인 감동을 통해 오게 됩니다.  질문이 있는 곳에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문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위급한 경우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계시가 우리에게 임하는 방법은 깊은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깊은 생각이 개인적인 계시를 가져오는 열쇠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계시의 열쇠, 80페이지)

 

 

감정은 노력하면 다스릴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다스리기가 힘이 듭니다.  아마 생각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가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경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일어나는 생각으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모든 선과 악이 시작됩니다.

온전해 지는 첫 걸음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그 무엇인가가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하여 끊임없이 배우는 교훈과 계명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83페이지)

 

 

회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개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완전한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죽을 때 회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순간 이미 주님의 대속에 의해 회개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러한 용서 받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회개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항상 죄 사함이 유지될 것이라, 97페이지)

 

 

주님의 종들의 권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쓰라린 경험을 치른 뒤에, 한가지 작은 교훈을 배우게 된다면, 얼마나 값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 됩니까?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111페이지)

 

 

저는 우리의 부름이 너무 무거워서 지치지 않도록 또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여 방자해 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의 영이 너무 멀리 계시어서 슬퍼하지 않도록, 또는 너무 강하게 함께 하셔서 교만해지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부름의 무게, 113페이지)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스가랴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스가랴7: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주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먼저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원리에, 예언자와 주님의 종들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뿌리, 117페이지)

 

 

사람의생각은 사실,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바뀌는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통제해야, 우리의 행동과 습관을 통제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생각을 우리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떠 오르는 잡념을 떨치고 훌륭한 일에 몰두 할 수 있습니까?  생각도 훈련에 의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릴 수 있고 훈련 시킬 수 있습니다.  올바른 동기와 목표, 소망과 꿈을 지닌다면, 우리의 생각은 항상 그것을 생각하게 되므로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드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힘들고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도, 우리의 소망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짐을 지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망을 키워야 합니다.

(인간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큼을 기억하라, 123페이지)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이 질문도 잘못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은 조금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행동이 함께할 때야 비로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참되게 아는 사람은,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인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되게 사물을 아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 질문, 132페이지)

 

 

경전을 읽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과 시험을 통해 얻는 지식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참된 신앙은 책만 읽고 얻는 죽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경험과 간증에서 비롯되는,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원래 화를 낸다는 것은,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정말 나에게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쉽게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태도를 사람들과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 됩니다.

(신앙의 자세, 153페이지)

 

 

단련되고 연단된 신앙과 성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쉽게 낙담하고 절망하는 신앙이라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사랑이라면, 그러한 편협한 신앙과 사랑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교성45:69)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 시온으로 모여드는 자들이 있으리니, 서로 싸우지 아니하는 유일한 백성이 되리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싸운다 하더라도, 말일성도만큼은 결코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싸운다면, 서로 시기하고 험담한다면, 서로 말을 안하고 눈을 흘긴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온의 백성이 아닙니다.

어떤 노 신사가 친구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마친 후, 그 친구와 함께 그 날 저녁에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 신사의 바지를 보더니 바지에 껌이 붙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정말로 보니 어린애 손바닥만한 껌이 바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 껌을 떼어내면서 이 신사는 어떤 몰지각한 작자가 껌을 함부로 뱉었을까? 하면서 몹시 불쾌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와 함께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사는 하늘을 쳐다 보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습니다. 저토록 높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우주는 저토록 넓은데, 나는 이 땅에서 바지에 붙은 껌 하나 때문에 신경질을 내는구나 (선택, 136페이지, 모아북스, 박창규 지음)

자신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된 사람은, 스스로의 결점까지 사랑할 수 있다.  결점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사람은, 장점을 더욱 놀랍게 키워낼 수 있다. (선택, 53페이지, 모아북스, 박창규지음)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결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결점 까지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해의 왕국의 상속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 중에 인내하며,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하나님과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만약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주님께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님은 이러한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일과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늘이 우리의 사랑과 신앙을 보시고, 우리에게 미소 지으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 및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저의 미흡함에 대하여 여러분들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믿고 지지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해당 회원들과 그 지도자들을 고쳐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고쳐 주시며, 우리 모두에게 평안과 화평을 끼쳐 주시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리가 마음의 화평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성전에 가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분들의 이름을 적어내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렇게 할 때 진정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는, 결코 이 복음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있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161페이지)

 

 

맥스웰 장로님께서는 교회에서의 지도력은  - 지시형 지도력과 참여형 지도력이 섞여 있는 특이한 형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서의 지도력은 이 두 가지 형태의 지도력이 혼합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우리는 신권의 열쇠를 지닌 회장님의 지시를 따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우리는 평의회, 위원회, 회장단 모임 등을 통해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때는 지도자의 권고와 지시에 따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나누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혼돈하게 되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주리라, 166페이지)

 

 

가)    개종 이야기 (1982 3)

1. “몰몬경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

19821월이나 2월쯤 된 어느 겨울날이라 생각된다.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심심해서 책장을 둘러 보았다.  재미있는 책을 고르다가 한쪽 구석에서 금박으로몰몬경이라고 쓰인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꺼내 들고 뒤적이며 잠시 생각하니 몇 개월 전 선교사(이인호 장로와 앨마 Q 해일 장로)들과 만났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고 그때까지도 약속대로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책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표지와 표제지, 앞에 나와 있는 그림과 소개 등을 읽은 후 본문 니파이 일서 1장부터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어떤 재미있는 책을 대하게 되면 끝까지 읽는 습관이 나에게 있었다.  니파이 일서를 읽으며꽤 재미있는 책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계는 자정을 넘었지만 책을 대하는 나의 눈길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되었다.  니파이 2서로 넘어가면서 전서에서 읽은 니파이의 훌륭한 신앙과 태도에 감명을 받은 채 계속 읽어 나갔다.

무엇에 홀린 듯이 책의 내용은 나를 사로 잡았으며 모든 잠이 달아났고 눈과 뇌를 연결하는 나의 신경계통은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니파이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의 양심을 흔들어 놓았고, 그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심한 격정과 눈물, 그리고 충격으로 온몸을 떨어야만 했었다.  죄로 점철된 그때의 나의 생활에 몰몬경은 양심을 일깨워준 회초리와 채찍이 되어 주었다.

읽어 내려가다 이해가 안되면 다시 읽었고 그래도 무슨 뜻인지 모를 때는 계속 그 구절에서 멈추어 생각을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읽으니 니파이 1,2서를 읽는데 무려 열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책상에 앉아 읽다 허리가 아파 이부자리를 펴고 누운 채로 계속 읽었다.  동생은 옆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나는 내가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많이 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큰 고통을 느꼈다.  몰몬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의 마음을 마치 날카로운 창으로 찌르며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이 여겨졌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몰몬경은 나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주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허가하시는 용서와 화평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책이었다.  다음날 아침 창밖에 희끄무레한 빛이 비치는 것을 보아 내가 밤이 새도록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밤새도록 읽었지만 니파이 1,2서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덮고 그때까지 받은 감동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로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이 책이 무슨 책이며 나에게 이 책을 준 선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그들을 찾아가 이 책에 대해 더 알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삼선교 자취방

 

 

2. “속죄의 기적

선교사와 토론을 하며 이러한 말도 들은 것이 기억났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을 때는 교회의 지도자나 장로 앞에 죄를 고백하며 회개해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교회에서 선교사들을 만났고 조용한 곳에 앉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옥상으로 _ 교회는 아파트의 2층이고 옥상은 4층이다 _ 데리고 갔다.  교회와 붙어 있는 학원에서 올려놓은 책상과 의자가 어지러이 널려 있는 한 구석에 돗자리가 있었다.  그것을 옥상 한 가운데 깔고 자리에 앉았다.  화창한 봄 날씨에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나의 마음은 심히 괴로웠고 어둡기만 했다.  도저히 두 사람 모두에게 고백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김기용 장로에게 Green장로(마이클 패트릭 그린 장로)님이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김 장로는 동반자이므로 괜찮다고 하는 것을 간곡히 부탁하여 아래층으로 내려 보내었다.

단 둘이 마주 앉았고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계속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백한다고 해서 나의 죄가 용서될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이렇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용서받지 못하면 나는 정말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어젯밤엔 간절히 기도도 했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 남은 일이다.  용기를 내자! ’  결정을 내렸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을 시작했다.  나의 양심을 괴롭히는 가장 큰 죄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말을 하며 다시 마음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젯밤의 기도 때 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의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는 듯한 후회스러움과 가책과 고통을 겪는 가운데 고백을 마쳤을 때 나는 계속 통곡하고 있었다.  김기용 장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고통은 너무나도 나의 마음을 괴롭혔으며 나의 육신까지도 떨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죽어 없어졌으면, 나의 존재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랬다.  눈물에 젖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이 모두 노란 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고통으로 떠는 나의 손을 붙잡으며 김기용 장로는형제님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했고 그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죄 사함을 비는 그의 간구가 끝난 후, 그가 다시 나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했다.  이번엔 내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죄 사함을 비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쳤고 마음은 몹시 상하였지만 잠시 후 마침내 일어섰다.  눈물 자국을 닦고 아래로 내려왔다.  두 선교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십시오그들과 헤어져 혼자 지부 건물을 나섰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그 순간 일어났다.  1 Km 정도 떨어진 나의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막 길로 접어 들면서 마음이 괜히 즐거워 지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점점 더 강하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엔 미소가 떠 올랐고 마침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머리 속에서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 걸어갔다.

누군가가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는 그러한 나의 광경을 보았다면 분명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온 육신의 손끝 발끝까지 가득 채우는 행복감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불과 조금 전에 통곡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생애에서 죄를 고백할 때 느꼈던 것보다 더 큰 괴로움은 없었으며, 그 후 집으로 돌아가며 느꼈던 것 같은 큰 기쁨과 행복도 없었다.  온 몸이 둥둥 날아갈 것 같았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이 치료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치료되었다.

여기에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  그때 _ 고백 _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내가 과거에 저지른 죄로 인해 전혀 양심의 가책이라든가 후회와 미련을 느껴보지 못했다.  분명 죄를 지은 사실은 기억하는데 전혀 그에 따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적이다.  아들을 믿는 나의 신앙대로 나의 회개가 받아들여졌고 용서를 받은 것이다.

1982 3 22일 월요일, 서울 동 스테이크 삼선지부 (1987 5월경 기록)

 

 

가)    끊어진 실 다시 이어’ (계보 사업, 1985 10)

1985 9월 해군 제대 후, 감독님과 접견을 마쳤고 선교사 부름장을 보냈다.  부름이 오기를 기다리며 서울과 집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보내던 때였다.  그러다가 어느 주일 아침 미아와드 감독실에서 성찬식 준비 기도모임에 참석했다.  그 모임에서 감독님은 참석한 몇몇 형제들에게, 이제 성전이 세워지고 있으니 그것을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다만 한 장이라도 좋으니 완성된 가족 기록서를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이야기 하셨다.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능성구씨 직장공파 세보를 통해, 직계로 17대 정도까지의 가족 기록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아직까지도 4대 프로그램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였다.   군에 있을 때 제대하면 계보사업을 해야지라고 생각 했었는데, 이제 그 기회와 의무가 찾아온 것이다.

동숭동에 계신 이모님과, 마침 서울에 들르신 외 할머니를 통해, 충남 서천군 종천면 종천리 외갓집에 가는 길을 알아놓았다.  친가 쪽은 4대까지 어느 정도 찾았지만, 외가 쪽 증조 부모님들의 성함과 기록을 찾기가 묘연 했었다.  서울 이모님 댁에서 만난 외삼촌을 통해, 외갓집에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족보를 남에게 빌려주어 잃어버렸다는 애석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경주 최씨 시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직계후손만을 기록해 놓은, 약보(한 장의 긴 종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약보를 꼭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느 날을 택해 외갓집에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1985 10 14일 월요일 아침, 10 기차를 타기 위해 서부역으로 가는 버스를 종로5가에서 올라탔다.  그런데 차가 서부역으로 빠지지 않는다.  잘못 탄 것이다.  동교동 부근에서 내려 다시 갈아 탔는데 또 잘못 탔다.  세 번째 탄 버스로 서부역에 가니 이미 기차는 떠나고 말았다.  한 시간 뒤에 있을 열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 외갓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서천역에 도착하여 여러 사람에게 묻고 물어, 버스를 타고 논둑 길을 걸으며 저녁 어스름한 무렵 외갓집에 도착했다.  그 집은 소를 몇 마리 기르고 있었으며, 밤나무가 많이 있는 과수원이었다.  인사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침 계셨던 외할머니와 외숙모님에게 약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한참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장롱 서랍 구석 버선짝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넣어져 있는 것을 꺼내 주셨다.

약보를 펼쳐보니, 시조부터 직계로 후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적힌 이름이 (최선기) 생소했고, 100여 년 전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신 외 할아버지와 어떤 관계가 되는지 전혀 알 길이 막막했다.  중간에 끊어진 기록이었다.  그날 밤을 외가댁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 인사를 나누고, 기록을 잘 챙긴 후 종천면 사무소로 향했다.  외할아버지의 제적등본을 한 통 떼기 위해서였다.

고갯길을 홀로 걸어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한참 만에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새로 건물을 짓는지 임시 가건물에서 직원들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면직원에게 부탁하여 큰 삼촌의 이름으로 호적등본을 떼었고, 외할아버지(최병성)의 제적 등본을 떼었다.  그 제적 등본에 외증조 할아버지(최익한)의 성함이 있기에, 다시 제적 등본을 신청했다.  그 기록에 또 외고조 할아버지(최춘보)가 있었다.

다시 제적등본을 신청하니, 면사무소 직원이 약간 성가신 듯이 이런 것을 떼어서 무엇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나에게 꼭 필요한 기록이라고 간청하여 다시 제적등본을 또 떼었다.  시대는 일제 시대 초로 접어 들었다.  이 최춘보 할아버지의 제적 등본상에 나와 있는 그분의 부친의 이름에 최선기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 약보에서 본 마지막 이름 같았다.  약보를 꺼내어 대조해 보니 틀림없었다.

끊어진 실, 기록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나는 조금 흥분했고 들떠 있었다.  계속하여 조상을 더듬어 찾아 가는 것은 즐거운 모험이다.  면사무소를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난 길을 걸으며, 왜 그리 마음이 즐거운지!  뛸 듯이 기뻤다.  온 세상이 나의 기쁨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고, 새들의 노래 소리가 감미로운 음악으로 울려왔다.

계보사업에 이러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침례 받기 전에 느꼈던 기쁨 못지않은 큰 기쁨이었다.  돌아가신 조상을 탐구하며 기록을 찾는 자에게는 특별한 영의 인도가 있고, 보상으로 큰 기쁨이 찾아오게 된다.  내가 그 기록을 찾았을 때 하늘에 계신 모든 조상들이 기뻐했을 것이다.  계보 사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중대한 사업이다.  이 일에 충실한 자에게는 하늘에서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1985 10 14~15, 서울 동 스테이크 미아와드 (1987년 여름 기록)

 

 

 

나)    선교 활동 기록 모음 (1985 11 ~ 1988 1, 부산 선교부)

1. “선교 일지 요약

 

소망

제가 이 선교사업을 하게 된 동기는 오직 한 가지 입니다. 추운 겨울에 언 손을 비비며 고생하며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과, 저에게 사랑을 보여준 회원들과, 그리고 이 교회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무엇인가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저는 선교사업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품이 조금 부족한데 이 선교사업을 통하여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1985 11)

 

동반자

오 주여!  얼마나 인내해야 하며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옵나이까?  어찌해야 제가 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겠나이까?  너희는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한 후에 와서 기도하라 (1986 3)

네가 동반자를 사랑하며 그를 위하며 그를 그대의 임시 동반자가 아닌 영원한 동반자라고 생각하며 존경하며 사랑을 전할 때, 내가 너의 가르침과 함께 하겠으며 오늘밤 있을 토론과 함께 하리라.” (1986 11)

제가 만났던 모든 동반자들은 각각 저에게 한 가지 이상의 제가 원하는 훌륭한 성품을 지니고 저의 옆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에게 변화해야겠다는 소망을 갖게 해 준 이들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소망은 마음과 영혼의 온전한 거듭남입니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외침은 허망하며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화하고자 노력하나 실패할 때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1987 1)

장로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어색하게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1987 8)

선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때는 1). 구도자가 없을 때, 2). 편지가 오지 않을 때, 3). 춥고, 4). 배고프며, 5). 몸이 아프고, 6). 동반자 사이가 좋지 않을 때뿐인 것 같다. (1987 12)

주님의 종들인 우리들에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평안한 순간은 우리가 행한 일들을 주께서 받아들이시고 인가하셨다는 성령의 확인을 느끼는 때 일 것입니다. … 훌륭한 장로들과 봉사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저는 2년 동안 항상 훌륭한 장로들과 생활했지만 그 동안은 그들의 훌륭함을 볼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변화되어 다른 사람들의 영성과 신앙으로부터 배우고 있으며 그러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저의 선교사업이 저에게 가져다 준 선물의 하나입니다. (1987 12)

 

기도

제가 왜 더 이상 증진할 수 없습니까?  그것은 네가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제가 추구한 세상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너의 주변에서 보이는 부족한 것을 고치지 않고 개선하지 않고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방관하고 있는 것, 의복, 기타 물건에 대한 욕망, 명예욕 등이니라.

그럼 제가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까?  먼저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하여 그것을 고치라. 개선하라. 탐심 모든 탐욕을 버리라.  그대의 생각을 순수하고 깨끗한 예지로 가득 채우라.  그러면 주님의 영이 늘 그 그대와 함께 강하게 증거하시리라. 

제가 어떻게 사랑을 지닐 수 있습니까?  웃어라.  친절과 깨끗한 태도와 봉사를 그대의 몸에 배이도록 노력하라.  그대의 혀를 제어하라.  세 번 생각 하고 말하라.  그리하면 그대가 가르칠 때 그대의 모든 말에 일일이 증거해 주실 것이요, 그대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리라.  그것이 곧 사랑이니라. (1986 12)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겸손케 하고 주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명상하며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1987 1)

여러분의 자세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 따라, 여러분이 오를 수 있는 고도가 결정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의 능력과, 태도와, 영성과 신앙에 따라 여러분은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스펜서 W 킴볼)

 

몰몬경

몰몬경을 읽기 전에 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 본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저는 제가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많이 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몰몬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저의 마음을 마치 날카로운 창으로 찌르며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몰몬경은 저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주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허가하시는 용서와 화평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저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저와 온 인류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구세주요 구속주 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매우 사랑합니다.  여러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모로나이서 10 4절의 말씀대로 이 책을 읽고 기도할 때 성신을 통해 이 책의 진실됨을 스스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1986 12)

 

전쟁

선교사업은 마치 전쟁과 같습니다. 그 어느 누구와도 육체적으로 치고 받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마치 조금 전에 시합을 마친 레슬링 선수 마냥 피곤하기만 합니다. 정신적으로 겪는 고통은 저의 생의 그 어느 시기와도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그러한 고통 중에서도 간간이 맛보는 영혼의 평화와 기쁨은 무어라고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1986 7)

 선교사업을 하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지금 나는 자신의 속을 온전히 들여다보며 부족함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라는 존재의 속성과 성품이 지나간 1년여 기간의 선교사업을 통해 환히 드러내어진 것이다. (1987 1)

만약 네가 세상적인 것과 주님을 섬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택하겠느냐?  네 자신의 마음의 평안과 주님의 뜻대로 하여 다른 이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 그대가 맡은바 직분에 충실 할진대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의 그대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그대의 쳐진 팔을 높이 치켜 세워 주실 것이며 그대를 축복하시리라. (1987 4)

성장하게 되는 뜻 깊은 기회는 가장 어렵고 힘든 때에도 발견하게 됩니다. 성공을 위한 도약의 기회는 가장 어려울 때 찾을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나 주 하나님은 그대를 불러 더 훌륭한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느니라. 너는 너의 손을 정결히 씻고 내가 너를 불러 시킬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1987 5)

온유함이란 무엇이든지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을 선택함으로써 얻어지게 되는 겸손함, 조용한 용기, 결단력이 아닐까? (1987 7)

 

기쁨

저는 진정 이 복음 속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나로써, 하나의 존재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이 땅 위에 서서 호흡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 교회의 복음을 통해서 저는 가슴속으로 뜨겁게 느꼈습니다. (1987 10, 전덕민 형제)

성령에 감동되어 뜨겁게 전하는 우리의 모든 간증은 하늘에 기록되며 천사의 언어처럼 정화되어 우리 마음속에 전해진다는 사실을 느낀다. (1988 1)

 

결론

선교사업은 즐거운 영적인 모험이다.  신앙을 시험하는 장소이며 주께서 다시 부르실 때를 대비해서 자신을 준비하는 장소이다.  영육의 속죄를 위해서 하늘에 구원을 쌓아둘 수 있는 길이다.  주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는 기간이다.  그 선물은 사람들을 가르쳐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이다.  신권의 권능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사랑을 배우는 도장이다.  지식을 쌓는 학교이다.  세상의 악의 색조를 보고 느끼는 시간이다.  힘든 노동이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 시험기간이다.  해의 왕국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자기 자신을 깎고 다듬을 수 있는 기회이다.  간증과 신앙을 쌓는 시기이다.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배우는 기회이다.  자신의 능력을 잴 수 있는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기적을 볼 수 있는 기간이다.  하늘의 문이 열리기도 한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다.

(1985년 11월 17일 ~ 1988년 1월 24일 선교사 일지에서 발췌)

 

2. “가장 영적인 경험

1986 10 14, 15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을 때, 그리고 그 간증대로 행하려 노력할 때, 우리의 신앙이 발전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산 와드에서 마산 Zone(마산, 창원, 진해, 진주, 충무) Zone Meeting을 가졌다.  Zone Meeting이란, 지역내의 선교사들이 매월 한 번씩 모여 목표를 세우고 간증을 나누는 모임이다.  간증 시간에 진주 와드에서 봉사하는 이강옥 자매로부터 간증을 들었다. 

그녀는 선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전시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함께 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곧바로 자신이 주님의 종인 선교사로서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 주님께 부끄러웠으며, 회개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했을 때, 영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곧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얼굴이 부싯돌같이 단단해지고 마음이 강해져서,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간증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눈물과 함께 이야기했다.

모임이 끝난 후에 동반자인 Rust 장로님과 함께 우리의 봉사지역인 충무로 돌아와, 저녁 7시경부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가로등 빛이 밝은 한일은행 앞에서 전시판을 펼쳐놓고 길 전도를 가졌다.  전도를 하면서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거의 영을 느낄 수가 없었고, 또 사람들이 모두 바쁘다고 뿌리치는 가운데 여간 해서 잘 모이지도 않았다.  그 때 마침 이강옥 자매의 간증이 생각났고, 나도 한번 기도로 사람들을 모이게 해 보자는 생각과 함께 주님의 도움을 구했다.  사람을 기다릴 때는 주님과 계속 대화를 했고, 주님께 나의 결심과 맺은 약속을 말씀 드렸다.

그 후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만난 어떤 두 자매에게 몰몬경과 교회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옆에서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어떤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대화에 끼어 들었다.  교련복 차림에 베레모를 쓴 그는 머리를 빡빡 깎았고, 자신이 현재 대학 불교 청년회에 속해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한때는 자신도 열심히 교회에 다녔었고 전도 활동도 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경 말씀이 다 거짓임을 깨닫고 불교를 믿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처음에 그는 관심을 가진 듯이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답을 주면 그는 계속해서 답변하기 애매한 질문을 하여 나를 당황케 하려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계속 논쟁으로 이끌려 하였고, 반박하는 말을 하며 구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강조하려 하였다.  또한 더 나아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가르침과 이 복음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심지어 하나님과 우리를 저주하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그의 저주와 조롱은 참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저주하는 말을 들을 때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마음속 깊이 분노를 느꼈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엄숙한 말로 그의 불손한 의도에 대해 지적하고, 다른 사람의 종교와 그들이 믿는 대상에 대하여 존중해야 함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하였고 선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나의 목적에 대해 담대하게 간증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는 나의 이 말을 듣자, 몹시 화를 내며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여러분, 이 종교는 이단 종교입니다.  이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이들은 사기꾼이며 이들이 가르치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라고 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선교사들을 저주하고 욕하고 조롱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이러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마치 싸움 구경이 일어난 것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시판과 그와 내가 나누는 대화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가 떠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이때 나는 길 거리에 모인 그 사람들에게 내가 선교사업을 하는 이유와, 교회에 다니는 이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이유에 대하여 간증했다.  그리고 회개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간증하였고, 영이 강하게 임재 하심을 느꼈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엄숙한 간증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나의 간증이 끝난 후 잠시 더 복음을 소개할 때, 특별히 신앙을 시험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앨마의 씨앗의 비유를 이야기 해 주었다.  비유로 이야기 하면서 서로 간에 이해하는 느낌이 강해지고 대화가 참으로 부드러워짐을 알 수 있었다.

밤 늦게 전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서, 깊이 명상하는 가운데 온 영혼이 떨리는 기도를 했다.  주여 당신의 뜻을 저에게 보여 주소서.  제가 당신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이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는 많은 눈물이 흐른다.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처럼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게 하려면, 우리 선교사들이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누운 채로 명상하는데 시간관리에 대해서 마음속에서 계속 깨끗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복음전도 방법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시간 사용에 대해서, 2시간 혹은 그 이상을 깊이 명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가호호, 길 전도, 회원소개, 가르치는 방법, 선교사들의 하루 일과와 효과적인 복음전도의 방법 및, 시간 사용에 대한 생각이 계속 파도와 같이 밀려들었다.  내 마음이 모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계속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어젯밤의 생각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 모든 영적인 생각과 경험들을 기록하고, 앞으로 나의 주변을 잘 정리하며 활기찬 선교사업을 해 나가기 위해 금식을 시작했다.

잠시 후에 마산 Zone Leader이현주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산과 마산Zone의 선교사들이 함께하는 대회가 10 30일로 하루 늦추어 졌고, 그날 한국인 선교사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이 별도로, 각자 선임과 후임을 훈련하는 Workshop이 있을 예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 선임들의 Workshop 40분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맡은 Workshop의 주제가 복음전도와 효과적인 시간관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나 놀랐다.  수화기를 든 나의 손이 떨렸다.  이 장로에게 누가 나에게 Workshop을 지명했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동안 온 몸이 떨렸다.  오전 내내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거른 채 책상에 앉아 경전을 공부하고 있는데 나를 찾는 또 다른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어떤 형제인데 다짜고짜 나에게, 제가 지금 몰몬경 니파이 이서 몇 장 몇 절을 읽고 있는데, 잘 이해가 안가서 그러니 설명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그가 지적한 니파이의 말씀을 찾아보니, 니파이가 말일에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는 경고의 말씀이었다.  그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자신을 밝히며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제가 어제 선교사님께 실례를 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어제는 제가 좀 심한 말을 했고 그것에 대해 뉘우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께 사과 드립니다.  지금 몰몬경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한 때 부정했던 하나님의 존재와 교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좀더 읽어 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연락처와 이름을 달라고 하자 그는 자신이 연락을 하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고 우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젯밤에 우리 선교사들을 저주하며 조롱하고 떠났던 자인데 언제 몰몬경을 구해 읽었단 말인가.   동반자에게 혹시 어제 우리를 욕하던 그 형제에게 몰몬경을 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동반자 말이 주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아니 우리가 계속 함께 있을 때 그는 우리를 욕하고 그냥 떠나지 않았느냐, 나는 그가 몰몬경을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동반자인 Rust 장로님은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이 길에 모인 사람들에게 간증을 할 때, 그가 다시 돌아와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그 몰몬경 한 권을 얻을 수 없겠느냐고 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마 그는 그 날 밤이 새도록 동반자로부터 받은 몰몬경을 읽은 모양이다.  니파이2서까지 읽고 니파이의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해석이 안 되는 구절에서 다음날 아침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몰몬경이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그처럼 강퍅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고, 과거 나의 개종 동기를 생각하며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이 교회에 개종하게 된 동기가 선교사로부터 받은 몰몬경 한 권 때문이 아닌가?  어느날 저녁 몰몬경을 심심풀이 삼아 읽었던 것이,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게 되었고 결국 개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기이함을 생각하며 온 몸과 마음이 떨렸다.

책상에 앉아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과 방금 일어난 일들을 계속 생각하며 기록했다.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주님께서는 나에게 미리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심으로써 표적을 주셨다.  또한 몰몬경에 담겨 있는 기록이 참으로 위대한 권세를 지니고 있음을 나에게 증거 해 주셨다.

1986 10 15일 수요일, 충무에서, 구승훈 장로

 

나의 간증을 읽을 모든 사람에게 전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갈 때, 애통하는 마음과 상한 심령으로 그분께 제물(기도)을 바치고, 모든 사람에게 대하는 우리의 말과 태도를 겸손히 하며, 우리 자신의 영예가 아닌 하나님께로 모든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기 위해 노력할 때, 여러 하늘은 우리 앞으로 나아올 것이며, 주님의 영이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이고, 우리가 받은 신권의 권위와 능력, 권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님은 그들이 필요한 사항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알려주시며 가르쳐 주십니다.  저는 '계시의 영'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누가 나에게 Workshop을 지명했는지 알기 위해, 마침 본부로 전화할 때 A.P. 이광열 장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Harper 선교부장님께서 지명하셨다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신권을 소유한 훌륭한 지도자에게 어떠한 영이 함께 하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경험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속주 이십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권능인 신권을 소유한 유일하고 참된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살아계신 예언자께서 오늘날 우리를 계시로써 올바르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한 초대 예언자이신 요셉 스미스와 그 분께서 번역하신 몰몬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아멘.

1987 5월경, 부산 선교부 광안와드 선교사, 구승훈 장로

 

3. “기억의 책 작성

1987 5 4

준비일인 이 날 교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농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온 몸이 기진 맥진 했다.  스스로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불렀다.  육신은 피곤한 데다가 영혼마저 고통 때문에 정신이 없어, 자리에 누운 채로 주님께 기도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슬픈 마음을 아뢰었고,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셨던 놀라운 사랑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침례 받기 전 회개할 때, 마음속에 일어났던 변화를 아뢸 때는 너무나 마음이 뜨거워져 눈물을 많이 흘렸다.  나의 연약한 육신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영혼에게 도전하는, 이 육신을 이길 수 있는 길이 _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길이 _ 무엇인지 보여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는 중 갑자기 뜨거운 영이 물러가고 마음이 담담해 지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일들을 기록하는 것 _ 기억의 책을 작성하는 것 _ 이 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이것이 현재 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속에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잠시 기도를 중단하고, 깊이 생각한 후에 다시 기도하라. 깊이 생각하라. 지시에 순종하여 기억의 책을 작성하는 것에 대해 깊이, 아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기억의 책을 작성하는 것과 나의 현재의 죄와 연약함을 극복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명상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째.  기억의 책을 기록하면 주께서 나에게 베푸신 일을 기억할 수 있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것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록을 읽을 때 주님의 영을 느끼게 되고, 그 영의 권세에 의해 성령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오래 참음과 절제를, 사랑과 즐거움과 화평을, 자비와 양선을, 충성과 온유를 나의 것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 기록이 온전히 작성되어 남겨질 때, 주께서 나에게 허락하실 자녀들과 권속, 교회에서 봉사하며 알게 될 사람들이, 이 기록을 통하여 영을 느끼고 간증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의 자녀들이 훌륭한 신앙과 능력을 지닌 자가 되어 말세에 환란의 날에, 많은 주님의 자녀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주께로 인도하는 자가 되는데, 기억의 책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셋째.  기억의 책을 기록하여 이러한 신앙의 힘과 영의 권세를 느끼게 될 때, 현재 관리선교사로써 봉사하고 있는 나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종으로써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봉사하지 못하는 것이 큰 죄가 되고 있을 때, 기록작성을 통하여 힘을 얻고 충실히 봉사한다면, 즉 동료 선교사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훈련하고, 가르치며, 동기를 부여한다면, 내가 관리하도록 위임 받은 이 존(Zone)에서 개종자 침례가 증가하여, 주님께서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하며 기록을 하는 것이 타당하며, 많은 유익을 주므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마음속에 고요하고 평온한 가운데 작은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은 나에게 내가 왜 이 세상에 오게 되었고, 주님의 큰 자비와 사랑으로 다시 신앙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지, 전세에서 내가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지,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행했었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축복문 가운데 그대는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쉽게 이해하는 지혜를 얻으리라 라는 축복을 받았다.  그것에는 알게 된 그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사탄이 나를 밀 까부르듯이 유혹하려 하는지도 알았다.  나에게 이야기 하신 그 분께서, 나에게 한 말을 모두 기록하지 말라고 금하셨으므로 다 기록하지는 않는다.  1986년 11월 23일 충무에서 한 밤중에 받은 영의 은사와 같은 경험을 하였다.  다시 내가 받은 지시는, 이제 그대가 깊이 생각하여 결정한 그것을 아버지께 아뢰고, 영의 확인을 받으라였다.  지시에 순종하여 주님께 기도로써 기억의 책을 기록하는 문제에 대해 간구했고, 일어나 이 놀라운 일들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개인적인 계시를 받은 후로 꾸준히 기억의 책을 위한 기록을 작성했다.  그러는 가운데 나의 부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고, 영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그 기록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을 모두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생활이 활력을 띄어 가며, 주님의 영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기억의 책을 작성하는 자들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지 작성은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는 방법이며, 후손을 위해 이러한 축복의 재산을 남겨 주는 것입니다. (스펜서 W. 킴볼 대관장, 성도의 벗, 1978 10월호)

주님이시여!  저에게 알려주신 이 놀라운 방법을 제가 깊이 기억하며 잊지 않고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육신이 건강하여 일찍 일어나도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건강을 위해 저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방법 _ 위생, 식사습관, 운동 등 _ 에 순종하겠나이다.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않겠나이다.

합당치 못한 저를 대하심에 이처럼 선하시며 자비로우신, 당신의 이름을 영원토록 찬양하겠나이다.  항상 회개하며 기도하여 승리자가 되겠나이다!  육신의 권세에 저주가 임함을 피부로 느꼈고, 죄를 지을 때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다시는 그러한 것들을 좇지 않겠나이다.

담대한 신앙과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불변하는 간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 참된 복음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나아가겠나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흠 없고 깨끗한 자로서, 당신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

1987 5 4, 부산시 남구 대연동 선교사 숙소에서, 구승훈 장로

 

 

4. “가장 기쁜 날

선교사 일지 1987년 10월 6일 (화) 맑음, 부산 선교부

일어나면서부터 찬송가 249 "평화의 길에서 멀리 떠난 너희"가 마음에서 울린다.  Peterson (피터슨) 부장님은 말씀하기를 좋아하시고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미소와 함께 편안함을 주신다.  그분의 그러한 성품을 닮고 싶다.  성도의 벗 10월 호를 읽으니 파우스트 사도님의 생애가 실려있었다. 

그분은 "내가 만약 다시 감독이 된다면 보고서와 서류정리와 모임에 대하여서는 신경을 덜 쓰고 과거보다 더 사람들의 생활에 관여하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일지를 쓰는데 방금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래역으로 배를 세 박스나 부치셨단다.  집안에 모두 잘 계시고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음이 편안하다.

사사기 6_7장을 읽으며 감명을 받는다.  요즘은 구약에서 영감어린 말씀들을 많이 발견한다.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전덕민 형제, 포항에 있을 때 세 번째로 침례를 주었고 나로서는 첫 번째 침례의식을 집행했던 형제였다.  지금 한양대 공대 3학년에 재학중이다.  반월지부에 나가면서 OOO 형제로부터 나의 주소를 받았고 바로 그날 밤 편지를 쓴 것이다.  받은 후부터 전도하러 6 나갈 때까지 네 번이나 거듭 읽었다.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말을 읽을 때 아니 편지 전체를 읽으면서 계속 감동을 받았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옛 일기장을 펼쳐 그 형제를 만날 때 상황을 읽으며 그때의 고통과 시련을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이 큰 기쁨으로 모두 보상해 주셨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벅찬 하루이다.  저녁에김해에 가니 김 장로가 집으로 돌아온다.  나에게 질문하는 그에게 "가가호호를 하겠다"라고 대답했고 그가 나에게 "오늘 저녁에?"라고 반문하기에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저녁에 가가호호는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예전에는 그러했다.

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려는 주님의 뜻인지 몇 집 두드리다가 대입 준비를 하는 만학도(晩學徒) 정수철 형제와 이재민 형제를 만났다.  가가호호를 재미있게 했고 몰몬경을 전하고 나왔다.  돌아오며 즐거웠다. 오늘은 나의 선교사업 사상 가장 기쁜 날이다.  침례 준 전덕민 형제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김해에서 가가호호 하며 좋은 구도자를 찾았고 돌아오니 아버님으로부터 집안 모두 평안하다는 전화를 받았으니 이것보다 더 마음 편안한 날이 어디에 있을까?  전덕민 형제의 편지를 여기에 붙인다.  그의 글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쁨은 며칠 전에 기도하며 "나의 성약과 헌신에 대한 증거로서 이종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간구의 응답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 드립니다.  연약한 종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구승훈 장로님께.

장로님 안녕하세요?

편지의 서문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거의 2년 전에 장로님으로부터 복음을 배우고, 또한 침례를 받아 말일성도가 된 전덕민 형제입니다.  그간 장로님을 줄곧 생각은 해왔지만, 저의 바쁜 상황과 장로님의 정확한 주소를 몰라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장로님께서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시기를 진정 바랍니다.  사실 장로님께서 이다음에 저를 만나셔서 그간 무관심했던 나의 불찰을 꾸짖으신다 하더라도 그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정말 저의 진실되고 참된 마음으로 장로님에게 그간 무관심에 대한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간청할 뿐입니다. 

제가 침례를 받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 올라와서 반월지부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는 글씨가 창문에 붙어 있는 전세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간 지 2주가 되자마자 지부장님은 저에게 세미나리 교사라는 부름을 주셨습니다. 

처음엔내가 과연 잘 해 나갈 수 있을까하는 불안스럽고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장로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장로님도 침례를 받고 곧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으셨으며, 그 부름은 교회에 나간 시기가 오래된 자라야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성실의 미덕을 갖춘 자라면 능히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잘 행해나갈 수 있다고 저에게 말씀해주셨지요”_을 상고하고어떤 어려움에 처한다 하더라도 굳게 해 나가리라고 마음먹고 임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지금은 거의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진정 이 복음 속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나로써, 하나의 존재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이 땅 위에 서서 호흡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 교회와 복음을 통해서 저는 가슴속으로 뜨겁게 느꼈습니다.  정말로 장로님을 만나게 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진정 제가 교회에 속해 생활해온 그 기간 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러한 변화는 평범한 한 소년을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한 세계에로의 시야를 띄어주었습니다.  그 세계는 온통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환희의 세계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또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하며,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구승훈 장로님!  장로님으로 인해 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께서, 그리고 여러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저에게, 저를 위해 보여주신 사랑을 비롯한 그 모든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저의 보다 나은 단계로의 발전을 위해서, 저는 장로님처럼 선교사업을 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저의 뜻을 잘 헤아려 주셨고, 이제는 예비선교사로써 선교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장로님!  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찬 기쁨과 환희를 지금 느끼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단지 행복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더라" 하는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가 어떻게 장로님의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사실은 104일 날 서울 노량진 와드에 축복사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러 갔다가 OOO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그 형제님으로부터 구승훈 장로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장로님의 주소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저는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그때의 제 기분은 마치 이러하였습니다.  (몰몬경 앨마서 27 16) 암몬이 제이라헤믈라 땅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그와 그의 형제들이 앨마를 만났으니, 바로 그곳이 앞에서 말한 바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라, 보라 기쁨에 넘친 대면이었느니라.  (17) 암몬의 기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큼 커서 넘치는지라, 하나님께로 향한 그 기쁨으로 인해 힘이 다하여 또 다시 땅에 쓰러졌으니, (18) 이것이 참으로 큰 기쁨이 아니겠느냐?  보라 이것이 바로 진실로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행복을 구하는 자 외의, 그 누구도 얻지 못할 기쁨이니라”.  장로님 저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기뻤었다는 그 말로서 외에는 저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장로님 저는 여러 선교사님들을 보아와서 선교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 거듭 수고하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장로님과 저희 모든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이 드리는 수고가, 바로 지금 이순간에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다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때엔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했던 축복이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장로님, 부디 귀환 시까지 몸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그대로 선교사업을 해 나가렵니다.  언제나 인내와 참음으로써 모든 일을 대하고, 언제나 천사의 미소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항상 주님의 영으로 가득 차, 온유함과 현명함을 지닌 말일성도의 표본대로 생을 살아나가렵니다. 장로님, 부디 건강에 유의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음에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87 10 4 밤에 전덕민 형제 올림.

P.S 다음에 편지 쓸 때는 엄청나게 길게 쓰겠습니다.

 

(후기) 이로부터 3개월이 지난뒤 나는 귀환했고, 전덕민 형제는 내가 귀환하고 한달 뒤, 선교사 훈련원에 교사로 봉사하기 위해서 갔을 때 선교사가 되어 앉아 있었다.  이 복음은 그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많은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선교사 시절에 카메라가 없어 구도자들의 침례식 사진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 했지만, 주님은 나에게 그러한 물질적인 것 보다 훨씬 중요한 이러한 기록들을 지닐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나는 나의 선교사업과 인생의 기록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뒤 돌아 볼 때 행복을 느낀다. 나의 자녀들과 교회 회원들에게 기록으로도 간증을 남길 수 있기를 원한다. 이러한 기록과 경험, 그리고 만남들을 허락하신 주님께, 그리고 전덕민 형제에게 감사 드린다.

1999 12 4 구승훈 형제

 

 

5. “귀환 간증

선교사업에 대한 말씀

여러분은 영화 가운데 이러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은 불치의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의사는 그의 생명이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했습니다.  이제 그는 남은 자신의 여생에서 자신을 찾고,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항상 있었던 평범한 일들이, 그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이게 됩니다.  그는 항상 소홀히 해 왔던 일들이, 자신의 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했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그는 자신의 남은 삶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한 어떤 일을 시작합니다.  많은 시련과 고통이 뒤따르지만, 결국 그는 그 일을 완수하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저는 이 선교사업이 그러한 시한부 인생과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교사들 사이에 속어로 죽는다고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구 장로님은 언제 죽습니까? 다시 말하면 언제 돌아가냐고 질문 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죽긴 내가 왜 죽습니까?  70년 뒤에 죽을 겁니다 라고 답변 했습니다.

선교사업을 떠날 때 그는 제한된 작은 인생을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돌아갈 때까지(죽을 때까지) 이룰 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 11 18일 죽어야 할 날짜이지만 죽지 않고 다시 재생하여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날을 며칠 앞두고 저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봅니다.  이 제한된 시간동안 내가 이룩한 일은 무엇이고 무엇을 배웠는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저는 복음 전도반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고 또 가르치며, 저의 선교사업 기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시 되새기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반을 통해서 저의 선교사업 기간동안 배운 원리와 예지들이, 마치 퍼즐 게임(그림 짜 맞추기 놀이)처럼 맞추어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선교사업을 마친 뒤에 닥치게 될 시련과 역경에 대비하여, 제가 스스로를 영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완전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님의 일을 행하려 할 때 주님 앞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것이, 다만 애통하는 마음과 상한 심령의 회개밖에 없었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의 작은 준비에 응답해 주시고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선교사업은 즐거운 영적 모험입니다.  신앙을 시험하는 장소이며 주님께서 다시 부르실 때를 대비해서 자신을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우리 영육의 속죄를 위해서 하늘에 구원을 쌓아 둘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는 기간입니다.  그 선물은 사람들을 가르쳐 그리스도께 조금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신권의 권능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을 배우는 도장입니다.  지식을 쌓는 학교입니다.  세상의 악의 색조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입니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 시험기간 입니다.  해의 왕국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기적을 볼 수 있는 기간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의 연속입니다.

선교사가 저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저의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제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인생행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했으며, 하나님의 존재 하심과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교회에 속하여 살아 오면서,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자비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선교사업을 하면서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주님의 도구가 되어 제가 전한 메시지는, 또 다른 형제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이렇게 말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진정 이 복음 속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 제가 교회에 속해 생활해온 그 기간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제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또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하며,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구승훈 장로님, 장로님으로 인해 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전덕민 형제의 편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성신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생을 변화시키며 주님의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형제는 선교사업을 하기로 목표를 세웠다고 그의 편지에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거듭난 자로서 또 다른 사람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속담에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교사업은 사랑을 낳는 주님의 사업입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모든 젊은 형제들은 선교사업을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선교사업은 시한부 인생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어진 시간 안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반성만이 그를 올바른 길로 계속 가도록 붙들어 줄 것입니다.  이제 복음 선교사라는 주님의 사업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 가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문이 열려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인생입니다.  그 인생은 저에게 시한부로 주어졌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시간 안에서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며 온전히 성공하며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시간 안에서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1988 1 10, 충무 지부 성찬식에서, 구승훈 장로

 

 

6. “선교 사업 마지막 날

선교사 일지 1988년 1월17일 부산 선교부

1988 117 () 맑음.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영적인 준비를 마쳤다.  오늘 있을 성찬식 말씀과 15_17반 그리고 복음전도 반을 위해서였다.  교회모임에 가면서 김점자 자매가 선물해 주었던 나의 장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성찬식에서 나의 간증은 결국 선물에 관한 간증이 되었다.  결코 없어지지 않을 성신이 주신 은사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나의 선교사업기간 동안 얻은 신앙과 간증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아야겠다고 말씀했다.  이용석 형제도 작별인사말씀을 했다.  나의 인사말씀을 전하며 별로 영을 느끼지 못했다.  성령으로 주님과 그의 천사들께 간증을 드리지 못할 때는 시간이라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찬식이 끝나고 15_17반이 시작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말하며 앨마가 앰율레크에게 하나님의 낮은 종이라고 말한 것처럼 교만한 나의 입술을 통해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종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하시려는 지 기도했던 기억을 돌이키며 말씀을 시작했다.  영의 권세가 시종 함께 해주셨다.  주님은 개인적인 계시를 성도들에게 주시며 그들을 인도하신다.  그분께서는 능숙한 교사로서 모든 만물을 사용하여 그의 자녀들을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주변의 모든 것에서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개인적인 계시를 인식할 수 있다.

모임이 끝난 후 곧 침례식이 시작되었다.  이용석 형제가 간증말씀을 전해 주었다.  이용석 형제님은 침례식 중에 부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는 2년간의 선교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나는 오늘 2년간의 선교사업을 마치게 된다.  도남동 해수욕장으로 가서 푸르른 파도가 잔잔히 물결치는 모래사장에서 사진을 찍고 침례를 집행했다.  오늘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고 늦게 멀리서 바라본 권인영 자매님이 말해주었다.  나에게는 복음선교사로서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침례식이다.  이경이 자매가 지난주에 접견을 통과하지 못하고 오늘 침례를 받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침례식 때문에 이용석 형제가 떠나는 시간에 시외버스 주차장에는 서동규 형제만이 배웅하러 가게 되었다.  이용석 형제가 하는 말이 침례식 때문에 내가 피 보네.  그렇지만 침례식이 중요하지 내가 중요하나. 비록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축하한다고 전해줘요 하나님께서 이용석 형제님을 축복해 주시리라.

집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고 마쳤으나 마음이 무겁고 어두운 구름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명상에 잠기다가 새롭게 더욱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다.  이 어둠의 권세를 내어 쫓고 주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다는 각오로 기도를 계속했다.  그리고 곧 뜨거움과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오늘 밤에 있을 마지막 가르침인 복음전도 반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 후 책상에 앉아 말씀을 준비했고 교회로 갔다.

형제 자매들이 예전보다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지부장님이 특별히 참석해 주셨고 복음전도반 _간증모임이 시작 되었다.  9과를 영과 함께 잘 가르쳤지만 28과를 _선교사업의 기쁨에 관한 공과_ 가르치며 그리고 간증하며 영의 임재를 그리 강하게 느낄 수 없었다.  영을 통해 간증하지 못할 때는 시간이라도 남기라는 주님의 지시인지 모르겠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간증하며 뜨거운 영을 계속 느끼다가 갑자기 바닷물이 빠져나가듯이 영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는 얼른 말을 중단하고 간증을 마쳐야 했던 것이 기억났다.  회원들에게 간증을 부탁하고 자리에 앉았다.

김미경 자매님과 정미희 자매님의 간증 뒤에 황동주 형제님의 간증이 있었다.  황 형제의 간증을 들으면서부터 영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권의 권세였을까?  그의 뒤로 거의 대부분의 형제 자매들이 앞을 다투어 나와서 간증을 전하였다.  성령에 감동되어 뜨겁게 전하는 우리의 모든 간증은 하늘에 기록되며 천사의 언어처럼 정화되어 우리 마음속에 전해진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들의 간증을 계속 기록했다.  복음전도 반을 위해 동반자와 함께 집을 나서다가 문간에서 종이를 가져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가져간 것이다.  2년 전에 처음선교사업을 나왔을 때 포항에서 성찬식 때 회원들의 말씀과 간증을 기록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구도자들 관리 때문에 어렵다는 것을 안 후로 그 동안 간증을 기록하는 것을 소홀히 해왔었다.  그러나 오늘 마지막으로 회원들의 주옥 같은 간증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간증을 들으며 내 몸과 마음은 심히 떨렸고 그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함께 기쁨이 내 몸 구석 어디에선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특히 나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형제 자매들이 아직도 활동적인 회원으로 남아 나에게 감사와 간증을 표시할 때 몸 둘 바를 몰랐다.

영적인 간증이 계속 되다가 김귀숙 자매님의 간증 때는 눈물과 함께 모든 회원들이 웃음을 짓게 되었다.  간증 때 그러한 웃음과 시끄러움이 나타나는 것은 주님의 영이 시간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 자매님의 간증이 끝나자 Dryden 장로가 나오게 되었다.  나에게 괜찮겠느냐 하며 나오는 그에게 내가 팔을 들어 안되겠다고 했지만 그는 계속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에 대한 감사와 간증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몇 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모든 회원들이 조금 전에 있었던 자매님의 간증에 영향을 받아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9시30분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고 모임시작한지 세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Dryden 장로는 간증을 하지 못했고 죄송하다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일어서서 모인 모든 형제 자매들 _ 20여명_ 에게 감사와 간증을 전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모임을 통해 그 동안의 선교사업기간 동안에 추위에 떨고 흘린 모든 눈물을 보상하고도 남을 기쁨을 나에게 주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수고와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 둘 것은 이 모든 결과는 저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와 이 복음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은 주님입니다.

폐회찬송 231장을 부르고 오늘 침례 받은 이경이 자매님이 폐회기도를 했다.  모임 후 다같이 사진을 찍을 때 Dryden 장로는 동반자와 함께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모두 사진을 여섯 번이나 찍어야 했고 모델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오랫동안 서있어야 했다.  지부모든 회원과 지부장님과 나에게서 침례 받은 형제 자매님과 초등협회에서 유일하게 참석한 박장웅 형제와 청녀 들과 청남 들과 독신들과 그리고 보니 모두 일곱 번을 찍었다.  명함과 사인을 부탁 받았고 모든 형제 자매들의 격려와 감사의 표시 가운데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어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주님께서 나에게 대하시는 그분의 손길이 어찌 이러하신가?  참으로 땅의 티끌만도 못한 나에게 이 복음과 신권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 주셨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선교사업을 떠나기 전에 000 부장님이 카메라에 대해 충고 했지만, 돈도 없었고 그러한 세상적인 것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업 중에 때로는 침례식에서 구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한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영적인 경험들을 기록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겠노라고 주님께 기도 드린 것이 기억난다.

이제 오늘 마지막 모임시간에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영적인 경험들을 풍성히 주셨고 많은 회원들의 격려와 사랑 하에 한자리에 앉아 일곱 번이나 사진을 찍었으니 내 평생에 그러한 일은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인을 몇 장을 해 주었는지....  평생 처음 해보는 사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Dryden 장로 _그는 울적해 있었다_ 를 격려하고 자리에 누워 기도하려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다음과 같은 경전의 말씀이었다.

나 주는 끝까지 의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이다.  주께서 나의 모든 지나간 고통과 시련가운데 흘린 눈물을 씻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그분 앞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분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용기도 힘도 지혜도 부족하여 많은 실수를 범했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기쁘게 받으셨다.  어린아이의 실수를 눈감아 주며 그들의 성공을 기뻐하는 부모님들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비의 팔로 나를 감싸 주셨다.

복음 전도 반에서 느낀 영적인 경험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반원들이 나에게 선물해준 은반지는 지금 내 오른손 약지에 끼워져 있고 이것을 볼 때 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공의하심과 그분의 무한한 지혜를, 그리고 신권의 권세를 영화롭게 하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신권형제로서 주 앞에 어떠한 자세로 나가야 할 것인지를 기억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 합니다.  끝까지 저를 지켜주시고 저의 마음을 화평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을 위한 이곳에서의 저의 봉사가 끝나고 또 다른 곳에서의 봉사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간증을 전함으로써 제가 어떤 영예나 존귀를 바라는 것이 아님을 당신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왜 저에게 이렇게 풍성한 은사가 주어지고 간증과 경험이 주어지는지 저는 알고 있으며 당신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시여 저에게 기회를 주시옵소서 제가 당신의 뜻을 수행 하겠사오며 저의 영육의 속죄를 위해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과 당신의 자녀들의 복지를 위해, 온 마음과 정성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봉사하겠나이다. 이 선교사업을 영원토록 잊지 않겠나이다.  이 종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고 어떠한 시련이나 난관이 닥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저를 가르치시려는 당신의 손길임을 알고 참고 견디겠나이다.

당신께서 저에게 요구하신 대로 신앙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겠으며 저의 쇠막대기를 굳게 잡고 놓치지 않겠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나이다.  당신의 종의 말씀대로 순종 하겠사오며 따르겠나이다. 당신의 전에서 당신께 경배하며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종에게 용기를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옵소서. 오늘 이제 저의 임지인 이곳 충무를 떠나려는 이 시간 이종이 평안하게 떠나게 해 주옵소서.  모든 형제 자매들을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겠나이다.  당신의 크고 넓은 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며 이모든 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_아멘_

1988 1 18 06:28 충무선교사 숙소에서, 구승훈

복음전도반 회원들의 간증

1988 1 17일 일요일 오후 6 30

 

김미경 자매

어려움을 극복하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간증

 

정미희 자매

선교사업에 강한 간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며 기뻤습니다.  간증

 

황동주 형제

이용석 형제에 대해 말함 _ 그는 말이 별로 없는 형제입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말을 더듬었었지만 지금은 많이 고쳐졌습니다.  변충국 형제가 충무 출신으로서 진주와드에서 선교사로 나간 형제인데, 지금은 귀환하여 마산와드의 집행서기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미국의 문제에 관한 프로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몰몬 가정이 나왔는데 프로그램에서의 결론은,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아도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았는데, 제가 이 교회에 다니는 것에 대하여 떳떳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충무지부가 발전하고 있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회 부름으로 스테이크를 돌아다니면서 비교해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앨마가 제이라헤믈라를 떠나 모사이야의 아들 들을 만났을 때 큰 기쁨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직도 복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을 발전시킨 자를 보았을 때 가족을 만난 것 보다 반가웠습니다.  낙오자가 되지 맙시다.  간증을 나누는 것이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간증

 

박충권 형제

그 동안 반장으로 봉사했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금식을 했습니다.  영적인 경험을 했는데아버지의 고통이라는 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 전도반을 통해 확실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식의 죄로 인한 아버지의 걱정과 회개를 선포한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간증을 받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도 이러한 간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것입니다.  희생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확실한 목표가 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간증

 

최민숙 자매

그 동안 이 반에 많이 참석하지 않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간증

 

 

임현선 자매

이제 돌아가는 사람을 좋게 보내야 합니다.  저도 이 분 같은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교회 회원이 되는데 많은 환란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극복했습니다.  진리를 찾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표준 경전을 탐독했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변화를 얻지 못했지만 인생의 첫 발을 디딘 것이 이 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돌아가시더라도 저희들을 기억하십시오.  기억 안 하면 꿈속에서 나타나 장로님을 괴롭힐 것입니다.  모든 회원들이 사랑함을 알아야 됩니다.  성전에 방문하고 싶습니다.  간증

 

김말숙 자매

개인일지 작성의 중요성에 대하여 간증드립니다.  예전에 쓴 개인일지를 돌이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회개하였고 다시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기록을 시작하고 기도할 때 아주 강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성인 회원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학창 시절에 교회에 들어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에 비하면 저는 현재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 합시다.  간증

 

양길숙 자매

얼마 전에 과감하게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방문했고 문산 읍에서 숙식을 했습니다.  그때 시장을 보러 나갔었는데 날씨가 아주 추웠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 두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주 반가웠습니다.  길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잠시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너무 어려서 이 복음을 들은 것이 아쉽습니다.  유래수 장로와 최성현 장로를 보면서 제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지만, 그들을 보면서 선교사업을 나가는 문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영희 자매님 댁에 방문하여 그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장난하는 것에, 화 내지 않고 칭찬을 하는 자매님을 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가정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하여 행복한 간증을, 김 자매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정이 지상의 천국임을 압니다.  전시회 전도그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교사업을 나가기 위해 간증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간증

 

정미향 자매

교회에 속할 수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구도자 시절에 애 많이 먹였다는 말을 구 장로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그분에게이단에 대하여 질문했었습니다.  친구들이 이단이라고 저를 많이 핍박했었습니다.  구 장로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분이 대답하면서 눈물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남자가 왜 울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간증이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이제 회원이 된지 1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첫 번째로 간증을 할 때였습니다.  첫 간증을 하면서당시 구 장로님의 눈물이 간증이었구나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몰몬경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 뜻 없이 읽었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간증을 싹 틔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침례 받을 때 역경이 있었습니다.  침례 접견을 통과하지 못했었습니다.  당시 관리 선교사인 슈워츠 장로님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했었습니다.  자매님은 이 교회가 참됨을 알고 있습니까?”  무조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정말 이 교회가 참됨을 확신합니까?”  그가 강한 어조로 다시 질문을 했을 때,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정말 확신하고 있을까?”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확신하고 있지는 않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접견을 통과하지 못한 후, 접견을 통과한 다른 네 친구와 구 장로님과 함께 많이 울었습니다.  왜 나만이 떨어져야 하는가?”  나중에 슈워츠 장로님으로부터 전화로침례를 받아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저를 교회로 인도해준 임현선 자매님에게 감사합니다.  몰몬경의 참됨에 대하여 간증드립니다.  몰몬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아주 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몰몬경의 이러한 구절들에 담긴 뜻을 생각하십시오.  구 장로님께 감사드립니다.  간증

 

권인영 자매

영어 학원에서의 아르바이트 때문에, 지금까지 복음전도반에 한번도 빠짐없이 지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 복음 전도반에 참석했을 때 마음이 뜨거워 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이러한 기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충무 지부가 참으로 영적인 지부임을 알고 있습니다.   간증

 

최원화 자매

구 장로님이 침례 준 전덕민 형제의 편지를 인용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저도 개종할 때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복음 전도반을 통해 제 마음속의 신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침례 받기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이 교회로 쉽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제가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에서 모임들에 꼬박꼬박 참석함으로써 신앙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회개에 대한 공과 시간이 기억납니다.  그 당시 저는 참석할 형편이 못 되었지만 참석해야 된다는 작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집으로 가고 있었지만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모임을 마치며 찬송을 부를 때 눈에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 내렸습니다.  회개의 참뜻을 깨달았습니다.  간증

 

이일권 형제

이것은 침례 받을 때 사진입니다.  당시 이광렬 장로님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그분은 사랑이 많은 분입니다.  처음에 영어회화 반 때문에 이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길에서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일반 교회에서 목사, 전도사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선교사를 만나며 강한 영과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천사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집인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타려 하는데, 뱃머리에서 구승훈 장로님으로부터침례 허락서를 받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선교사입니다.  제가 변화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선교사입니다.  고향(한산도)에서 침례가 많이 나와서 기쁩니다.  10명 이상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한산지부를 만들 날이 올 것 입니다.

몰몬경을 4번 읽었습니다.  교만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말씀 때 많이 울었습니다.  구 장로님, 이광열 장로님, 최성현 장로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제라도 신앙의 패턴을 잃으면 떨어져 나갈 것을 알기에 두렵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용석 형제님은 무엇인가 허술해 보이는 사람 같지만 완벽한 분입니다.  약하게 보일 때 그의 간증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 장로님!  훌륭한 동반자 만나 끝까지 교회에 남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증

 

박광훈 형제

오늘이 구 장로님이 떠나는 이브 밤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에게 많은 간증을 줍시다.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몸이 매우 떨렸습니다.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간증이 나의 몸 속에 들어와, 그 분들과 일체가 되어 영적인 느낌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벌써 죽었어야 할 몸인 구 장로님을 하나님께서 충무로 보내주셨습니다.  이 분께 많은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복음 전도반 공과책 모든 곳에선교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용석 형제를 보면서 마음이 기울어 지다가 이제는 선교사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복음 토론을 들었습니다.  구승훈 장로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간증

 

박상철 형제

작년에 학교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재건 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어떤 친구와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나에게 질문 했습니다.  이단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 교회의 박사님의 천국 기행기를 읽어 보았느냐?”  그의 그러한 질문을 대하면서 그가 철저히 준비하고 나에게 질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답변에 대한 그의 말은그러한 신앙 잘 구사하면 영생을 얻겠네요!”였습니다.

마음이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기도한 뒤에 저는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주 뒤에 구 장로님이 충무로 왔습니다.  그리고 복음전도반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TV에서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년 9 20일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의 경전을 감추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도 했을 때 어머니께서는네가 고 3이 되더라도 신앙으로 성공하기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고 아버지께서는네가 알아서 하기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책임감에 매우 두려웠습니다.  부모님께 간증을 드렸습니다.

상고의 김 형제님이 마지막 토론을 하는데 함께 참석했었습니다.  침례 받기를 주저하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오늘 침례 받겠다고 약속한 그분들 중에 한 분을 침례 주고 싶습니다.  간증

 

강동철 형제

충무 지부는 85년 겨울 방학 때기이한 업적이라는 책으로 당시 이민재 장로, 서훈 장로, 이언주 장로님 등과 함께 복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복음 전도반에 대하여 채점을 한다면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이 반이 꺼져가는 숯불에하고 숨을 불어넣어 다시 발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선교사를 통해 신권의 영화로움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준비하고 싶습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간증

 

서동규 형제

당시에 저도기이한 업적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구입했고 공부했었습니다.  그때 주제가 앨마서 17 2~3절이었는데, 그 때도 강한 간증과 눈물로 공과를 할 수 있었고, 시간이 많이 걸렸었습니다.  제가 이용석 형제가 침례 받기 전에, 그에게 버스표를 사주면서까지 교회로 데려 왔었습니다.  이용석 형제의 발전 속도를 보게 됩니다.  나이 어린 형제 자매들의 신앙을 보며 느낀 점이 많습니다.  선교사로 출발하기 위해 떠나는 이용석 형제를 버스에서 전송했습니다.  그가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침례식 때문에 내가 피를 보네, 하지만 침례식이 중요하지 내가 중요하나. 축하한다고 전해줘요!”  구 장로님.  항상 주님을 따르며 건강과 사랑과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간증

 

서정섭 형제

간증에 감사드립니다.  잘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너를 축복하리라.”  간증

 

 

김귀숙 자매

복음전도반 출석부를 보았습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꼭 들어주실 것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간증

 

Dryden 장로

모범에 감사드립니다.  (앞서 간증한 김 자매의 간증 때 나타난 영향 웃음 으로 인해, Dryden장로는 간증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그냥 자리에 앉았다.)

 

구승훈 장로

하나님께서 오늘 이모임을 통해, 그 동안의 선교사업 기간 동안에 추위에 떨고 흘린 모든 눈물을 보상하고도 남을 기쁨을, 나에게 주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수고와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 둘 것은 이 모든 결과는 저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와 이 복음,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은 주님입니다.

 

2002 1 26, 구승훈 형제

1985 11 22일 금요일, 선교사 훈련원에서 4일 동안의 모든 교육을 마치고 출발하기 전에, 모든 새로운 선교사들과 함께 당시 한국선교사 훈련원장이었던 이호남 원장님과 간증모임을 가졌습니다.  이호남 원장님이 이제 선교 임지로 떠나려는 4명의 장로와 2명의 자매에게, ‘여러분이 왜 선교사업을 나오게 되었는지 간증해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

어떤 자매님은이 선교사업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그 시간에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부모님이 나가라고 등을 떼밀어서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차례가 되어 저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제가 이 선교사업을 하게 된 동기는 오직 한 가지 입니다. 추운 겨울에 언 손을 비비며 고생하며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과, 저에게 사랑을 보여준 회원들과, 그리고 이 교회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무엇인가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저는 선교사업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품이 조금 부족한데 이 선교사업을 통하여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 간증을 하며 참으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봉사한 지역은 충무인데 이 지역은 선교사업을 한지 약 1년 정도가 되었을 때 봉사했던 지역입니다.  2년이 다 되어 귀환할 때가 되었을 때, 선교부장님께 2개월을 더 봉사하고 싶다고 연장신청을 하면서, 제가 원하는 지역으로 보내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여 다시 가게 된 지역입니다.

그곳으로 다시 가게 된 가장 큰 동기는, 그곳에서 제가 가르쳤던 어린 청소년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고, 마지막 봉사의 시간을 제가 사랑하는 회원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년 전에도 봉사하면서 그 곳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공과를 했었지만, 다시 돌아간 뒤에는복음 전도라는 책을 이용하여 방학 중에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모아 놓고선교사업의 원리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 저의 남은 인생에서 선교사업을 마칠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과 경험을 다시 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 경험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것이며 가장 행복한 경험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귀환 할 때 회원들의 그러한 사랑과 격려를 받으면서, 저는 제가 MTC에서 간증했던 저의 선교사업의 동기인감사, 바로 사랑의 위대한 속성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보답하려는 마음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교사업의 가장 훌륭한 동기가 바로사랑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흘리는 땀과 눈물이, 언젠가는 크나큰 기쁨과 영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날이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선교사업이야말로 참된 신앙과 사랑을 보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회이며 봉사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2 1 26, 구승훈 형제

 

다)    말씀 및 간증 기록 모음 (1988 10 ~ 2001 10)

1. “기도

오늘 제가 준비한 말씀 가운데 많은 부분을, 돌아가신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르스 알 맥콩키 장로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인용했다는 것을 먼저 밝혀 드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기도라는 주제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 교회의 회원이 되기 1년 전에, 저는 학교에서 산악부 생활을 하며 암벽등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꽤 재미있는 스포츠입니다.  바위에 오를 때는 여러가지 안전 장치를 하게 됩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자일(긴 로프)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고, 머리에는 헬멧을 쓰게 됩니다.  이러한 장치들은 등반 도중 실수로 떨어질 때,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후배들이 한번도 올랐던 적이 없는 새로운 코스에는, 대개 선배 한 사람이 제일 먼저 오르게 되고, 그 바로 뒤를 신입생 등반 초년생 들인 우리들이 뒤따르게 됩니다.  선배가 코스를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뒷사람은 그의 자일을 조금씩 늦추어 줍니다.  때때로 코스가 꺾여 있거나 바위를 돌아가는 경우에는, 선배가 그곳을 어떻게 오르는지 볼 수 없을 경우도 있습니다.  선배가 먼저 한 피치를 오르고 나면, 뒤따라 후배들이 한 사람씩 오르게 됩니다.

조금 전 선배가 올라가던 모습과 자세를 기억하면서 코스를 한 뼘씩 두 뼘씩 오르기 시작합니다.  올라가면서 선배와 연결된 자일이 느슨해지거나 늘어지게 되면, 미끄러질 경우 그만큼 떨어져 다치게 되므로, 자일을 팽팽하게 해달라고 위에 있는 선배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때 닻을 올린다는 뜻의 앵커 바싹 이라고 외칩니다.

그렇게 외치면서 올라가다가, 선배가 올라가는 자세를 볼 수 없었던 지점에 이르러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도저히 잡을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에서 몇 번을 시도하다가 계속 미끄러집니다.  그러면 위에 있는 선배에게 물어 봅니다.  ! 어떻게 올라갔어요?  그러면 선배가 가르쳐 줍니다.  왼손은 어디에 올려 놓고 오른 손을 어디를 짚고 왼발을 어떻게 하고 오른 발은 어떻게 하라 등등.  그가 가르쳐 준 대로 자세를 잡아 결국은 선배가 오른 지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코스를 정복하게 되고 결국은 정상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또 다른 코스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생으로 향하여 올라가려는 우리 성도들의 안전에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 가운데에서 보는 사악함과, 유혹의 권세 그리고 우리 자신의 연약함 등은, 영생을 향한 우리의 등반 코스에서 난코스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세에서 하나님 면전에 있었으며 그분을 보며 그분과 대화하였었습니다.  이 세상에 오면서 우리는 그분에 관한 우리의 지식과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지만, 우리는 세상이 창조 되기 전, 하늘의 천사와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아버지의 조언과 지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제가 선배에게 어떻게 올라갔는지 알려달라고 물어본 것처럼, 우리의 하나님과 가질 수 있는 진실되고 솔직한 대화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떨어질 경우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앵커 바싹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우리는 보호 받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 유혹을 이기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축복과 위안과 모든 것에 감사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주는 통신 수단일 뿐만 아니라, 바로 생명선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생활을 할 때, 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계속해서 위로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여길 수 있겠지만, 사실 그러한 상태는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앵커 바싹을 수시로 외쳐 자일을 팽팽하게 해놓지 않다가 떨어질 때 충격이 크듯이, 기도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 자신을 큰 위험에 몰아 넣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합당한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산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선배에게 어떻게 올라갔는지 알려달라고 묻는 대신에, , 여자 친구 있으면 하나 소개해 줘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3)

우리가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구하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잘못 구함입니다.

저들은 각기 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위하여 기도 하였으며, 성신이 저들에게 임하기를 원하였더라.(니삼19:9)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는 성신의 은사이며, 영원한 것 중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는 영생의 은사입니다.(브르스 알 맥콩키 장로)

 

그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경전과 계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때와 장소를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니이32:9)  이 말씀은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매일 기도하며, 항상 마음에 기도의 영이 충만하게 하여,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언제나 영원하신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몰몬경이나 성경에는 예수께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시어 친히 땅에 엎드리시어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조용한 장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진실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기도는 그 말의 훌륭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따르는 느낌에 있습니다.  선교사 시절 한국말이 서투른 동반자와 함께 숙소를 나가면서 기도할 때, 우리가 합당하지 않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잘못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올바른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아멘 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몰몬은 이러한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께 간구하라(모로7:48)  참 마음으로 구하여 간구하지 아니할 진대, 사람에게도 또한 간악한 자라 헤아려질 것이라.  참으로 저에게 유익함이 없으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를 영접하지 아니하심이라.(모로7:9)  건성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아무렇게나 드리는 기도는,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이전 감독님께서 성찬식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것이 기억납니다.  간절한 기도에는 눈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때때로 저의 의도를 이야기 하지 않거나 저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주님 앞에 개인적으로 무릎을 꿇었을 때는, 저의 마음 가운데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그분 앞에 고백합니다.  벌거벗은 저의 영혼을 그분께 보여 드리며 위안을 구할 때, 눈물이 치솟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라 저들이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기도하는데, 이미 간구할 바를 알며 소망으로 가득하였던지라 중언 부언하지 않더라.(니삼19:24)

등반할 때 위에 있는 선배에게 앵커 바싹이라고 외칠 때마다 우리의 위치가 확고해지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신앙을 굳게 하게 됩니다.

제가 해군에서 복무할 때 태풍이 몰아치면 큰 배들은 항구에 묶어두지 않고, 오히려 바다 한 가운데로 몰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 한 복판에서 닻을 두 개를 던져서 배를 고정시키는데 이것이 오히려 태풍에서 배를 보호하는 조치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을 진대 더욱 아름다운 처소, 곧 하나님의 우편에 거하리라는 소망을 가지리라 하였으며, 이 소망이야 말로 신앙에서 비롯하여 인간의 영육에 닻이 되어, 저들로 분명케 하고 확고하게 하며 늘 선행을 행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 하였더라.(이더12:4)

소망이 우리의 영육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닻이라면, 저는 나머지 하나의 닻은 기도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굳게 해주며 우리의 소망도 확실하게 되도록 도와줍니다.  기도는 인생의 온갖 시련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닻이 되어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은 계명입니다.  기도는 지식에서 비롯되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자라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말입니다.  기도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화평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문을 열어줍니다.

기도는 우리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원리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말씀 드리고 그의 음성을 듣는 것이 생활화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기도와 기도의 결과로 생기는 모든 , 의로움, 화평, 기쁨의 열매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1988 10 21, 천안 지방부 천안 지부, 구승훈 형제

 

 

2. “졸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말하기를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1983 4월은 저에게도 매우 잔인한 달 이었습니다.  이날 4 3일 오후 서울 북한산 인수봉 후면 하강 코스에서, 저의 학교 서클 친구인 김기철 군과 1학년 후배 한 명이 얼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위를 오를 때는 매우 많은 땀을 흘리게 됩니다.  오전의 화창한 날씨 속에 그들은 비상용 자켓 등을 준비하지 않은 채 올라갔습니다.

오후 들어 갑자기 날씨가 바뀌어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상에 도달한 여러 학교의 등반 팀들은 서둘러 내려가려고 서로서로 자일을 아래로 던졌습니다.  내려오는 도중에 강풍이 불었고 여러 팀들의 자일이 서로 엉켜 얼어 붙었습니다.  여러 명이 중간에 얽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그 중에 4명이 체온 저하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북한산 인수봉에서 목숨을 잃은 등반가가 약 40여명쯤 됩니다.  바위를 오르다 보면 몇몇 지점에서 작은 동판을 바위를 파내어 시멘트로 붙여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19XX X X아무개 꽃다운 청춘을 여기에 묻다, XX산악회 일동.  등반을 하면서 이러한 동판들을 보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해이해진 마음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죽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영혼도 어떤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저들이 죄 가운데 죽을진대 의로움의 뜻에 따라 영적으로도 쫓겨날 것이라.  그러므로 저들이 행한 일 대로 하나님 앞에 끌려나와서 심판 받을지니, 저들의 행위가 더러웠다면 저들도 더러운 것이라, 저들이 더러울진대 하나님의 왕국에 거할 수 없으리라.  저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거하려면 하나님의 왕국도 역시 더러워야 하기 때문이라.(니일15:33)

그러나 보라, 너희는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어야 함이 마땅하니, 너희는 주를 경외하며 주를 두렵게 알라, 주는 주를 임의로 거역하고 죄 가운데 죽은 자를 구속하시지 아니하실 것이라.  진실로 세상이 시작한 때로부터 죄 가운데 지내다가 죄를 안고 죽은 자와, 고의로 하나님을 거역한 자와, 하나님의 계명을 알면서도 이를 지키지 아니한 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리로다.(모사15:26)

하나님의 권세와 은사를 다하여 없어지게 하고 죽은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저들이 죄 중에 죽어 하나님 나라에 구원 받지 못할 것임이라.(모로10:26)

형제 자매 여러분!  의로움의 뜻에 따라 영적으로 쫓겨나는 것, 구속 받지 못하는 것,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 하나님 나라에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에게 선포되는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죽음이 갑자기 닥치게 됩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먼저 원인이 있고 증상이 있습니다.

12년 전 체온저하로 죽은 제 친구를 돌이켜 봅니다.  사람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 첫 번째 증상은 졸음입니다.  바위 벽에 여러 명이 엉켜 붙었을 때, 그들은 잠이 들게 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점점 졸게 되자 먼저 내려온 선후배들과 아직 정상에서 내려오지 못한 친구들이, 서로서로 큰 소리로 부르며 격려하였습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큰 소리를 치고, 아마 돌을 던져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구조대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이들 중 여러 명이 잠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그 중 몇은 죽고 말았습니다.

예언자 앨마는 앨마서 32 3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신앙은 잠들어 있느니라.  형제 자매 여러분!  신앙도 잠에 빠져 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언자 니파이는 잠이 들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잠을 깨어라 나의 영혼이여!  다시는 죄에 빠지지 말라.  기뻐하라.  나의 마음이여.  영육의 원수에게 다시는 굴하지 말지어다.(니이4:28)

예언자 야곱은 그의 백성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나의 형제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너희 영육이 지닌 능력을 깨우치며 몸을 흔들어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며, 지옥의 고통에서 뛰쳐나와 너희로 악마의 천사가 되지 않게 하며, 둘째 사망인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지 않게 하라.(야곱3:11)

예언자 앨마는 자기의 부친과 그 백성들이, 어떻게 노아 왕의 속박과 레이맨인의 속박으로부터 구출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습니다.

보라 주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돌이키셨으며, 저들을 깊은 잠에서 깨우셨으매 저들이 주님께로 깨어났으니, 보라 저들이 암흑 가운데 있었으나 저들의 영혼이 영원하신 말씀의 빛을 받았고, 저들은 죽음의 띠와 지옥의 사슬에 매이었으며, 영원한 멸망이 저들을 기다리고 있었느니라.(5:7)

우리의 영혼과 신앙이 잠에 빠지지 않고 깨어나도록, 예언자들 중 니파이는 다시는 죄에 빠지지 말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앨마는 영원하신 말씀의 빛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야곱은 너희 영육이 지닌 능력을 깨우치며 몸을 흔들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로나이는 몰몬서 9 27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습니다.

옛날에 행한 대로 다시 시작하여 너희 온 마음을 다하여 주께 나아가 주를 경외하며 주를 두려워하므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게 하라.(9:27)

이제 주님께서 직접 하신 권고의 말씀을 읽어드리고 저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런고로 기운을 내어 기뻐하라. 네 허리띠를 동여매며 나의 온전한 갑옷을 입어 악한 날에 견딜 수 있게 하고, 모든 일을 수행하여 굳게 설 수 있도록 하라.  그러므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동여 매며, 가슴에는 의의 가슴판을 달며 내가 너희에게 보낸 나의 천사가 맡긴 평화로운 복음의 준비로 신을 신고 일어서라.(DC27:15~16)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18:30~32)

형제 자매 여러분!  경전을 읽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졸지 않게 될 것입니다.  졸지 마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십시오.  아무리 충실한 성도라 할지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깜박 졸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노력에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1995 4 22, 영동 스테이크 성남중앙 지부장, 구승훈 형제

 

 

3. “막대기를 굳게 잡음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함을 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약 4개월간 새벽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서 매 달 일정한 돈을 미리 지불하고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보니 하루를 빠지면 그 돈을 헛된 곳에 낭비하는 것 같아 아까운 마음이 들어 일찍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약 두어 달쯤 지나자 이제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상쾌한 기분이 좋아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망 또는 지불한 돈이 아까운 마음에 갔지만 나중에는 즐거운 마음이 된 것입니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자신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대가성 여부를 떠나서 자신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법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치기 위한 시험인 것입니다.  제가 돈을 들여 저 자신을 바치고 나서야 꾸준한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듯이 경전을 꾸준히 읽는 것도 자신을 일부 희생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경전을 꾸준히 읽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생활에서 무엇인가를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적어도 처음 시작하거나 다시 시작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녁에 경전을 읽기를 원한다면 TV를 끄고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문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자녀의 경우 재미있는 일들을 나중으로 미루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경전을 읽기로 결심했다면 저녁 늦게까지 잠자지 않고 무언가 하던 일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상태에서 경전을 읽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전을 읽는 재미에 이끌려 스스로 자발적으로 경전을 찾게 될 것입니다.

 

몰몬경은 지금까지 저의 신앙생활의 손잡이요 길잡이가 되어 저의 신앙을 지켜주었습니다.  경전을 읽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기본이며 가장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흔들리는 배처럼 우리의 인생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러할 때 경전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쇠막대기요 손잡이가 됩니다.  니파이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니파이일서15:23_24) 저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 부친이 보신 바, 그 나무로 인도하는 쇠막대기는 무엇을 뜻하느냐?  내가 저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이를 굳게 지킬진대 멸망당하지 아니하며, 유혹이나 원수의 불길 같은 창도 이러한 자들을 사로잡아 눈멀게 하거나, 멸망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이를 굳게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일부를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일에 늘 꾸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전을 통해서도 주어지지만 주님의 종을 통해서도 주어집니다.  우리의 대관장단과 십이 사도 그리고 주님의 종들인 신권지도자, 즉 신권의 열쇠를 소유한 스테이크 부장님과 감독/지부장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또한 쇠막대기를 굳게 잡는 일임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1999 11 14, 수원 스테이크 평택지부 대회에서, 스테이크장단 2보좌 구승훈 형제

 

4. “수원 스테이크 30년사 자료 요청” (서신)

수신: 수원 스테이크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회원

친애하는 우리 스테이크의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복음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신앙을 같이 할 수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이제 우리 수원 지역에 스테이크가 조직된 지도 어언 7년이 지났습니다.  내년 4 6일이면 수원 지역에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30년이 됩니다.  엊그제 같더니만 벌써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습니다.  참으로 야곱이 말한 것처럼 세월이 우리와 더불어 지나며 우리의 인생도 함께 흐르니 우리에게 마치 한 조각 꿈”(야곱서7:26)과 같이 여겨집니다.

이제 우리 스테이크에서는 30주년이 되는 내년 4 6일에 맞추어, 수원 스테이크 30년사를 편찬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펜서 W.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기억의 책을 작성하는 자들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지 작성은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는 방법이며 후손을 위해 이러한 축복의 재산을 남겨 주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스테이크도 기록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보고, 또한 우리 스테이크의 뒤를 이어갈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축복의 재산을 남길 필요가 있음을 저희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또한  사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기억이라는 단어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단어요 프로그램입니다.  일지를 쓰는 것은 바로 이 중요한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읽고 또 늘 상고하고 있는 경전의 말씀도, 사실은 고대의 예언자들이 기록한 일지와 역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록한 일지나 역사기록이 후세에 남아, 그들에게 주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는 도구가 될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1970 4 6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제 자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우리 스테이크와 관련된 각종 사진이나 모임 기록, 공개 가능한 일지의 일부 또는 여러분의 신앙 간증 등을스테이크 역사 편찬 위원회에서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스테이크 역사기록을 출판하면 위 기록들을 제출하신 회원들께서는, 자신이 제출한 기록과 사진 및 간증이 담긴 ‘수원 스테이크 30년사’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출판은 아마도 20년 뒤에나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번이 여러 회원 여러분이나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제출한 기록들은 현재 지역에서 준비하고 있는한국교회 50년사를 편찬하는데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테이크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여러분의 경험과 역사기록도 아울러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그 분께서 오시기 전에 우리 회원 각자도 개인의 역사를 정리하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 스테이크의 역사도 정리하여 주님 앞에 바칠 준비를 갖추도록 합시다.

사람들은 지난 과거를 돌이킬 때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신앙과 간증 기록들을 정리하신다면 주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이며, 또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제출하신 간증과 기록이 우리 스테이크의 역사를 풍성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우리 회원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사업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1999 12 11

여러분의 진실한 형제

수원 스테이크장단

 

 

5. “우리의 부름과 그리스도의 속죄와의 관계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그냥 내버려 두면 무질서 하게 되고 맙니다.  이러한 법칙을 열역학 제 2법칙 또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 합니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온 우주 만물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금만 소홀하게 되면 우리의 집이나 회사의 책상 위 같은 것이 곧 어지럽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무질서와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질서를 부여하는 사업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신권을 부여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질서를 가져다 주는 도구로 쓰고 계십니다.  우리가 받은 신권과 그 신권에 따르는 부름의 본질은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신권의 정확한 명칭은 하나님의 아들의 반차를 따른 성스러운 신권 입니다.  여기서 반차라고 번역된 영어의 Order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경전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데, 몰몬경 앨마서 13장에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몰몬경에서는 이 단어가 반차, 질서(니삼6:4), 순리(모사4:27) 절차(13:9), (13:13), 가르침(14:16), 명령(24:28), 방법(41:2),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에서는 이 단어가 이 외에도 하늘의 규율(129:7), 왕국(130:9~10) 제도(78:3~4), 등으로 번역되었고, 값진 진주에서는 계통(아브3:9), 하나님께서 명하시다(아브4:18), 등으로 번역되었고, 성경에서는 순서(대하29:35), 차례(고전15:23), 규모(2:5), 반열(대상6:32), 구별(10:22), 정하다(37:23), 굳게 세우다(119:133), 바로 잡다(1:5)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마 경전에 사용된 영어 단어 가운데, 가장 여러 가지로 번역된 단어 중에 하나가 Order일 것입니다. 이상 언급된 단어들의 특징을 보면 신권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신권의 첫번째 속성은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성 88:119) 너희와 너희 주변을 정리하라. 모든 요긴한 것을 준비하라.

IMF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는 구조 조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구조 조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완전한 조직이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교회에서 교육 및 훈련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왕국과 이 복음은 제도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기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신권의 두 번째 속성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난1959 4월 연차 대회에서 당시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관장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회원은 선교사다’라고 우리들의 의무를 분명히 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지도자 여러분들에게 ‘모든 부름 받은 역원은 교사다’ 라는 말씀을 감히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삶에 관여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성취감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한 때 사악했던 니파이인 변호사였던 지에즈롬의 이야기를 여러분께서는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완전히 개심하였습니다.

(힐라맨서5:41) “아민아대브가 저들에게 답하기를, 너희가 회개하고 앨마와 앰율레크와 지에즈롬이 너희에게 가르치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마음에 생길 때까지 소리 높여 간구할진대, 너희를 뒤덮은 암흑의 구름이 걷히리라.

지에즈롬이 개심한 때가 기원전 82년경인데, 아민아대브가 지에즈롬의 가르침을 언급한 이 때는 그로부터 50 여년이 지난 기원전 30년경입니다.  지에즈롬은 이때 이미 사망하였거나 나이가 매우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한 때 간악하기만 했던 그를 이처럼 후세에 그의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그의 남은 생을 온통 바꾸어 놓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앨마와 앰율레크의 영과 권세에 의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모든 교회의 역원은 훌륭한 교사가 되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르칠 때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레이맨인 들에게 14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하여 수 천명을 개심케 한 모사이야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몰몬경에 나옵니다. 이들의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앨마서 17:2~3)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열심으로 경전을 연구한 사람들인지라,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로 더욱 강하게 뭉쳐졌더라. 그 뿐 아니라 열심으로 금식하고 기도하여 예언과 계시의 영을 지니게 되었고, 가르칠 때는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로 가르쳤느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열심으로 경전을 연구하고, 둘째, 열심으로 금식하고, 셋째, 열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암몬과 그 형제들은 자신들이 개종 시킨 이 레이맨인 들을 지극히 사랑하였고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신권 부름의 세 번째 본질은 돌보는 것 , 보살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랑이 반드시 포함됩니다.

1) 우리 주변에 질서를 세우고, 2) 영과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3)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부름의 본질입니다.

부름의 또 하나의 목적은 (앨마서13:3)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들이 안수 성임된 절차는 이러하니라. 저들은 땅의 기초가 놓일 때부터 부름을 받아 준비되었으니, 하나님의 미리 아시는 능력과 저들의 놀라운 신앙과 선행으로 이루어졌느니라. 맨 처음 저들을 선과 악 중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택하도록 버려 두셨으매, 그러한 가운데 저들이 선을 택한 다음, 놀라울 만큼 큰 신앙의 일을 행하여, 성스러운 부름을 받은 것이니, 바로 이 부름은 그러한 자들의 대속의 준비로 마련된 것이니라.

우리의 부름은 우리 자신의 온전한 속죄와 죄 사함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부름을 수행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피와 죄로부터 온전히 깨끗해지게 될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62:3)에서 주님은 “그러나 너희는 복이 있나니, 너희 간증은 하늘에 기록되어 천사들이 볼 것 임이라. 천사들은 너희로 인하여 기뻐하며 너희 죄는 사함 받았도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름과 그리스도의 대속, 즉 속죄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건축용어사전에서 Order는 기둥의 종류를 뜻하기도 합니다.  부름 받은 신권 역원들은 모두 이 교회를 떠받히고 있는 기둥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기둥의 기초가 되며 반석이 되시는 이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부름은 또, 마치 예술가가 깎는 조각 작품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깎는 도중에는 미완성이지만 언젠가는 온전히 완성될 작품인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완성에 대한 책임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 부름에 임하는 태도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 중, 미 시카고 대학의 한 심리 학자가 쓴 몰입의 즐거움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시각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집중력이야 말로 모든 사고의 원동력이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케이트를 때에는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동작 등에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딪히거나 넘어지고 말게 됩니다.  그러한 순간에 생각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활동에 완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테니스, 바둑 같은 게임을 몰입하기 쉬운 이유는, 목표와 규칙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참여할 있기 때문입니다.  몰입이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어떤 과제를 극복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 부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실력과 기회사이에 조화가 이루어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제가 너무 힘겨우면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가 제풀에 포기하고 맙니다.  과제와 실력의 수준이 낮으면, 아무리 경험을 해도 덤덤하며 미지 뿐입니다.

그러나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 이루어지게 됩니다.  대개의 겨우 보통 사람의 하루일과는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우리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강렬한 삶을 얻을 있도록 해줍니다.

목표가 명확할 , 그리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날 , 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룰 ,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있게 됩니다.  이때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오게 됩니다.  시간이 분처럼 금방 흘러갑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사용할 ,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간에 상관없이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입니다.  사실 몰입하고 있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들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경험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실감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돌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라고 것입니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우리는 행복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TV프로에 빠져들 느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행복감은 우리의 형편이 좋아지면 눈이 녹듯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행복감입니다.  진정한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키며 영속적으로 지속됩니다.  여러분은 일을 하다가 거기에 빠져들어 시간 감각조차 잃어 버리는 경험을 적이 있습니까?”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우리가 우리의 부름에 온 마음과 정성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임하게 될 때, 우리는 이러한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세월이 흐른 뒤에, 우리의 삶을 뒤 돌아 보며 참으로 크나큰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신권과 그 직분은 더욱 위대한 것임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대속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가 지금 이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부름 받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_

1999 12 31, 2000년을 맞이하기 위한 수원 스테이크 지도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단 제2보좌, 구승훈 형제

 

 

6. “간절한 기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좀더 간절히 기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간절한 기도에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따르게 됩니다. 거기에는 눈물이 따르게 되며, 우리의 말이 정결케 되는 것을 느끼게 되거나, 중언부언하지 않게 되며,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여러분가운데 기도하고 난 뒤에 다리가 저려 일어서지 못하는 경험을 하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가 좀 더 간절히 기도하기 위한 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니파이 삼서 19장입니다. (니삼19:19, 27, 31) 예수께서 저들 가운데서 좀 떨어진 곳으로 나아 가시어, 친히 땅에 엎드리어 이르시기를, … 예수가 저들에게서 돌아 서시어 또다시 저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아버지께 간구하여 이르시기를, … 이에 다시 예수께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시어, 아버지께 간구하시었으니,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 되셨음을 선포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 위하여 무려 세 번씩이나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장소를 찾으셨을 진대, 하물며 불완전한 우리에게 좀더 간절히 기도하기 위한 장소가 얼마나 중요 하겠습니까?

첫째. 간절한 기도에는 장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에 또 다른 하나는 기도하겠다는 결심일 것입니다.  이 기도가 이루어 지기 전에는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경우도 때때로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기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러한 기도를 주님께서 모두 듣고 계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둘째. 간절한 기도에는 기도하겠다는 각오가 중요합니다.

구약에 보면 기도의 훌륭한 모범을 보인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다니엘도 그러한 분들 중에 하나입니다. 다니엘을 모함하려는 자들은 당시 왕이었던 다리오 왕을 속여 다니엘을 죽이려고 결심했습니다. 

(6:7, 10, 16~23)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것이니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삼십 일이 지나기 전에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함자들의 고발에 의해 사자굴에 던져지게 된 다니엘에게, 왕은 그를 굴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다리오 왕은 신하들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었으나, 자신이 선포한 법대로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은 그날 밤 금식하면서 다니엘의 안위를 염려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이 사자굴 앞에 가서 다니엘을 불렀을 때 다니엘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다니엘은 기도했기 때문에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보다 더 기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가 또 있을까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의뢰하는 충실한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항상 기뻐하시는 분 이십니다.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기도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가르치셨습니다.

(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주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간구하십시오.  주님의 영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영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에워싸고 여러분을 도와주는 특별한 힘과 권세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간절한 기도에는 주님의 영이 함께 합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 정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면, 여러분은 가슴이 뜨거워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기도는 주님께서 받으신 것이며, 기도하는 순간부터 하늘은 우리를 위해 그 기도의 응답을 준비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또 다른 때에 주앞에 엎드려 매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서 9장에 그의 간절한 기도가 잘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와 같이 기도하였을 때, 주의 천사가 그 앞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니엘서9:23)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천사가 응답을 준비할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몰몬경에는 그러한 간절한 기도의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더서9:34~35) “…저희가 멸망을 모면하지 못하게 된 것을 보고서야 저들의 간악함을 뉘우치기 시작하여 주님께 간곡히 간구하니라.  이같이 저들이 주앞에 겸손해져서 주가 보시기에 합당하게 되매 주님은 백성들을 구하사 그 권세를 저들에게 보이시니라.  

주님 보시기에 다시 합당하게 되려면 겸손해져야 하며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겸손해진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와 닿으며 깊이 새겨지고, 그 말씀으로 인해 주님의 권세가 다시 우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앨마는 우리에게 스스로 겸손해지는 자가 더욱 복이 있다. (앨마서 32:7~16)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간절히 주님의 영으로 간구하며 스스로 겸손해질 때,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여도 축복을 받지 못하거나, 계속하여 고통을 받는 이유는, 우리의 교만과 허영을 채우려고 잘못 간구하였거나, 진실한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분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들은 때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기 이전에, 이미 그 분의 성품과 그분의 섭리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가 바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즉, 영생인 것(요한복음17:3)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며 기적과 신앙의 첫번째 열쇠임을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1 9일 수원 스테이크 용인 지부에서 스테이크장단 제2보좌 구승훈 형제

 

 

7. “고통의 몇 가지 이유

몰몬경의 첫번째 페이지의 첫 구절에 보면, 니파이는 “살아오는 동안 많은 환난을 겪”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몰몬경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구절에 보면, 모로나이가 “여호와의 즐거운 심판대에서 만날 때까지 쉬리로다”라고 말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몰몬경은 전체가 고통과 고난의 역사이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그러한 상태에서 구원하시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최근 몰몬경 니파이삼서를 읽다가 예수님께서 미 대륙에 방문하시어, 택하신 열 두 제자 가운데 세 명의 제자에게 주신 다음 말씀에서,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느낀 몇 가지 저의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너희가 육신으로 세상에서 지내는 동안, 세상의 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고난이나 슬픔을 겪지 아니하리니, (니파이삼서 28:9) 인간이 육신으로 지내면서 고난과 슬픔을 겪지 않는 것은, 몇몇 선택된 분들 만이 경험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고통을 겪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평안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저는 여러분께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고통의 다섯 가지 이유:

 

첫째.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고통이 옵니다.  니파이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니파이이서4:17~19) “…오 나는 불쌍한 인간이로다. 나의 육신이 나를 슬프게 하며, 나의 죄가 나를 비탄케 하는 도다 …이는 나를 쉽사리 뒤엎어 버리는 유혹과 죄 가운데 묻혀 있음이라. 내가 의지하여 온 분이 누구이신가를 알면서도, 내가 기뻐하고자 할 때에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마음이 신음하게 되는도다.

(니파이이서4:26~27) “오 그러면 어찌하여 내가 그토록 놀라운 일을 보았으면서, 주님께서 그토록 크신 자비로 인간들을 찾아 주셨음에도 나의 마음이 슬피 울며 나의 심령이 슬픔의 골짜기에서 방황하며, 나의 육신이 쇠진하여지고 고난으로 하여 나의 기력이 진하는고?  또한 어찌하여 육체로 말미암아 죄를 지어야 하느뇨? 어찌 하여 유혹에 굴하여 악마가 마음으로 들어와 나의 평화를 깨치며, 나의 심령을 아프게 하게 하는고? 어찌하여 내가 나의 원수로 하여 노하느뇨?

우리의 육체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게 태어난 것은, 주님께서 모로나이에게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더서12:27) “만일 사람이 내 앞에 이를진대 내가 저들의 연약함을 보이리라. 내가 사람을 연약하게 하였음은 저들로 겸손해지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나의 은혜는 내 앞에 겸손하게 임하는 자 모두에게 흡족할지니, 저들이 내 앞에 겸손하여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질진대 내가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 하리로다.

 

둘째. 우리 마음의 연약함 (, 현명치 못한 선택, 어리석음, 또는 무지) 때문입니다. 앨마는 아들 코리앤톤에게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앨마서41:10) “… 죄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닌 것이니라. (앨마서42:29) 나의 아들아, 이러한 일로 다시는 염려하지 않기 바라노니, 오직 죄가 너를 괴롭히게 하고 그 괴로움으로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노라.

주님께서는 나중에 사도 바울로 불리게 된 사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26:1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죄를 짓는 것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죄를 짓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반드시 괴로움과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신권 소유자들에게 주신 권고의 말씀에서도 그러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121:37~38) “이 권능은 우리에게 수여되는 것이니, 이 또한 사실이니라.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숨기려 하거나, 우리의 교만과 헛된 야망을 채우며 조금이라도 불의 하게 인간의 자녀를 지배하며 통어하며 강압하려 하면 보라, 여러 하늘은 스스로 물러가며 주의 영은 슬퍼하시나니, 주의 영이 물러가면 그 사람의 신권 곧 권위는 아멘이니라. 보라, 저는 깨닫기전에 홀로 있게 되어 가시를 걷어차며 성도들을 박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도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인해 축복 또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곁을 떠날 때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셋째. 전능하신 이의 손길() 때문일 경우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받는 고통의 이유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매일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매(막대기)로 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리와 성약19:20, 15, 17) “…내가 나의 전능한 힘으로 너희를 낮추게 하지 않도록 하라. … 회개하라, 그리하여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막대기와 나의 분노와 나의 노여움으로 너희를 치지 않게 하고, 너희 고난이 극심하지 않게하라. …그러나 저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겪은 것 같이 고난을 겪어야 하리니,

(힐라맨서12:1~3) “이같이 우리는 인간들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고 또한 연약하여 변하기 쉬운 것인가를 아나니, … 이는 오로지 저들이 안이한 때문이요, 크게 번영하는 때문이라. 그리하여 주가 이 백성들을 고난으로 징계하시며, 사망과 공포와 기근과 온갖 역병으로 저들을 치지 아니하시면, 저들이 결코 주를 기억하지 아니 하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그분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치실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의 목적이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지를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다른 사람(즉 우리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죄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맨과 레뮤엘로 인해 그들의 부친인 리하이는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니파이일서18:17) “…나의 부친은 이미 노령에 이르셨고 아들들로 인하여 크게 근심하였던지라 마침내 병석에 누우시게 되었느니라.  이 세상에 자식의 죄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부모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시편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주님의 종들도 이러한 고통에서 예외 될 수 없습니다.  니파이는 정원 탑 꼭대기에 올라가 간절히 울부짖었습니다. (힐라맨서7:6) “이토록 끔찍한 죄악이 여러 해를 두고 니파이인들에게 창궐한지라, 니파이가 이를 보매 마음 속에 치솟는 슬픔으로 가슴이 메었고, 영혼을 쥐어 뜯는 아픔으로 통곡하여 부르짖”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 대륙에 방문하신 주님도 그러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니파이삼서17:14) “저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앉자 예수께서 마음으로 괴로워하시며 이르시기를, 아버지시여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간악함에 마음이 편안치 못하나이다.니파이삼서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연민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고통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혹은 다른 이유로 고통을 받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마치 영혼을 쥐어뜯는 듯한 아픔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받는 고통입니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수반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고통들에는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한 이유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섯째. 세상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과부와 고아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과부와 고아를 특별히 보살피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된 것이 이들의 잘못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을 당하는 경우는 누구의 잘못 때문입니까? 

우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경우가 있습니까?  악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재산을 빼앗긴 적이 있습니까?  그로 인해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신 경우가 있습니까?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 이유는 우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닌 복음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고 융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가르침, 순교자의 이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원리:

선지자 니파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이러한 영육의 고통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자신이 할 일들에 대한 각오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니파이이서 4:28) “잠을 깨어라, 나의 영혼이여! 다시는 죄에 빠지지 말라. 기뻐하라. 나의 마음이여 영육의 원수에게 다시는 굴하지 말지어다.  그의 기도는 주님께 부탁만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주님의 도움을 청한 기도입니다.  그의 기도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니파이이서 4:31~32, 34~35)…“내가 죄의 면전에서 몸을 떨게 하여 주시겠나이까? 내가 상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아오니, …내가 낮은 골짜기로 뻗은 길을 걷게 하시며, 외길을 똑바로 걷게 하시옵소서. …내가 당신께 의지하여 왔으며, 영원토록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육신의 권세에 저주가 임함을 앎에 내가 육신의 권세를 섬기지 아니하겠나이다.

…진정 내가 아노니,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며, 내가 합당하게 구할진대 나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임에, 내가 음성을 높여, 나의 하나님이시며 의의 반석이신 당신께 간구하겠나이다. 보소서 나의 음성이 영원토록 나의 반석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이신 당신께로 향하게 하겠나이다. 아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단계는, 그러한 고통이 왜 우리에게 찾아왔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원인을 모르고서야 어찌 그 해결책을 찾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러한 고통은 모두, 우리의 영혼을 순화시켜주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이러한 것을 알고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많은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주님과 성약을 맺은 선택된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굳은 신앙으로 주님께 기도 드리는 가운데,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끝까지 참고 견딜 때, 주님께서 주신 다음 약속은 우리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니파이이서31:20)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한 희망의 밝은 빛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느니라. 너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며 끝까지 참을진대, 보라 아버지께서 이르시어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으로 우리를 시험치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모든 고통을 벗고 편히 쉴 날을 고대했던 몰몬경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오늘의 고통을 인내로 견딜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1 16, 수원 스테이크 율전 와드, 구승훈 형제 

 

 

8. “원칙 중심의 지도력

19세기 중반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불과 열 여덟 살의 소년인 학생회장에게 매우 큰 권력과 책임을 위임했습니다.  그 학생회장의 침대 위에는 다른 학생에게 체형 즉, 매질(학교에서 인정함)을 가할 수 있는 회초리가 놓여 있는데, 그 침대 다리에 세 마디 희랍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다스림은 인간의 됨됨이를 밝히 보여 준다. > 다시 말하면 사람의 본성이 그의 통치의 방법에 의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지도력의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겠습니까?

몰몬경에는 어린 나이에 지도자가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모로나이 장군은 불과 25세에 전 니파이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몰몬은 자신에 관하여 겸손하게 비록 나이는 어렸으나 체구가 큰 나를 백성들은 저들의 지도자, 곧 저들 군사의 지휘자로 삼은지라, 내 나이 열 여섯에 레이맨인들을 대적하여 니파이 군대의 앞장을 서 나아가니,”(몰몬서2:1~2)라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니파이인들이 불과 열 여섯 살밖에 안된 몰몬을, 다만 체구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그들 군대의 지휘관으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몰몬이 기록한 다른 글들을 통하여, 몰몬을 포함하여 이러한 자질을 지닌 의로운 지도자들의 됨됨이에 관하여 충분히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지도력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지도력의 원칙(The Power Principle)’ 참조, 블레인 리 저, 김영사, 1999)

 

1. 강압적인 지도력

강압적인 지도력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질, 위협, 협박, 통제, 겁주기, 무시, 두렵게 함, 비방, 기만, 부추김, 술수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교리와 성약121:37~41)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숨기려 하거나, 우리의 교만과 헛된 야망을 채우며 조금이라도 불의 하게 인간의 자녀를 지배하며 통어하며 강압하려 하면 보라, 여러 하늘은 스스로 물러가며 주의 영은 슬퍼하시나니, 주의 영이 물러가면 그 사람의 신권 곧 권위는 아멘이니라.

우리는 슬픈 경험을 통하여 이 사실을 배웠나니, 거의 모든 사람은 사소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마자 불의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천성과 기질이 있도다.신권의 권능을 구실삼아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유지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아니되나니,”

강압적인 지도력은 두려움을 바탕으로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소한 권능을 지니게 되었을 때 이러한 강압적인 지도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쉽게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형태의 지도력은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형태를 군대 생활이나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주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2. 실리적인 지도력

실리적인 지도력은 공정함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가게에서 물건을 삽니다.  우리는 가게 점원을 협박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만 그 물건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뿐입니다. 실리적인 지도력의 형태는 이러한 금전적인 보상, 칭찬이나 인정, 협상, 자신의 지위를 이용함, 전문가로서의 권위, 카리스마의 힘, 정보의 힘, 도구의 힘, 인간관계의 힘 등을 이용하는 형태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칭찬이나 인정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라면 실리적인 지도력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실리적인 지도력은 강제적인 지도력 보다는 한 차원 높은 힘이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다음에 설명할 원칙 중심의 지도력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리적인 지도력은 그 지도력을 이어주는 끈이 사라지면, 언제라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3. 원칙 중심의 지도력 (존경 받는 지도력)

신뢰 받는 것이 사랑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를 신뢰하는 것이며 그의 선함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성실하며, 존경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다고 믿습니다.  새로 부름을 받는 역원을 지지할 때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더라도 그들을 부른 지도자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전에서 살펴보면 존경스러움은 고결한 도덕적 원칙으로 살아가는 것,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진실함을 지켜나간다는 뜻입니다. 존경심은 타협하지 않는 정직과 신용, 어떠한 지도력이나 영향력에 의해서도 약화되지 않는 올바른 도덕적인 신조를 일컫습니다.  존경심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존중, 경의, 경외, 숭배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간디는 살아 생전에 그가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끼쳐왔으며, 이로 인해덕의 정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원칙 중심의 지도력은 존경심을 그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원칙중심의 지도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지속적입니다. 2000여년 전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 전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지금까지도 강력하고 영원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브리감 영 대관장님의 가르침을 신권회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조셉 에프 스미스 대관장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참된 지도자의 영향력이 지속적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위인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도 남아, 이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며 위대한 업적과 유산으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들은 평생토록 이러한 원칙을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몰몬은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다하여 저들을 사랑하였고, 평생을 두고 저들을 위하여 심령을 다 기울여 기도하였다(몰몬서3:12)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도력은 지도하는 사람이나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영원한 결과를 낳게 해 줍니다.

 

둘째, 주도적입니다. 새로 온 병사 한 명이 지휘관에게 물었습니다.  제 참호가 어디 있습니까?”  장교가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지금 참호 위에 서 있으니 열심히 흙을 파내게.” 책임을 맡았을 때 그 책임에 걸맞은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로 주도적인 행위입니다.  몰몬은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수고를 그칠진대 정죄를 받을 것인즉, 저들이 비록 강퍅할 지라도 우리는 열심으로 일하자.  또한 우리에게는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 다해야 할 임무가 있으니, 이를 다하여 온갖 의의 원수가 되는 것들을 이기고, 우리의 영육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자.” (모로나이서9:6) 주도적인 사람은 상황에 좌우 되지 않는 지도력을 행사합니다.  이들은 부정적인 주변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셋째, 자기 통제력입니다. 이것은 희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할 수 있는 능력 즉 자기관리를 뜻합니다. 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금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희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희생 정신이 자기 통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리가 됩니다. 존경을 바탕으로 한 원칙중심의 지도력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윤리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며, 계획된 삶을 살게 해줍니다. 앨마서 60장은 모로나이가 나라의 통치자인 페이호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모로나이 장군의 인간 됨됨이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대들의 형제가 수천명이나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구해 주시리라고 생각하느냐? …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수 없이 구출된 일을 그대들은 잊었느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바를 따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시리라고 생각하느냐?

이제 나는 먼저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릇 바깥도 깨끗하게 닦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이 기억하기 바라노라. …다만 내가 두려워 하는 이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보라 나 모로나이는 나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로 서약한 대로 틀림없이 계명을 지키리로다. …나는 세상의 명예를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나니 내 나라의 자유와 복리를 구하노라.”

끈임 없는 절제와 절대자에 대한 신앙, 흔들리지 않는 원칙 등이 이러한 지도력을 지닌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불의를 미워하고 자신과 주변에 질서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한번 선택한 원칙에 있어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을 통하여 그런 사람들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넷째, 상호 의존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지도자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항상 다음 경전 구절들을 생각합니다. (교리와 성약 101:16) 그러므로 시온에 대하여는 너희 마음을 놓을지어다. 모든 육체는 내 손안에 있나니,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

(니삼28:39) 저들에게 있었던 변화로 인하여 사탄이 저들을 사로잡아 유혹하지 못하며, 육체로 있으면서 성결케 되어 거룩한지라 땅의 권세가 저들을 속박하지 못하느니라.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저는 저의 마음이 성결하지 못함을 탓합니다. (교성20:34)  참으로 거룩하게 된 자까지도 조심하게 할지니라.

(교리와 성약 121:41~45) “신권의 권능을 구실삼아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유지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아니되나니, 다만 설득오래 참음온화함온유함거짓 없는 사랑, 친절깨끗한 지식으로 할 것이니, 이것들은 위선이나 간교함이 없어 사람을 심히 크게 만드느니라. …그리하여 저로 네 성실함이 죽음의 사슬보다 더 강한 줄 알게 하라. …쉬지 말고 덕으로써 네 생각을 장식하라. 그리하면 주의 면전에서 네 신임이 두터워 지리니, …”

상호의존성은 이러한 온전한 성품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즉 함께 하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원칙중심의 지도력은 존경심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존경심은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것을 완전히 중단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희랍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통치자로서 적합한 사람은 철학자뿐이며, 그 철학자가 진정한 철인이라면,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여기에 대하여 자신의 본의가 아니고 남에 의해 마지 못해 된 통치자만이 바람직한 통치자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말일 성도 신권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을 포함하여 자신이 원해 그 자리에 서게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도 역시 이 자리에 선 것이 제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권의 맹세와 성약을 받아들인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통치자요 왕과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을 운명을 타고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참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이 필멸의 세상에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말에 귀를 기울이는 외에, 간악한 자들에게는 나의 힘을 보이지 아니하리라(7:23)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이러한 참된 권세인 올바른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지 필수적인 원리는 바로 회개, 순종입니다.  

참된 지도력의 모범이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2 19일 수원 스테이크 신권 대회에서 스테이크장단 제 2보좌 구승훈 형제

 

 

9. “선교 사업을 향상시킴

형제 여러분! ‘선교사업이라는 단어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언어는 어떤 사물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 사물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습니다.  선교사업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선교사업을 아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선교사업의 뜻과 그 의미에 대하여, 여러분의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宣敎事業이라는 한자 단어를 보면베풀 宣’, ‘가르칠 敎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영어 단어의 ‘Mission’전도, 포교등으로 번역하는데 우리는선교사업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쓰는선교사업이라는 단어야 말로 영감 받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어떤 공과를 하면서 저는宣敎師자가먼저 先자인 줄로 잘못 알고, 선교사를먼저 교사가 된 자라고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실수를 저는 오늘 바로 잡고 싶습니다.  베푸는 행위는 주는 것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베풀며 살거나, 폐를 끼치며 사는 두 가지 형태가 있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삶을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선교사업의 가장 훌륭한 동기입니다.

그렇다면가르칠 敎에서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 이겠습니까?  그것은 일반 사람들의 용어를 빌린다면확신일 것이고, 교회 용어를 빌린다면간증이 될 것입니다.  확신, 즉 간증이 함께 할 때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할 수 있고, 그러한 감동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할 때, 비로서개심개종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하는 간증이 포함되지 않는 가르침은, 영혼이 없는 육체처럼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할 수 없고, 그들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빛을 지니지 않고, 남을 비추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간증은 또한신앙의 핵심입니다.  신앙을 논할 때 간증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宣敎事業이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의베품다른 말로 하면사랑, ‘가르침또는간증다른 말로 하면신앙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가족이나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사랑과 신앙이 부족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인 선교사업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事業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 종류의 사업을 보면, 훌륭한 사업계획 없이 성공하는 사업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목표 즉 계획이 없이 무슨 훌륭한 일을 이루겠으며, 원대한 포부가 없이 어찌 사업가가 성공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사업이란 근본적으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각오와, 마음의 준비에서 출발합니다.  교회 용어를 빌린다면 이것은 곧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宣敎事業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수 차례 강조하신 가장 근본적인 복음 원리인, 신앙’, ‘소망’,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宣敎事業이라는 단어의 뒤에 숨어 있는 이러한 원리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스테이크가 작년에 선교사업에 있어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회원들과 지도자들의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훌륭하게 준비된 자들은, 언젠가는 그러한 준비의 결과가 열매로 맺힐 것입니다.  우리에게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우리말에 배은망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빚을 지고 그것을 갚지 않는 것, 은혜를 모르고 보답하지 않는 것 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참되고 충실할 때, 비로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게 되며 성결케 될 것입니다.

선교사 시절 처음으로 선임이 되어, 후임 외국인 동반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반자가 매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행동 하나 하나와 말 한마디 등에 몹시 신경이 쓰여, 주님의 영을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금식을 하기로 결심했고 저 혼자 24시간 금식을 했습니다.

식사를 한 후 그와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식사를 한 후 다시 24시간 금식을 시작한 이유는, 활동이 많은 선교사가 48시간 연속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고 현명치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 금식이 끝나 가는 오후에 당시 저희가 봉사하던 와드의 감독단 보좌 형제님의 가정에서, 회원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동반자와 함께 그 모임에 참석했는데,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동반자는 집에 가고 싶다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이 저녁을 먹고 가라며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단호했습니다.  이틀째 금식하여 몹시 시장했지만, 늘 상 겪는 일이었기에 저는 별수 없이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떠날 때 회원들이 저에게 여러 가지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반자 때문에 힘드시겠습니다.” 등등. 이런 말은 제가 그를 만난 후 여러 동료 선교사들로부터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교 부장님과의 접견 때도 부장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선교부에서 매우 유명한 장로 였으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며 동반자가 자주 바뀌며, 이동을 자주 다니는 장로 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를 따라 나서는 저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와 저를 위해 이틀씩이나 금식하고 기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위로는 오히려 저를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화가 나서 먼저 그 집을 나서는 동반자의 뒤를 저는 급히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난 채로 씩씩거리며 먼저 가고 있는 동반자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갈 때, 제 마음에 아주 고요한 평화로운 느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반자의 모습이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하는 모습같이 여겨졌습니다.

그의 살아온 과정이 그를 그처럼 어리광장이요, 말썽꾸러기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제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동반자가 아니라, 바로 저의 마음이 문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에 찾아온 특별한 변화였고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제가 얻기를 간구한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 때 이후로도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교 부장님께서 두 달이 지난 뒤에 이동이 있기 전에, 저에게 그를 계속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그와 세달 째 함께 지내게 되었으나, 그는 저를 떠나 이동 보내주지 않으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교 부장님을 협박하여 결국 원하는 이동을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의 금식 이후로, 동반자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는 것임을 깨달았고, 귀환할 때 까지 별 문제없이 원만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신권 지도자 여러분!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먼저 우리자신의 내면의 능력을 일깨워야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훌륭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계기와 능력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자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 외에, 간악한 자들에게는 나의 힘을 보이지 아니하리라(7:23)  회개와 순종, 그리고 금식과 기도만이 우리에게 하늘의 권세의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선교사업은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의 사업이므로사업계획목표’, 다른 말로 하면소망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사업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식었기 때문에 선교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사업을 하라는 주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준비시키고, 우리의 교회 회원들을 준비시키는데 충실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소망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저는 조용한 시간에 방해 받지 않고 기도할 때 저의 마음속의 모든 소망과 동기를 하나님께 말씀 드리며 기도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특별한 느낌이 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주님께서 반드시 들으신다는 사실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선교사 시절에 저의 일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저의 글씨이고 제가 쓴 것이 분명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훨씬 뒤에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는 저의 좌우명이 된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저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 주 하나님은 그대를 불러 더[] 훌륭한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느니라. 너는 너의 손을 정결히 씻고, 내가 너를 불러 시킬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1987년 5월 20일 일 중에서, 교리와 성약 35 3절과 비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4 15,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신권 역원회에서, 2보좌 구승훈 형제

 

 

10.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10)

최근에 저는 제 사업과 관련하여 과분한 신뢰를 받고 있는데, 교회에서도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신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스테이크 대회의 주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5:3)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주제에 관해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1983 4 4일 일요일 새벽, 서울 북한산 인수봉에서 조난사고가 일어나 대학생 등 모두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4월 초 갑작스레 한겨울 날씨로 변한 악천후로 인해, 암벽에서 미처 내려오지 못한 젊은이들이 탈진과 체온저하로 인해 조난을 당한 것입니다.  죽은 이들 중에는 저의 친구도 있었습니다.  암벽타기를 좋아하던 저는 그 때 해군에서 군 복무 중이라 사고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암벽등반에서는 선배와 후배가 서로 자일로 몸을 연결합니다.  이때 자일은 마치 생명선처럼 서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위에서 쩔쩔매는 후배들을 잡아당겨 주기도 하고 앞서는 동료들을 확보하기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비인 것입니다.  당시 저의 친구 김기철은 신입부원들인 후배들을 확보하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습니다.  심한 눈보라와 젖은 바위로 인해 대원들 모두의 옷이 젖기 시작했고, 오후 6시경에 정상에 올랐을 때는 매서운 찬 바람이 몹시 부는 상태였습니다.

정상 후면의 하강지점에는 이미 도착한 몇몇 산악회의 팀이 하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치한 자일들 중 상당수가 눈비에 젖고 엉켜, 바위에 얼어 붙어 사용불능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신입부원들은 자신의 힘으로 하강하지 못하고 위에서 확보를 한 상태에서 하강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 하강하면서 추위로 인해 전 대원의 체력은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기철이는 하강하는 1학년 생들을 돌보느라 심한 탈진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11 20분쯤 되어 탈진하여 의식이 거의 없는 1학년 생 한 명을 자일로 하강시키려 했지만, 2미터 정도 하강 시키다 포기하고 다시 끌어 올렸습니다. 이 때 기철이는 후배를 끌어올리느라 힘을 많이 써, 탈진 상태에서 의식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씩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하강은 무리라고 판단한 대원들은, 이제 서로서로 몸을 끌어안고, 체온을 유지시키기 위해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습니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대원들은 잠들면 죽는다며 서로를 깨우고자 계속해서 주무르고, 소리치고, 노래 부르며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 1 40분경 구조대가 이들이 있는 지점에 도착했지만, 이미 친구 기철이와 후배 한 명은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이 날 사고로 죽은 7명의 젊은이들 중 아무도 떨어져 죽거나 상처를 입어 죽지 않았습니다. 심한 체력 소모와 체온 저하로 인한 탈진 상태에서 모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사람이 체력이 떨어지고 체온이 떨어지면 이처럼 허망하게 죽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 친구 김기철을 포함하여 이날 죽은 일곱 명 중 네 명은 암벽등반의 초보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후배들을 살리고자 자일을 끌어 당기는 등의 과정에서 탈진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친구의 고귀한 죽음을 생각하면서 작년 5 1일에 그를 위한 대리 침례의식을 집행했으며, 대리 엔다우먼트 의식까지 마쳤습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성전사업도 역시 진정한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일성도로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구조 장비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마치 산에서 사용하는 자일처럼 사람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끌어내리기도 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선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건한 반석 위에 섰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밧줄을 던질 수 있습니다.

제 친구 기철이는 후배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바위에 매달려 목숨을 잃었지만 이제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선한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힝클리 대관장님은 우리 모두가 신앙 속에서 굳건히 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 세가지 것에는 첫째. 친구, 둘째. 책임, 셋째.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5:14~15)

주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세상에 오셔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주님도 우리들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인하여 역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구원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하여, 직접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교성19:16~20) 보라, 인간이 회개하면 고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이미 고난을 겪었느니라. 그러나 저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겪은 것같이 고난을 겪어야 하리니, 그 고난은 하나님이요, 모든 자보다 가장 위대한 나를 고통으로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했으며, 육체와 영혼이 다 괴로움을 당하였으므로,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 서려고 까지 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버지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나는 그 쓴 잔을 마셨고 인간의 자녀를 위한 준비를 끝마쳤느니라. 그런고로 나는 또다시 너희에게 회개하기를 명하노니, 내가 나의 전능한 힘으로 너희를 낮추게 하지 않도록 하라. 너희 죄를 고백하라. 그리하여 내가 말한 형벌 중 가장 작은 것이라도 겪지 않게 할지니, 곧 내가 나의 영을 물러가게 하였을 때, 털끝만큼이라도 다시 겪지 않게 하라.

저는 이것이 사실임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합니다. 예수는 나의 구속주 이시며 우리 모두의 구세주이심을 여러분들에게 간증 드립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회개하는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주님께서 큰 고통을 감수하신 것에,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립니다.

니파이는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야기 할 때에는, 성령의 권세가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을 전함이라.(니이33:1)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전해지는 말씀에는 인간의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는 특별한 권세가 함께합니다. 니파이는 자주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였습니다. 내가 심령을 기울여 일한 지라 내 온 몸의 마디가 허약하여 졌도다.(니일19:20), 보라 내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심에 내 사지에 기력이 없도다.(니일17:47) 하나님의 충만한 영이 함께 하실 때 때때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우리의 육신이 연약해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영적인 일에 몰두할 때, 우리 온 몸의 기력이 다 빠져 나간듯한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친구 기철이가 후배를 구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쓰다가 탈진하여 목숨을 잃은 것처럼 목숨을 바쳐 진리와 정의를 수호한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러한 상태를 의미할 것입니다.

 

말일 성도는 어떤 면에서 보면 모두 구조대원 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구조자들이며 구원자들입니다.(1:21)  우리가 지닌 밧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할 때 때로는 지칠 수도 있겠지만, 주님께서 곧 바로 우리의 힘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5:8~10)

형제 자매 여러분!, 가지는 뿌리로부터 양분을 받게 됩니다.  가지가 뿌리를 떠나서는 곧 말라 비틀어져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5:16)  나무가 그 나무를 심은 주인에게 의지하지 않고서야 어찌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힘을 잃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라(니이32:9)는 니파이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이32:3~4,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라. 보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희가 행하여야 할 바를 모두 전하여 주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이야기한 뒤에도 너희가 이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면, 이는 너희가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아니한 것이라. 너희는 빛 가운데로 인도되지 못하고 흑암에 이끌려가 멸망 당하리로다. …

그러나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항상 기도하고 힘을 잃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먼저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아무것도 주 앞에 행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행하는 일이, 너희들 영육에 이로운 것이 되도록, 네가 행한 일을 네게 성결케 하시리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명의 밧줄로 튼튼히 준비를 갖추고, 항상 기도하고 힘을 잃지 않으며, 많은 이들을 구조하는 참된 구조 대원인 진정한 말일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참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으로 우리 자신이 먹어야 하며, 또 사랑하는 이들을 먹여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대회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어, 참으로 풍성한 말씀의 잔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님의 구속주 이심과, 이 복음의 진실됨에 대하여 증거 합니다.  몰몬경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4 16,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에서, 스테이크장단 제2보좌, 구승훈 형제

 

 

11. “생명의 밧줄을 던짐

오래 전, 학창 시절 제가 좋아하던 스포츠는 암벽등반 이었다고 여러분들께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암벽에서는 선, 후배가 자일(밧줄)로 서로 몸을 연결 하고 선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후배들은 바위를 오르는 법을 배웁니다. 때때로 선배의 오르는 모습이 바위 뒤로 돌아가서,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곳에 곧 이어 도달하여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위에 먼저 올라가 확보하고 있는 선배에게 물어보면, 그는 그 곳을 오를 수 있는 특이한 몸 동작을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산에서는 오랫동안 많은 것을 경험한 선배들로부터 귀중한 교훈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높은 산에서 밥하는 방법에서부터, 추위로부터 체온을 유지하는 법, 외상을 방지하는 법, 여러 가지 안전 수칙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산에서 선배들의 그러한 충고에 따르지 않는 것은, 온갖 위험에 자신의 목숨을 내맡기는 것이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교사로서 여러분의 성공과 행복은, 그러한 선배들의 충고와 조언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세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 따라, 여러분이 오를 수 있는 고도가 결정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의 능력과, 태도와, 영성과 신앙에 따라 여러분은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스펜서 W 킴볼)

만약 제가 바위 절벽에 있을 때, 선배와 저 사이를 이어주던 자일이 없었다면 저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암벽을 오를 때에는 약 2~3M 마다 자신의 자일을 고정된 볼트나 하켄, 캐러비너 등에 통과를 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오르다 보면 미끄러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떨어지는 것을 산사람들은 나른다고 표현합니다.  많이 나르는 경우에는 20m 정도를 나를 경우도 있습니다.  10m를 확보 없이 올라가다가 떨어지면 올라간 10m와 또 그 만큼을 더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떨어진 뒤에는 자일에 의지하여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암벽에서 자일, 즉 밧줄은 선배와 후배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선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감 받은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선입니다.  몰몬경의 선지자들 중 이노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굶주림을 느껴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노스서 3~4) 보라 내가 숲으로 짐승 사냥을 갔을 때, [내가 종종 들었던 나의 부친께서 영생과 성도들의 기쁨에 관하여 하신 그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듬을 느꼈고,] 내가 영으로 굶주림을 느껴 나를 지으신 나의 창조주 앞에 엎드려 간절히 울부짖어 구하며 내 영육을 위해 심령을 다하여 간구하였고, 밤이 되도록 소리를 높혀 하늘에까지 소리가 들리도록 부르짖었더니,

이노스는 중요한 순간에 그의 부친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억한 그 말씀과 기도로 인해 죄사함을 얻게 된 것에 대하여 간증하였습니다.  이노스는 그의 부친이 의로운 분이었음을 기억했으며 부친의 훈계와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이노스가 변화하게 된 동기는 그의 부친의 가르침과 자신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앨마 2세도 역시 부친의 말씀으로 인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앨마서36:17) 내가 이처럼 지은 죄를 기억하며 고난을 받고 있을 때, 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구속하시러 세상에 내려 오시리라고, 나의 부친이 사람들에게 예언한 말씀을 들었던 일을 기억하였느니라.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앨마 2세와 이노스는 모두 부친으로부터 가르침 즉,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주님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데 있어서, 부친의 말씀은 그들을 끌어 올려 주는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말씀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마치 씨앗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우리의 자녀들이나 회원들, 또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변화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뿌려진 그 말씀들을 싹 티우게 즉,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빈아다이의 말씀을 당시에는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오직 한 사람 앨마 1세는 그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열매가 거두어졌음이 몰몬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사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기억이라는 단어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단어요 프로그램입니다. 일지를 쓰는 것은 바로 이 중요한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을 읽는 것이나 일지를 쓰는 것이나 그 목적은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니파이는 (니파이 이서33:1)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야기 할 때에는, 성령의 권세가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을 전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그 말씀에는 특별한 권세가 함께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전해지는 말씀은, 인간의 영혼에 오래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권세, 바로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영과 함께 전해지는 모든 말씀들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일컫는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4:4)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영양에 떡이 필요하듯이 영혼의 영양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영감 받은 훌륭한 말씀은 우리의 굶주린 영혼을 채워주며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단단한 토대 위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항상 가르치거나 가르침 받으면서 교회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빼고는 교회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말의 교회라는 단어에도 가르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고린도전서 12:28) 라고 말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도와 선지자의 부름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사의 부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여러 부름 가운데 교사의 부름은 가장 중요한 부름입니다. 모든 부름 받은 역원은 교사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거의 모든 부름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임무입니다. 맥케이 대관장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책임은 없습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1916 10, 대회보고, 57) 라고 하셨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대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스테이크 부장님, 감독님, 그리고 지부장님, 교회에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 회원 대다수가 교회에 와서, 공과 반이나 모임에서 빈번히 [영감 받지 않은 채]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삶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유혹을 받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영으로 감동 받고 양육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효과적인 교수법은 영으로 감동되고 양육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종종 회원들을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일합니다만, 그런 후에 그들이 와서 무엇을 얻는지를 충분히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에드워드 엘 킴볼 편저, 1982, 524)

이점에 대해서 힝클리 대관장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효과적인 교수법은 교회 내에서 매우 중요한 지도력의 본질입니다.  모든 남녀가 효과적인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훈육 시킬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강제로 의로움이나 천국으로 데려 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인도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곧 가르침입니다. (지도자로서 가르쳐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교사가 되는 방법, 1969년 2월 5일, 총관리 역원 신권 임원회)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뿐입니다.  첫째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권세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으로 감화되어 전해지는 간증입니다.  간증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말씀과 함께 주어지는 권세인 바로 이 간증인 것입니다.  간증이 함께 할 때 그 말씀은 받아 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도록 도장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교리와 성약42:14) 영을 받지 못하면 가르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가르침에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이 바로 영의 권세, 또는 개인적인 계시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 즉, 선물입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러한 도구가 없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향을 미치는 가르침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배움[학습]은 하늘로부터 [오는] 영적인 자극을 받지 않고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홀런드 장로, 성도의 벗, 98 7월 호, 26)

 

제가 선교사업을 했을 때 저의 첫 임지인 포항에 도착하여 선교사로서 맞이한 저의 첫 전도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날 구도자와의 약속이 모두 연속해서 셋 있었습니다.  선교사업을 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대체로 처음 만나는 구도자와의 약속 중 50% 이상이 바람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날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나왔습니다.  동반자가 외국인이었기에 토론의 많은 부분을 풋내기 선교사인 제가 담당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구도자와의 토론이 끝난 후 저는 제가 참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기도할 곳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결국 교회 화장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곧 이어 두 번째 구도자와의 토론이 끝났지만 이 역시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세 번째 토론인 이 날의 마지막 토론이 끝났을 때 저는 선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저의 첫 전도날인 이날 저는 큰 교훈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있었던 구도자와의 마지막 토론에 대해 저는 제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기도를 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대체적으로 성공했다.

간절한 기도는 우리가 주님의 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에 그 임무에 임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제이 루벤 클라크 부대관장님은 말씀하시기를 회원들은 영적인 것들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복음을 배우기를 원하고 있으며, 복음이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것이기를 원합니다. (제이 루벤 클라크 부대관장, 1938년 8월 8일, 브리감 영 대학 하계 학교에서 행한 말씀)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이끌려 갑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우리 교사들에 의해 가르쳐지는 참된 복음의 진리가 사탄의 것보다 복잡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회원들 앞에 설 때 그들에게 의심을 씨앗이 될 만한 애매모호한 교리나, 개인적인 견해 등을 가르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것을 함부로 다루어 사람들이 그것에 걸려 넘어지도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칼은 의사가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해치게 되는 무서운 도구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이러한 날카로운 칼에 비유하셨습니다. (교리와 성약 6:2) 보라, 나는 하나님이니, 내 말을 들으라. 내 말은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어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나니, 그러므로 나의 말에 유의하여 들을지어다.”

잘 가르쳐진 말씀은 한 사람의 영혼에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사는 자신의 부름이 얼마나 중요한 부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밧줄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공과를 잘 준비하십시오.  경전에 바탕을 둔 설교를 하십시오.  계시된 교리를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진심에서 우러난 간증을 하십시오.  기도하고 실천하며 여러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관리 모임[, 회장단 모임이나 감독단 모임 등]에서도 계시의 말씀처럼 서로 가르치고 선도합시다. (성도의 벗, 1998 7월 호, 27)

가르치는 자나 듣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되는 일이, 바로 교사의 부름임을 간증 드립니다.  가르치는데 수고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우리의 모임과 모든 우리의 메시지에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한다면, 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그러한 일에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간증 드립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5 13, 수원 스테이크, 권선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단 제2보좌, 구승훈 형제

 

 

12. “경전을 상고함

얼마 전에 제가 과거에 암벽등반을 했었다는 말씀을 여러분께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산에서 조난을 당해 죽은 저의 친구인 기철이는 제가 당시에 함께 등반할 때만 해도 매우 겁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그런 그가 후배들을 살리기 위해, 극한 상황에서 모진 애를 쓰다가 탈진하여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진정한 면모는 극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진정한 원리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가식이나 체면이나 자존심, 인내심 등이 설 자리가 없는, 극한 순간이 닥치게 되면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경전을 상고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저축을 하듯이,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꾸준히 경전을 읽고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쌓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 시킨다면,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올바른 빛과 가르침에 의해 인도될 수 있습니다.

와드 대회 주제인 니파이일서 19 23절은 “경전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니라” 입니다.  그렇다면 경전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경전은 우리의 가치관과 교리의 분명한 잣대요 기준이 됩니다.  우리는 경전이 있으므로 어떠한 교리나 원리에 있어서도 주저하거나 모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전은 살아계신 예언자의 말씀과 함께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됩니다.

 

둘째. 경전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판단과 의사 결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그 결과로 인해 축복과 고통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험한 세상을 사는데 있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명한 판단력, 의로운 판단력일 것입니다.  힐라맨서 41 14절에는 “나의 아들아, 형제에게 자비로 행하고 공의로 행하며, 올바로 판단하고 계속하여 선행하라. 네가 이렇게 행할진대 너의 보상을 받으리라. 자비가 다시 네게 임할 것이요, 정의가 네게로 돌아가며 의로운 판단이 회복될지니, 참으로 모든 선의 보상을 다시 받게 되리라. 라는 앨마의 권고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로운 판단이 회복된다”는 약속이 귀에 솔깃하게 들릴 것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기도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바로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지혜를 간구해 왔고 이 세상을 살며 현명한 자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간구해 왔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전을 열심히 탐구하고 그곳에서 많은 진리의 말씀들을 배워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84 85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미리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고 끊임없이 너희 마음속에 생명의 말씀을 쌓아두라. 그리하면 필요한 그 시각에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분량대로 말해야 할 말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해야 할 말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결정해야 할 일 들에 대한 영감도 주님께서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쌓아두면 언젠가는 선한 일 또는 축복으로 활용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셋째.  경전을 읽으면 우리의 신앙과 영성이 자라나게 됩니다. 경전을 꾸준히 상고하는 것은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날은 그냥 지나치던 구절이지만 다음에 읽을 때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같은 구절을 계속 반복해 상고하며 명상하게 되고, 그 깊은 맛을 음미하며 읽게 됩니다.  제가 이 세상의 어떤 책 보다 몰몬경을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기 때문에, 이제는 몰몬경의 그냥 지나치던 구절의 배경과 이러한 구절들을 요약하고 기록한 분들의 뜻을 알기 위해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사려 깊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영성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우리의 신앙과 성품이 더욱 온전해지고, 우리의 영적인 역량이 뛰어난 수준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성은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되더라도, 우리를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도록 하고, 어떠한 유혹이 닥친다 하더라도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됩니다.  이러한 힘은 평소에 쌓아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중의 하나가 바로 경전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간절히 기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몰몬경의 선지자 아빈아다이는 노아 왕과 그의 제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사이야서 13 11절입니다. “이제 내가 남은 하나님의 계명을 너희에게 읽어 주리로다. 이것들이 너희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아니하며, 너희는 다만 반생을 허비하여 간악한 것만을 배우고 가르쳐 왔음을 알았음이로다.  아빈아다이가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일에 항상 꾸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전을 통해서도 주어지지만 주님의 종을 통해서도 주어집니다.  우리의 대관장단과 십이 사도 그리고 주님의 종들인 신권지도자, 즉 신권의 열쇠를 소유한 스테이크 부장님과 감독/지부장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또한 경전을 상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임을 간증 드립니다.

몰몬경과 성경, 교리와 성약과 값진 진주가 영감 받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임을 간증 드립니다.  오늘날 이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지상에 세워진 참된 하나님의 교회임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 5 14, 수원 스테이크 권선와드 대회에서, 2보좌 구승훈 형제

 

 

13. “사랑하는 OOO 형제님에게” (서신)

형제님이 인용한 시

하늘로부터의 아름다움이
거기서 우리를 신성하게 하고
온 세계를 온통 더 찾아보아도
이런 아름다움을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네
가정, 가정, 감미로운 나의 가정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
존 하워드 페인)

형제님의 질문: 왜 아내는 가족을 두고 먼저 가야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자녀들이 앞으로 지닐 질문: 왜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이 경험하는 것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이유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구원의 계획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은 때때로 이루어 지지 않거나 자주 변경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계획도 그러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믿습니다.  그 계획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사랑과 이해심과 거룩한 약속을 믿습니다.

이 글로 OOO 형제님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라지만, 제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 된 후 지금까지 이 땅을 밟았고 다음세상으로 간, 하나님의 자녀의 총 수가 얼마나 될 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많은 영의 자녀 가운데 복음을 알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의식을 받는 축복을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주님의 종이, 얼마나 준비되었고 가르침 받았는지 그 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지상에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성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로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업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DC88:73~75) 보라, 나는 그 시간 안에 나의 일을 서둘리라. 나는 이 마지막 왕국의 첫 일꾼인 너희에게 계명을 주노니, 함께 모이며 너희 자신과 주변을 정리하며 준비를 갖추며 거룩하게 될지어다. 참으로 마음을 순결케 하고 내 앞에서 손 발을 성결케 하여 내가 너희를 순결하게 할지어다. 그리하여 너희가 이 사악한 세대의 피로부터 순결케 되었음을 내가 너희 아버지 곧 너희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 증거하게 하며 내가 너희와 맺은 큰 마지막 약속을 내가 원할 때에 이룰 수 있게 할지어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 성역을 베풀도록 준비시키시는 목적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다음세상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 세상에서 할 일이 무척 많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충실한 영혼이 이 세상 보다 다음세상에 더 필요할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 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의 생은 미리 계획 되었으며 단 하루도 우리 자신의 뜻 만으로 연기 되거나 앞당겨 지지 않음을 저는 믿습니다.

(10:28~3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2차 대전 당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감동적인 영화인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기에 보았는데, 여러 장면 중 한 장면에서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용소에 갇혀 공장에서 경첩을 제작하는 일을 맡은, 전직이랍비인 한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공장에 불시 검열이 있었고, 독일군 장교가 경첩을 제작하는 이 랍비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한 개의 경첩을 제작하는 시간을 체크한 이 독일군 장교는, 이 랍비의 그 날 생산량이 크게 못 미치는 것에 대해 화를 내었고, 그를 즉결 처분하기 위해 공장 뒷편으로 그를 끌고 갔습니다.  랍비는 독일 장교에게 오전에 기계를 조정하느라, 생산량이 못 미쳤다고 해명했지만 장교는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불쌍한 랍비를 무릎 꿇게 한 후, 화가 난 독일 장교는 자신의 권총을 빼 들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하지만 총알은 발사 되지 않았고, 그는 장전을 하고 총알이 있는지를 확인 한 후 다시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발사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몸의 다른 곳에 여분으로 지니고 다니는 또 다른 작은 권총을 꺼내어, 랍비의 머리 뒤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 했으나 역시 총알이 발사 되지 않았습니다.  이 장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결국 총신으로 랍비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났습니다.  랍비는 그때까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영화를 그때 처음 본 것이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이장면이, 그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늘이 원하시면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에 새삼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몰몬경에는 주님의 지도자들을 영접하고 순종한 자들은, 지진이 일어나도 가라앉거나 땅에 묻히지 아니하였고, 깊은 바닷물에 빠져 죽지도 아니하였으며, 불에 타 죽지도 아니하였고, 넘어져 깔려 죽지도 아니하였고, 회오리 바람에 말려 가지도 아니하였고, 암흑의 안개와 연기에 사로잡히지도 아니 하였(니파이삼서10:13)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계획에 관한 지식과 그에 대한 간증은, 공부해서 얻기 보다는 순종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얻은 지식은 단순한 지식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계획의 핵심입니다. 

의로운 자의 죽음을 우리는 칭송합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전철선로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죽은 한국인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선행을 칭찬하고 본 받았습니다.  선한사람이 다음 세상에서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다만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 까요?

(DC101:12~16) 그 날에 망대 위에 있는 자 다시 말하면 나의 이스라엘은 모두 구원을 얻으리라. 또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자들도 모일 것이요, 또 지금까지 애통하던 자들도 모두 위로를 받을 것이요, 나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는 모두 면류관을 쓰리라. 그러므로 시온에 대하여는 너희 마음을 놓을지어다. 모든 육체는 내 손안에 있나니,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

어쩌면 우리가 이 생에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은 축복을 받기 위해 경험해야 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고통 끝에 아이를 출산하듯이, 위대한 희생에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시련을 겪은 후에야 축복이 임하리라(DC103:12)고 말씀하셨습니다.  OOO 형제님과 가족이 겪는 고통은 그 누가 보아도 커다란 희생이며 고통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은 아브라함이 신앙으로 그 일을 견뎠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님이 겪는 경험은 거룩한 경험이며, 성스러운 경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셉 스미스께서는고난을 영광으로 여김이 바울과 같이 된 줄로 아노라"(DC127:2)고 말씀하셨습니다.

(DC98:12~14) 하나님께서는 충실한 자에게는 규칙에 규칙을,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주실 것이요, 나도 너희를 시험하여 이로써 너희를 증험하리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나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는 다시 찾으리니 곧 영생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원수를 두려워 말라.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이미 나의 마음에 정하였음이니, 곧 나는 모든 일에 너희를 시험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의 성약을 지키려 하는지를 알아보아, 너희가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하노라.”

우리가 10, 100년이 아닌 영생을 바라보고 생각할 때, 우리의 고통은 잠시 뿐이고, 언젠가 우리 모두 이 모든 고통과 고난의 짐을 벗고, 편히 쉬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이 끝나게 될 때 주님의 다음 약속이 이루어 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DC98:3) “…너희에게 고난을 겪게 한 모든 일은 합동하여 도리어 너희에게 유익이 되고 나의 이름에 영광이 되리라….”

저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포함되었고, 우리는 이러한 섭리를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경전의 여러 부분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저는 이 약속이 진실됨을 알고 있습니다. 

(DC76:5~10) 주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느니라. 나 주는 나를 두려워 하는 자에게 자비로우며, 은혜를 베푸나니, 끝까지 의와 진리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 저희 상은 클 것이요, 저희 영광은 영원하리로다. 또 저들에게 모든 비밀을 알려주리니, 곧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장차 미래에 이르기까지 숨겨온, 나의 왕국에 관한 모든 비밀을 알려주며, 나의 왕국에 관계되는 모든 일에 대한 나의 뜻을 알게 하리라. 참으로 영원히 놀라운 일도 저들이 알게 될 것이요, 장차 있을 일 곧 여러 세대의 일까지도 내가 저들에게 보여주리라.

그리하여 저들의 지혜는 커질 것이요, 이해력은 하늘에까지 미치리니, 저들 앞에서는 지혜로운 자의 지혜가 소멸될 것이요, 분별력이 있는 자의 이해력이 없어지리라. 이는 나의 영으로써 깨닫게 하며, 나의 권능으로써 나의 뜻의 비밀, 곧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인간의 마음에 들어와 본 적도 없는 것들을 저들에게 알려줄 것임이니라.”

우리가 신권 소유자로써 충실할 때 하늘이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를 주시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OOO 형제님의 충실한 생활과 모범에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며 이 모든 일을 알게 해 주실 날이 올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저의 글이 형제님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님의 고뇌에 찬 질문에 제가 모든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신앙과 주님의 약속으로 이 모든 일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스미스 대관장께서 드린 다음 기도를 형제님을 위해 드립니다. (DC109:75~76) 죽은 자를 위하여 나팔이 울릴 때에, 우리가 당신을 맞이하러 구름 가운데 붙들려 올라가 주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하옵소서. 또 우리의 옷이 깨끗이 되게 하시며, 의의 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머리에는 영광의 관을 쓰고, 우리가 겪은 모든 괴로움의 보상으로, 영원한 기쁨을 거두어 들이게 하옵소서.”

형제님의 모든 괴로움의 보상으로 주님께서 영원한 기쁨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01 3 24 복음 안에서 하나된 구승훈 형제

 

 

14. “달란트를 남김” (25:21)

요즈음 많은 기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퇴출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부도가 나고 또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직장을 잃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효과적인 조직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존재 목적 중에 하나는 이익을 내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교회나 가정,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단체나 조직은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익은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돈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모든 성과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발전하는 것, 조직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 지는 것, 조직에 효과적인 데이터가 쌓이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 말일 성도들은, 조직과 개인의 성과에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간에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는 것, 사랑이 자라남, 일에 의욕이 넘침, 신앙이 자라남,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되어 단합됨, 소망이 넘침 등이 그것입니다.

말일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복음의 원리들을 이해하고, 이러한 결과가 이루어 지도록,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운명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돈을 버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많은 선한 일들을 소홀히 하고, 원칙을 무시하고, 불법을 행할 때, 성도들은 흔들리지 않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마음속에 원칙과 계명이 자리잡고 분명한 가치관이 정립된 사람은, 그 영혼의 중심이 매우 안정된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세상의 교훈과 편법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가정, 교회, 직장에서 이루어야 할 성과를 생각할 때, 우리를 붙잡는 장애 요소들이 몇 가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장애들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항상 우리와 맞부딪칠 것입니다.  그러한 장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어떠한 일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우리의 죄'일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심신을 연약하게 만듭니다.  죄는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때까지,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서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으며 발전할 수 없습니다.  감옥과 지옥의 가장 큰 형벌은 자유의지의 구속이 아니라,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의 박탈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미혹하고 유혹하는 것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TV, 라디오, 비디오, 영화, 인터넷, 신문, 잡지, 심지어는 아이들의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보고, 듣고, 읽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우리가 피해야 할 미혹의 요소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 우리가 몸 담고있는 모든 조직의 발목을 붙잡는 지뢰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피해야 하며 지뢰를 제거하듯이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구약성서에 애급에 팔려갔던 요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려가 주인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치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 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하니]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39:7~12)

요셉이 도망한 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지만 후에 애급의 총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했고, 그의 부친과 가족까지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많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유혹을 받았으나 듣지도 않았고, 그 여자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여자가 적극적으로 유혹했을 때 요셉은 뒤도 안보고 도망쳤습니다. 

 

우리 말일성도 모두는 요셉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보아서는 안될 것에서 채널을 돌리고, 마우스나 ESC키를 통해 빠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미혹할 것들을 빌리거나 구입해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종하며 자유의지를 올바로 행사할 때, 하늘은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보고, 요셉처럼 우리와 우리가족을 축복하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죄와 유혹에 빠져 고통과 후회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러한 분들께 주님의 자비로운 계획을 한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기가 넘어진 뒤에, 다시 일어나는 것을 포기한다면, 결코 걷는 것을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넘어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넘어져 고민하고 있는 그의 자녀들을 돕기 위해,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속의 희생과 회개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계획의 핵심입니다.

보라 인간이 회개하면 고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이미 고난을 겪었느니라. (DC19:16)  회개하면 고난을 받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전능하신 주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죄와 그 결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회개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 죄의 짐과 고난을 짊어 지시겠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지혜와 진리의 길에서 멀어지도록 유혹하는 죄와 함정이 주변에 놓여 있다면,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곳에서 영향을 받아 고통을 겪고 계신다면, 전능하신 주님께서 선포하신 다음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보라 인간이 회개하면 고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이미 고난을 겪었느니라.

우리가 경전을 상고하고 예언자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영적인 기초, 즉 영성의 첫번째 발전 단계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죄와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다음에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 내기를 기대하고 계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일에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하늘의 천군과 천사가 우리를 돕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앞에 앞서 갈 것이므로 너희 오른편이나 왼편에도 있으리라. 나의 영은 너희 마음에 있겠고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 주리라.” (DC84:88)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선한 것들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책을 읽고, 기도하고, 선행을 베풀며, 여러분이 부름 받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와 선행에 미소와 축복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는 것이, 곧 자신의 발전의 지름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조직과 개인은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언젠가 퇴출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루어낸 성과의 양에는 연연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정체 되지 않으며, 아주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있다면, 영원한 시간에 비추어 보아 많이 이룬 자나 적게 이룬 자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같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섯 달란트를 받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모두 똑같이 축복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25:21,23)

우리 모두가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그와 같은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1 3 11, 수원 스테이크장단 메시지, 2보좌 구승훈 형제

 

 

라)    말씀 및 간증 기록 모음 (2001 10 ~ 2005 6)

1. “스테이크장으로 부름 받던 날” (2001 10 27~28)

지난 이틀간 나에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지난 토요일 수원 스테이크 대회가 시작 되었다.  방문하신 총관리 역원은 북 아시아 지역 회장이신 도널드 엘 홀스트롬 장로님과 지역관리 역원이신 고원용 장로님이시다.  고 장로님은 내가 침례 받을 때 스테이크장이셨고 또 우리부부의 결혼 인봉을 집행해 주신 분이시다.

토요일 아침 8부터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번 대회는 지난 약 9년 반 동안 수원 스테이크장으로 봉사하신 이용환 부장님이 해임되고 새로운 스테이크장단이 조직되는 대회이다.  이를 위해 스테이크내의 신권 지도자들을 접견하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접견이 있었다.  오전 9부터 시작된 접견은 저녁 9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오전 접견이 끝나 방문하신 역원들과 부장단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이부장님이 나에게 이층으로 올라가 홀스트롬 장로님을 뵈라고 하신다.  이미 나와의 접견은 끝났는데 왜 부르실까? 하면서 올라가 두분 앞에 마주 앉았다. 홀스트롬 장로님께서는 나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 보셨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간증을 전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나의 개종 시에 있었던 회개와 평안의 경험을 간증과 함께 전했다.

잠시 후에 홀스트롬 장로님은 정색을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시온의 수원 스테이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대관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지시에 따라 이 스테이크를 재 조직하라는 임무를 받았으며, 금식하고 기도하며 여러 형제들과 접견을 하였고 심사 숙고한 결과 형제님이 적임자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놀라 잠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분들께 말씀 드렸다.  주님께서 저와 같은 자에게 왜 이렇게 대하시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선뜻 부름을 수행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이 부름이 어떠한 부름인지 보좌로 일하면서, 또 그 동안 스테이크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면서 잘 보아왔기 때문이다.

두 분에게 내가 합당치 않으며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씀 드렸다.  나보다 더 잘 준비된 형제가 있을 것이라며 마음에 생각한 형제님을 추천 드렸다.  그러나 두 분의 결심은 단호한 것 같았다.  나는 두 분에게 만약 내가 이 부름을 받아들이도록 선택된 자라면, 왜 주님께서 사전에 나에게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다고 말씀 드렸다.  두 분은 자신들이 처음 스테이크장으로 부름을 받을 때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나에게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직 이 부름의 크기와 나의 준비되지 않은 상태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접견 때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 부름을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제가 확신 할 수 있다면 이 부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잠시 기도해 보겠다고 말씀 드렸고 스테이크장실 옆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잠시 명상하는 가운데 갑자기 아내와 큰 딸을 데려와 이 두 분과 접견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경황이 없어 기도의 응답은 기대할 수 없었다.  돌아와 이 사실을 말씀 드리고 오후에 아내가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교회에 오니 그녀를 접견해 보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두 분은 이제 오후 모임시간이 임박하니 만약을 대비하여 스테이크장단 보좌를 선택하라고 말씀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구본철 형제님에 대하여 고려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두 분께 박삼곤 형제님을 추천해 드렸다.

 

오후 모임이 시작되었다. 신권 역원회 모임이다.  모임 내내 나는 나에게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생각했다.  이용환 부장님은 '그 동안 스테이크 장으로 부름을 수행하면서 알게 된 것들'에 대한 말씀을 전해 주셨다.

고 장로님은 야곱서 2 6,7 10_11절을 인용하시면서 우리가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에 대하여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말씀하라'고 하셨다.  성도들에게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담대한 신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또 서울의 어느 형제의 말을 인용하셨다.  나는 만약 나의 아들이 매일 충실히 세미나리에 참석한다면 그가 어떤 대학에 가든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아버지로써 말씀 드립니다.  계시록 3:20을 인용하시며 주님께서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기도하고 경전을 읽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참된 의미에서 개종되어야 성도들이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말씀을 더함으로써 어떤 주님의 자녀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홀스트롬 장로님은 기쁨은 오직 한가지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은 계명에 따라 충실하게 생활함으로써 얻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모임이 끝난 후 나의 아내와 함께 다시 스테이크장 실에 앉아 두 분과 접견시간을 가졌다.  두 분이 아내에게 나의 부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보니, 갑자기 숨이 막힌듯한 모습을 보인다.  아내는 놀라워하며 우리가 참으로 준비되지 않은 가정이라고 말하며 두려움을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말씀이 두 분으로부터 주어졌고 아내는 계속하여 두려움을 나타내었다.  나는 아내와 같은 심경이라고 말씀 드렸다.

그런데 홀스트롬 장로님께서 정색을 하시면서 나에게, 형제님이 부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두 분에게 저는 여태껏 저에게 주어진 부름을 한 번도 거절해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 부름을 거절한다면 저에게서 축복이 거두어 진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두 분은 우리가 부름을 거절한 것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순간 나의 마음이 답답했다.  방을 나왔고 두 분은 계속하여 다른 형제들을 불러 접견을 하셨다. 약 한 시간 정도 여러 명의 형제들이 접견실을 드나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복도에서 이용환 부장님이 나에게, 구부장님이 적임자이신데 라며 내가 부름을 거절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길래, 부장님께 저는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고 다만 두렵다고 말씀 드렸다고 했다.  부장님이 반색을 하며 그렇습니까 하시면서 다시 두 분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셨다. 저녁 모임이 시작되었다.

조강제 부장님과 오산 와드 상호부조회장인 최진옥 자매님의 말씀에 이어, 고 장로님은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가정임, 가족의 복음의 표준에 따른 충실함의 정도가 교회 발전의 척도임, 초등회 달성증서, 아론 신권 달성증서 청녀 나의 발전 기록부 등을 언급하시며 말씀해 주셨다.  또한 잠언 20장을 인용하셨고, 몰몬이 10살 때 기록을 받은 것을 언급하시며 교회의 청소년들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모든 모임이 끝난 후 고원용 장로님이 우리 부부를 부르셨다.  고 장로님은 몇 시간 전에 우리와 접견하면서, 제대로 우리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며, 다시 우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부름에 대하여 질문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주님은 형제님 가족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두 보고 있고 알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그 사실을 모르고 형제님에게 이 부름을 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고 장로님께 주님께서 부르셨다면 이 부름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씀 드렸고, 아내도 그러한 나를 지지하겠다고 두려워하며 승낙의사를 표시했다.  잠시 후 홀스트롬 장로님이 들어오셔서 다시 우리 부부에게 질문을 반복하셨고 우리는 대답을 했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과 상념들이 교차했다.  우리 생활에 정리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왜 주님께서 이처럼 게으르고 준비 안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놀라운 부름을 주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새벽 세시 정도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기도하며 명상하며 보냈다.  그리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의 주님께서는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신데, 그러한 은인께서 나에게 주시는 이 부탁(부름)을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에 생각이 미쳐 심히 통곡하였다.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아홉시경, 교회에서 부장단 내외와 함께하는 모임이 있었다.  해임되는 부장단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시간이었다.  일요 총회가 시작되었고 신권승진에 대한 스테이크 행사를 내가 한 후, 고 장로님께서 스테이크 장단의 해임과 새로운 스테이크장단에 대한 발표를 하셨다.  그리고 해임되는 이용환 부장님과 자매님, 조강제 부장님, 이번에 보좌로 부름 받은 구본철 부장님과 박삼곤 부장님에 이어 나의 말씀이 이어졌다.

모두들 훌륭하게 말씀을 했다.  나의 차례가 되어 단상에 섰다.  몇 분 동안 전혀 주님의 영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횡설수설하며 말씀을 했다.  식은 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회중들에게 주님께서 제가 얼마나 준비가 안되었는지 여러분에게 보이시려 하시는 모양이라고 말씀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말을 한 후에야 조금씩 주님의 영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계속되는 부름 들에 대하여,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항상 부름을 받아들였으며, 그러한 부름 들은 마치 커다란 옷처럼 나의 몸을 그 옷에 맞추어야만 했다고 말씀했다.  그리고 주님의 대속에 대하여 간증하였고, 내가 변화하여 합당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성도들 앞에 다시 설 것을 약속했다.  나의 무릎을 강건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겠다고 말씀했다.  나에게 지금 현재 필요한 것은 주님의 대속의 힘과 회개뿐이라고 말씀하고 내려왔다.

뱅가드 서 선교부장님은 교리와 성약 100 5_8절을 인용하면서 목소리를 높임, 엄숙함과 경건의 느낌, 성신의 증거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고 장로님께서는 앨마서 1장을 언급하시며 우리교회의 원리인 ‘평신도교회의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예언자의 부름을 계승할 때의 이야기를 여호수아 서를 언급하며 말씀하셨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 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여호수아서1 5~9, 16~17)

경전과 지침서가 바로 율법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스테이크 장이 되면 눈물의 선물을 받게 되는데, 기도할 때, 접견할 때, 말씀할 때 등등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눈물은 사랑, 연민, 공감의 눈물이라고 하셨다.

홀스트롬 장로님은 우리의 모든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헌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스테이크의 성공을 위해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조직은 가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대회가 끝나고 이층 초등회 실에서 새로운 스테이크장단 세 사람의 가족이 모두 모였다.  홀스트롬 장로님께서 나에게 부름과 함께 축복을 주셨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곧 평안을 주실 것이며, 이 부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세 사람의 안수가 끝난 후, 아내와 함께 스테이크장 실에서 다시 모였다.  홀스트롬 장로님께서 아내에게 축복을 주셨다.  스테이크장의 아내로서 참으로 잘 준비되어 부름을 받았다는 말씀이 축복 중에 있었다.  내가 생각해 봐도 내 아내의 훌륭함이야 말로 나와 비길 바가 아니다.  모든 순서가 끝난 후 이용환 부장님 댁에서 점심식사가 있었다.

 

아내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정리를 약간 한 후 교회 지침서를 읽기 시작했다.  소파에 누워 지침서를 읽고 있는데 내 마음속으로 깨끗한 생각과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바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앞으로 이 스테이크를 인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날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주님께서 무엇인가 나에게 시키실 일이 있기 때문에, 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러한 부름을 주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이 스테이크의 감리역원이 될 수가 있겠는가.

보좌인 박삼곤 부장님과 구본철 부장님은 참으로 잘 준비된 형제님들이다.  그분들이 가정에 충실하며 신앙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태도와 말씀, 그리고 자녀와 아내의 모습에서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나보다도 훨씬 잘 준비된 형제님들을 모두 제치고 내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나는 주님께서 그분의 일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려 하시는지 약간은 짐작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지하여, 나 자신을 온전케 하고 주님의 영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록 변화하는 것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스테이크에도 필요하다고 주님께서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강조할 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며, 성도들을 격려하여 주님께 가까이 나아오도록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모임에서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사랑과 간증을 강조할 것이다.  성도들의 생활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고백하고 깨끗이 되도록 격려할 것이다.  내가 그러한 일을 먼저 할 것이다.  또한 나의 약점이자 장점일 수도 있는 부분을 활용하겠다.  경전 말씀에 담대하되 지나쳐 남을 위압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나는 나의 담대함이 지나쳐 성도들을 위압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도들에게 용기 있게 주님의 말씀을 외치고 경고의 음성을 드높이겠다.

나의 부름이 신앙만으로 온전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일요 대회에서 이야기 하기도 했다.  많은 성도들과 나의 아내까지 내가 인상이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부족한 것이 미소와 사랑이며 내가 가장 이루기를 원하는 것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했다.

이 부름을 통해 내가 주님께 신앙을 증거하여 보이면, 내가 간절히 구하고 구했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내 자신의 그러한 약점들이 강화되며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의 생활을 정리하겠으며 변화시키겠다.  이 변화는 변화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써 주님께로부터 오는 말씀과 영감을 받아들이는 도구로써,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추기 위함이다.  오래 전에 나의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처럼 주님께서 부르실 때를 대비하여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은 그대를 불러 더 훌륭한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느니라.  너는 너의 손을 정결히 씻고 내가 너를 불러 시킬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1987년 5월 20일 일 중에서)

위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열심히 회개하고, 준비하고, 정리하고, 조직해 나가겠다.  오래 전부터 리더십과 관련된 책들을 열심히 탐독하고 연구해 왔는데, 이제 그 지식들을 활용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동안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느껴왔던 시온의 조직의 아름다움과 그 온전함, 그리고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편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주님의 영감과 인도로써 오직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이 일들을 풀어나가겠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

이 부름에서 해임될 때, 나도 이번에 명예롭게 해임되신 이용환 부장님처럼 해임될 것을 목표로 하겠다.  온전치 못한 우리 가정에 질서를 세우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  이것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특권이자 축복이다.  주님께서 우리가족에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와 축복을 동시에 주신 것이다.

나에게 부름은 늘 이런 식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부름을 수행하기에 부족함을 느끼지만 신앙으로 부름을 받아들이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보좌일 때는 뒤에 부장님이 든든하게 버티고 계셨기 때문에, 때로 게으르고 나태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나의 뒤에는 주님만이 계실 뿐이다.

2001 10 28, 수원 스테이크 구승훈 형제

 

2. “부름에 임하며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새로 부름 받은 스테이크 장으로서, 여러분의 신앙과 지지에 감사를 드립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부름에 임했었지만, 이제 주님께서 저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전해드립니다.  이제 두려운 마음이 모두 사라졌으며, 주님께서 지금 현재 계속하여 저를 가르치고 계시며, 교훈을 주고 계심을 말씀 드립니다.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토요일 저녁, 방문하신 총관리 역원으로부터 부름 지명을 받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제 마음에 떠 올랐던 몇 가지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겸손 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실 것이요, 네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교성112:10)  제가 겸손할 때 주님이 이 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여러분께 전하고, 여러분의 충실함을 주님께 알려드리는데 있어, 참된 종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스테이크를 인도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주님이시며, 제가 그분의 사업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저의 손과 발을 정결히 씻고 주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낱낱이 수행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이 직분이 참으로 중요한 직분임을, 한동안 곁에서 지켜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왜 저와 같은 자에게, 이 부름을 주시는지 알기 위해 많이 생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께서 무엇인가 저에게 시키시려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제 마음가운데 떠 오르는 생각들을 종합해 볼 때, 주님께서 이 스테이크와 회원들에게 무엇인가 변화를 바라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테이크는 강하게 되어야 하며, 훌륭한 지도력이 발휘되어야 함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 사업은 주님의 사업이며, 결코 실패하거나 좌절되지 않을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 대회 때, 지역관리 역원이신 고원용 장로님께서 권고해 주신 말씀 가운데,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분은 야곱서의 말씀을 언급하시면서 가르쳐야 할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주님의 종으로써, 여러 신권 지도자와 회원들에게 권고해야 할 것들을 말씀드리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할 때, 저는 담대하되 지나쳐 남을 위압하지 말라 는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전임 스테이크 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주신 이용환 형제님을 항상 기억하며, 그분의 사랑과 모범을 배우도록 노력 할 것입니다.  최근 저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알기 위해 매일 아침 신약성서를 읽고 있습니다.  경전을 읽으며 명상할 때 주님의 영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스테이크가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제가 이 부름에서 성공해야 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 한 사람의 부름의 성공과 관련된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테이크 회원 모두의 영적, 세상적인 복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있어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거나, 직장에 변화가 있을 때, 학업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 결혼, 출생, 사망 등 인간관계에 변화가 있을 때 우리의 삶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교회를 옮기거나 부름이 바뀔 때도, 이에 못지 않은 영향이 우리의 삶에 다가오게 됨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스테이크의 환경을 바꾸고 개선하는데 신앙을 행사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름을 영화롭게 할 때 큰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 스테이크에 참으로 잘 준비된 훌륭한 회원들과 지도자들께서 많이 계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신앙과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행사하신 것과 같은 지도력을 행사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제 개인의 생각이 아닌 주님의 뜻을 여러분께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축복문 중에 그대는 이 땅에 오기 이전 하나님과 함께 살던 의로운 영이었느니라.  그대는 망각의 장막을 거쳐 왔으므로 전세에서 살던 일을 기억치 못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시며 그대를 사랑하고 계시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에게 닥친 이 부름을 생각하며,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제가 한 때 주님과 함께 하던 의로운 영이라는 말씀에 큰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의 상태나 과거의 상태 보다도 훨씬 영원한 관점에서,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좀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앨마의 말씀 가운데 너희의 신앙은 잠들어 있느니라"(32:34)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부름을 주신 주님께서, 저를 포함한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울 것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일에 주님의 대업에 부름을 받기 위해, 전세에서부터 예임되고 준비된 의로운 영들임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노력할 때 전세에서 이룬 것 보다 훨씬 더 의미있고 보람된 일을 바로 지금 이 시기에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 데 일군은 적(9:37)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많은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이 일들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의 헌신과 노력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는 저의 개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난 대회 때 여러분들 앞에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제가 많이 회개하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여러분 앞에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회개하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를 드리자고 제언 드립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도구가 되어 이 훌륭한 대업에 동참하고 있음을 기뻐합시다.  우리를 낙담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의 위대한 사명을 생각할 때 현재 우리의 어리석음과 잘못은 회개할 때 곧 용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주 이시며, 바로 우리의 이러한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짊어 지시고, 우리에게 화평과 평안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 고통을 당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구원의 의식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도자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이야 말로 주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을 보살피도록 부름 받은 참된 목자들임을 간증드립니다.  제가 이 부름을 받고 저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주님의 권세를 생각할 때, 이 사업이 참된 주님의 사업이며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주님께서 관여하시어 축복하실 수 있도록, 신앙을 행사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주님께서 현재 저와 함께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함께 하시리라는 사실을, 저는 지금 전혀 의심치 않고 있으며, 전혀 두렵지도 떨리지도 않는 가운데 담대하게 간증드립니다.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간증드립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참된 교회입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말일의 예언자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1 11 11, 권선와드 성찬식에서 수원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 “간절한 마음” (17:11)

사도행전 17 11절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하여 드릴 오늘 말씀의 주제는 간절함 입니다.  주님께서 미 대륙에 부활하여 방문하셨을 때, 모인 백성들 앞에서 기도를 세 번 연속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니파이 삼서 19장에 세 차례에 걸친 주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19절에 예수께서 저들 가운데서 좀 떨어진 곳으로 나아 가시어 친히 땅에 엎드리어 이르시기를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27절에 예수가 저들에게서 돌아 서시어 또 다시 저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아버지께 간구하여 이르시기를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31절에 이에 다시 예수께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시어 아버지께 간구하시었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 대륙에 방문하신 주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완전한 영광을 받으신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 위하여, 조금 떨어진 곳을 기도할 장소로 택하신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기도 하시고자 하실 때,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장소를 필요로 하셨을진대, 온전하지 못한 우리가 개인적으로 매일 주님께 드리는 기도를 위해,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십니까?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경전의 말씀처럼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했거나,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의 없이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기도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언부언 하는 장황한 기도와 마찬가지로 응답을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보좌에 곧장 올라 갈 수 있는 강력하고도 간절한 기도(10:4, 9:23)가 되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드리신 기도의 모범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누가복음22:39~46)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도 제자들 곁을 떠나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을 찾으신 것과,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힘쓰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라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가능하다면 개인 기도할 때 옆에 가족이 있는 장소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려 하는 것 보다는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별도의 장소로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나지막한 소리를 내어 기도하시도록 권고 드립니다. 일어나 기도하라 자세를 올바로 하며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좀더 간절해 지고,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됨을 여러분들 앞에 간증드립니다.

누가복음 21 34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말일성도로서 우리가 조심할 것은 방탕함과 술취함 보다는 생활의 염려로 인하여 우리의 영성이 무디어 지고 둔해지는 것일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의 집으로 초대받아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로 마음이 분주해져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을 보고 주님께 나아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10:38~42)  말일성도로서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다가는 한 가지도 제대로 잘 할 수 없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우리가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 한 것부터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2 26절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 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라고 주님은 권고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다른 큰 일들을 염려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16: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감독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작은 일들을 맡기실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와 같은 말씀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와드가 수원 스테이크의 진정한 모범이 되는 와드로써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부터 충실해야 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고로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라.  너희는 위대한 사업의 기초를 닦고 있음이라.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 (교리와 성약 64:33)

12월은 주님께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달 입니다.  우리의 가르침과 말씀에서 주님의 말씀이 좀더 자주 인용되고 가르쳐 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에 그분에 대하여 이렇게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 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없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17:27) 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경전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 우리의 삶의 지침이 되고 등불이 되며, 우리를 안내해 줄 열쇠가 담겨 있음을 간증드립니다.  제가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30분 동안 신약성경을 읽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저의 부름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단순한 일 임을 저는 잘 알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에서도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일과, 주님께 말씀 드리는 일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해 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살아 계신 예언자에 의해 인도되는 참된 교회임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1 12 9 신풍와드에서, 수원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 “감사를 표하는 것은 사랑의 위대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1년 수원 스테이크 대제사 정원회 모임 말씀

일주일 전 토요일에 20여년 동안 계속 만나고 있는 고교 동창생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이 계속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불과 몇 년의 학창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참석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입니다.

오늘 저녁 모든 모임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저는, 예전에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함께하던 몇몇 형제 자매들을 만나는 모임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나는 형제 자매들을 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 또한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 같습니다.

얼마전 신풍와드 침례식에서 임부택 형제님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라는 주제로 훌륭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감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나온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4 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려 원할진대 그 일에 부름을 받나니 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일을 좇을 때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성도의 벗 79 10월호 54페이지에 자발적인 충동이 의무감 보다 더 강해질 때까지 사람들은 조국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기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 비로소 의무는 훌륭하게 완수되는 것입니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신권 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제 축복문에 여러분들에 관하여 의로운 지도자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저는 우리 수원 스테이크 내에 참으로 의롭고 충실한 신권 소유자들께서 많이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선행으로 인하여, 이 지역에 교회가 설립된 후 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스테이크가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동기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기뻐하는 동기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계명에 순종할 때, 그의 순종은 신앙에서 비롯된 동기입니다.  신앙으로 순종할 때 하늘이 기뻐하십니다.

약속이 따르는 계명을 지키며 하늘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건강과 함께,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와 감추인 보화까지 찾으리라는 약속이 담긴 지혜의 말씀이나,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곧이 없을 정도로 축복을 쏟아 부어주시겠다는 십일조의 법을 지키는 동기는, 의로운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또한 하늘이 기뻐하시는 동기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가장 기뻐하시는 동기가 하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가장 훌륭한 동기는 사랑입니다.

 

감사를 표하는 것은 사랑의 위대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신뢰를 표하는 것도 사랑의 속성가운데 하나 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권과 그 부름을 생각할 때 주님의 사랑과 신뢰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랫동안 귀하게 쓰시고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신, 그분의 종이신 이용환 전임 스테이크장님과 우리가 함께 하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용환 전 스테이크장님께서 전에 우리들에게, 감사패를 받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올 축복을 받을 기회를 잃어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수고하신 이 부장님께, 아마 주님께서 이러한 작은 선물보다 더 훌륭한 축복과 평안을 주시리라 저희들은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을 여러분들을 아실 것입니다.  나 주 하나님은 끝까지 의와 진리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

이제 이 모임에서 주님께서 이용환 부장님을 존귀하게 해 주시고 계심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저희 수원 스테이크의 현임 역원들은, 오랫동안 수고하시고 명예롭게 해임되신 이용환 전 스테이크장님께서, 저희 스테이크의 회원들을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하시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회원들을 대표하여 저희의 이름을 적어 작은 기념품을 드리고자 합니다.

작은 액자에 저희의 감사의 뜻을 적었으니 감사패라 생각지 마시고 부담 갖지 마시고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심으로 저희의 사랑과 감사를 담아 드립니다.

 

감사의 글

초대 수원 스테이크장으로 오랫동안 훌륭하게 봉사하시고, 저희들에게 참된 주님의 종으로써 모범을 보여주신 이용환 형제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형제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듯이, 저희들과 이 스테이크의 모든 형제 자매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라면서, 회원들을 대표하여 저희의 사랑과 감사를 담아 드립니다.

2001 12 9

수원 스테이크 대제사 정원회 모임에서

초대 수원 스테이크 이용환 부장님의 봉사기간

1992 5 24 ~ 2001년 10월 28일 (9 5개월 4)

스테이크 현임 역원

스테이크 장 : 구승훈, 1보좌 : 박삼곤, 2보좌 : 구본철

집 행 서 기 : 성용헌,    : 임부택, 보조서기 : 장시성

 

 

고등평의원 : 이영희, 최원표, 이중영, 김학문,   , 허충석,

남경현, 신건만, 황재상, 구윤성, 박상원, 황종원,

스테이크 선교부장 : 허정도

 

신풍와드 감  : 권영준,       권선와드 감  : 안재혁,

율전와드 감  : 김현수,       매탄와드 감  : 오정오,

오산와드 감  : 김재광,       평택지부 지부장 : 강재성

안성지부 지부장 : 이승호,       용인지부 지부장 : 곽영헌

 

  모두 감사합니다 라고 함께 외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선물을 전임 이용환 부장님께 드리면서 먼저 외치면 여러분도 따라 외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신권과 그 직분은 더욱 위대한 것임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대속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가 지금 이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부름 받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_

2001 12 9, 수원 스테이크 대제사 정원회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5.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하심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강하니라.(고전1:25)

고린도전서 1 2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 일까요?  하나님이 어리석고 약하신 경우가 있습니까?  이 말씀의 뜻을 풀이하기 위하여 저의 경험 한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선교사업 2년 동안 가가호호를 많이 했지만, 가가호호를 통해서는 오직 단 두 명만을 침례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구미에서 봉사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목포에서 구미로 발령을 받아 도착하여 새로운 동반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 동반자로서 처음으로 전도하는 날 이었습니다.  도착한 날 짐을 풀고 저녁에 전도하러 나가자고 하니까, 동반자가 처음에는 저를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마 도착한 날이니까, 전도하지 않고 집에서 쉬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에게 나가자고 하니까, 그는 마지 못해 저를 따라 왔습니다.

 그에게 무슨 전도를 하겠느냐고 하니까, 그가 저에게 제 마음대로 하라고 퉁명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가호호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그는 이런 저녁시간에 가가호호가 되겠느냐며, 마지못해 저를 따라 왔습니다.  구미지부 근처에 있는 주택들 몇 채가 있는 곳을 목표로 하고 첫 번째 집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어떤 독신 형제에게 교회를 소개하고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소책자와 몰몬경을 두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형제가 제가 구미에서 첫 번째로 침례를 준 형제였습니다.

 부산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동반자가 바뀌어 다른 장로님과 임시로, 저녁시간에 잠깐 동안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그에게 무슨 전도를 하겠느냐고 제가 물었을 때, 그 장로님은 퉁명스럽게 제 마음대로 하라며 별로 상관하지 않겠다는 눈치였습니다.  가가호호를 하자고 하니까, 그 장로님은 이런 저녁시간에 가가호호가 되겠느냐며 불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를 데리고 부산 온천와드 근처에 있는 주택가 한 구석을 목표로 하고, 첫 번째 집을 두드렸습니다.  어떤 독신 자매가 나오길래 그녀에게 문간에서 교회를 소개하고, 소책자와 몰몬경을 주었고 자매 선교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날 일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발령을 받아 이동간 지역에서, 선교사들이 함께하는 대회가 있었는데, 그날 저와 함께 가가호호를 했던 장로님이 간증시간에 일어서서 간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간증하면서 저와 함께 가가호호로 방문했던 그 자매님이 얼마전에 자신에게 침례를 받았고, 그 당시 저와 함께 전도하면서 저에게 가가호호가 이런 늦은 시간에 되겠느냐며 불평했던 것을 사과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눈물을 많이 흘리며 간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함은 하나님의 종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1절에도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6절과 27절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에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은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돋보이게 됩니다.  약하고 부족할수록 우리의 신앙을 개발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을 행사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작은 짐인 것 같습니다.

 몰몬경에는 이러한 신앙을 행사하신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니파이는 자신의 인생의 시련과 어려움에 주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셨는지를 회상하면서 니파이서를 기록했습니다.  니파이일서 1 20절에서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사 강하게 하시어 마침내 스스로를 구할 수 있게 하셨음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

 니파이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지 우리는 몰몬경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금판을 가져오는 것, 광야를 여행하는 것, 배를 만드는 것, 약속의 땅에 도착한 이후에도 니파이는 많은 시련을 겪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니파이이서 33 3~4절입니다.

 그러나 나 니파이는 기록할 바를 기록하였으며, 이를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며, 특히 나의 백성들에게 소중한 것이라 여기는도다.  이는 낮으로 나의 백성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며, 밤이면 저들로 인하여 나의 베개가 눈물로 적셔짐이라.  또한 나는 하나님께 신앙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며,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어 주실 것을 아는도다. 

 또 주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나의 기도를 성별하실 것을 내가 알며, 내가 기록한 바 나약한 것들을, 저들에게 강하게 전하실 것을 내가 앎은, 나의 말이 저들에게 선한 것을 권고함이며, 저들의 조상에 대하여 알게 하며, 예수를 전하여 저들로 예수를 믿게 하며, 끝까지 견디어 영생을 얻도록 권고함이라.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는 말씀을 이제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권세를 드러내시려는 주님의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의 짐 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이런 짐을 짊어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 7절에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과 하나님의 능력은 보배이지만, 우리 자신은 질그릇이라는 바울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그릇은 가장 투박하고 못생긴 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투박한 그릇에 보배를 담는 것을 즐겨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을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린도 후서 1 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라고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고난을 견디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참고 넘어가며,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6절에는 이 위로가 너희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로써, 우리가 받는 모든 고난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참을 때 우리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한 희망의 밝은 빛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느니라.  너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며 끝까지 참을진대, 보라 아버지께서 이르시어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니파이이서31:20) 니파이의 말씀입니다.

 오직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주님께로 좀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 주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권능과 권세로써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요 구속주이심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길 빌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1 12 23, 수원 스테이크 율전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6.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은 후 에라야 증거를 얻겠음이라.(이더12:6)

얼마 전에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활동과 모임을 각 와드/지부에서 가졌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저의 딸 아이가 저에게 돌멩이에 아빠 사랑해요 라고 써서 선물로 주는 것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이런 선물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선물이 매우 비싸고 좋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파우스트 부대관장님이 성탄절 기념 모임 말씀을 하시며, 그의 자녀들 중 하나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졌을 때, 작은 돌멩이 들에 색칠을 하여 선물로 부모에게 가져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파우스트 부대관장님은 이 작은 돌멩이들을 여러 해 동안 간직하면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부모에게 감사를 표한 아들 내외를, 오랫동안 기억했다고 합니다.  저도 제 딸아이의 돌멩이 선물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 바치는 우리의 감사와, 정성과 희생이 더욱 값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동전 한 잎을 바친 과부가, 가진 재산 모두를 바친 것이며, 가장 많은 헌금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헤아리시는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6 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은 또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한다](고후4:17)고 말씀하였습니다.

 

제가 스테이크장으로 까지 부름을 받아 여러분들 앞에 섰지만, 이제 내년에 이르러서야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현재 저는 성균관 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원에 오게 된 동기도 학업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학번은 81학번이고, 내년에 졸업하게 되면 20년 만에 졸업하는 셈이 됩니다.  나이가 들어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참으로 좋은 경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기에 학부모님들께서 많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학 입시를 몇 년 앞둔 청소년들의 학부모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 부모님들과 청소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 승영의 고리라는 주제로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오래되신 회원들은 그 말씀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 드린다면, 청소년들이 신학연구원 세미나리 과정을 마친 후, 먼저 선교사업을 나가고, 그 다음 결혼하고, 그 다음에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가지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저는 제가 뜻하고 원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인생이 킴볼 대관장님이 권고하신 것과 같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 앞에 말씀 드립니다.

현재 저는 건축 분야의 기술 서비스를 하는, 작은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의 주요 거래처는 정유업을 하는, SK글로벌 이라는 회사와 LG칼텍스 정유라는 회사입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자영업을 한 지 이제 7년이 되었습니다.  이 두 회사를 위해 제가 하는 구체적인 일은, 이들 회사에서 집행하는 시설관련 연간 수 백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문을 하는 일 입니다.   공사를 발주하기 전에 도면을 보고 예산을 산출합니다.  그 예산을 기준공사비로 정하고 입찰을 하게 되는데, 제가 산출한 공사비에 가장 가깝게 공사비를 써 내는 업체가 낙찰됩니다.  낙찰된 업체의 내역을 제가 검토한 뒤에 공사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SK는 요즘 잘 나가는 대기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한 대 기업에서 왜 저와 같은 작은 회사에, 입찰의 기준이 되는 예정가 산출 업무와, 검토 업무와 같은 중요한 업무를 외주로 주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 커다란 대 기업도, 정직한 사람 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관여하기 전에 직원들에게 많은 비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즉 입찰 관련 비리입니다.  예정가격이 사전에 누설되고, 그것으로 속칭 떡값을 챙기는 직원들이 있었나 봅니다.  설계사무소를 통해 SK와 거래하다가, 그곳 직원들의 신임을 얻게 되어 이러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회사에 제안서를 내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귀사의 담당 직원을 통해, 이러한 제안서의 제출에 대하여 제안을 받았을 때, 귀사의 저에 대한 과분한 신뢰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기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미흡한 제게 지금까지 귀사의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인, 예정가격의 산정 업무와 그 평가 업무를 맡겨 주신 것에 대하여,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제가 관련된 이 업무에 있어 그 어떤 사람, 어떤 업체의 비판과 평가도 겸허히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통해 배울 자세가 되어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00년 2월 15일, SK글로벌㈜에 제출한 용역 제안서 중에서)

입찰이 2 라면, 저는 한시 반까지 제가 산출한 내역과 예정가격을 SK 임직원에게 제출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저의 금액을 개봉한 뒤, 업체의 내역을 개봉하여 낙찰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과 관련하여, 이러한 입찰에 참여할 때마다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이러한 입찰 과정의 중요한 일을, 저 같이 작은 회사에 맡기는 SK도 대단한 회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저를 매우 신뢰하고 있습니다.

저를 모르는 다른 직원이, 이렇게 입찰할 때 만약 저 사람(저를 지칭)이 예가를 누설한다면, 낙찰자가 바뀌게 되는데 그런 것이 염려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를 아는 임직원이 이렇게 저를 변호해 주었습니다.  구 실장님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라.  몇몇 건설회사가 저에게 로비를 시도했다가 호되게 당한 후로는, 별다른 유혹도 없는 상태이며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 회사들은, 제가 이 대기업에 무슨 큰 백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앞에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두 회사에 아무런 백도 연줄도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신뢰 받는 것이 사랑 받는 것 보다 행복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에 함께하신 주님께서, 만약 저의 자녀들도 저처럼 인도 해 주신다면, 우리 자녀들이 대학에 가든지, 못 가든지 전혀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노자에 대하여 강의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대학을 가게 되든지 염려하지 말고, 일단 아무 대학이나 가서 공부할 의욕이 생길 수 있도록 하면, 나중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감명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치과 의사가 한 분 계신데, 이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의과대학을 나오신 분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치과업을 개업하려고 검토하고 있는데, 미국 사람은 한국의 이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도 모르고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우리가 좋은 대학을 가려고 아우성 치는 요즘의 현실이 마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이 들어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는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학교의 졸업장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언자께서 학업을 계속하라고 권고하신 것은, 직업과 생업을 선택하는데 있어 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하고자 함입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애를 쓰다가, 신앙을 잃어버린 학부모 한 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말일성도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대로, 세상의 시류를 따라가려고 애쓰다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101 39~40 절입니다.  사람들이 나의 영원한 복음에 부름을 받아, 영원한 성약을 맺을 때에는, 저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인간의 맛으로 인정되나니, 인간의 맛으로 불리우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세상의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보라 그 후에는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의 발에 밟힐 뿐이니라.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때가 되면, 우리가 누릴 모든 축복을 우리를 위해 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많은 시련을 겪은 후에야 축복이 임하리라.(교성103:12)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더서에서 모로나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비록 보이지 아니하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부정하지 말지니,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은 후 에라야 증거를 얻겠음이라.(이더12:6)

축복은 많은 시련과 고통 뒤에 찾아오게 됩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말일성도는 세상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 살아가는 것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간증 드립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간증 드립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인내로 견디는 굳건한 말일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이 참됨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우리의 위안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1 12 30, 수원 스테이크 매탄 와드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7.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역원 훈련 모임에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모인 것은 처음 봅니다.  충실한 여러분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3개월 여 전에 부름 받으며 회원들 앞에서 약속했던 일이 오늘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전서 12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섯 가지 정도가 더 있지만, 편의상 세 가지만 기억하도록 합시다.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이 구절과 관련하여 우리 역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세가지 사항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도는 성령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자 입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 입니다.  고린도전서 12 3절에서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라고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우리 역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교회 모임과 말씀과 가르침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 이심을 강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구세주의 희생과 대속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몰몬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또 다른 증거임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우리가 세상과 싸우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모범과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 역원으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간증을 지닐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역원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간증입니다.

 

둘째는 선지자요, 선지자에 대하여 암몬이 림하이 왕을 가르친 훌륭한 말씀이 몰몬경에 있습니다.  (모사이야서 8:17~18) 그러나 선견자는 과거사와 장차 이를 일을 알며, 선견자를 통하여 만사가 계시되고, 온갖 은밀한 일이 밝혀지고, 감추어진 것이 빛 가운데로 드러나며, 알려지지 아니한 것이 알려지고, 앞으로도 알려지리니, 선견자로 말미암지 않고서 알려질 길이 없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사람이 신앙을 통하여 위대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으니, 참으로 선견자는 자기 동포에게 크나 큰 유익을 주나이다.

부름을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분이, 바로 우리의 살아계신 예언자이신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이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부른 신권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주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지, 사람들의 뜻을 주님께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지난 10월 반 연차 대회가 끝난 후, 총관리 역원들이 따로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몇몇 지역에서 십일조를 바치는 성인 회원의 수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는 한, 결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조직에서 십일조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회원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한, 활동회원으로 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회원들이 십일조를 낼 수는 있지만, 자신의 먹을 양식을 해결할 수 없다면, 먼저 십일조를 내고 먹을 것은 감독님에게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회원들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금식헌금을 내야 합니다.  이제 지금 제가 여러분께 예언자의 권고의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선지자처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부름과 관련하여,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개인적인 계시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고전14:3~4)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edifying of the church)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교회의 덕을 세운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영이 풍성하게 임할 때 교회가 빛나게 됩니다.  그러한 자리가 바로 참된 교회의 증거가 됩니다.  모든 역원들이 자신의 부름과 관련하여 신중하게 준비하여 영에 충만할 때, 교회의 덕(Edifying)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갈라디아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 즉, 영으로 인해 깨달은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50 2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으로써 말씀을 받아 들인 자가 진리의 영이 전파하시는 대로 받아 들임을 이해하지 못하며 알지 못함은 무슨 연고뇨? 이 말씀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면, 진리의 영을 통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자가,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되겠느냐?라는 뜻입니다.  22절에는 그런고로 전파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는 서로 이해하나니, 둘은 다 덕으로 인도되며(be edified) 함께 기뻐하느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것, 이것이 역원이 지녀야 할 두 번째 자질입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히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깨닫고 영혼으로 알게 된 지식을 회원들에게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교사요,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교사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역원이 지녀야 할 세 번째로 중요한 자질은 잘 가르치는 것 입니다.  가르치는 능력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역원으로써 우리는 좀더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자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잘 해 왔습니다.  하지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훌륭해 질 수 있습니다. (리아호나 2002 1월 호 6페이지,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전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빛과 지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에서는 참된 지식이 전달 되지 않습니다.

(교리와 성약 43: 8, 9) 내가 너희에게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함께 모였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나의 교회를 인도하며, 내가 준 나의 율법과 계명의 요점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알 수 있도록, 서로 가르치며(INSTRUCT) 선도하라(EDIFY). 이같이 너희는 나의 교회의 율법에 정통하게 되며, 너희가 받은 것으로써 거룩하게 되며, 또 내 앞에서 모든 행위를 거룩하게 할 의무를 지라.  모든 교회 모임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1) INSTRUCT: 가르치다, 교육하다, 알리다, 전하다, 지시하다, 설명하다, 명령하다

2) EDIFY: 선도하다, 교화하다, 고양시키다, 들어올리다, 덕으로 인도하다, 깨달음을 주다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단순한 가르침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전달하고 지시하고, 설명하는 쪽으로만 흐른다면 충분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선도하는 것 즉, 교화시키고 고양시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올리는 요소가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모임에 이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성찬식, 주일학교, 신권회, 상호부조회, 청남, 청녀, 초등회 등 모든 모임에, 이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가르침만으로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변화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간증과, 영적인 요소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북아시아 지역 회장님이신 홀스트롬 장로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역원으로서 여러분들이 회원들 앞에 서게 될 때, 영적으로 잘 준비해서 단순한 지침이 아니라, 교화(Edify)될 수 있는 훌륭한 말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도널드 엘 홀스트롬 장로, 2001년 12월 16일 훈련모임)

 

이제 역원들이 지녀야 할 세가지 중요한 자질에 대하여 정리하겠습니다.

1. 모든 모임과 가르침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하여 강조하며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2. 예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개인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3. 가르칠 때 더 잘 가르칠 수 있고 교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말씀을 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이제 우리 수원 스테이크의 2002년 목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스테이크의 올해 목표는 아름다운 스테이크를 만들자 입니다.  아름다운 물건들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보석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매우 희귀한 물건이며, 반짝거리며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장소를 우리는 가보고 싶어합니다.  그곳에 있게 되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곳에서 더 있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저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제가 존경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는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테이크를 한 번 몸을 담으면, 떠날 때 아쉬운 마음에 울면서 떠나는, 사랑하는 스테이크로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한 번 모이면 헤어지기 아쉬운 그러한 모임들, 의무감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충실한 역원들이 많은 스테이크, 이러한 상태가 바로 시온의 스테이크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관련 성구는 교리와 성약 82 14절입니다 시온은 그 아름다움이 더해져야 하고, 거룩함이 더해져야 하고, 그 경계가 넓혀져야 하며, 그 스테이크는 강하게 되어야 함이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시온은 마땅히 일어나 그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하느니라. 

스테이크는 물리적인 조직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결심을 강하게 하는 것, 바로 우리의 스테이크를 아름답게 하고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목표아래, 올해는 우리 스테이크 산하 모든 역원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고 결심을 새롭게 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4 40절에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행하는 역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신 예언자 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요 구속주 이심을, 저는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간증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2 1 13, 수원 스테이크 역원 훈련 모임, 전체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8. “신약 성경 읽기 목표” (서신)

사랑하는 수원 스테이크 형제 자매 여러분

저에 대한 여러분의 지지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부름 받은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30분씩 시계를 보아가며 경전을 읽는 가운데, 신약성경을 모두 읽었고, 오늘 아침까지 값진 진주를 모두 읽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저는 구약을 읽을 예정입니다.  제가 4대 표준 경전을 모두 다 읽게 되면, 매일 30분씩 경전을 읽을 경우 모두 며칠이 소요되는 지, 회원 여러분들께 보고를 드릴 생각입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경전을 읽는 가운데, 이 일이 제가 이 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말일의 경륜의 예언자이신 요셉 스미스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저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우리들의 마음이 열리고, 경전이 우리들의 이해력 앞에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전에는 우리가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여러 심오한 구절들의 참 뜻과 의도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 스미스 2 74)

경전을 읽는 것이 생활화 되지 않고는, 우리가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시험과 도전들에 맞설 용기와 신앙을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전을 읽는 것과 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고하고 영감을 받고 있는 경전이야말로, 고대의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들의 삶의 기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일지를 열심히 쓰시는 분들은 모두 경전을 열심히 상고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고유의 명절인 구정을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새해는 4월 초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새해는 구정인 것 같습니다.  이미 2002년 새해가 시작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구정이 진정한 설날로써, 우리가 나이를 더 먹고 새해 뜻을 품는 날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전반기 스테이크 대회 4월 둘째 주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스테이크 대회 전까지, 구정 날 새해 아침부터 약 2개월 남짓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 스테이크 장단은 스테이크의 성도 여러분들에게, 2개월 동안에 매일 30분씩 신약성경을 모두 읽으실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많이 생각하고 명상하면서 읽는 가운데 85일이 소요되었습니다.  아마 60일 이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신약 성경은, 이번에 대한 성서 공회에서 새로 펼쳐낸 개역 개정판 한글 성경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아시겠지만 우리교회의 공식 성경은 킹 제임스 역 성경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킹 제임스 한글 번역 성경이 출간 되었고 제가 그 책을 구해 읽어 보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회원들이 지니고 있는 개역 한글판 성경은, 출처가 불분명한 번역판을 이용하여 아주 오래 전에 번역된 성경입니다.  현재 교회 신권지도자들은 한국에서 사용할 공식 성경으로, 이번에 새로 나온개역 개정판성경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판 성경을 구해 신약성경을 읽었는데, 개역 한글판에 비하여 별로 많이 수정한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은 감명과 감동으로 신약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개역 한글판성경에는, 많은 참조와 밑줄 및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어, 성경을 바꾸는 것이 저에게는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을 개역 개정판으로 읽고 나니, 성경을 바꿀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개조 제 8조에는 우리는 성경이 정확하게 번역된 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또한 몰몬경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로 나온 개역 개정판 성경을 제가 읽으면서,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정확한 번역이 참으로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였고, 많은 영감과 새로움을 제게 느끼게 해준 개역 개정판 성경을 이용하여, 회원 여러분들께서 스테이크 대회가 있기 전까지, 신약성서를 읽으시도록 권고 드립니다. 현재 가먼트 센터 등에서 저렴하게 회원들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혹시 최근 1년 안에 신약성경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값진 진주에 이어 구약 성경을 읽으시도록 대체 목표를 드립니다.  올해 우리는 주일학교 시간에 구약을 배우고 있습니다.  메리온 지 롬니 부대관장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경전을 펼치십시오.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질문을 갖고, 또한 찾은 답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갖고 경전을 상고한다면 더 쉽게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매리온 지 롬니, 리아호나 2002 2월호 13페이지)

올해 우리 스테이크의 목표는 아름다운 스테이크를 만들자 입니다.  아름다운 스테이크는 아름다운 가족과 개인이 모였을 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하고 강해져야, 우리 스테이크가 강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경전을 읽는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러한 책을 읽는 것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13:44)는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값진 진주를 찾는 일이 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또 스테이크 대회를 맞이하는 여러분의 각오와 다짐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대회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대회 전까지 우리의 마음을 정결히 하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약성경을 상고하는 가운데, 여러분들께서 구세주와 사도들의 성역과 모범에 감동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기대어야 할 분이 누구 이신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임을 간증드립니다.

2002 2 2, 수원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올림

 

9. “지혜의 본질

저희 부모님 세대들은 대부분 사주와 토정비결을 믿고 계십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의 집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제가 어렸을 때 가끔씩 부모님을 따라 에 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희 집안은 조상 대대로 제사를 지내왔고, 며칠 전 구정 아침에도 지냈으며, 앞으로도 제가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제사를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평균적인 한국인들은, 이렇게 무속 신앙과, 불교 사상, 유교 사상이 한데 섞인, 우리나라 만의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순수한 불교도, 순수한 유교도, 순수한 무속 신앙도 없고,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통합된 한국인의 종교가 있을 뿐입니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이처럼 특이한 종교적인 문화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종교와 관련하여 세상 어느 나라와도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인이 기독교 문화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한국적인 기독교로 변질되게 됩니다.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한국적인 개신교로 변화 되어, 다시 이 한국적인 기독교 신앙을 세계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변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종교를 받아들여 자신의 상황에 맞게 편리한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모임에서 어떤 형제님이 영감을 받아, 건설적인 제안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 제안이 우리가 교회에서 배운 원리와 교리에 위배되거나 너무 앞선 생각인지 아닌지를,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판단합니까?  다수결로 정할까요?

해당 모임에 참석한 감리역원, 또는 신권의 열쇠를 지닌 역원이 영을 분별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최종 결론은 감리 역원이 내리게 됩니다. 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원리와 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원리와 교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지킨다면, 그 바탕 위에 행해지는 각종 지침과 방침들은, 감리역원의 판단에 따라 상황에 맞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평의회는 감리역원이 배워야 할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입니다.  평의회에 참석하는 역원들은 이를 통해 신권 행정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신권 리더십, 즉 신권 지도력의 원리가 평의회에서 출발합니다.  이 교회에서 감리역원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평의회 입니다.  신권의 열쇠를 지닌 역원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여러분들께서 평의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시기를 저는 기대합니다.

저는 지혜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많이 기도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혜입니다.  경전에 보면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충실한 백성들에게, 너희가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주겠다고 특별한 약속을 하신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솔로몬 왕은 이 때 지혜를 간구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저에게도 무엇이든지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고 말씀 하신다면, 저도 역시 지혜를 간구할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주님께 지혜를 간구해 왔지만, 지혜의 본질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저는 지혜란 제한된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참다운 지혜에는 항상 최선의 결과가 함께 합니다.  그것은 지혜가 이루어내는 결과 입니다.  그럼 어떻게 최선의 결과가 이루어 집니까?  지혜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특별한 원리가 하나 있는 데, 그것은 아브라함 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릇 두 가지 것이 존재할 때에, 그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상위에 있고, 이들 둘 보다 더 큰 것이 존재하느니라. …… 또한 이같이 두 영이 있을진대, 그 하나는 다른 것 보다 더 총명하도다.  그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총명할 지라도, 이 두 영은 시작이 없어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끝도 없고 이후에도 존재하리니, 이는 그노라움 곧 영원함이니라.  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두 사실이 존재하나니, 곧 두 영이 있으면 그 하나는 다른 것보다 더 총명하다 함이요, 이 둘 보다 더 총명한 것이 존재하리라 함이니라. 나는 주 네 하나님이라. 저들 모두 보다 더 총명하도다. (아브라함서316, 18, 19)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 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입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은,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지혜롭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확실히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지혜의 이러한 가장 중요한 속성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을 통하여, 항상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분께서 옆에서 충고와 자문을 해 주신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위대한 과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논문 3(광양자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 이론), 모두 1905 1년 동안에 발표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 죽을 때까지 나머지 생애 약 50년 동안, 이 한해 동안 쓴 논문 보다 낳은,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의 여생에 이룬 나머지 업적은, 모두 이 세편의 논문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그에게, 1년 동안에 특별한 영감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우리도 우리의 인생에서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혜를 한자 사전으로 보면 슬기 지, 지혜 지()자에 슬기 혜, 총명 혜()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래 지혜(智慧)는 불교 용어입니다.  ()는 단의(斷疑), 의심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는 분석하고 분류하고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여행, 46p, 이경숙, 정신세계사, 1999)

사도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말씀 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5~7)

이 말씀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 이 복음이 회복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도 지혜에 대하여 이와 같은 믿음을 지닌다면, 우리 인생에도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지혜가 의심을 끊고 선택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 분들이 경전에 많이 있습니다.  니파이도 그러한 지혜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명하시는 대로 이룰 수 있는 방편을 미리 마련치 아니하시고는 명하지 않으심을 (니일3:7)[안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말씀이 아닙니까?  저는 항상 올바르고 의로운 선택만을 할 수 있다면, 저의 인생이 참으로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오래 전에 한 적이 있습니다.  항상 올바른 결정을 할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저는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반드시 지혜를 구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적어질 것입니다.  또 그 일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우리가 성전에 갈 때마다 받고자 간구하는, 가장 중요한 축복인 빛과 지식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언자 요셉 스미스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령으로써,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성신의 은사로써, 창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 나타내시지 아니하신 지식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교성121:26)  우리가 침례 받을 때 받은 성신의 은사,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빛과 지식의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성신이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 주님께서 관여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지도 못하면서 주님의 영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니파이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놋쇠판을 가져오라는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려 하다가, 두 번 실패했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세 번째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때에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미처 알아 차리기도 전에 영에 이끌려 나아 갔느니라. (니일4:6)  불교의 가르침에서 지혜 혜()자에 선택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행동하는 지혜라는 말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동할 때 영이 함께 하고 영이 함께 할 때 지혜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이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 계명은 우리 말일 성도들을,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 짓는 가장 대표적인 계명입니다.  저는 이 계명이, 우리를 세상의 다른 교회의 회원과도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지혜의 말씀에 약속된 축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와 감추인 보화까지 찾으리니,(교성89:19)

제가 과거에 감히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지혜의 말씀에 약속된 이 감추인 보화를 찾고 싶습니다.  제가 당신께서 명하신 이 계명을 지금까지 충실히 지켰습니다.  이제 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약속을 저에게 이루어 주소서 여러분도 혹시 지혜가 필요하다면, 이 약속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시는 분 이시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드립니다.

결심한 것을 적어놓으면 그 결심이 오래간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간증을 기록하시고, 그 간증을 사람들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부름이 바로 그러한 일을 하도록 주어진 기회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많이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저의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정결하게 되어, 당신의 심판대 앞에 흠 없는 자로 설 수 있도록,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이심을 여러분들께 간증드립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또 우리 죄의 짐을 짊어지시고, 대신 고통을 당하셨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이 사실을 아시는 분들은,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부름과 책임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늘이 기뻐하시고, 우리가 속한 이 스테이크가 진정으로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름다운 스테이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저는 우리가 변화해야 이러한 일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부름 받으면서 여러분들 앞에서 약속한 것처럼, 변화하고 변신하는 스테이크장이 되겠다고 한 것처럼, 여러분들께서 저와 함께 이 변화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진정으로 저에게 이 복음을 알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충실한 가운데 인내하시고 부름에 임하시는, 여러분 모두를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스테이크를 축복해 주시고, 우리 신권 지도자들과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2 17, 수원 스테이크 신권 대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0. “개인적인 계시의 열쇠

장기 놀이에 외통수라는 수가 있습니다.  다른 길이 없고 오직 한가지 방법으로 밖에 둘 수 없는 경우를 말할 때 사용합니다.  말일 성도가 되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고, 부름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외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길은 때때로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위안을 주시며 도와주시는 특별한 길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제가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아 왔지만, 그 가운데 두 번 부름에 주저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 수행했던 지부장의 부름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이 스테이크장의 부름이 저에게 제안 되었을 때 그랬습니다.  그러한 부름이 주어지게 됨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떠 오른 생각은 저의 부족함 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어찌 이러한 중요한 부름에 임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전에도 그러한 생각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모세서 6장에 보면 에녹이 주님께 부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에녹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백성에게 나아가 회개하라고 외치라는 부름을 주셨을 때, 에녹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모세6:31) 에녹이 이 말씀을 듣자 주 앞에서 엎드리어 말하여 가로되, 제가 주의 눈에 들음이 어찐 연고니이까? 저는 나 어린 자요, 말을 더디 한다 하여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오니, 이러 하고서도 제가 당신의 종이오니까?

주님께 부름을 받을 때 온전히 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완전히 떠나 산속에서 도를 닦지 않는 한, 세상에 섞여 사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온전치 못한 면모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사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스트레스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될 때 주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이 시험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주님께서 에녹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모세6:32~34) 내가 네게 명한 대로 나아가 행하라. 그 어느 사람도 너를 해하지 못하리라. 입을 열라. 그리하면 채워져 내가 말하게 해 주리라. 이는 모든 육체가 내 수중에 있어 내가 좋을 대로 행할 것임이니라.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오늘 너희를 지으신 주 하나님을 섬길지 선택하라 하라. 보라, 내 영이 네게 있어 네가 하는 말은 모두 정당하게 해 주리라. 산들이 네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강물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리라. 네가 내 안에 거할 진대 나는 네 안에 있으리니, 그러므로 나와 함께 행하라.

에녹은 주님의 부름을 받은 뒤 큰 소리로 저들의 행위를 낱낱이 꾸짖었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모세6:3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사람들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지도자 자신이 스스로의 행실에서 모범을 보이지 못할 경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지도자는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할 때, 지도자는 주님과 사람들에게 소외됨을 느끼게 되므로 외로울 것입니다.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그들에게 미움을 받으므로 마찬가지입니다.  지도력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 얼마나 인내해야 하며, 얼마나 나의 육신과 마음과 투쟁해야 하는지가, 지도력의 밑바탕에 깔려야 하는 전제 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때 지도력이 온전히 행사될 수 있습니다.  존경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선한 것들이 전해질 때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 친절, 깨끗한 지식 등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에녹이 복음을 전할 때, 그와 함께 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경전을 통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에녹이 부름을 받은 뒤 복음을 전할 때, 그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 중에 그에게 감히 손을 대려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모세6:39, 47) 저들이 그의 말을 들을 때에 손을 대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므로 그의 말을 듣는 자에게는 모두 두려움이 생겼음이라. 에녹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 할 때에 백성들이 떨며 그 앞에 서 있지 못하는지라.

(모세7:13 에녹의 신앙이 참으로 컸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니, 원수가 대적하러 오는지라 그가 주의 말씀을 말하니, 땅이 진동하여 산이 도망가며 강물이 흐름을 바꾸며,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광야에서 들려 모든 민족이 크게 두려워 하였더라.  이같이 에녹의 말씀은 능력이 있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의 능력은 크더라.

주님의 영과 권세가 함께하는 말씀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개심시키고 회개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녹이 이와 같이 말씀의 권세로 계속하여 전파했을 때, 결국은 그의 시대에 거룩한 도시인 시온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공과나 말씀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로써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공과책을 읽고 공부하고 정리하고 마음으로 준비를 갖추고 나간다면, 남은 것은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에녹에게 함께 하신 것과 같은 신권의 권세가 함께 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저는 이 원리가 참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 안되거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때, 실제로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그 일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와 반응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결한 손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 즉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열쇠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써 훌륭한 일을 하려 하면 할수록, 사탄은 우리의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요셉 스미스께서 영국으로 떠나는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주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는 힘도 더욱 크게 나타납니다.

 

교회 회원 또는 역원으로서,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간절한 기도나 간증, 또는 영적인 경험 뒤에 가장 많이 오게 됩니다.  경전에 보면 그러한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힐라맨의 아들 니파이가 정원 탑 위에서 기도하다가 모인 사람들에게 간증을 전했고, 조금 전에 대판사가 살해 되었다는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모든 사건이 종료된 뒤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

(10:1~3) 니파이가 백성들 틈에 끼어 서 있는 동안, 백성들이 각각 여러 파로 나뉘어, 니파이를 홀로 남겨 둔 채 이리저리 흩어져 가는지라.  이에 니파이도 주가 저에게 보여주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저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와 같이 저가 니파이 백성들의 간악함과 암흑의 비밀결사와 살인, 약탈, 그리고 온갖 간악한 일들을 깊이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골똘히 헤아리고 있을 때, 보라 한 음성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골똘히 헤아리고 있었다는 표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뒤에 주님께서 음성으로 그에게 말씀해 주신 것은, 그가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고, 그 약속대로 니파이가 기근을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니파이 인들에게 커다란 기근으로 그들을 치셨고, 백성들은 결국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조셉 에프 스미스 대관장님께서 받으신 시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계시의 과정이 나옵니다.

(교성138:1, 2, 5, 11, 25, 28~29) 나는 내 방에 앉아 경전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였느니라.  내가 깊이 생각한 것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생각이 떠올랐느니라. 내가 읽을 때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다음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느니라. 내가 경전에 기록된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였던지라 나의 이해의 눈이 열렸으며, 나는 크고 작은 죽은 자의 무리를 보았나니, 나는 이상히 생각하였나니,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상히 생각하였느니라. 내가 이상히 생각하고 있을 동안 나의 눈이 열리고 나의 이해력이 새로워져서

계시는 왜 그럴까? 하는 의문, 깊은 생각인 명상, 그리고 영적인 감동을 통해 오게 됩니다.  질문이 있는 곳에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문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위급한 경우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계시가 우리에게 임하는 방법은 깊은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깊은 생각이 개인적인 계시를 가져오는 열쇠인 것입니다.

(교성8:2~5) 참으로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와서 네 마음 가운데 거할 성령으로 네 정신과 마음에 말하리라. 보라, 이것이 계시의 영이니, 보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녀를 인도하여 마른 땅을 밟으며 홍해를 건너게 한 그 영이니라. 그러므로 이것은 네 은사니, 이를 활용하라. 그리하면 복이 있나니, 그것이 너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낼 것임 이니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원수가 너를 죽여 네 영육을 멸망시키리라. 이 말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내 계명을 지키라. 기억하라, 이것이 네 은사니라.   마음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인 계시의 영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사임을 간증드립니다.

이제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하신 권고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시련을 통하여 배우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이것은 이생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은사인 성신의 은사입니다.  이것은 지혜이며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와 값진 보화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활에서 배우는 교훈인 값진 진주입니다.  이런 값진 교훈을 많이 깨달은 자가 부자입니다.

(교성6:7) 재물을 구할 것이 아니요 다만 지혜를 구하여야 하느니라. 보라, 하나님의 오묘하심이 너희에게 알려지리니, 그리하면 부한 자가 되리라. 보라, 영생을 가진 자 그가 곧 부자니라.

영생을 지닌 자가 곧 부자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알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 그의 자녀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지를 깨닫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계시도 금과 같이 값진 것임을 여러분들께 간증드립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계시와 영적인 경험들이 우리의 간증의 기초가 되어야 세상 교훈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흰 옷은 우리의 올바른 행실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회개와 함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깨끗해진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대로 눈처럼 희어지고 양털같이 하얗게 되는 것(1:18)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청결해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올바른 판단력을 상징합니다.  안약은 앨마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다시 회복시켜야 할 의로운 판단력(41:14)을 위한 치료제이며 회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세상 근심으로 인해 둔해지는 것(21:34)이 아니라 늘 영적으로 예민하게 깨어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3:19~21)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충실하면,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우리를 앉히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과 어려움을 우리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손길로 여기고, 겸손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신앙을 행사하는 역원들이 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이 와드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구세주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3 09, 신풍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1.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언 23:7)

 불교나 도가에서 수행하는 것 가운데 참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무념 무상으로 몰입하는 수련인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수행할 때 마음은 잠시도 마음대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생각은 한 순간도 우리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참선은 안 해봤지만 명상을 하면서 그와 같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노력하면 다스릴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다스리기가 힘이 듭니다.  아마 생각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가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경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일어나는 생각으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모든 선과 악이 시작됩니다.

형인 알빈 스미스가 교회가 회복되기 전에 죽었는데, 주님의 품 안에 구원 받는 것을 시현으로 보고, 의아해 하는 요셉 스미스에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성137:9) 이는 나 주가 모든 사람을 그들의 업적과 마음의 소망에 따라 심판하겠음이니라.

소망에 따라 심판한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 동기,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을 지라도 사람은 마음에 어떤 생각을, 어떤 소망을, 어떤 목표를 가졌느냐에 따라 선한 자와 악한 자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의로운 소망도 지나치거나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범주를 넘어서게 되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도나 원칙이나 질서를 무시한 채,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것은 배도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선한 의도에서 그렇게 했을 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그러한 죄 중에 대표적인 것입니다.  앨마는 의로운 소망조차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 자제해야 함을 스스로 깨달았고 소망으로 죄를 범하게 된다(29:1~3)고 기록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온의 스테이크를 인도하는 엄청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대해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우리가 이 부름을 받은 것은, 그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러한 것에 대하여 회원들에게 간증하고 가르치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최근에 소망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제가 신앙도 부족하고 사랑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소망하나 만큼은 넘치도록 지닌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교회 회원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제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한 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훌륭한 경지에 이른 분들을 항상 부러워하며 닮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더 훌륭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닌 소망으로 인해 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제가 회원들에게 신앙을 강조하기 이전에 소망을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제 간증의 기초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제가 온전해 지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저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개선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만약 제가 변화할 수 없다면 저는 오래 전에 교회 다니기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모로7:40~41) 어찌 너희가 소망을 갖지 아니하고서 신앙을 얻을 수 있겠느냐? 또한 너희가 어떠한 소망을 가져야 하겠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부활의 권세를 통하여 영생으로 세우심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니, 이는 약속하신 바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들의 신앙으로 말미암음이라.

모세가 참으로 위대한 예언자였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기적의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베풀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셨고, 인간의 몸으로 바다를 가르는 위대한 기적을 보인 분입니다.  모세의 무엇이 그러한 위대한 신앙의 권세, 기적의 권세를 갖게 하였는지 우리는 경전에서 한 구절 찾아볼 수 있습니다.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위대한 예언자로 세우실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신앙의 일을 할 사람으로 모세를 택하신 것은, 그가 이세상 사람가운데 가장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훌륭한 사람의 뒷면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애통해 하며 주님께 매달려 울부짖는 수많은 기도가 뒷받침 되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푸른 하늘의 태양처럼 빛나는 드높은 절개는,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길러진 것이며, 천지를 뒤 흔드는 뛰어난 경륜도, 깊은 연못가에서 살얼음을 밟듯 조심스럽게 마련된 것이다. (아하 채근담 진동일 도서출판 대흥)

신앙을 지니려면 반드시 소망도 있어야 된다고 모로나이는 가르쳤습니다. (모로7:42~43) 그러므로 사람이 신앙을 가질 진대 마땅히 소망을 가져야 하리니, 신앙이 없으면 아무 소망도 갖지 못함이라. 또한 보라 내가 너희에게 거듭 이르거니와 온유하며 마음이 낮아지지 아니하고서는 너희가 신앙이나 소망을 갖지 못할 것이요. 그리고 신앙과 소망을 갖게 되는 열쇠는 온유하며 낮아진 마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와드 대회 주제 성구를 생각해 봅시다.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구약시대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9:2, 20:7) “…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 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온전해지고 거룩해지라는 이러한 말씀들은 소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온전한 소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사명 선언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축복사의 축복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축복사의 축복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인생의 사명과 목표를 생각하듯이,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가 이루어야 할 삶의 목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온전해 지는 첫 걸음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그 무엇인가가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하여 끊임없이 배우는 교훈과 계명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비행기 교관이 조종학교에서 훈련생들을 가르칠 때, 훈련생과 함께 비행하다가 비행기 기수를 한번에 약 2도씩 기울여서, 마침내 180도로 비행기를 뒤집은 뒤에 훈련생에게 비행기 조종간을 넘겨준다고 합니다. 처음에 훈련생은 비행기가 거꾸로 날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 비행하다가, 나중에 비행기가 뒤집혀 날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비백산하며 교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거꾸로 날 때 조종사 자신은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이 거꾸로 뒤집혀 날고 있거나, 아니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매달 배달되는 리아호나, 한 달이 다 지나 다음호가 온 뒤에도 미처 읽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면,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온전한 것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내 생활이 지금 기울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기도도 하지 못하고 바쁘게 뛰쳐나가고 있다면, 이렇게 생활에 질서가 없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침례 받은 이후로 저는 늘 자신에게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지금까지 생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적인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슬퍼하며 많은 눈물을 흘려 왔으며 애통해 왔습니다.  저는 제가 변하지 못하고 여러분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스테이크를 인도하도록 부름 받은 주님의 종으로써, 저는 반드시 여러분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준비할 것이며, 제 가족을 온전히 하는데 제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어느 날 선교부장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교부장님으로써 가장 큰 책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선교 부장님이 바로 지체 없이 답변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1987년 4월 20일, 선교사 일지)

우리의 가장 큰 책임은 교회 부름도 아니고 직장 일도 아닙니다.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우리 가정에 있습니다. 어느 교회 지도자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자신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것에서 가정을 제외 시킨다면 _ 즉 가정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그때부터 심신의 허약함을 향한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와드 대회 주제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은 바로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가족]도 온전하라. (5:48)

 

오늘 와드 대회의 주제인 온전해짐을 우리와 우리 가족의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고, 이 소망을 항상 기억하며 우리가 죽을 때 까지 계속하여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히시겠다(3:18~21)는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생애 동안 이루는 성품소망언행이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을 아름답게 해주고, 우리가 속한 이 와드와 스테이크를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이 대회를 계기로 올 한해 더 큰 변화와 성공을 이루고, 그러한 것들을 주님께 감사의 기도로써 바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을 지켜보고 계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이 교회가 참되며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요 구속주 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2 3 10, 수원 스테이크 신풍와드 대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2. “다단계 판매업 종사자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취해야 할 입장

오늘 저는 조금 민감한 문제에 관하여 여러분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지난 90년대 초에 다단계 판매업이 합법화 되면서, 교회 회원들간에 많은 불화와 문제가 있었음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최근 이 문제가 다시 우리 스테이크 회원과 지도자 사이에 서서히 표면화 되는 것을 느끼며, 이에 대한 스테이크장으로서의 생각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에서는 물품을 판매하거나 금전거래를 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은 회원들에게 빈부격차에 의한 위화감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상행위 즉, 물건을 주고 받거나 금전거래를 하는 것은, 다단계 판매업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에게 금지된 사항입니다.

만약 어떤 다단계 판매를 하는 교회 역원이 회원에게 권유를 했다고 가정합시다. 이 권유에 앞서 교회에서 모임이 열린 상태이거나, 교회 역원으로서 회원의 가정을 방문한 상태라면 이는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교회 역원이라 할지라도 회원의 가정을 방문하여,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하여 물품구매 등을 권유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러한 자리에서 이것이 교회 역원으로서 또는 방문 역원으로써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권유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가정복음 교육이나 방문교육을 하면서, 이러한 물품 판매 권유를 하는 것은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을 무시한 채, 최근까지 많은 교회 회원들이 다단계 판매업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실패하였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권고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그분들은 간과한 것입니다.  저는 세상일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다단계 일에 손을 대어 성공하기는 힘이 들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성공하는 사람은 대부분 세상 다른 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분들입니다.

교회 지도자로서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고자 하는 회원들을 만류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다단계 업종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러한 판매 행위나 판매원 가입 권유 행위가 야기하게 될 위험성을 해당회원들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물품 판매를 하는 것은 일종의 연고 판매 행위로, 이는 얼마 안가 곧 바닥을 드러내는 원시적인 판매 형태임을 알려야 합니다.  잘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하여 열심히 하는 사람 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실제로 현재 교회에서 활동적으로 부름을 받아 봉사하고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러한 다단계 판매업에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그 분들의 특징은 회원들을 상대로 연고판매에 주력하지 않았고, 열심히 하신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많은 회원들이 다단계의 특징인 빠른 성장의 유혹에 걸려 실패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분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조직을 강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고, 성실히 열심히 많이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일해야 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원칙대로 조금씩 단계를 밟아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을 알리고, 다단계의 특징인 직급 상승의 유혹을 뿌리쳐야 함을 권고하시기 바랍니다.  일확천금, 쉽게 돈을 범, 편하게 수입을 올림 등은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복음의 원리에 어긋나는 일임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의 지도자나 부름 받은 역원이, 이러한 다단계 판매를 회원들에게 권유하고, 그로 인해 회원간에 라인 문제나 금전거래 문제로 불화가 발생하면, 이는 교회 부름에서 해임될 수 있는 중대한 사유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 일에 임하는 회원들에게,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관을 섞어 못하도록 경고하거나 하는 극단적인 권고를 피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이렇게 말씀해야 합니다.

찬성하지는 않지만, 만약 형제님이 이 일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으신다면, 이 일에 참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 말라는 쪽으로 강압하거나 위협을 주어, 회원들이 실망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지도자들은 유의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몇몇 지도자들이, 현재 이 다단계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모든 직업에는 이러한 다단계 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부작용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과 관련하여 정해진 원칙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가 다단계 판매업 종사자든 일반 직장인 또는 사업가이든 관계없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단계 판매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연간 매출액이 총 4조에 이르는 거대한 산업으로 발돋움 했습니다.  몇몇 업체가 성공을 거둔 토대 위에, 많은 업체가 난립하고 있고, 또 많은 업체들이 부작용을 일으키며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업체들의 특징은 소액 생활 필수품 위주로 제품이 구성된 반면, 부작용이 많은 업체들은 비싼 자석 요, 돌 침대, 등 값비싼 내구재 위주로 제품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건 한 개의 가격이 백 만원을 넘어서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러한 제품을 취급하는 다단계 판매업종은, 거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 이 일을 고려하는 회원들에게 그들이 선택하는 판매업체에 대하여 신중을 기하도록 권고해야 합니다.

요약해서 말씀 드리면 다단계 판매업을 고려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다음사항을 권고합니다.

1.       지도자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회원이 실망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잘 격려한다.

2.       열심히 할 때만이 성공할 수 있으므로, 강한 각오로 최선을 다해야 함을 권고한다.

3.       쉽게 돈을 벌려는 유혹을 뿌리치며, 원칙대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임을 가르친다.

4.       연고 판매의 어리석음을 권고하고, 교회에서 또는 교회 역원 자격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며, 불화 발생시 해임의 사유가 된다는 것을 경고한다.

5.       판매업체를 선택하는데 신중을 기할 것을 권고한다.

이상의 지침을 해당 회원들에게 접견 등을 통하여 잘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2002 3 10, 수원 스테이크 감독과의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3.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맹모삼천지교 이야기가 있습니다.  맹자 어머니가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더니 맹자가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면서 놀기에, 시장근처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들이 장사꾼 흉내를 내면서 놀았습니다.  결국 글방근처로 이사 갔을 때, 아이가 공부하는 흉내를 내기에 거기서 계속 살았다는 고사성어 입니다.

孟母三遷之敎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자식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욕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욕,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면, 대학 졸업장은 문자 그대로 큰 배움을 끝내는 졸업장이 될 것이며, 단순히 간판 밖에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오늘날과 앞으로 올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교육은 대학에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이루어 집니다.  우리 말일성도 청소년들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장소는 첫 번째가 가정이고, 두 번째는 교회이며, 세 번째가 학교입니다. 

지난 3월 초, 교회 교육기구 주관하에 브리감 영 대학교 하와이 캠퍼스 직원들이 내한하여, 각 스테이크를 순회하며 노변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모임에서 특별히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을 위해 특별한 정책이 발표되었습니다.  대학입시 때문에 세미나리에 참여를 꺼리는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 및 학부모들을 위해, 세미나리 4년 동안의 출석률이 80%를 넘고, 고등학교 재학 3년 동안 매년 토플시험을 치러 그 성적이 해마다 향상된다는 것만 증명되면, 최종 토플점수나 학업성적에 관계없이 BYU 하와이 캠퍼스에 입학을 허가하겠다는 발표였습니다.

이 발표를 접하며 저는 기쁘기 보다는, 한편으로는 우리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 부모들의 신앙에 대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회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지도자들께서 얼마나 심사 숙고하고 있고, 방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가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낍니다.  또한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영구 교육기금을 발표하신 것이나, 성전 건립에 힘쓰시는 것, 그리고 이러한 교회 교육 기구를 활용하는 방안 등이 발표된 것을 볼 때, 지도자들에게 함께하시는 영감과 주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일본 이와테 현에 산리쿠라는 해안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옛날부터 대규모 진파, 즉 바다 밑 해저 화산 폭발로 일어나는 해일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어온 마을입니다.  이러한 해일을 학술용어로 츠나미(Tsunami)라고 합니다.  이 산리쿠 해안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에 세워진 돌 비석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대규모 해일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들입니다.

그 중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비석들이 있는데, 이보다 낮은 곳에는 집을 짓지 말라라는 경고를 담은 비석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을을 둘러보면 이러한 경고의 비석 아래에 집들이 많이 지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상들의 경고에 따라 비석(진파석) 아래가 아닌 높은 곳에 집을 지은 사람들도 있지만, 바닷가 마을의 편리함 때문에 그 경고를 무시하고 비석 아래에 집을 짓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 세종서적, 2001)

이러한 것은 일상의 편리함 앞에서는 어떠한 귀한 교훈도 먹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경험이 쉽게 잊혀져서 고통이 반복되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자주 보게 됩니다.  몰몬도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크게 한탄을 한 사람입니다.

(12:1~5) 이같이 우리는 인간들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고, 또한 연약하여 변하기 쉬운 것인가를 아나니, 참으로 우리는 주가 그의 끝없이 크신 선하심으로 주를 의지하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오직 주의 백성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만사를 행하시는 그때에, 백성들은 저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저희 주 하나님을 잊으며 거룩하신 이를 발아래 짓밟나니, 이는 오로지 저들이 안이한 때문이요, 크게 번영하는 때문이라.

오 저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헛되며, 간악하고 악독하며, 선은 더디 행하고 악마의 말은 속히 좇으며, 마음을 늘 헛된 세상 것에 두는지고, 참으로 저들은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기를 속히 하며, 뽐내기도 속히 하며 온갖 간악한 짓을 행함에는 속하나, 주 저희 하나님을 기억함이 어찌 더디며, 주의 권고에 귀 기울이며 지혜의 길을 좇음이 어찌 그리 더딘고,

 

최근에 저는 구약 신명기를 읽고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살던 백성가운데,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는 이방신을 믿는 민족(12:29~31)이 있었습니다.  그 이방신 이름이 몰렉(18:21)입니다.  저는 오늘날은 이러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경전 구절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종들이 권고하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 자녀들을 마치 세상의 불길 가운데로 몰아 넣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경고를 듣고도 어리석게 비석 아래에 집을 지어, 해일이 닥쳤을 때 생명과 재산을 잃은 일본 산리쿠 해안의 마을 사람들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의 해일이나 불길에 빠져 죽거나 타 죽게 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훈을 배울 때까지, 주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매를 맞거나 슬픈 교훈을 배운 뒤에야 깨닫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 형제 자매님들이 소개한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우리 청소년들, 바로 우리의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해 주신, 영감 받은 프로그램 들임을 간증드립니다.

자녀를 학교에만 맡기면 학교 교육 시스템의 희생양이 될 것입니다.  자녀를 교회 교육시스템에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보살펴 주실 것이며, 우리가 소망하는 대로 아이들이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든 부모들에게, 맹자 어머니처럼 교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가치관을 심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세상의 풍조와 교훈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시온의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3 10, 수원 스테이크 청소년 특별 노변의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4. “먼저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릇 바깥도 깨끗하게 닦으라” (60:23)

제가 해군에서 복무할 때 구축함을 탔었습니다.  해군은 배 안을 청소할 때 계급에 따라 청소도구를 사용합니다. 병장이 먼저 빗자루를 들고 쓸어나가면, 상병이 대 걸레를 사용하여 갑판 바닥을 닦아나갑니다.  일병은 손 걸레로 배 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습니다.  이병은 대걸레의 물기를 손으로 짜고, 물통에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을 합니다.  해군의 배 안에서는 하루에 약 대 여섯 번 정도 걸레질을 합니다.  천정을 지나가는 배관과 전선 위 등, 모든 구석 구석에 쌓인 먼지를 매일같이 계속 닦고 또 닦습니다.

청소를 하던 저는 걸레질을 하도 해서 더 이상 먼지도 없는데 왜 자꾸 걸레질을 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몇 주 후에 함포 사격 훈련이 있었습니다.  구축함에는 구경 5인치 즉, 125밀리미터 함포가 배 앞과 뒤에 여러 문이 있습니다.  이 함포를 동시에 발사할 때 배가 몹시 흔들리며, 그 충격으로 배 안의 배관과 전선 위에 쌓인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일 계속 닦았는데도 먼지가 그렇게 많이 떨어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제대 후 약 2달 뒤에 선교사가 되어 저의 첫 임지에 도착했습니다. 선교사 숙소에 가보니 싱크대 안에 접시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모든 수저와 접시 등 그릇들이 씻지 않은 채 싱크대 안에 쌓여 있었고, 식사를 할 장로가 그 중에 자기가 먹을 그릇과 수저만 빼어서 씻고, 음식을 먹은 다음 다시 넣어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주님의 영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해군에서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선교사업 2년 동안 열심히 청소하고 쓸고 닦았습니다.  제가 이동 간 숙소마다 선교부 내에서 가장 깨끗한 숙소가 되게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계속하여 닦고 닦아 문자 그대로반짝반짝 광을 내었습니다.

앨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60:23) “이제 나는먼저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릇 바깥도 깨끗하게 닦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이 기억하기를 바라노라.”

 

저는 교회 예배당의 청결상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 의자와 기타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 모임이 끝난 후 교회를 돌아보면, 저는 옛날 선교사 숙소의 싱크대가 생각납니다.  주 중에 계속 이러한 상태로 주님의 집을 놓아두고, 주말에 잠깐 쓸고 닦아 예배를 본 후, 다시 주중에 그러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의 집을 이러한 상태에 놔두고 축복을 구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약의 신명기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땅을 파고 용변을 본 후 그것을 흙으로 덮으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3:14)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최근에 우리는 이곳 스테이크 센터의 보수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은 품위 있고 깨끗하며 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예배를 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책임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마음의 상태가 우리 주변의 환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청결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가운데, 이 교회를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앨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릇 바깥도 깨끗하게 닦으라(60:23)

매주 모임 후 마지막 모임에서, 회원들이 모임 장소를 청결히 해 놓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안식일이라 할 지라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전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불쾌하게 여기시지 않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주일에는 걸레질만 하고 모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의자를 항상 접어 정리하고 물건을 제 자리에 놓고 간단한 청소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맨 먼저 우리의 마음을 청결히 하고, 주님의 집에 질서를 세우며, 그 다음으로 우리의 가정을 깨끗이 하고, 우리가 속한 직장 및 세상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 질서를 세우고자 노력할 때, 주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강하게 증거하시게 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개인과 조직만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평가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계속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그것을 고치고 개선하지 않을 때, 주님의 영은 더 이상 함께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꾸준히 노력하는 개인과 조직에 그의 영을 부어주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스테이크 안에서 열리는 모든 모임 후, 역원들은 적당한 시기 안에 평가 모임을 가지고, 그 평가모임 기록부를 작성하여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성찬식은 감독단이, 신권회, 상호부조회 등은 정원회 및 회장단이, 주일학교 공과는 주일학교 회장단과 교사들이 평가하여 기록을 남기기 바랍니다.  평가방법은 여러분께서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록이 여러분의 와드와 지부의 역사기록이 되게 하겠다고 생각하며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기록들이 우리 모임의 질과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려 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저는 분명히 확신하고 있습니다.

수원 지역에 교회를 설립한지 이제 32년이 흘렀습니다. 스테이크를 설립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이번 스테이크 대회가 수원 스테이크가 서 스테이크에서 분리된 지 꼭 10년이 되는 대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준비할 때입니다. 새벽 시간은 하루의 미래이고 한 달의 시간은 1년의 미래이며, 1년의 시간은 10년의 미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테이크의 발전은 와드/지부의 발전에 그 토대가 있고, 와드/지부의 발전은 개인과 가족의 발전에 토대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강한 결심인 것 같습니다. 저는강한 결심이야말로신앙의 또 다른 표현이며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모든 와드/지부에 목표를 한 가지 드립니다. 지금부터 6개월 안에(10 13일까지) 와드/지부의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시기 바랍니다.  감독단 모임, 와드 평의회, 신권집행위원회 등에서 우리 와드의 10년 뒤의 모습을 그리면서 목표를 설정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합당한 목표를 지닐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허가하시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께서 커틀랜드 성전 헌납식에서 기도하신 말씀 중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교성109:59) 우리는 당신에게 비옵나니, 당신께서 지정하신 이 스테이크 외에 다른 스테이크를 시온에 이룩하게 하사, 당신의 백성의 집합이 큰 권세와 위풍을 가지고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당신의 사업이 의롭게 조속히 완수되게 하옵소서.”

  저희 스테이크장단은 이 시온의 수원 스테이크가, 앞으로 10년 안에 2개의 스테이크로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주님의 사업을 완수하는데 있어 우리가 할 바를 다하게 되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인상 장로님께서 자주 인용하시는 성구가 있습니다.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우리에게는 묵시 즉, ‘비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비전 즉, 분명한 목표와 소망이 없으면, 우리는 방자해 지거나 게을러 지게 될 것입니다.  합당한 목표는 우리에게 올바른 동기를 주며, 우리를 부지런하게 해주고, 분명하게 해주며 또 확고하게 해줍니다. (이더12:4 참조)

이제 오늘 여러분께 모두 3가지 목표를 드렸습니다.

1.  교회 모임 후 곧 바로 주변을 정리하고, 1주일 내내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2.  모든 모임 후 일정 기간 안에, 평가 모임을 갖고 그 기록을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3.  올 하반기 스테이크 대회 이전에(10 13일까지) 감독/지부장님을 중심으로, 우리 스테이크의 모든 와드/지부가 각각 ‘10개년 발전 계획을 수립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업을 축복하시고 여러분의 집에 먹을 양식이 있게 하시고, 입을 옷이 있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감사 드립시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감미로운 열매를 맛보고, 그것을 먹을 수 있는 합당한 성도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합시다.  이 복음 안에서 우리가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은,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흠 없는 자가 되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25:2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대회를 계기로 우리 모두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 좀더 충실하겠다고 강하게 결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의 구속주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가 온전해 질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엄숙히 간증 드리며, 이 모든 것을 저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4 13,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신권 역원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5.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10:4)

어느 날 조셉 필딩 스미스 대관장님께서, 브라질 선교부의 그랜트 뱅거터 선교부장님 부부를 방문하시어, 선교부장님과 교회의 교리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뱅거터 자매님은 스미스 대관장님, 저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남편처럼 경전에 정통하게 될 시간이 없었답니다.  제가 남편과 함께 해의 왕국에 가게 될까요? 라고 대관장님께 질문 드렸습니다.  스미스 대관장님은 잠시 동안 진지하게 생각한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매님께서 남편에게 파이를 구워주신다면 가게 될 겁니다. (결혼 및 가족관계 반원학습 지도서, 62페이지)

오늘 우리가 이 훈련 모임의 주제로 하고 있는 복지 문제는, 사실 그 근본을 따지자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우리에게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스스로 겸손해 지는 자가 복이 있다고 앨마가 말씀했습니다. (32:14~16) 고통과 환난의 채찍을 맞고 회개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나 교훈에서 깨닫고 조심하는 사람이 더 현명한 사람입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평화로운 시기에 주님의 계명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가정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집은 거실의 TV를 치워 없애 버렸고, 인터넷도 요즘 유행하는 초고속 인터넷이 아닌 전화선을 이용하는 인터넷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장은 자녀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스스로 자제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말일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은, 세상에 거하되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생활하기를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독신 시절에 저의 감독님에게 축복을 부탁하여 신권축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축복을 받았는지 지금은 다 잊었지만 한 가지 축복의 말씀만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제 머리에 손을 얹고 하신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대가 살아갈 방법이 다를 것이라. (동 스테이크 미아와드 정중현 감독님에게 받은 축복 중)

십 수년이 흐른 지금 저의 삶을 되돌이켜 보니, 그때 감독님께서 영감을 받으셔서 저에게 축복을 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말일성도들이 살아갈 삶의 방법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환상 중에 그를 방문하여 고넬료야!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에 그가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하고 대답하니 천사가 말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10:2, 4~5)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사도 베드로에 의하여 이방인 중에 맨 처음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하신 천사의 말을 다시 한번 언급하겠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기도뿐만 아니라, 구제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을 울리며, 하늘을 감동시키는 강력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진실로 우리의 행실이 선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복지 문제가 우리의 신앙과 하늘의 뜻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이 우리의 신앙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복지에 앞서 영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배웠습니다.  저는 저의 구속주께서 살아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온전한 구속을 위해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모두 알고 계시며 우리의 약점과 유혹을 모두 알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훌륭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이 대회를 위해 수고하시고 희생하시며 헌신하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속한 이 스테이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므로 반드시 그 방편을 마련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을 저는 의심 없이 분명히 믿습니다.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2 4 13, 수원 스테이크 대회 평의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6. “이러므로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7:47)

제가 오래 전 해군에서 배를 타며 군 복무 할 때의 일입니다.  군 생활 초창기에 저는 몰몬경 읽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당시 졸병이었던 저에게는 친지들로부터 오는 반가운 편지도 마음 놓고 뜯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전을 드러내 놓고 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모두 잠든 뒤에 몰몬경을 내의 속에 품고, 화장실로 가서 양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았습니다.  배가 계속 흔들리기 때문에, 해군의 화장실에는 마치 장애자 화장실처럼 좌우에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용변을 보다가 배가 흔들리면 곤란한 일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한 손으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몰몬경을 펼쳐 읽었습니다.

냄새가 났고 불빛은 희미했으며 배는 계속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일어나 이런 식으로 몰몬경을 읽었습니다.  가장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힘든 군 생활 중에 몰몬경의 주옥 같은 말씀들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저의 신앙생활의 손잡이요 길잡이가 되어 저의 신앙을 지켜주었습니다.  흔들리는 배처럼 우리의 인생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러할 때 경전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쇠막대기요 손잡이가 됩니다.  니파이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 부친이 보신 바, 그 나무로 인도하는 쇠막대기는 무엇을 뜻하느냐?  내가 저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이를 굳게 지킬진대 멸망 당하지 아니하며, 유혹이나 원수의 불길 같은 창도 이러한 자들을 사로잡아 눈멀게 하거나, 멸망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니파이일서15:23_24)

작년 10 28일 하반기 스테이크 대회 아침에, 저는 신약성경 첫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고, 지금은 구약을 읽고 있습니다.  매일 30분씩 지금과 같은 속도로 경전을 읽어 나가면, 아마 올해 10월이 다 가기 전에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스테이크 대회를 두 달여 앞두고, 저희 스테이크장단은 형제 자매 여러분들께 신약성경 읽기 목표를 드렸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이 목표를 달성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미처 시간을 내지 못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 새로운 목표를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내년 이맘때까지 1년 동안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겠다는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1년 동안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계속 읽을 것이고 반드시 이 목표를 달성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 주 전에 율전와드 김현수 감독님께서 공과를 해주셨는데, 감독 부름을 받고 2년 만에 처음 공과를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감명 깊게 공과를 들었습니다.  좀더 자주 감독님께서 가르침을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분의 가르침 중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부부간의 싸움은 사탄이 충동질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서로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악마에게 속한 자니 악마가 분쟁의 아비가 됨이라.  저가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여 서로 성내게 하며 다투게 하는도다. (니삼11:29)

저는 한때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 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미워하기 보다는 무관심 하게 될 것입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상처의 아픔을 간직하고서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화평은 회개하고 용서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 이요(5:9) 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화평입니다. (성도의 벗 1991 11월호, 고든 비 힝클리)

신약성경에는 4대 복음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은 누가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바리새인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 그 동네의 죄를 지은 어떤 여자가 와서, 예수님에게 다가와 울며 주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고,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그 발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이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여자가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빚 주는 사람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그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많이 탕감 받은 자니이다 하니, 주님께서 그에게 네 말이 옳도다 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시몬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7:47)

사랑은 용서를 통해 오게 됩니다. 용서 받은 일이 없는 자는 사랑을 모르는 자입니다. 용서하는 일이 적은 자도 사랑이 적은 자입니다.  올해 스테이크 목표가운데 감사하고 용서하자는 목표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때 사랑이 커질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용서를 구할 때 사랑이 나타나게 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하며 주님께 간구했을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러자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크게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 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12:9~10)

몬슨 부대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장하게 되는 뜻 깊은 기회는 가장 어렵고 힘든 때에도 발견하게 됩니다. 성공을 위한 도약의 기회는 가장 어려울 때 찾을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저는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5:7)

한 사람의 회개가 왜 그렇게 주님께 기쁨이 될까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회개한 사람은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그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가족과 그와 함께하는 많은 주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게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복음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이 나와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격심했는지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22:42, 44)

이제 저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 소망은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을 온전히 지켜 흠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제가 앞으로도 저의 연약함을 천 번 만 번 회개해야 한다면, 저는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길이라 할지라도 회개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것입니다. (고전15:19)

회개한 여인에게 하신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7:47)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저는 저의 남은 생애 동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사명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점점 더 교회가 가족중심의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곳에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 지구대회에서 옥스 사도님께서 한국의 이러한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 대한 통계를 지적하시면서 참으로 기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어린 자녀들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준비시켜야 합니다.

선지자 니파이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하며 예언에 따라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저들이 저들의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니이25:26)

제프리 알 홀랜드 장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라는 부름은 우리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997 4월 연차대회)

저는 저의 부름이 저의 자녀뿐만이 아니라, 이 스테이크에 속한 모든 하나님의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간증해야 하는 부름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형제 자매의 자녀들을 온전히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곳에 아름다운 시온이 건설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를 표하는 것도 사랑의 위대한 속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려고 노력하는 자가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을 구할 때 신앙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아울러 받게 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문둥병 환자 열명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이 고쳐주기를 간청하니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로 돌아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7:11~19)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람에게,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저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 믿음을 지니는데 있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이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참되고 유일하며 온전한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저의 남은 생애에도 자비의 팔로 저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여러분의 삶도 그와 같이 인도되기를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간구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2 4 14,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7.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왕하20:5)

2년 전에 저의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모두 치르고 난 뒤 주님께 기도드릴 때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영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저의 육신의 아버지께서도 하늘에 계시다는 것이 새로운 느낌을 주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육신의 죽음도 일종의 해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바뀌는 것은 마치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것과 같은 충격을 우리에게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지도자가 바뀌는 것을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로 함께 하시던 의로운 지도자가 명예롭게 해임될 때 참으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권영준 감독님께 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보좌로, 역원으로 수고하신 모든 형제님들께도 저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권 감독님은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판사 직을 수행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권 감독님께서 교회 및 세상에서 보여주시는 모범은 우리 말일성도들과 어린 청소년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아울러 자매님의 헌신적인 내조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지자 다니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리게 되리라] (2:44~45)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업에서 주님의 방법에 따라 지도력이 바뀌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참된 교회의 여러 증거 중의 하나 입니다.

지도자가 바뀌는 것은 교회의 역사에 이정표와 같은 것입니다.  과거 신풍와드의 역대 감독님들 한 분 한 분이 모두 신풍와드 역사의 이정표 역할을 하셨고, 이제 권영준 감독님이 그 획을 그으셨습니다.  이제 신임 황종원 감독님이 신풍와드의 역사에 한 획을 더하시게 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신풍와드의 새로운 감독님으로 황종원 형제님을 지지하였습니다.  지도자를 지지하기 위하여 손을 든다는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의 말씀을 하나님을 통해 오는 권고로 생각하고 순종하겠다는 결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께 손을 든 지도자 자신에게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함에 있어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회원들을 이끌고 인도하겠다는 결심을 주님 앞에 나타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감독은 회원들을 위해 서비스하도록 부름 받은 주님의 종입니다.  굶주린 앨마가 앰율레크를 만나 스스로를 하나님의 낮은 종이라고 칭한 것처럼(8:19)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져야 합니다.  제가 스테이크장 부름을 제안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른 말씀은 교리와 성약 112 10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실 것이요, 네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 (교성112:10)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들은 겸손, 믿음, 용기, 질서, 인내심, 자제력, 자비로운 마음, 좀더 충실함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 기도할 말이 잘 생각나지 않을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기도하려 했을 때 시작할 때부터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험을 저는 몇 번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명상하는 가운데 저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네가 해야 할 바를 다한 후에, 다시 와서 기도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 스테이크 대회 때,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 기도뿐만 아니라 구제 즉 가난한 자를 돕는 우리의 선한 행실도 올라간다(10:4)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한 가지가 더 기도와 더불어 하늘에 올라간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유다의 역대 왕 가운데 히스기야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선지자는 이사야였으며 당시에는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몹시 괴롭히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히스기야 왕에게 가서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로부터 곧 죽게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말하며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전갈을 마치고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히스기야에게 다시 돌아가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왕하20:1~6)

간절히 기도할 때 흘리는 우리의 눈물도 하늘에 올라갑니다.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신 것은 굳세고 간절한 마음과 강한 결심이었습니다.  저는 강한 신앙강한 결심과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것들은, 강한 결심과 함께 우리의 신앙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이기면 우리의 삶이 백배 이상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간증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발전 단계는 첫째. 남에게 신세를 끼치는 단계, 둘째.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는 단계, 셋째. 남에게 이익을 주는 단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단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하히 노력하더라도 [우리가 할 바를 다한 후에] 다만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구원 받게 됨을 앎이라. (니이25:23)  부름에 충실하고, 이웃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인 사랑을 배우게 되고, 우리의 기도와 신앙이 좀더 강력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저의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이 복음과, 복음에 대한 저의 간증입니다.

이 간증이 저를 지켜 줄 것이며, 저를 축복해 주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간증을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도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값없이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값없이 받았으므로 또한 값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나의 교회의 장로들아, 들으라. 인간의 약점을 아시며 유혹에 빠진 자를 건져낼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주 너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너희 변호인이 말씀하시느니라.  진실로 나의 눈은 아직 시온 땅에 올라가지 아니한 자를 바라보고 있나니, 그러므로 너희 사명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복이 있나니, 너희의 간증은 하늘에 기록되어 천사들이 볼 것임이라.  천사들은 너희로 인하여 기뻐하며 너희 죄는 사함 받았도다. (교성62:1~3) 성령에 감동되어 전하는 우리의 간증도 하늘에 기록되며 상달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새로 부름 받으신 황종원 감독님을 축복하여 주시고 이 신풍와드를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회원 여러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그분을 지지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신풍와드에 놀라운 발전과 변화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기도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 복음과 교회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구세주요 구속주라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말일의 예언자이심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2 4 21, 신풍와드 감독단 개편을 위한 성찬식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8. “[항상] 죄 사함[이 유지될] 것이라 (모사4:12)

저는 완전한 회개가 무엇일까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진정한 회개의 완성이 언제 이루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침례를 받은 이후 약 20여 년 가까이 늘 생각한 질문이었습니다.  작년에 경전을 공부하면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모사이야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렇게 행할진대 항상 기뻐할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것이요, 언제라도 죄 사함을 받을 것이라 또한 너희를 지으신 이의 영광, 곧 공의로우시며 참되신 이의 영광을 더욱 더 알게 되리니,” (모사4:12)

언제라도 죄 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면 회개할 때마다 계속해서 용서를 받는다는 뜻인가?’ 생각하며 영어 원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영어로는 그 부분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항상] 죄 사함[이 유지될] 것이라. (and always retain a remission of your sins)”

죄 사함을받는 것이 아니라유지, 지속, 간직한다는 뜻인 영어 단어 ‘Retain’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앨마서 4 14절에는 보다 더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가 오실 날을 바라저들의 죄 사유함을 마음에 간직하여’ (retaining a remission of their sins)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으니 …”  ‘Retain a Remission’ ‘사함의 유지사유함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회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은, ‘회개한 상태를 유지하며 다시는 죄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회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개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완전한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죽을 때 회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순간 이미 주님의 대속에 의해 회개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러한 용서 받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회개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는 사탄의 유혹에 의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리의 연약함에 의해 오기 때문입니다.  경전에 보면 위대한 선지자들도 자신의 연약함에 몸부림을 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니파이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하여 거의 절규하듯이 외쳤습니다.

오 나는 불쌍한 인간이로다.  나의 육신이 나를 슬프게 하며, 나의 죄가 나를 비탄케 하는도다.  내가 기뻐하고자 할 때에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마음이 신음하게 되는도다. 나의 마음이 슬피 울며 나의 심령이 슬픔의 골짜기에서 방황하며, 나의 육신이 쇠진하여지고 고난으로 하여 나의 기력이 진하는고?  또한 어찌하여 육체로 말미암아 죄를 지어야 하느뇨?  어찌하여 유혹에 굴하여 악마가 마음으로 들어와 나의 평화를 깨치며, 나의 심령을 아프게 하는고? (니이4:17, 19, 26~27)

사람이 나약하게 창조된 까닭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의 일환입니다. 인간이 연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주님의 종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하나님의 권세가 인간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고후4:7) 입니다.

경전에 보면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온전히 씻기 위해 노력한, 회개한 많은 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남은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 보내었는데, 저는 선교사업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현재 침례 받았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지난 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하게 결심하고, 주님의 종에게 그 죄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침례 받기 전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대속의 경험을 모든 스테이크 회원들 앞에서 간증한 이유는, 저의 가장 소중한 간증을 회원들과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모든 회원들이, 처음에 이 복음을 접했을 때의 심정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온전한 사람은 방금 회개한 사람뿐입니다.

모든 인간의 영은 태초에 무죄하였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타락에서 구속하여 주셨으므로, 인간은 또다시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로, 하나님 앞에서 결백하게 되었느니라.”(D/C93:38)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인하여, 회개한 모든 영혼은 어린아이와 같이 결백하게 되고 순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교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이 교회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이와 같은 소망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냥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정결하게 되고, 성결케 되고 거룩하게 되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몰몬경에 앨마의 아들 앨마 2세와 모사이야 왕의 네 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처음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간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한 후에 어떠한 일이 그들에게 벌어졌습니까?

회개하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된 앨마는 굶주린 채 앰몬아이하 성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길에서 앰율레크라는 자를 만났는데 그는 앨마를 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니파이 인으로, 천사가 시현으로 당신을 내게 알려 주시었으매 당신이 하나님의 성스런 예언자임을 아나이다. (8:20)  나중에 그는 간증하며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주의 천사가 내게 이르러 이르시기를, 앰율레크여 너의 집으로 돌아가 주님의 예언자를 대접하여 먹이라.  그는 성스러운 분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분이라. 또한 천사가 내게 그 분이 성스러운 분이라 말씀하셨으니, 그가 성스러운 분이심을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그렇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라. (10:7, 9)

한 때 간악하기만 했던 앨마가 어떻게 천사로부터 성스러운 분 이라는 칭호까지 얻을 정도로 변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진실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참마음 참뜻으로 회개하고 개심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변화하여 이와 같이 될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이는 경전에 기록된 몇몇 소수의 선택된 지도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참되고 충실한 말일성도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가 소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소망을 지녀야 합니다.  이 소망이 바로 우리를 유혹에서 지켜주고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러한 소망을 지닌 자와 지니지 못한 자는 신앙에서도 크게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강한 소망은 강한 신앙의 기초 입니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절실함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강하게 결심해야 하며 그러한 결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즉, 결심을 유지하고 회개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계속하여 견디어야 합니다.

오직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의 종들이 명하신 일들에 순종하며, 경전을 상고하고 기도하며, 봉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부름을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명하시는 모든 것에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하여야,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정결하게 되고 성결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연약함에 슬퍼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러한 연약함이 저를 겸손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손길이며, 제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앙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좀더 겸손해야겠다는 것을 느낍니다.

진실된 회개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입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회개할 때 주님께서 저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자주 넘어지지만 부모로서 그것을 탓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실수를 눈 감아 주시듯이 주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분 이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면, 그 때 여러분이 알고 실천했던 이 복음의 원리를 다시 기억하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회개의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다고 버겁거나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11:28~30)

복음에 따라 충실하게 생활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과 헌신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벼운 짐이요 쉬운 멍에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어 주시는 짐은 교회에서의 봉사, 가정에서의 사랑, 세상 사람에 대한 사랑 등 우리가 배우고 경험해 가면서 오히려 축복이 될지언정 결코 짐이 되지 않는 것들뿐입니다.

저에게 있어 유일한 짐은 저의 연약함뿐 입니다.  그러나 그 연약함도 연약함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축복의 근원이요 열쇠가 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깨달음과 함께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던지는 질문은 교회 지도자들이 많은 답을 던져 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신앙의 성도들은 자신의 가장 깊은 마음속의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개인적인 계시 등의 도구를 통해 그 답을 주신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개인적인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은 우리의 신앙에 등불이요 간증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결코 매정하게 응대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참 마음 참 뜻으로 결심과 함께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하늘의 의지가 일치할 때 놀라운 축복이 오게 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참되다는 사실과 이 교회가 하나님의 온전한 교회임을 간증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구세주요 구속주 되심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5 25일 토요일, 매탄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19. “그러므로 선을 심으면 선을 보상으로 얻으리라.(교성6:33)

오래 전에 제가 선교사들과 공부할 때, 당시 집회소가 선교사 숙소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작은 전도소였고 이제 막 지부를 조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회원이 되기 전에 저는 선교사들 및 회원들과 함께 새로 얻은 교회 전세 건물에 칸막이를 하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주 작은 지부였습니다.  회원이라고 해야 모두 2~30여명 정도였고 대부분이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아파트 건물에 있었습니다.  1층에는 중국집이 있었고 예배 모임시간에 고소한 자장면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도 했었습니다.  아파트 일부분이 학원으로 개조되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의 아름다운 회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건물이 아니라 회원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친절이 기억납니다.  제가 개종한지 얼마 안되어 복음 지식에 대하여 목말라 할 때, 그들이 저에게 복음 원리를 가르쳤고 이 교회의 제반 관행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항상 그들은 밝은 미소로 저를 대해 주었습니다.  침례 받기 전이나 갓 회원이 된 후나, 그들은 한결같이 저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지부장님은 침례 받은 지 일주일 뒤에 저에게 아론신권을 주셨고, 다시 다음 주에 저를 신권회 교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회원들 앞에 서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제가 성찬식 모임에서 처음으로 회원들 앞에 서서 간증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무슨 간증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제 두 다리가 덜덜 떨렸고 온몸이 떨렸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반원들 앞에 처음 섰던 일이 기억납니다.  무엇인가 가르쳐야 하는데 제가 부족함을 심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주 중에 공과책과 경전을 열심히 읽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공과가 끝나면 회원들이 저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어느 날 당시 스테이크장단이 우리 지부를 방문하셨습니다.  당시 스테이크장님이 지금 칠십인 지역 관리 역원이신 고원용 장로님이셨고, 두 보좌는 나중에 모두 스테이크장으로 봉사하신 구본동 부장님과 김병희 부장님 이었습니다.

당시에 신권에 대하여 공과를 했었습니다.  제가 그 분들 앞에서 우리 교회에는 신권이 둘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앙과 경륜이 깊은 분들 앞에서 공과를 하는데 매우 떨렸습니다.  모든 공과가 끝난 후 그분들이 저에게 악수를 하면서, 웃으면서 아주 친절하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구 형제!  교회에는 신권이 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분명히 제가 공과를 가르치는 도중에, 제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들의 그러한 친절과 사랑이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위대한 설교 보다는 작은 친절과 사랑인 것 같습니다.  복음을 저에게 전해준 선교사들을 추억하며 떠올려 봅니다.  저에게 그들은 마치 어버이와 같은 분들입니다.  저의 부모님께서 저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을 제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선교사들과 함께 공부하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진심으로 저의 복지를 염려하고 있었고, 제가 이 복음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사랑과 회원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과연 제가 이 교회에 개종한 후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속담에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절과 사랑은 마치 전파처럼 이 우주의 끝까지 퍼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신앙도 부족하고 사랑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소망하나 만큼은 넘치도록 지닌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회원들에게 강조해야 할 것이, 신앙이나 사랑보다는 먼저 소망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그러한 일을 하기를 기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간절한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망은 마치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가 나아갈 길을 비추어 줍니다.  소망이 없으면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절망은 죄로 말미암는다(모로10:22)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모든 성도들은 합당한 소망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이 우리의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소망올바른 동기와 행동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기도는 소망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기도도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도, 저는 우리에게 소망의 빛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망은 신앙과 마찬가지로 자라나는 식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계속 물을 주고 가꾸어 싱싱하게 자라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망도 시들어 버리게 됩니다.  시들어 버린 소망을 다시 싱싱하게 해 주려면, 우리는 다시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그것을 가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13:3~9)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길가에 씨가 뿌려졌다는 뜻은, 말씀을 듣고도 전혀 깨닫지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씨가 뿌려졌다는 뜻은, 말씀을 들었을 때는 감동과 기쁨으로 그 말씀을 받아 들였지만, 그 간증과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 고통이 닥쳤을 때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가시떨기 위에 씨가 떨어졌다는 뜻은,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에 빠져, 말씀이 잘 자라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두려움은 대부분, 건강에 대한 두려움, 재물이 부족해 지거나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자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가시떨기처럼 우리에게서 말씀이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을 막게 됩니다.

저는 축복사의 축복에 약속된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곳에 저의 건강에 대하여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대는 강건한 몸을 지니고 이 세상에서 오래도록 수를 누리며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리라.  또 재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축복되어 있습니다.  그대 생활에 세상의 필수품이 풍성하여 평생 동안 위안을 받으리라.  또한 물질이 필요한 가난한 많은 사람들을 돕는 자가 되리라.

자녀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축복 받았습니다.  후손 중에 의로운 자가 많을 것이며, 예수님이 오시는 날 의로움 중에 맞이할 훌륭한 신권 소유자가 많으리라. 그대는 또 의로운 지도자와 사회적으로 유능한 자들의 아버지가 되리라.

저는 지금까지 저희 가족의 건강, 저의 물질적인 복지, 저의 자녀들의 영적 세상적 복지에 대하여 단 한 순간도 주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염려해 본적이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축복사의 축복을 받으신 많은 분들이, 저에게 주어진 것과 비슷한 축복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부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의 축복사 축복 말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 모든 약속된 축복의 실현은 그대의 합당하고 충실한 생활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

모든 축복은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합당한 소망은 우리의 신앙과 선행으로 반드시 성취될 수 있음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오늘 와드 대회 주제는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입니다.  내 아들들아 선 행하기를 두려워 말라. 너희가 무엇이든지 심으면 그대로 거두게 될 것임이라.  그러므로 선을 심으면 선을 보상으로 얻으리라. (교성6:33)   우리가 심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씨앗은 바로 이 복음의 말씀, 친절과 사랑이고, 우리가 거둘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의 보상아름답게 변화된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 더 나아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 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매탄와드가 아름다운 회원들로 가득 차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며 우리에게 선한 열매를 가져다 주는 참된 씨앗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예언자이신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구속주 이심을 간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5 26, 매탄와드 대회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0. “천사의 성역

형제 자매 여러분은 천사의 존재를 믿습니까?  제가 만약 이런 질문을 교회 회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다면 아마 바보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마 말일성도이면 초등학생도 천사의 존재를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비웃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요셉 스미스의 시현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복음 원리에 그 기초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속성에 대하여 어린 소년인 요셉 스미스에게 계시된 것 보다 더 위대한 복음 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처럼 만져볼 수 있는 살과 뼈의 몸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피가 흐르는 육신이 아닌, 부활하여 완전케 된 영화로운 육신 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간증에 의하면, 그분들은 햇빛보다도 더 밝은 빛 기둥 가운데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함과 영광을 지닌 채로 방문하셨습니다. 천사 모로나이의 방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요스2:30~32) 내가 이같이 하나님을 우러러 간구하고 있을 때, 한줄기 광채가 내 방에 깃들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빛이 점점 퍼져 마침내 내 방은 한 낮의 햇빛보다 더 밝아지더니, 홀연히 누가 내 침대 맡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발이 마루바닥에 닿지 않은 것으로[보아] 나는 그분이 공중에 서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좀 늘어진 지극히 흰 성의를 걸치고 계셨으며, 그 흰색이야 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보지도 못한 것이었고, 세상에는 그토록 희고 찬란한 것이 있다고 믿기조차 못할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성의만이 그토록 흰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온 몸이 형용할 수 조차 없이 희었으며, 그 분의 얼굴은 번갯불처럼 빛났고, 방이 그토록 밝은데도 그 분의 주변은 더욱 밝았습니다.

우리는 부활한 존재의 영광스러움을 요셉 스미스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요셉 스미스의 이 이야기가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영화로움을 직접 느낀 것은 제가 선교사업을 할 때였습니다.

 

선교사 시절에 여호와의 증인이나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전도사나 목사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결과는 이러한 논쟁은 결코 복음 전도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교훈뿐이었습니다.  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 거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항상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좋지 않은 감정과 함께 끝났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업을 마치기 일주일쯤 전에, 저는 다시 길에서 여호와의 증인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우리에게 그들은 자발적으로 접근하여 우리와 약속을 만들었고, 우리는 교회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약 이번에도 토론이 논쟁으로 흐른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들이 믿는 바를 소개하고 가르칠 때, 끝날 때까지 중간에 끼어들거나 질문을 하지말고, 서로간의 모든 메시지가 다 끝난 뒤에 질문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누가 먼저 하겠느냐고 그들에게 물어보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반자와 함께 첫 번째 토론을 가르쳤습니다.  동반자가 먼저 하나님의 존재와 인생의 목적 등에 관해 앞 부분을 전했고, 제가 이어서 요셉 스미스에 대한 소개몰몬경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선교사업 2년 동안 요셉 스미스의 이야기에 대한 소개를 저는 무수히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너무 많이 반복해서 마칠 때 즈음해서는 거의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데, 저는 제 온 몸을 감싸는 영의 권세와 충만한 느낌과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치 제가 요셉 스미스의 그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 현장을 보고, 직접 그들에게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임재하심에 말을 하는 가운데 저는 온 몸을 떨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끝났습니다.  첫 번째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요셉 스미스와 몰몬경의 진실성에 대한 주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메시지에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권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메시지를 전할 차례가 되어 우리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전하면서 조금 전에 우리가 전한 가르침과 간증에 영향을 받았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당황하는 모습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들의 메시지에는 주제가 뚜렷하지 않았고 권세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질문과 답변 시간에 되어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강한 권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영향을 느꼈음을 그들의 모습과 눈빛과 질문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말일 성도는 필요하다면 요셉처럼 천사의 방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많은 지도자들과 회원들이 천사의 방문을 받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러한 천사의 성역에 대하여 결코 자랑하거나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대개 자신의 자서전이나 일기장 등을 통하여, 또는 가족이나 후손을 통해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 대부분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형제님이 성찬식 간증 모임 시간에, 자신이 천사와 그리스도의 방문을 시현으로 보았다는 것을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놀랍다기 보다는 그가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래 전 그때 이후로 저는 그를 교회에서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저 활동이 된 모양입니다.

메리온 지 롬니 부대관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경험한 놀라운 계시와 시현과 관련된 일들을 내 아내에게 조차도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한다면 주님께서는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으시고 내게 시현과 계시를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서 우리 직분과 관련하여 알게 된 중요한 사항이나, 회원과 관련된 인비 사항(기밀 사항)을 다른 회원이나, 남편, 아내와 같은 가족들에게 누설한다면 이 또한 주님의 신임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소문이 바람보다도 빠르다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그러한 소문을 퍼뜨리는 회원은 스스로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지도자들과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주님의 신임을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시현이나 계시와 같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 개인과 가족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도록 부름을 받은 주님의 종들에게, 주님께서 시현이나 계시로 그분의 뜻을 보여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조용한 가운데, 명상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주신 계시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나는 네게 와서 네 마음 가운데 거할 성령으로 네 정신과 마음에 말하리라.  보라 이것이 계시의 영이니, 보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녀를 인도하여 마른 땅을 밟으며 홍해를 건너게 한 그 영이니라.  그러므로 이것은 네 은사니 이를 활용하라.  그리하면 복이 있나니, 그것이 너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낼 것 임이니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원수가 너를 죽여 네 영육을 멸망시키리라.  이 말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내 계명을 지키라. 기억하라.  이것이 네 은사니라. (교성8:2~5)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를 받을 권리는, 모든 말일성도에게 주어진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은사가 없이 우리는 원수의 유혹을 이길 수 없으며, 주님의 대업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계시는 깊은 생각과 명상, 기도, 경전의 말씀에 대한 상고 등과 함께, 고민하고 의문을 품는 가운데 오게 됩니다.  이 은사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침례 받을 때 동일하게 받은 성신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이러한 영의 은사를 여러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지니게 된 것에 감사 드립니다.  이 은사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계시를 통해 여러분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영의 은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스스로 고기를 잡는 현명한 교회의 역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교회가 끊임없는 계시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일에 하나님의 예언자요 선견자요 계시자로써, 이 교회에 주님께서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을 세우셨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또 요셉 스미스께서 하나님과 천사의 방문을 실제로 받으셨으며, 말일의 경륜의 시대를 여는 주님의 거룩한 도구이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올 한 해 율전와드가 크게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2 6 8, 율전 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1. “마음 가운데서 간악한 뜻의 뿌리를 뽑고” (22:15)

작년 하반기 스테이크 대회 아침에 결심하고 신약을 읽기 시작한 이래로 구약 성경읽기를 마쳤고 이제 저는 몰몬경을 읽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 스테이크 대회 전에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까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 30분 가량 경전을 읽고 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 역사상 처음으로 1년 동안 4대 표준 경전을 모두 읽는 셈이 됩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 이러한 목표를 이미 성취하신 분 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앨마서에 보면 모사이야 왕의 네 아들의 선교사업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 아론이 레이맨 왕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레이맨 왕이 이와 같이 이야기 한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어찌해야 그대가 말하는 영생을 얻겠느냐? 어찌하면 내가 하나님에 속한 자로 태어나 마음 가운데서 간악한 뜻의 뿌리를 뽑고 성령을 받아 기쁨으로 충만하며, 마지막 날에 버림 받지 않겠느냐?(22:15)

마음 가운데서 간악한 뜻의 뿌리를 뽑는다는 말이 저의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제가 아직 저의 마음 가운데서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약함에 사로잡혀 낙담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저는 경전을 읽으며 위대한 선지자들 조차도 자신의 육신과 영혼의 연약함에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 부대관장님이 그의 한 자녀가 데이트를 하러 나가던 때의 이야기 입니다.  그분은 그 자녀에게 몇 시까지 귀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늘 듣던 성가신 그 말을 듣고 언짢아진 십대의 자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왜 그러세요. 저를 못 믿으시는 거예요?  그분의 대답은 그 자녀에게 분명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공주님, 물론 너를 못 믿지. 나는 내 자신도 못 믿는걸! (리아호나 2002 7월호 51페이지)

 

저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단계가 곧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자기 불신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 위해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르고 유일한 길은 이미 경전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질문했던 레이맨 왕에게 암몬은 이와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께서 진정으로 이를 원하시어 하나님앞에 엎드려 당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시고, 꼭 응답되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신앙을 갖고 하나님께 구하면 당신이 원하시는 소망을 이루어 주시리이다(22:16)

몰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를 깊게 뉘우치지 않고 이 일을 알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참으로 회개하고 신앙으로 생활하며 선행하고 쉬지 않고 계속하여 기도하는 자에게만 주께서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 하시나니, (26:22)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간절한 기도에는 항상 진지한 회개가 선행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눈물이 동반되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순간이 자주 반복되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가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교사로써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앨마와 같이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로부터 오는 권세와 힘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권고 드립니다.  앨마는 조램인들에게 전파하러 나가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제게 힘을 내리사 저로 약함을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오 주여, 저의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오니 제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저의 영혼을 안위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제게 힘을 내리시어, 제게 닥칠 모든 고난들을 인내로 극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저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며 제가 성공을 거두게 하여 주시고, 저와 함께 한 동료 종들인, 암몬, 아론, 옴너, 앰율레크와 지에즈롬 그리고 저의 두 아들들도 성공을 거두게 하시며 이들을 모두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시여,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대로 저들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에게 힘을 내리사 저들에게 닥칠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저희가 조램인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시여, 보시옵소서. 저들의 영혼은 고귀하며, 그 대부분이 저희의 형제들이오니, 주님이시여 저희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 저희 형제들을 다시 당신께로 인도하게 하시옵소서. (31:30~35)

우리도 앨마처럼 대부분 우리의 형제들인 고귀한 영혼을 소유한 형제 자매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앨마와 함께한 자들이 거둔 성공의 이야기는 앨마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몰몬은 이러한 성공의 열쇠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저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도록 준비해 주셨으며, 이들에게 힘을 내리사 온갖 고통을 견디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었나니, 이것이 앨마의 기도의 사적이요, 이같이 된 것은 그가 오직 신앙으로 기도하였음이니라. (31:38)

신앙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의 힘을 이용하여 시온의 스테이크에 속한 하나님의 종으로써 함께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복음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서 복음을 듣게 될 하나님의 자녀 모두에게 참으로 위대한 결과를 낳게 될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교회가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의 예언자에 의해 인도되는 주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시온의 수원 스테이크에서 여러분과 함께 주님의 사업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2 8 11, 수원 스테이크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2. “두려움을 극복함

대회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회원 여러분과 감독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와 영들을 보내셔서, 오랜 세월동안 가꾸는 나무처럼 우리의 삶의 시간 곳곳에서 생생한 교훈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의 말씀이 바로 우리가 받게 되는 살아있는 교훈인빛과 지식입니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미군 전투 부대가운데 101 공수 특전 사단이 있습니다.  101 공수 부대는 2차 대전 당시 모든 부대원을 자원병으로 구성하여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최초로 투입되어 전쟁이 끝난 후 해산된 부대입니다.

공수 부대는 원래 훈련이 매우 극심하기로 유명합니다.  해병대도 훈련이 매우 극심합니다.  제가 해군에 복무했는데, 훈련은 해병대 훈련소에서 해병대와 동일한 강도로 받았기 때문에 그 훈련을 알고 있습니다.  해병대나 공수부대 같은 부대는 일반 군인과 달리 훈련의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투입되는 전쟁터의 상황 때문입니다.

해병대원은 상륙정을 이용하여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가운데, 적진에 뛰어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적진을 점령하지 못하면 전멸하는 것입니다.  공수부대원들도 대공포와 총알이 빗발치듯 하는 가운데, 적진 한가운데로 낙하산을 타고 투하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된 훈련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모든 사람들이 지닌 평범한 감정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때로 두려움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두려움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이 모든 일의 성취의 근원이라면 두려움은 모든 실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반대는 두려움 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을 때 갑자기 폭풍우와 함께 배를 삼킬듯한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곤히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4: 38~41)

인생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여정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자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곧 신앙을 행사하기 위해 첫번째로 내 딛어야 하는 발걸음 입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는 후에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많은 성경학자에 의해 겁이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는 주님께서 택하신 위대한 예언자 였습니다.  그는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걷겠다고 자원하여 물위를 걸은 위대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우리와 같이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 후에 베드로는 당시 대관장으로써 성전 입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3: 6) 그는 이 말과 함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였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베드로가 처음부터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별로 우리에게 감흥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우리처럼 두려움도 느끼는 평범한 감정의 소유자라는 것에 저는 위안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인생의 여러 순간에 베드로처럼 두려움을 느꼈던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사도로써 생을 마무리 했듯이, 우리 평범한 말일성도도 그러한 강인한 신앙인으로의 변화에 대한 소망을 지닐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이제 권선와드 대회를 맞이하여 앞으로 회원들이 갖게 될 새 건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년 와드 대회는 새 건물에서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설계 도면을 준비중에 있으며, 기존 교회 표준 건물보다 약간 크게 짓게 될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 안에 착공하여 내년 초에 완공이 될 예정입니다.  그 건물은 약 180여명이 예배실에 앉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입니다.

새 건물에서 권선와드가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회원 각자의 삶이 신앙으로 인해 온전해지고,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계속하여 발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말일성도로써 여러분과 함께 시온의 대업에 동참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이며,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살아계신 예언자 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몰몬경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요셉스미스가 하나님의 회복의 도구였음을 간증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 되심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03 4 20, 권선와드 대회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3.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 이로다.(37:24)

 와드 대회를 맞이하여,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이제 다음 와드 대회는, 대략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새 표준 건물에서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 대회를 위해 수고하여 주신, 감독단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들과 회원들, 그리고 역대 감독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지난 스테이크 대회 때, 아름다운 합창으로써 수고하여 주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닥치는 고난이나 어려움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편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 이로다.  주님께서 왜 우리를 붙들어 주실까요?  여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88 109절 말씀입니다.

(교성88:109) 또 둘째 천사가 나팔을 울려 둘째 천년에 인간의 은밀한 행위와 마음에 품었던 생각과 의도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권세 있는 업적을 드러내리라.

하나님은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시험과 시련을 주십니다. 고난을 극복하며 신앙을 행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간증이 자라나게 됩니다.  때때로 참기 어려울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편 37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7:1, 7~8)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불이익을 당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불평, 시기, 분노 등을 버리라고 권고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마 우리의 삶은 조금도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판하고 험담한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반응을 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비판과 험담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입니다.

(27:26~31) 이에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그분은 무고하게 고통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조롱 당하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베드로 전서 2 19절 입니다.

 (벧전2: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난을 받는 중에 인내하는 것참으로 아름다운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성품은 우리의 의지로 단련되어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함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참는 자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26 2절에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양심을 단련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리와 성약 128 24절 입니다.

(교성128:24) 보라, 주의 크신 날이 가까왔나니, 주의 오시는 날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자 그 누구냐? 주께서 나타나실 때에 설 수 있는 자 그 누구냐? 이는 주께서 은을 정련하는 불과 같으시며, 표백하는 비누 같으심이라.  주께서 은을 가려내어 정련하시는 이처럼 앉으실 것이요, 레위의 아들들을 정결케 하실 것이요, 금 은과 같이 깨끗하게 하사, 저들로 주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금, 은처럼 단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성품도 우리의 의지에 의해 단련될 수 있습니다.

 

제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하여 배가 불렀을 무렵의 일입니다.  다니던 설계 사무실을 그만두겠다고 사표를 내고, 한 건설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면접할 때 그 건설회사의 사장님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 했습니다.

먼저 근무하던 곳에서 월급을 얼마를 받았습니까?  그 순간 저는 갑자기 무엇에 씌웠는지, 그만 월급을 10만원 정도 더 받는 것으로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가 끝났고, 저는 먼저 회사에서 퇴사 처리된 후,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 그 건설회사 사장님으로부터 잠깐 보자고 연락이 왔고, 만난 자리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를 채용하려고 했지만 실망했네.  자네가 먼저 근무했던 회사의 소장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다가 자네의 월급이 얼마인지 이야기가 나왔네.  자네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그 소장님이 말씀하셨네.  새로운 직장에서 더 나은 급여를 받으려는 마음에서, 그랬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만, 내가 만약 자네를 채용한다면, 그 소장님이 우리 회사에 일을 주지 않을 것이며, 회사가 앞으로 곤경에 처하도록, 자신이 지닌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나를 거의 반 위협했네.  자네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미안하게 됐네

그 순간 저는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  말일성도로써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저의 욕심이 그런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그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저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잠시 뒤 저는 그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께서 저를 채용하여 이 회사가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을 저는 원치 않습니다. 오늘 이 일을 계기로 정직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저를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젊으므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이 시간 이후로 다시는 그런 거짓된 언행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와 비슷하게 말씀 드리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막 그 회사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그 사장님이 저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도록 한 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하면 됐네, 그러한 마음가짐이면 자네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네.  내가 그 소장님에게 해꽂이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자네를 채용하겠네.  젊은이로써 한 때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순간 갑자기 저의 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마음속으로 밀려오는 두 가지 감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저를 용서해준 그 사장님에 대한 고마움, 앞으로 절대로 절대로, 어떤 불이익을 당한다 할 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강한 결심이었습니다.

 

그 회사가 저의 마지막 직장이었습니다.  3년 정도 근무하는 동안,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 회사에서, 제가 얼마나 부지런히 일을 했을지, 여러분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회사에 있는 동안 배운 기술이, 지금의 저의 직업과 사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뒤 저의 개인 사업을 시작할 때, 회사 이름을 아내와 상의하여 공명 건축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아내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공명공명 정대의 약자이며, 정직하게 사업하겠다는 저의 결심의 표현입니다. 제갈 공명처럼 지혜로운 자가 되겠다는 소망의 표현입니다.  지난 9년 간 사업을 하면서, 저는 편법이나 불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한 푼의 돈도 속이지 않고 세금을 내왔으며, 거래관계에서 정직하게 행해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여러 회사들로부터, 제 스스로 과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큰 신뢰와 신임을 받아왔습니다.

말일성도는 때때로 필요하다면 책망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주님의 전능하신 손길 안에서 금 은처럼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직함, 순결함, 순수함이 모든 이방 사람들, 세상 사람들에게 울려(공명) 퍼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삶의 어느 순간에,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일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다시 온전히 정직하게 생활하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욥기 22 29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구원 하시기를 즐기시는 분 이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겸손히 회개할 때, 겸손히 기도드릴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겸손한 자는 바로, 방금 회개한 자입니다.  시편 37 24절 입니다.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 이로다.  때때로 우리의 연약함과 죄로 인해, 삶이 고달프게 될 지라도, 우리가 크게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의 팔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간증 드립니다.

복음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신앙의 일은, 바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 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큰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분께서는 나의 구속주 이십니다.  그 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의 구속주 이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3 5 25, 수원 스테이크 매탄와드 대회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4.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9:23)

예수님께서 성역을 베푸실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9:17~2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시니, 이르되어릴 때부터 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하더라.

 

불신앙은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빈정거리는 말투’, ‘부정적인 생각’, 과연 그 일이 이루어 지겠는가? 하는관망하는 태도등이, ‘불신앙의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죽었다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신앙으로,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태도로 인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 때 불신앙의 태도를 지녔다가 방금 회개해도, 이처럼 귀신들린 아이가 병 고침을 받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한다면, 더 큰 기적의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즐겨 하시는 시험은,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지켜보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작은 벤처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회사는 지금까지 약 8년 동안에 세 번 그만 두었다가, 이제 네 번째로 다시 들어가 일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2년 전에 세 번째로 다시 그 회사에 들어가 일할 때, 아내가 출근 하는 저에게 그 회사가 또 다시 들어갈 만큼, 비전이 있는 회사냐?, 불안한 마음으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아내에게 즉각 이렇게 말하고 곧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니까, 그 회사는 비전이 있는 것이야. 내가 바로 비젼이라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방금 아내에게 한 그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그 회사의 발전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불쑥 한 그 말에, 나는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네 번째로 다시 그 회사에 들어가 일하면서, 회사의 제반 어려운 형편에 침울해 있는 그 회사의 임직원들 앞에서, 저는 희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저에게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그 회사에 행운을 몰고 오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주님께서 저를 위해서라도 그 회사를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역원으로서, 여러분이 부름 받은 바 책임에 임하는 여러분의 태도가, 여러분의 봉사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맡은 바 책임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우리의 부름의 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지자는 니파이입니다.  저는 이 교회에 개종하기 전에, 그의 가르침이 기록된 몰몬경의 니파이 1~2서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를 개종시킨 분은 바로 니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를 침례 준 선교사들은, 니파이에 의해 이미 감동 받고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된 저를, 인도하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몬경을 처음 읽었을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니파이의 신앙의 태도를 보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몰몬경을 기록하면서 곳곳에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명하시는 대로 이룰 수 있는 방편을, 미리 마련치 아니하시고는 명하지 않으심을 제가 아오니, 주께서 명하신 대로 가서 행하겠나이다. (니일3:7)

주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을 이루기까지는, 광야에 계신 부친께로 돌아가지 아니할 것이[] (니일3:15)  인간들이 주를 믿는 신앙을 나타내어 일할 때, 주께서는 인간들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원하시는 대로 행하실 수 있으심을 어찌하여 잊었느냐?  이제 우리는 주께 충실하자. (니일7:12)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만사를 다 행하라고 이르신 것이라면, 내가 능히 이룰 수 있으리라.  또 하나님께서 내게 물을 명하여 육지가 되게 하라고 명하신다면, 그도 역시 내가 말하는 대로 되어지리라.  주께서 그토록 크신 권세를 가지셨고, 그렇게 많은 기적을 인간의 자녀들 가운데 행하셨음이 사실일진대, 내게 배를 만들 것을 어찌 가르칠 수 없으시겠느냐? (니일17:50~51)

이러한 그의 태도 때문에 감명 받아, 저는 밤새도록 몰몬경을 읽었습니다. 어려운 일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곧 우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에는 자세와 태도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찬송가182, 오늘 세상에서 선한 일 했나)

시편 39 12절에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부르짖음이 되고, 이어서 눈물로 간구할 때, 참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적은 신앙의 태도로 시작되고 간절한 기도에 의해 더욱 큰 권세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 일어나는, 작거나 큰 기적이,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임을 간증 드립니다. 

여러분의 봉사에 감사 드립니다.  복음과 부름이 우리 모두를 크게 해주고, 우리의 영향력, 사랑, 성품, 신앙의 발전을 이루어 주는, 참된 복음이요 축복의 부름이라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부름 받아 봉사하고 계신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3 5 25, 수원 스테이크 매탄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5.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68:19)

 이 대회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대회를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지도자들과,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의 말씀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시편 69 4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우리 주변에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남의 재산을 노리는, 늑대 같은 자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세계가 마치 정글의 법칙처럼, 서로 뺏고 뺏기는 가운데 점점 더 천박스럽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합법을 가장한 강탈과 약탈이 백주 대낮에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통해 오래 전부터 교회 회원간의 금전거래를 금지하셨습니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을, 교회 성도들 간에 하지 말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주님의 종들의 권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쓰라린 경험을 치른 뒤에, 한가지 작은 교훈을 배우게 된다면, 얼마나 값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 됩니까?

순진한 몇몇 성도들이 세상의 악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빚 보증을 섰다가 전재산을 날린 교회 형제도 있습니다.  수년 전 카드 빚에 휘말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많은 유산을 다 날린, 형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의 선한 성품을 존경합니다.  그는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선한 마음씨를 지닌 분입니다.  어른이지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분입니다.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법 없이도 살아갈 것 같은 분 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신용카드 여러 장을 통해 대출, 현금 서비스 등, 많은 빚을 내었고, 그것도 모자라 사채까지 끌어다 쓰게 되었습니다.  빌려 쓴 원금의 몇 배의 이자로 인해, 그는 결국 그의 재산 모두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고통을 스스로 자초하게 됩니다.  죄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듯, 잘못된 판단은 그것을 되 돌이키고 만회할 때까지, 우리에게 큰 고통과 시련을 안겨 다 주게 됩니다.  교훈을 배울 때까지, 우리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저는 그의 딸들의 의로움과, 순수함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맑은 영혼을 지닌 자녀들입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현재 선교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지켜 볼 때, 마치 거친 들판에 핀 아름다운 백합꽃을 보는 듯 합니다.  시련과 고통이 그들의 영혼을 맑게 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정적으로는 그에게 고통을 주셨으나, 어린 자녀들이 복음가운데 올바르게 자라도록 축복해 주셨으니,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라 생각됩니다.

시련과 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해줍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일 경우, 얼마나 빨리 그러한 사실을 알아 차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받는 시련의 목적교훈일 경우가 많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슬플 때, 우리의 마음이 가난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주어진다(5:3)고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지나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제가 부자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입니다.  부족한 가운데 주님 앞에 겸손해 질 수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수년 전 제가 지부장으로 봉사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복학하여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몇몇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처자식을 부양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던 중, 당시 영동 스테이크 서희철 스테이크장님과 접견하는 자리에서, 저는 지부장이면서 현재 학생이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제 처지를 하소연 하였습니다.

그러자 서 스테이크장님께서 저에게, 제가 하는 일과 거래처 등 몇 가지를 여쭈어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 형제, 그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지 말고,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을 내면서 사업을 하면 어떨까?  내가 보기에 구 형제는 사업을 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그 말씀을 들은 후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으로 내가 신앙이 부족한 자 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학생, 그것도 야간 학과가 아닌 주간 학과를 다녀야 했으므로, 직장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다만 아르바이트로 가족을 부양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업을 해보라는 스테이크장님의 그 말씀은, 사업을 전혀 꿈도 꾸지 않았던 저에게 문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기도와 준비 끝에 약 한달 뒤 사업자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이름을 정하고, 회사를 소개하는 안내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느날 교수님이 건축의 한 분야를 택하여.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건설회사 다닐 때 하던 업무인, 건축 적산관련 프로그램들에 대한 조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제목을 적산 전문 프로그램의 종류 및 그 현황과 미래 라고 정하고, 제가 알던 프로그램 개발 회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서 개발 실장과 만나, 제가 학교 숙제를 이런 주제로 하려고 하는데,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저에게 한 회사를 소개 해 주었습니다.  그가 소개해준 곳에 찾아간 것이, 저의 지난 8년 간의 사업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 지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많은 훌륭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작년 8월에, 학교에 다시 복학한지 8년 만에, 입학한지 21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접견 이후로, 그 동안 저는 제 사업 및 직업 그리고 학업과 관련하여 많은 축복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 일은 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8년 전 당시, 주님께 기름부음 받아 임명된 저의 감리 역원과의 그 접견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저의 마음이 무거웠을 때, 저의 신권 지도자와의 접견, 그리고 용기를 내어 만든 저의 회사 소개서 _ 사실은 학교 숙제 리포트, 저의 직업과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도 축복을 받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기위해 신앙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권 지도자, 주님께 기름 부음 받은 종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축복할 권세와 은사를 받은 분들입니다.  축복은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축복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권고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통해 교훈을 배운 분들을 찾아가,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와줄 것입니다.  시련과 고통이 닥쳐 왔을 때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시편 68 19절의 말씀입니다.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주님께서 우리가 매일 범하는 죄의 짐을 대신 짊어 지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간증 드립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 앞에 증거 합니다. ….

2003 6 15, 수원 스테이크 율전와드 대회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6. “부름의 무게

 어제 저녁에 서울에서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오지의 어떤 선교사가 어느날 급한 물살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물살이 어찌나 거센지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넘어져 떠내려가게 되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원주민들이 그에게 그곳을 안전하게 건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건너는 방법’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오히려 급 물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이라는 무거운 짐은 세상의 급한 물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부름이 힘들어 지칠 때가 있습니까? ‘부름의 무게’가 오히려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이 구절을 저는 이렇게 바꾸어 보았습니다.  “부름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부름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30:8~9) “…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 이니이다.

 

저는 우리의 부름이 너무 무거워서 지치지 않도록 또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여 방자해 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의 영이 너무 멀리 계시어서 슬퍼하지 않도록, 또는 너무 강하게 함께 하셔서 교만해지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다음 찬송가 가사에 우리의 부름의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찬송가173)

선한 영향 주는 삶, 주 자비 더하여 주네. 선행을 하는 자 통해, 하늘의 축복 주소서.

우리의 신앙 키우며, 우리의 삶을 높이는, 주 닮은 우리 친구들, 주께서 주신 큰 은사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과 봉사는, 사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큰‘은사’입니다.  우리 모두 부름에 충실한 가운데 세상의 물살로부터 우리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들의 삶을 높여주는 선한 영향을 주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자비의 축복을 주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부름의 무게와 시련이 우리를 단련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름에 따른 희생에 축복을 주시는 것, 우리를 칭찬해 주시는 것도 우리를 단련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7: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우리의 ‘부름’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3 06 15, 율전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7. “나 주는 끝까지 의와 진리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DC76:5)

 최근에 스테이크 센터에서, 대관장단 및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께서 가르치시는 인공위성 중계 신권 지도자 훈련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언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경청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한 많은 기회와 함께,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92년도에 저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스 화면으로 게임, 문서 작성 정도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통신할 때도 도스화면에서 글자로만 통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문자와 동시에 그림으로, 동영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정보통신의 보급 속도가 빠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스테이크 수첩을 만들면 e메일 주소와 휴대폰을 가진 역원들이 몇 명뿐이었는데, 이제는 e메일과 휴대폰이 없는 분이 오히려 손으로 꼽아야 할 정도로 적어 졌습니다.  사무실 내에서도 메일은 효과적인 업무의 수단입니다.  교회 일을 하는 데에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사전에 협의하고 검토하는데 있어, 메일이 매우 요긴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저에게 오는 메일 20여 통 중에 한 통 꼴로, 음란성 사진과 동영상이 연결된 메일이 거의 매일같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제목이 의심스럽거나 이상한 사진이 뜨는 것은 그림이 뜨자마자 삭제 버튼을 눌러 삭제합니다.  저는 그러한 그림들을 전혀 보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진들이 처음에 뜨기 전에 바로 삭제합니다.  아마 0.5초 이내에 그 그림을 지워버릴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1초 정도만 쳐다보아도 우리의 영혼에 심각한 상처를 주는 것들입니다.  말일성도는 그러한 것들을 마치 더러운 오물을 피하는 것처럼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그러한 것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어떻습니다.  제가 어린 청소년 시절 그러한 음란성 그림, 사진들은 일부 비행 청소년 몇몇만이 지니며 돌려 보는 매우 희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로 인해 인터넷 공간이 오염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공부하고 메일을 주고 받는 이 순간에도, 그러한 악한 음모를 꾀하는 자들로 인해 우리 자녀들의 순수성이 오염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러한 음란성 스팸 메일이 오면, 곧바로 제가 사용하는 메일 포털 사이트에 스팸 신고를 하고 수신 거부 등록을 합니다.  그러면 그 주소로는 두 번 다시 메일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메일 주소를 자주 변경하여 다시 보내곤 합니다.  저희 집에는 음란 사이트를 차단해 주는 소프트웨어가 피씨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가격도 약 3만원 이내로 구입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통해 테스트 한 결과, 제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하고 접속을 시도해도 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모든 음란 사이트와 이 메일을 차단해 주지는 못하지만, 상당부분 저희를 도와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유괴 사건이 자주 일어나 딸 가진 많은 부모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녀들이 등교 및 하교할 때 부모들이 직접 차를 타고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외국인 학교 앞을 지나가다 보면, 많은 부모들의 차가 자녀들을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점점 우리나라도 어린 자녀들만 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려워지는 세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이 나쁜 사람들에게 유괴 당하는 것 못지않게, 영적인 유괴가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이 바로 인터넷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말에 친구를 잘못 사귀면 평생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잘못 다루게 되면 우리 자녀들이 평생 후회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는 반드시 거실에 놓아두시기 바랍니다.

 

84년도에 저는 남해 한복판에 위치한 거문도에서 해군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 정기 휴가를 다녀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다시 부대에서 포상휴가를 받아 약 15일간 재차 휴가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 주에 저의 소속 와드 감독님을 만났더니 그분은 저에게 휴가가 언제까지 이냐고 물으셨고, 제가 다음주도 참석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감독님은 저에게 멜기세덱 신권을 받으라고 권고해 주셨습니다.  다음 주 스테이크 대회 때 멜기세덱 신권을 받고 저는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한 낮에 잠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저는 어떤 침대 같은 곳에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왼쪽 멀리 발치에서 어떤 남자가 굉장히 화가 많이 난 것 같은 모습으로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로 오면서 계속하여 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다가왔고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오싹한 기분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 옆을 지나치는 듯 하더니, 제가 누워 있는 머리맡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의 머리맡에 서서도 계속해서 저를 저주하며 욕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제 이마를 꽝 하면서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도 들거나 돌리지도 못할 정도의 강하고 무거운 어떤 것이 제 이마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정말 1센티미터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제 이마를 누르고 있나 궁금해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제 손으로 그것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욕을 하던 그 사람이 제 머리맡에서 뒤로 돌아서서 자신의 뒤통수로 제 이마를 누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머리를 만질 수 있었는데 그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 였습니다.

그의 눈과 코와 입 등을 만질 수 있었는데 그는 그러한 상태로 저의 이마를 누르면서도 계속해서 저를 욕하고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심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너무나도 두려운 느낌이 저를 짓눌렀고, 저는 꼼짝달싹 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주님께 도움을 요청 드렸습니다.  누운 채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서운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의 짓누르는 무게와 공포감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에게 한줄기 강한 빛이 내리쬐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를 짓누르던 그 존재가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빛이 무엇인가 유심히 지켜 보았습니다.

그 빛은 창문을 통해 제 얼굴로 비쳐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었습니다.  그 햇빛이 나타나자 마자 그 어두움의 존재가 물러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낮잠을 자다가 깨어난 것입니다.  제가 제 평생에 이와 같은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오랫동안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의 신권, 멜기세덱 신권을 받아들이고 제가 해야 할 주님의 사업에서, 저의 수 많은 책임과 봉사와 이루게 될 일들을 미리 알고 있는 사탄이, 저를 멸망시키려고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그 꿈을 통해 저에게 교훈으로 알려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일 성도들은 모두가, 주님의 종으로써 참으로 많은 선행과 봉사를 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미 알고 있는 사탄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우리 신권 소유자들과 우리 성약의 자녀들을 유혹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 혹은 우리의 자녀들이,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찬을 전달해 주신 청소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주의 그릇을 든 분들입니다. (니삼20:41)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너희는 그곳에서 나와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며 그 가운데서 나오라. 주의 그릇을 든 자여 스스로 정결할 지어다.  주님의 종으로서, 신권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신권 소유자로서, 여러분을 정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선하지 못한 것들에서 여러분들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용기를 지니고 신앙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감독님을 비롯한 신권 지도자들과,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여러분이 필요한 순간에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모로10:32~33)) 참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 안에서 온전하게 되며,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라. 너희가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너희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은혜가 너희에게 충만할 것이요, 그 은혜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리라.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면, 결단코 하나님의 권세를 부인하지 못하리로다.

거듭 이르거니와,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의 권세를 부인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가 성결 하게 되고, 아버지께서 언약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흠이 없는 성스러운 자가 되리라.

 

지난 달에 평택지부의 상호부조회장으로 봉사하고 계신 이 미숙 자매님을 접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미숙 자매님은 91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는 귀환 선교사인 큰 아들과 중2의 딸이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미숙 자매님은 아들과 함께 작은 평택지부에 거주하면서도, 또래 친구들도 없고 역원들도 부족한 그곳에서 아들을 선교사로까지 보낸 것입니다. 그녀에게 어떻게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했는지 그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자신이 자녀들을 위해 실천한 가장 중요한 것을 두 가지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3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청소년 대회에 보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도저히 청소년 대회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학교장을 만나 아들을 빼내어 청소년 대회에 보낼 수 있었다고 저에게 간증했습니다.

그녀는 또 저에게, 아이들을 세미나리 과정을 모두 이수 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큰 아들은 세미나리 과정을 모두 이수 했다고 했습니다.  둘째 딸도 현재 세미나리에 매주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평택지부에는 그 동안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아이들의 세미나리 교사로 봉사해 왔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활동과 세미나리 교육 등을 통해, 아이들의 간증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그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매일 기도하고 경전을 읽는 일을 하고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5 즈음에 일찍 일어나, 둘째 딸의 반주에 따라 시간이 있을 때는 약 5곡 정도, 그렇지 못하면 1~2곡 정도 찬송가를 부르고, 30분 정도 경전을 읽고 기도한 후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자녀들이 어려운 지부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라, 의로운 주님의 자녀들로 성장해 가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태도, 순종의 태도가 자녀들을 변화 시킨 것입니다.  교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의 신앙의 태도, 순종의 정도가 우리와 우리 가족, 더 나아가 사랑하는 회원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홀로 남아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주님의 계명에 말없이 순종한 가정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들이 심은 대로 열매를 거두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의 결실은 참으로 오랫동안 감람나무를 가꾸듯이 가꾸어야 비로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의 신앙의 태도에서 참으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써 저의 가족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참으로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자녀들이 아직 어릴 때 그들에게 이 복음에 대한 간증과 신앙을 심어주려면, 주님의 종들이 가르친 가족기도, 찬송, 경전 읽기, 세미나리, 청소년 대회 등을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일에 순종하는 자 만이 자녀들과 함께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성76:5~6) 주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느니라. 나 주는 나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자비로우며, 은혜를 베푸나니, 끝까지 의와 진리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 저희 상은 클 것이요, 저희 영광은 영원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음 가운데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복음이 우리 모두를 변화시켜주며 참된 열매로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참된 복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 되심을 간증 드립니다.

몰몬경이 우리를 인도하는 등불과 같은, 참된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요셉 스미스께서 말일의 복음을 회복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예언자 이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살아계신 예언자로,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주님의 권세를 위임 받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간증 드립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2003 7 20, 수원 스테이크 오산와드 대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8. “신앙의 뿌리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3가지

20여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시골의 과수원에서 아름드리 사과나무 수십 그루를 수일동안 캐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과수원에 다른 나무를 심기위해서 였습니다.  어떤 나무는 주변으로 뻗어나간 큰 뿌리 몇 개만 제거하면 쉽게 흔들어 넘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주변 뿌리를 다 잘라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넘어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나무는 깊이 파보면 나무의 뿌리가 수직으로 깊숙이 박혀 있는 경우였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3:18, 20)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 돌 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신앙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환난이나 고통, 박해, 시련이 닥쳐올 때, 우리의 신앙은 말라 비틀어져 쓰러지는 고목처럼 넘어지게 됩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나무 자체가 잘 자라지도 못하거니와 좋은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지세가지 방법을 여러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경전 읽기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신앙은 간증을 들으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키우고 복음의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또 서로 격려하고 봉사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이 유지되겠습니까?  일주일에 한번만 음식을 취한다면 과연 얼마나 살수 있을까요?

우리의 영혼과 신앙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매일 해 주어야 합니다.  매일 경전을 읽지 않으면, 즉 고대와 현대의 예언자들의 말씀,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상고하라고 권고해 주시는 말씀들을 읽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1982년 겨울, 해군에 입대하여 졸병 시절 구축함을 타고 근무할 때, 저는 몰몬경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고참들이 지켜보고 있고, 많은 고된 업무에 시달리며 편지도 눈치 보며 읽어야 하는 환경에서, 경전을 꺼내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몇 주간 경전을 읽지 못하면서, 저는 점점 무엇인가 허전해 지는 듯한 느낌에,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느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의 속 가슴에 몰몬경을 품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모두가 다 잠든 깊은 밤중에 혼자 일어나 배 안의 화장실로 갔습니다.

해군은 밤에는 배 안의 모든 등불을 끄기 때문에, 책을 읽을 만큼 밝은 불을 켜 놓은 곳은 화장실 밖에 없었습니다.  파도가 치면 배는 상하 좌우로 흔들립니다. 때문에 해군 화장실에는 장애자용 화장실처럼 모든 곳에 손잡이가 있습니다.  배가 흔들리기 때문에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굳게 잡고 몰몬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냄새도 나고, 불빛도 희미하고,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 정도로 배는 흔들렸습니다.  고된 업무 끝에 곤히 자야 할 시간을 빼내어, 몸도 매우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에게 간증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수 년간의 신앙생활 동안 경전을 읽었던 그 어느 순간 보다도, 그 때 해군 졸병 시절 화장실에서 읽었던, 몰몬경의 그감미로운 말씀영적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된 군 생활에서 저의 신앙을 지탱해준 지팡이요 막대기요 손잡이는, 바로 그 몰몬경의말씀이었습니다.

후에 몰몬경을 읽는 저의 모습이 동료와 고참들에게 드러난 이후로, 저의 별명은몰몬이 되었습니다.  배 안의 고참들이 저를! 몰몬하며 부를 때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조롱하며 불렀겠지만, 그것은 저에게 전혀 부끄러운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때 제가 몰몬경의 위대한 기록자인몰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몰몬경을 읽고 나서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자비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는 단순한이 아닙니다.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임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지금까지 소홀히 해 왔던경전을 다시 집어 들고 읽는 것입니다. 경전을 읽으면 신앙의 뿌리 하나가 튼튼하게 뻗어나가게 됩니다. 첫째는경전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기도

신앙을 키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항상 고통과 좌절, 그리고 유혹과 시험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인내입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복음의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도자로써 신앙의 시험과 시련을 겪는 회원들을 접견하면서, 그들에게 질문을 해 보면,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이기도하는 생활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삼18:15~2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항상 깨어 기도하라. 행여 마귀가 너희를 꾀어 사로잡을까 염려함이라. …

보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항상 깨어 기도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 사탄이 너희를 사로잡아 밀같이 채로 치려 하는도다. …”

(니삼:18:24~25) “그러므로 너희의 빛을 들어 세상을 비치게 하라. 보라 나는 너희가 치켜들 빛이니 너희는 나의 행함을 본 대로 행하라. …, 너희도 세상에 나아가 이같이 행하라. 이 계명을 어기는 자는 모두 스스로 유혹에 빠지게 되리라.”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자는모두 스스로 유혹에 빠지게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모두 스스로 유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반드시 매일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기도로 인해 튼튼해 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하기 위한 두 번째 방편은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이유

최근에 저희 OO와드의 OOO 자매님이 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OOO 자매님은 저의 아내의 고등학교 때부터의 단짝 친구였습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자신의 앨범사진의 절반이 배 자매와 찍은 것이라고 말하면서이제 그 추억을 가슴에 묻게 되었다고 하면서 슬퍼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왜 이와 같은 엄청난 시련이 닥치는 것일까요?

저에게 어린 막내 아이가 있는데, 그는 제가 집에 퇴근하여 들어가면 저의 뒤를 항상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아이의 면전에서 문을 닫는 것입니다.  주로 제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방에 살충제를 뿌릴 때 등 아이의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될 때 문을 닫습니다.  문이 닫히면 그 아이는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며 울고 불고 하며 난리를 피웁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놓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문을 닫고 응답을 하시지 않는 것을, 어린아이 같은 우리들은 그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께 매달려 보채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84년도에 저는 해군으로써 거문도라는 섬에서 근무했습니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저는 밤이 새도록 목소리를 높여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학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을 다니다가 제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제대하고 선교사업을 마친 후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는지를 타진해 보았지만 불가능 했었습니다.  학교 문제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94년도 여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자격증 공부를 하기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고 특별한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제가 다녔던 대학의 교무과에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특별히 지시하시기를 대학을 다니다가 제적된 학생은 그들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었든 가정 형편상 제적되었든 불문하고 모두 원하면 복학 시켜서 학교에 받아주라는 대통령령을 선포하였다는 말과 함께 다시 학교에 복학하라는 학교측의 권유의 전화였습니다.

10년만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2001년 가을 스테이크장에 부름을 받았을 당시 저는 대학 4학년에 재학 중 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생 스테이크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는 드디어 작년 8월에 처음 입학한지 21년 만에, 다시 복학한지는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로 인해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이러한간증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 주시려고’, 학교와 관련된 제 기도에 늦게 응답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스가랴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스가랴7: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주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먼저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원리에, 예언자와 주님의 종들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금식

우리가 인생에서 설정한 어떤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며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 즉 열정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복음의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세 번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금식입니다.

금식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굶는 것이 우리의 의지를 굳세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금식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이틀을 금식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금식을 활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사탄으로부터 시험과 유혹을 받으셨고 그것을 극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40일을 금식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틀 정도는 금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금식에 대하여 요엘서 2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요엘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옷을 찢는 것은 금식하는 흉내를 내는 것을 비유한 말씀이고, 마음을 찢는 것이 참된 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식은우리의 마음을 찢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금식하면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주님의 영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면 귀신도 쫓아낼 수 있다(영감역 막9:29)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하늘의 축복을 끌어내릴 수 있는 효과적인 복음의 원리 가운데, 금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금식에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주는 권세가 있습니다.  금식을 활용하여 우리의 나약함과 연약함, 부족함 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경전 읽기기도’, 그리고금식을 통해 하늘의 능력에 의지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의 뜻대로 우리의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가지 원리가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2003 8 31, 신풍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29. “모든 요긴한 것을 준비하라. (교성88:119)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오늘을 마지막 주일로 하여, 올 한해 2003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신년 초와 비교하여, 어떤 변화를 느끼고 계십니까?  우리는 변화의 느낌을 하루 단위로는 측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여, 오늘의 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달 전의 나 자신과 오늘의 나 자신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1년 전과는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10년 전과 현재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아마 여러분 모두가 10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나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외모로나, 내면적으로나 우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변화하고 발전해 가야 합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분들이 모두 새로운 목표를 지니려고 작심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기 관리를 위한 네 가지 원리를 정리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세 가지 중요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바로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가장 좋은 것은 사랑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신앙일 것입니다. 그럼 소망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소망은 우리가 가장 먼저 지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 소망에서 비롯됩니다.  올바른 소망은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간절히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효과입니다.

뚜렷한 목표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사람들의 소망이 식어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소망이 부족할 때 절망하게 되고 낙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높은 산을 향해서 끊임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자연의 품격이 따라 붙는다.  그리고 큰 꿈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 (리더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7P, 에구치 가쓰히코 저, 더난 출판사, 1999)  굳건한 소망을 지닌 자는, 결코 유혹에 넘어가거나,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2. 매일 최소한 10가지의 목표를 기록하십시오.

요즘 저는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사람이 쓴 책에서 그가 권고한 대로, 매일 아침에 저의 목표 10가지를 적고 있습니다.  매일 10가지 목표를 적으면서 그 문구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목표를 매일 적을 때 어제 적은 목표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적은 다음에 비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지만, 이 행동이 저의 목표를 분명하게 해 주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공적인 삶, 직장, 부를 이루기 위한 참고서적, 지침서 등을 산더미처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책에서 가르치는 원리를 단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한 것이 기억 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일15:24)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이를 굳게 지킬진대, 멸망 당하지 아니하며, 유혹이나 원수의 불길 같은 창도, 이러한 자들을 사로잡아 눈멀게 하거나, 멸망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훌륭한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을 실천하는 자, 굳게 지키는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유혹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읽었거나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어떤 원리가 지금 생각난다면, 새 해에는 그 말씀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곧 여러분 생활에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기 개발에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서 실력을 쌓으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년에 승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 쓰는 돈 만큼, 자기 자신의 개발을 위해서 사용하라.  보통으로 차 한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금, 기름값, 감가 상각비 등을 감안하면 최소한 연간 200만원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수입이 생겼을 때 어디에 가장 먼저 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입의 일정액을 좋은 책을 사서 읽거나, 강좌를 듣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등등 자기 개발에 투자 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평생 교육의 시대입니다.  대학 졸업장만 갖고 그저 되는 대로 삶을 사는 사람보다 평생 공부하는 초등학교 출신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수 십 명보다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수 십명의 토목 기술자들이 모두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서해안 서산 간척지 최종 물 막이 공사에서, 유조선을 동원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급 물살을 헤치고 예상보다 훨씬 빨리 물 막이 공사를 마친 적이 있었고, 그 공법은 지금도 정주영 공법으로 특허를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육을 계속해서 받으라고 권고하고 계십니다.  교육은 인생의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가장 훌륭한 투자 입니다.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투자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 대가를 자신의 인생에서 톡톡히 치르고 나서야,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저에게 깊은 인상과 함께 감명을 준 책의 저자가 있습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사람인데, 그는 세계적인 동기부여 강사이자 컨설턴트 입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목표, 그 성취의 원리라는 책을 약 한 달 전에 읽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거의 몰입해서 읽은 책입니다.  오랜만에 저에게 큰 감동을 준 책이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한 가지로 승부하라라는 책도 읽어 보았는데, 역시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훌륭한 책은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 한해 저에게는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훌륭한 한 인물을, 에서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코비의 책들인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원칙 중심의 리더십 같은 책들은 훌륭한 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중에 어떤 책은 두 세 번 거듭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책인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삶의 원칙을 단순하게 설명했는데, 그 단순한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번역자가 번역을 잘못 해 놓아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비의 책은 성공하는 삶의 원칙에 대하여, 매우 심도 있게 설명해 놓은 훌륭한 책입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 느낀 것은, 코비가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이 책들에 담아 놓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책들은 마치 여러분이 이 책에 설명한 원리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우리 회사에서 가르치는 워크샵과 세미나에 등록하십시오 라고 안내하는 안내장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결국 97년도에 시간 관리에 관한 그의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반면에 얼마 전에 발견한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들을 읽고 난 뒤 제가 받은 느낌은, 그는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이 책들에 다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한 권의 훌륭한 책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게 될 지도 모릅니다. 새 해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겠다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88:118) “…너희는 지혜의 말씀을 부지런히 구하고 서로 가르치라.  참으로 가장 좋은 책에서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또 연구와 신앙으로써 학문을 구하라.

 

4. 생활 패턴을 조기 조침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일찍 일어나지 않고는 절대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생애에서 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책들을 오늘 여러분들 앞에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저는 이 교회에 개종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몰몬경을 통해 이 세상 어느 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몰몬경은 저에게는,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는 길잡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1년에 평균적으로 50여권의 책을 읽어 왔습니다. 책방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것은, 저에게는 매우 신중한 가운데 이 책 저책을 들쳐보며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골라서 사도, 막상 읽어보면 실망스러운 책이 한 두 권이 아니었습니다. 보통으로 10권의 책을 고르면, 그 가운데 쓸만한 책은 서너 권에 불과합니다.  100권의 책을 고르면 그 가운데 커다란 감명을 주고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라고 꼽을 만한 책은, 한 두 권에 불과합니다.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 직접 고르고 구입해서 읽은 책들 가운데,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 몇 권 있습니다.  1995년도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책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 책은 교회 회원인 스티븐 알 코비 형제가 쓴 책이고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입니다.  그의 책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라는 책도 매우 훌륭합니다.

두 번째로 저에게 감명을 준 책은, 4년 전에 발견한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조태현, 권민이라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인데, 진실된 삶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에 대하여 아름다운 문체로 감명 깊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요즘 새벽시간,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자는 종류의 책들이, 책방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 모든 책들을 다 합쳐도 이 책 한 권 만 못하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스테이크 대회 때, 장시성 감독님께서 이 책에 감명을 받고, 회원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수 십 권을 각 와드/지부에 기증했던, 바로 그 책입니다.  제가 장시성 감독님께 그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고를 드렸고, 장 감독님도 그 책에서 깊은 감명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그 책은 새벽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려고 노력하는 한 젊은이가 쓴 책입니다.  아마 30대 초반의 나이라고 생각되는 젊은이가 쓴 책입니다.  그가 쓴 글을 통해 저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97년도에 작성했던 최초의 저의 사명 선언서를 이렇게 수정하였습니다.

새벽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한정된 하루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나만의 독특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춘다.  새벽 시간은 시간을 위한 시간이다.  이를 위해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가족 들 모두가 이러한 생활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격려하며 그들을 직접 돕는다.  늦은 밤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프로그램과,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우리를 멍하게 만드는 텔레비전을 끄고, 과감히 잠자리에 들어간다.” (사명선언서, 구승훈, 2001)

교리와 성약 88:119에서 주님은, 너희와 너희 주변을 정리하라. 모든 요긴한 것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요긴한 것은조직된 시간이며, ‘시간관리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이상의 잠자기를 그치라. 네 침상에 일찍 들어가 피로를 풀고 일찍 일어나 너희 육체와 정신을 활기 있게 하라.(교리와 성약 88:124)

형제 자매 여러분, 일찍 일어나 여러분 만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 기도와 명상, 그리고 여러분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가운데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러한 생활을 하기를 기대하고 계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함을 여러분께 간증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3 12 28, 신풍 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0. 인간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큼을 기억하라. (교성18:10)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리하이의 방향구는 나침반이라고도 합니다.  나침반은 지구 자력에 의하여 방향을 가리키는 도구입니다.  나침반의 작동 원리는 자연 법칙에 의하여 작동하는 것입니다.  리하이의 방향구도 방향을 가리키는 도구였지만 그 작동 원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법칙이 아닌 다른 법칙에 의하여 작동하는 특별한 도구 였습니다.

(니일16:28) 나 니파이가 방향구 안의 지침을 보았더니, 이 지침은 우리의 열의와 신앙에 따라 움직이며, 우리가 그 지침을 신뢰하는 마음의 정도에 따라 움직이더라.  우리 모두가 니파이가 받은 것과 같은 방향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사 축복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를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방향구는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소망은 다른 말로 하면 꿈, 비전, 목표 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침을 신뢰하는 마음의 정도에 따라 방향구 안의 지침(Pointers)이 움직였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신앙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열망에 따라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침반이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신앙은 물리 법칙이 아닌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원리 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니파이도 또한 이런 말을 그의 형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니일17:50)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만사를 다 행하라고 이르신 것이라면 내가 능히 이룰 수 있으리라.  또 하나님께서 내게 물을 명하여 육지가 되게 하라고 명하신다면 그도 역시 내가 말하는 대로 되어지리라.

신앙이란 우리가 원하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반드시 이루어 진다확신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약속을 믿는 마음의 정도에 따라 신앙의 원리가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몇 년 전 월드컵 경기에서의 감동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와의 시합에서 우리의 붉은 악마응원단이 카드 섹션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경기장에 수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은 이루어진다.  그것은 온 국민의 바람이었고 우리 나라 사람 전체의 소망과 꿈이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열광했고 감동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그러한 꿈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복음 가운데 우리의 소망을 이루고, 강한 신앙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원대한 꿈을 품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사실,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바뀌는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통제해야, 우리의 행동과 습관을 통제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생각을 우리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떠 오르는 잡념을 떨치고 훌륭한 일에 몰두 할 수 있습니까?

생각도 훈련에 의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릴 수 있고 훈련 시킬 수 있습니다.  올바른 동기와 목표, 소망과 꿈을 지닌다면, 우리의 생각은 항상 그것을 생각하게 되므로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 라는 계명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밥도 안 먹고, 다른 일 하나도 하지 않고 항상 기도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예전에는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왔습니다.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최근에는 다른 견해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항상 소망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할 수 없습니다.  늘 소망으로 넘치는 생활을 한다면, 늘 주님께 축복을 간구하게 될 것입니다.  소망이 넘칠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이 절망하거나 낙담한 자들은, 아주 작은 소망이라도 마음에 품을 때까지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항상 올바른 소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소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잘 간직하여, 커다란 열망으로 키우라는 말씀이다 라는 견해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소망, 작은 소망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꿈과 목표와 비전을 지닐 수 있습니다.  소망은 신앙과 마찬가지로 은혜에 은혜를 더해가면서 계속하여 커지는 것입니다.  신앙도 커질 수 있고, 소망도 커질 수 있으며, 사랑도 커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지닌 신앙이 보잘것없을 지라도, 우리의 성품이 우리를 슬프게 할 지라도, 우리는 한 가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소망만큼은 아주 크게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 중의 하나는 소망의 은사 입니다.  이 소망은 단순히 품고만 있어서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소망에 열정이라는 자양분을 공급해야 합니다.

 

어느 일본 대기업이 미국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지사를 최초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기업의 사장은 미국 지사에서 근무할 영업 사원들로 영어를 아주 잘하는 직원들을 뽑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난 후 살펴보니 미국 지사의 매출 실적이 별로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장은 어디 한 번 되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이번에는 영어를 전혀 못하지만 국내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뛰어난 영업 사원들을 뽑아서 미국 지사로 발령을 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미국 지사의 매출이 급속히 신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성공한 영업 사원들의 열정은, 언어의 문제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여, 성공하겠다는 열정으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고, 결국 그 대기업은 미국 지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의 열쇠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소망,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게 해주는 열정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는 신앙이 강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면 아마도 교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소망이 강한 사람입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룩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반드시 무엇을 이룩하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신앙의 원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한 소녀가 세계 최고의 여자 프로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열심히 노력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박 세리 선수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소망을 품고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인간이 지닌 잠재력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90년대 말 미국에서 있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어느 해 연초, 선생님 3분을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학교 운영 위와 평가 위원회에서 여러 선생님들을 평가한 결과, 여러분 세 분이 우리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으로 뽑혔습니다.  저희들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특별한 조치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3학년 전체 학생들 가운데 아이큐, 즉 지능지수가 뛰어난 학생들로만 구성된 세 개의 반을 구성하여, 그 반을 여러분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큐가 떨어지는 학생들의 학부모가 반발할 것이 우려되어, 이 사실을 학생 본인들과 그 부모들 모두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께서 이 우수한 학생들을 지도하셔서, 그들의 학업 평균 성적을 올해 약 30% 정도 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 분의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들을 맡아 열심히 지도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 개개인이 지능지수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성심 성의껏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우수한 학생들로만 구성된 반을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 기회가 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연말이 되어, 실제로 그 세 반 학생들의 평균 성적은, 다른 반에 비하여 약 30% 정도 향상된 결과가 나왔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그 세 선생님을 불러 치하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는데, 여러분이 맡아 가르친 그 학생들은, 사실 아이큐가 뛰어난 학생들을 선별하여 구성한 반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학생들로 구성된 다른 반과 같은 학생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통해 실험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선생님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교장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평범한 학생들이었지만 올해 성적이 이렇게 향상된 것은, 아마도 저희들이 우수한 선생님으로 뽑혀서 그들을 지도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자 교장 선생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여러분 세 분의 선생님을 뽑을 때, 우리는 전체 선생님 명단을 놓고 제비 뽑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교육과 관련하여 행해진 아주 유명한 실험이었습니다.

평범한 선생님이 평범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들의 결과가 다르게 나온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1. 선생님은 자신이 특별한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2. 선생님은 학생들이 우수한 학생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가치에 관하여 그 어느 세상 보고서 보다도 더 값진 주님의 말씀을 갖고 있습니다.

(교성18:10) 인간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큼을 기억하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인간의 가치는 심히 큽니다. 한 인간의 잠재력은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능력을 지니신 것처럼 무한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의 아들, 딸로 태어난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승영에 이르는 것, 즉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음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니삼12:48) 그러므로 내가 이르거니와, 나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가장 큰 소망을 품고 있는 말일 성도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신앙을 보일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자들일 것입니다.  또한 가장 큰 사랑을 보일 수 있는 자들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6:2~3)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천사도 세상도, 모두 의롭게 변화되어, 복천년에 주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게 될 성도들에 의해서, 심판 받고 다스려 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드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힘들고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도, 우리의 소망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짐을 지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망을 키워야 합니다.

(10:35~39)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12:5~8, 11~13) “…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피곤한 손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일을 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나아갈 길을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소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징계와 고통을 즐거이 감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 수원 스테이크의 성도들, 특히 이 자리에 계시는 주님께 부름 받은 교회의 역원들이, 온전한 소망을 품고 전진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일 성도로서, 주님께 부름 받은 충실한 종으로써, 자부심을 지니고 하나님의 어린 양들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복음이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이 위대한 복음에 매달려 끝까지 견딜 때, 우리 자신의 온전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서만, 우리가 과거를 딛고 전진해 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1 18, 수원 스테이크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1. “개인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지녀야 할 일곱 가지 성품

 1. 책임감

첫째는 책임감 입니다.  지구상의 생명체 가운데 책임감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국가에 대한 책임, 가족에 대한 책임, 사회와 정의에 대한 책임 때문에, 사명감 때문에 우리는 목숨을 내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고귀한 이유는 고결한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는 인간은 책임을 지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경전에 보면 그러한 책임감에 모범을 보여 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리하이의 가족이 광야를 여행하다가 좋은 강철로 만든 활이 부러졌습니다.  이때 가족들은 식량이 부족해지자 활을 부러뜨린 니파이에게 화를 내었고 부친인 선지자 리하이 조차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반면에 니파이는 조금도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나무로 활을 만들고 부친께 나아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자 했습니다.

책임감의 반대는 부정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가운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 불평하게 됩니다.  불평하지 않고 책임 있는 자세를 늘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신앙이 아닐까요?  신앙이란 무조건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바를 찾아 행하며 최선을 다한 가운데 마지막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서만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책임감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58:26~28) 보라, 내가 범사에 일일이 명령해야 함은 합당하지 아니하나니, 무릇 매사에 강요당하여 행하는 자는 게으른 자요, 현명하지 못한 종이라 따라서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인간은 오로지 훌륭한 대업에 힘써 노력하며 자신의 자유 의사로서 많은 일을 행하며 많은 의를 이룩해야 하느니라. 이는 인간에게 능력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음이니, 사람이 선을 행하면 결코 자기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첫째 원리는 자기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의 책임은 내가 진다는 주도적인 자세 입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인 것 같습니다.

 

2. 긍정적인 생각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매사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레이맨과 레뮤엘이 그러한 행동을 보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성58:29) 그러나 명령을 받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마음에 의심이 가득하여 명령을 받아 마지 못해 이를 준행하는 자는 정죄를 받느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두 번째 입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관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긍정적으로 만사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성59:21) 어떠한 일로도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지 못하되 다만 만사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고백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이로써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느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려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라는 생각과 모든 결과의 책임은 내 책임이다 라는 책임감을 가지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결과는 나로부터 비롯되었고 내가 나의 현재를 이루었으며, 내 책임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치시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다면 어떠한 부정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과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성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절대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함만을 탓할 뿐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을 때 그냥 어깨를 한번 으쓱 하면서 다음에는 잘 될 거야 라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긍정적인 사고 방식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물과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과 결과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깊이 생각하다 보면 만사를 주관하는 하늘의 원리와 나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내가 불평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원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며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상황이 부정적이든, 실패이든 좌절감을 준 일이든 모든 일에서 교훈을 찾는 태도가 긍정적인 생각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 자부심

셋째는 자부심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잠재력을 지닌 위대한 영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지니신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은 것은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니신 온전한 성품과 신앙을 배우기 위함이 아닌가요?  다음은 앨마가 기드온 백성들에게 가르친 말씀입니다.

(7:11~13) 그가 세상에 나가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온갖 시험을 당하시리니, 그가 이렇게 하심은 인간의 질병과 고통을 대신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라. 또한 그는 그의 백성을 얽어 맨 죽음의 사슬을 푸시려 죽음을 당하실 것이요, 육신을 입은 인간의 연약함을 취하시어 자비로 가득 차게 하시리니, 육신을 입은 인간들의 연약함을 육신을 가지고 구해 내는 길을 아시려 함이었느니라. 영은 모든 것을 다 아셨으나,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고난을 받으심은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구속의 힘으로 그들의 범법을 구제하시려 함이니, 보라 이것이 나의 간증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으시어 인간을 구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처럼 육신을 입고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모든 부모는 자녀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양육하실 영의 자녀를 잠시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위임을 받아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일을 하도록 위임 받았고 그러한 일을 배우도록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거룩한 신권의 권능에 성임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거룩한 성약을 맺은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닙니까?  우리는 결국 끝까지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지니신 모든 영광을 상속 받을 자들이 아닙니까?  성전에 가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배우고 명상하게 됩니다.  성전에 다녀오면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기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마치 높은 산에 땀을 흘려 올라가 세상에 오밀 조밀한 집들과 빌딩과 길을 쳐다보면서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최고의 가장 높은 것, 해의 왕국의 승영이라는 자부심을 우리는 지녀야 합니다.  자부심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훌륭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기 위해 우리는 성전에 가야 합니다.  예언자께서 우리에게 성전에 오도록 권고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말일 성도로써 세상을 온전히 이길 힘을 성전에서 받으라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인내심

네 번째 성품은 인내심입니다.  우리의 삶이 각각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인내심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꾹 참고 대가를 지불한 사람만이 열매를 따게 됩니다.  인내심이 부족하면 우리는 시간이 필요한 일들에서 성취를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위를 따고, 좋은 직장을 갖겠다는 소망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거기에 인내심을 더해야 합니다.  오래 참고 견디는 마음이 부족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오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자주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성공적인 운동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육체적인 힘은 지구력입니다.  오래 참고 견디는 육체적 능력이 지구력 이라면, 오래 참고 견디는 정신적 능력이 바로 인내심 입니다.  경전의 예언자들도 이러한 것을 알고 우리에게 자주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인내심은 성취의 원리입니다.  참고 견디는 자만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끝까지 견디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니이31:15~16, 31) 또한 아버지로부터 음성을 들었나니, 내 사랑하는 자의 말이 참되며 진실하도다.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이로써 내가 아노니, 살아 계신 아버지의 아들의 본을 따라 끝까지 견디지 아니하면 구원 받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한 희망의 밝은 빛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느니라. 너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며 끝까지 참을진대, 보라 아버지께서 이르시어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인내심, 끝까지 참고 견디는 능력이야말로 영생을 비롯하여 우리가 성취하는 모든 것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내심은 사랑의 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몰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로7:45, 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간악함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더불어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라 영원히 참을 것이요, 누구든지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인정을 받는 자에게 모든 것이 잘 되리로다.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오래 참고 견디며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 포기하지 말라.

때로 그렇듯이 일이 잘못될 때

터벅터벅 걷는 길마다 오르막으로 보일 때

돈은 떨어지고 빚만 쌓여갈 때

그리고 웃고 싶어도 한숨만 나올 때

근심이 당신을 짓누를 때

쉬어야 한다면 쉬더라도, 포기하지는 말라.

우리 모두가 때때로 터득하듯

삶이란 얽히고 설킨 참으로 묘한 것

그리고 손만 뻗으면 잡을 것 같아도

실패할 때가 많은 법

너무 느린 듯 보여도 포기하지는 말라.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할 수도 있으리니

성공은 실패 속에서 나타나는 것

의심의 구름에서 퍼져 나오는 은빛

그리고 가까이 있어도 알 수가 없으니

아득한 듯 보여도 곧 다가갈 수 있으리니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싸워나가라

아무리 일이 잘못되어가는 듯 보여도 포기하지는 말라.

(익명의 작가)

 

5. 정직

다섯 번째 성품은 정직입니다.  정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직할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공과 성취의 원리 중에 하나는 모든 성공은 우리 혼자 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 주변 사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의 도움과 손길이 함께 해야 우리가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신뢰입니다.  사람들은 신뢰할 때 대가를 지불합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도 그 물건에 대한 신뢰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월급을 받는 것도 사장님의 신뢰를 받았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물건을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것은 고객의 신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뢰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성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직 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습니다.  일을 이루려면 사람들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움직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존경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뛰어난 말솜씨와 훌륭한 연설, 설득력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그들로부터 우리가 얻는 신뢰의 정도에 비례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떤 정치인, 연예인, 학자, 스승, 선배 등을 따랐던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왜 그들을 따르고 존경했습니까?  여러분은 그들을 신뢰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정직성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따랐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정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끄는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지도자로 만드시기를 원하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의 지도자 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정직의 원리에 대한 시험을 이 세상에서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결코 여러분의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사람들에게 정직하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성76:5~6)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나 주는 나를 두려워 하는 자에게 자비로우며, 은혜를 베푸나니, 끝까지 의와 진리로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 저희 상은 클 것이요, 저희 영광은 영원하리로다.

끝까지 의와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하나님께 정직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늘로부터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6. 감사

주님께서 문둥병 환자 10명을 고쳐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오직 한 사람 만이 돌아와 주님께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17~19)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은 강한 믿음을 갖는데 필수적인 원리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러 돌아온 문둥병이 나은 사마리아 인에게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의 성품이 완성에 이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더욱 더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습니다.  원활한 인간 관계로 인해 더욱 관계가 공고해 지고 사람들로 인해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감사는 기도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도는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야 온전한 기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늘 지니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늘 기도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몇 가지 원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앨마의 가르침 하나를 소개합니다.

(7:23) 이제 원하노니, 너희는 겸손하고 순종하며 온유 하라. 쉽게 권고대로 행하라. 인내심을 가지며 오래 참으라. 모든 일에 절제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계명을 부지런히 지키라. 세상의 것이거나 영적인 것이나 필요한 대로 모두 하나님께 구하라. 무엇을 얻게 되든지 하나님께 감사함을 돌리라.

무엇을 얻게 되든지,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모든 것에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태도를 지니시기 바랍니다. 앨마는 감사, 즉 기도가 신앙의 원리이며 성공의 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앨마는 그 원리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37:37)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할지니, 주께서 너희를 선으로 인도하시겠음이라. 네가 밤에 누울때 주님과 함께하면 잠자고 있을 동안 주께서 너를 살펴 주실 것이며, 아침에 일어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너희 마음이 가득 차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할진대 마지막 날에 높이 들리우리라.

여섯 번째 원리는 감사 즉 기도 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성품을 온전하게 해주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7. 소망

매일 목표를 적는 일을 두어 달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리띠와 옷 술에 주님의 계명을 적어 늘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게 했다는 구약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매일 목표를 적으면서 인생의 사명을 매일 생각하는 것이 나의 하루 생활에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의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며 우리가 선택한 길이 옳다는 확신을 매일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매일 거듭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매일 우리의 사명을 깨닫는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의 사명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을 매일 기억하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신앙의 도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전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신앙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베냐민 왕은 이 원리를 아들 모사이야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모사1:3, 5) 또한 놋쇠판에 새겨진 기록에 관하여 가르치며 이르기를, 나의 아들들아, 이제 이러한 사적과 계명이 기록된 이 판이 없었더면, 우리가 무지로 신음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알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너희가 명심하여 기억하기 바라노니, 나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손으로 손수 이렇게 보존하시어 우리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읽어 깨닫게 하시며 그의 계명을 늘 눈 앞에 보게 하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들의 조상들일지라도 불신앙에 빠졌을 것이요, 우리도 우리의 형제 레이맨인들 같이 되어 이러한 일을 전혀 알지 못하였으리라.

경전을 상고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사명과 목표를 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약해지고 결국 레이맨인들 같이 되어 불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인생이란 두 걸음 전진하고 한 걸음 후퇴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조금 진보했다가 조금 퇴보한다.  조금 발전하다가 멈춰서기도 한다. (브라이언 트레이시) 는 말이 있습니다.  목표를 지니고 노력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두 걸음 전진하고 한 걸음 후퇴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전진하는 셈입니다.

 

몰몬은 신앙과 소망과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로7:40, 42)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이제 나는 소망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노라. 어찌 너희가 소망을 갖지 아니하고서 신앙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신앙을 가질 진대 마땅히 소망을 가져야 하리니, 신앙이 없으면 아무 소망도 갖지 못함이라.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지녀야 하겠습니까?  경전을 매일 상고하고 기도하겠다는 목표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린 성품들을 발전시켜 신앙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지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마지막 다음 목표를 지니시기 바랍니다.  저도 지니고 있는 우리 모든 말일 성도 공통의 목표입니다.

(모로7:41) 또한 너희가 어떠한 소망을 가져야 하겠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부활의 권세를 통하여 영생으로 세우심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니, 이는 약속하신 바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들의 신앙으로 말미암음이라.

모로나이는 그 마지막 소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로10:32~33) 참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 안에서 온전하게 되며,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라. 너희가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너희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은혜가 너희에게 충만할 것이요, 그 은혜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리라.

거듭 이르거니와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의 권세를 부인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가 성결하게 되고, 아버지께서 언약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흠이 없는 성스러운 자가 되리라.

2004 2 08, 평택 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2. “일곱 가지 질문

 부산에 가면 선화 여상이라는 여자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그 학교의 생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어떤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과제를 내어주었습니다.  모두 7가지 질문에 대하여 각 종교 단체에 가서 답을 받아 적어오라는 숙제였습니다.

당시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던 저에게, 이 학교 학생들 중 14명이 찾아와서, 숙제 하는데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당시 우리 교회를 대표하여 이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이 일곱 가지 질문을 소개하면,

 

1)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풍족한 환경에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끼니도 못 때울 정도로 가난하게 태어나는가?

2) 모든 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3)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인가?

4)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무엇인가?

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6)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7)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 학교 선생님은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학생들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해서, 저는 약 2시간 이상을 이들에게, 칠판에 그려가면서, 전세, 천국 회의, 아담과 이브, 창조, 타락, 구원의 계획 등을 가르쳤습니다.  마치 암몬이 라모나이 왕을 가르치듯, 또 아론이 레이맨 왕을 가르치듯이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면서 간증할 때 눈물을 흘렸는데, 눈을 들어보니 그들 가운데 몇 몇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13 44절에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 말씀이 있습니다.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둔다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구원의 복음에 대한 지식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는 구절을, 저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 복음에 따라 변화되고, 정결케 되고 순수하게 되어 하늘나라에 가게 될 때, 해의 왕국의 승영에 이르게 될 때, 그렇게 변화된 우리 자신의 마음이 바로 보물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준 일곱가지 답변 가운데 몇 가지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목적 만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모세서 1 39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인간에게 불사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일, 이것이 바로 나의 사업이요 영광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란,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는 가운데, 겸손해지며 거룩한 성품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해 나가며 발전하는 것,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입니다.

 

몰몬경 니파이 2 2 29절에 리하이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악마와 육의 뜻을 좇아 영원한 죽음을 택하지 않기를 바라노니, 악마와 육의 뜻은 악마의 영을 뻗혀 속박의 권세를 펴며, 너희를 지옥으로 끌어내려 악마의 왕국에서 너희를 다스리고자 하느니라.

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열쇠가 되기도 하지만, 악마의 속박에 매여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육신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 고통을 통해 나의 영혼이 좀더 순화되며 겸손케 되며 주께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브리감 영 대관장님께서는 '우리에게 유혹이 닥칠 때, 그것이 육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영으로 육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악이 넌지시 일어날 때, 그것은 육신의 조직을 통해서임을 상기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몰몬경 학생교재 p75)  멜빈 레이 밸라드 장로님께서는 죽어서는 살아서 알고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복음의 진리를 터득할 수가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멜빈 레이 벨라드, 같은 책 p74)

육신을 이기고 승리할 때 우리는 교리와 성약 4 4절의 말씀대로 될 수 있습니다.

(교성4:4) 보라, 밭은 이미 무르익어 추수할 때로다. 보라, 힘을 다하여 낫질하는 자는 창고에 쌓아 두는 자니, 파멸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영육(영혼과 육체)을 구원시키느니라.

 

모든 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저는 이 질문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우연의 일치도 아닙니다.  바로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행복과 저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택한 것으로 인해 고통과 축복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14:30) "나의 형제들아, 멸망되는 자가 스스로 멸망을 이룬 것이요, 간악을 행하는 자가 스스로 이 일을 행하는 것임을 너희는 기억하고 다시 기억할지니, 보라 너희는 자유로와 임의로 행함이 허가되었고, 보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지식을 주시며 또한 너희를 자유로이 행하도록 하셨느니라."

(니이2:27)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인간은 자유로우며, 만물이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졌느니라. 인간은 만민을 위하여 마련된 크신 중보를 통하여, 자유와 영생을 택할 수도 있거니와, 악마의 권세와 속박에 매어 속박과 죽음을 택할 수도 있느니라.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인해 축복과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 한 형제님의 간증을 인용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진정 이 복음 속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나로써, 하나의 존재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이 땅 위에 서서 호흡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 교회의 복음을 통해서 저는 가슴속으로 뜨겁게 느꼈습니다.

진정 제가 교회에 속해 생활해온 그 기간 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러한 변화는 평범한 한 소년을,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한 세계에로의 시야를 띄어주었습니다.  그 세계는 온통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환희의 세계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또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하며,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1987, 전덕민 형제 간증 편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우리가 참된 복음의 진리 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지상 최대의 선물은 성신의 은사인데, 성신은 우리에게 이 복음을 깨닫게 해주는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는 존재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며 배우고 가르치고 봉사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의 영광을 상속 받기에 합당한 자로 헤아림을 받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목표를 지니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이 질문도 잘못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은 조금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행동이 함께할 때야 비로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참되게 아는 사람은,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인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되게 사물을 아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일성도는 모두 지도자가 되기 위한 운명을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우리의 합당함을 증거해 보였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신권 지도자로써, 또 교회의 역원으로써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슨 하이드 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이끌어 가기 위해 성임을 받았으면, 그는 환란과 시험을 거쳐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 그가 그 직을 맡기에 합당함을 보인 것 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그리고 하나님의 정원회 앞에서, 합당함을 증거하지도 않고 시험을 받지도 않았으면, 그는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성령과 전능하신 이의 권고를 알고, 교회를 알고 교회가 그를 알아,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올슨 하이드, 대회보고 185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지만, 저에게 부족한 성품과 부적당한 자격이 너무나도 많은 데도, 저에게 이러한 부름과 사명이 주어진 것은, 저에게 한 가지 은사가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고 있고,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간증을 지니도록 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의 영육의 온전한 구속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쳐 전할 때 우리의 옷이 깨끗해진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부족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러한 간증을 엄숙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때, 저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으며,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더욱 큰 목소리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이 복음의 참됨에 대한 간증을 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가 온전해 질 수 있음을 간증 드립니다.  이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의 참된 교회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드립니다.  아멘.

 2004 5 8, 수원 스테이크 대회 토요 대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3.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와 감추인 보화까지 찾으리니” (교성89:19)

  20여 년 전 선교사시절 초기 어느 날 저녁에 지갑을 열어 보았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저는 포항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경주에서 선교사 모임이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갑에는 경주까지 갈 차비만 달랑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동반자가 미국인 장로였는데, 그에게 도움을 청할까 생각하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주님께 간절히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룩한 선교사 기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경주로 가서 선교사 모임은 잘 끝났습니다.  모임 후 이제 돌아오려는데, 어떤 장로님이 저에게 다가와서, ‘구 장로님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없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저는괜찮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또 다시 저에게제가 뭐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세 번째로 저에게 질문한 뒤에야 저는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즉석에서 저에게 2만원을 주면서 이것으로 차비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도하면서 참으로 많이 울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앞으로 십일조의 법을 온전히 지키겠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린 것이 기억납니다.  그 때 당시 저에게 도움을 준 그 장로님이 바로 여러분께서 모두 잘 알고 계신 신풍 와드의 안재석 형제님입니다.

말라기서 3장에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8~12)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가 수년 전에 지부장으로 봉사하던 시절, 어떤 독신 자매님의 십일조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의 십일조가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 자매님은 십일조를 내면서, 거의 십일조에 육박하는 금액을 금식헌금으로 내는 자매님이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십일조가 아닌 거의 오분의 일조를 바치는 자매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의 금식헌금을 보면서, 제가 내는 금식헌금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저의 금식헌금을 후하게 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혹시 실직, 사업 실패 등으로 고민하고 계시는 성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계명인 십일조의 법을 기억하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이 계명에 충실한 자에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후한 금식 헌금을 바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침례를 받은 후, 6개월 만에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부대에 배치된 후 첫 외박을 고참들과 나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참들은 저와 몇 명의 신참 졸병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술잔을 따라주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마시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저에게 협박, 기합 등으로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별로 유쾌한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관련하여 별로 유쾌하지 못한 경우를, 직장 등에서 경험하신 분들께서 계실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대학에서, 직장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에 등록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날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은 반원들을 모두 데리고 어떤 술집으로 갔습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갔습니다. 둥그런 원탁에 약 20여명의 반원들과 교수님이 빙 둘러 앉았습니다.  저는 그 교수님의 바로 왼쪽에 앉았습니다.  교수님이 맥주와 양주를 이용해서 일명 폭탄주를 만든 뒤, 주욱 들이키고 나서 모든 반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술을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드셔야 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드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술을 드시지 않으시면 벌칙이 있습니다. 벌금을 내야하고 벌도 받아야 합니다.”

자리에 함께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셨습니다.  교수님의 오른쪽부터 한 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술잔을 집어 들고 그 자리에 함께한 회중들에게 약 1분 내외의 짧은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이 좋은 분위기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 모두가 제가 이 술을 마시기 바란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뜻한 바가 있어서 교회에 다닌 뒤부터 약 20여 년간, , 담배, 커피, 홍차 등을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이러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 술을 마시지 않고, 벌을 받고 벌금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몇 만원 정도로 기억되는 벌금을 내려고 지갑을 꺼내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이 저의 술잔을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벌금은 안 내셔도 됩니다.  저는 신념이 확실한 사람을 존경합니다.  선생님의 술은 제가 대신 마시겠습니다.  여러분 동의하시죠?”

그러면서 그는 제 술을 대신 마셨습니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저는 안주만 먹으면서 함께 하였습니다.  모든 모임이 끝난 뒤 술에 취한 그 교수님을 부축하여 택시를 잡으려고 가는데, 그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나이에 이르도록 아직도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 날은 참으로 유쾌한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지혜의 말씀과 관해 난처한 경험을 한 적이 많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키려면 세상적으로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말은, 거짓된 사탄의 가르침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세상의 신뢰를 받고 세상적으로도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지혜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을, 요셉 스미스를 통해 주신 계시를 통해 찾아 봅시다.  (교성89:18) 무릇 이 말씀을 기억하여 지키고 행하며, 계명에 순종하여 생활하는 모든 성도는, 배꼽에 건강을 얻으며 뼈에 골수를 얻으리라. 또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와 감추인 보화까지 찾으리니, 달려도 피곤치 아니하며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해하고 알게 된, 이 참된 복음에 대한 지식입니다.  바로 이 복음에 대한 간증입니다.  순결하게 되고 정결케 된 우리 자신입니다.

 

저의 축복사의 축복을 주의 깊게 다시 읽어 보니, 거기에는사랑이란 단어가 네 번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저에 대한하나님의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이웃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이웃에 대한 사랑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찌어다.”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전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참된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 복음을 가르치는 일 ,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웃과 복음을 나누는 사람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교사업을 하는 자는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사랑을 베푸는 자입니다.  여러분의 봉사는 바로 여러분의 사랑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위대한 이유는, 경전에 다음과 같이 그분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니일19:9) “세상은 저들의 죄로 인하여, 주를 값없이 여기어 주를 채찍질 할 것임에, 주께서는 이를 참으실 것이요, 주를 매로 칠 것임에 이를 또한 참으시리라. 참으로 사람들이 주께 침을 배앝으나 주께서는 이를 참으실 것이니, 오로지 인간들을 향하신 사랑의 친절과 오래 참으심으로 견디시리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사랑을 지니신 분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유는, 그분이 늘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친히 커다란 고통을 인내로 견디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3 20절에 보면,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참는 것이라면, 사랑을 지니기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부 사이에 인내하고 참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 관해 참고 견뎌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만이 사랑을 지닌 자로 인정될 것입니다.

몰몬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자에게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고난을 인내로 극복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복음이, 참으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는 나의 구속주 이시며 우리의 구세주 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이제 다음 스테이크 대회가 돌아오기까지,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은혜와 은총의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5 9,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4. “실패와 성공

 요즘 이라크 전쟁을 통해 무고한 인질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을 보면서 저는 몰몬경 시대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힐라맨서와 니파이삼서에 걸쳐있는 주님의 미대륙 방문전 약 30여년의 시간과 매우 비슷합니다.

당시에는 개다이앤톤 도적단이 출몰하여 니파이인들과 레이맨인들을 괴롭혔으며, 결국 모든 백성이 연합하여 도적단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미처 뿌리 뽑지 못한 잔당들이 남아 주님의 미대륙 방문전에 다시 백성들을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오늘날도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과 테러 등으로 인해 세계가 혼란한 상황이지만 결국 국가가 연합하여 테러리스트들을 척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기가 곧 오게 될 것이며,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못한 중동과 이슬람 국가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미처 뿌리 뽑지 못한 잔당들이 일어나 주님의 재림 전의 극심한 환란의 상태가 오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혼돈의 와중에서는 오히려 잘 뻗어나가지만, 주변이 안정되어 있으면 뭔가 일의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다는 사실은, 이미 심리학에서 정설로 굳어져 있습니다. (실패의 성공학, 리차드 파슨 저, 휘슬러 출판사, 2004)

이들에게는 성공 그 자체보다 성공을 위한 준비기간이 이들을 더 흥분시킵니다.  문제가 없으면 도전도 없고 자극도 없어집니다.  우리의 삶은 일이 잘 돌아갈 때보다, 잘 안 돌아갈 때, 더욱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일부러 역경을 찾아 다닙니다.  극한 상황에 일부러 자신을 내 던지고 거기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인간형을 관성형 인간이라고 합니다. 몰몬경을 보면 니파이가 바로 이러한 인간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오히려 돋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루한 승리보다는 짜릿한 역경을 더 좋아합니다.

 

니파이가 놋쇠판을 가져오라는 아버지 리하이의 말씀에 따라 형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레이맨이 제비를 뽑아 첫 번째 시도를 한 뒤 레이밴에게 거의 죽을뻔하고 실패하여 돌아왔을 때, 형들은 거의 낙담하여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이때 니파이는 형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니일3:15) 주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을 이루기까지는 광야에 계신 부친께로 돌아 가지 아니할 것이[]

역경이 닥쳐도 실망하지 않는 자세와 함께, 반드시 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한 결심이 우리를 구원과 화평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간악한 노아왕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순교당한 선지자 아빈아다이도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모사13:4)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것을 내가 기필코 이루리라.

 

실패는 불명예가 아니다.  실패의 경과를 분석하여 그 원인을 알아내면 된다.  그러려면 지혜롭게 실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실패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누구든 실패하면서 성공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발명가 케터링, 미국)

니파이가 첫번째 실패한 뒤 금은 보화를 모두 모아 두번째로 시도했을 때 이번에는 금은 보화를 모두 빼앗기고 다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형들은 동생을 때리고 비난했지만 니파이는 어떠한 태도를 보였습니까?

(니일4:1~3) 우리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주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도록 하자. 보라, 주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강하시니, 레이밴과 그의 오십이나 설혹 수만의 부하가 있다 할지라도 어찌 그보다 강하시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러하니 함께 올라 가 진정 모세처럼 강하게 되자. 진실로 모세가 홍해를 명하매 홍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라져 우리 조상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마른 땅을 딛고 바다를 건넜으나 바로의 군대는 그들을 뒤쫓다가 홍해 바다에 빠져 죽지 아니하였더냐?

보라, 너희는 이 일이 사실임을 알고 있으며 천사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일도 알고 있으면서 어찌 이를 의심하겠느냐? 자 올라 가자, 주님께서 우리 선조들을 구하신 것처럼 우리도 쉽게 구해 주실 것이요, 애급인들을 멸하신 것처럼 레이밴도 쉽게 치실 것이라.

결국 니파이는 주님의 영의 인도에 따라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패는 다시 시작하되 더욱 지혜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다.  (헨리 포드)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실패의 비율을 곱절로 높이는 것이다. (토마스 왓슨, IBM회장)

위대한 도전에서는 실패조차 영광스럽다! (같은 책)

니파이의 실패는 위대한 도전이었으며 그 실패의 기록이 몰몬경에 남겨져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정직하게 일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진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린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 (같은 책)

실수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실패를 겁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

사실 실패에 대하여 두려워한 레이맨과 레뮤엘이 결국 니파이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신앙의 반대는 두려움이라고 여러분들에게 예전에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공과 신앙이 한 몸이라면,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역경과 고난은 대부분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한 주님의 손길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리버티 감옥에서 몇 달간 고통을 겪고 있는 요셉 스미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121:7~8) 나의 아들아, 평안할 지어다. 네 불행, 네 곤고는 잠시 동안이니,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너를 높이 받들어 올릴 것이요, 너는 네 원수를 모두 이기리라.

(교성122:7,9) 내 아들아, 이 모든 일은 네게 경험이 되고 네게 유익이 되는 줄 알지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영원토록 너와 함께 하실 것임이니라.

 

이렇게 살펴 보니 다음 말씀이 또한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경의 한 가운데 서게 되면 우리는 모두 더욱 나은 자아가 된다 (같은 책)

진정한 의미에서 실패실수는 없다.

성공이나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외부에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내부에 있습니까?  저는 진정한 실패는 우리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자인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포기 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성역을 베푸실 때 유대인들은 그를 정치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되자 백성들은 예수님을 실패한 선지자로 대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속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순교 당한 선지자로 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실패한 선지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그분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요 구속주 이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그분의 사명이 실패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과 함께 미 대륙의 잔류민들에게도 방문하시었으며, 이 말일에는 소년 선지자인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미대륙을 방문하셔서 맨 처음에, 무리들에게 자신의 상처와 못 자국을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침례의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이 무엇일까요?

(니삼11:29~3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서로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악마에게 속한 자니 악마가 분쟁의 아비가 됨이라. 저가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여 서로 성내게 하며 다투게 하는도다. 보라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고 분노를 돋구어 서로서로 다투게 함은 나의 가르침이 아니요, 이러한 일을 금하게 함이 나의 가르침이라.

주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서로 다투지 말라 이셨습니다.  두번째 가르침은 다음 말씀이셨습니다.

(니삼11:38) 내가 거듭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회개하여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작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왕국을 기업으로 얻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주신 후에 마태 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인 산상 수훈을 전해 주셨습니다.

서로 다투지 말고, 회개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님께서 미 대륙에 방문하여 주신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실패와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 들어 올려 주시리라는 소망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고, 온유한 것이며,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오래 참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6 20, 수원 스테이크, 율전와드 대회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5.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인정을 받는 자에게 모든 것이 잘 되리로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일들은,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들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지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안전과 평화가 위협을 받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성품이 점점 더 포악해지고, 신앙심은 약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학교나 직장에서, 거의 혼자 말일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만나는 일요일에 와서야, 우리는 시온의 백성으로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처음으로 말일성도들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 저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과 기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개종하기 전에 구도자 시절에, 그들은 저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대해 주었고, 모임은 저에게 편안했습니다.

이제 말일성도로서, 제가 그때 그들처럼 새로 교회에 방문한 분들을, 친절과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참 많이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 성품이 온화하고 온유하며, 사랑과 미소와 친절이 몸에 배인 사람, 인격이 성숙한 지경에 도달한 사람, 그 얼굴에서 사랑이 풍기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제가 기억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용환 장로님 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전임 스테이크장이셨습니다.  얼마 전에 그분의 아들과 접견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형제님에게, 아버님의 과거 모습과 현재의 모습에 대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교회에서 많이 달라지셨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훌륭한 변화의 소망을 분명히 지닐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몰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만일 너희에게 사랑이 없을진대 너희는 헛된 것이라. 사랑이 결코 실족하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것 중에 으뜸이 되는 사랑을 좇으라. 모든 것이 실족하되,

사랑은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라 영원히 참을 것이요, 누구든지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인정을 받는 자에게 모든 것이 잘 되리로다. (모로7:46~47)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헛되다고 몰몬은 가르쳤습니다.  사랑 이외에 모든 다른 것들이 실족한다는 말은, 사랑을 지니지 못하면 실족한다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신앙을 지녀도 사랑이 없으면 헛되다는 말씀입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헛된 것입니다.  일전에 제가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랑을 지니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에 대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첫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리하이의 생명나무의 시현을 니파이도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그에게 생명나무를 시현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 천사가 니파이에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양, 곧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을 보라! 너의 부친이 본 나무의 의미를 네가 알겠느냐?

니파이가 대답했습니다.  알겠나이다. 그 나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두루 적셔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심에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저희가 얻고자 하는 것이오니이다

그러자 천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하도다,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니일11:21~23)

생명의 나무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5:8~10)

생명의 나무인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가지로 생명나무에 접붙여지게 되어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여러분께서는 모두 이 구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두 번째 속성은 온유한 것, 즉 겸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의 품 안에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 인내심이라면, 두 번째 발걸음은 겸손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찬송가나 성가 노래 가사에서 자주 들었던 구절일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노력해서만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얻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몰몬도 그러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3:12) 보라 저들이 간악하였음에도 나는 저들을 인도하여 전쟁도 여러번 치렀으며,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다하여 저들을 사랑하였고, 평생을 두고 저들을 위하여 심령을 다 기울여 기도하였으되, 저들이 마음을 강퍅하게 먹어 신앙을 갖지 아니하였[도다],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몰몬의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사임을 알았습니다. 몰몬은 백성들에게 평생을 두고 심령을 기울여 사랑을 베풀었지만 그들은 몰몬을 져버렸습니다.  저는 몰몬의 사랑에 대한 위대한 가르침이 몰몬서에 기록되지 않고 모로나이서 7장에 기록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몰몬은 우리가 몰몬경이라고 부르는 이 책을 요약 정리한 선지자 입니다.  그는 이 방대한 기록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이 말씀을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은 그의 겸손함과 사랑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고 모로나이는 레이맨인들에게 쫓기면서도, 모로나이서 뒷부분에 아버지의 위대한 가르침을 기록했습니다.

사랑을 받아줄 사람이 비록 강퍅할 지라도,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지면 위대한 사랑이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몰몬과 모로나이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도 때때로 약화될 수 있고, 기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대한 포부와 희망도 때때로 낙담하게 되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고 시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과 소망을 지녀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신앙을 가질 진대 마땅히 소망을 가져야 하리니, 신앙이 없으면 아무 소망도 갖지 못함이라.  또한 보라 내가 너희에게 거듭 이르거니와, 온유하며 마음이 낮아지지 아니하고서는 너희가 신앙이나 소망을 갖지 못할 것이요,

신앙과 소망을 지니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마음을 겸손히 하고 온유하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신앙이나 소망을 지니지 못한다고 몰몬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사람의 신앙이나 소망이 헛되나니, 온유하며 마음이 낮아지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아니함이라. 또한 사람이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여, 성신의 능력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려 하면, 마땅히 사랑을 가져야 하리니, 사랑이 없으면 사람이 헛됨이라.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을 품어야만 하느니라. (모로7:42~44)

 

제가 이 부름을 받았을 때, 저는 제 자신의 사랑의 크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테이크 대회 전날 밤을 거의 지새다시피 하면서, 주님께 매달린 저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이 부족한 제게 어찌 이러한 부름을 주십니까?  이제 약 3년이 지나면서 저는 사랑에 대하여 다른 시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진실한 사랑은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을 행사하고 소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견딜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만지시어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우리의 사랑을 온전하게 해 주신다.

 

아름다운 성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대회에 감사 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계신 감독님과 자매님, 그리고 와드 역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내년 대회는 새로 지어진 아름다운 표준 건물에서 치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생활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7 11, 매탄와드 대회 성찬식에서, 수원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6.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20:25)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우스개 소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아담과 이브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배꼽이 없는 남자와 여자를 찾는다. 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배꼽을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틀린 대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천국에서 우리의 주님이신 구세주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답은 손과 발에 못 자국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 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마침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5)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8일이 지난 후에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의 손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그리스도의 수난(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Passion of Christ)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로써, 그리스도의 육체적, 신체적 고통을 부각시키고 강조한 영화입니다.  사실 제 감수성이 조금 예민한 터라, 어린 시절부터 십계 라든가, 벤허 같은 종교성 짙은 영화들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은 저로써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려서 창피 할까봐 영화를 보기도 전에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서, 주님의 고통과 고난의 장면들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묘사되는 것을 보고 충격은 받았지만, 정작 눈물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 영화를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의 성역 가운데 그분의 고통과 고난이 분명히 의미 있는 순간이기는 하지만, 그분의 속죄와, 가르침과, 부활 등 더 중요한 메시지를 이 영화는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몰몬은 니파이인과 레이맨 인간의 끔찍한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5:8) 이제 보라, 나 몰몬은 내가 목격한 유혈과 살륙의 끔찍한 참상을 기록하여 사람들의 심령을 괴롭히기를 원하는 바는 아니로되  (모로9:20) 나의 아들아 이 처참한 광경에 관하여 더 언급하지 아니하노라.

몰몬경은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몰몬경을 읽다보면 끔찍한 장면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구도자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자매님이 몰몬경 첫 부분을 읽다가 니파이가 레이밴을 죽이는 장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책을 읽다가 니파이가 레이밴의 목을 치는 그 부분에서 더 이상 읽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일은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저는 몰몬경의 초반부에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기록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다 알다시피 몰몬경에는 많은 죽음과 고통의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몰몬경에 나오는 모든 죽음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 겸손해지게 됩니다.  장례식장에서 행해지는 말씀들은 대부분, 일상에서 잠시 돌이키고 죽음과 구원과 내세에 대해 생각하면서 겸손해지자라는 것이 전형입니다.

몰몬경에 이처럼 많은 죽음의 기록이 담기게 된 것은, 니파이인과 레이맨인 간의 전쟁의 기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기록이 바로 말일의 환란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록되고 요약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로나이 천사는 몰몬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요스2:34) "그 분은 이 대륙에 먼저 살았던 백성들의 기사와,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에 관한 기사가 금판에 기록된 책이 묻혀 있다고 전하면서, 이 책에 구세주께서 친히 고대 주민들에게 전하신 바, 온전한 복음이 또한 적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일에 주신 계시 가운데, 몰몬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성10:46) 보라, 이 기록의 나머지 부분의 모두는, 나의 거룩한 예언자와 또한 나의 제자들이 이 백성에게 나타내기를 기도로 열망하던, 나의 복음의 모든 부분이 실려 있느니라.

(교성42:12) 거듭 말하거니와 이 교회의 장로와 제사와 교사들은, 성경과 몰몬경에 있는 나의 복음의 원칙을 가르치라. 그 책에는 충만한 복음이 실려 있느니라.

(교성20:9~12) 몰몬경에는 타락한 어느 백성의 기사와, 이방인과 유대인에게도 전해질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실려 있느니라. 이는 영감으로써 주신 것이요, 천사들의 성역으로 다른 사람에게 확인된 것이니, 저들로 말미암아 세상에 선포되어, 거룩한 경전이 참됨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감을 주시고 부르시사, 옛 세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와 세대에, 자신의 거룩한 일을 하게 하심을 세상에 증명하시며, 이로써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심을 나타내시느니라.

 

몰몬경에는 복음의 충만함이 담겨 있다고 주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전쟁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몰몬경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미대륙을 방문하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니삼11:10~11) 보라 나는 예언자들이 세상에 오리라고 증거한 바 예수 그리스도라. 보라 나는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쓴 잔을 마시며,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고, 태초로부터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행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뒤 그 다음으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니삼11:14) 너희는 일어나 내게로 와서, 너희의 손을 나의 옆구리에 넣어 보고, 내 손과 발의 못자국을 만져 보아,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온 땅의 하나님임을 알라.

도마는 자신이 못 자국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주님의 제자로써 그분을 알았기 때문에, 만져보라는 말씀에 그냥 엎드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20:28)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 대륙의 주민들은 많은 시간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모두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아가 목격하고, 주님의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았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첫 번째 방문 시, 남녀노소를 합쳐 약 2,500 여명이나 되는 무리들에게 친히 그분의 몸을 만지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이 기록이 약 이천 여 년 뒤의 말일의 우리들에게 전달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부활과 대속의 희생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후세에 남겨지게 하기 위해서, 수천의 무리에게 친히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만져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구세주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과연 유대인들이 몰몬경을 이해한다면 몰몬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수 천명의 미대륙 백성들의 간증마저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모로나이는 금 판을 묻으면서 맨 앞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의 잔류민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행하신 크신 업적을 알려 주어, 저들이 영원토록 버림을 받지 않게 하리라고 하신 주의 언약을 알게 하며,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모든 나라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어 보이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느니라. (몰몬경, 표제지)

몰몬경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즉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모든 나라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어 보이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예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약 일곱 살 정도 된 어린 소년과, 그의 네 살 정도된 어린 여동생 남매의 이야기 입니다.  이 두 남매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네 살 여동생이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수술을 앞두고 아이의 혈액형을 조사해보니 매우 희귀한 혈액형이었습니다.

그 병원에는 그 희귀한 피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함께 그곳에 온 오빠의 혈액형을 검사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마침 여동생과 오빠가 같은 혈액형이었습니다.  간호원이 어린 오빠에게 동생을 살리기 위해 피를 좀 뽑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오빠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본 뒤에 답변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간호원이 그러라고 하고 나갔습니다.

잠시 뒤에 오빠는 이제 준비되었다고 했고, 간호원은 이 소년을 수술실 옆방 침대에 누이고 피를 뽑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수술이 끝나자, 이 간호원은 피를 뽑아 어지러울 까봐 누워있으라고 한 오빠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네 동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쁘지 않니?

그러자 오빠가 잠시 기뻐했지만 금방 안색이 어두워졌습니다.

네 기뻐요, 그런데 저는 언제 죽지요?

그러자 간호원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죽다니? 네가 왜 죽니?

피를 뽑으면 죽는 것 아니에요?

 

이 어린 소년은 사랑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딴에는 목숨을 걸고 헌혈을 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사랑하는 동생들인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당신의 죽음을 아시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시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19:16~19) 보라, 인간이 회개하면 고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이미 고난을 겪었느니라. 그러나 저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겪은 것 같이 고난을 겪어야 하리니, 그 고난은 하나님이요 모든 자 보다 가장 위대한 나를 고통으로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했으며 육체와 영혼이 다 괴로움을 당하였으므로,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고 까지 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버지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나는 그 쓴 잔을 마셨고 인간의 자녀를 위한 준비를 끝 마쳤느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의 행위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다음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몰몬경과 관련하여 주님께서 주신 또 다른 말씀입니다.

(교성3:19~20) 이상의 기록이 실려 있는 이 판은, 바로 이 목적 때문에 보존되었나니, 주께서 그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레이맨인이 자기 조상을 알고, 주의 약속을 깨닫게 되며, 복음을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은덕에 힘입으며, 그의 이름을 믿는 신앙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며, 회개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니라.

올해 우리 스테이크 4대 목표 가운데 첫 번째 목표가 경전읽기 입니다.  경전을 매일 상고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읽는 단계를 지나, 상고하고 명상하는 단계를 거쳐, 결국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저처럼 주석을 달고 밑줄을 그어가며 연구를 하는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제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성장하여, 이 복음을 세계 방방 곡곡에 전파하는 날이 오기 전에, 4대 표준 경전을 잘 주석하고 설명하여, 이 어린아이들의 경전 공부를 돕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 말일의 사업이 뻗어나가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시온의 스테이크가 강화되어, 우리 성도들의 신앙과 소망과 사랑이 점점 더 커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좀더 온전한 성품과 사랑을 갖춘 형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04 7 18, 신풍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7.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 이루어 지리라고 믿나이다” (19:9)

 그 동안 매탄와드 감독으로 수고하신 박 삼곤 감독님은 참으로 제가 존경하는 신권 지도자 이십니다.  감독님께서는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회원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보살피셨습니다.  최근에 개종하신 어떤 자매님이 간증모임에서, 자신의 개종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박 감독님은 참으로 선한 성품과 사랑을 지니신 분입니다.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그러한 온전한 성품을 지닌 분들입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박감독님을 보면서 저는 배웠습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감독님의 선행과 봉사는 저희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과 그분의 사랑을 받은 회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저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혜란 자매님은 큰 신앙으로 자매의 본분을 다하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자매님은 하나님의 영의 자녀를 지상에 내려 보내시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여러 자녀를 맞이하여 묵묵히 그들을 보살피며, 신권 지도자인 남편을 내조하시는 모습이, 많은 회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자녀를 많이 양육하는 데에 있어, 참으로 커다란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 안 하실 분이, 아마 이 자리에 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동안의 자매님의 수고와 희생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해임되신 곽영헌 지부장님을 뵐 때마다, 저는 겸손한 지도자 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부장님만 겸손한 성품을 지니신 것이 아니라, 이정임 자매님도 그에 못지 않은 분이라는 것을 지난 스테이크 대회 때, 자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어려운 형편에서,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려는 자매님의 겸손한 간증에, 많은 회원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저 또한 자매님의 간증과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선지자로 택하신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저는 경전에서 모세의 성품을 묘사한 다음 구절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12:3) “이 사람 모세는 []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품성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저는 겸손을 꼽겠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은, 그의 신앙 이전에 그의 성품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곽 지부장님은 참으로 겸손한 분 이심을, 저는 그분을 대할 때 마다 늘 느꼈습니다.  이제 어디에 가시든 어떤 일을 하시든, 주님의 큰 축복과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청소년 대회 때, 참으로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희생하고 봉사하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대회 기간 동안 봉사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최미경 자매님이 대회 기간 동안 내내 함께하셔서 수고하시는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사실 최미경 자매님은 스테이크의 회원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든 굳은 일이 생기든, 항상 나타나시는 것을 저는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스테이크 모임뿐만 아니라 장례식, 결혼식 등 거의 대부분의 애경사에 항상 나타나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스테이크의 자매 마당발이라고 별명을 붙여 드려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매님을 볼 때마다 저는 경전의 다음 말씀이 생각납니다.

(31:9,30~31)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오늘 해임되시지는 않았지만 신풍와드 황종원 감독님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감독님은 참으로 복이 많으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교회의 모든 신권 지도자는 아내의 내조가 없이는 그 부름을 수행하기가 극히 힘이 듭니다. (고전11: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제 신풍와드의 경계가 넓어졌고 회원들이 늘어나게 되었으므로, 오늘 이 모임을 계기로 신풍와드가 다시 한번 큰 힘을 발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수원 스테이크의 오늘을 있게 한 모태 와드로써, 다시 한번 그 힘과 저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선지자 니파이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교만이 부풀어 오른, 너희 명철하고 유식하며 부한 자[에게 화 있을 지어다]” (니이28:15)

명철하고 유식하며 부한자 모두에게 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교만이 부풀어 오른 자에게 화가 있다고 니파이는 말씀 하였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만한 부자는 이 말씀대로 정말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부자는 어떨까요?  명철하고 유식한 교육받은 사람이지만 겸손한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교육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일 성도는 교만하지 않은 부자, 겸손한 부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하지 않은 지식인, 겸손한 지식인이 되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해임되셨지만, 또 다시 새로운 와드의 감독 부름을 신앙으로 받아 들이신, 장시성 감독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장 감독님의 사업이 번창하는 이유중의 하나로 저는, 주님께서 겸손한 부자의 모범을 보이시려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 감독님은 지금 부자이시지만 예전에 형편이 그리 좋지 않을 때에도, 가난하고 궁핍한 많은 회원들을 보살피는 분이셨습니다.  이제 감독님은 물질적인 부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까지도 갖추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는 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보이는 희생, 헌신, 봉사라는 재물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장 감독님께서는 사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부양하고 계십니다.  이제 새로이 통합된 커다란 와드의 감독으로써, 하나님의 어린 양들을 먹이고 입히는 훌륭한 종의 역할을 다 하시리라 기대합니다.

감독님의 오늘이 있기까지, 인내하고 내조해 주신 안옥현 자매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원스테이크에서 가장 큰 와드 감독의 아내로써, 감독님을 잘 내조해주시고, 회원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이제 매탄 와드 일부 회원과 용인 지부 회원들이 함께 연합하여 구성된, ‘신갈 와드의 감독으로 부름 받으신 이경준 감독님에 대하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테이크의 많은 분들이 이 경준 감독님에 대하여 잘 모르실 것입니다.  또 용인 지부 출신 형제 자매 여러분도 그 분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

이 감독님의 추천서를 작성할 때, 안재혁 부장님과 당시 보좌였지만 지금은 미국에 가 계신 구본철 부장님은 그 분을 잘 모르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전 약 6개월 전부터, 이경준 형제님 댁의 가정복음교육을 하면서 그분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부장단은 기도하는 가운데 감독의 부름을 수행할 형제님을 선택하였습니다.  제가 당시 이경준 형제님을 추천했을 때, 구 부장님과 안 부장님은 그분을 전혀 몰랐지만, 저를 믿고 지지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저에게 훌륭한 보좌를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암몬이 라모나이 왕을 가르쳤을 때, 왕이 영에 감동되어 쓰러진 뒤, 암몬이 왕비에게 왕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니 내일이면 일어나시리이다. 왕후께선 이 일을 믿으시겠나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왕비가 암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씀과 우리 종들의 이야기 이외에는 아무 다른 증거가 없으나,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 이루어 지리라고 믿나이다”(19:9)

오늘 비록 잘 알지 못하고 아무 증거도 없으나, 새로운 신임 감독을 지지하는데 있어 신앙을 행사해 주신 여러 형제 자매 여러분들의 놀라운 신앙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신앙으로 기꺼이 부름을 받아들이신 이경준 감독님과 이윤희 자매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제 이경준 감독님은, 신갈와드의 감독으로써, 주님께서 택하여 세워주신 하나님의 참된 종이라는 증거를, 주님을 통해 회원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그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신앙의 기적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부름이 부름 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축복이 되게 만드실 것입니다.

머지 않은 장래, 신갈와드가 속한 용인 지역에, 교회 부지와 함께 또 다른 새로운 표준 건물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신갈 와드 회원 여러분들에게, 큰 신앙의 일을 하도록 기대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와드와 지부가 통합되고, 경계가 조정되었으며, 교회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정들었던 회원들과 본의 아니게 이별하게 되었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지도자가 바뀌었으며, 많은 것들이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의 참된 의미는 잘 몰랐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희생 제물을 바친 아담과 이브처럼, 그 이유를 몰랐지만,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아들을 바친 아브라함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는 주님과 이 교회와, 이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 조치를 지지하고 새로운 지도자들을 지지한 것입니다.”

스테이크장이라는 부름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저의 성품과 신앙에, 잠시 망설임의 순간이 있었지만, 저도 여러분이 가지신 것과 같은,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가졌고 보여준 것과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이 부름에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굳건한 신앙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앞장서서 오늘의 이러한 결과가 이루어 진 것이지만, 이 일에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오늘 이 예배당을 가득 메운, 이 모든 형제 자매들이 한 스테이크의 회원들이지만, 여러분이 모두 한 와드의 회원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오늘 이 모임에 함께한, 새로 조직된 두 와드와 신풍와드, 그리고 우리 스테이크의 모든 와드와 지부가, 각각 오늘처럼 회원들로 차고 넘치는 날을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한 이 길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참으로 선한 결과를 낳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저는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교회는 아름답고 강하게 되어야 함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오늘 감독님들만 해임되고 부름 받으신 것이 아니라,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 해임되고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복음이 참되며, 이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이며,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옳다는 확신이 있음을 저는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교회는 오늘날 살아계신 예언자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의 가까이에 우리의 구속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주님께서 계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신풍와드도 아니고, 권선와드도 아니며, 매탄와드도 아니며, 용인지부도 아닙니다.  이 교회는 수원 스테이크도 아닙니다. 이 교회는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즉 주님의 교회 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간증 드립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8 22, 신풍, 권선, 매탄, 용인_>신풍, 곡반정, 신갈 와드로의 경계 조정 및 조직 개편을 위한 특별 성찬식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8. “복음을 나누는 자가 지녀야 할 세가지 준비

 2001 10월 반 연차대회에서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께서는 선교사업의 과제를 우리가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사항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복음을 나누려는 진지한 소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에게 신성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셋째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옥스 장로님은 선교사업과 관련된 소망은 두 단계를 통해서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의 참됨과 중요성에 대해, 확고한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앨마의 아들 앨마 2세와 모사이야 왕의 네 아들은, 처음에는 교회와 회원들을 핍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기적적인 개심과 개종이 일어난 후 앨마는 이틀 밤낮이 지난 후에 깨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사27:28~29,32) 내가 방황하며 심한 고난을 겪고 나서, 거의 죽음에 이르도록 회개 하였으매, 주께서 내게 베푸사 영원한 불길에서 나를 건져 내심이 마땅하다 여기신지라, 내가 하나님께로 태어났으며, 나의 영혼은 쓴 잔에서 구함을 얻으며 죄의 사슬에서 속죄되었도다. 내가 지극히 암담한 심연에 거하였으나, 이제 하나님의 놀라우신 빛을 보았고, 나의 영혼이 영원한 고난으로 괴로움을 당하였으나, 이제 구제되어 나의 영혼이 괴로움을 모르노라.

이때로부터 앨마가 백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천사가 나타났을때 앨마와 함께 했던 자들은, 온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저들이 보고들은 바를 선포하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으며, 매를 맞아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전하였느니라.

성신의 강한 권세와 영향력이 앨마를 새사람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권세는 오직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성신의 강한 권세와 영향력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복음에 대한 확고한 간증은, 선교사업의 훌륭한 동기도 될 수 있고, 훌륭한 선교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간증이 함께 하지 않는 가르침은 알맹이가 없는 빈 통조림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참되다는 확신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할 때, 먼저 그 가르침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명상하고, 그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은 당연한 것입니다.

모사이야 왕의 네 아들은 아버지인 왕에게, 레이맨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가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품은 생각을 경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사28:3) 만인 중에 하나라도 멸망됨은 참아내지 못할 괴로운 일이요, 사람이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이 몸서리를 치게 하는지라, 저들은 만인에게 구원을 전파하기를 원하였으니,

사랑이란 감정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사랑하는 우리 수원 스테이크의 회원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불편한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모사이야 왕의 네 아들처럼 저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의 연약함을 참고 견디며 이 부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개종하게 된 동기 가운데 절반이, 선교사가 가르쳐준 교리와 간증의 영향력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당시 저를 반갑게 맞아준, 회원들의 친절과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의 사랑이 함께하지 않는 개종은 매우 고독할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함께 할 때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참된 간증 가운데 하나가 된 성도이기도 하지만, 사랑가운데 하나가 된 성도이기도 합니다.

옥스 장로님은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소망의 강도는, 개인적인 개종의 정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앨마는 그의 기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9:1~2) 오 내가 천사되어, 주의 나팔로 땅이 흔들릴 음성으로 외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계획을 가르쳐 이 땅 위에 다시는 슬픔이 깃들지 않게 할 수 있으련만

이제 오늘 비록 밖에는 비가 오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의 느낌과, 세상에 복음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분들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니고 나간다면, 분명히 훌륭한 성과를 거두게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옥스 장로님께서는 복음을 나누는데 있어서 두 번째로 우리에게는 신성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그분의 복음을 나눌 것인지를 소망하며, 진지하게 인도를 구하는 사람에게 속삭이시며, 그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의 선교 첫 임지는 포항이었습니다.  처음 맞이한 주일에 성찬식 모임에서 간증을 하고 난 뒤, 그 주 수요일에 어떤 자매님이 비회원 친구를 저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제가 성찬식에서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으며, 자신에게 고민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해보라고 하니까, 그녀는 자신이 악몽이라고 생각하며, 아무에게도 이야기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아주 이상한 꿈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꿈 해몽을 잘 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그녀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세가지 이상한 꿈을 3일 동안 계속 같은 시간에 꾸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날에는 십자가를 보았고, 그 위에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십자가 위에 하얀 천이 덮이는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물 밑에, 커다란 트로피가 가로로 잠겨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잠시 고심하다가 이렇게 해몽해주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상징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얼굴은 죄를 회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얀색 천은 순결과 용서를 상징합니다.  십자가 위에 하얀 천이 덮이는 것은 회개하고 용서 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물밑에서 반짝이는 트로피는 자매님이 침례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긴장되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저의 해몽을 듣던 그 자매님은, 제가 침례라고 말하는 순간 손뼉을 치면서, 맞아요 장로님 해몽이 맞는 것 같아요라며 안색이 환해졌고, 저의 첫 번째 구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선교사업 나가 첫 번째로 침례를 준 분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의 선교사업 기간 내내, 구도자는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준비시켜 주시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옥스 장로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충만한 진리와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언제 준비될 지 알고 계시며, 복음을 나누는 것에 관해, 우리가 그분의 지시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준비된 사람들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따르느니라(10:27)고 말씀하신, 그분의 메시지에 응답할 것입니다.

 

옥스 장로님은 세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 즉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파이처럼 우리가 먼저 행동에 옮길 때, 주님의 영은 함께 하시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주님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행동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경우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의 선교사업의 두 번째 개종자를 만나게 된 사연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선교사로 안수 받고 꼭 한 달이 된 날, 제 동반자가 감기가 들어서 오늘은 전도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마침 같은 집에 사는 다른 동반자조도 한 장로가 아팠습니다.  저도 감기 몸살로 몹시 아팠지만 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은 장로와 짝을 이루어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그날 교회에서 어떤 형제님이 교회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나다가 교회이름이 하도 길어서 궁금해 들어와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아주 잘 준비된 황금 구도자였습니다.  그는 결국 토론을 모두 마치고 3주 뒤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2년 뒤 제가 선교사업을 마치고 한달 뒤에 MTC에 교사로 찾아갔을 때, 그 형제님이 선교사가 되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제가 두 번째로 침례를 베푼 개종자였습니다.

만약 그날 저마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우리 모든 선교사들이 숙소에 머물렀다면, 그 황금구도자는 우리 선교사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주님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연출가 이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력하는 것은 우리이지만, 결국 일을 성취하고 이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 일거 양득, 일석 이조가 아닌 일석 수 십조, 일거 백 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충실히 명 받은 일에 임할 때, 우리의 동기와 자세가 분명할 때, 하늘이 움직여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하늘의 도움이 분명히 함께 하신다는 확신과 함께, 신앙의 자세와 태도를 결코 잃지 않는 것이라고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선교사에게 구도자를 소개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전에, 좀더 쉬운 방법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몰몬경을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리아호나를 선물하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아니면 이러한 팻설롱 카드, 전도용 카드 세트를 지니고 다니다가, 일상 생활에서 약간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링우드 선교부장님께서는 선교사들에게, 회원들에게 구도자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하지 말라고 하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침례 받을 구도자는 회원이 선교사에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준비시켜 보내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가꾸는 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 시절에 저는 침례를 전혀 주지 못하는 선교사는 문제 있는 선교사다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에게 침례가 잘 나오지 않을 때 매우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선교사업을 마칠 때 마지막 달에 세 명의 형제를 침례 주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다른 선교사들이 찾았으나 2년 동안 계속 구도자로 있다가, 저를 만나 침례 결심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다른 지역에서 선교사가 찾아, 우리 지역으로 보내준 구도자였습니다.  마지막 한 분은 저희 지역에서 합동 전시회를 했는데, 역시 다른 장로님이 길에서 만나 우리에게 소개해준 구도자였습니다.

선교사업을 마치면서, 저는 이 세분의 형제님 모두 내가 씨를 뿌리지 않았고 다만 거두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여러분! 침례가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형제 자매 여러분! 선교사에게 구도자를 소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담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 씨앗이 자라도록 해 주시고 거두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라고 저는 믿습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교회 책자를 한 권씩 남길 수 있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또 우리의 가정을 선교사업이 진행 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온전한 소망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주님께서 정하신 시기에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꾸준히 씨앗을 뿌리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남은 일은 주님께서 친히 담당하시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모임을 위해 준비를 갖추시고 방문해 주신 타 지역의 여러 전임 선교사 여러분, 그리고 수원 존에서 수고하시고 계시는 모든 선교사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모임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우리 모두가 큰 교훈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9 12, 신풍_율전 합동 성찬식(One by One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39. “신앙의 자세

사람들의 신앙을 측정하는 잣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매년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명대로 십일조를 바칩니다.  십일조의 법은 1년 단위로 지키는 계명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119:3~4) 이는 나의 백성의 십일조의 시작이 되리라. (먼저 이를 실행한)연후에 이같이 십일조를 바친 자들은, 이후부터는 매년 저들이 얻은 모든 이익 중 십분 지 일을 바치라. 이로써 나의 성 신권을 위하여 저들이 지켜야 할 영구적인 율법이 되리라. 주께서 말씀 하시느니라.

  매년 12월이 되면, 감독님은 회원들의 완전한 십일조 여부를 결산합니다.  이 때 십일조의 완전 여부를 판단하는 열쇠는, 감독이 아닌 회원들이 쥐고 있습니다.  회원들은 주님을 대신한 감독님 앞에서, 자신의 1년 동안의 십일조가 완전했는지 아닌지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완전, 불완전, 참여하지 않음 등이 판단되면, 이는 교회 회원마다 매년 철해져서 기록에 남게 됩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신앙을 재어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매년 남는 십일조를 제외하고, 사람들의 신앙을 볼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예전에 제가 여러분들께 신앙의 반대는 불신앙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연차대회 일요일 오전 모임에서, 데니스 이 시먼즈 장로님께서는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구약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않자, 매우 화가 난 느부갓네살 왕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말하며, 명령대로 절하지 않는다면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그들을 내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젊은이는 곧바로 그리고 자신 있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당신께서 우리를 던질지라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우리를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들은 또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의 선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바라던 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이 정신적 일치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인정 이상의 것으로, 즉 신앙은 바로 그분에 대한 완전한 신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데니스 이 시먼즈 장로, 2004 5월 리아호나, 73페이지)

 

경전을 읽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과 시험을 통해 얻는 지식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참된 신앙은 책만 읽고 얻는 죽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경험과 간증에서 비롯되는,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우리는 그러한 절대적인 신뢰의 자세를 보인, 참된 신앙인의 모범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니파이의 태도와 자세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몰몬경의 기록을 시작하도록 명하신 선지자 니파이를 통해, 말일의 독자들에게 강조하시려는 첫 번째 메시지는 바로 신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몰몬경의 첫 번째 사건인 놋쇠판을 가져오는 일에서, 우리는 신앙의 자세와 불신앙의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태도와, 그렇지 못한 자의 태도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니파이는 어려움 속에서도 전혀 낙담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니파이2 4장 후반부에서 보인 니파이의 겸손한 기도를 통해, 그가 자신의 연약함과 죄 이외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자세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불신앙의 태도를 보이는 자들의 특징을, 우리는 몰몬경 첫 번째 사건에서 레이맨과 레뮤엘을 통해 보게 됩니다.

 

신앙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불신앙의 태도와 증상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 봅시다.

첫째, 불평입니다.  레이맨과 레뮤엘은 놋쇠판을 가져오라는 부친의 명이 어렵다고 불평을 토했습니다.  신앙의 자세가 안된 자는 불평 불만이 많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쉽게 포기합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 그들은 낙담하여 부친에게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셋째, 일이 잘못되었을 때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책임을 전가합니다.  금은 보화를 가져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실패 후에, 형들은 동생들에게 마구 화를 내고 그들을 때렸습니다.  쉽게 화를 내는 것에서 신앙의 자세가 안된 자의 성품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 화를 낸다는 것은,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정말 나에게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쉽게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태도를 사람들과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 됩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비록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자세의 출발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리한 상황에서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가 반발했던 그 사건들이, 모두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마련된 장치요, 준비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 미래를 바라보시며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는 바로 앞 일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세의 성품과 자질을 알고 계시며, 오늘날 우리를 알고 계시며, 미래에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알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자세입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 분 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노스는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하여 하늘에 소리가 들리도록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노스야 네가 죄 사함을 받았으니 네가 복되리로다 이 음성을 듣고 이노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노1:6) 이에 나 이노스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지라, 나의 죄가 씻겨졌음을 알[았느니라].

이노스는 양심에 화평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신뢰하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한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17:3)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신앙과 영성을 갖추려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과 능력에 대한 신뢰와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의 종들이 비록 온전한 자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주님의 일을 할 때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고 있음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도자를 험담하지 말라고 권고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아는 것이 바로 신앙의 열쇠입니다.

 

이더서에는 놀라운 신앙을 행사한 야렛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렛의 동생은 배를 밝힐 불을 기도로 간구했지만, 창문이나 불빛에 의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과 함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마련해 주기를 원하느냐?[영문 이더2:25 참조]는 응답을 받고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가 높은 산에 올라가, 투명한 돌 열 여섯 조각을 끊어내어 그것을 손에 받쳐들고 기도했을 때, 그는 주님께서 친히 그의 손가락으로 그 돌들을 만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주님께서 야렛의 동생에게 당신의 손가락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신갈 와드 주일학교 공과 시간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손가락을 보고 두려워하는 야렛의 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더3:9) 네가 가진 신앙으로 인하여 장차 내가 살과 피를 갖게 될 것을 네가 보았나니, 사람이 일찌기 너만큼 두터운 신앙으로 내 앞에 나아 온 일이 없었으며, 그러한 신앙이 없었더면 네가 나의 손가락을 보지 못하였으리라. 네가 이제 손가락 이외에 무엇을 더 보았느냐.

주님께서는 분명히 야렛의 동생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손가락을 보지 못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렛의 동생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시기 전에 그의 신앙으로 주님의 손가락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하늘이 정해 놓은 원칙이므로, 사람의 신앙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하늘의 장막도 걷히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신앙을 보고 당신의 전체 모습을 야렛의 동생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이더3:15) 너와 같은 신앙으로 나를 믿은 자가 없기로, 아직 내가 지은 인간에게 나를 보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이제 네가 보았느냐? 만인이 태초에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느니라.

 

모로나이는 이러한 신앙의 원리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더3:19) 이제 이 사람은 저가 지닌 지식으로 인하여, 장막에 가려지지 않은 채 저가 예수의 손가락을 보았으며, 이를 보았을 때 두려움으로 쓰러졌으니, 이는 저가 본 것이 주의 손가락인 줄을 알았음이라. 이같이 저는 신앙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의심없이 분명히 알았더라.

그러므로 저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장막에 가려질 수 없었던지라, 저가 예수를 보았고 예수께서는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느니라.

 

신앙은 시험과 시련이 있을 때 나타나며, 강화되고, 증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스스로 자청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고통에 대하여 의연하게 신앙의 태도로 임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신앙을 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의 원리를 기억하는 가운데, 하루 하루 충실히 생활하여 이 원리를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성도가 됩시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율전와드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가운데, 이 조직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강화되고, 주님의 교훈을 더욱 풍성히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예수께서 우리의 구속주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우리가 잠시 소홀할 때에라도, 하나님은 결코 변치 않는 사랑과 인도하심과 인내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4 12 12, 율전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0.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23: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던 표준 건물이 완공되었음에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수고해 주신 설계사무소, 관리본부, 그리고 건설 회사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곡반정 와드 회원들에게는 아마도 이 건물보다 더 좋은 성탄절 선물이 없을 것입니다.  성탄을 축하하며 인내로 기다려 주신 회원 여러분과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제 이 아름다운 건물에서 예배를 보게 될 회원 여러분들께, 이 건물이 차고 넘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유념해야 할 다음 세 가지 사항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이 건물을 사용하는 회원들이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개종했을 때, 회원들이 저에게 보여준 친절과 관심이 없었다면, 과연 제가 지금까지 교회에 남아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울리는 꽹과리 소리(고전13:1)에 불과하다고 하셨습니다.

훌륭한 교회는 그곳에 다니는 회원들의 신앙, 친절, 사랑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이 헌납식이 이 건물 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이겠다고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고전13:4,7)입니다.  회원들이 사랑을 지닌 자가 되지 못하면 교회는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을 갖추어도, 곧 교만과 다툼으로 인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이 건물에서 열리게 되는 모든 모임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침례 받은 모든 성도들은,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로써 성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교회의 모임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할 때, 비로서 모임에서 결심을 할 수 있고, 개심과 회개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권세와 성령이 함께하는 진실된 간증입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곡반정 와드 건물에서 열리는 모든 모임에, 참되고 진실한 간증주님의 영이 함께하도록 회원들과 지도자들이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임이 좀 더 영적인 모임이 되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좀더 품위 있고 경건한 시설을 갖추어야 합니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을 판단할 때에는, 먼저 그 주변을 살펴보면 그 준비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예배당이나 공과 방에 더러운 것이 치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님의 영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구약의 신명기에 보면,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파고 용변, 즉 볼일을 본 뒤에 그것을 흙으로 덮으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14) “…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건물 안에서 더러운 것을 보게 되면 가장 먼저 줍고 쓸고, 닦고, 정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께서 보신 해의 왕국에 관한 시현을 보면, 이 왕국의 상속자가 들어갈 매우 아름다운 문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문은 마치 나선형으로 타오르는 불꽃에 싸인 것 같았으며, 아버지와 아들이 앉은 하나님의 찬란한 보좌도 보았느니라.  나는 금으로 포장된 것 같이 보이는 그 왕국의 아름다운 거리를 보았[느니라] (교성137:2~4)

오랫동안 열악한 전세건물에서 고생하다가, 이제 깨끗하고 아름다운 표준 건물 예배당을 가지는 축복을 우리가 갖게 되었으나,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여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의 신앙과 성품을 잘 다듬고 준비하여, 앞으로 다가 오게 될 하나님의 왕국의 아름다운 건물과 거리에 거주하는 해의 왕국의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수원 시 지역에 세워진, 스테이크의 두 번째 표준건물인 이 곡반정 와드는, 앞으로 스테이크 센터의 역할도 함께 할 것입니다. 스테이크 대회와 위성 방송 모임만 신풍 와드에서 갖겠고, 기타 모든 스테이크 모임은 이 건물에서 가질 것입니다.  이 건물을 잘 사용하고 이 곳에 오는 모든 회원들과 우리의 이웃들이, 이곳에서 주님의 영과 권세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건물이 깨끗하기 때문에 주님의 영을 느끼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이 건물을 사용하는 회원들의 마음과 신앙이 변화되고, 실제로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을 지니게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예배당을 한 층 더 증축해도 견딜 수 있도록, 기초를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회원들이 차고 넘쳐 예배당이 좁아지면 우리는 건물을 증축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회원들과 지도자들이 늘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비로서 교회가 온전히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지 않고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거듭나지 못한 자는 아무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성도로써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자녀로써 새로이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간증을 나누며, 이웃에게 모범이 되는 말일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건물과 관련된 모든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 12 23, 수원 곡반정 와드 건물 헌납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1. “초심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먼 지역까지 나와서, 주님의 왕국과 성도들을 위한 봉사와, 신앙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시는 형제, 자매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가 저에게 당신 요즘 교만해진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즉시 나의 어떠한 모습이 당신에게 그러한 생각이 들게 했느냐고 아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내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느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유 없이 제 아내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무엇인가 제가 고쳐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아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 이 부름을 받았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아내가 저에게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아내는 가벼운 말로 저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현재 이 충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부름을 받아 들이고, 스테이크장으로 여러 회원들 앞에서 지지 받았을 때를 회상해 봅니다.  구본철 부장님과 박삼곤 부장님의 훌륭한 간증의 말씀 뒤에, 여러 성도들 앞에 선 제 자신이 기억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여러 회원 여러분 앞에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제가 얼마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이 부름을 받는 것인지를, 여러분들에게 보이려 하시는가 보다라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 말씀 이후에 주님의 영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름은 제가 맞추어야 하는 커다란 옷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3년이 지났으니 이 부름이라는 옷이 저에게 맞을 만도 할 듯 한데,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아직도 한참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참으로 의지할 분은, 오직 저의 죄를 회개할 때 저를 받아 주신 그리스도의 대속뿐이며, 회개뿐이라는 것을 회원들께 말씀 드렸습니다.  회개하고 힘을 얻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두 무릎을 강건케 하고 두 다리에 힘을 내어, 여러분들 앞에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부름을 받기 전날 밤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경전의 다음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실 것이요, 네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 (교성112:10)

이 성구가 2005년도 수원 스테이크 주제 성구입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시온의 스테이크를 다시 힘차게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 스테이크장단의 소망입니다.

 

저희 가족이 수원 지역에 이사온 것이 98년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율전동으로 이사 오는 날, 안재혁 부장님, 장시성 감독님, 안재석 형제님, 이승이 형제님이 저희 이삿짐을 푸는 데 도와 주시려, 저희 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목적은 제가 권선와드에 참석하도록 권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주소지 소속와드인 율전와드에 참석하면서, 그분들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저는 그때 회원들의 그 친절과 사랑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옮겨 스테이크가 달라지면 그 분위기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수원에 와서 처음 느낀 것은, 회원들이 참으로 사랑이 많고 친절하며 순수한 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위기는 분명히 제가 전에 속해있던 영동 스테이크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지도자로 인해 그런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칠십인 지역관리 역원이신 당시 이용환 스테이크장님은, 참으로 훌륭한 성품과 사랑과 인내로 성도들을 이끄셨고, 그러한 지도자의 성품이 알게 모르게 회원들에게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스테이크장으로 부름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분이 바로 이용환 부장님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용환 부장님과 같은 사랑과 덕으로 회원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1.   교회 모임 후 곧 바로 주변을 정리하고, 교회가 1주일 내내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드린 목표는 모임을 평가하고 기록부를 남기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평가 기록부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평가하고 기록을 남기는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갖는 모든 교회 모임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개선하며, 또 개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기록이 남겨져서, 우리의 뒤를 이어 부름을 받고 이 교회를 이끌어갈 우리의 후배들과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전통과 지침이 알게 모르게 쌓여져야, 비로서 그것들이 모여 유산이 됩니다.

모임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것이 우리의 두 번째 목표입니다.  모임을 준비하는 방법, 모임을 진행하는 방법, 통계를 작성하고 보고하는 방법, 평가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 이 모든 일에 질서를 세우고 전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 모임에서 주님의 영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회원들의 신앙을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또 회원들의 신앙이 준비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교회모임에서 주님의 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원들이 모임만 잘 준비한다고 그 모임에 주님의 영이 함께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회원들이, 모임을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임무 지명, 전달, 임무 수행, 격려, 칭찬, 동기 부여, 감사, 보람, 기쁨, 충만한 주님의 영을 느낌 등의 열매가 모임에 함께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22절의 말씀입니다.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들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모든 교회 모임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과거에 교회 성찬식 모임에서는 종종 성찬을 취하거나 말씀을 들을 때, 눈물을 흘리는 회원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즈음 우리의 교회 모임에서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임에서 그러한 영적인 현상이 자주 나타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데리고 함께 교회에 나가는 우리의 자녀들이, 교회 모임을 통해서 영을 느끼지 못하고, 결국 그들은 세상 자녀들과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떠드는 아이들이 많은 와드에서 조차도, 어떤 성찬식 모임이 참으로 잘 준비되었고, 연사들의 말씀이 훌륭하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고, 그냥 자리에서 놀고 있는 어린 유아들 조차, 그 영의 영향을 받아서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교회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이러한 영과 권세가 모임에 나타나야, 그 권세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영으로 살찌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교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우리 지도자들과 회원들이 먼저 변화해야 하겠습니다.

 

(이더12:37) “이제 내가 너의 연약함을 알았으매 내가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And because thou hast seen thy weakness thou shalt be made strong 이제 네가 너의 연약함을 알았으매 네가 강하게 될 것이요)

스스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서 발전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올해의 주제 성구처럼, 스스로 겸손해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가 저에게 말한 대로 올해는 우리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스테이크 장단은 수원 지역의 개종자 침례 숫자가, 다른 스테이크에 비해 적은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각도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회원들의 신앙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교 사업이 잘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았으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또 저를 포함한 지도자의 지도력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세미나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위기감에서 기획되고 준비된 것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기본은, 우리가 앞으로 올 한해 동안, 회원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도록 준비한 모임에서, 주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임재하셔서, 영감과 권세로 우리들을 가르치시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5년도 스테이크 목표는 나의 복음을 가르치라 입니다.  스테이크에서는 올 한해 각종 훈련 모임과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저희 스테이크장단뿐만 아니라, 고등평의원님들, 그리고 스테이크 보조조직 역원들이 많이 신경을 쓰시게 될 것입니다.

올 한해 훌륭한 분들을 많이 초빙하고, 스테이크 각종 모임을 좀 더 잘 준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마시고 지적해 주시고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 스테이크의 그 어느 누구도 스테이크장이 마음 상할 까봐 할 말을 못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지적이나 문제 제기도, 모두 겸허히 수용할 자세가 저희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주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저는 믿습니다.  제가 겸손히 회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여러분이 저의 이 뜻을 따라 주시고 함께 노력하신다면, 우리 스테이크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생각을 저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할 바를 다 할 때,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며,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표가 의로우며, 성실히 모든 일에 임할 때, 우리의 의지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신앙의 자세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둘째, 인내심입니다.  인내심은 사랑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능력이 없으면 강한 신앙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결혼할 자매를 선택할 때 신앙이 중요한가, 성품이 중요한가라는 부분에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성품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인내심이, 신앙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저는 최근에 느끼고 있습니다.  성품과 신앙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수원 스테이크 성도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훌륭한 성품은, 훌륭한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셋째, 주도적인 자세 입니다.  신앙은 결코 비판이 아닙니다.  험담도 아닙니다.  책임 전가도 아닙니다.  신앙의 자세는 이 문제의 책임은 내게 있고, 바로 내가 이 일을 할 사람이다.  이 문제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이 바로 그러한 결심을 하는 첫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가르치심이, 성신의 역사하심과 권세로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남은 세미나 모임에서 또 한번 우리 모두가 크게 깨닫고 개심하며, 회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하며 이 교회와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5 1 8, 만리포 솔모루펜션, 동계 청소년 대회 및 지도자 세미나,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2.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5:47)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훌륭하게 준비된 건물에서,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 건물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훌륭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건물을 지니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종종 한적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이, 부족한 저에게도 저의 잘못을 깨닫게 해 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여주신 이 말씀을 담대한 마음으로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은, 충실한 자들에게는 위안과 위로가 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미대륙을 방문하셔서 맨 처음에 모인 무리들에게, 주님의 옆구리의 상처와 손바닥의 못 자국을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침례의 절차와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은 다음 말씀이었습니다.

(니삼11:29~3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서로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악마에게 속한 자니 악마가 분쟁의 아비가 됨이라. 저가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여 서로 성내게 하며 다투게 하는도다. 보라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고 분노를 돋구어, 서로서로 다투게 함은 나의 가르침이 아니요, 이러한 일을 금하게 함이 나의 가르침이라.

주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서로 다투지 말라 이었습니다.  두 번째 가르침은 다음 말씀이셨습니다.

(니삼11:38) 내가 거듭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회개하여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작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왕국을 기업으로 얻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전해 주신 후에, 마태 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인 산상 수훈을 전해 주셨습니다.

서로 다투지 말고, 회개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미 대륙에 방문하시어 백성들에게 주신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성50:4) 보라, 나 주는 너희를 지켜 보아 왔고, 나의 이름을 믿는다 고백하는 교회 회원 가운데 있는 가증한 것들을 보아 왔도다. 성도들간에 사랑이 희미해지거나 다툼이 있게 되면, 교회는 곧 무너지게 됩니다.  몰몬경 시대의 여러 백성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니이26:32) 또한 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하사, 살인하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며, 주 저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며, 시기하지 말며, 원한을 품지 말며, 서로 다투지 말며, 음행을 행하지 말라 하시고, 아무도 이러한 일을 범치 말라 하셨으니, 이를 행하는 자는 멸망당함이라.

안식일을 지키는 성도들은 살인, 도적질, 음행 같은 큰 죄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기, 원한, 다툼은 우리 성도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가증한 죄악 들입니다.

우리는,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 대라는 가르침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5:38~4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훌륭한 신앙의 일과,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평상시 보다는 극한 상황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의 참 신앙과 참 성품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현재 참기 어려운 상태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과 성품을 온전케 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만약 우리의 의로움이 세상 사람보다 더 낫지 못하면, 우리가 과연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과 사랑은,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성결케 되고 거룩하게 되며, 정결하게 된 그러한 성품과 신앙입니다.

단련되고 연단된 신앙과 성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쉽게 낙담하고 절망하는 신앙이라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사랑이라면, 그러한 편협한 신앙과 사랑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45편 서문에 보면, 이 계시가 주어질 당시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교회에 있어서, 많은 헛소문과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발설되고 널리 퍼져, 이로써 사람들이 …… 신앙을 품는 일에 방해를 받았다고 예언자 요셉 스미스께서 기록하신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45편은, 마태복음 24장 및 요셉 스미스 1서의 말일의 환란에 대한 예언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몇 구절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교성45:4~5) 아버지여 당신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아무 죄도 짓지 아니한 자가 겪은 고난과 죽음을 보소서. 당신의 아들이 흘린 피를 보소서. 당신께서 영광을 얻으려고 주신 자의 피로소이다. 그러하오니 아버지여, 내게 와서 영생을 얻으려고 나의 이름을 믿는 이 형제들을 용서하소서.

(교성45:28~29) 이방인의 시대가 시작되면 빛이 암흑 속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비치리니, 이 빛은 나의 충만한 복음이 되리라. 그러나 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들이 빛을 깨닫지 못함이요, 인간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내게서 돌이키는 연고니라.

(교성45:32~33) 그러나 나의 제자들은 거룩한 곳에 서 있어 움직이지 아니 하려니와, 악인 중에는 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는 자들도 있으리라. 각 처에 지진과 많은 황폐가 있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내게 대적하며, 검을 들어 서로 치며 죽이리라. …”

(교성45:69)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 시온으로 모여드는 자들이 있으리니, 서로 싸우지 아니하는 유일한 백성이 되리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싸운다 하더라도, 말일성도만큼은 결코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싸운다면, 서로 시기하고 험담한다면, 서로 말을 안하고 눈을 흘긴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온의 백성이 아닙니다.

 

교리와 성약 42편 끝 부분에 보면, 교회 안에서 악, 또는 잘못, 죄나 옳지 못한 일 등을 보았을 때, 이를 처음 보거나 알게 된 회원들이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성42:88) 만일 너희 형제 자매 중 어떤 자가 너를 해칠 때에는, 형제 자매와 단 둘이 만나며, 만일 그 형제 자매가 죄를 고백하면 서로 화해할지니라.

왜 단둘이 만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우게 된다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은밀한 장소에서 기도하듯이, 단 둘이 만 있는 장소에서 지적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하면 안됩니다.

(교성50:33) 그 때에 너희는 욕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리하면 도리어 너희가 지게 되나니,

상호간에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을 때, 감정을 감정으로 대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게 되면, 오히려 악령에 사로 잡혀, 악에게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교성42:89) 만일 그 형제 자매가 죄를 고백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 자매를 교회에 넘기되, 회원에게 넘기지 말고 장로에게 넘겨야 하느니라.

단둘이 이야기 해도 해결이 안될 때, 주님께서는 왜 회원에게 넘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회원에게 넘긴다는 말 뜻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교회 안에서 소문이 바람보다 빠르고, 어쩌면 빛보다도 빠른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회원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소식이, 몇몇 회원을 거쳐서 심지어는 제 귀에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잘못된 행동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그 것을 처음 본 회원이, 바로 지도자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고, 여러 회원을 거쳐서 전달되어 오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회원에게 넘기지 말고 장로에게 넘겨야 하느니라.

 

(교성42:91) 만일 어떤 자가 공공연히 죄를 지으면, 공공연히 꾸짖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

공공연한 죄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든 잘못은 전부다 공공연한 죄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교회 안에서 공공연한 죄는 극히 드물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죄의 종류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하여, 주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참고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성121:43~44) 성령에 감동되었을 때에는 즉시 날카롭게 꾸짖을 것이나,

어떤 죄가 공공연한 죄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감동을 주었을 때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승인해 주시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꾸짖거나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2:92) 만일 어떤 자가 은밀히 죄를 범하면, 은밀히 꾸짖어 저가 죄를 지은 남자나 여자와, 그리고 하나님에게 은밀히 죄를 고백할 기회를 갖게 하라. 그리하여 교회에서는 그 남자나 여자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교회에서는 그 남자나 여자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잘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잘못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회원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비난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비난을 받았을 때, 내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상대방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떤 대상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우리의 신앙과 성품을 온전히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어떤 노 신사가 친구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마친 후, 그 친구와 함께 그 날 저녁에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 신사의 바지를 보더니 바지에 껌이 붙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정말로 보니 어린애 손바닥만한 껌이 바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 껌을 떼어내면서 이 신사는 어떤 몰지각한 작자가 껌을 함부로 뱉었을까? 하면서 몹시 불쾌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와 함께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사는 하늘을 쳐다 보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습니다. 저토록 높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우주는 저토록 넓은데, 나는 이 땅에서 바지에 붙은 껌 하나 때문에 신경질을 내는구나 (선택, 136페이지, 모아북스, 박창규 지음)

높은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우리와 우리 주변 상황을 바라 볼 수 있는, 폭넓은 통찰력을 느끼게 됩니다.  성전에 가면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세상일에 분주하게 보내다가 잊어버리고 간과한, 많은 값진 삶의 교훈들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된 사람은, 스스로의 결점까지 사랑할 수 있다.  결점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사람은, 장점을 더욱 놀랍게 키워낼 수 있다. (선택, 53페이지, 모아북스, 박창규지음)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결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결점 까지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해의 왕국의 상속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랑과 인내심의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주님께서 유대 공회 법정에 서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많은 자들이 주님에 대하여 거짓증언을 한 뒤에,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14:60~65)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빌라도 앞에서도 마찬가지 이셨습니다.

(15:2~5)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주님께서는 무고하게 고난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조롱 당하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합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벧전2: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난을 받는 중에 인내하는 것참으로 아름다운 성품 입니다.  성품은 우리의 의지로 단련되어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함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참는 자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고난 중에 인내하며,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하나님과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만약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주님께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님은 이러한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일과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늘이 우리의 사랑과 신앙을 보시고, 우리에게 미소 지으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 및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저의 미흡함에 대하여 여러분들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믿고 지지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해당 회원들과 그 지도자들을 고쳐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고쳐 주시며, 우리 모두에게 평안과 화평을 끼쳐 주시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리가 마음의 화평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성전에 가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분들의 이름을 적어내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렇게 할 때만이 진정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는, 결코 이 복음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있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이, 성경의 진리의 말씀과 주님의 성역을 증거해주는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며, 이 진리의 말씀들과 이 교회를 회복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도구가 되신 예언자 요셉 스미스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예언자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이 복음이 하나님의 참된 복음이며, 복음 가운데 충실할 때 우리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와 영감으로 그의 종들을 통해서 이 교회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주님을 대신하여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의 대변자 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주님께 기름부음 받은 종들을 지지하고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빠른 길임을 간증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아름다운 건물처럼 이 건물을 닮아 가는, 곡반정와드의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5 1 9, 곡반정 와드 원바이원 성찬식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3.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 주리라(교성84:88)

 

멀리서 수원까지 방문하셔서 이렇게 훌륭한 말씀을 해 주신 박인수 지부장님과, 이광준 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말씀이 모두 끝나면 준비된 10여 분짜리 비디오(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요시히꼬 기구찌 장로, 북아시아 지역회장)를 함께 시청하고 폐회기도를 함으로써 모임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수원 스테이크의 4대 강조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경전 읽기

2) 청소년 강화

3) 영적인 성찬식

4) 자립 및 비축

이러한 강조사항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강조할 예정입니다.  만약 어느 한 분야가 수준을 만족시키면 다른 것으로 대치할 것입니다.

 

지난 2002년 1월 13일 수 스테이크 역원 훈련 모임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조했던, 역원들이 지녀야 할 세가지 중요한 자질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모든 모임과 가르침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하여 강조하며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2) 예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개인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3) 가르칠 때 더 잘 가르칠 수 있고 교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말씀을 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언젠가 연차대회에서 부부 복지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에 파견되어 우물을 파는 봉사를 한 경험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염된 물을 마시던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에게 우물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물은 참으로 커다란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역원들이 만약 경전을 매일 꾸준히 상고하지 않는다면, 이 생명의 복음의 말씀을 순수한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효과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물에서 신선한 물을 긷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1년 뒤 다시 역원 훈련 모임이 열렸을 때, 여러분들에게 이 프로그램에 따라 1년 동안 4대 표준 경전을 모두 읽으신 분들을 손을 들어보게 할 생각입니다.  그때 이 자리에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완수하고 기쁘게 손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주변에 말씀으로 성벽을 둘러 쌓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표준 경전 책자 뿐만 아니라, 컴퓨터, 인터넷, PDA, 리아호나, 연차대회 Tape, CD, DVD, 신권회 상호부조회 공과교재 등 여러 자료가 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가면 리아호나 및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관장님 말씀등이 PDF 파일 포맷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 점심 시간에 리아호나 등을 읽고 싶은데 책을 집에 놓아두고 오셨다면, 인터넷에서 이러한 자료를 다운 받아 읽으시기 바랍니다.

 

5년 전인 2000년 2월 19일 신권대회에서 저는 형제들에게 지도력의 3가지 형태에 대하여 말씀 드린 바가 있습니다.

 

지도력의 3가지 형태 (브레인 리, Power Principle)

1) 강압적인 지도력

A. (물리적, 논리적) 힘을 과시, 행사하는 지도력 독재자, 폭력

2) 실리적인 지도력

A. 거래관계, 보상을 유도, 주고 받는 관계

3) 원칙 중심의 지도력

A. 주님의 지도력

B. 왕국과 교회가 지향하는 지도력

 

이번에 지도력의 원리 책자에서 맥스웰 장로님께서는 지도력의 또 다른 분류로써 3가지 형태의 지도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도력의 3가지 형태 (닐 에이 맥스웰 장로)

1) 유도형 지도력

A. 구성원들을 유도하고, 무시하여 뛰어넘거나, 그들의 순박함을 이용하는 지도력

B. 강압적인 지도력, 실리적인 지도력

2) 지시형 지도력

A. “나를 따르라.”

B. 지도자의 역량에 의존하는 지도력

3) 참여형 지도력

A. “여러분이 바로 한국의 교회입니다. 성도 없이는 교회도 건물도 없습니다. (시몬스 장로 송별모임)

B.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다.

 

맥스웰 장로님께서는 교회에서의 지도력은

  지시형 지도력과 참여형 지도력이 섞여 있는 특이한 형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서의 지도력은 이 두 가지 형태의 지도력이 혼합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우리는 신권의 열쇠를 지닌 회장님의 지시를 따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우리는 평의회, 위원회, 회장단 모임 등을 통해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때는 지도자의 권고와 지시에 따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나누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혼돈하게 되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지도자의 외로움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도력의 모든 부분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지도력의 대가는 외로움입니다.  양심을 고수한 대가는 외로움입니다.  원리를 고수한 대가는 외로움입니다.  저는 그것을 회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구세주께서는 외로움 속에서 걸으셨던 분이셨습니다.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8:20)

 

 예를 들어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유덕함을 비웃을 때 유덕함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이 오직 졸부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비웃고 있는데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노동의 가치를 믿지 않을 때,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편의를 위해 원리를 버릴 때, 고결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든 비 힝클리, 지도력의 원리 제 8)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다음 경전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앞에 앞서 갈 것이므로, 너희 오른편이나 왼편에도 있으리라.  나의 영은 너희 마음에 있겠고,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 주리라. (교성84:88)

저는 주님의 종으로 봉사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행복하고 기쁜 때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신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년 전 연차 대회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장로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교회 회원인 조셉 밀레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교회 역사의 초기에 살았습니다.  사막을 경작하고 새 집을 찾으러 다른 충실한 회원들과 함께 평원을 건너 왔습니다.  처음 몇 년은 음식이 귀했습니다.  특히 겨울에 힘들었으며, 저장한 음식은 일찍 떨어지곤 했습니다.

조셉 밀레트는 일지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 아이 하나가 내게 와서 뉴튼 홀 형제의 가족이 빵이 없어 그 날 아무 것도 못 먹었다고 말했다.

나는 홀 형제에게 보내려고 우리의 밀가루를 나누어 자루에 넣었다.  바로 그 때 홀 형제가 왔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홀 형제님, 밀가루가 없으시지요?

없습니다.  밀레트 형제님.

홀 형제님, 저 자루에 밀가루가 좀 있습니다.  형제님에게 가지고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형제님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밀가루가 떨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홀 형제는 울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집에 가 보았지만 밀가루를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숲으로 가서 기도하자 주님께서 그에게 조셉 밀레트에게 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홀 형제님, 이걸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당신을 보내셨다면 형제님은 나에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날 밤 조셉 밀레트는 그의 일지에 아래와 같은 훌륭한 글을 적었습니다.  주님이 조셉 밀레트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를 기쁘게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조셉 밀레트의 일기, 문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기록 보관소; 교회의 평회원에게 드리는 찬사, 성도의 벗, 1980 11월호, 89)

 

우리가 가장 행복할 때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를 신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았을 때 입니다.

 

(조셉 비 워스린, 지도력의 원리 제 9) 주님이 다른 사람의 생활을 축복하기 위해 여러분을 사용하고 싶어하실 만큼 여러분을 신뢰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느낌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여러분이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선을 행하며 다닐 때, 주님이 여러분의 머리 위에 만족과 기쁨이라는 축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으실 것이라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 약속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더욱 충실히 봉사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커다란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신뢰 받는 것이 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종으로써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보는 역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5 2 20, 수원 스테이크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4.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 (교성64:33)

새로운 건물에서 갖는 첫 번째 와드 대회를 축하 드립니다. 오늘 와드 대회의 주제로 감독단께서는 다음 성구를 주제로 정해 주셨습니다.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저는 이 구절 가운데 작은 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려고 합니다.

 (교성64:33) 그런고로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라. 너희는 위대한 사업의 기초를 닦고 있음이라.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난다는 주님의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작은 일로 인해 큰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중요한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씨앗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씨앗이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인,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뿌리가 제대로 작용해야 온전히 살 수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법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 어느 학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채근담) 푸른 하늘의 태양처럼 빛나는 드높은 절개는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길러진 것이며, 천지를 뒤 흔드는 뛰어난 경륜도 깊은 연못가에서 살얼음을 밟듯 조심스럽게 마련된 것이다.

덕을 삼가 이루려거든 작은 일에서 조심하고, 은혜를 베풀려거든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라.

작은 일도 빈틈없이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며, 실패를 하고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더4:12) 무엇이라도 사람들에게 선행을 가르치는 것은 나로 인함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 선이 비롯되지 아니함이라. 내가 인간을 모든 선한 길로 인도하는 자이매,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내가 바로 나임을 믿지 않는 것이니, 보라 내가 아버지라. 나는 빛이요, 생명이요, 세상의 진리라.

모든 선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늘 선행을 하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 후 많은 제자들이 이 말씀을 어려워하며 실족하여 주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주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말씀하시자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6:67~68)

화창한 일요일에 교회에 모여 앉은 우리는 그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멀리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교회에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바로 이곳에 영생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으로 스테이크장으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가운데 이 부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침례 받은 후 지금까지 모두 아홉 분의 스테이크장님이 계셨습니다.

고원용 장로님은 제가 침례 받을 당시 동 스테이크장님이셨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구본동 부장님께서 그 뒤를 이으셨고, 현재 이민 가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 김병희 부장님이 계셨습니다.

천안 지방부장으로 봉사하신 이정은 부장님, 이번 7 1일에 부산선교부장으로 봉사하실 예정인 송평종 북 스테이크장님, 작고하신 서원 부장님, 영동 스테이크 김택우 부장님, 현 부산 선교부장이신 서희철 부장님, 초대 수원 스테이크장이셨던 이용환 장로님 등이 저의 스테이크장님들이셨습니다.

총 아홉 분의 스테이크장님들 가운데 2분은 작고하셨으며, 한 분은 현재 저활동이 되신 것 같습니다. 스테이크장도 저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한때 충실했던 회원들이 떨어져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신권대회 때 박병규 축복사님께서 올리버 카우드리의 예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올리버 카우드리는 요셉 스미스와 함께 교회의 수많은 시현과 계시를 받은 분이었으나 결국 배도하여 교회를 떠났습니다.

 

히버 제이 그랜트 대관장님이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총관리 역원 가운데 한 분이 그 분의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에 그랜트 대관장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끝까지 간증을 잃지 않고 충실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이제 돌아가실 날을 며칠 앞두신 대관장님도 끝까지 충실하도록 간구하신 것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지난 2004 10월 반연차 대회 마지막 모임에서 조셉 비 위스린 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셉 비 워스린 장로) 사탄의 영향력과 유혹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의 속임수에 희생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매일 경전 공부와 기도를 통해 주님께 가까이 머물러 계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20:32~34) 은혜로부터 떨어지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갈 자가 많으리니, 그러므로 교회의 회원으로 하여금 조심하게 하며 항상 기도하게 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 참으로 거룩하게 된 자 까지도 조심하게 할지니라.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관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모든 선한 것에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 반면에 죄는 여러분 곁에서 걷고, 유혹하고, 꾀고, 부추깁니다.  여러분은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 그것은 술이나 담배를 하라고 유혹하는 커다란 광고와 같습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여러분 가정까지 오는 메시지와도 같습니다.  ... 악은 여러분을 찾아 다니고 있으며, 그것과 싸우는 데에는 노력과 굳건함이 요구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지자 니파이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니이4:32) 내가 상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아오니, 지옥의 문을 내 앞에서 내내 닫아 주옵소서. 오 주여 의의 문을 내 앞에 닫지 마시어 내가 낮은 골짜기로 뻗은 길을 걷게 하시며 외길을 똑바로 걷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현재 구약, 신약, 몰몬경과 기타 여러 경전 말씀들을 가지고 있지만, 니파이에게는 구약만 있었을 것입니다.  니파이가 읽고 위안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구약의 몇 구절들을 인용하겠습니다.

(34:18~19)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57:15) "...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66:2)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마음이 겸손한 자 만이 구원과 승영을 얻게 될 것입니다.  구원과 승영이라는 목표에 관해 브리감 영 대관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리감 영) 해의 왕국의 자리를 얻고자 소망하는 남녀는 매일 [이 성스러운 목표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지난 주 제가 속한 신갈와드 성찬식 모임에서 고등평의원이신 최세웅 형제님께서 참으로 훌륭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최 형제님께서는 신앙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꽃꽂이에 꽂힌 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것일까요? 뿌리가 없기 때문에 이 꽃은 곧 시들게 될 것입니다.  잔잔한 개울가에서 헤엄치는 작은 송사리는 태풍이 몰아쳐 물살이 급류가 되어도 살아남습니다.  그 거대한 물살 속에서 바위와 자갈과 흙이 섞여 내려오는 급류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헤엄쳐서 결국은 살아남게 됩니다.  물길이 잔잔해진 뒤에 개울에 가보면 다 떠내려 갔을 것 같은 송사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최 형제님은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훌륭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이31:20)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한 희망의 밝은 빛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느니라. 너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며 (feasting upon the word of Christ) 끝까지 참을진대, 보라 아버지께서 이르시어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 중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며라는 부분이, 영어 원문에는 Feast 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축제, 잔치, 연회, , 귀를 즐겁게 하는 것, 진수성찬, 맛있는 음식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라는 말씀은 제대로 번역한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흠뻑 취하라, 많이 먹으라와 비슷한 뜻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새로 번역되어 나올 몰몬경은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번역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세웅 형제)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TV를 끄고 양서를 펼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삶에 가장 훌륭한 영향을 끼친 책 다섯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 몰몬경입니다.  둘째. 코비 박사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입니다. 셋째. 장시성 감독님께서 깊은 감명을 받으시고 많은 회원들에게 책을 돌린 새벽나라에 사는 거인입니다.  넷째는 제가 약 2년 전에 발견한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목표 그 성취의 원리라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여러분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미국 명문가에 대대로 비전되어온 부 지혜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이 좀 통속적이라 이 책은 오히려 이 제목 때문에 잘 안 팔릴 것 같습니다.  원제는 The Message of A Master 이며 깨달은 자가 전하는 메시지 라는 의미입니다.

이 책은 딱딱한 성공 교본이 아닙니다.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 되었으며 청소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인생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차대회 신권대회에서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책이 많으며 우리는 그것을 다 읽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스테이크장으로써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90세가 넘으신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자신의 의무를 다 하시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연차대회에서 훌륭한 말씀을 전해주시는데, 이 훌륭한 말씀의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전해 주셨습니다. 씨앗은 물과 온도, 공기, 영양분등이 모두 맞아야 싹이 트게 됩니다.  이 가운데 단 한가지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싹이 트지 않거나, 싹이 나더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성도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을 읽고 기도하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주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도 제대로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 곡반정 와드 주보에는 인사를 정답게 나누는 성도가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가 무려 4군데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작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생명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만약 태양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생명체가 전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태양과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의 신앙과 간증,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늘이 지거나 하나님의 영향력에서 멀어지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곧 스러지고 말 것입니다.

2005 4 24, 수원 스테이크 곡반정와드 대회 성찬식,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

 

 

45. “너는 겸손 하라 그리하면네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 (교성112:10)

 모사이야서 18장에 보면 앨마를 따라 침례를 받은 무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사18:21~23, 25) “서로 다투지 말며 오직 한 신앙과 한 침례로써 마음을 하나로 뭉쳐 단합하고 서로 사랑으로 대하면서 전심을 다하여 앞을 바라보게 하라 이로 인하여 저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느니라. 또한 저들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이를 거룩하게 지키라 하며 매일 저희 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 또 이들은 일주 중 하루를 함께 모여 백성들을 가르치며 저들의 주 하나님께 경배하는 날로 삼되,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함께 모이더라.

모사이야서 18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앨마를 따른 이 백성의 수효가 약 450여명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수원 스테이크의 성찬식 평균 참석 수가 약 450여명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모사이야서의 이 기록은 교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시작되는지를 잘 알려주는 구절입니다.

수원 스테이크는 약 13년 전, 서울 서 스테이크에서 안양, 수원, 서울 서 등 세 개의 스테이크로 분리되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이용환 부장님의 인도 하에 약 250여명의 작은 스테이크로 출발한 것이 이제 450여명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내의 열 일곱 스테이크가운데 우리 수원 스테이크가 새로운 스테이크를 분리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모임에는 선교사업의 열쇠를 행사하시는 선교부장님과, 죽은 자 구속의 열쇠를 행사하시는 성전장님,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한 열쇠를 행사하는 스테이크장 등 세 개의 신권 열쇠가 함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 부장님이 침례의 문을 통해 새로운 회원을 인도하면, 저는 스테이크장으로써 그들을 잘 인도하여 성전의 문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몇 달 전에 서울 경인 지역 스테이크장들이 성전장님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어떤 스테이크 장님이 강남에 직장을 갖고 있는 어떤 형제님이 직장 퇴근 후에 신촌의 성전에 7 전까지 도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불평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우리 수원에는 성전 의식 참여를 위해 오후 4만 되면 가게 문을 닫거나, 직장에서 조퇴하고 성전에 가는 성도들이 있는데하는 생각과 함께 한마디 하려다가 참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서울 성전에서는 6월부터 매월 셋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후 8에 시작하는 의식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우리 수원의 성도들이 1.3 주 화요일에 성전에 보이지 않더라도, 저는 여러분들이 나름대로 시간을 내어 성전에 참여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로운 이 시간을 잘 활용하여 우리 수원 스테이크 성도들이 성전에 자주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8 5 5 어린이날, 당시 저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집은 종로구 동숭동으로, 동대문에서 시작하여 뻗은서울 성곽이 삼선교 쪽으로 이어지는, 산 꼭대기에 세워진 아파트였습니다.

집에서 동대문까지 가는 길에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서울 성곽 위로 뻗은 길도 얼마간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서울 성곽 축조 보수공사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성 위로 뻗은 길 가장자리는 아무 방책이 없는 낭떠러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이날 용돈을 두둑이 받아 동대문까지 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저녁 무렵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돌아오다가 아파트가 보이는 곳까지 거의 다 와서, 성 위로 뻗은 길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즐거운 느낌과 함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감사의 느낌이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고, 저를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저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마침내 저는 눈을 감고 걸어도 그분은 저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성 위로 뻗은 길이 시작하는 곳부터 눈을 감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에 그러한 생각이 마음에 떠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기쁨을 느끼는 가운데, 눈을 감고 얼마간 걷다가, 갑자기 온 몸의 중심이 기울어지며 휘청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뜨니 성벽에서 성벽 아래로 뻗은 길 위로, 저의 몸이 선 자세에서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지는 중이었습니다.  땅이 저의 눈으로 갑자기 일어선다는 느낌과 함께 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떤 아주머니가 저의 뺨을 치고 몸을 흔드는 바람에 깨어났습니다.  , , 일어나!”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살며시 눈을 뜨니 바로 옆에는 성벽이 보이고, 주변에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서서, 저를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를 안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일어나려 했으나 온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의 정신은 말짱하고 깨끗했지만, 그들에게 도와 달라고 입을 열려고 했을 때,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누운 자세에서 보니 저의 아파트가 보였습니다.  잘 움직이지 않는 손발로 기면서, 역시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기 저 아파트가 우리 집이니 저를 저기까지만 부축해 주세요 저는 제대로 말 한다고 말했는데, 그들은 저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도움을 청하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둥그렇게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으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모두 뒤로 한 걸음씩 물러서며, 저를 돕기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없으면서도 저는 세상 인심이 이렇게도 야박하단 말인가 하며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때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조그만 남학생이 앞으로 나와 저를 부축하며, 형 내가 도와 줄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작은 아이에게 온 몸을 의지하고 비틀비틀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문을 열자마자 아버님께서 대경실색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분주하게 저를 업고 택시를 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마에서부터 턱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반쪽이 땅에 긁혀서 피투성이가 되었고, 왼쪽 팔목이 삐었는지 약간 아픈 것 외에는 몸의 다른 부분은 상처하나 없었습니다.  얼굴에 피는 많이 흘렸지만 찢어진 곳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혀를 찬 것이나 도움을 거절한 이유중의 하나가 얼굴에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수선하기만 했던 병원 치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이부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나도 화가 치밀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전혀 교회에도 다니지 않았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았었습니다.  신앙을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날 저녁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인 생각의 결과로 죽을 뻔 했지만 그것이 모두 저의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 약 3년 뒤 저는 이 교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그 일을 생각하니, 두려움과 안도의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를 이 세상에 남아 있지 못하도록, 사탄이 저의 어린 시절에 저를 유혹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교회도 다녀보지 않은 신앙심 없는 저를,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한 것은, 그 어린 아이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전세에서의 위치와 사명을 이미 알고 있는 악한 존재들이, 저를 죽여 없앰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좌절 시키려고 뻗은 어둠의 손길이었으며 간교한 속임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만, 회원이 된 후 축복사의 축복을 받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축복 문 가운데 이러한 구절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대를 사랑하고 계시므로, 천사를 그대 주변에 보내사 위험한 요소와 방해되는 요인들을 제거해 주시며 안전케 인도하시리라.”

눈을 감고 있었으므로 아무런 신체적인 방비도 못한 채 절벽에서 떨어졌지만, 뼈 하나 부리지지 않았고,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않으며, 찢어진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얼굴이 많이 긁혔지만 흉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저를 보살펴 주신 것입니다.  악한 존재가 저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저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모로나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로10:32~33)) “참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 안에서 온전하게 되며,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라.

경건하지 않은 모든 것에서 손을 떼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이 세상의 부를 이용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재정을 파탄상태로 만들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음란한 것들을 이용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고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세상의 경건하지 못한 온갖 도구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노리고 있습니다.

 모로나이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너희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은혜가 너희에게 충만할 것이요, 그 은혜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리라.”

경건치 못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온 마음과 정성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덕으로 인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거듭 이르거니와,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의 권세를 부인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가 성결 하게 되고, 아버지께서 언약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흠이 없는 성스러운 자가 되리라.”

비록 우리 모두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세상과 싸우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한다면, 우리에게 약속된 성결케 됨, 성스럽게 됨, 이라는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므로,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바로 이 약속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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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수원 스테이크의 주제는 다음 성구 입니다.

(교성112:10) “너는 겸손 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실 것이요, 네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

하나님 앞에 좀 더 겸손하기 위해서, 저는 스테이크의 모든 건강한 회원 여러분께, 참된 금식의 목표를 드리고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이틀, 혹은 사흘을 금식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가 여러분이 지금까지 신앙생활 했던 그 어느 해보다도 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많이 금식하며, 스스로의 연약함에 애통해 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예언자 요셉 스미스 탄생 200 주년이자, 한국 교회 헌납 50 주년을 맞이하는 해 입니다.  올 여름에 대관장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실 수 있도록 그분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예언자의 말씀에 깊은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수원 스테이크의 모든 성도들이, 7월 말 대회 전까지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감독님께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금식을 제대로 하시기 어려운 회원들을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분들은 경전을 읽고 상고하며,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하는 것으로 금식을 대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아래에서 그분의 인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개인과 가족과 교회가 변화하고, 한국의 교회가 변화하며,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이 땅 위에 이루어 질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이 말일에 회복된 참된 교회에 속하여, 사랑하는 여러 성도들과 함께 시온의 대업에, 시온의 백성으로써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신앙과 소망으로 가득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임을 간증 드립니다.  신권의 권세가 이 지상에 회복되었으며, 이 경륜의 시대를 여는 예언자로 어린 소년 요셉 스미스가 택함과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몰몬경은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살아계신 예언자로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이 교회를 이끄는 주님의 선한 도구요 선지자라는 사실을 여러분께 간증 드립니다.

그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이제 가까운 시일 내에, 이 한국땅에 오실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스스로를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5 5 14, 수원 스테이크 대회, 토요 총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