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ation Title: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류 킴볼

 

Item Number: 36500 320

 

Copyright statement: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류 킴볼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류 킴볼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류 킴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출판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이 책에 관한 의견 및 제언이 있으시면 아래 주소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urriculum Development, 50 East North Temple Street, Room 2420, Salt Lake City, UT 84150-3220 USA. E-mail: cur-development@ldschurch.org

보내실 때는 여러분의 성명, 주소, 와드 및 스테이크 명칭을 적으시고, 반드시 책의 제목을 적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책의 장점과 개선을 요하는 사항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이나 제언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 2006 by Intellectual Reserve, Inc.

판권 소유

Printed in Korea

영어 승인: 8/00

번역 승인: 8/00

Teachings of Presidents of the Church: Spencer W. Kimball의 번역Korean

소개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원회는 여러분이 회복된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후일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기 위해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시리즈를 마련했다. 교회가 이 시리즈에 한 권씩 더해 나감에 따라, 여러분의 가정에 복음 참고 서적들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 책에는 1973년 12월 30일부터 1985년 11월 5일까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장으로 봉사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개인 학습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영의 영감을 구한다. 니파이의 영감에 찬 다음 약속을 기억한다. “부지런히 찾는 자가 찾을 것이며, 하나님의 비밀이 성신의 권능으로 그들에게 펼쳐질 것임이니”(니파이전서 10:19) 기도로 공부를 시작하고, 또한 읽어 나가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한다.

각 장의 끝 부분에는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과 참조 성구들이 있다. 각 장을 읽기 전에 질문과 참조 성구들을 살펴본다.

또한 다음의 지침을 고려하도록 한다.

        핵심 단어 및 어구를 찾아본다. 잘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전이나 다른 참고 서적을 활용한다.

        킴볼 회장이 가르친 내용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에 감명을 준 단어와 문장에 표시를 할 수도 있다.

        여러분의 경험 중 킴볼 회장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는 경험을 깊이 생각해 본다.

        킴볼 회장의 가르침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 그 가르침이 여러분의 관심사나 질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여러분이 배운 내용에 따라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한다.

이 책으로 가르침

가정이나 교회에서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사용할 수 있다. 다음 지침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킴볼 회장의 말씀과 경전에 초점을 둔다

주님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것과 신앙의 기도를 통하여 보혜사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교성 52:9) 가르치지 말라고 명하셨다.

여러분의 임무는 다른 사람들이 킴볼 회장의 가르침과 경전을 통해 복음을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책을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자료를 토대로 공과를 준비하지 않는다. 이 책에 있는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읽고 그 의미와 적용에 대해 토론하는 데 공과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참여자들이 일요일 모임 전에 각 장을 공부하고 이 책을 교회 모임에 가져오도록 격려한다. 그렇게 한다면 더 잘 준비하여 참여하고, 서로를 교화하게 될 것이다.

성신의 인도를 구한다

여러분이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부지런히 준비할 때, 성신이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다. 각 장에서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격려하는 부분을 여러분이 강조하도록 성신이 도와 줄 것이다.

가르칠 때, 영의 권능이 여러분의 말씀과 반 토론에 함께하도록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성신의 권능으로 말할 때에는 성신의 권능이 그것을 사람의 자녀들의 마음에 전함이라.”(니파이후서 33:1; 또한 교성 50:13~22 참조)

가르칠 준비를 한다

이 책에 있는 장들은 여러분이 가르칠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다음의 지침들을 고려한다.

1.       장 전체를 공부한다. 각 장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부하여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확신을 갖는다. 그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 여러분은 더 진지하고 힘있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교성 11:21 참조) 읽어 나가면서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의 필요 사항을 염두에 둔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끼는 부분에 표시를 할 수도 있다. 각 장에서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제목들을 유념한다. 부제목들은 각 장의 주요한 요점을 나타낸다.

2.       어떤 부분을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각 장에는 여러분이 한 번의 공과로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장 전체를 다루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끼는 부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정한다.

3.       공과를 소개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여러분은 공과를 시작할 때 흥미를 불러오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거나 반원들에게 부탁하여 각 장의 앞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게 하거나 또는 각 장에 있는 그림을 보게 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이 이야기 (또는 그림)는 이 장의 주제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 공과를 시작하기 위한 다른 방법에는 경전 혹은 그 장에 있는 인용문을 읽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포함된다. 또 다른 유용한 제언은 반원들에게 공과의 주요한 요점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4.       토론을 격려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토론에 공과 시간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마음을 고양시키는 토론을 이끌기 위해 이 책 viii~ix쪽에 있는 제언들을 살펴본다. 각 장의 끝에 있는 “학습 및 가르침을 위한 제언”에 있는 질문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자신이 만든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할 수도 있다. 여러분이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하도록 돕는 질문을 한다.

        배우는 내용을 찾아보게 하는 질문. 이런 형태의 질문을 통해 반원들은 킴볼 회장의 가르침에서 특정 내용를 찾아내어 숙지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특정한 인용문을 확인한 다음에 여러분은 “이 인용문의 핵심 단어나 어구는 무엇일까요?” 또는 “이 인용문의 주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의미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 이런 형태의 질문을 통해 반원들은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이 가르침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또는 “여러분은 이 인용문에 관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십니까?” 또는 “이 가르침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경험을 나누게 하는 질문. 이런 질문을 통해 반원들은 킴볼 회장이 말한 내용을 자신들이 생활하면서 겪은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여러분은 킴볼 회장이 말한 내용과 관련이 있는 어떤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배운 내용을 적용하게 하는 질문. 이런 질문을 통해 반원들은 킴볼 회장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생각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킴볼 회장은 어떤 일을 행하도록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까? 어떤 방법으로 그분의 말씀을 우리가 적용할 수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이다.

5.       공과를 끝맺는 방법을 결정한다. 공과를 신속하게 요약할 것인지, 아니면 한두 명의 반원에게 요약해 주도록 부탁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영의 속삭임에 따라, 여러분이 토론한 가르침에 대해 간증한다. 여러분은 간증을 해 달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할 수도 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반원들이 성신으로부터 받은 속삭임에 따르도록 격려한다.

가르칠 준비를 하면서 교사, 가장 중요한 부름(36123 320), 나부, 14, 16, 28, 29장, 또는 교수법 지도서(34595 320)에 있는 제언을 찾아볼 수 있다.

교화시켜 주는 토론을 한다

다음의 지침은 교화시켜 주는 토론을 격려하고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신의 인도를 구한다. 성신은 토론에서 어떤 질문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참여시킬 것인지 여러분에게 속삭여 줄 수 있다.

        반원들이 킴볼 회장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도록 돕는다. 토론을 시작하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참여자들에게 킴볼 회장의 말씀을 읽게 한다. 주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거나 확실치 않은 논쟁적인 방향으로 토론이 진행되면 그 방향을 바로잡는다.

        적절한 상황이라면 그 장에 있는 가르침과 관련된 경험을 나눈다.

        참여자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나누고, 질문하고, 서로를 가르치도록 격려한다. (교성 88:122 참조)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이 말한 내용에 관해 반원들의 의견을 구하거나 한 질문을 여러 반원에게 할 수도 있다.

        질문을 한 후에 침묵이 흐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체로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과 간증과 경험을 나누기 전에 생각해 보거나 책을 찾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참여에 감사를 표한다.

        반원들이 여러 가지 제언을 말할 때, 그것들을 칠판에 열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요청하는 것을 고려한다.

        토론에 반원들을 참여시키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본다. 예를 들면, 반원들을 소그룹으로 나누거나 또는 옆에 앉은 사람과 함께 질문에 대해 토론하게 할 수 있다.

        미리 한두 명의 반원에게 연락하는 것을 고려한다. 여러분이 준비한 질문들 가운데 한가지 질문에 대해 미리 답을 준비해 오도록 그들에게 부탁한다.

        여러분이 준비한 내용을 모두 다 다루려는 마음에서 잘 진행되는 유익한 토론을 중간에 끝내지 않도록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원들이 영의 영향력을 느끼고 복음에 따라 생활하겠다는 결심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출처에 관한 정보

이 책에 있는 킴볼 회장의 가르침은 다양한 출처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다. 이런 발췌문들은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에 따른 변경이나 조판상 변경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래의 출처에 있는 구두점, 철자법, 대문자, 단락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교재에서 사소한 불일치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한 킴볼 회장은 남성과 여성 모두, 즉 모든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서 men, man, 또는 mankind와 같은 용어들을 자주 사용했다. 두 가지 성별을 지칭하기 위해 그는 he라는 대명사를 자주 사용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언어에서 흔한 일이었다. 이러한 언어 관습과 현재의 용법 사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킴볼 회장의 가르침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된다.

역사적인 사건 요약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이 가르친 복음 원리들을 모은 선집이다. 다음 연대표에는 그의 생애에 관한 간략한 역사적 배경과 그의 가르침의 기본 사항들이 나와 있다. 그 중에는 교회 역사나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여러 사건들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킴볼 회장의 사생활에서 중요한 여러 사건들, 예를 들면, 자녀들의 출생과 같은 일들도 생략되어 있다.

1895년 3월 28일    스펜서 울리 킴볼이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앤드류 킴볼과 올리브 울리 킴볼 사이에서 태어나다.

1898년 5월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 주 태처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부친이 26년 동안 세인트 조셉 스테이크를 감리하다.

1906년 10월 18일  어머니가 사망하다.

1907년 6월  부친이 조세핀 클러프와 결혼하다.

1914년 10월 미국 센트럴 스테이츠 선교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를 시작하다. 그는 스위스-독일 선교부로 부름을 받았으나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1916년 12월 전임 선교사에서 해임되다. 이후 곧 이어 애리조나 대학교에 다니다.

1917년 11월 16일  카밀라 아이어링과 결혼하다.

1918년         세인트 조셉 스테이크의 스테이크 서기로 부름을 받다. 은행원 및 출납계원으로 은행계에 발을 딛다.

1923년         지구 총재 경력을 포함하여 이후 20년 동안 참여한 봉사 단체, 로타리 클럽에 가입하다.

1924년 8월 31일   부친이 사망하다. 약 1주일 후에 스테이크 회장단의 재조직의 일부로, 스펜서는 제2보좌로 부름을 받다. 교회 제7대 회장인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에 의해 대제사로 성임되다.

1927년         킴볼-그린할 부동산 및 보험 회사의 사장 겸 관리자가 되다.

1938년 2월 20일    마운트 그레이엄 스테이크의 회장으로 부름받다.

1943년 10월 7일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에 의해 사도로 성임되다.

1948년         심각한 심장 질환으로 고통을 받다가 회복되다.

1950년         심각한 성대 질환으로 목소리를 잃다. 신권 축복을 받은 후에 목소리가 회복되다.

1957년         성대암 수술을 받다. 성대의 일부를 제거하다.

1969년         용서가 낳는 기적을 출판하다.

1970년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 대리가 되다.

1972년 4월 12일   심장 수술을 받다.

1972년 7월 7일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이 되다.

1973년 12월 26일  해롤드 비 리 회장이 서거하다.

1973년 12월 30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장이 되다. 엔 엘돈 태너 회장을 제1보좌로, 매리온 지 롬니 회장을 제2보좌로 하여 제일회장단을 함께 구성하다.

1974년 11월 19일  워싱턴 디시 성전을 헌납하다.

1975년 10월 3일    칠십인 제일 정원회의 재구성을 시작하다.

1976년         두 편의 계시를 값진 진주에 추가하는 일을 감독하다. 이들 계시는 나중에 제 137편과 138편으로 교리와 성약에 포함되었다.

1977년 8월 24일   장차 시작될 교회 사업을 위해 폴란드를 헌납하다. 당시 철의 장막으로 알려져 있던 지역을 교회 회장으로서 처음 방문하다.

1978년 6월 8일     제일회장단의 보좌들과 함께 민족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합당한 형제들이 신권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계시가 담긴 선언문을 공포하다.

1978년 10월 30일  브라질 상파울루 성전을 헌납하다.

1979년         후기 성도판 킹 제임스 성경의 출판을 감독하다.

1979년 10월 24일  예루살렘에서 올슨 하이드 기념 동산을 헌납하다.

1980년         성찬식, 와드 신권회, 상호부조회 모임, 청녀반, 주일학교, 초등회를 일주일 동안 여러 차례 나누어 갖던 일정을 바꾸어 일요일 세 시간 동안 통합하여 갖는 모임의 계획을 감독하다.

1980년 10월 27일  일본 동경 성전을 헌납하다.

1980년 11월 17일  워싱턴 시애틀 성전을 헌납하다.

1981년         개정된 각주 시스템과 색인이 포함된 새로운 몰몬경 합본의 출판을 감독하다.

1981년 7월 23일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을 제일회장단의 또다른 보좌로 부르다.

1981년 ~ 1985년    17개 성전의 헌납을 감독하다.

1982년 10월 3일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이라는 몰몬경의 부제가 발표되다.

1982년 12월 2일    매리온 지 롬니 회장을 제1보좌로,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을 제2보좌로 하여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하다.

1984년         지역 회장단이 조직되다.

1985년 11월 5일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서거하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생애와 성역

1900년대 초 어느 가을 저녁에 올빌 앨런은 호박 몇 개를 전하기 위해 앤드류 킴볼의 집에 잠시 들렀다. 호박을 내리면서 두 사람은 헛간에서 앤드류의 아들 스펜서가 소젖을 짜면서 노래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앨런 형제는 앤드류에게 “자네 아들이 기분이 좋은 것 같구먼.” 하고 말을 건넸다. 앤드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 그 아이는 항상 기분이 좋다네. 마음이 깨끗할 뿐 아니라 순종적인 아이이고, 내가 시키는 일은 항상 그대로 하지. 난 그 아이를 주님께 바쳐 그분을 섬기도록 했다네. 그 아이는 교회에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걸세.”1

스펜서는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하면서 실제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주님은 그를 단지 “사업가나 세상의 지도자, 혹은 웅변가나 시인, 또는 음악가나 교사로만 준비시키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되기도 했지만 주님은 그를 아버지, 가족의 축복사, 사도요 선지자, 그리고 그분의 교회의 회장으로 준비시키신 것이다.”2

유산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가족은 회복된 교회에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었다. 그의 모계나 부계, 양가의 조부들은 후일의 교회 사업 초기 역사에서 유명한 분들이었다. 히버 시 킴볼은 1835년에 십이사도 정원회가 조직되었을 때 그 정원회에 부름을 받았다. 훗날 그는 20년 이상 브리검 영 회장의 제1보좌로 봉사했으며 성역을 행하는 동안 주님의 충실한 종이었다. 스펜서의 외할아버지 에드윈 디 울리는 펜실베이니아의 퀘이커 교도였으나 조셉 스미스 시대에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솔트레이크 밸리에서 존경 받는 감독이었다. 또한 그는 여러 번 브리검 영의 개인 업무 관리자로 봉사했다.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울리 감독의 관심과 복음에 대한 확고부동한 헌신은 그의 후손들에게 영속적인 유산이 되었다.

스펜서의 할머니 앤 앨리스 그힌 킴볼은 “충실한 여성으로 …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하고, 키가 크고 평범하게 생겼으며, 약하고 아픈 사람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지닌 사람이었다.”3 앤드류 킴볼은 그녀의 셋째 아들이었다. 스펜서의 외할머니인 매리 앤 올핀 울리는 영국 출신으로, 열한 자녀의 어머니였으며 여섯째 아이의 이름을 올리브라고 지었다.

앤드류 킴볼은 1882년 2월 2일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올리브 울리와 결혼하여, 그곳에서 가정을 꾸몄다. 약 3년 후에 앤드류는 집을 떠나, 오늘날의 오클라호마 주에 위치한 인디언 특별 보호구 선교부에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2년 반 동안 전임 선교사로 봉사한 후에 그는 다시 그 선교부를 감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부름을 수행하도록 승인되었기 때문에 그후 1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유타에 거주하면서 편지를 통해 또는 그 지역을 방문하면서 선교부를 이끌었다.

인디언 특별 보호구 선교부에서 12년 동안 봉사한 이후에 앤드류에게 또 하나의 부름이 왔다. 이번에는 애리조나 중남부의 힐라 밸리에 정착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세인트 조셉 스테이크라는 명칭으로 조직된 후기 성도 정착촌들을 스테이크 회장으로서 감리해야 했다. 1898년에 앤드류와 올리브는 (세 살 된 스펜서를 포함하여) 여섯 자녀들과 함께 가재 도구를 꾸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남쪽으로 96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청소년 시절

스펜서 울리 킴볼은 1895년 3월 28일, 앤드류 킴볼과 올리브 킴볼의 열한 자녀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의 애리조나 풍경을 회상하면서 그는 “그곳은 건조한 지역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땅이 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4 그는 덧붙여 이렇게 기억했다. “우리는 애리조나 태처의 남쪽 끝머리에 자리한 조그만 농장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집은 남쪽과 동쪽으로 넓은 농지가 있는 길모퉁이에 있었습니다. 집 뒤에는 우물과 펌프, 풍차, 물 공급을 위한 큰 목재 탱크, 공구 건물이 있었고, 조금 더 뒤로는 매우 큰 장작 더미가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돼지우리, 울타리, 건초더미, 밭이 있었습니다.”5

스펜서는 일찍 부모님에게서 중요한 복음 교훈을 배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가축이나 가축에서 나는 소산물을 십일조로 바치기 위해 먼지가 나는 길을 어머니와 함께 걸어서 감독님의 집으로 가던 어린 소년 시절이 기억납니다. 걸어가면서 저는 ‘왜 감독님께 계란을 가져 가는 거예요?’라고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십일조 계란이야. 감독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십일조를 받으신단다.’라고 어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또 어머니는 매일 저녁 계란을 받으면 첫 번째 계란 하나는 조그만 광주리에 넣고, 나머지 아홉 개의 계란은 큰 광주리에 넣으신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6

헌신적인 봉사에 대한 앤드류 킴볼의 모범은 스펜서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스테이크 회장이 하는 일에 대한 첫인상은 제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얻게 되었습니다. … 저는 부친께서 스테이크 사람들을 열심히 돌보아 줌으로써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께서 부친에게 주신 축복을 성취하셨다고 믿습니다. 스미스 회장은 힐러 계곡의 사람들이 ‘자녀가 부모에게 하듯이 그에게 구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친이 보여주신 모범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분이 세워 놓은 표준은 어느 스테이크 회장에게도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7

킴볼 가족은 검소하게 살았다. “우리는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라고 스펜서는 기억했다. “우리가 꽤나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8 그들은 집에서 만든 옷을 물려가며 입었다. 그들의 식사는 기본적인 것으로 고기와 그들이 소유한 땅에서 재배해 수확한 것들이었다.

스펜서는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도왔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채소밭에 물을 주기 위해 손으로 펌프질을 하여 물을 퍼 올리곤 했으며, 젖소 젖짜기, 유실수 가지치기, 울타리 수리, 그 밖의 다른 일들도 익혔습니다. 저에게는 형이 둘 있었는데, 확신하건대, 그들은 쉬운 일만 맡고 힘든 일은 모두 저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 저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9 아홉 살이 되면서 스펜서는 매일 소 젖을 짜고 말에게 물을 주는 동안 신앙개조, 십계명, 그리고 교회 찬송가에 나오는 노래 대부분을 외웠다.

스펜서가 11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것은 스펜서가 유년 시절에 겪은 가장 큰 시련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느낀 것이지만, 사람은 거의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10 얼마 후 앤드류 킴볼은 재혼을 했고, 조세핀 클러프가 스펜서의 계모가 되었다. “조시” (그녀의 친구들이 불렀던 이름)가 스펜서의 삶에서 올리브의 자리를 온전하게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유능했고 인내심을 보이며 킴볼 가족을 안정시키는 데 일조했다.

청소년 시절 동안에 스펜서는 거친 땅에서 기본적인 근면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훗날 인생에서 더 큰 봉사를 하도록 준비시켜 주었던 여러 기술들을 습득했다. 그는 성악과 음악 지휘를 배워 15살 때 스테이크 지휘자로 지명되었다. 비록 자신이 “짧고 오동통한”11이라고 묘사한 손가락을 갖고 있었으나, 그는 악보를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데 열중했다. 그는 향상을 거듭하여 마침내 찬송가를 연주하고 작은 오케스트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주례 모임에서 해롤드 비 리 장로와 돌아가며 반주자로 봉사했다.

다음 이야기에도 나와 있지만 스펜서는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스펜서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는 학교를 다니기에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셨다. 따라서 스펜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년 늦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 보통 그는 정오에 학교에서 세 블록 떨어진 집으로 뛰어 와 가축들을 위해 펌프질로 물을 긷고, 돼지를 먹인 후에, 점심 식사를 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쉬는 시간인데 집에 와서 뭐하니?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정신 없이 다시 학교로 달렸다. 반 친구들은 쉬는 시간을 막 끝내고 교실에 와 있었다.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깔깔 웃었다. 선생님은 그날 스펜서가 다른 모든 2학년 학생보다 학업이 앞서 있어서 그의 나이 또래 반으로 월반하게 된다고 발표했다.”12

초등학교를 마친 후에 스펜서는 교회 소유의 힐라 아카데미에 다녔다. 거기서 그는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보였고, 운동에 참여했으며, 학생회 간부로 활동했다.

스펜서는 또한 교회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했으며 거의 완벽한 출석 기록을 보였다. 다음 이야기에서 나타나듯이, 신권 임무 지명의 완수는 최우선 과제였다. “집사들은 그들이 맡은 임무의 일환으로 매달 금식일 전에 말을 마차에 매고는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금식 헌물을 수집하러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과일, 밀가루, 호박류, 꿀, 때로는 50센트나 그 밖의 동전 등이 담긴 병들을 모아다가 감독님께 갖다 드렸다. 아버지 앤드류도 아들에게 그 의무를 가르치는 데 열성이었기에 그날만큼은 그 어떤 다른 일도 스펜서가 헌물을 수집하러 다니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 킴볼 가의 말과 마차는 집사 정원회의 일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수집 임무 지명을 받은 다른 소년이 나오지 않는 경우, 스펜서는 혼자 가서 그 일을 수행했다.”13

집과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 맡은 책임 이외에도 스펜서는 아버지를 위해 비서 역할도 했다. 앤드류는 많은 편지를 썼는 데, 하루에 평균 여섯 통이었다. 스펜서는 아버지가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쓴 후 편지를 타자했다.

스펜서는 인생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일의 가치, 즉 그가 평생 적용하고 가르친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훗날 70대의 나이에 사도로서 신체적으로 몹시 피곤함을 느꼈던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다. “힘들게 하루를 시작해 어떻게 그 날을 보낼 수 있을지 스스로 궁금해지는 경우에도, … 일에 몰두하여 자신을 잊다 보면 보람찬 하루가 되었다.”14

선교사 봉사

1914년 스펜서는 가을에 애리조나 대학교에 입학하길 기대하며 힐라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식에서 앤드류 킴볼은 스펜서가 선교사 부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선교 사업 준비로 스펜서는 목장에서 일하기 위해 애리조나 글로브로 갔다. 이때가 스펜서에게는 힐라 밸리의 후기 성도 거주 지역 밖에서 생활했던 첫 경험이었다. 그는 자신의 표준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자신의 표준과 같지 않은 표준을 가진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다. 여름이 끝날 즈음, 후기 성도가 아닌 시가를 피우는 스펜서의 상사가 송별회를 열고는 글씨가 새겨진 금시계를 그에게 선물했다.

1914년 10월부터 1916년 12월까지 스펜서는 미주리 주 인디펜던스에 본부를 둔 센트럴 스테이츠 선교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했다. 이곳은 그의 부친, 계모, 그리고 그의 형 중 한 명이 봉사했던 지역이었다.

선교 임지에서의 킴볼 장로의 전임 봉사는 성장의 시기였다. 그는 신체적 어려움을 겪었다. 선교부 회장은 그들이 전도하는 사람들로부터 음식과 거처를 구하라고 장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킴볼 장로는 미주리의 미개척 산림지에 있는 조그만 통나무 집에서 모기가 주변에서 윙윙거리고 벼룩이나 빈대가 나오는 침대에서 불편한 상태로 많은 밤을 보냈다. 배고픈 날도 많았으며, 음식이 나오면 그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든지 다 먹었다.

가가호호는 힘들었고 별로 성과가 없었다. 킴볼 장로가 한 번 사용한 적이 있는 독특한 접근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전도를 하는 동안 그는 조금 열린 문 틈으로 피아노를 보았는데, 그는 면전에서 문을 닫으려는 여성에게 ‘좋은 피아노를 갖고 계시군요.’라고 말했다.

“‘피아노를 산 지 얼마 안 되었어요.’라고 그 여성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킴볼 피아노, 맞습니까? 제 이름도 킴볼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부인을 위해 제가 피아노로 노래 한 곡을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놀라며, ‘그래요? 들어오세요.’ 라고 대답했다.

“의자에 앉아 스펜서는 ‘오 높은 영광 보좌’를 연주하며 불렀다.

“스펜서가 알고 있는 한, 그녀는 결코 교회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가 시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15

스펜서는 선교 사업을 통해 애리조나에서 받았던 훈련에서 이미 확립했던 것들, 즉 주님에 대한 신앙, 열심히 일하는 것, 헌신, 조용한 봉사, 희생 등을 더욱 강화시키게 되었다.

결혼과 가족

스펜서 킴볼이 선교 사업에서 돌아온 후 약 7개월쯤 지난 1917년 여름에 그는 지역 신문에서 한 공고를 보았는데, 1912년에 힐라 밸리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온 카밀라 아이어링이 힐라 아카데미에서 가정 경제를 가르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스펜서는 그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면서, 언젠가는 카밀라 아이어링과 결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연”을 가장하여 그는 아카데미 근처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버스에서 그녀와 함께 앉아서 대화를 계속했고 집으로 만나러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카밀라의 어머니는 청년 스펜서 킴볼을 매우 좋아했다. 그녀는 그가 카밀라를 만나러 올 때마다 저녁 식사를 권했다. 그리고 딸의 구혼자의 자질에 관해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던 아이어링 형제도 어떤 반대도 제기하지 않았다. 31일 뒤에 스펜서는 아이어링 가에서 거의 붙어 살다시피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결정했지만, 그들의 계획은 진행 도중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스펜서는 군에 징집될 가능성이 있어 애리조나 태처에 머물며 기다려야 했고, 따라서 두 사람은 유타에 있는 성전으로 먼 여행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1917년 11월 16일에 일반 결혼을 했으며 가능한 한 빨리 성전 인봉을 받기를 원했다. 그 목표는 다음해 6월에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실현되었다.

스펜서와 카밀라는 아들 셋과 딸 하나, 이렇게 모두 네 자녀(스펜서 리반, 앤드류 아이어링, 에드워드 로렌스, 올리브 베스)를 두었다. 부모로서 두 사람은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고, 또한 개인적인 결정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한 아들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자녀들이 학교나 교회 그 밖의 어디서든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부모님은 얼마간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을 항상 보이셨습니다.

“우리 가족 안에는 소유와 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교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우리 행동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명령하시지 않고 격려하고 이끄셨습니다.”

이 아들은 부친에 관해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제 부친보다 영적으로 더 관대했던 분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분은 결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고 사려 깊으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일반적인 필요 사항에 개의치 않는 매우 권위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친께서 꾸밈없는 칭찬이나 감사의 말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감사나 애정의 표현도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오는 것만큼 큰 가치가 있지는 않습니다.

“부친은 가족이 자신의 인도를 따라 의롭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때보다 더 큰 만족을 느끼신 적이 없었는데, 부친에게는 그것이 주님께서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실 때 받는 느낌 다음으로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마지막 날에 누구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우선 제가 선택할 분은 제 부친입니다.”16

직업 생활, 교회 부름, 그리고 지역 사회 봉사

반려자인 카밀라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했던 스펜서는 은행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은행 업무를 그만두고 생명 보험 및 부동산 개발 관련 분야로 직장을 옮겼다. 대공황(1929~1939년)이라는 경제적 격변기는 스펜서의 영업 활동에 큰 어려움을 주었으나, 가족은 그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스펜서의 부친은 거의 30년 동안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하다가 1924년에 돌아가셨다. 교회의 제7대 회장인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이 그 다음 스테이크 회장단을 재조직할 때, 29살의 스펜서가 제2보좌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가족 생활, 직업 활동, 그리고 교회 봉사 이외에도 스펜서는 지역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최초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설립을 도왔고, 봉사 단체인 로타리 클럽의 활동적인 회원이었으며, 결국 지구 총재라는 직책을 역임했다.

1938년 세인트 조셉 스테이크가 분리되어 새롭게 조직된 마운트 그레이엄 스테이크의 회장에 스펜서가 부름을 받았다. 그가 감리해야 할 일부 사람들이 그에 대해 편치 않은 느낌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염려한 스펜서와 카밀라는 “앙금을 걷어 내기” 위해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방문했다.17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하던 1941년 9월에 큰 홍수가 그 지역을 덮쳤다. 계속 내린 비로 힐러 강의 수위가 높아지더니 이윽고 정착한 거주 지역의 일부 거리로 범람했다. 가옥과 농장이 물살에 떠내려갔다. 거의 모두 교회 회원이었던 주민들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황폐화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스펜서는 교회 자원에서 받은 식품을 자신의 차에 가득 싣고는 홍수 피해를 입은 마을들로 향했다. 그는 홍수로 인해 더러워진 회원들의 옷을 세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는 농부들이 가축을 먹일 곡물을 얻도록 도왔다. 곧 이어 식품과 의류를 실은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교회 회원들은 조건 없는 관대함을 보여 주었다. 스펜서는 필요 사항의 평가와 자원의 분배를 지휘했다.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그는 복지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던 십이사도 정원회의 해롤드 비 리 장로와 긴밀한 연락을 취했다.

사도의 직분

1943년 7월 8일 제일회장단의 제이 르우벤 클라크 회장은 스펜서를 집으로 불렀다. 그는 스펜서가 십이사도 정원회에 생긴 두 개의 공석 중 하나를 채우도록 부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펜서는 이렇게 응답했다. “아, 클라크 형제님! 제가 아니겠지요? 저라고 하셨습니까? 실수가 틀림없습니다. 제가 분명 잘못 들은 것입니다. …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약하고 보잘 것 없으며, 부족하고 능력이 없습니다.”18 스펜서는 주님에게서 오는 부름에 대해서는 오직 한 가지 대답밖에 있을 수 없다고 클라크 회장을 안심시켰지만, 자신의 봉사하고자 하는 열의가 부족하고 합당치 않다는 느낌이 바로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으며, 그 동안 스펜서는 거의 또는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을 방문하려고 콜로라도 주 볼더에 가 있는 동안 그는 어느 이른 아침에 언덕 지대를 거닐었다. 높이 더 높이 올라가면서 그는 사도 직분의 중요함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감히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의 부름이 일종의 실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괴로웠다. 이런 마음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오르고 있던 산의 정상에 올라 거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명상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정말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고통 받고, 정말 많이 울고, 얼마나 많이 고뇌했는지 모릅니다.” 스펜서는 번민하는 동안 그의 할아버지 히버 시 킴볼과 “그가 행한 훌륭한 업적”에 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스펜서는 그것에 대한 인식을 하자 마음이 진정 되었다. “확신에 찬 잔잔한 느낌이 제게 임했고, 의심과 질문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커다란 짐이 거두어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앉아서 아름다운 계곡을 둘러보며, 제 기도의 응답으로 만족과 확신을 주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19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1943년 10월 7일, 48세에 사도로 성임되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킴볼 장로는 30년간 봉사했다. 그 시기에 그는 수많은 여행을 하며 회원들을 강화시키고 왕국의 성장을 도왔다. 조지 앨버트 스미스 회장의 특별 임무 지명을 받아 킴볼 장로는 몰몬경의 선지자 리하이의 후손들, 즉 북미, 중미, 남미의 원주민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는 교회의 상위 정원회에서 또한 일반 회원들 사이에서 그들의 관심사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대변자였다. 그는 모든 인종적 편견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을 비난했다.

말씀을 전할 때 킴볼 장로는 시적으로 또한 단순하게 말씀을 하는 연사였다. 그는 종종 교회의 일반 회원들의 실제적인 관심사인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수많은 말씀 이외에도 그는 “용서가 낳는 기적”을 저술했다. 이 책은 사도로서의 킴볼 장로의 오랜 경험에 근거한 내용으로, 심각한 범법에 굴복했던 사람들에게 한 권고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에 대한 주님의 기대, 우리의 신성한 잠재력, 그리고 회개하여 완전하고 신성한 용서의 확신을 얻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설명했다. 킴볼 장로는 주님께서 자비로우시며 또한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것임을 독자들에게 간증했다.

건강상의 어려움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인생의 여정에서 부상과 질병을 여러 번 겪었다. 두 가지의 심각한 건강 문제는 사도였던 기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 질병은 킴볼 장로에게 항구적인 흔적을 남겼는데, 그것은 그가 말할 때마다 분명히 나타났다. 1956년 말에 그는 음성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진단 결과는 후두암이었다. 1957년 7월에 한 수술로 성대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의 일부를 제거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회복을 위해 가능한 한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했다.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면서 킴볼 장로는 다시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수술 후 6개월 뒤에 의사들은 킴볼 장로의 성대가 치유되었다고 선언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장로는 킴볼 장로가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음성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유머를 구사했는지를 이렇게 회상했다.

“시험의 날이 왔습니다. 그가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설교를 할 수 있을까?”

“그는 첫 말씀을 전하기 위해 고향 [애리조나]으로 돌아갔습니다. … 세인트 조셉 스테이크의 한 대회에서 … 그는 연단에 섰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저의 성도들 가운데 섰습니다. 이 계곡에서 저는 스테이크 회장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실패를 하더라도, 그를 가장 사랑했고 또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들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사랑이 흘러 넘쳤습니다. 이런 극적인 순간의 긴장감은 그가 이렇게 말을 이었을 때 사라졌습니다. ‘제게 일어났던 일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는 멀리 동부로 갔고, 그곳에 있는 동안 목을 베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 그 후에 그가 무엇을 말했든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킴볼 장로가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20

그의 새로운 음성은 작고, 굵었으며, 거칠었다. 패커 장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조용하고, 설득력 있고, 원숙해진, 새로운 음성, 호소력 있는 음성, … 후기 성도가 사랑하는 음성”이었다.21

킴볼 장로는 또한 심각한 심장 장애를 겪었다. 사도가 된 후에 몇 번의 심장마비로 고생했다. 1972년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 대리로 봉사하는 동안 아주 위험한 수술을 받기도 했다. 러셀 엠 넬슨 박사가 그 당시 킴볼 회장의 심장 주치의였다. 훗날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서 넬슨 장로는 그 수술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심장이 힘차고 생생하게 다시 박동을 시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이 특별한 환자가 살아나 지상에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영이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22

교회 회장

1973년 12월 26일 밤, 교회의 제11대 회장인 해롤드 비 리 회장이 갑자기 서거했다. 교회의 사도직 계승 질서에 따라 1973년 12월 30일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십이사도 정원회의 선임 회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장이 되었다.

이 일은 교회 회원들에게 특히 킴볼 회장에게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는 해롤드 비 리보다 2년 반 늦게 사도로 성임되었다. 킴볼 회장은 리 회장보다 네 살이 많았으며 건강도 더 나쁜 편이었다. 킴볼 회장은 자신이 리 회장의 후임자가 될 때까지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제 때가 이르면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죽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저는 리 회장의 장례식에서 리 회장이 편찮으실 때는 회복될 수 있도록 그리고 건강이 좋으실 때는 계속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킴볼 자매와 저보다 더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23

킴볼 회장은 1974년 4월 연차 대회에서 교회 회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 직책을 구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분의 선지자, 선견자, 계시자가 되어 지상에 있는 그분의 교회와 왕국을 인도하도록 그를 택하셨다.

그 해 4월 연차 대회와 관련하여 킴볼 회장은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한 모임에서 선교 사업에 관해 말씀을 했다. 훗날 칠십인 회장단에서 봉사했던 윌리엄 그랜트 뱅거터 장로는 그 당시에 지역 대표였으며, 그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킴볼 회장의 말씀이 끼친 영향력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킴볼 회장님이 영적인 창문을 열고는 자신과 함께 영원한 계획을 바라보자고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킴볼 회장님이 전능자의 목적을 덮고 있는 휘장을 들어올리고, 우리에게 복음의 운명과 그 성역의 미래를 자신과 함께 보자고 권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참석했던 사람은 누구라도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그 이후로 킴볼 회장님의 그 말씀을 결코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그분 말씀의 내용이 너무도 생생하게 제 마음속에 감명을 주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모든 부분을 기억해 반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킴볼 회장에게 임하셨으며, 그것은 실재하는 존재로 그에게서 나와 우리에게로 왔고, 감동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눈 앞에 영화로운 비전을 펼쳐 보였습니다.”24

그 모임에서의 킴볼 회장의 말씀은 교회 회장으로서의 그의 성역의 핵심 주제를 전달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행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144년 동안 복음 전도 사업을 펴 왔습니다. 우리의 걸음의 폭을 넓힐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의 비전을 확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형제 여러분, 제가 이 일이 노력을 안 해도 되는 쉬운 일, 또는 하룻밤 사이에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전진해 나가고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신앙이 제게는 있습니다. …”

“…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한 목적을 갖는다면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고, ‘우리는 그럭 저럭 잘하고 있으니까 그냥 하던대로 합시다.’와 같은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5

괄목할 만한 성장과 변화가 일어났던 십 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비록 초기에는 선교 사업이 강조되기는 했지만, 킴볼 회장의 의로운 노력의 관심은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음이 교회의 전 회원들에게 이내 분명해졌다.

선교 사업

킴볼 회장은 복음을 전하고자 나라들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소위 냉전으로 인해 민주주의 정부들과 공산주의 정부들간에 생긴 분리로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전도를 할 수 없었다. 또한 신권 성임과 관련된 교회 정책으로 아프리카, 남미 일부 지역 및 카리브해에서는 선교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따랐다. 킴볼 회장은 교회의 지리적인 경계를 넓히기 위해 모든 기회를 모색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여러 나라에서 가르치는 더 큰 기회는 그런 기회를 받아들이는 교회 회원들의 열의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합당하고 잘 준비된 젊은 남성들에게 선교사 봉사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신성한 의무이자 기회였다. 이 의무는 그들의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젊은 여성들도 선교사로 봉사할 수 있지만, 젊은 남성들과 같은 의무감이 따르지는 않았다. 이와 더불어 노년의 부부들도 선교사로 봉사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가 교회 회장으로 봉사를 시작했을 당시, 17,000명의 전임 선교사가 전세계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약 12년 뒤에 그가 서거할 당시, 그 숫자는 거의 30,000명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증가된 선교 노력으로 교회 회원 수가 330만 명에서 거의 600만 명으로 증가되는 실질적인 결실을 맺었다.

1975년에 일단의 젊은 교회 회원들에게 전한 말씀에서 킴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 젊은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잘 생긴 젊은 친구들입니다. 여러분은 강하고 건장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누가 주었습니까? 여러분의 눈을 누가 주었습니까? 여러분의 귀를 누가 주었습니까? 여러분의 음성을 누가 주었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값진 재산을 주셨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성대 수술을 했던 경험과 그로 인해 목소리의 일부만이 남게 되었던 경위를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기꺼이 포기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사거나 바꾸었습니까? 누군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었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을 나타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목소리를 여러분께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이야기를 말하고, 사람들에게 진리가 회복되었다고, 주님께서 아담 이래로 지금까지 선지자들을 계속 부르셨다고, 여러분이 거룩한 신권을 갖고 있다고, 여러분이 인생의 모든 나날 동안 그 신권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것을 세상에 이야기하십시오! 그들은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이렇게 묻겠습니다. 누가 목소리를 주셨습니까? 왜 주셨을까요? 단지 여러분이 노래하고 말하고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 그 목소리를 여러분에게 주셨습니까? …

“이제 저는 우리가 선교 임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합당한 청년 여러분,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26

성전 사업

킴볼은 교회 회장으로서 스펜서 더블류 성전 건축에서 상당한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의 재임 초기에는 15개의 성전이 운영 중이었다. 약 12년 뒤 그의 서거 당시에는 그 수가 36개로 늘어나 두배 이상이 되었다. 제일회장단 제2보좌였던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간증했다. “이처럼 놀라운 성전 건축의 추진은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킴볼 회장님이 이루신 것입니다.”27

성전 사업에 대해 킴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성전이 밤낮으로 운영 될 날이 올 것이며, 그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이 사업의 중요성, 그리고 영의 세계에 잠들어 있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올 수 있는 축복을 열망하고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의 기진맥진할 때까지 밤낮으로 일하게 될 것입니다.”28

교회 행정 체제

1975년과 1976년 사이 킴볼 회장은 교회 성장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교회 행정 체제의 재조직과 확장을 이끌었다. 총관리 역원의 조직과 책임을 밝히는 작업의 일환으로 칠십인 제일 정원회가 재구성되었고, 1976년 10월까지 39명의 형제가 포함되었다. 킴볼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같은 조치로 계시로써 밝혀진 교회의 세 감리 정원회, 즉 제일회장단, 십이사도 정원회, 칠십인 제일 정원회가 주님의 계시에 따라 올바르게 조직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님이 돌아오셔서 그분의 교회와 왕국을 직접 통치하실 날을 기대하며 현재의 무거운 짐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확장의 증대와 사업의 촉진을 위해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29 주님께서 그분의 선지자에게 주신 이 계시를 통해 그 이후로 교회의 행정 체제는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의 … (교성 107:96) 요청에 따라 다르게 변모되었다.

경전

1976년에 킴볼 회장은 두 편의 계시, 즉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주어진 한 계시와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에게 주어진 다른 한 계시를 표준 경전에 추가할 것을 지시했다. (교성 137편과 138편 참조) 킴볼 회장의 지시에 따라 킹 제임스 성경 후기 성도판이 1979년에 출판되었으며, 새로운 몰몬경 합본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이 1981년에 출판되었다. 이러한 표준 경전의 출판에 관해 보이드 케이 패커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세대가 흘러감에 따라 이것은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재임 기간에 이룬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30

또한 킴볼 회장의 재임 동안 경전이 교회의 주일학교 교과 과정의 기초가 되었다.

단순화 작업

교회의 규모와 운영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킴볼 회장과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역사가 오래된 와드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장 새로운 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가장 필수적인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단순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킴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회원들에 대한 교회의 사명은 회원들이 승영을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도록 원리와 프로그램과 신권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은 개인으로나 교회 전체로나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가정에서의 복음 실천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주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각 개인의 책임과 가족과 가정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할 때만, 신권 정원회와 보조 조직, 나아가서 와드나 스테이크도 근본적으로는 회원들이 가정에서 복음대로 생활하도록 돕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람이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하고, 교회 프로그램은 복음을 중심으로 한 가족 활동을 지원해야지 결코 이런 가족 활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가정 중심의 복음 생활에 대한 우리의 각오가 모든 신권 및 보조 조직 프로그램의 분명한 메시지가 되어야 하며, 가족 및 가정에 대한 적절한 초점을 흐트러뜨릴 수도 있는 선택적인 활동들 가운데서 일부를 줄여야 합니다.”31

킴볼 회장의 재임 동안에 일어난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세 시간으로 묶어서 하는 일요일 모임 순서의 도입이었다. 이것은 주중 및 일요일에 갖는 다양한 모임을 통합하여 일요일에 단순하고 더 편리하게 모임을 연속해서 갖는 것이었다. 1980년에 이 통합 모임 순서의 도입은 교회 회원들의 시간 및 금전 사용을 크게 절감시켜 주면서도 회원들이 주님의 프로그램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신권에 관한 계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가장 의미 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신권에 관한 계시이다. (교리와 성약의 공식 선언 2 참조)

1978년 6월 1일에 킴볼 회장은 제일회장단의 다른 회원들과 십이사도 정원회와 함께 솔트레이크 성전의 위층 방에서 모였다. 그 당시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참석했던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훗날 이렇게 보고했다.

“신권의 축복을 흑인들에게 부여하는 것에 관한 문제는 상당 기간동안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들이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여러 회장들이 그 사안에 대해 거듭해서 제기했었습니다. 그 문제는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님에게 각별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상당한 시간 동안 킴볼 회장님은 이 심각하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 기도해 왔습니다. 그분은 성전의 위층 방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킴볼 회장님은 이 질문을 보좌와 사도들 앞에 제기했습니다. 논의를 한 후에 저희는 가장 성스러운 환경에서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킴볼 회장님이 직접 소리를 내어 기도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임재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께서 기도했던 내용이 올바르며, 때가 이르렀고, 이제 합당한 형제들이 이 신권의 훌륭한 축복들을 혈통에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선지자께서 성신의 권능으로 받으셨습니다.”

“원을 지어 섰던 모든 사람들이 성신의 권능으로 똑같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요하고 장엄한 시간이었습니다. …”

“… 그 당시에 참석했던 저희 중 어느 누구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그 후에는 없었습니다. 교회에도 정말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32

그 계시는 서한 형태로 1978년 6월 8일에 교회의 본부 및 지역 신권 역원들에게 발표되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충실하고 합당한 남자[는] 거룩한 신권과 함께 그 하나님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권능을 받고 자기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성전의 축복을 포함하여 거기에서 비롯되는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교성, 공식 선언 2)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서한이 교회와 세상에 공표되었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느꼈던 짜릿한 흥분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신권이 거부되었던, 즉 이 발표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된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일에 관해 우리와 똑같은 느낌을 가졌던 전세계 곳곳의 교회 남녀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큰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33

약 3개월 뒤에 킴볼 회장은 계시에 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알려졌던 가장 큰 변화와 축복들 가운데 하나가 이제 도래했다고 사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어제 말했습니다. … 항상 반대를 하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세상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이에 관해 몹시 행복하고, 특히 과거에 이런 축복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생각할 때 이제 정말 행복합니다.”34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주님의 사업에 대한 사랑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킴볼 회장에 대해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분의 성역은 온통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이 가득하지만 꿰뚫어 보는 그분의 눈, 포옹, 거룩한 입맞춤, 부드러움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며, 이 모두는 마땅히 있어야 할 독특한 느낌을 그 주위에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특별한 따뜻함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모든 걸 포용하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는 어느 사람도 소외되었다고 느끼질 않았습니다. 총관리 역원들은 하나같이 킴볼 회장님이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분이 우리 모두를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어느 누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35

킴볼 회장은 교회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습니다.”36 후기 성도들은 그 보답으로 그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이를 표현했으며, 그는 이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저는 항상 그들에게 ‘정말 좋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에 의지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 말은 제 진심입니다.”37

킴볼 회장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자기 만족, 죄 또는 다른 문제들을 극복하고 주님을 섬기는 데 이전보다 더욱 노력하도록, 사랑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후기 성도들을 권고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그는 비록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주님을 섬기면서 앞으로 나가는 모범을 보이며 봉사했다.

당시 칠십인 제일 정원회의 회원이었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킴볼 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실천하는 분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행하십시오’라는 간단한 좌우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킴볼 회장님의 모범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모범과 사랑을 통해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고 완전을 향한 걸음의 폭을 넓히려는 동기를 받게 됩니다.”38

1979년 10월 연차 대회에서의 말씀을 통해 킴볼 회장은 구약전서에 있는 갈렙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던 갈렙은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여호수아 14:12)라고 말했다. 그 구절을 상기시키며 킴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이 순간 제가 이 사업에 대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 앞에는 큰 도전들, 직면해야 할 거대한 기회가 놓여 있습니다. 저는 이런 마음 설레는 앞날을 환영하고, 또 주님께 겸손히 ‘이 산[을] 지금 내게 주소서’, ‘이러한 도전들을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주님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과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대업에 함께하는 동역자들에게 겸손히 이러한 서약을 드립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고 약속의 땅과 약속의 축복을 얻을 때까지 우리를 안내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끄실 것을 알기에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갖고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

“나는 여러분 모두가, 즉 모든 신권 지도자와 이스라엘의 모든 여성과 모든 청남 청녀, 모든 소년 소녀가 그와 같은 서약을 하고 노력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그리고 열렬히 권고드립니다.”39

1985년 11월 5일, 교회 회장으로 거의 12년을 봉사한 후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서거 당시에 킴볼 회장의 보좌였던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주님의 사업에서 킴볼 회장의 곁에서 협력자로서 함께 일하는 것은 저의 큰 특권이며 기회였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분의 속도를 조금 늦추려고 했을 때 킴볼 회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든, 내 인생은 내 구두처럼 봉사하면서 닳는다네.’ 그분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증거하고 간증했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40

1.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Spencer W. Kimball (1977년), 196쪽 참조.

2.       보이드 케이 패커, “스펜서 더블류 킴볼: 비범한 사람”, 성도의 벗, 1974년 7월호, 2쪽.

3.       Spencer W. Kimball, 12쪽.

4.       “우리가 섬기는 우상”,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1쪽.

5.       “Friend to Friend”, Friend, 1971년 1월호, 34쪽.

6.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성도의 벗, 1981년 8월호, 3~4쪽.

7.       Conference Report, 1979년 4월, 140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152쪽.

8.       Spencer W. Kimball, 23쪽.

9.       Conference Report, 1979년 4월, 140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153쪽.

10.     Spencer W. Kimball, 46쪽.

11.     Spencer W. Kimball, 57쪽.

12.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The Story of Spencer W. Kimball: A Short Man, a Long Stride (1985년), 16~17쪽.

13.     Spencer W. Kimball, 56쪽.

14.     Spencer W. Kimball, 376쪽.

15.     Spencer W. Kimball, 79~80쪽.

16.     Edward L. Kimball, in Gerry Avant, “As Father, Prophet Made Time Count”, Church News, 1977년 6월 11일, 5쪽.

17.     Spencer W. Kimball, 171쪽.

18.     Spencer W. Kimball, 189쪽.

19.     Spencer W. Kimball, 195쪽.

20.     성도의 벗, 1974년 7월호, 3쪽.

21.     성도의 벗, 1974년 7월호, 3쪽.

22.     “Spencer W. Kimball: Man of Faith”, Ensign, 1985년 12월호, 40쪽.

23.     “When the World Will Be Converted”, Ensign, 1974년 10월, 3쪽.

24.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38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38쪽.

25.     Ensign, 1974년 10월, 5, 13, 14쪽.

26.     Conference Report,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 대회 1975년, 43~44쪽.

27.     Conference Report, 1985년 10월, 71쪽; 또는 성도의 벗, 1986년 1월호, 60쪽.

28.     신권 계보 세미나 연회에서 행한 말씀, 1977년 8월 4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4~5쪽.

29.     Conference Report, 1976년 10월, 10쪽; 또는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7쪽.

30.     Conference Report, 1982년 10월, 75쪽; 또는 성도의 벗, 1983년 1월호, 82~83쪽.

31.     “가정에서 복음을 실천함”,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57쪽.

32.     “Priesthood Restoration”, Ensign, 1988년 10월호, 70쪽.

33.     Ensign, 1988년 10월호, 70쪽.

3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451쪽.

35.     “Spencer, the Beloved: Leader-Servant”, Ensign, 1985년 12월호, 12~13쪽.

36.     Conference Report, 1980년 10월, 111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27쪽.

37.     “‘News’ Interviews Prophet”, Church News, 1979년 1월 6일, 19쪽.

38.     Conference Report, 1981년 10월, 27~28쪽; 또는 성도의 벗, 1982년 4월호, 30쪽.

39.     Conference Report, 1979년 10월, 115~116쪽; 또는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119쪽.

40.     “He Is at Peace”, Ensign, 1985년 12월호, 41쪽.

  1 

“언젠가 주와 함께 살도록”

우리가 기쁨, 진리, 성취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생활하는 것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세계 도처에 있는 교회 회원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왜 이 지상에 있으며, 또 우리가 충실하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는지에 관해 단순하지만 심오한 메시지를 지닌 초등회 노래 “난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 나오미 더블류 랜들 자매는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가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이었던 1957년에 이 노래의 가사를 썼다. 그 당시 그 노래의 후렴은 “제가 언젠가 주와 함께 살도록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소서”라는 말로 끝맺고 있었다.

스테이크 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킴볼 장로는 한 그룹의 초등회 어린이들이 “난 하나님의 자녀”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곧 이어 그는 본부 초등회 임원회의 한 사람과 대화를 하던 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초등회 노래를 좋아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알다라는 단어를 하다라는 단어로 바꾸면 랜들 자매님이 섭섭해 하실까요?”1

랜들 자매는 노래를 바꾸는 것에 동의했다. 지금은 후렴이 “제가 언젠가 주와 함께 살도록 해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소서(영문)”로 끝난다.2 이 가사는 킴볼 회장이 재임 내내 강조했던 한 가지 원리를 나타낸다. “자격 요건을 갖추게 될 모든 영혼들은 해의 영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행해야 합니다. 의로움은 지극히 필수적이며 의식도 필요합니다.”3 킴볼 회장은 복음이 “생명의 길이자 개인적인 구원의 계획이며, 또한 개인의 책임에 근거합니다. 그것은 인간,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인간은 초기 단계의 신이고, 신의 위치에 도달할 잠재력을 내면에 지니고 있으며, 원한다면 높은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4라고 가르쳤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전세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승영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가르치셨다.

우리가 완전하게 조직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생각하고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영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실상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영의 상태에서 너희의 능력이 미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하였느니라. 너희는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 육체가 필요하느니라. 따라서 나는 너희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가지 계획을 주려 하노라. 너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누구든지 어떤 것을 극복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느니라.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 주변에 있는 원소를 취하여 그것들로 지구를 조직하고 그 위에 식물과 동물이 있게 하고, 너희를 지구로 내려가게 할 것이니라. 이곳이 바로 너희의 시험장이 될 것이니라. 우리는 너희의 유익과 즐거움을 위해 풍족하게 갖추어져 있는 풍요로운 지구를 너희에게 줄 것이며, 너희가 너희의 참됨을 증명하고 너희에게 요구되는 것을 행하는지 살펴볼 것이니라. 나는 너희와 한 가지 약정을 맺으려 하노라. 만일 너희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내가 마련해 주는 계획에 따라 완전함과 신의 경지를 향해 계속해서 성장하겠다고 동의한다면, 나는 살과 뼈의 육체뿐만 아니라 태양, 물, 숲, 금속, 흙 그리고 너희가 먹고 입고 거처하는 데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이 있는 풍요롭고 비옥한 지구를 너희에게 줄 것이며, 또한 너희에게 적절하고 유익이 되는 모든 기쁨을 줄 것이니라. 이뿐만 아니라 나는 너희가 장애를 극복하고 완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향상시켜 나가면 결국에는 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서 위에 언급된 가장 관대한 제의를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5

주님은 계획과 그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조건과 이점 등을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삶은 세 가지 부분 또는 지체, 즉 전세, 필멸, 불멸로 구성됩니다. … 한 지체에서의 성과는 필연적으로 다음에 오는 지체나 지체들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사람이 첫째 지체를 잘 지켰다면 그는 시험과 경험이 있는 다음 기간으로서 둘째 지체 또는 필멸의 삶을 허락 받게 됩니다. 만일 그가 둘째 지체, 곧 지상에서의 그의 경험을 영화롭게 한다면, 영생이 그를 기다리게 됩니다.6

전세의 삶에 관한 기억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지상에 오기 전에 모두 이곳에 있게 될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식을 얻고, 자신을 교육시키며, 자신을 훈련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충동이나 욕구를 통제하고, 격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며, 크고 작은 우리의 약점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부작위의 죄(sins of ommission: 역자 주-해야 할 일을 안해서 생기는 죄)와 작위의 죄(sins of commission: 역자 주-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생기는 죄)를 없애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과 계명에 따라야 했습니다. …

몇 초가 될 수도 있고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는 필멸의 삶 이후에 우리는 죽게 되고, 육신은 그 창조의 근원인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고, 영은 영의 세계로 돌아가 그곳에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위해 더 훈련을 쌓을 것임을 우리는 또한 이해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부활 또는 육신과 영의 재결합이 있고, 그것은 우리를 불멸로 만들어 우리가 완전함과 신의 경지를 향해 더 올라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이 부활은 이 지구의 창조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가능해졌고, 그분은 우리를 위해 비길 수 없는 봉사를 행하셨으며,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불멸과 궁극적으로 우리의 합당성을 증명하면 하나님의 왕국에서 승영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7

우리는 이 눈물의 골짜기에 오기 훨씬 전부터 슬픔, 실망, 고된 일, 피, 땀, 눈물이 있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이 지구를 내려다본 다음 사실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아버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의 아들 또는 딸로서 제가 받을 수 있는 커다란 축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을 취하여 제가 죄의 영향을 이겨 내고 완전하게 되어 결국에는 당신과 같이 불멸의 존재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제일 먼저 지구로 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8

필멸의 생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지금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 필멸의 인간들은 두 번째 지체에 있는 것입니다. 필멸의 육신을 갖고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첫 번째 지체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점을 입증합니다. 우리 영의 물질은 영원하고 하나님과 공존했지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영체로 조직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체는 오랜 기간의 성장과 발전과 훈련을 거쳤으며,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마침내 이 지상과 필멸의 생으로 오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이 이 지상에 와서 필멸의 상태를 맞아들이는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은 육체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육신은 필멸의 생에 따르는 모든 약함, 유혹, 결점과 제약의 영향을 받아야 했고, 자신을 극복하는 도전에 직면해야 했습니다.9

여러분은 단순히 좋은 시간을 갖거나 충동이나 열정 또는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 그리고 세상의 “재미”라는 것을 즐기려고 이 지상에 온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매우 진지한 목적을 갖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즉 어린아이로서 시작하여 지혜, 판단, 지식 및 힘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까지 성장하려고 세상이라는 학교에 온 것입니다.10

모든 시대에서 인간의 가장 심각한 결점들 중의 하나는 미루기, 즉 개인의 책임을 지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비자발성이었습니다. 인간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발전하고, 자신을 완전하게 하려고 자신의 의지로 지상에 왔으나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벗어나서 … 정신적 영적 게으름과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중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11

이 필멸의 생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그것은 우리의 첫째 되는 책임입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영이 거할 영구적인 성막이 되는 육신을 이미 얻은 우리는 이제 몸과 마음과 영을 훈련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생을 활용하여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하고, 육신을 지배하여 육체를 영에 복종하게 하고, 모든 약점을 극복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도력을 보이고, 필요한 모든 의식을 집행할 수 있기 위한 것입니다.1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진로를 나타낸다.

전에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목적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는 대개 지도를 참고합니다. 우리의 구속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지도, 즉 율법과 계명을 주셨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완전함에 그리고 결국에는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과 의식을 하나로 통합해 놓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은 인간을 승영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이 값진 프로그램을 완전하게 갖춘 유일한 보고이며, 그 프로그램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13

주님은 이 시대에 모든 은사와 권능과 축복과 함께 그분의 왕국을 회복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어떤 교회가 여러분을 오랫동안 이끌면서 얼마간의 평화와 행복과 축복을 가져다주고, 여러분을 휘장까지 데려가 그곳에서 여러분을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휘장의 이편에서 여러분을 불러모으며, 만일 여러분이 계명에 따라 생활한다면, 마치 그곳에 휘장이 없는 것처럼 바로 휘장을 통과하고 영원을 통해 여러분을 승영으로 데려다줍니다.1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한 구원의 계획입니다. 그것은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발표하신 계획입니다.15

영생과 승영과 신의 경지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은 합당하게 집행된 침례에 의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와야 하고, 권세를 지닌 사람의 안수에 의해 성신을 받아야 하며, 남자는 권세를 지닌 신권 소유자에 의해 신권에 성임 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은 열쇠를 지닌 선지자나 열쇠를 위임 받은 사람들 중 한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집에서 엔다우먼트를 받고 인봉되어야 하며, 의로움과 깨끗함, 순수함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올바른 문,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계명에 의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영생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16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완성하셨으며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신의 값진 피를 흘려 그분은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완전한 삶을 바쳐 우리의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분의 속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17

구주의 속죄가 지닌 위대하고 훌륭하며 기적적인 혜택도,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의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18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회개의 복음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신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복음의 계획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됩니다. 회개는 주님이 주신 성장의 율법이며, 발전의 원리이며, 행복을 위한 그분의 계획입니다.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 후에 진심으로 충분히 회개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용서로 보상 받게 되리라는 그분의 분명한 약속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구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라는 문제의 본질에서 영화로운 점은, 회개하고, 생활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그분의 훌륭하신 가르침과 온전히 일치시키라는 주님의 명령이 경전에 가득 찬 것처럼 용서하시겠다는 주님의 분명한 말씀도 경전에 가득 차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자신을 온전하게 하고 또 자신에 대해 통제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사탄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온전히 통제하는 유일한 길, 곧 이생과 영원에서 기쁨과 진리와 성취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배워야 합니다.19

행복의 보고는 순수함과 간결함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 지고의 행복에 대한 확신, 이곳에서의 성공적인 삶에 관한, 그리고 다음 생에서의 승영과 영생에 관한 확실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완전히 일치된 생활을 하려고 계획하고, 그런 다음 자신이 정한 진로를 일관되게 따르는 사람들에게 옵니다.20

오직 용감하고 충실한 사람들만이 승영에 이를 것이다.

우리가 참되고 충실하다면, 불멸 상태에서 일어설 뿐만 아니라 영생으로 일어설 것입니다. 불멸은 지정된 왕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영생은 가장 높은 하늘에서 승영을 얻고, 가족 단위로 사는 것입니다.21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이 몰몬 교회에 관해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사람이 오직 그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선한 종교인과 종교를 믿지 않는 모든 선한 사람은 구원 받게 됩니다. 하지만 구원의 등급은 여러가지입니다. …”22

세상의 방법대로 생활한 사람들은 별의 왕국에 가게 될 것이며, 그 영광은 별과 같습니다.

고상하고 고결한 사람들과 존경 받을 만하고 선한 생활을 한 사람들은 달의 왕국에 가게 될 것이며, 그 영광은 달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을 버리고, 성령을 자신의 안내자로 삼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제단에 기꺼이 놓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들은 해의 왕국에 갈 것이며, 그 영광은 해와 같습니다.23

인생의 길은 신성한 목적에 따라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지도는 여행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영생의 목적지는 분명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그 목적지에서 우리의 아버지는 돌아오는 자녀들을 맞이할 것을 고대하며 희망에 차서 기다리십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24

겨우 소수만이 해의 왕국에서 승영에 이르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입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며, 그들이 승영에 이를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도 아니고, 간증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구주의 삶의 방식에 맞추려는 노력을 정진하지 않고 끝까지 벗어나지 않도록 삶을 잘 확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25

교회의 회원들 가운데도 미지근하고 무관심하고 지속적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복음에 따라 생활하지만 독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요건들은 따르지만 용감하지는 않습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지만 행하도록 요구 받는 일들, 즉 십일조 내기, 지혜의 말씀대로 살기, 가족 기도, 금식, 모임 참석, 봉사와 같은 일을 그저 행하지 않습니다. …

… 주님이 사람의 선한 소망과 소원과 의도를 행위로 바꾸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

오직 용감한 사람만이 승영하여 영광의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을 것이고, 그런고로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는 자는 적[습니다.]” (교성 121:40)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고]” 이와 반대로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음이라]” (마태복음 7:13, 14)

침례를 받고 교회 회원으로 확인을 받은 많은 후기 성도들과, 거룩한 성전에서 엔다우먼트를 받고 결혼하고 인봉을 받은 일부 후기 성도들조차 그렇게 함으로써 승영과 영생의 축복을 보장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음 두 가지 기본 요건을 반드시 달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어진 위대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받아야 하며, 또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후기 성도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다 승영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감하며, 또한 충실하게 온전히 요건을 성취하는 후기 성도들에게 그 약속은 형용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신이 되리니, 이는 그들에게 끝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이르리니, 이는 그들이 계속됨이라. 그때 그들은 만물 위에 있으리니, 이는 만물이 그들에게 복종함이라. 그때 그들은 신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권능을 가졌고 또 천사들이 그들에게 복종함이라.”(교성 132:20)26

인간이 주님께서 그분의 충실한 사람들에게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의 원대함과 풍요로움과 영광을 깨달을 때, 인내와 신앙과 희생, 땀과 눈물 속에서 그 모든 값을 치를 만한 가치가 그것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속에 의도된 영원의 축복은 인간에게 불멸과 영생, 영원한 성장, 신성한 지도력, 영원한 증식, 완전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있는 신의 경지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27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2쪽의 셋째 단락과 3쪽의 셋째 단락을 살펴본다. 킴볼 회장은 그 단락들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대해 우리가 전세에서 취한 반응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왜 우리가 그렇게 반응했다고 생각하는가?

        4쪽의 둘째 및 셋째 단락을 살펴본다. “진지한 목적”을 잃지 않고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3~5쪽에서 필멸의 생의 목적에 관한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공부한다. 이런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왜 미루기는 “인간의 가장 심각한 결점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가? 이런 경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킴볼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승영으로 인도하는 지도와 같다고 가르쳤다. (5~7쪽) 이 여정에서 여러분은 어디에 있고 계속 전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

        여러분은 복음에서 용감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몇 가지 예에 대해 7~9쪽과 1쪽에 있는 이야기를 참조한다) 교회 회원이라는 사실과 복음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왜 해의 왕국에서 승영에 이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관련 성구: 야고보서 1:22; 앨마서 34:30~41; 제3니파이 27:13~22; 교성 76:50~93; 아브라함서 3:22~26

1.       로버트 디 헤일즈, “내 친구: 나는 하나님의 자녀”, 성도의 벗, 1978년 11월호, 24쪽.

2.       찬송가, 187장.

3.       Conference Report, 1964년 4월, 94쪽; 또는 Improvement Era,1964년 6월호, 496쪽.

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1982년), 28쪽.

5.       “절대적인 진리”, 성도의 벗, 1979년 7월호, 5쪽.

6.       용서가 낳는 기적(1969년), 16쪽.

7.       용서가 낳는 기적, 16~17쪽.

8.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1쪽.

9.       용서가 낳는 기적, 16쪽.

10.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1쪽.

11.     용서가 낳는 기적, 18쪽.

12.     “Beloved Youth, Study and Learn”, Life’s Directions (1962년), 177~178쪽.

13.     용서가 낳는 기적, 17쪽.

1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49~50쪽.

15.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108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09쪽.

16.     용서가 낳는 기적, 17쪽.

17.     “신성 모독에 대한 킴볼 회장의 말씀”, 성도의 벗, 1981년 9월호, 5쪽.

18.     “회개의 복음”, 성도의 벗, 1983년 3월호, 6쪽.

19.     성도의 벗, 1983년 3월호, 1~2쪽.

20.     용서가 낳는 기적, 235쪽.

21.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109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10쪽.

2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0쪽.

23.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109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10쪽.

24.     용서가 낳는 기적, 27쪽.

2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1~52쪽.

26.     용서가 낳는 기적, 18~20쪽.

27.     용서가 낳는 기적, 281~282쪽.

  2 

비극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슬픔, 고난, 그리고 죽음이라는 외견상의 비극에 직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아주 어릴 적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겪었다. 여덟 살 때 여동생 메리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한 달 후에 스펜서의 부모는 여러 주 동안 아팠던 다섯 살 배기 페니가 곧 죽을 것임을 감지했다. 스펜서는 페니가 죽던 날에 관해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홉번 째 생일에 페니가 어머니 팔에 안겨 죽었다. 우리 자녀들은 모두 이른 밤에 깨어 그 자리에 있었다. 거실에서 있었던 그 광경이 기억나는 것 같다. … 사랑하는 어머니는 죽어가는 다섯 살 배기 아이를 팔에 안고 울고 계셨고 우리는 모두 그 주위에 모여 있었다.”1

이년 후에 있었던 일은 어린 스펜서에게 한층 더 힘들었다. 어느 날 아침 스펜서와 그의 형제 자매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집을 향해 달려갔고 감독님을 만났다. 그분은 아이들을 주위에 모아놓고는 어머니가 전날 세상을 떠났다고 말해 주었다. 킴볼 회장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청천 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나는 집에서 뒷마당으로 뛰쳐 나가 혼자서 눈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게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서 나는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엄마’라는 말을 할 때마다 새로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와 기어코 눈물이 말라 버렸다. 엄마가 돌아가시다니! 엄마는 그러실 수 없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 열한 살 소년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2

오십 년 뒤,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큰 수술 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기억이 나를 그 당시의 슬픈 과거로 데려가자 … 나는 다시 흐느껴 울고 싶었다.”3

그런 커다란 슬픈 경험들에 직면했던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항상 기도와 복음 원리 속에서 위안을 발견했다. 어릴 적에도 그는 평안을 얻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았다. 스펜서 가족의 한 친구가 어린 스펜서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이 그의 어린 마음을 크게 짓누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슬픔과 정말 용감하게 싸웠으며 유일한 근원에서 위안을 찾았다.”4

킴볼 회장은 그의 성역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의 말을 자주 전했다. 그는 죽음이 존재의 종말이 아니라고 성도들에게 확신시키며 영원한 원리들에 대해 간증했다. 한 장례식에서 말씀할 때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시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겨우 몇 킬로미터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귀로는 겨우 몇 년 동안만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마치 방 안에 있는 것처럼 갇혀 있고, 둘러싸여 있으나, 우리의 빛이 이생 밖으로 벗어날 때, 그때에는 필멸의 한계를 넘어서 보게 됩니다. …

“우리가 영원으로 들어가면 벽이 무너지고, 시간이 끝나고, 거리는 희미해지다가 사라집니다. … 그리고 지상의 한계가 없는 커다란 세계 속으로 우리는 즉시 들어가게 됩니다.”5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에 따라 비극을 항상 막아 주시지는 않는다.

일간 신문에 이런 표제 뉴스가 크게 실렸습니다. “비행기 추락으로 43명 사망. 생존자가 없는 비극적 참사” 그리고 수천 명이 입을 모아 외칩니다. “왜 주님은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자동차 한 대가 적신호일 때 지나가는 바람에 두 대의 자동차가 충돌하여 여섯 명이 사망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사고를 막지 않으셨을까요?

왜 젊은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여 여덟 자녀가 엄마 없이 살아야 합니까? 왜 주님은 그 엄마를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한 어린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다른 어린이는 차에 치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한 어른이 어느 날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관상 동맥 폐쇄증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몸은 바닥에 나뒹군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습니다. “왜? 왜 주님은 이런 일을 제게 행하셨나요? 아직도 아빠가 필요한 세 아이들을 생각해 보실 수는 없으셨나요?”

한 젊은이가 선교 임지에서 죽었고 사람들은 비판적인 질문을 합니다. “왜 주님은 이 젊은이가 전도 사업을 하는 동안에 보호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권위 있게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날이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 우리는 복음 원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행기를 산으로 이끌어 탑승객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주님이었습니까, 아니면 기계적 결함이나 인간의 실수였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차량을 충돌시켜 여섯 사람을 영원의 세계로 데려가셨습니까, 아니면 안전 규칙을 무시한 운전자의 실수였습니까?

하나님이 젊은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어린이를 흐르는 물 속으로 아장아장 걸어가게 하시거나 달려오는 차 앞으로 인도하셨습니까?

주님이 그 어른에게 심장 마비를 일으키셨습니까? 선교사의 죽음이 너무 일렀습니까? 대답할 수 있다면 답해 보십시오. 저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더라도 그분이 얼마나 많이 그런 일을 일으키시고, 얼마나 많이 그분이 단순히 허락하시는지를 저는 모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떠하건 간에 제가 확실히 느끼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주님이 이런 비극들을 막으실 수 있었습니까? 대답은 그렇습니다 입니다. 주님은 전능하시며,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목숨을 주관하시고, 고통을 덜어 주시고, 모든 사고를 막고, 모든 비행기와 차를 몰고, 우리를 먹이고, 보호하시며, 수고와 노력과 질병, 그리고 심지어는 죽음에서도 구해 주실 수 있는 모든 권능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모든 수고와 실망과 유혹과 슬픔과 고통에서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복음 율법은 선택의지와 영원한 발전입니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조심하게 하고 의롭게 되게 하는 것은 토대가 되는 그 율법을 무효화하고 성장을 불가능하게 할 것입니다.6

영원한 관점을 지닐 때, 우리는 역경이 영원한 진보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필멸의 생을 삶의 전부로 바라본다면, 그때에는 고통, 슬픔, 실패 그리고 짧은 삶이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삶을 전세의 과거와 죽음 이후의 영원한 미래까지 멀리 펼쳐지는 영원한 것으로 바라본다면, 그때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올바른 관점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시련을, 성취할 수 있도록 책임을,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도록 일을, 그리고 영혼을 시험할 수 있도록 슬픔을 주시는 것에 지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힘을 강화할 수 있도록 유혹에, 인내를 배울 수 있도록 질병에, 불멸의 존재가 되고 영광스럽게 될 수 있도록 죽음에 노출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병자가 고침을 받는다면, 그리고 모든 의로운 사람들이 보호를 받고 악인들이 멸망 당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전체 프로그램은 백지화될 것이며 복음의 기본적인 원리인 선택의지는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도 신앙으로 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기쁨과 평화와 보상을 즉시 받는다면, 악은 있을 수가 없고, 모든 사람들은 선을 행하겠지만 선을 행하려는 의로움에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힘에 대한 시험과 성품의 발전, 권능의 성장, 선택의지는 없을 것이며 오직 악마의 통제만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과 제한된 이해에 따라 우리의 모든 기도가 즉시 응답을 받는다면, 그때에는 고통, 슬픔, 절망 심지어는 죽음도 거의 또는 아예 없을 것이며,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또한 기쁨, 성공, 부활도 없고 영생과 신의 경지에 이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이 있음이 꼭 필요함이라 … 의로움 … 간악함 … 거룩함 … 비참함 … 선 … 악 …” (니파이후서 2:11)

인간인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뇌를 몰아내고 지속적인 평안과 위안에 대한 확신을 받으려고 하지만, 만일 우리가 슬픔과 재난에 대해 문을 닫아 버린다면, 우리의 가장 훌륭한 친구들과 은인들을 배제시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인내와 오래 참음과 자제심을 배우면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

저는 “굳도다 그 기초”의 이런 가사를 좋아합니다.

나 너를 불러 깊은 물 건너나

슬픔의 강물이 넘치지 못하리

나 너 함께 하고 근심 덜어주며

네 깊은 곤경을 불태워 없애리 [찬송가, 35장 참조]

그리고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지상의 남자나 여자가 자신이 겪게 되는 어떠한 번민이라도, 인내로 맞는다면 … 반드시 보상의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연약함, 불평, 비판에 굴복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강력한 영향으로 우리는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떠한 고통도, 우리가 경험하는 어떠한 시련도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교육 및 인내, 신앙, 강인함, 겸손함과 같은 자질의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고통 받는 모든 것과 인내하는 모든 것을, 특히 참을성 있게 견뎌 낼 때, 성품을 키우고, 마음을 순화시키고, 영혼을 키우고, 더욱 다정하고 인정 많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기에 더욱 합당하게 됩니다. …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와서 더욱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될 수 있도록 받는 교육은 바로 슬픔과 고통과 수고와 환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 (올슨 에프 휘트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움과 끝없는 아픔과 육체적인 고통을 겪는 것을 바라보면서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친절, 무관심, 불공평에 대해 주님을 탓합니다. 우리는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도 불완전합니다! …

신권의 권능은 제한이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현명하게 우리 각자에게 어떤 제한을 두셨습니다. 제가 제 삶을 완전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신권의 권능을 발전시킬 수는 있으나 신권을 통해 아픈 모든 사람을 고칠 수 없다 해도 저는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어쩌면 저는 죽어야 할 사람들을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고통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구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킬까 두렵습니다.

비전과 이해력은 제한적인데 무한한 권능이 제게 있었다면, 아마도 저는 아빈아다이가 기둥에 묶여 화형당할 때 그를 화염에서 구했을지도 모르며, 그렇게 하여 아빈아다이에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혔을 수도 있습니다. 아빈아다이는 순교자로 죽었으며, 순교자의 보상, 즉 승영을 받았습니다.

제 권능에 그 한계가 없었다면 아마도 바울을 그의 고통에서 보호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분명 그의 “육체[의] 가시”[고린도후서 12:7]를 낫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저는 주님의 계획을 방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세 번 기도를 드려 주님께 “가시”를 없애 주실 것을 간청했으나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0 참조] 만일 바울이 언변이 좋고, 멋지고, 잘생겼거나, 그를 겸손하게 만든 것들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여러 차례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

제가 1844년 6월 27일에 카테지 감옥에 있었더라면 선지자 조셉과 축복사 하이럼의 몸을 관통했던 총알들을 빗나가게 했을지도 모르기에 두렵습니다. 제가 고통과 고난에서 그들을 구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렇다면 조셉과 하이럼은 순교자로서의 죽음과 보상을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결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저는 제한 없는 그런 권능으로 겟세마네의 고통, 모욕과 가시관, 법정에서의 무례함, 육체적 상해로부터 그리스도를 보호해야겠다고 분명 느꼈을 것입니다. 그분의 상처를 치료하여 낫게 하고 그분에게 식초 대신에 시원한 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고난과 죽음에서 그분을 구해 드렸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그분의 속죄의 희생은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돌려주는 책임을 감히 짊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의 잔이 자신에게서 거두어지도록 기도하시면서, 자신의 뜻과 아버지의 뜻 사이의 차이점을 친히 인정하셨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22:42]7

죽음은 영광스러운 기회에 이르는 문을 열 수 있다.

죽는 사람에게도 삶과 그의 선택의지는 계속되며, 우리에게는 불행으로 보이는 죽음이, 비록 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더라도,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

만일 우리가 때이른 죽음이 불행이나 재난, 또는 비극이라고 말한다면, 영의 세계로 일찍 들어가서 궁극적인 구원과 승영에 이르는 것보다 필멸의 생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만일 필멸의 생이 완전한 상태라면, 죽음은 좌절이겠지만, 복음은 비극이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죄에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나니 …” (교성 63:49 참조)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판단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좁은 시야로 주님의 방법을 판단합니다.

저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 죽은 브리검 영 대학교의 한 젊은 학생의 장례식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전쟁의 파괴 행위로 인해 영원의 세계로 일찍이 들어가게 됐고, 저는 이 의로운 젊은이가 목숨을 빼앗긴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의 세계로 부름을 받았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죽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이 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 젊은이의 경우에는 그 말이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죽은 자의 구속”에 관한 시현에서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이런 일을 보았습니다. … 그분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 주께서는 진리를 거부했던 악인들과 불순종한 자들 … 가운데 친히 가시지 아니한 줄을 내가 알게 되었느니라. … 그러나 보라, 의로운 자들 가운데에서 그는 자기 군대를 조직하사 … 그들로 나아가 복음의 빛을 … 가지고 가도록 임무를 맡기셨으니, …

“… 우리 구속주께서 영의 세계에[서] … 육체로 있을 때 그를 증거한 충실한 … [자]들의 영들을 가르치고 준비시키시며 그의 시간을 보내셨[으며] … 거역과 범법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친히 가실 수 없는 죽은 자 모두에게 구속의 소식을 전하게 하사, …

“내가 보니, 이 경륜의 시대의 충실한 장로들은 필멸의 생을 떠날 때, … 회개와 … 구속의 복음을 전파하는 그들의 수고를 계속하더라.” [교성 138:29~30, 36~37, 57 참조]

그렇다면 죽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칠 기회를 포함한 여러 기회의 문을 여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8

시련의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죽음이 새로운 문을 연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을 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치유하도록 신권의 권능을 사용하라는 권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장로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을 불러 내 이름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안수하게 할지니, 그리고서 만일 그들이 죽으면 나를 위하여 죽을 것이요, 만일 그들이 살면 나를 위하여 살 것이니라.

“너는 사랑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그리하여 너는 죽는 자들을 잃음을 슬퍼할지니, 특별히 영화로운 부활의 소망을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하여 더욱 슬퍼할지니라.

“또 이렇게 되리니, 내 안에서 죽는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니, 이는 죽음이 그들에게 달 것임이니라.

“그러나 내 안에서 죽지 아니하는 자들, 그들에게 화 있나니, 이는 그들의 죽음이 쓴 까닭이니라.

“그리고 또 이렇게 되리니, 나를 믿어 병 고침을 받으리라는 신앙이 있고 죽기로 정해져 있지 아니한 자는 병 고침을 받으리라.” (교성 42:44~48)

의식이 집행된다면, 충분한 신앙이 있다면, 그리고 아픈 사람이 “죽기로 정해져 있지 아니[하]”다면 낫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을 따르지 않으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충분히 신앙을 행사하지 않거나 행사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요소가 또한 중요하게 대두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죽기로 정해지지 아니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입니다. 죽음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변화에 결코 완전하게 준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언제 임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고, 고통 받는 자를 돌봅니다. 또한 병을 치유하고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구하며 죽음을 늦춰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또 올바른 방법으로 그렇게 하지만, 영원의 세계가 그렇게 두렵기 때문은 아닙니다. …

전도서에서 말하듯이(3:2), 사람에게는 죽을 때가 있다고 믿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부주의하거나, 육신을 악용하거나, 불필요한 기회를 취하거나 위험과 사고와 질병에 자신을 노출시키기 때문에 “그들의 때” 이전에 죽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우리를 인도하고 축복하시지만, 우리에게 선택의지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계획에 따라 삶을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삶을 어리석게 단축하거나 끝낼 수도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주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계획하셨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고, 미래에 더 나은 통찰력으로 되돌아볼 때,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이생의 많은 일들에 대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도 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다시금 하루하루를 받아들이고 그 날을 알차고 영화롭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

우리는 육신과 경험을 위해 지상에 오고, 기쁨과 슬픔, 편안함과 고통, 위안과 고난, 건강과 질병, 성공과 좌절을 갖게 될 것임을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알았으며, 또한 생의 기간이 끝난 후에는 죽게 될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과 나쁜 일들 모두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이 모든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지상의 삶이 단지 하루나 일년밖에 되지 않더라도 지상으로 내려올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병이나 사고로 죽거나 또는 노쇠해 죽게 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이 오는 대로,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조직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로, 불평이나 불만 또는 불합리한 요구 없이 기꺼이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비극으로 보이는 일에 직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제한된 시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목적이 실패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삶의 어려움과 더불어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의 영광을 나눌 준비를 하면서 지식과 지혜, 신앙과 행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받습니다.9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주님은 왜 모든 슬픔과 고난에서 우리를 보호하시지 않는가? (13~14쪽 참조)

        15~16쪽을 공부하고, 만일 주님께서 우리가 시련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놓치게 될 것들을 찾아본다. 시련과 고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주님은 시련 속에서 여러분을 어떻게 강화시키셨는가?

        16쪽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움과 …”로 시작되는 단락을 읽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난을 겪는 것을 보는 것은 왜 그토록 힘든가? 그런 때에 비탄에 빠지거나 낙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6~20쪽을 살펴보고, 신권 축복에 관한 가르침을 찾아본다. 여러분은 신권 축복으로 낫게 되거나 위로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병 고침이나 죽음이 늦춰지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때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어린아이에게 닥친 죽음에 관한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킴볼 회장은 “비극으로 보이는 일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라고 가르쳤다. (20쪽) 하나님을 신뢰할 경우,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의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관련 성구: 시편 116:15; 니파이후서 2:11~16; 9:6; 앨마서 7:10~12; 교성 121:1~9; 122:1~9

1.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Spencer W. Kimball (1977년), 43쪽.

2.       Spencer W. Kimball, 46쪽.

3.       Spencer W. Kimball, 46쪽.

4.       Joseph Robinson, in Spencer W. Kimball, 46쪽.

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40~41쪽.

6.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95~96쪽.

7.       Faith Precedes the Miracle, 97~100쪽.

8.       Faith Precedes the Miracle, 100, 101, 102쪽.

9.       Faith Precedes the Miracle, 102~103, 105~106쪽.

  3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인류의 구주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사도로 봉사하던 초기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약 2주 동안에 세 번의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집에서 거의 7주 동안 요양을 하고 난 후에 그는 “집안에서만 보내야 했던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뉴멕시코 주에 있는 사랑하는 나바호 인디언 친구들 사이에서 요양할 계획을 세웠다.1

“요양 중이던 어느 날 아침 킴볼 장로의 침대가 비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가 아침 산책을 나가서 아침 식사 때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간병인들은 자신들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그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킴볼 장로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소나무 아래서 발견되었다. 그 옆에는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이 펼쳐진 채로 성경이 놓여 있었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고, 찾던 사람들이 다가갔을 때까지도 킴볼 장로는 처음 발견된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놀란 음성에 킴볼 장로는 눈을 떴고, 머리를 들자 사람들은 그의 뺨에서 눈물 자국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 년 전 오늘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오늘은 오직 그분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싶었습니다.’”2

킴볼 회장은 “거듭해서 다시 또 다시”3 구주의 신성에 관해 간증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가 그분에 관해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합니다.”4 간증의 권세는 그의 선한 삶으로 표현되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킴볼 회장님은 주님의 사람이었으며, 다른 어느 누구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깊은 소망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었으며, 다른 일 때문에 결코 그 일을 타협하지는 않으셨습니다.”5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교사일 뿐 아니라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주이시다.

최근에 발행된 타임(Time)지에 가장 큰 대학 중 한 곳에서 근무하는 한 유명한 명예 교수의 이론적 설명이 상세하게 실렸습니다. 그 교수는 나사렛 예수가 인간적인 따뜻함, 즉 사랑에 대한 커다란 능력과 비범한 이해력을 지닌 분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님을 위대한 인도주의자, 위대한 교사, 위대한 극작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형적으로 왜곡시킨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사로는 죽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에 의해서, 의지가 생기고 깨달음을 얻고, 또한 ‘그가 지닌 풍성한 생명력의 치료’에 의해 ‘건강을 되찾게’ 된 것”뿐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저는 예수가 위대한 교사, 위대한 인도주의자, 위대한 극작가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창조주, 세상의 구속주, 인류의 구주라고 오늘 간증드리고 싶습니다.6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압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7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 그리스도, 처음과 마지막, 세상의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전능자, 창조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여호와라고 친히 선언하셨습니다.

아버지 엘로힘은 예수를 나의 독생자, 나의 권능의 말씀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적어도 두 번, 즉 요단 강에서 있었던 침례 때와 그 후 변형의 산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마가복음 1:11; 누가복음 3:22 참조) 또한 “세상들이 그로 인하여 지음을 받았고 사람이 그로 인하여 지음을 받았으며, 만물이 그로 인하여, 그를 통하여, 그에게 지음을 받았느니라.” [교성 93:10 참조]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는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라고 말했던 침례 요한과 더불어 우리는 간증합니다. 그분은 인간적인 온정을 지닌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우리는 속에 간사한 것이 없었던 나다나엘과 더불어 “…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한복음 1:49)라고 간증합니다. 그분은 위대한 교사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예수를 보고는 확신을 갖고 “주님이라”[요한복음 21:7 참조]고 말했던 사랑받는 자 요한과 더불어 다시 간증합니다. 그분은 위대한 인도주의자일 뿐 아니라 하늘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에게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5, 16)라고 말했으며, 구주에게서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7)라는 말씀을 들었던 시몬 베드로와 더불어 간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신의 간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더불어 간증합니다.9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친구이고, 구주이고, 주님이며 하나님이십니다.10

구주의 성역은 영원토록, 즉 과거, 현재, 미래까지 펼쳐져 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 33년 동안 절정의 시대를 사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영원히 사셨으며 그것을 넘어서 영원히 사실 것이라고 간증드리고 …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조직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창조주, 인류의 구속주이심을 간증드립니다.11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전서의 하나님이었으며, 아브라함과 모세와 함께 대화하신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에게 영감을 주신 이가 그분이었고, 친히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미래에, 심지어 마지막 날과 시각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도 예고해 주신 이가 바로 그분이었습니다.12

요단 강에서 소개되어 듣고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한 분이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였으며(마태복음 3:13~17 참조), 또한 거룩한 변형의 산(마태복음 17:1~9 참조), 니파이인들의 성전(제3니파이 11~26장), 그리고 뉴욕 주 팔마이라의 숲에서 [조셉스미스-역사 1:17~25] 소개되신 분도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을 소개하신 이는 다른 분이 아닌 그분의 실제 아버지, 즉 거룩하신 엘로힘이셨으며,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형상을 지니고 계셨고 그분의 뜻을 수행하셨습니다.13

저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으며, 주님이 그분의 생각과 뜻을 매일같이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므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한 영감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14

그분은 가장 큰 모퉁잇돌이시며, 왕국의 머리가 되십니다. 선지자들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교리와 의식 그리고 계명들은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15

우리는 그분께서 약속하신 재림을 지금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그분의 다른 많은 약속처럼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며, 그 동안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그분을 섬김으로써, 모든 세대의 선지자들처럼 그분이 지니신 신성한 사명에 대해 간증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과거와 미래, 즉 영원토록 예수가 창조주, 구속주, 구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습니다.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속죄를 통해 타락의 결과에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 개인적인 죄에서 회개한 사람을 구하신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저는 그것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고, 그분은 생명과 구원에 이르는 참된 길의 근원이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이 세상의 구주로서 아버지에게서 택함을 받으셨습니다.17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의도적으로 또 현명하게 금단의 열매를 취했을 때, 아담은 우리 모두, 즉 그의 후손들에게 두 가지 사망, 즉 육적 사망 또는 “필멸의 사망”과, 영적 사망 또는 주님의 면전에서의 추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18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에 따라 구속주께서 사망의 사슬을 끊고 부활을 통해 지상에 거했던 모든 사람들의 영과 육신의 재결합을 가능하게 할 방법이 예비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이런 봉사를 수행하고 필멸의 사망을 정복하기 위해 창세전에 이미 지상에 오기로 택함을 받은 분이셨습니다. 이런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아담과 이브는 타락을 속죄받고, 인간의 영은 그 육신을 회복하여 육신과 영의 재결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19

지금까지 언급한 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곧 구주의 사업이며, 그분은 필멸성 (마리아의 아들)과 신성(하나님의 아들)을 다 지니셨기 때문에 육체를 다스리는 권능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자기 목숨을 주셨고, 문자 그대로 “첫 열매”로서 그 목숨을 다시 취하셨으며, 이제껏 살았던 모든 영혼이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2~23 참조] 하나님이셨던 그분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으로부터 목숨을 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극복하여 완전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다시 취할 권능을 발전시키셨습니다. 죽음은 그분의 마지막 적이었으며, 그분은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20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구주께서 주신 선물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지상에 친히 오셔서 올바른 방법을 사람들에게 모범으로써 가르치고, 그런 다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줌으로써, 인류의 죄에 대한 짐을 받아들여야 하는 기적적인 방법이 우선 먼저 필요했습니다.21

개인의 완전한 회개와 속죄의 희생을 치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절한 자비가 없다면 죄를 씻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오직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 인간은 보상하고 고침을 받고 씻겨지고 깨끗이 되어 영원의 영광을 누리는 자격을 지닐 수 있습니다. 힐라맨은 이것과 관련하여 구주의 위대한 역할에 관해서 베냐민 왕의 말씀을 그의 아들들에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이 달리 없고, 오직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통하여서일 뿐임을 기억하라. 참으로 그가 세상을 구속하러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힐라맨서 5:9)

그리고 힐라맨은 앰율레크가 지에즈롬에게 한 말을 회상하면서 죄를 회개하여 용서를 얻는 과정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이렇게 강조했다.

“… 저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정녕 그 백성을 구속하시러 오실 것이어니와 그가 오심은 그들을 그들의 죄 중에 구속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속하려 하심이라 하였음이니라.

“또 그는 회개로 인하여 그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속할 수 있는 능력을 아버지에게서 받았나니, …” (힐라맨서 5:10~11. 사체 첨가)22

[구주께서는] 우리의 부활을 위한 길을 열고, 완전한 삶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며, 승영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기 위해,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목적을 가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탄생은 겸허했고, 그분의 생애는 완전했으며, 그분의 모범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문이 열렸으며, 모든 훌륭한 은사와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23

구주의 속죄에 따르는 모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을 그분의 노력과 합해야 한다.

모든 영혼에게는 선택의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 주신 그 모든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활용하지 않게 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계획은 헛된 것이 되고 심지어는 아무 가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교성 19:16)

구주께서는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모세서 1:39)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의 탄생, 사망, 부활이 첫 번째, 즉 불멸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것을 가져오기 위해, 즉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주신 축복 위에 반드시 우리의 노력을 합해야 합니다.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과 우리를 위해 견디신 고난들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그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는데도, 만일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한 그분의 모든 번민과 고통은 무위로 돌아가게 됩니다.25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과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난과 위대한 희생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다면 거의 또는 아예 의미가 없게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4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26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의 계명에 따라 생활하고 그분의 참된 의식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이생에서 언젠가, 또는 다음 생에서 그분의 얼굴을 보고 또한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며 함께 대화하게 될 것입니다.27

“사람의 자녀들에게 구원이 이를 수 있는 다른 아무 이름이나 다른 어떠한 길이나 방법도 주어지지 아니하리니, 다만 전능하신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하여서만 구원이 올 수 있느니라.”(모사이야서 3:17)는 것을 우리는 믿으며, 그것이 우리의 간증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세상에 선포합니다.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구원이 전에나, 지금에나, 미래에나 상관 없이 전능하신 주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그리고 그 피를 통하여 임함을 믿[어야]”(모사이야서 3:18)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간증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세상에 선포합니다.

이에 따라 니파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자손과 또한 우리의 형제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려 부지런히 수고하여 기록[하며],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후에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은혜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으며] …”

“또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치며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며 또 우리는 우리의 예언에 따라 기록하노니, 이는 우리의 자손들이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무슨 근원을 바라보아야 할지 알게 하려 함[입니다.]” (니파이후서 25:23, 26; 사체 첨가)28

우리가 주님의 복음에 따라 살 때 그분은 기뻐하신다.

저는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시는 동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헌신하여 일하는 그분의 백성들을 바라보시며 웃음을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

…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의 가정 내부를 들여다보시며, 그들이 아침 저녁으로 무릎 꿇고 가족 기도를 하며 또한 자녀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을 바라보실 때 미소지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연로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계속 구애를 하고, … 죽는 날까지 자신들의 온 영혼을 다해 서로를 계속 사랑하다가 영원토록 그 사랑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그분이 웃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이 희생하고 함께 나누는 가족들을 보고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년 전에는 비활동이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현재는 이 왕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며, 또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가서 엔다우먼트와 인봉을 받고 감사의 눈물로 주님의 계획에 대해 감사드리는 광경을 보실 때 웃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그분에게 나아오고,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고, 침례의 물 속으로 들어갔던 새로운 영혼들을 … 그분이 볼 때, 그분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을, 그리고 입가에서는 미소를 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며, 또한 그들을 개종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그분이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고, 자신의 삶을 더 밝고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맏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닮으려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시며 그분께서 웃으시는 모습을 저는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체계화하고 시대의 오류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고 강화시키는 모습을 보시면서 기뻐하시고 웃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이, 며칠 전 제 사무실에서도 틀림없이 그러셨을텐데, 심각한 잘못을 범했다가 지금은 서로 손을 꼭 잡고 무릎 꿇은 젊은 남녀 한 쌍을 보실 때, 처음에는 슬퍼하시다가 아마도 나중에는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손에 살며시 올려 놓았던 저의 손이 그들의 눈물로 적셔졌을 때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 내면을 보시고, 변하고 있는 그들을 보시고는 분명 기쁨으로 미소지으셨을 것입니다.

정말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저의 진심과 헌신을 그분께 보이고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분과 좀더 가깝게 살고 싶습니다. 그분처럼 되고 싶고, 그분이 니파이인 제자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고 물으시고 자신의 질문에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제3니파이 27:27)고 답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 모두를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29

속죄는 우리에게 이생에서뿐 아니라 앞에 놓여 있는 영원에 대해서도 소망을 준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침례의 물에서 씻겨집니다. 죄와 간악함은 마치 불에 타듯이 우리의 영혼에서 타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끗하게 되고 정직한 양심을 갖게 되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됩니다. (빌립보서 4:7 참조)

복음의 율법에 따라 생활함으로써 우리는 권세적인 번영과 육체의 건강과 마음의 강건함을 유지하게 됩니다. 복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것은 영원이라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알 중에서 단지 한 알일 뿐입니다. 우리는 또한 앞에 놓여 있는 영원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고린도전서 15:19)가 될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슬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구원과 영원한 보상에 대한 소망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런 기대를 결코 갖지 않았던 다른 이들보다 분명 더욱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0)

이제 그분의 부활의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입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고린도전서 15:22)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린도전서 15:49)

이제 길이 예비되었으니 이로써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어]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고린도전서 15:54) 것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생이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사귐이 그 곳에서도 우리 가운데 존재하[고] 다만 그 사귐에는 지금 우리가 향유하지 못하는 영광, 곧 영원한 영광이 수반”(교성 130:2)되리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30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23쪽에 있는 이야기를 읽는다. 어떤 방법으로 주님께 더 가까워지고 또 킴볼 회장이 했던 것처럼 그분과 같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24~25쪽을 살펴보고, 킴볼 회장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한 이름과 칭호를 찾아본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과 칭호 중 여러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가 그저 훌륭한 교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전세, 필멸의 세상, 필멸 이후의 세상에서의 구주의 성역에 관한 킴볼 회장의 간증을 깊이 생각해 본다. (25~26쪽) 구주의 사명에 관한 간증의 깊이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

        26~28쪽을 공부하고, 우리에게 구주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여러분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24~28쪽에서 킴볼 회장은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관해 간증했다. 29~32쪽에서 우리는 속죄의 모든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에 관해 배운다.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은 그분이 우리에게 요청한 일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킴볼 회장의 의견을 살펴본다. (30~31쪽) 주님이 여러분을 기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 때 여러분이 갖게 될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본다.

        킴볼 회장은 지금 그리고 앞에 놓여 있는 영원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31~32쪽)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질 때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

관련 성구: 요한복음 14:6, 21~23; 니파이후서 9:5~13, 21~23; 모로나이서 7:41; 10:32~33; 교성 19:15~19

1.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Spencer W. Kimball (1977년), 249~252쪽 참조.

2.       “The Gospel of Love: Stories about President Spencer W. Kimball”, Ensign, 1985년 12월호, 22~23쪽.

3.       Conference Report, 1978년 4월, 9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7쪽.

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7쪽.

5.       “Spencer, the Beloved: Leader-Servant”, Ensign, 1985년 12월호, 15쪽.

6.       Conference Report, 1946년 10월, 55~56쪽.

7.       Conference Report, 1974년 10월, 163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7월호, 5쪽.

8.       Conference Report, 1964년 4월, 94쪽; 또는 Improvement Era, 1964년 6월호, 496~497쪽.

9.       Conference Report, 1946년 10월, 64쪽.

10.     Conference Report, 1982년 10월, 6쪽; 또는 성도의 벗, 1983년 1월호, 5쪽.

11.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70쪽.

12.     Conference Report, 1977년 4월, 113쪽; 또는 성도의 벗, 1977년 10월호, 80쪽.

13,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11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1쪽.

14.     Conference Report, 1977년 4월, 117쪽; 또는 성도의 벗, 1977년 10월호, 83쪽.

1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6쪽.

16.     Conference Report, 1946년 10월, 63, 64쪽.

17.     Conference Report, 1978년 4월, 7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6쪽.

18.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68쪽.

19.     Conference Report, 1978년 4월, 7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6쪽.

20.     “절대적인 진리”, 성도의 벗, 1979년 7월호, 6쪽.

21.     “제일회장단이 온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성탄절 메시지: 영원히 지속되는 선물”, 성도의 벗, 1983년 12월호, 43쪽.

22.     용서가 낳는 기적(1969), 303~304쪽.

23.     “나사렛 예수”, 성도의 벗, 1985년 4-5월호, 1쪽.

24.     성도의 벗, 1985년 4~5월호, 1쪽.

25.     용서가 낳는 기적, 135쪽.

26.     Conference Report, 1972년 4월, 26쪽; 또는 성도의 벗, 1973년 2월호, 33쪽.

27.     Conference Report, 1964년 4월, 99쪽; 또는 Improvement Era, 1964년 6월호, 499쪽.

28.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109~110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11쪽.

29.     Conference Report, 1956년 4월, 120쪽.

30.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108~109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09~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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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낳는 기적

진실한 회개와 구주의 구속의 권능을 통해 우리는 용서가 낳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회개는 언제나 더 훌륭하고 행복한 삶의 열쇠이다. … 우리는 모두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가르쳤다.1

그는 또한 “소망은 회개에 필요한 훌륭한 동기가 되는데, 소망 없이는 … 어느 누구도 그에 필요한, 어렵고도 긴 시간이 소요되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킴볼 회장은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 죄를 짓고 낙담해 하며 자신을 찾아왔던 한 여성을 도우면서 가졌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한 일을 잘 알아요. 저는 경전도 읽었고, 그래서 그 결과도 알고 있어요. 저주를 받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런데 왜 제가 지금 회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죠?”

킴볼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매님은 경전을 모르시는군요. 자매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그분의 선하심도 모르시는군요. 자매님은 이 가증한 죄에 대해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로 진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킴볼 회장은 그런 다음 진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용서에 관한 여러 성구를 그녀에게 인용했다. 킴볼 회장은 그녀에게 권고를 계속하면서 그녀 안에서 소망이 싹트는 것을 보았으며, 결국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형제님을 믿습니다. 저는 정말로 회개하여 어린 양의 피로 저의 더러운 옷을 씻고 용서를 받겠습니다.”

킴볼 회장은 결국 그 여성이 “밝은 눈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희망에 찬 모습을 한 새 사람이 되어” 자신의 사무실로 다시 찾아와서는 “소망이 자신을 인도하는 별이 되었으며 그 소망을 굳게 잡은 그 뜻 깊은 날 이후로는 [그 죄로] 결코 돌아가거나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자신에게 이야기” 해주던 것을 회상했다.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용서가 낳는 기적은 평화를 가져다주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는다.

변화할 준비가 된 모든 영혼에게는 영광스러운 기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는 가장 어두운 밤으로부터 찬란한 낮을 만들어 냅니다. 영혼이 거듭날 때 또는 삶이 바뀔 때, 바로 그때 미화시켜 주고 따뜻함을 주며 고양시켜 주는 놀라운 기적이 찾아옵니다. 영적 사망의 위협을 부활이 대신할 때, 삶이 죽음을 밀어낼 때, 즉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바로 그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 됩니다. 거듭나기 위해 구주의 구속 권능을 적용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놀라운 기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용서가 낳는 기적의 본질은 용서가 과거에는 걱정하고, 불안해 하며, 실망에 잠김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웠을 영혼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점입니다. 혼란과 다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이것은 참으로 값진 은사입니다.3

오늘날과 같은 괴로운 세상에서 평화롭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평화는 개인이 얻는 것입니다. … 그것은 회개하는 태도를 끊임없이 유지하고, 크든 작든 모든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 하나님께 늘 가까이 가는 생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 회원들에게 이것은 구주께서 오실 때 그분을 만나기 위한 준비와 대비의 근본입니다. … 준비가 된 사람들은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구주께서 그분의 사도들에게 약속한 다음과 같은 축복을 함께 하게 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목적 중 하나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치는 것입니다. 회원이나 비회원을 막론하고 이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용서가 낳는 기적을 함께 누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고뇌, 가책, 경악, 두려움, 죄의식의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마른 눈이 젖은 눈을 대신할 것이며, 만족해 하는 미소가 근심과 걱정에 싸인 모습을 대신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위안입니까!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범법과 슬픔과 죄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가, 그분에 관해 배우며,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들은 용서 받고, 깨끗하게 되고, 정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어리석음과 약점에 대해 회개할 필요가 있는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로 이 기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4

우리 모두는 회개할 필요가 있다.

“…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 (니파이전서 15:34) 그리고 “…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은즉 …” (니파이전서 10:21) 여기서 선지자들이 말하는 부정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부정을 뜻합니다. 인간들에게 그 말의 뜻은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세한 얼룩 하나가 하얀 셔츠나 옷을 불결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에게 깨끗함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완전히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것은 부정한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회개와 용서라는 축복된 은사가 없다면, 모든 사람이 희망 없는 상태에 놓일 텐데, 이는 주님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이 지상에서 죄 없이 산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5

어떤 사람의 삶에서든 자신의 안녕과 영원한 진보를 위해 회개가 필수적이지 않은 날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회개에 관해 생각할 때 시야를 좁혀 남편, 아내, 부모, 자식, 이웃, 친구, 세상 등, 즉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만 회개가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살인이나 간음이나 절도나 기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을 위해서 주님께서 회개를 만드셨다는 느낌이 잠재적으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복음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면, 본질적으로 영적이든 세상적이든 자신이 삶에서 행하는 모든 것에 회개를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는 아직 완전에 이르지 못한 모든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6

회개는 용서의 열쇠입니다. 그것은 행복과 평화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고 하나님의 왕국에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에 겸손의 정신을 불어넣어주며 통회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해 줍니다.

“죄는 불법이[며]” (요한1서 3:4) 그러한 범법 때문에 형벌이 영원한 율법 아래 부가되어 있습니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며 마찬가지로 지키지 못한 율법에 대해 부가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구주로 인해 대부분의 죄에 대한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그분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또한 형벌을 면하게 된다는 것을 아셨던 구주께서는 온 세상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7

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느끼는 것은 참된 회개의 일부이다.

회개는 친절하고도 자비로운 율법입니다. 그것은 멀리까지 미치며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회개는 … 여러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요소는 완전한 회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

회개에는 왕도가 없으며, 용서에 특권이라는 길은 없습니다. 부자건 가난하건, 교육을 받았건 못 받았건, 키가 크건 작건, 왕자건 거지건, 왕이건 평민이건 간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과정을 따라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기]” (로마서 2:11) 때문입니다. …

회개의 여러 요소가 작용하기 전에 우선 첫째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단계는 전환점으로서 죄인이 자기의 죄를 양심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성, 즉 죄에 대한 뉘우침입니다. 이것 없이는 죄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참된 회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

우리가 죄의 심각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죄의 결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과정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앨마는 코리앤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러한 것을 전하려 했습니다. “… 다만 너를 회개로 이끌어 내릴 그 괴로움으로, [너는] 죄를 괴로워하[라]. … 지극히 작은 점에라도 네 스스로를 변명하려 하지 말라. …” (앨마서 42:29~30)8

죄인이 자신의 잘못을 확실히 깨닫는 과정에서 성신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성신은 “모든 것의 참됨”(모로나이서 10:5)을 알게 해주고,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며(요한복음 14:26), 죄의 세상을 책망하는 일들에서 도움을 줍니다. (요한복음 16:8)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후회하는 감정을 나타내는 것만으로 회개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변화시키고, 변모시키고, 구원해 주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나타납니다. 단지 미안하게 여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9~10)9

용서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붕대는 상처 만큼 넓어야 합니다. 금식, 기도, 겸손이 죄의 크기와 같거나 더 넓어야 합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이 있어야 합니다.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야]” 합니다. 눈물과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10

죄를 버리는 것에는 새로운 삶을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

물론 죄에 대한 뉘우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죄를 없애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파괴와 파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죄를 인식한 후에는 그 죄를 다 정리하고 잘못으로 인해 생긴 손실을 보상하겠다는 진지한 각성이 분명하게 있어야 합니다.11

회개를 알아보는 결정적인 시험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올바른 동기를 갖고, 즉 죄의 심각성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고, 주님의 율법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자신의 죄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는지는 이로써 너희가 알 수 있나니-보라,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하며, 그것들을 버리리라.” (교성 58:43; 사체 첨가)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잘못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 자기의 삶을 바꾸기를 단지 원하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힘이 미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는 사람에게 행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소망으로 그치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 놀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결국 그것은 신체적 근육뿐만 아니라 도덕성까지도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12

죄를 버렸다고 해서 더 나은 상태를 단지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 스스로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더럽혀진 가먼트를 싫어하고 죄를 혐오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죄를 버릴 뿐만 아니라 죄와 관련된 상황도 확실히 바꾸어야 합니다. 죄가 발생했던 장소나 상황이나 환경도 피해야 하는데, 이는 그러한 것들은 가장 빨리 죄를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죄를 저질렀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어야 하며,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을 피하고 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옛날”과 “옛 시절”을 떠올릴 만한 모든 편지, 장신구, 물건들을 치워야 합니다. 과거의 죄와 관련된 주소, 전화 번호, 사람들, 장소와 상황을 잊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옛 추억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은 무엇이든 없애야 합니다.13

악을 버리고, 삶을 바꾸고, 성격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연마하거나 재형성하는 일에서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해야할 일을 행한다면 확실히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열심히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 되어, 놋쇠판을 얻거나, 배를 만들거나, 습관을 극복하거나 뿌리 깊은 범법을 정복하는 일이거나에 상관 없이 그 무엇이든 달성할 수 있습니다.14

고백은 짐을 덜어 준다.

죄의 고백은 회개에서 필수 요소이며, 따라서 용서를 얻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참된 회개의 시험들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는지는 이로써 너희가 알 수 있나니-보라,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하며, 그것들을 버리리라.”(교성 58:43; 사체 첨가)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

어쩌면 고백은 회개하는 죄인이 뛰어넘어야 하는 모든 장애물 중에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입니다. 부끄러움은 자기의 죄를 알리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자주 가로막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을 들을 사람이 필멸의 인간이라는 데에서 생긴 신뢰의 부족 때문에 그 비밀을 자신의 가슴 속에 꼭꼭 잠가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정당화시킵니다. …

인간의 마음과 의도, 그리고 회개하고 자신을 갱생시키는 그들의 능력을 아시는 주님은 회개가 무르익을 때까지 용서를 미루며 기다리십니다. 범법자는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가져야 하며, 기꺼이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해야 합니다. 자신의 중대한 죄를 교회의 해당 역원에게 고백하는 일은 주님께서 만드신 그런 요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죄에는 간음, 사통, 기타 성적인 범법, 심각성에서 이에 상응하는 다른 죄들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고백의 절차는 교회와 그 회원들에게 적절한 관리 체제와 보호를 보장해 주며, 범법자의 발을 참된 회개의 길로 돌리게 합니다.

부끄러움과 교만에 빠져있는 많은 범법자들은 주님께 드리는 겨우 몇 번의 조용한 기도로 잠시나마 그들의 양심을 만족시키고는 이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충분한 고백이라고 합리화해 왔습니다. 그들은 “고백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내 죄를 고백했고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중대한 죄가 연관된 경우에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범법자가 평안을 받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용서가 필요한데, 하나는 주님의 교회에서 봉사하는 해당 역원으로부터 받는 용서이며, 다른 하나는 주님으로부터 받는 용서입니다. [모사이야서 26:29 참조] …

… 이상적인 고백은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죄 중에 발각되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의 영혼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고백은 … 고조되는 회개의 표시입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죄인의 뉘우침과 악행을 버리겠다는 소망을 말해 줍니다. 자발적인 고백은 주님 보시기에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유죄가 명백할 때 질문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한 자백보다 분명 더욱 받아들일 만한 것입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한 자백은 주님의 자비를 불러오는 겸손한 마음의 증거가 아닙니다. “… 이는 나 주가 죄를 용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자비로우니라.”(교성 61:2; 사체 첨가)15

앞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중대한 죄들은 교회의 해당 역원에게 고백해야 하지만, 분명히 그런 고백이 모든 죄에 대해서 필요하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심각성이 덜하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한 죄, 부부의 의견차, 일시적으로 낸 작은 화, 불일치 등등 이런 것들은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고백해야 하며, 그러한 일은 보통으로 교회 역원의 개입 없이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합니다.16

고백은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 고백은 해당 역원에게 잘못에 관해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짐을 나누어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 짐의 일부라도 들어서 기꺼이 도와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범법의 짐을 자신에게서 없애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하면서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 만족이 찾아옵니다.17

보상은 회개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어느 사람이 죄를 인식하여 깊은 슬픔을 느끼고 겸손해질 때, 또는 죄를 버리고 이후로는 죄를 혐오하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할 때, 또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과 지상에 있는 적절한 사람에게 겸손히 고백할 때,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질 때, 남는 요건은 보상입니다. 그 사람은 손해를 입혔거나, 훔쳤거나 잘못한 것을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18

회개하는 죄인은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보상을 해야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최대로”라고 말한 것은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죄도 있고, 오직 부분적인 보상만이 가능한 죄도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이나 강도는 훔친 물건을 돌려 줌으로써 부분적인 보상을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진실을 알려 거짓말 때문에 생긴 손해를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품을 비방한 사람은 그가 해를 입힌 사람의 명예를 되돌리려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부분적인 보상을 할 수 있습니다. 죄나 부주의에 의해 잘못을 행한 사람이 재산 피해를 입혔다면, 그것에 대해 완전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되돌리거나 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가장의 행동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슬픔과 불명예를 가져다주었다면, 그는 그 보상하는 과정에서 넘치는 헌신과 충실함으로 그들의 확신과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해당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만일 자녀가 부모에게 잘못했다면, 그러한 잘못들을 바로잡고 부모를 영예롭게 하는 것이 회개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개하는 영혼이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갖는다면 대체로 어느 정도까지는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회개의 참된 정신이란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19

회개의 과정에서 우리는 가능하면 완전하게 되돌려 놓아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보상하고자 하고 용서를 구하는 죄인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웃에 대한 모든 증오, 괴로움, 그리고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정화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20

참된 회개에는 주님의 계명에 따라 생활하겠다는 결심이 포함된다.

현대의 계시에 대한 서문에서, 주님은 참된 회개에서 가장 어려운 요건들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회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인데, 이는 그 사람이 남은 생애 동안 그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나 주는 죄를 털끝만큼도 묵과할 수 없느니라.”

“그러할지라도 회개하고 주의 계명을 준행하는 자는 용서받으리라.” (교성 1:31~32; 사체 첨가)

이 성구는 매우 정확합니다. 첫째, 사람은 회개를 합니다. 여기까지 이르렀으면 다음으로 그는 자신의 더 나아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주님의 계명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완전한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

우리는 죄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모두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회개해야 하고 우리의 시야와 성취도를 지속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나 일 주일, 한 달 또는 일 년만에 주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행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남은 평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입니다. …

… 회개에는 주님의 프로그램에 완전히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충분히 회개하지 않아 십일조를 소홀히 하고, 모임에 빠지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가족 기도를 하지 않는 범법자는 교회의 역원을 지지하지 않고, 지혜의 말씀을 어기고, 주님이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범법자가 삶의 모든 부분에서 회개한 상태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

“계명을 실천한다”는 말에는 충실한 자들에게 요구되는 많은 활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건설적인 태도에 수반되는 일반적인 선행과 헌신은 그들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우리의 삶에서 죄의 결과를 중화시키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현재 복음의 빛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저활동 회원과 비회원 모두와 함께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아마 후자가 더 일반적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후일의 사업에 대해 간증하는 것과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어떻게 연관 지으셨는지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내가 이 계명을 주면서 너희 죄를 용서할 것임이니-곧 너희에게 전하여 준 그 일들을 온 세상에 증언 할 때에 너희 마음에 엄숙함과 기도의 영이 굳건히 머물러 있게 하라는 것이니라.” (교성 84:61. 사체 첨가)21

주님께서 그에게 오라고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간청해 왔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까?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숭고한 간청과 약속으로 그분의 아버지께 드린 영광스러운 기도 후에, 그분은 분명히 회개를 통한 용서와 죄의식을 느낀 후에 받을 수 있는 안도감에 관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저는 어느 곳에서든지 모든 남녀가 이 온유한 권유를 받아들여 주님께서 각 개인들의 삶에서 용서가 낳는 위대한 기적을 이루실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간구합니다.22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킴볼 회장은 용서를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35쪽) 어떤 면에서 용서가 기적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 34~36쪽 참조)

        36쪽에서 시작되는 단락을 읽으면서, 구주와 그분의 속죄가 없었다면 우리의 상황이 어떠했을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

        38쪽에서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단락을 읽는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후회를 나타내는 것과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대한 경전상의 예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39~40쪽에서 킴볼 회장은 죄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만드는” 방법에 관해 예를 들고 있다. 우리가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어떤 죄, 예를 들어 외설물, 불경, 또는 도박 등에 대해서 이 권고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40~42쪽에 있는 내용을 살펴본다. 왜 어떤 사람들은 고백이 너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주님에게 하는 고백을 통해 어떤 축복이 오는가? 감독이나 지부 회장에게 하는 고백을 통해서는 어떠한가? 우리가 마음을 상하게 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고백을 통해서는 어떠한가?

        42쪽의 마지막 단락을 깊이 생각해 본다. 죄에 대해 보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보상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며 또 어떻게 해야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는가?

        이 장에 있는 킴볼 회장의 가르침은 회개가 일상적인 행동 목록의 실행이라는 잘못된 생각과 어떻게 다른가?

관련 성구: 이사야 1:18; 모사이야서 4:3; 앨마서 36:12~26; 교성 19:15~20; 64:8~9

1.       용서가 낳는 기적 (1969), 35쪽.

2.       용서가 낳는 기적, 304~305쪽.

3.       용서가 낳는 기적, 324쪽.

4.       용서가 낳는 기적, 327~329쪽.

5.       용서가 낳는 기적, 27쪽.

6.       용서가 낳는 기적, 38쪽.

7.       용서가 낳는 기적, 125쪽.

8.       용서가 낳는 기적, 139~140쪽.

9.       용서가 낳는 기적, 142~143쪽.

10.     용서가 낳는 기적, 315쪽.

11.     용서가 낳는 기적, 147쪽.

12.     용서가 낳는 기적, 151쪽.

13.     용서가 낳는 기적, 158쪽.

14.     용서가 낳는 기적, 162쪽.

15.     용서가 낳는 기적, 163~166쪽.

16.     용서가 낳는 기적, 170쪽.

17.     용서가 낳는 기적, 172쪽.

18.     용서가 낳는 기적, 175쪽.

19.     용서가 낳는 기적, 177~178쪽.

20.     용서가 낳는 기적, 182쪽.

21.     용서가 낳는 기적, 183~185쪽.

22.     용서가 낳는 기적, 329쪽.

  5 

기도, 영적인 권능에 이르는 통행증

우리는 정직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 권능, 힘을 받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저는 항상 기도뿐 아니라 기도의 힘과 축복에 대해 매우 좋은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말했다. “평생 동안 저는 적절하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너무나 친절하셨습니다. 저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제 마음과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1

킴볼 회장과 그의 아내 카밀라는 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갔을 때 그런 경험 중 하나를 하게 되었다. 해밀턴 시에 이르렀을 때 너무 몸이 아파 킴볼 회장은 제일회장단의 제1보좌인 엔 엘돈 태너 회장에게 그날 저녁에 계획되어 있는 문화 행사에 자신을 대신하여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몇 시간 후에 킴볼 회장은 “갑자기 깨어나 앉더니 그를 보살피고 있던 러셀 엠 넬슨 박사에게 ‘넬슨 형제님, 오늘 저녁 프로그램이 몇 시에 시작됩니까?’”라고 물었다.

“‘7시입니다, 킴볼 회장님.’

“‘지금 몇 시입니까?’

“‘7시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킴볼 회장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열은 떨어져 있었다. … 그는 이렇게 말했다. ‘킴볼 자매에게 가자고 전해 주십시오.’

“카밀라가 침대에서 내려왔고 두 사람은 황급히 옷을 입은 후에 가까운 거리의 대회장에 자동차로 갔는데, 그때는 프로그램이 막 시작된 상태였다. 태너 회장은 킴볼 회장 부부가 너무 아파서 참석을 못한다고 모임이 시작될 때 설명을 했었다. 한 뉴질랜드 청년은 개회 기도를 드릴 때 열렬하게 간청했다. ‘우리 삼천 명의 뉴질랜드 젊은이들은 당신의 선지자를 위해 노래와 무용을 준비하여 이곳에 모였습니다. 당신께서 그분을 낫게 하셔서 이곳에 보내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기도가 끝나자 스펜서와 카밀라를 태운 차가 들어왔고 동시에 대회장에서는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에 귀가 멍해질 정도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다른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바로 우리 종교의 기본입니다.3

우리는 왜 기도를 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며 그분에게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즉 음식과 의복, 건강, 생명 자체, 시력과 청력, 음성, 보행, 심지어 우리의 두뇌 등 모든 것을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의 호흡, 생명, 존재를 주는 분이 여러분 자신입니까? 여러분은 단 한 시간이라도 이 생의 날을 늘릴 수 있습니까? 하늘의 은사 없이도 그렇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뇌는 저절로 만들어졌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만들었습니까? 여러분이 생명을 창조하거나 더 오래 살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없이도 행할 권능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

때때로 기도하시는 여러분, 좀더 정규적으로, 좀더 자주, 좀더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시간이 너무 소중하거나, 인생이 너무 짧아서, 또는 신앙이 너무 부족해서 그렇게 기도할 수 없으십니까? …

우리는 모두 주님에 대해 막대한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완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순결의 법과 안식일 준수, 십일조와 지혜의 말씀 실천, 모임 참석, 그리고 해의 왕국의 결혼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다른 참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주님의 계명입니다.4

저는 일찍이 교회의 여러 스테이크와 선교부를 두루 여행하면서 어려움을 겪거나 큰 곤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했던 제 첫 질문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얼마나 자주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은 기도할 때 얼마나 깊이 몰입하십니까?”입니다. 저는 의사 소통의 선이 끊어질 때 일반적으로 죄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사람에게 이르는 것은 모두에게 이르는 것이니라. 항상 기도하여 저 사악한 자가 네 안에 힘을 가져 네 자리에서 너를 옮겨가지 못하게 하라.”(교성 93:49)5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과 연락을 취하고 의사 소통의 통로를 열어 놓을 수 있는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세상 살이에 너무 바빠서 기도하며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권능에 이르는 통행증입니다.6

기도에는 감사의 표현과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와 주변 사람들을 축복해 달라는 겸손한 간구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기도할 때 우리는 무엇에 관해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과거의 축복에 대해 즐겁고도 진지한 감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받는 어떠한 축복에 대해서도 너희는 반드시 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느니라.” (교성 46:32) 우리가 받은 축복, 즉 우리가 축복으로 받게 된 복음 및 그 지식, 우리를 위한 부모 및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 여러 기회들, 마음과 육체와 생명, 평생토록 얻은 선하고 유용한 경험들과,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도움과 친절함과 응답된 기도에 대한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아버지께 진지하게 감사 드릴 때 놀랍고도 확신을 주는 영이 찾아옵니다.

우리의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디모데전서 2:1~2)

우리가 그렇게 기도한다면 국가와 우리를 다스리는 법률을 충실히 따르려는 마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커질 것이며, 우리의 자녀들은 그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교회 역원들을 위해 진실하게 기도한다면 그들을 흠 잡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생 동안 지도자를 지지하고 그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해 왔다는 점은 제게 기쁨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하늘에 상달되도록 올린 저를 위한 기도로 인해 제게 주어진 큰 힘을 최근 몇 년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선교 사업은 변함 없이 기도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문이 열려 복음이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영광스러운 복음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와 인도를 위해 기도합니다. 각 어린이가 일생 동안 선교사의 대업을 위해 기도하면, 그는 훌륭한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 우리는 적이라고 느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아름답고 강력한 주님의 권고를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불쾌한 느낌이 드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한다면 기도드리는 사람이 그를 오랫동안 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혜와 판단력과 이해력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위험한 곳에서는 보호를 받기 위해, 유혹의 순간에는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말이나 생각으로, 또는 큰 소리나 깊은 침묵으로 시시각각 기도합니다. 하루의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항상 기도합니다. 마음속으로, 또한 입술로 정직한 기도를 드릴 때 그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결혼 생활, 자녀, 이웃, 직업, 결정, 교회 임무 지명, 간증, 느낌, 목표를 위해 기도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앰율레크의 훌륭한 권고를 받아들여, 자비를 위해 기도하고, 생계 수단을 위해, 집안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적들의 세력을 막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모든 의의 원수인 악마를 막아 주시도록” 기도하고, 들에 있는 곡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리 내어 주께 외치지 않을 때도 “[우리]의 복리와, 또한 [우리] 주위에 있는 이들의 복리를 위해 끊임없이 그분께 기도하는 데 [우리] 마음을 기울이도록” (앨마서 34:18~27 참조) 해야 합니다.7

우리는 용서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수많은 예비 선교사들을 접견해 왔습니다. 그들이 아직 용서받지 못한 사항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보상해야 할 그런 큰 책무를 갖고 있는데도 왜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단순히 무시하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저 일상적인 관행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릎을 꿇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해 어떤 불신이 있으십니까? 그분은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회개할 때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회피와 단순한 망각을 통해서는 죄가 지워질 수 없으며, 범법이 용서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

우리는 필요하고 고귀하고 바람직한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열네 살 가량 된 소년이 가족 기도를 드리며 언덕 위에 있는 가족의 양들을 보호해 주실 것을 주님께 간청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눈이 날리고 몹시 추운 때였습니다. 저는 극심한 가뭄이 들고 상황이 절망적일 때 한 가족이 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한 어린 소녀가 그날 보게 될 시험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프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항상 낫게 해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평안이나 용기 또는 감당할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신체적으로 불완전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축복이 필요한 사람들, 즉 좌절과 혼란에 빠진 사람들, 유혹 받는 사람들, 죄 지은 사람들, 불안한 사람들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때때로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우리가 하는 말과 보여주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에서 반항하는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앨마는 그의 권고가 [아들]에게 효과가 없음을 알고는 [그를] 위해 기도했으며, 그 기도는 강력했습니다. 때로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의인의 기도는 큰 효력이 있다고 경전은 말해 주며 이 경우에 그랬습니다. [야고보서 5:16; 모사이야서 27:14 참조]8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이처럼 특권이며 기쁨이며, 우리를 위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기도했다고 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앰율레크는 이렇게 올바르게 가르쳤습니다. “이제 보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 너희가 [기도한] 후에, 만일 궁핍한 자와, 헐벗은 자를 물리치며, 병들어 고난당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너희가 가진 것이 있을 때, 곤궁에 처한 자들에게 너희의 재물을 나누어 주지 아니하면-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이러한 일 중 아무 것도 행하지 아니하면, 보라 너희의 기도는 헛되고, 너희에게 무익하며, 너희는 신앙을 부인하는 위선자와 같음이니라.” (앨마서 34:28) 우리는 기도를 정직하게 열심히 하는 만큼 복음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9

사적이고,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분의 뜻을 배울 수 있다.

시간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애 받지 않는 곳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들에 대해 가장 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는 풍부하고 유익합니다. 홀로 드리는 기도는 부끄러움이나 가식, 오랜 기만에서 벗어나게 도와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모든 소망과 태도를 조금의 거짓도 없이 그리고 고결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 드릴 때 방해 받지 않고 홀로 할 수 있는 장소의 필요성에 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구주께서는 이따금 기도하기 위해 산이나 광야로 가야 할 경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큰 부름을 받은 후 광야의 한적한 곳으로 혼자 갔습니다. 이노스가 하나님과 대화할 때 그는 홀로 있었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새와 나무 그리고 그의 기도를 듣는 하나님만이 있는 숲에 홀로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이 결심 곧 하나님께 구하기로 한 나의 결심에 따라 나는 그렇게 해 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 내가 그러한 시도를 한 것은 나의 평생에 처음이었는데, 이는 나의 모든 염려 중에서도 내가 아직 소리내어 기도하기를 시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셉 스미스-역사 1:14; 사체 첨가)

우리 또한 가능한 한 “뒤로 물러나” 은밀하게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는 방, 외딴 곳, 골방 같은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소리 내어 기도할 것을 여러 차례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네게 명하노니, 너는 기도하라. 마음으로 할 뿐 아니라 소리를 내어서도 하라. 그러하도다. 은밀하게 할 뿐 아니라 세상 앞에서도 하며, 혼자서 뿐만 아니라 회중 앞에서도 할지니라.”(교성 19:28)10

만일 기도하는 이 같은 특별한 순간에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부 축복들이 우리에게서 보류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탄원자로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필요 사항과 축복에 관해 지니고 있는 느낌이나 생각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11

우리의 기도에는 속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겉치레, 위선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참된 상태를 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가 얼마나 선한지 또는 얼마나 약한지를 말씀드립니까? 우리는 그분 앞에서 알몸 상태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수수하게, 진실되게, 그리고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간청합니까, 아니면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지를 자랑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습니까? [이더서 4:15; 누가복음 18:11~12 참조] 진부한 몇 마디 단어와 흔히 하는 말로 간구드립니까? 필요 사항에 따라 오랫동안 주님께 친밀하게 말씀드립니까? 정기적으로, 자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데, 혹시 어쩌다가 기도합니까?12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고 또한 그분에게서 사랑과 영감을 받는, 그런 특권입니다. 기도를 끝마칠 때는 단 몇 분만이라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권고와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만히 있어 [그]가 하나님 됨을” (시편 46:10) 알아야 합니다.13

우리는 매일 가족 기도를 위한 시간을 내야 한다.

교회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족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식구, 또는 참석이 가능한 대로 많은 식구가 모여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가족이 돌아가면서 대표로 기도할 기회를 가져야 하며, 그것은 감리하는 사람, 즉 일반적으로는 신권을 지닌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 그리고 두 분 다 없으면 가장 나이 많은 자녀의 인도로 이루어집니다.14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가정과 인생의 정말 중요한 활동에서 우리가 성공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에게 기도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만일 우리가 아침에 일어날 때, 그리고 저녁에 잠들 때, 그리고 식사 시간에 식탁에 둘러앉을 때, 개인적으로 또한 가족으로서 열심히 의롭게 기도한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뭉치게 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 진리를 배우고 그런 다음 그 진리에 따라 생활하려고 할 때, 또한 우리의 삶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15

가족은 기도 드릴 때 필요 사항에 따라 그 길이를 조절하고 구성원에 맞추어야 합니다. … 부부의 기도는 장성한 자녀가 있는 가족을 위한 기도 또는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을 위한 기도와는 다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주 어린 자녀들이 참여할 때는 기도가 길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길어질 경우 어린 자녀들이 흥미를 잃고 기도에 싫증을 내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기도할 때 그렇게 오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본보기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기도는 겨우 30초 정도이며, 하나님과 더 긴 교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1~2분에서 3분이면 많은 감사와 요청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16

우리가 무릎 꿇고 가족 기도를 드릴 때, 우리 옆에서 무릎 꿇고 있는 자녀들은 평생토록 그들과 함께 할 습관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를 위해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실제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쎄, 그건 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야. 걱정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편한 상태에서 기도를 할 수 있다면 하겠지만, 학교 종이 울리고 버스가 오고 있고 직장에 서둘러 가고 있다면, 글쎄, 기도가 그렇게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편리할 때 하면 되는 거야.” 기도하는 생활은 미리 계획하지 않는 한, 결코 편리하게 되지 않습니다.17

어떤 어머니도 겨울 아침에 눈과 비와 추위를 막아 주는 따뜻한 옷을 입히지 않고서 부주의하게 어린 자녀들을 학교로 내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그들에게 오는 보호의 덮개, 즉 미지의 위험, 악한 사람들, 나쁜 유혹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막을 씌우지 않은 채로 자녀들을 학교로 보내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수없이 많습니다.18

과거에는 가족 기도를 하루에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가족을 구원하려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19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들음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마음에서 우러나고 정직한지를 곧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허둥댄다면, 심지어는 생각 없이 의례적인 경향이 있다면, 그들은 이것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몰몬이 간청한 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마음의 힘을 다해 아버지께 기도하[라]”(모로나이서 7:48)20

가족 기도는 간청과 감사의 기도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의 단합과 가족의 결속을 향해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입니다. 가족 의식을 쌓아 주고 가족이 상호의존하도록 해줍니다. 떠들썩한 라디오 소리가 있던 정신 없는 하루가 조용해지고, 조명이 잦아들고, 모든 생각과 마음이 서로에게 그리고 무한하신 이에게 향하는 순간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문이 닫히고 하늘의 울타리가 그 안에 쳐지는 순간입니다.21

단체로 모여 기도할 때, 우리는 모임에 알맞게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 또는 우정 모임이나 공식적인 모임에서 함께 기도할 때, 기도의 목적, 즉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통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렵게 보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듣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걱정하기보다는 하나님과 부드럽게 또 정직하게 교통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태도가 더 낫다는 점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도하는 환경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바로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도, 또는 가족 기도조차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전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22

공개적인 기도는 그 모임에 항상 알맞아야 합니다. 헌납 기도는 보다 길 수 있으나 개회 기도는 훨씬 더 짧아야 합니다. 그 특정한 모임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간구해야 합니다. 폐회 기도 역시 더 짧아야 하는데, 그것은 감사와 헤어짐의 기도입니다. 기름을 붓는 기도는 짧고 의식의 특정 부분으로 그 다음에 기도하는 인봉 부분의 내용과 겹치지 말아야 하며 필요에 따라 받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음식 축복은 길 필요는 없으나 음식에 대한 감사와 그 음식에 필요한 축복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방금 드린 가족 기도의 반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23

완전한 설교처럼 기도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의 기도를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듣습니까? 듣는 사람들은 지치고, 그 효과는 없어집니다.24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게 알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에 대한 그분의 응답을 신뢰할 수 있다.

기도가 일방적인 의사소통에 불과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

기도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즐겁고도, 일생 동안 하게 될 경험입니다. 기도를 한 후에 집중하여 들으면 때때로 여러 생각이 우리 마음에 홍수처럼 몰려듭니다. 때로는 느낌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평온한 영은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나 만일 정직하고 진지하다면, 우리는 좋은 느낌, 즉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느낌과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을 항상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가 그런 평온하고, 영적인 따뜻함의 의미를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 저로 하여금 애석한 마음이 들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런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응답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심지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계속해서 기도하고 생활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 우리를 인도하고 축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당신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진정한 마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도자에게 충고를 구한 다음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께 축복을 구한 다음 그 응답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여,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잘 아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지시를 정중히 받아들이고 따르겠나이다.”25

우리는 신앙으로 기도해야 하지만, 주님이 응답하실 때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거나 바라는 응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 옳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26

일생 동안 기도를 드려 왔던 저는 정직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로부터 오는 사랑과 힘의 능력에 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필멸의 세상에서의 여러 경험을 하게 되는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이끌고, 인도하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준비에 관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큰 사랑으로 구주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사람에게 이르는 것은 모두에게 이르는 것이니라. 항상 기도하[라]” (교성 93:49)

우리가 그렇게 행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으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개인적인 지식을 스스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가 이 지식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지식을 구하십시오! 이 지식을 구하십시오!27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도 있었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신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다. (48~49쪽)

        49~52쪽을 살펴본다. 기도 중에 감사를 표현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는가?

        52쪽에서 둘째 단락을 살펴본다. 우리가 “기도를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하는 만큼 복음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왜 불완전한가?

        킴볼 회장은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는 풍부하고 유익합니다.”라고 말했다. (52쪽) 의미있는 개인 기도를 위한 시간을 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개인 기도에서 때때로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듣는 것이 기도에서 중요한 부분인가?

        54~55쪽에서 킴볼 회장은 가족 기도의 결과로 인해서 오는 축복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런 축복과 관련하여 여러분은 어떤 경험을 했었는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족 기도를 위한 시간을 내기 위해 가족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킴볼 회장은 단체 모임에서 하는 기도는 그 모임에 알맞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56쪽) 그런 기도를 부탁 받았을 때,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47~48쪽의 이야기에 있는 뉴질랜드 젊은이의 모범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56쪽 하단에서 시작되는 단락을 읽는다. 하나님 아버지와 여러분의 관계에 기도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관련 성구: 시편 55:17; 마태복음 6:5~15; 야고보서 1:5~6; 니파이후서 32:8~9; 제3니파이 18:18~21

1.       Conference Report, 1979년 10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5~6쪽.

2.       Caroline Eyring Miner and Edward L. Kimball, Camilla: A Biography of Camilla Eyring Kimball (1980년), 182~184쪽.

3.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200쪽.

4.       “기도”, 성도의 벗, 1980년 5월호, 1, 3, 5쪽.

5.       “항상 기도하라”,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2쪽.

6.       Conference Report, 1979년 4월, 7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7쪽.

7.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3~5쪽.

8.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5, 206쪽.

9.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6쪽.

10.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3쪽.

11.     Conference Report, 1979년 10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5쪽.

12.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7쪽.

13.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5쪽.

14.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0~201쪽.

15.     “배웠고”, 성도의 벗, 1982년 8월호, 3~4쪽.

16.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1쪽.

17.     용서가 낳는 기적, 230~231쪽.

18.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7쪽.

19.     제임즈 이 파우스트, Conference Report, 1990년 10월, 41쪽; 또는 성도의 벗, 1991년 1월호, 38쪽.

20.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2~3쪽.

21.     “Family Prayer”, Children’s Friend, 1946년 1월호,30쪽.

22.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2쪽.

23.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1쪽.

2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1982년), 119~120쪽.

25.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5~6쪽.

26.     Faith Precedes the Miracle, 207쪽.

27.     성도의 벗, 1982년 3월호, 7~8쪽.

  6 

우리 스스로 경전을 발견함

우리 모두는 자신을 경전에 몰입시키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열네 살 때 브리검 영의 딸인 수사 영 게이츠 자매가 경전을 읽는 것을 주제로 스테이크 대회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 자매님은 경전을 읽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관해 깨우침을 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말씀을 중단하고는 약 천여 명이 섞여 있는 회중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성경을 다 읽어 보았습니까?’

“… 자책감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신문의 만화 면이나 가벼운 서적 등과 같은 책은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책감이 섞인 소리, 즉 ‘너, 스펜서 킴볼, 너는 그 거룩한 책을 읽은 적이 결코 없어. 왜 그랬지?’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저는 저 혼자서만 그 성스러운 책을 읽지 않았나 보려고 두리번거리며 그 강당의 앞에 그리고 양쪽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천 명 가운데 한 여섯 명 정도가 자랑스럽게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 자리에 파묻혀 앉아 있었습니다. 같이 읽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제 자신에 대해 책망하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더 이상 설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게 설교는 이미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모임이 끝났을 때, 저는 커다란 이중 출구를 찾아서 예배당에서 동쪽으로 한 구역 떨어져 있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읽을 거야, 읽겠어, 읽으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집 뒷문 쪽에 연결된 주방의 석탄 기름 등잔을 두는 선반 앞으로 가서 심지가 새로 손질되고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 등잔을 고른 후에 계단을 올라 제 다락방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제 성경을 펴고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읽기 시작했고, 그날 밤까지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에녹과 노아, 그리고 대홍수를 거쳐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어 나갔습니다.”1

대략 일년 후에 스펜서는 성경 읽기를 끝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을 다 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만족감이 정말로 컸습니다. 영의 환희도 컸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에 관해 전체적으로 제가 받았던 기쁨도 매우 컸습니다.”2 그 경험은 그에게 지속적인 감명으로 남았으며, 그는 그 이후에도 살아가면서 그 경험을 연차 대회와 지역 대회에서 자주 언급했다.

킴볼 회장은 생애 내내 경전 공부의 축복을 계속해서 향유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했다. 훗날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 된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선교부 회장일 때,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님이 우리 지역을 감독했습니다. 회원들과 선교사들 모두에게 주는 영감에 찬 메시지에서 그분이 몰몬경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했는지를 저는 보게 되었습니다. … 한 번은 선교사 지역 모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코트 형제님은 제가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오늘 몰몬경에서 한 성구를 활용하셨습니다.’ 킴볼 장로님께서는 가르치고자 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잘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일흔 여섯 번 이상 읽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킴볼 장로님은 제가 경전에 대해 아주 일부분만 알고 있고, 또 평생동안 그 경전들을 상고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굳이 구체적으로 지적할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그 단 한마디의 말은 제가 하나님의 성스러운 말씀에 대한 이해를 키우겠다는 평생의 목표를 갖기에 충분한 동기를 주었습니다.”3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경전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몹시 소중한 재산이다.

경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경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게 되는 경험에 너무 익숙하게 되었고 또 우리가 배우는 복음을 듣는 것에 너무도 익숙하게 된 나머지, 그러한 축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대배도라 불리는 영적인 어둠의 긴 밤에서 벗어난 이래로 [긴]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던 1820년 어느 봄날 이전에 널리 퍼져 있던 영적인 어둠의 심연에서 중요한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어둠은 선지자 니파이가 미리 보고, 복음이 인간에게서 보류된 “그 비참한 눈먼 상태”라고 묘사했던 어둠이었습니다.(니파이전서 13:32 참조) …

… 하늘이 침묵하고 영이 물러간 영적인 어둠의 시대에 제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제 영혼은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친숙한 표지물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광대한 사막에서, 또는 빠져나갈 길을 보여 주는 그 어떤 빛도 없는 큰 동굴의 짙은 어둠 속에서 방랑자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

… 이사야는 어둠의 종식과 몰몬경의 출현에 관해 직접 언급했습니다. [이사야 29:11~12 참조] …

이렇게 하여 기이한 일, 즉 주님께서 행하리라고 약속하신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서 29:14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복음의 회복이 시작된 이래로 [수백 만] 부 이상의 몰몬경이 이미 … 출판되어 배부되었고 … 셀 수 없는 수의 성경이 인쇄되었는 데, 그것은 출판된 다른 모든 작품들을 양적으로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교리와 성약 및 값진 진주가 있습니다. 이러한 귀중한 경전을 접할 수 있는 것 이외에도 세계 역사상 다른 어느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의지만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제도와 능력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고대 선지자들은 어둠 후에 빛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빛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습니까? 쉽게 우리의 손에 넣을 수 있는 구원의 교리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 (로마서 11:8)로 인해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점이 저는 염려됩니다.

… 저는 경전 공부에서 우리가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정직하게 평가해 보기를 모두에게 부탁드립니다. 자유 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성구가 몇 안 되며, 그마저도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경우인데, 복음에 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정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각자가 인생에서 언젠가는 스스로 경전을 발견해야 하며, 또 비단 한 번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해서 재발견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4

주님을 섬기겠다는 우리의 결심은 경전을 펼칠 때 깊어진다.

구약전서에 있는 요시야 왕의 이야기는 “[우리]들 자신에게 비유” (니파이전서 19:24) 하기에 정말 유익한 이야기입니다. 제게 그 내용은 모든 경전에서 가장 훌륭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요시야는 불과 8세에 유다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그의 직계 조상이 지극히 사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열왕기하 22:2)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바로 두 세대 전), 모세의 율법이 적힌 기록이 잃어버려져 없었고 심지어는 성전의 제사장들도 그 율법을 실제로 알지 못했다는 점을 배울 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의 치세 18년째에 성전을 수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 힐기야는 모세가 언약궤 안에 놓아 두었던 율법책을 발견하여 요시야 왕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율법책을 요시야 왕에게 읽어 주었을 때, 그는 “그의 옷을 찢[고]” 주님 앞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열왕기하 22:13)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왕은 그 책을 모든 백성 앞에서 읽었으며, 그 당시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열왕기하 23:3) 주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기로 성약을 맺었습니다. 그런 다음 요시야는 모든 우상과 숲, 산당, 그리고 조상들의 치세 동안 누적되어 온 나라와 백성을 더럽혔던 모든 악행을 제거하며 유다 왕국을 정결케 했습니다. …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열왕기하 23:25]

저는 우리 모두가 요시야 왕이 했던 것처럼 경전으로 돌아가, 경전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하여 주님을 섬기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얻어야 한다고 강하게 느낍니다.

요시야에게는 모세의 율법만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경전에 실려있습니다. 만일 조금 맛본 경전의 일부가 달콤했다면, 복음이 충만해졌을때의 기쁨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주셨을 때는 우리를 가볍게 다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누가복음 12:48)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접한다는 것은 거기에 책임도 뒤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계명에 따라 경전을 공부해야 하며 (제3니파이 23:1~5참조) 또 경전이 우리의 삶과 자녀들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5

우리는 경전 공부를 통해 인생의 교훈을 배운다.

윤리적 표준 및 합당한 영적인 생활에서의 모든 교훈을 표준 경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로움에 대한 보상과 죄에 따르는 형벌을 찾게 될 것입니다.6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악함과 의로움의 결과를 본다면 우리는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인생의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 욥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면 가장 큰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고대 애굽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요셉이 관능적인 여인에게서 유혹받을 때 보여준 힘과 이 순수한 젊은이가 그 선정적인 사람 안에 숨어 있던 어둠의 모든 권능에 저항하는 것을 알게 된 독자는 그런 죄에 저항하는 힘이 강화될 것입니다. 상처받고 시험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목숨을 다하여 성역을 베풀었던 바울의 관용과 불굴의 정신을 깨닫게 되면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차례 매를 맞았고, 대의로 인해 자주 옥에 갇혔으며, 거의 죽음에 이르도록 돌로 맞았고, 세 번이나 난파를 당했으며, 강도를 만났고, 물에 빠져 거의 죽을 뻔했으며, 그릇되고 불성실한 형제들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은 상태에 있는 동안에도 바울은 여전히 일관되게 봉사했습니다. 바울은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한 후 간증을 얻었으며 그 후로는 결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사람들의 평가에 의하면 교양 없고, 배우지 못하고, 무식했으며 비천한 어부였지만 그를 움직인 촉매제였던 복음으로 인해 성장하여 훌륭한 조직가, 선지자, 지도자, 신학자, 교사로 활짝 꽃피었습니다. …

우리의 자녀들은 니파이의 끈기와 그가 보여준 개인적인 힘을 통해 인생의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훈에는 세 니파이인 제자의 독실함, 아브라함의 신앙, 모세의 권능, 아나니아의 속임수와 배신,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저항하지 않았던 암몬 백성의 용기, 레이맨인 어머니들의 아들들을 통해 전해진 그 어머니들의 신앙, 즉 힐라맨의 용사들을 구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던 그 확고한 신앙이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이 싸움에서 죽음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경전에는 인간의 모든 약점과 장점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보상과 형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읽고도 올바르게 생활하는 법을 배울 수 없는 사람은 분명히 눈이 먼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경전]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경전]을 연구하거니와 이 [경전]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5:39) 그가 바로 주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생애에서 모든 선한 특성, 즉 경건, 힘, 자제력, 완전함 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과연 자신의 삶에 그 일부분이라도 적용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7

여기 [표준 경전]에는 선지자들 및 지도자들의 전기 그리고 주님 자신의 전기가 있어, 본보기와 지침을 주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그런 본보기들을 따른다면 완전하고, 행복하게 되며, 기쁨과 목표와 기대를 영원히 지닐 수 있습니다.8

영적인 지식은 경전을 공부하고 상고하는 모든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성도들 중에는 정기적으로 경전을 읽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또 인간의 자녀들에게 주는 주님의 가르침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 간증을 얻었으며, “이 협착하고 좁은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발걸음을 한 발 더 내딛는, 즉 “힘써 앞으로 나아가되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며 끝까지 견[디는]” (니파이후서 31:19, 20; 사체 첨가) 것은 하지 못했습니다.

충실한 자만이 약속된 보상, 즉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행하는 자”(야고보서 1:22 참조)가 되지 아니하고서는 또 주님의 계명에 용감하게 순종하지 아니하고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먼저 “듣는 자”가 되지 않고서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듣는 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게으르게 곁에 서서 우연히 얼마간의 정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찾아내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의 음성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며, 따라서 나의 것이 아니니라.”(교성 84:52)9

저는 우리가 단호하고 성실한 방법으로 이렇게 [경전을 공부하겠다는] 개인적인 합당한 목적을 힘차게 추구한다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고, 마음속에서 평화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세월이 지나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성신을 통해 이해력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통찰력을 발견하고, 모든 경전에서 드러나는 일정한 패턴을 목격하게 되며, 주님의 교리가 이제껏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족을 인도하는 데 필요한 더 큰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10

여러분이 아직까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면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제부터 그렇게 시작할 것을 당부드립니다.11

자신을 경전에 몰입시킬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게 된다.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무관심하게 될 때, 그리고 신성한 귀가 듣지 않고 있고 신성한 음성이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 제가 하나님에게서 아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자신을 경전에 몰입시킬 때, 그 거리가 좁아지고 영성이 돌아옵니다. 저는 온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제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을 더욱 강렬하게 사랑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을 더 많이 사랑할 때 그들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12

저를 창조하신 이와 복음과 교회와 형제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제가 단지 해야 할 일은 경전만 읽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경전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 저는 어느 사람이 경전을 읽은 후 그 경전의 신성함과 경전에서 말씀하시는 분이신 주님의 사업의 신성함에 대해 왜 간증을 키울 수 없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13

지상에 있는 수십 억의 사람들 중에서 아담과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경전이 거의 모든 영혼에게 주어져 있어, 사람들은 경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영생의 상태와 기회와 가능성을 알 수 있게 됩니다.14

인간적인 연구를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을 그분의 종인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셨으며, 그들은 그분의 본질에 관해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 각자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진리에 대해 확인 받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신학적 논쟁의 폭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대 및 현대의 경전에서 유래되고, 영에 의해 확인된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에 관한 단순하고 확실한 지식을 갖고서 그 사나운 비바람의 한 가운데서도 평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식 속에 우리는 영생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15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59~61쪽에 있는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본다.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경전을 읽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경전 공부에 대한 개인적인 목표를 생각해 본다.

        61쪽 소주제에서 시작되는 단락을 살펴보면서, 경전이 없는 여러분의 삶을 상상해 본다.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경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결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소수의 좋아하는 성구만을 알고 있는 것으로는 왜 부족한가? (62쪽) 여러분 스스로 경전을 발견하고 또 “거듭해서 다시 재발견”하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킴볼 회장은 요시야 왕의 이야기를 우리 자신에게 비유하여 볼 것을 권유했다. (62~64쪽; 또한 열왕기하 22~23장 참조) 여러분의 삶, 그리고 요시야 왕과 그의 백성들의 삶들 사이에서 여러분은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을 볼 수 있는가?

        경전 공부를 통해 배운 “인생의 교훈” 몇 가지에 관해 생각해 본다.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64~66쪽 참조)

        66쪽에서 둘째 단락을 살펴본다. 여러분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되어 주고 마음속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성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66쪽에서 마지막 두 단락을 읽는다. 경전 공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가족들과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교회 부름을 통한 봉사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관련 성구: 아모스 8:11~12; 니파이전서 19:23; 앨마서 37:8; 교성 1:37; 18:33~36

1.       “Read the Scriptures”, Friend, 1985년 12월호, 앞표지 안쪽; 또한 “What I Read as a Boy”, Children’s Friend, 1943년 11월호, 508쪽 참조.

2.       Children’s Friend, 1943년 11월호, 508쪽.

3.       “The Power of the Book of Mormon in My Life”, Ensign, 1984년 10월호, 9쪽.

4.       “경전-얼마나 소중한 재산입니까!”, 성도의 벗, 1985년 12월호, 3~4쪽.

5.       성도의 벗, 1985년 12월호, 4~5쪽.

6.       “The Power of Books” (카밀라 이 킴볼과 함께 기록), Relief Society Magazine, 1963년 10월호, 729쪽.

7.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편 (1982년), 131, 132~133쪽.

8.       Relief Society Magazine, 1963년 10월호, 729쪽.

9.       성도의 벗, 1985년 12월호, 3쪽.

10.     “개종자의 교회”, 성도의 벗, 1976년 6월호, 1쪽.

11.     성도의 벗, 1985년 12월호, 5쪽.

1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35쪽.

13.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35쪽.

14.     Relief Society Magazine, 1963년 10월호, 730쪽.

15.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67쪽.

  7 

개인적인 간증

복음의 진실성에 관한 확실한 지식은 위대한 보상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도해 줍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1947년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아들 앤드류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는 전임 선교사로 봉사 중이었다. 앤드류는 이렇게 적었다. “어떤 한 사람에게 … 제가 그에게 말한 것이 참됨을 알고 있다고 말했으며, 성신이 그것을 증거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 그 일에 관해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습니다.” 걱정이 된 나머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느낍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등’과 같이 말하는 것 이상의 간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저는 조심스럽게 피해 왔습니다.”

킴볼 장로는 아들에게 이렇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내가 선교 사업 할 때에도 같은 경험을 했기에 네가 갖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자신에게는 물론 주님의 사업과 주님에 관해 정말 정직하고 싶었지. 한동안 내가 알고 있던 확실하고 분명한 어구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우려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표현했단다. 내가 영을 따르고 내 의무를 행할 때는 영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었지. 내가 정말로 느꼈던 것, 알고 있던 것을 정말 말하고 싶었지만 주저하게 되었단다. 분명한 말을 전하려고 할 때, 두렵기도 했지만, 내가 영과 온전히 조화를 이루고 또 영적인 영감을 받았을 때는 간증을 전하고 싶었지. 나는 내가 정직하다고, 매우 정직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결론을 당시에 내렸단다. …”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이 참됨을 알고 있다고 네가 구도자에게 간증한 그날, 주님은 성신의 권능을 통해 이 진리를 네게 나타내려 무척이나 애쓰셨을 게다. 네가 그 영에 따라 거룩한 사업인 복음을 옹호하는 동안 너는 그것을 깊이 느꼈을 테지만, ‘그 영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점검하고 자문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이미 했던 말을 너는 되돌리고 싶었을 게다 …”

“너의 간증에 대해 내 마음속에는 어떤 의문도 없단다. (내가 그랬듯이) 네가 몸 속 여기저기에 수없이 많은 간증의 황금 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을 모아다가 매우 정교하고 완벽히 디자인된 간증으로 무늬 진 양탄자를 짜내려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단다. 이제 아들아, 내 조언에 따라 영을 소멸시키지 말고, 영이 속삭일 때마다 그 거룩한 속삭임에 따르거라. 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그 속삭임을 잘 듣고 감동을 받을 때, 그 감동을 담대하게 말하거라. 주님께서 너의 간증을 몇 배나 크게 하시어 사람들의 마음에 영감을 주실 게다. 내 충고가 너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도움을 주려는 의도라는 것을 네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

“편지를 끝내기 전에 내 간증을 꼭 전하고 싶구나. 나는 이 사실, 즉 예수께서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시며, 우리와 함께 3,000명의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이 복음이 참된 선지자인 조셉 스미스를 통해 회복되어 계시되었고,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 그리고 내가 내 생을 ‘왕국을 전파’하는 데 바쳐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내 간증을 담대하게 [전해 왔으며] … 나는 그것을 거듭해서 재확인한단다. 아마도 너의 황금 실들이 완전한 무늬의 양탄자를 짜야 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나는 너의 간증이 늘 같다고 확신한단다. 네 마음의 느낌에 귀를 기울여 영이 네 생각을 다스리도록 할 때 그런 양탄자가 너의 선교 사업 기간 동안 빠르게 짜여질 게다.

“네 경험과 영감이라는 황금실로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길 바라고, 또 항상 권능을 키우고 계속해서 영원한 진리에 따라 생활하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1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각 사람은 간증, 즉 성신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오는 계시를 받을 수 있다.

구주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그의 형제들, 즉 다른 사도들을 대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주의 다음 말씀은 정말 의미심장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13~17)

누가 이 놀라운 진리를 그에게 계시했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계시를 통해서 하셨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요, 구속주요, 구주라는 기본적인 지식은 책이나 대학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성신의 역사하심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직접 그 진리를 얻었습니다. …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영혼은 베드로가 지녔던 것과 똑같은 계시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 계시는 간증, 즉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구속주라는 지식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확신을 지닐 수가 있으며, 그가 이 간증을 얻을 때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지, 연구만을 통해서 오지는 않습니다. 물론 연구가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연구뿐만 아니라 많은 기도와 노력이 있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야 계시가 찾아오게 됩니다.

예수께서 단지 훌륭한 철학자가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가 주장하는 바대로 참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가 주장하는 목적을 위해 참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알게 될 때, 즉 그것을 의심 없이 알고, 또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였으며,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신성한 교회임을 알게 될 때, 그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2

자신의 번뜩이는 생각에 관해 자랑을 하고, 자신들이 신비를 규명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논리나 정신 작용을 통해 영적인 것들을 밝히거나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오직 영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통해서 오며, 바로 그곳이 간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3

영적인 것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위대한 보상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도해 줍니다. 간증을 무시하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의 동굴 안에서 더듬으며 나갈 길을 찾는 것이며, 위험천만한 안개 낀 고속 도로 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대낮에 여전히 어둠 속에서 걷고 있고, 제거될 수 있는 장애물에 걸려 비틀거리며,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도 불안정과 회의론이라는 희미하게 흔들거리는 촛불 속에 거하는 그런 사람은 딱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영적인 지식은 동굴을 밝혀주는 밝은 빛입니다. 안개를 흩어버리는 바람과 태양입니다. 길에서 장애물을 치우는 동력 장치입니다.4

간증은 열렬한 노력을 통해 얻고 유지할 수 있다.

간증은 개인적인 계시, 곧 중요한 은사들 중의 하나이며, 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모든 영혼은 이를 향유할 수가 있습니다.5

다음 질문은 조셉 스미스가 표현한 이래 수백만 명이 물어온 훌륭한 질문입니다. 만일 참된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면, 모든 조직 중에서 어느 조직이 참되고, 신성하며, 주님이 인정하시는 조직인가를 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주님은 열쇠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필요한 절차는 이렇습니다. 연구하고, 상고하며, 기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계시가 열쇠입니다. 일단 여러분이 그분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겸손해지며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적 성장에 의한 모든 교만을 떨쳐 버리고, 혼란스러운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여러분의 독단을 통제하며, 성령의 가르침에 자신을 맡길 때, 여러분은 배우기 시작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6

우리는 인격체로서의 하나님 실재에 관해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는 분리된 개체이지만 그분과 같은 그리스도의 계속된 활동적인 삶, 조셉 스미스와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 이루어진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조직과 교리의 회복에 대한 신성함, 하나님에게서 온 계시를 통해 사람에게 전해진 권세가 담긴 신권의 권능에 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태양이 빛을 발한다는 지식처럼 분별력이 있는 모든 사람이라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학위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큰 노력을 통해 얻게 됩니다. 회개와 의식을 통해 깨끗하게 된 영혼은 그 지식을 바라고 얻기 위해 노력하고, 진지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며, 충실하게 기도한다면 그 지식을 받게 됩니다.7

구속주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교리]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7:16~17)

교리를 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입니다. 주님께서 값진 보상을 주시기는 하지만, 오직 어떤 조건들을 만족시켜야만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이 경우에 약속된 축복은 교리의 신성함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율법 곧 필요조건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 교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간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을 어중간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겠다는 철저한 노력이 그런 확신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회원들의 삶에서도 이런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제가 방문했던 스테이크에서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모든 간증 모임을 열심히 피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하는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말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모든 단계를 검증할 수 없다면 이런 교리들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그와 같은 다른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계명에 따라 철저하게 생활한 적이 없습니다. 십일조도 거의 내지 않거나 아예 내지 않으며, 모임에도 가끔씩 겨우 참석하고, 교리, 조직, 지도자들에 대해서 상당한 비판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이 간증을 지닐 수 없는 이유를 잘 압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나 주는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가 행할 때에는 내 말을 지킬 수밖에 없으나,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너희는 아무 약속도 받지 못하느니라.”(교성 82:10)

그런 사람들은 “그분이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며, 따라서 당연히 약속을 받지 못합니다. …

… 그것은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충실한 순종이며, 영적인 지식의 창고를 여는 열쇠를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자녀들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받아들이시고 축복하실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원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8

여러분은 여러분의 간증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머니들이 고기를 썰 때 쓰는 칼처럼 그 간증을 날카롭게 유지하시겠습니까? 무뎌지고 녹슬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 간증은 어느 정도 장미와 같은 면이 있습니다. 장미가 비에 맞지 않도록 놓아 두십시오. 아주 잠시 동안 물길이 닿지 못하게 해 보십시오. 그렇게 했을 때 장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장미는 죽습니다. 여러분의 간증도 죽게 됩니다. 여러분의 사랑도 죽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양육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세 번 먹어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간증을 유지하고, 여러분의 영을 살아 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영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 그분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과의 대화 통로가 열려 있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9

우리는 간증 모임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영을 지니기만 한다면 간증 모임은 한 달 중 [교회에서] 갖는 모임 중 가장 좋은 모임에 속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증 모임에서 지루함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어나 간증을 하고 그 모임이 한 달 중 가장 좋은 모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곳에 앉아서 문법적 오류를 세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을 비웃는다면, 지루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간증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은 교리와 성약 60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몇 사람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들이 … 그들의 입을 열려 하지 아니[함이라]” (교성 60:2) 그분의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분에게서 받았던 것을 잃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영을 잃게 됩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간증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닌 매우 귀중한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서 슬며시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들은 매달 성전에서 모든 총관리 역원들과 만납니다. 그들은 간증을 하고, 여러분 모두와 마찬가지로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합니다. 총관리 역원들에게 왜 간증 모임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에게 간증 모임이 필요한 것과 똑같은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간증을 하지 않고 석 달, 여섯 달, 아홉 달, 열두 달을 지내면서도 계속해서 간증의 충분한 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 간증은 놀라운 것이며, 정말 소중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목사나 사제라도 경전을 인용하고 말씀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제나 목사가 자신의 간증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금식 모임에 그냥 앉아서 여러분을 위한 축복을 잃어가면서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오늘은 간증하지 않을 거야. 내가 과거에 간증을 많이 나눴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줘야 해.” 여러분, 간증을 하십시오. 간증하는 데 일분이면 아주 충분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간증이 있습니다! 간증을 갖고 그 간증을 키우고 증대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간증을 할 때마다 그것은 더 강화됩니다.10

간증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말로 표현된다.

“저는 그것이 참됨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몇 마디 말을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수십억 번이나 해 왔다고 해서 그것이 진부해지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달리 나타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왜냐하면 “저는 알고 있습니다.”와 같은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와 같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깊은 느낌을 표현하는 말은 없습니다.11

선량한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독창성 없는 표현을 쓰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며 핵심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것들을 말함으로써 간증을 실제로 피하려고 합니다. 간증할 때 독창성이 없는 것에 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교회 회장이 간증을 할 때, “저는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신성한 대표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여러분 모두가 같은 내용을 전합니다. 그것이 간증입니다. 그것은 결코 낡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분께 자주 말하시기 바랍니다.

간증은 훈계가 아닙니다. 간증은 설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나머지 사람을 훈계하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행담이 아닙니다. 자신의 증거를 전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증에만 전념한다면 1분 동안, 또는 2분이나 4분 동안 아니면 주어진 시간 동안에 간증이라는 방법을 통해 전할 수 있는 내용은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업을 정말로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일을 할 때 행복합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교회 회원이라는 것이 기쁩니까?12

여러분이 마음으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그냥 말하십시오. 그것이 간증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의 간증은 끝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는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여러분의 육신의 모든 조직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십시오.13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과정에 따라 저는 오래지 않아 주님 앞에 서서 제가 한 말에 대해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소년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다는 저의 개인적이고 엄숙한 간증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몰몬경은 한때 이 서반구에 살았던 백성들의 고대 기록을 번역한 것임을 간증드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는 번성하고 강했으나, 하나님을 잊은 결과 참혹한 내란으로 대부분 멸망했습니다. 이 책은 인류의 구주요 구속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하는 본질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권세와 함께 아론 신권과 멜기세덱 신권이라는 두 거룩한 신권이 침례 요한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의해 이 지상에 회복되었음을, 또한 다른 열쇠들과 권세가 뒤이어 회복되었음을, 그렇게 신성하게 부여된 여러 권세와 권능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있음을 저는 간증드립니다. 이러한 것들에 관해 저는 제 음성이 들리는 곳에 계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숙하게 간증드립니다. 우리의 메시지에 유의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신앙과 이해력이 커지리라는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더 큰 화평을 지니게 될 것이며, 성신의 권능으로 이와 비슷한 간증과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14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가 간증을 무늬 양탄자에 비유했음에 유의하며 아들 앤드류에게 쓴 편지를 살펴본다.(69~70쪽) 어떤 경험과 느낌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간증의 황금 실”을 구성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간증의 황금실로 무늬 양탄자를 짜도록 돕기 위해 주님이 하신 일을 생각해 본다.

        부친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어떻게 앤드류 킴볼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부모들이 자녀들과 간증을 나눌 수 있는 기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는 젊은이들이 간증으로 이어지는 영적인 속삭임을 받고 인식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71~76쪽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간증을 얻고 강화시키는 우리의 노력을 서술하기 위해 킴볼 회장이 사용한 단어와 어구를 찾아본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간증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금식 및 간증 모임에 관한 킴볼 회장의 권고를 공부한다. (75~76쪽) 여러분은 이런 모임이 왜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간증을 나눌 때 우리의 간증이 더욱 강하게 자라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증 모임이 그 달에 있었던 모임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모임 중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간증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에 관한 킴볼 회장의 권고를 살펴본다. (76~77쪽) “저는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그렇게 큰 힘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관련 성구: 고린도전서 12:3; 베드로전서 3:15; 앨마서 5:45~46; 모로나이서 10:4~7; 교성 42:61; 62:3

1.       스펜서 더블류 킴볼이 아들 앤드류 이 킴볼에게 1947년에 보낸 편지: 앤드류 이 킴볼의 개인 소장 편지에서

2.       “President Kimball Speaks Out on Testimony”, New Era, 1981년 8월, 4쪽.

3.       H. Stephen Stoker 및 Joseph C. Muren, 편집, Testimony (1980년), 167~168쪽.

4.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14쪽.

5.       “The Significance of Miracles in the Church Today”, Instructor, 1959년 12월호, 396쪽.

6.       “절대적인 진리”, 성도의 벗, 1979년 7월호, 8쪽.

7.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13~14쪽.

8.       New Era, 1981년 8월호, 4, 6, 7쪽.

9.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141~142쪽.

10.     New Era, 1981년 8월호, 6~7쪽.

11.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41쪽.

12.     New Era, 1981년 8월호, 6쪽.

13.     Stoker 및 Muren, Testimony, 139쪽.

14.     Conference Report, 1980년 4월, 78쪽; 또는 성도의 벗, 1980년 11월호, 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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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 없는 봉사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을 헌신할 때, 우리는 더 큰 영성과 행복을 발견합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후기 성도들에게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축복해 주는 “작은 봉사 행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1 다음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스스로 그런 봉사의 기회를 자주 발견했다.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밤새도록 비행기를 탔던 한 젊은 어머니가 악천후로 인해 시카고 공항에서 음식이나 아이를 위한 깨끗한 옷과 돈도 없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 임신 중이었고 유산할 위험도 있어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지 말라는 주의를 의사에게서 받았었다. 그녀는 미시간 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 줄에서 저 줄로 옮겨가며 몇 시간을 계속해서 서 있었다. 공항 청사는 소란스러웠고, 지치고 실망하고, 기분이 언짢은 승객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줄이 줄어들 때마다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발로 미는 자신과 아이에 대해 흠을 잡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땀에 흠뻑 젖고, 배고프며, 지친 어린아이를 도와 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 관해 그 여인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웃으면서 “제가 뭐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 없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분은 흐느껴 울고 있는 우리 딸을 차가운 바닥에서 들어올려 사랑스럽게 꼭 안고는 아이의 등을 내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셨다. 그분은 아이에게 껌을 씹을 수 있는지를 물어 보셨다. 아이가 진정이 되자 그분은 아이를 안고는 내 앞에 줄을 서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내가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동의하는 것 같았고, 그런 다음 그분은 [줄 앞에 있던] 발권 창구로 가서 내가 곧 출발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담당자에게 조치를 취해 줄 것을 부탁하셨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벤치로 가서 내가 안정이 됐다고 생각될 때까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눠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갈 길을 가셨다. 약 일주일 후에 나는 스펜서 더블류 킴볼 사도의 사진을 보았고, 그가 바로 공항에서 만났던 그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2

여러 해 후에 킴볼 회장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사랑하는 킴볼 회장님께,”

“저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서독 뮌헨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얼마 전에 귀환했습니다. 참으로 값진 선교 사업이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저는 지난 주 신권 모임에 참석하여 회장님께서 약 21년 전 시카고 공항에서 베푸신 친절한 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회장님께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 데리고 … 힘든 처지에서 표를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임신한 젊은 여성을 만났던 상황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녀는 유산의 위험이 있었으며, 따라서 딸아이를 안아 올려 달래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네 번이나 유산을 했었고, 이런 사실은 몸을 구부리거나 무엇을 들어 올리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회장님이 우는 아이를 달래 주시고 줄에 서 있던 다른 승객들에게 난처한 상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행위는 제 어머니가 부담과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몇 달 뒤에 미시간 주 플린트에서 태어났습니다.”

“회장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회장님의 모범에 감사 드립니다!”3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우리는 이기심 없는 봉사에 관한 구주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 그분은 옳은 일을 행하는 것과 그분이 봉사하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참된 필요사항을 충족시키는 것에 관해 늘 알고 계셨습니다.4

그분은 자신과 자신의 필요사항을 뒤로 제쳐 놓고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있는 문제들 중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이 이기심과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생겨나며,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생에서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가혹한 요구 사항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5

우리가 나사렛 예수의 생애 가운데 겟세마네와 갈보리에서 실제로 어떠한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많이 알면 알게 될수록 우리 삶에서의 희생과 비이기심의 중요성을 더욱 더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6

만일 [구주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신앙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 관한 그분의 관점을 공유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염려와 다른 사람들의 위협을 느끼기보다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7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작은 봉사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신다.

우리는 우리의 봉사를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필요 사항에 대해 염려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또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보통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의 필요사항을 충족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왕국에서 서로 봉사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교회 회원들은 믿는 자들의 공동체, 즉 제자들이 함께 모인 이 공동체에서 힘과 도움, 그리고 지도력을 필요로 합니다. 교리와 성약에서 우리는 “… 약한 자를 [돕고]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며, 연약한 무릎을 강건하게”(교성 81:5)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읽게 됩니다. 우리의 봉사 행위는 보통 간단한 격려나 평범한 일에서 평범한 도움을 주는 것들로 이루어지지만, 이 평범한 행위와 작고 사려 깊은 행동에서 나오는 결과는 얼마나 크고 영광스럽습니까! …

우리가 봉사의 간단한 원리와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면, 조직상의 경계는 곧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너무나 자주 교회에 있는 조직상의 경계가 벽이 되어 우리가 다가가야 했던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조직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받게 되는 인정에 신경을 덜 쓰게 되면 우리가 손길을 뻗쳐야 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려고 더욱 더 신경을 쓰게 되리라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조직상에서 우리의 위치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나 딸로서 우리의 참되고 근본적인 정체성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8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교회의 공식적인 임무 지명에 바쁜 나머지 이웃을 위해 조용히 행하는 기독교인다운 봉사를 할 여유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9

우리가 오래된 기존 프로그램에 맞춰 생활하고, 해야 할 일들을 행하고, 특정 시간 동안 일하고, 여러 차례 노래하고 기도하기는 쉽지만, 모든 일에서 명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게으른 종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교성 58:26 참조]10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사람은 모름지기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자유의사로 많은 일을 행해야 하며 많은 의를 이룩해야 하느니라.” (교성 58:27)

모든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받았으며, 특정 한도 내에서 그런 능력을 발전시키고, 독창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 그리고 소질을 가능한 한 최대로 발전시켜서, 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해야 합니다.11

일을 남에게 맡기는 태도를 지닌 교회 회원은 변명할 기회가 많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제 아내는 교회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봉사하며 자신의 의무를 노력 없이 수행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전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과 시간뿐 아니라, 그분을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하고 발전시켜야 할 잠재적인 능력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 즉 많은 특권을 지닌 그분의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다.12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 나무에 관한 기사에서 (마태복음 21:19 참조) 수확을 내지 못하던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포도나무가 자라지 않고,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영혼이 봉사를 통해 발전하지 않는다면 개인과 인류에게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 사람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저 발전을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 삶이라는 무덤에 우리의 재능을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위해 그것을 활용해야 합니다.13

어떤 논평자들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와 같은 그런 단순한 것들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한 이점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이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참으로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고, 또 중요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며 여러분의 시간과 재능 및 소중한 것을 쏟을 대의를 선정할 때, 주의 깊게 좋은 대의를 선정하라는 권고를 여러분께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충분히, 값없이 줄 수 있는, 그리고 여러분과 여러분이 봉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큰 기쁨과 행복을 만들어 주게 될 이런 대의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때로는 더 멋져 보일 수도 있고 세상의 갈채를 얻을 수도 있는 대의들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본질적으로 더 이기적인 것들입니다. 후자의 대의들은 하나님의 계명이라기보다는 경전에서 “사람의 계명”[마태복음 15:9] 이라고 불리는 것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대업들에는 얼마간의 미덕과 유용성이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가운데 자라나는 그런 대의들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14

청소년들은 의미 있는 봉사를 할 기회를 통해 발전할 것이다.

우리는 이웃에게 봉사하거나 왕국을 위해 희생하라고 청소년들에게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청소년에게는 본질적으로 이상주의적 감정이 있으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봉사하라고 요청할 때 그 이상주의에 호소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15

청소년의 비행과 범죄에 관해 읽을 때, … 그리고 많은 것들이 소년 소녀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우리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치료법인가 하고 자문해 봅니다. 충분한 조사를 통해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책임을 원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청소년들은] 묻습니다. …

물건을 사고, 병원에서 일하고, 이웃을 도우십시오. …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바느질을 배우십시오.

좋은 책을 읽고, 가구를 수리하고, 가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집을 청소하고, 옷을 다림질하고, 낙엽을 긁어 모으고, 눈을 치우십시오.16

우리는 청남들이 봉사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발전시킬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 관심이 있습니다. 청남들이 교회에서 수동적으로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는 그들이 해야 할 여러 중요한 일들을 지명받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실제로 목격한 청남은 그 왕국에서의 자신의 의무를 행하지 않고 떠나거나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17

저는 우리 교회의 청녀들이 그들의 삶에서 일찍이 기독교인다운 봉사의 습관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교회의 자매들이 친구들과 이웃을 위해 눈에 띄지 않는 봉사에 “열심히 노력” [교성 58:27] 할 것을 권장합니다. 복음의 모든 원리에는 그것이 참되다는 그 나름대로의 증거가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 봉사를 받는 사람들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도 강하게 된다는 원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18

이기심 없는 봉사의 실천은 풍성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는 우리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기간인 이 생을 깊이 있게 만들어 주고 달콤하게 해 줍니다. 봉사함으로써 우리는 봉사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한 봉사에 참여할 때, 우리의 행위는 이웃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를 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 자신에 대해 걱정할 시간은 더 적어집니다. 봉사의 기적 속에는 우리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신을 찾으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9 참조]

우리의 삶에서 신성한 인도를 인정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영혼에 깃들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더 의미깊은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지기에 참으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더 쉬워집니다. …

…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풍성한 삶은[요한복음 10:10 참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를 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우리의 재능을 투자함으로써 갖게 되는 영적인 결실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예수께서는 첫째 되는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며, 그 두 계명에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에 대한, 우리 이웃에 대한,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2:36~40 참조] 이 두 가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은 삶의 진정한 풍요로움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방식이 하나님 아버지와 이웃에게 우리를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엄청난 공허함이 깃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가족과 친구들과 동료들을 뒤로한 채 부주의하게 쾌락이나 물질주의를 추구하게 하는지를 보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리라고 잘못 생각한 것들을 우선시한 나머지 가족,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은 너무나도 자주 등한시하게 되는데, 사실상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미심쩍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이기심을 챙기기 위한 것입니다. 참된 기쁨과 단순한 쾌락 사이의 차이점들 가운데 하나는 일부 쾌락은 어느 누군가의 고통의 대가를 통해서만 얻게 되지만, 그와는 달리 기쁨은 비이기심과 봉사에서 생겨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19

한 세기 중 75년 간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자신에 관해서만 생각해 왔던 어느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 그는 혼자 힘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자신의 발전과 즐거움을 위해 인생의 좋은 모든 것들을 모으려 애써 왔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혼자 힘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 노력하면서 … 그는 움츠러들었고, 친구들을 잃어버렸으며, 마치 귀찮은 사람처럼 가족들도 그를 피했습니다.

삶이 점점 끝나가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이 외롭고, 버림받았으며, 비통하고, 사랑 받지 못하고, 칭송 받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여전히 자기 연민에 빠져 오직 한 사람, 즉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자신의 시간, 재능, 재산을 간직하려 애써 왔습니다. 그는 풍요로운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다른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소망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웃을 위해 하는 어떤 일, 어떤 희생도 그에게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으로 육체적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의 아픔을 낫게 하였고 그의 친절한 행동과 배려는 위안과 격려와 용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 곳에서 그는 낙담한 사람을 북돋아 주고, 죽은 이를 묻어 주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필요한 시기에 자신이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 재산, 에너지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자신을 아낌없이 주어 온 그는 이 같은 행동으로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도덕적 높이를 더하여 이윽고 노년기에 들어선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 모범이 되고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환영과 사랑과 감사를 받을 만큼 발전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주었으며, 진정한 방법으로 풍성한 삶을 확실하게 발견했습니다.20

상황에 따라 세상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 사이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날 때, 교회 회원들의 신앙은 더 심하게 시험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봉사를 통해서 우리의 간증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봉사를 통해 얻은 결과로 우리는 영적인 성장, 더 큰 결심, 그리고 계명을 지키려는 더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영성에는 큰 보호가 깃들 것이며, 우리는 그 영성을 봉사 없이 지닐 수는 없습니다! 21

우리가 참된 행복을 추구한다면, 자신의 유익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우리의 힘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가족, 이웃, 교회 회원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이며 사랑이 넘치는 봉사를 할 수 있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 봅시다.22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79~81쪽에 있는 이야기를 살펴본다. 킴볼 회장의 단순하지만 친절한 행동의 결과를 생각해 본다. 그가 봉사한 방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구주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한 방법을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81쪽을 참조) 그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82쪽에 있는 둘째 단락을 읽는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여러분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셨는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킬 준비를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82~84쪽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기심 없는 봉사를 방해할 수 있는 장애물을 찾아본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가?

        킴볼 회장은 청소년들에게 봉사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84~85쪽) 왜 그런가? 부모와 교회 지도자들은 봉사하는 뜻 깊은 기회를 청소년에게 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85~87쪽 참조) 이기심 없는 봉사가 왜 풍성한 삶으로 이어지는가?

관련 성구: 마태복음 25:40; 야고보서 1:27; 모사이야서 2:17; 4:14~16; 교성 88:123

1.       “작은 봉사 행위”, 성도의 벗, 1976년 12월호, 1쪽.

2.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Spencer W. Kimball (1977년), 334쪽.

3.       고든 비 힝클리,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성도의 벗, 1992년 12월호, 6쪽.

4.       지역 대표 세미나, 1979년 3월 30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3쪽.

5.       “예수님: 완전한 지도자”, 성도의 벗, 1983년 8월호, 9쪽.

6.       “풍성한 삶”, 성도의 벗, 1979년 6월호, 5쪽.

7.       Ensign, 1978년 7월호, 5~6쪽.

8.       성도의 벗, 1976년 12월호, 1~2쪽.

9.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71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45쪽.

10.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257쪽.

11.     “How to Evaluate Your Performance”, Improvement Era, 1969년 10월, 16쪽.

12.     용서가 낳는 기적(1969년), 97쪽.

13.     “President Kimball Speaks Out on Service to Others”, New Era, 1981년 3월호, 49쪽.

14.     Ensign, 1978년 7월호, 4, 5쪽.

15.     “킴볼 회장님께서 선교사가 되라고 전하심”, 성도의 벗, 1982년 2월호, 48~49쪽.

16.     Conference Report, 1963년 10월, 38~39쪽; 또는 Improvement Era, 1963년 12월호, 1073쪽.

17.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68~69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43쪽.

18.     “여성의 특권과 책임”,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49쪽.

19.     성도의 벗, 1979년 6월호, 3~4쪽.

20.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250~251쪽.

21.     성도의 벗, 1976년 12월호, 1쪽.

22.     “Seek Learning, Even by Study and Also by Faith”, Ensign, 1983년 9월호,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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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용서함

주님은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받고 또 평화와 기쁨을 얻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용서를 구하는 것에 관해 가르칠 때,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또한 강조했다. 용서의 정신을 키우기 우해 노력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간청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들려주었다.

“저는 … 어느 작은 와드에서 있었던 지역 사회 문제로 무척 고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도자였던 그곳의 두 유력 인사가 서로 오랫동안 계속해서 반목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있던 어떤 오해와 증오심으로 그들은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여러 날, 여러 주, 여러 달이 지나면서 그 간격은 더 넓어졌습니다. 서로를 반대하던 양편의 가족들은 쟁점 사항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고 결국은 와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소문이 퍼지고 차이점들이 알려지고 험담이 불과 같이 번지더니 작은 지역사회가 바다의 깊은 만처럼 나뉘어졌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 저는 일요일 저녁 6시경, 사람들이 좌절감에 잠겨 있는 지역에 도착해서 즉시 다툼의 당사자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애원하고 경고하고 빌고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각 상대방은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자신의 태도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정당화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어느덧 자정이 이미 지났으며, 절망이 그곳에 가득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분위기는 여전히 사납고 뒤숭숭했습니다. 완고한 저항이 물러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별 뜻 없이 교리와 성약을 다시 펼쳤는데 바로 그 구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여러 차례 그 구절을 읽었지만 그 당시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그것이 해답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호소요 애원이자 경고였으며,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64편] 7절부터 읽어 나갔으나, 9절에 이르기까지 다툼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저는 그들이 뒤로 물러서, 움찔하고 의아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옳을 수 있을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마땅히 서로 용서해야 하느니라.’”

“이것은 하나의 의무였습니다. 그들도 그것을 전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기도문을 반복하면서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구절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 이는 자기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 주지 아니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정죄 받음이니 …’”

“그들은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글쎄 그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 그가 먼저 움직여야 해.’ 그때에 구절의 마지막 문구가 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더 큰 죄가 그에게 머물러 있음이니라.’

“뭐라고? 그것은 상대방이 계속 싸늘하고 무관심하고 비열하더라도 나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인가? 틀림없는 말이었습니다.”

“용서를 구하기 전에 위반자가 먼저 사과하고 스스로 티끌처럼 낮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흔히 볼 수 있는 실수입니다. 틀림없이 손해를 끼친 사람은 완전하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지만, 손해를 입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태도에 관계없이 위반자를 용서해야 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상대방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것을 보고서 만족을 느끼지만, 그것은 복음의 방법이 아닙니다.”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청하고, 잠시 동안 깊이 생각하더니, 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읽어 주었던 다른 모든 구절과 그 성구로 그들은 겸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벽 두 시가 되었을 때 원수 지간이었던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고, 미소를 짓고, 용서하고 또 용서를 구했습니다. 두 사람은 의미 있는 포옹을 했습니다.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래된 노여움이 용서되고 잊혀졌으며, 원수가 다시 친구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차이점이 다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해묵은 잘못의 해골이 땅 속에 묻히고, 그 마른 뼈들이 있던 벽장은 자물쇠로 잠기고 그 열쇠가 멀리 던져지듯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1

성역 기간 내내 킴볼 회장은 교회 회원들에게 용서하는 것에 관해 이렇게 권고했다. “오해가 있다면 그것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용서하고 잊고, 오래된 불평이 여러분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주어 여러분의 사랑과 삶을 파괴하지 않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집에 질서를 세우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능력을 주실 때,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과 친구, 여러분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한다

용서가 영생을 얻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히 “어떻게 내가 그런 용서를 충만히 받을 수 있을까?”라고 깊이 생각합니다. 많은 기본적인 요인들 가운데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 받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실천하기 어렵습니까? 물론 어렵습니다. 주님은 결코 쉬운 길이나, 단순한 복음이나, 낮은 표준이나, 낮은 기준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가는 크지만, 그 때문에 얻게 되는 유익은 모든 것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은 친히 다른 뺨을 돌려 대셨습니다. 주님은 항의도 않고 친히 모욕을 당하고 매맞으셨습니다. 그분은 온갖 경멸을 당하셨으나 한 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제3니파이 27:27)4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완전해야 한다.

용서하라는 명령과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따르는 정죄가 그 어느 곳에서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받은 현대의 계시에서 더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옛날의 나의 제자들이 서로 대적할 기회를 찾으며, 마음에 서로 용서하지 아니하더니, 이 악으로 인해 그들이 고난을 겪고 심히 징계를 받았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마땅히 서로 용서해야 하느니라. 이는 자기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 주지 아니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정죄 받음이니, 더 큰 죄가 그에게 머물러 있음이니라.”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려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 (교성 64:8~10) …

그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화해를 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용서한다고 말하지만, 계속해서 적의를 품고, 계속해서 상대방을 의심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진심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화해가 성립되고, 회개가 요구될 때, 각자는 서로 용서하고 잊어야 하며, 무너졌던 관계를 즉시 복구하고, 과거에 있었던 화목함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제자들도 분명히 용서한다는 말을 표현하였고 또한 표면적으로 요구되는 변화를 취했으나 “마음에서는 서로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용서가 아니라, 위선과 속임수와 핑계의 한 형태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도에 함축되어 있듯이,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과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2 참조; 또한 14~15절 참조] 용서는 잊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지부에서 한 자매는 화해 과정을 “거치고” 그러한 마음 가짐을 보여주는 말과 행동를 했으며, 또한 자신의 입으로 용서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눈을 부릅뜨고는 “용서는 하겠지만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결코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가식적인 변화는 가치 없고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비통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정에 찬 그녀의 말은 거미줄과 같은 함정이었고, 다시 쌓은 관계는 밀짚처럼 약했으며,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점은 그녀가 “주 앞에서 정죄 받을” 위치에 있었다는 것과, 그녀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주장했던 사람보다 그녀 자신에게 더 큰 죄가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적개심을 품고 있던 이 여성은 자기가 전혀 용서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러는 척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헛걸음만 하고 어느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성구에서 ‘마음에’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느낌과 생각과 비통함을 정화함으로써만 찾아옵니다. 말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보라, 사람이 악하면서 예물을 드리면, 마지못하여 그렇게 함이라. 그리하여 마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한 것처럼 그에게 여겨지나니, 그런즉 그는 하나님 앞에 악한 것으로 여김을 받느니라.” (모로나이서 7:8)

헨리 와드 비처는 그러한 생각을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용서할 수 있으나 잊을 수는 없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다.”

저는 자기 형제의 죄를 온 마음을 다해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성찬을 취하기에 합당치 않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5

우리는 판단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

올바른 길에 거하기 위해 우리는 용서해야 하며, 적대자가 회개를 하는가, 그들의 변화가 얼마나 진지한가, 그가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는가에 관계없이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주님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 너희는 마땅히 마음속으로 이르기를-하나님께서는 나와 그대 사이를 판단하사 그대의 행위에 따라 그대에게 갚으실지로다 라고 하여야 하느니라.” (교성 64:11) 그러나 인간은 주님께서 너무도 자비로우셔서 적절한 수준보다 덜 엄격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판단을 주님께 기꺼이 맡기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6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범법을 용서하지 못하여 잊지못하거나 또는 잊으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법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추적하는 극단적인 행동마저 취합니다. 저는 자신들의 손에 정의의 칼을 들고서 범법자가 처벌되는 것을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에게서 많은 편지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파문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처벌받지 않으면 저는 결코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어느 한 여인이 호소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교회 회원으로 있는 한 저는 결코 안심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예배당에 들어오도록 허용되는 한 저는 결코 예배당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회원 자격에 대한 재판을 원합니다.”라고 말하기도 있었습니다. 어떤 한 형제는 여러 번에 걸쳐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와서는 교회 율법을 어겼다고 그가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 즉결 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감독과 스테이크 회장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여러 통의 긴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율법을 자기 손으로 시행하려는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 더 큰 죄가 그에게 머물러 있음이니라.”(교성 64:9)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단호한 선언을 읽어드립니다. 그 계시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또 너희는 마땅히 마음속으로 이르기를-하나님께서는 나와 그대 사이를 판단하사 그대의 행위에 따라 그대에게 갚으실지로다 라고 하여야 하느니라.” (교성 64:11) 알려진 범법 행위가 교회의 적절한 신권 역원에게 정식으로 보고가 되었을 때, 개인은 그 사건에 대한 관여를 멈추고 그 책임을 교회 역원에게 맡겨도 좋을 것입니다. 만일 그 역원이 자신의 위치에서 죄를 너그럽게 보아 준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두려운 책임일 것이며, 그들은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7

주님은 우리가 사용했던 헤아림과 똑같은 헤아림으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혹하다면, 가혹함 이외의 다른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해를 미친 사람에게 자비롭다면, 그분도 실수를 범하는 우리에게 자비로우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가 우리 죄 가운데 빠져 있도록 놓아두실 것입니다.

경전은 사람이 이웃에게 주었던 똑같은 헤아림으로 그가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으나, 정식으로 허가된 판단을 내리는 일은 평회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 및 정부에 있는 해당 역원과 관리에게 속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에 판단하실 것입니다. …

주님은 사람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실 수 있는데, 이는 주님은 그들의 마음의 의도까지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이 행하는 것을 보지만, 그들이 생각하거나 의도하는 것은 분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설령 사람들의 행동 뒤에 있는 의미와 동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우리 자신의 해석에 반영하더라도 종종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8

용서하는 것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용서의 정신과 관련해서 어느 훌륭한 형제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요,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만, 그 일을 어떻게 하지요? 정말 비범한 사람이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범한 사람이 되라는 명을 받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우리는 신이 되는 초기단계에 있으며 주님은 우리에게 온전함을 요구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해친 사람을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인간 이상의 존재이셨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성한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훌륭한 형제처럼 용서하는 정신은 … 경전이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전유물이며, 오늘날 세상에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론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9

저는 남편과 사별한 한 젊은 어머니를 알고 있습니다. 그 가족은 빈곤한 처지에서 살아왔으며, 보험 증서는 겨우 2,000달러짜리였지만, 이것은 하늘에서 온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보험 회사는 사망 증명서가 제출되자 곧 그 금액에 대한 수표를 즉시 전달했습니다. 젊은 미망인은 긴급한 때에 대비해서 그 돈을 저축해 두어야겠다고 결론짓고는 은행에 예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저축한 것을 알았고, 한 친척이 높은 이자를 줄테니 2,000달러를 빌려달라고 그녀를 강하게 설득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으나 그녀는 원금은 물론 이자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돈을 빌려 간 사람이 자신을 피하고 있고, 돈에 관해 물으면 회피하려고 또 다른 약속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장 그녀는 돈이 필요했지만 돈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찌나 미운지요!”라고 그녀가 제게 말했고, 그녀의 음성은 증오와 비탄감으로 가득 찼으며 그녀의 짙은 눈은 번쩍거렸습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젊은 미망인을 건장한 남자가 사기쳤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정말 싫었습니다!”라고 그녀가 거듭 반복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떤 사람이 자기 부친의 살인자를 용서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들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깊이 감동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가 속삭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역시 용서해야겠습니다. 이제는 그 비탄감에서 제 마음을 깨끗이 씻어 버리겠습니다. 돈을 받겠다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고, 제게 잘못한 그 사람을 주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몇 주 후에 그녀는 다시 저를 만났고 그간의 몇 주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그녀가 단 일 달러조차도 되돌려받지 못했지만, 새로운 평화가 그녀에게 임했고 그녀는 잘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10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때, 우리는 미움과 비탄감에서 자유롭게 된다.

주님은 왜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돌려주라고 당부하십니까? 그렇게 하여 여러분이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특히 그가 멀리 떠나 여러분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 증오심과 쓰라림은 여러분의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천천히 파괴해 갈 것입니다. …

베드로는 그에게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

… 그들이 회개하고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때, 우리 대부분은 용서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설령 그들이 회개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 용서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

동시에 앙갚음이나 복수 없이도 우리는 여전히 용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도 필요한 때에 우리에게 그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비통함은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 해를 미칩니다. 그것은 경직되게 하고 위축시키며, 마음을 서서히 좀먹어 갑니다.11

잘못은 사람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말하거나 행한 어떤 것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해하게 됩니다. 피해자는 그 잘못을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도 있는 또 다른 것을 그 잘못에 더하면서 자신의 결론을 정당화시킵니다. 피해자가 평화를 제의해야 한다고 주님께서 요구하신 이유 중의 하나가 아마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네 형제 또는 자매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 그 형제 또는 자매를 그 형제 또는 자매와 네 사이에서만 따로 만날 것이요, 그 형제 또는 자매가 고백하면, 너는 화해할지니라.” (교성 42:88) …

우리는 그 명령에 따릅니까, 아니면 비통함 속에서 뾰로퉁하며 죄를 범한 사람이 그것을 깨닫고 뉘우치면서 우리에게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기다립니까?12

우리는 부모님이나, 교사나, 감독에게 화가 날 수도 있고, 또 비통함과 증오의 독과 독약으로 위축되고 움츠러들면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축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미움을 받는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의 고통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게 됩니다. …

… 그저 지도자들을 괴롭히거나 상처 받은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교회에서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13

오늘날 너무나 자주 나타나는 증오, 비탄감 및 복수의 불협화음 속에서, 용서라는 부드러운 단어는 치유의 향유처럼 다가옵니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그 효과는 아주 클 것입니다.14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때 우리는 기쁨과 평화를 축복으로 받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영감을 받은 바울은 이해와 용서가 요구되는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 만일 서로를 용서하는 이러한 관대하고 따뜻한 배려심이 모든 가정에 깃든다면, 그토록 많은 가정과 가족을 와해시킨 이기심과 불신 그리고 비탄감이 사라질 것이며, 사람들은 화평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15

용서는 가정이나 와드에 조화와 사랑을 보증해 주는 신기한 힘을 지닌 요소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다툼이 생깁니다. 이해와 용서가 없으면 불화가 생기고, 화합의 정신이 부족하게 되며, 이것은 가정에서, 지부에서 그리고 와드에서 불성실을 낳게 됩니다. 반면에 용서는 복음의 정신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고 싶다면,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정신입니다.16

교만은 빈번하게 우리의 길에 방해가 되고,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은 “나의 교만이 나의 평화보다 더 중요한가?”라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너무도 빈번하게, 인생에서 화려한 일들을 많이 행하고 탁월한 기여를 한 사람이 교만으로 인하여, 그가 그렇지 않았으면 받을 수 있었던 풍성한 보상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리가 행한 것처럼[누가복음 18:9~14 참조] 용서하는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항상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서, 진정한 마음으로 겸손해지도록 노력하고, 또한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을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17

필멸성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해와 기분 상함, 예민한 느낌들에 대한 상처가 존재하게 됩니다. 최선의 동기가 종종 오해를 받습니다. 그들의 영혼의 위대함 속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곧게 바로잡고, 교만을 버리고,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느꼈던 것들을 용서했던 여러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절망적인 비참함 속에서 위험하고, 외로운 가시밭 길을 걷다가 결국에는 징계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인정하고, 마음의 비탄감을 깨끗이 지우고, 평화, 즉 그것이 없을 때 더욱 눈에 띄는 평화를 갈망하며 다시 찾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비판, 비탄감, 그에 따른 반목으로 인한 좌절은 따뜻함과 빛과 평화로 바뀌게 됩니다.18

그것은 가능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죄를 범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이 세상에서 평화를 얻고, 다가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 전진해 나갈 수 있습니다.19

우리가 의견 차이를 해결할 때 솔선해서 평화를 구한다면,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용서하고 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지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죄와 비탄감과 죄책감에서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전에 실제하는 또는 했으리라 추측되는 다른 사람의 모든 허물을 용서한다면, 우리가 채무자를 압박하기 전에 크든 적든 자신의 모든 부채를 갚는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확대하기 전에 눈을 멀게 하는 들보가 있는 자신의 눈을 깨끗이 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멋진 곳이 되겠습니까! 이혼은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며, 일상 일처럼 되어 버린 슬픈 사건들이 법원에서 사라질 것이며, 가족 생활은 천국과 같아질 것입니다. 왕국의 건설이 가속화되어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빌립보서 4:7 참조]은 거의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고린도전서 2:9 참조] 기쁨과 행복을 우리 모두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20

주님이 우리 모두를 축복하셔서 가장 충실한 사람들에게 예비된 승영의 영광을 얻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며 우리 스스로 완전하게 될 때까지 회개와 용서의 참된 정신을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21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89~91쪽에 있는 이야기를 살펴본다. 사람들이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 때때로 왜 그렇게 어려운가? “더 큰 죄가 그에게 머물러 있음이니라.” (교성 64:9)라는 말씀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킴볼 회장이 92쪽에서 인용한 마태복음 6장 14~15절을 살펴본다.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용서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며 완전한 것이라는 점을 나타내는 태도와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92~94쪽 참조) 용서가 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 되어야 하는가?

        94쪽에서 시작되는 소주제의 내용을 살펴본다. 우리가 판단을 기꺼이 주님께 맡기는 데에 어떤 복음의 가르침이 도움이 될 수 있는가?

        96~97쪽에 있는 젊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에 용서하는 것을 가로막았던 것과 결국 그녀로 하여금 용서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을 찾아본다. 어떻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과 노력을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는가?

        용서를 거부하는 것의 결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97~98쪽 참조)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서 어떤 축복을 경험했는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여러 관계에서 용서의 정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관련 성구: 마태복음 5:43~48; 누가복음 6:36~38; 골로새서 3:12~15; 교성 82:23

1.       용서가 낳는 기적(1969년), 254~256쪽.

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편 (1982년), 243쪽.

3.       용서가 낳는 기적, 237쪽.

4.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71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71쪽.

5.       용서가 낳는 기적, 238~239쪽.

6.       용서가 낳는 기적, 256쪽.

7.       용서가 낳는 기적, 240쪽.

8.       용서가 낳는 기적, 242~243쪽.

9.       용서가 낳는 기적, 259쪽.

10.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68~69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68쪽. 또한 용서가 낳는 기적, 265~266쪽 참조.

11.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191, 192쪽.

12.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4, 195쪽.

13.     “자신을 속인다는 것”, 성도의 벗, 1973년 1월호, 12~13쪽.

14.     용서가 낳는 기적, 241쪽.

15.     용서가 낳는 기적, 269쪽.

16.     용서가 낳는 기적, 249쪽.

17.     용서가 낳는 기적, 269쪽.

18.     Conference Report, 1955년 4월, 98쪽.

19.     용서가 낳는 기적, 271쪽.

20.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5~196쪽.

21.     Conference Report, 1949년 10월, 134쪽.

  10 

악한 영향력에 맞서 자신을 강화시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시대의 악에 대항하는 힘과 보호를 약속해 줍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사탄과 그의 힘에 대항하는 싸움에 관해 이렇게 가르쳤다. “이것은 나약한 의지력의 적대자와 치르는 작은 전투가 아니라, 너무도 강력하고, 참호 속에 몸을 숨기고 있으며, 강하고 잘 훈련되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정복당할 만큼 잘 조직된 적과 싸우는 엄청난 전투입니다.”1

센트럴 스테이츠 선교부에서 봉사하던 젊은 선교사로서 그는 유혹을 견뎌내겠다는 자신의 결의를 잘 나타내 주는 한 가지 경험을 일기에 기록했다. 그가 기차를 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로 여행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외설적인 사진이 있는 저속한 책을 내게 읽게 하려고 애썼다. 나는 그 책에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시카고에서 자신과 함께 가자고 나를 유혹했는데, 나는 그가 나를 지옥으로 이끌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말문을 막았지만, 그가 떠난 이후에 나는 한 시간 동안이나 당황스러웠다. ‘아! 사탄이 그의 추종자들을 통해서 젊은이들을 잘못 이끌려고 얼마나 열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이겨낼 힘을 갖고 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렸다.”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사탄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우리를 멸하려 노력한다.

궤변과 오류 속에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비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 아래서 사탄은 신화의 존재처럼 여겨져 계몽이 덜 된 시대에는 사람들을 올바르게 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지만, 교육을 받은 이 시대에는 시대에 뒤진 개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거짓입니다. 사탄은 필멸의 육신은 갖고 있지 않지만 정말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영적 존재입니다. 우리를 자기의 수하로 확실하게 만들려는 그의 사악한 소망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왕국으로 이끌려는 그분의 의로운 소망 만큼이나 열렬합니다.3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온갖 형태를 취하는 그러한 위험을 인식할 수 있다면 보호를 받게 됩니다. 악마는 방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속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모든 경솔한 사람, 부주의한 사람, 거역하는 사람들을 그의 제물이라고 삼으려고 합니다.4

누가, 언제 악마의 특별한 주목을 받는가에 상관없이, 악마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처럼 비참하게”(니파이후서 2:27)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참으로 그는 “온 인류를 비참하게”(니파이후서 2:18) 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고, 현명하고, 집요하게 그 목적을 추구합니다.5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그리고 구주께서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택하신 이들조차도 루시퍼에 의해 속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셉 스미스-마태 1:22 참조] [루시퍼는] 그의 논리를 사용하여 혼돈시키고, 그의 합리화를 사용하여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는 의미를 흐리게 하고, 한 번에 조금씩 문을 열어, 가장 깨끗한 하얀 색에서 회색을 거쳐 가장 진한 검정색까지 이끌어 갈 것입니다.6

가장 큰 사기꾼은 사용할 수 있는 온갖 도구, 온갖 장치를 활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려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 창조된 모든 것을 속이고, 왜곡하고, 바꾸고, 위장시킵니다. … 따라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여서 그들의 육신을 타락시키고 자신의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결코 잠자지 않고, 부지런하며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는 문제를 주의 깊게 분석한 다음에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부지런히, 조직적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그는 사람을 다른 곳으로 이끌기 위해서 모든 오감과 인간의 본능적인 굶주림과 갈증을 이용합니다. 저항이 생기리라 예상하고는 그에 대비해 자신을 강화시킵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과 여가 활동을 이용합니다. 그는 한결같고 설득력이 있으며 능숙합니다. 그는 왜곡하고 해를 주기 위해 라디오, 텔레비전, 인쇄물, 비행기, 자동차와 같은 유용한 것들을 이용합니다. 그는 인간을 옳은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의 사교성, 외로움, 모든 필요 사항을 이용합니다. 그는 가장 적절한 시간에 가장 인상 깊은 장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활용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합니다. 그는 속이고 왜곡하고 타락시킬 만한 어떤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는 금전, 권력, 힘을 이용합니다. 그는 사람을 유혹하고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합니다. 그는 좋은 것을 취해 추한 것을 만듭니다. … 사람을 파멸시키려고 교수법의 온갖 기술을 이용합니다.7

적은 교묘하고 교활합니다. 그는 선한 남녀에게 곧바로 중대한 악행을 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그를 따르게 될 미래의 포로를 만들 때까지 진리가 반쯤 섞인 말을 속삭이며 교활하게 움직입니다.8

우리는 주님의 도움으로 악한 영향력을 잘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악마의 치명적인 세력을 피하고 우리의 가정과 가족을 주위에 만연해 있는 파멸적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구속 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강화시키고 싶다면, 창조주께서 친히 주시는 …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확실한 길은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것이며, 복음의 심오하고 영감 받은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입니다.9

모든 사람의 삶에는 선과 악 사이에서의 갈등과, 사탄과 주님 사이에서의 갈등이 찾아오게 됩니다. 여덟 살이라는 책임질 수 있는 연령에 이르거나 지났으며, 모든 것을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올바르게 침례를 받은 사람은 분명히 성신을 받을 것입니다.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신회의 일원인 성신께서 인도해 주고, 영감을 주고, 경고해 줄 것이며, 악마의 속삭임을 무력화 시키실 것입니다.10

루시퍼보다 더 큰 힘을 갖고 계시는 분, 곧 우리의 요새와 힘이 되시는 분께서 큰 유혹의 시기에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든 죄에서 또는 유혹자의 팔에서 강제적으로 꺼내 주시지는 않지만, 그분의 영의 영향력을 미쳐 그 죄인이 신성한 도움으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리고 달콤한 영향력과 영의 간청에 몸을 맡기고, 회개하는 태도로써 자신의 힘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한 사람에게는 보호, 힘, 자유 및 기쁨이 보장됩니다.11

사탄은 … 모세를 속박하려고 논쟁했습니다. …

“사람의 아들 모세야, 나를 경배하라.” 악마는 세상과 쾌락과 권능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유혹했습니다.

… 선지자는 “사탄아, 이 곳에서 물러가라. …”(모세서 1:16)고 명했습니다. 거짓말쟁이이자 유혹자인 악마는 속박할 수 있었던 희생양을 마지못해 포기하며 이번에는 분노와 노여움에 싸여 “큰 소리를 지르며 땅에서 고함치며 … 내가 독생자니 나를 경배하라”(모세서 1:19)고 명령했습니다.

모세는 속임수를 간파했으며 어둠의 힘과 “지옥의 참담함”을 보았습니다. 그 힘은 쉽게 인식하여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아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하나님을 불렀고, 그런 다음에 새로운 권능으로 명령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부르기를 그치지 아니하리니, … 이는 그의 영광이 내 위에 있었음이라, 그런즉 나는 그와 너를 구별할 수 있느니라. … 독생자의 이름으로 이르노니, 사탄아, 이곳에서 떠나라” (모세서 1:18, 21)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 루시퍼조차도 하나님의 신권의 권능에 저항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들부들 떨고, 전율하며, 저주하고, 한탄하며, 울부짖고, 이를 갈면서 그는 승리를 거둔 모세에게서 떠나갔습니다.12

우리는 사탄 앞에서 … 그리고 어둠의 주권과 권력과 통치자들에 대해 … 확고한 태도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6:12~13 참조]13

바울이 훈계한 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십시오.]” [에베소서 6:11] 이런 신성한 영향력과 보호를 통해, 우리는 호소력 있는 말과 합리화 속에 있는 적의 속임수를 분별할 수가 있고, 또 “악한 날에 …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6:13 참조]14

우리는 가장 작은 유혹에 대해서라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작은 유혹에 처음으로 굴복할 때 심각한 죄가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선 아주 작은 범법에 빠지지 않고서는 크나큰 범법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더욱더 큰 범법의 문에 들어서게 됩니다. 죄의 한 가지 형태에 대한 예를 들면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깨끗한 들에 갑자기 잡초가 무성해지지 않는 것처럼 정직한 사람이 갑자기 부정직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악마가 닫힌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자물쇠가 채워진 문을 여는 열쇠가 그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그는 발가락을 들이밀고, 곧이어 발을 들여놓으며, 그 다음에는 다리와 몸과 머리를 넣고, 마침내는 계속해서 머물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바람이 불어닥칠 때 낙타를 데리고 사막의 모래 언덕을 지나 여행하고 있던 낙타 주인의 우화를 연상시켜 줍니다. 여행자는 재빨리 천막을 치고 안으로 들어갔고, 사나운 폭풍우 속에서 날리는 예리하고 매서운 모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덮개를 닫았습니다. 물론 낙타는 밖에 남겨 두었습니다. 맹렬한 바람이 모래를 휘몰아쳐 낙타의 몸을 때리고 모래가 눈과 콧구멍으로 들어오자, 낙타는 견딜 수 없었고 결국에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내가 있을 자리 밖에 없는데.”라고 여행자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숨을 쉴 수 있도록 코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제 코만 넣으면 어떨까요?”라고 낙타가 물었습니다.

“그래, 그건 할 수 있겠구나.”하며 여행자가 대답했고, 그는 덮개를 조금 열었고 낙타의 긴 코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낙타가 얼마나 편안해졌겠습니까! 그러나 곧 낙타는 눈과 귀를 세차게 때리는 모래가 지긋지긋해졌습니다. …

“바람에 섞인 모래가 제 머리를 긁어 내는 것 같아요. 제 머리만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여행자는 다시 그렇게 승낙해도 자신에게 해가 없을 것이라고 합리화했는데, 이는 천막에서 사용하지 않던 위쪽 공간에 낙타가 머리를 놓으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낙타는 머리를 안으로 집어 넣었고 다시 만족했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 뿐이었습니다.

“딱 앞 부분만 더요”라고 낙타가 간청하자, 다시 여행자는 마음이 약해졌고, 곧 낙타의 어깨와 앞다리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결국 간청과 양보라는 동일한 과정이 반복되며, 낙타의 몸통, 몸의 뒷부분 그리고는 모두가 천막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막은 둘이 있기에는 너무 비좁았고, 낙타는 여행자를 바람과 폭풍이 부는 밖으로 차냈습니다.

낙타처럼 사람이 루시퍼의 아첨에 굴복하는 순간, 루시퍼는 그 사람의 주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다음 곧이어 양심이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며, 악한 힘이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순간, 구원에 이르는 문은 철저한 회개로 그 문을 다시 열 때까지 닫히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정도라도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구주의 예에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타락한 형제인 루시퍼와 함께 산에 있을 때 그 완벽한 유혹자로부터 강한 유혹을 받았을 때, 그분의 그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셨을까요? 그분은 문을 열고 이렇게 말하며 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 위험에 대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좋다, 사탄아. 네 제의를 들어보겠다. 내가 굴복할 필요가 없고, 양보할 필요도 없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지만, 들어는 보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합리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단호하게, 그리고 즉시 대화를 끝내시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내 시야에서 떠나라, 내 면전에서 떠나라, 나는 듣지 않겠다, 나는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런 다음 “마귀는 예수를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4:10~11]

죄를 회개해야 하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을 선택하기보다는 죄를 멀리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취해야 하는 올바른 방식입니다. 구속주와 그분이 받은 유혹에 관한 이야기를 공부하면서, 저는 그분이 유혹을 정복하기 위해 그것과 싸우기보다는 유혹에 맞서 자신을 강화시키는 데 그분의 힘을 쓰셨다고 확신합니다.15

현재의 올바른 결정이 우리가 훗날의 유혹을 잘 견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각자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갈림길에 서게 되고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길은 멀고 험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다줍니다. 어떤 길은 짧고, 넓고, 즐겁지만 정도를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느 길이 더 쉽거나 더 즐거운지, 또는 다른 사람들은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와 같은 문제에 연연하지 않도록, 마음 속에 궁극적인 목표를 분명하게 새겨 갈림길에서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 미리 결정을 해 놓았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쳤을 때나 큰 유혹에 직면했을 경우, 갈림길에서 받게 될 많은 고민을 덜게 됩니다.

젊었을 때 저는 차, 커피, 담배, 또는 술을 결코 취하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했습니다. 다양한 경험들을 해 오는 동안 이런 확고한 각오가 여러 차례 저를 구해 주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마시거나 손대거나 맛볼 수도 있었던 경우가 많았지만, 확고하게 세워진 불변의 결심은 제게 저항할 수 있는 훌륭한 이유와 힘을 주었습니다.

…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떠한 것도 방해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이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살게 되는 기회를 최우선시 하겠다는 결심을 바로 지금 해야 합니다.16

자신의 자제심을 발전시키십시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똑같은 유혹에 직면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되풀이해서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몇 가지 것을 단 한번만 결정하면 됩니다!

한 가지 유혹과 관련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렇게 고민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17

우리는 몇 가지 일들을 한 번에 몰아내고 그만둘 수 있습니다! 어떤 것들에 관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단 한 번에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수백 번 골똘히 생각하고 다시 결정할 필요없이, 우리의 결정을 실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유부단과 낙담은 바로 악마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여건입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중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이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결심하겠다고 결정하십시오.18

모든 후기 성도 소년 소녀가 어린 시절에 “나는 사탄이나 내가 파멸되기를 바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굴복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도록 결심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19

악한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때는 그 길에 들어서기 직전입니다. 훌륭한 삶의 비결은 보호와 예방에 있습니다. 악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격 당하기 쉬운 위치에 자신을 방치했던 사람들입니다.20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악마에게 저항해야 한다.

저는 농장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돼지가 밖으로 나가면, 돼지들이 과거에 빠져 나갔던 적이 있던 구멍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젖소가 어딘가에 있는 더 푸른 풀을 찾아서 목초지 밖으로 나가면, 저는 그 소가 빠져 나간 곳을 찾기 위해 어디부터 먼저 살펴야 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소가 전에 울타리를 뛰어넘었던 곳, 또는 울타리가 무너진 곳이 가능성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마도 어디를 유혹할지, 어디에 유효한 일격을 날려야 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공격 당하기 쉬운 곳을 찾아냅니다. 전에도 약했던 곳에서 누구든지 아주 쉽게 다시 유혹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21

악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는 듯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약점을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그 약점에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22

일반적으로 누구든지 공격 당하기 쉬운 곳을 갖고 있으며 적절하게 보호하여 면역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곳을 통해 재난을 맞게 될 것입니다. …

역사를 통해 취약 지점에 가해진 공격에 굴복했던 개인 및 국가의 힘과 교만의 예를 …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취약 지점은 주로 물리적인, 즉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인 경우가 많았지만, 루시퍼와 그의 추종자들은 모든 사람들의 습관, 약점 및 취약점을 알고 있으며 우리를 영적인 파멸로 이끌기 위해 그것들을 이용합니다. 어느 사람에게 그것은 술에 대한 갈망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성적인 충동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사치품과 안락한 상태를 사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사랑하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23

악한 경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직해지고 또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죄를 짓도록 하신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그분은 어떤 사람도 악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 죄가 세상에 허용되었고,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도록 허용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거나 아니면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죄를 주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것이 타고난 것이고 다스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끄럽고 비겁한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부모와 교육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 도피자들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부모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배경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바꿀 내재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24

우리는 도처에 있는 우리 백성에게 이렇게 간청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서 4:7) …

세상의 상황과 길어져 가는 악의 그림자 때문에 불안한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주님은 “… 너희가 준비 되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 (교성 38:30)고 말씀하셨으며 또다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25

후기 성도로서 우리는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각 개인과 각 가족이 악마의 돌팔매질과 화살에 대비하고 주의 위대한 날을 준비하는 방법은 쇠막대를 단단히 잡고, 더 큰 신앙을 행사하며, 자신의 죄와 단점을 회개하며, 지상에 있는 그분의 왕국 곧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사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유일하고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26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여러분은 사탄과 그의 방법에 관한 킴볼 회장의 어떤 가르침들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103~105쪽 참조)

        105쪽에서 시작되는 소주제 부분의 내용들을 살펴본다.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악을 잘 견뎌 내도록 도우실 수 있는가? (예에 대해서는 103쪽에 있는 이야기를 참조) 언제 여러분은 이런 종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107쪽에 있는 우화를 읽는다. 여러분은 여행자가 왜 낙타를 천막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구주가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셨는지를 생각해 본다. (107~108쪽 참조) 자녀들이 가장 작은 유혹조차도 인식하고 저항하도록 부모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108쪽에 있는 둘째 단락 전체를 살펴본다. 죄를 예방하는 과정을 치료의 과정과 비교해 본다.

        킴볼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리 결정을 해 놓았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108쪽) 지혜의 말씀과 같은 계명을 지키겠다는 결정을 이른 시기에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가 있는가? (예에 대해서는 108쪽 참조) 여러분이 복음 생활과 관련하여 내린 확고한 결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킴볼 회장이 돼지와 젖소에 관해 관찰한 내용을 생각해 본다. (109~110쪽) 우리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관련 성구: 고린도전서 10:13; 니파이전서 15:23~25; 힐라맨서 5:12; 이더서 12:27; 교성 10:5

1.       Conference Report,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 지역 대회, 1976년, 19쪽.

2.       “The Mission Experience of Spencer W. Kimball”, Brigham Young University Studies, 1985년 가을호, 126쪽.

3.       용서가 낳는 기적 (1969년), 29쪽.

4.       용서가 낳는 기적, 195쪽.

5.       “의로운 여성의 역할”,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152쪽.

6.       “킴볼 회장께서 도덕에 관해 강조하심”,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56쪽.

7.       “How to Evaluate Your Performance”, Improvement Era, 1969년 10월호, 12쪽.

8.       “회개의 복음”, 성도의 벗, 1983년 3월호, 3쪽.

9.       Conference Report, 1979년 4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5쪽.

10.     용서가 낳는 기적, 24쪽.

11.     용서가 낳는 기적, 162쪽.

12.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87, 88쪽.

13.     The Blessings and Responsibilities of Womanhood”, 성도의 벗, 1976년 3월호, 71쪽.

14.     Faith Precedes the Miracle, 219쪽.

15.     용서가 낳는 기적, 196~198쪽.

16.     “결정: 왜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 성도의 벗, 1971년 9월호, 19~20쪽.

17.     “킴볼 회장이 인생을 계획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심”, 성도의 벗, 1982년 6월호, 47쪽.

18.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70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44쪽.

19.     Conference Report, 필리핀 마닐라 지역대회 1975년, 5쪽.

20.     용서가 낳는 기적, 25쪽.

21.     용서가 낳는 기적, 158쪽.

22.     용서가 낳는 기적, 190쪽.

23.     용서가 낳는 기적, 199~200쪽.

24.     An Apostle Speaks to Youth-Be Ye Clean: Steps to Repentance and Forgiveness (소책자, 1970년), 13쪽.

25.     Conference Report, 1974년 4월, 6쪽; 또는 성도의 벗, 1974년 8월호, 34쪽.

26.     Conference Report, 1982년 10월, 4쪽; 또는 성도의 벗, 1983년 1월호, 4쪽.

  11 

검소한 생활: 자립 및 예비의 원리를 적용함

현명하고 검소한 생활은 성품을 형성하고, 세상적, 사회적, 정서적, 영적 안녕을 증진시키는 생활 방식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부부 시절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과 아내인 카밀라는 “자신들이 부자가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이 있었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자신들의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았으며, 수입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했다.”1

킴볼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이 널리 퍼진 시기들, 즉 제1차 세계 대전 (1914~ 1918년), 경제 대공황 (1929~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1939~1945년)의 시대를 거치며 살았다. 이런 어려움들을 경험한 킴볼 회장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제 눈으로 보았던 것들로 인해 저는 불행에 대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걱정이 되었습니다.”2

그가 보았던 일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고생도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저의 온 생애 동안, 총관리 역원들께서 ‘부채에서 벗어나고 빚을 지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왔습니다. 저는 수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한 권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처하게 된 비참한 상황을 보았습니다.”

은행 일 이외에도 스펜서는 지역의 몇몇 상점들을 위해 회계 장부를 작성했다. “제 인생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일들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에서 제가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계정을 그 장부들에서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수입이 대략 얼마인지를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 수입을 다 써 버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달리 말해 그들이 ‘할부’로 옷과 신발 그리고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그 달 말에 청구서를 만드는 것이 제 의무임을 알았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달 말에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해진 할부금조차도 낼 수 없었습니다. 금전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가정에서 성장해 온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할부로 집을 산다거나 아니면 자동차를 사는 정도까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그들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옷을 입고 있는지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할부’로 사야만 하는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3

킴볼 회장은 가르침을 통해 재정적 주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책임, 일, 가정 식품 생산 및 비축과 같이, 검소한 생활과 관련된 다른 주제들에 관해서도 말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상 생활에서 개인 및 가족 예비의 원리를 실천합시다. ‘[여러분이] 준비 되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게’(교성 38:30) 될 것입니다.”4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정서적, 영적, 신체적, 경제적 안녕에 대해 책임이 있다.

주님은 교회와 그 회원들에게 자립하고 독립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교성 78:13~14 참조)

각 사람의 사회적, 정서적, 영적, 신체적, 또는 경제적인 안녕에 대한 책임은 먼저 그 개인에게 있고, 그 다음은 그의 가족에게, 그리고 셋째로는 그 사람이 교회의 충실한 회원인 경우 교회에 있습니다.

참된 후기 성도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능력이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나 가족의 안녕에 대한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 전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주님의 영감을 받아 또 자신의 수고로써 그는 삶에서 영적으로 필요한 것과 현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자신과 그 가족에게 공급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8 참조)5

우리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서, 회원들의 커다란 현세적인 필요 사항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런 위대한 교훈, 즉 영성의 가장 높은 발전은 우리가 육신을 정복할 때 온다는 교훈을 그들이 배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필요 사항을 돌보도록 격려하면서 우리는 인격을 닦습니다.6

아무리 많은 철학적인 사색, 변명, 합리화도 자립에 대한 기본적인 필요성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체의 진리는 하나님이 놓아두신 영역 안에서 독립되어 있어 … 또한 모든 예지도 그러하니, 그렇지 아니하고는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교성 93:30) 주님은 여기에 “사람의 선택의지가” (교성 93:31 참조) 있다고 선언하시는데, 이 선택의지와 함께 자신에 대한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이 선택의지를 갖고 우리는 영광으로 나아오거나 또는 정죄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 및 한 그룹으로서 늘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산이며 책무입니다.7

우리는 개인 및 가족 예비에 관해 상당히 중점을 두어 왔습니다. 저는 교회의 각 회원이 이 지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고 있기를 바라며, 또한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우리가 이해하고 부각시키기를 바랍니다. 저는 상호부조회가 “검약한 생활”로서 개인 및 가족에 대한 예비프로그램을 가르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여기에는 활력적인 정서 개발과 더불어 우리가 지닌 자원을 절약하여 쓰는 것[분별 있는 관리], 재정적인 면에서의 현명한 계획, 개인 건강에 대한 완전한 대비, 교육 및 직업적 발전을 위한 충분한 준비, 가정 [식품] 생산 및 비축에 대해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는 일, 교육과 사회 진출을 위한 적절한 준비, 가정 [식량] 생산 및 저장에 대한 적절한 관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8

우리는 가정 식품 생산 및 비축에 참여하라는 권고를 받아 왔다.

주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비 오는 날을 위해 저축하고, 어려운 시기를 위해 준비하고, 비상시를 위해 일년 분의 필수품 또는 최소한의 필수품 이상을 따로 떼어놓아서, 홍수, 지진, 기근, 허리케인을 비릇한 인생의 폭풍우가 닥칠 때, 가족들이 그 어두운 나날 속을 버틸 수 있게 하라고 촉구해 오셨습니다.9

우리는 여러분이 소유한 땅에서 기를 수 있는 모든 식품을 재배할 것을 권유드립니다. 베리류의 관목, 포도나무, 과일나무 등, 이런 식물들의 성장에 기후가 적합하다면 그것들을 심으십시오. 채소를 재배하고 여러분의 뜰에서 난 그 채소를 취하십시오. 심지어 공동 주택이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항아리나 화분에 크기가 작은 것들을 재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그런 음식을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연구하십시오. 결실이 크고 아름다우며 깔끔한 여러분의 채소밭을 만드십시오. 가정에 자녀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책임을 맡기어 그 과정에 참여시키십시오.10

채소밭이 있다면 식품 비용을 줄이고 또 매우 맛있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얻는 데 자주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딸이 채소밭에서 잡초를 뽑고 물을 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터놓고 하는 그 특별한 대화의 가치를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심고, 경작하고,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영원한 율법에 관한 분명한 교훈에서 오는 유익을 우리가 어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통조림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수반되어야 하는 가족의 단결과 협력을 우리가 어찌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물자를 쌓아 올려 저장하고 있지만, 아마도 더 큰 유익은 우리가 검소하게 생활할 때 배우는 삶의 교훈일 것입니다.11

우리는 가족들에게 올 한 해의 필수품을 확보해 두기를 권고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점을 거듭해서 말씀 드리며, 또 주님의 경전을 통해 그분은 거듭 되풀이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46] 사람들이 소위 영성이라 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여러 신성한 이름들을 사용해 그분을 부르면서도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이 되겠습니까?12

우리가 더욱 풍부해지고 우리의 은행 계좌가 불어날 때, 안도감이 찾아오고 또 총관리 역원들이 제언해 온 비축이 필요하지 않다고 때때로 느끼기도 합니다. … 상황은 변할 수 있으며,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비축해 놓은 생활품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어왔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확실하게 따르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13

우리는 자신이 받는 것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저는 삶을 살아가는 어느 단계에서나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필요한 일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은 땅을 일구고 심고 경작하고 수확해야 하며, 신앙이 자신들에게 빵을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14

일은 경제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15

일은 행복, 자존심, 그리고 번영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모든 성취의 수단입니다. 그것은 게으름의 반대입니다. 우리는 일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19 참조) 실업 수당으로 우리의 현세적, 사회적, 정서적, 또는 영적인 안녕을 얻으려는 시도는, 우리가 받는 것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신성한 지시에 어긋나는 것입니다.16

교회의 복지 프로그램은 영적인 것이며,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이든 실업 수당과 같은 개념을 우리 복지 서비스 기능에 들여왔다면, 이런 영적인 뿌리는 시들어 버렸으리라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도움을 받은 모든 사람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질서에 따라 도움을 받은 모든 사람은 역으로 자신들이 가진 것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방법으로 그분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계획에 세상적인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17

주님의 방법은 개인의 자존심을 쌓아 주고, 개인의 존엄성을 발전시키고 치유해 주는 반면에 세상의 방법은 자신을 바라보는 개인의 견해를 떨어뜨리며, 깊은 적개심을 갖게 만듭니다.

주님의 방법은 개인이 특별한 상황 때문에 비록 일시적으로 도움과 지원을 받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그가 노력하도록 권고하여 경제적으로 다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은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그 사람의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그가 경제적인 독립을 이룩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보다 그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의 방법은 회원들이 일을 중시하는 복음에 관해 스스로 간증을 얻도록 돕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생산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복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방법은 여가 활동과 일의 회피에 더욱 더 중점을 둡니다.18

일하는 것은 권리입니다. 모든 남녀와 어린이들은 일해야 합니다. 비록 작은 어린이일지라도 함께 나누고, 가정 안팎 주변의 일을 돕고,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열매를 따고,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일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강한 성품을 심어 줄 뿐만 아니라, 신앙과 인품을 함께 쌓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해야 할 일을 제공해 주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 수업 듣는 것을 강조하십시오. 그들이 항상 놀도록 하지는 마십시오. 놀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으며, 공부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올바른 방법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19

일이 우리 교회 회원들의 삶에서 주요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교성 42:42; 75:29; 68:30~32; 56:17 참조)20

우리는 저축하고, 부채를 피하고, 수입의 범위 안에서 생활함으로써 경제적인 자립을 이룰 수 있다.

여러분은 집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죽음, 질병, 장기적이고 심각한 병에 대해 준비되어 있고 대책이 있습니까? 수입이 끊긴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모아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집과 차량, 가구류, 가전제품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불할 수 있습니까? …

처음 보이는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가 힘듭니다. 매달 수입을 모두 쓰며 근근이 생활해 나가고 있거든요. … 여러분의 수입이 점점 더 늘고, 직장이 안정적이고, 건강하고, 일도 잘하고, 젊었을 때조차도 겨우 생활해 나간다면, 직장에서 해고되고, 질병과 다른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는 비상시에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21

여러분은 버는 모든 것을 다 써 버리면 안 됩니다. 자녀들의 선교 사업과 학교 교육을 위한 돈을 따로 모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책임을 맡고 작은 일들을 하면서 이런 기금을 늘리는 데 또한 도움을 줄 수 있고, 또한 조금씩 모은 그 돈을 쓰는 대신에 그러한 큰 목적을 위해 돈을 저축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부모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물건들을 갖추지 않고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미래에 큰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22

부채를 피하십시오. … 오늘날 모든 것들이 외관상으로는 부채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신용 카드를 만들어, 할부로 모든 것을 사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생활하는 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23

우리는 자신의 수입 모두 또는 그 이상을 소비하는 회원들이 어떻게 생활해 가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일과 수입이 줄어든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버는 것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여러분이 지불할 수 없을 만큼의 금액을 빚지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충격 완충기는 충격을 흡수할 상태에 있습니까?24

풍족하다면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 없이 생활할 때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하고 노력하십시오.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그것을 넘지 마십시오. … 여러분에게 필수적인 것들을 현명하고 주의 깊게 구입하십시오. 여러분이 버는 것의 일부를 저축하기 위해 애쓰십시오. 원하는 많은 것들을 기본적인 필요 사항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25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그리고 와드 및 스테이크 차원에서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이 원리에는 힘과 구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에 비례하여 우리가 풍요롭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그리고 교회로서 우리 회원들에게 참으로 필수적인 것들을 공급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필수적이 아닌 것 또는 가족의 복지 및 교회의 기본적인 사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목적 이상의 것을 공급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26

준비는 그에 따른 보상을 가져다 주는 생활 방식이다.

준비는 올바르게 추구할 때 생활의 한 방법이 되며, 갑자기 이루어지는 놀라운 프로그램이 아닙니다.27

우리는 개인 및 가족으로서 하게 되는 준비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대참사나 재난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상적인 생활에서 도움이 될 삶의 한 방식으로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옳기 때문에, 만족스럽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권고에 순종하기 때문에 이 일을 행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우리는 만일에 생길 대부분의 사태에 대해 준비가 될 것이며, 주님은 우리를 번성케 하시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 분명한데, 이는 주님께서 그렇게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시온의 스테이크는 “폭풍우를 … 피할 방어진이 되며 피난처”(교성 115:6)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슬기롭게 생활하고 또 검소하게 생활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안전할 것입니다.28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우리의 삶이 가족, 친구, 교회,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여러분은 자립하고 독립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116~117쪽 참조)

        킴볼 회장은 “사회적, 정서적, 영적, 신체적, [그리고] 경제적인 안녕”이 검약한 생활의 요소들이라고 가르쳤다. (116쪽) 영적 안녕이 어떤 면에서 다른 요소들과 관련이 있는가?

        117쪽에서 시작되는 소주제 부분들을 공부하면서, 여러분이 “인생의 폭풍우”에 대해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떻게 더 잘 준비할 수 있는가?

        채소밭은 식품을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이점을 가족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가? (118쪽 참조)

        킴볼 회장은 “일은 … 영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했다. (118쪽) 일을 통해 여러분은 어떤 영적인 유익을 경험했는가? 우리는 자녀들이 일의 중요성을 배우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여러분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관리하는 데 어떤 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20~121쪽과 115~116쪽에 있는 이야기들을 참조) 예산을 세운다면 어떤 장점들이 있는가? 우리가 가진 자원에 대한 예산을 세울 때 우리를 인도해 줄 어떤 도움을 활용할 수 있는가?

        121쪽에서 시작되는 소주제 부분을 읽는다. 어떤 면에서 준비가 일상적인 보상을 가져다 주는가?

관련 성구: 창세기 41:14~57; 니파이후서 5:17; 교성 29:8~11

1.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Spencer W. Kimball (1977년), 99쪽.

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372쪽.

3.       Conference Report, 1975년 4월, 166~167쪽.

4.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114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116쪽.

5.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4쪽; 또는 성도의 벗, 1982년 2월호, 117쪽.

6.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3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6쪽.

7.       Conference Report, 1978년 4월, 120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24쪽.

8.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5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7쪽.

9.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74쪽.

10.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170~171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117~118쪽.

11.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5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8~119쪽.

12.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171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118쪽.

13.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170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117쪽.

1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70쪽.

15.     Conference Report, 1981년 4월, 107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10월호, 120쪽.

16.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4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6~117쪽.

17.     Conference Report, 1978년 4월, 119~120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23쪽.

18.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172쪽; 또는 Ensign, 1976년 5월호, 125쪽.

19.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60~361쪽.

20.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4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7쪽.

21.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72쪽.

2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71~372쪽.

23.     Conference Report, 1976년 4월, 171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118쪽.

24.     Conference Report, 1974년 10월, 7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2월호, 32쪽.

25.     Conference Report, 1981년 4월, 107, 108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10월호, 121쪽.

26.     Conference Report, 1981년 4월, 63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10월호, 69쪽.

27.     지역 대표 세미나, 1976년 9월 30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8쪽.

28.     Conference Report, 1977년 10월, 125~126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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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성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가 매우 높이 평가하는 영혼의 특성인 고결성을 우리 자신이 지닐 수 있도록 발전시킵시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사도로 부름을 받기 전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애리조나 주의 사업계와 지역 사회에서 활동적이었다. 그는 보험 및 부동산 사업체의 공동 소유주였으며, 그 지역 및 주 전체에 걸쳐 활동하던 봉사 단체에 참여했다. 이런 일을 하면서 그의 정직성과 고결성은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에 관해 이런 글이 나온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스펜서 더블류 킴볼에 관해 갖고 있던 인식의 중심에는 늘 개인적인 공정함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 그는 항상 매우 정직했으며, 약속한 것을 행했고, 악한 의도 없이 솔직함을 갖고 협상을 했다.”1

다음 사건이 설명해주듯이 고결성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성품이었다. “스펜서와 몇몇 남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학교 과학반에서 현장 학습을 나갈 때 사용하기 위해 말 한 필과 오래된 마차를 하나 빌렸다. 울퉁불퉁한 길을 가다가 마차 스프링이 부러졌다. 다음 날 스펜서는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돈을 거둬서 부러진 스프링 값을 물어줘야 해.’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도와 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설득하며 ‘나 혼자서라도 그 스프링 값을 물어 줄 거야.’라고 말했다.”2

1974년 10월의 연차 대회 신권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며, 제일회장단 제2보좌인 매리온 지 롬니 회장은 킴볼 회장의 모범을 이렇게 지적했다. “그분은 오랜 세월 내내 고결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주님께서 지니고 계신 신성한 기대를 성취할 것임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 신권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가 킴볼 회장님과 같은 고결성을 지녔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3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고결성은 좋은 성품의 기초이다.

고결성 (우리의 믿음과 결심에 따라 생활하는 자발성과 능력)은 좋은 성품의 초석 중 하나이며, 좋은 성품이 없이는 이곳이나 영원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겠다는 소망을 지닐 수 없습니다.4

고결성은 완전하고, 계속되며 중단되지 않는 상태나 성질입니다. 그것은 온전함이며, 약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수성이자 도덕적인 굳건함입니다. 순수한 진실성이며 깊은 진지함입니다. 그것은 용기,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인간의 덕성입니다. 그것은 정직성, 곧음 그리고 의로움입니다. 이런 것들을 없애 버린다면 오직 빈 껍질만 남게 됩니다. …

개인이나 단체의 고결성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리고 내 행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행하거나 저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까?” 적절한가? 올바른가? 주님이 승인하실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

사람이 고결하게 되면 내적인 평화, 목적의 확실함, 행동의 안전함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부족하면 그 반대의 것, 즉 분열, 두려움, 슬픔, 불확실함을 얻게 됩니다.5

우리의 삶 속에서 마루 깔개 아래나 한 구석에 위선과 추악함 또는 오류의 어떤 흔적이 숨겨져 있는지 우리 모두가 자세히 조사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는 개인적 변명과 합리화라는 담요 아래 어떤 조그만 괴팍함과 부정직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천정이나 구석에 거미집이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은밀하게 허락한 조그마한 하찮은 것들과 작은 만족감들을 대수롭지 않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그 동안 합리화하면서 그것들을 숨기려고 애쓰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어떤 면들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태도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6

우리는 자신의 성약을 영예롭게 지킴으로써 고결성을 보인다.

우리가 하나님과 성약 곧 계약을 맺을 때 우리는 어떠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행동 표준에 따라 생활하기로 합의한 다음에 그 서약을 깨고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속이면서 생활해 나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애쓰는 학생처럼 되지는 맙시다. 2년 동안 주님을 섬기겠다고 합의한 다음에 게으름과 합리화로 시간을 낭비하는 선교사처럼 되지 맙시다. 아침에 성찬을 취하고 나서 그날 오후에 안식일을 경건히 지키지 못하는 교회 회원처럼 되지 맙시다.7

우리가 성약을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는 영원히 자기 자신을 손상시키게 될 것입니다. … 자기 정당화가 쉽고 또 합리화가 매력적이지만 주님은 현대의 계시에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은폐하려 하거나 우리의 교만, [또는] 우리의 헛된 야망을 만족시키려 하[면] … 여러 하늘은 스스로 물러가며, 주의 영은 심히 슬퍼하나니, … [사람은] 홀로 있게 되어 가시채를 뒷발질하며” (교성 121:37~38)

물론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의지는 우리의 것이지만, 자신의 선택의 결과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결성에 틈새가 있다면, 바로 그곳이 악마가 공격을 집중하는 곳입니다.8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성약에는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을 단순히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행하겠다는, 즉 악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로움을 행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비록 모세가 멀리 가지 않았음에도 악행으로 자신들의 약속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애굽기 19:8, 사체 추가)라고 말하며, 모세를 통해서 그러한 성약을 맺었습니다. 침례의 물가에서 우리는 비슷한 약속을 하며 또 성찬 의식에서도 그것을 다시 서약합니다. 이러한 서약을 존중하지 않거나, 봉사하기를 거부하거나,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태만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

멜기세덱 신권 소유자와 성전 엔다우먼트를 받은 사람들은 행하겠다는, 즉 의로움을 행하겠다는 더 구체적인 서약을 맺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신권 소유자 사이의 상호간의 서약을 “맹세와 성약” (교성 84:39)으로 표현하셨습니다. … 사람은 계명을 어김으로써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의 의무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신권 성약을 깨뜨립니다. 그러므로 이 성약을 깨뜨리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9

여러분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고결성을 유지하십시오. 여러분의 성약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올해 그리고 매년마다 여러분의 높은 충실함과 신앙의 충만한 표현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맹세코” 그것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현세와 영원을 통하여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10

우리가 부정직하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부정직이 존재하는 것과 커져 가는 것은 거의 모두 자기 정당화라고 부르는 내적인 왜곡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기 형태 중 첫째 되는 것으로서 가장 나쁘고, 교활한 형태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11

자기 정당화는 회개의 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함께하여 계속해서 강화하고, 돕고, 구원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잘못 행한 일에 대해 변명하는 사람과는 반드시 함께 하시기를 그치십니다.12

창조주께서는 시내산에서 새겨진 메시지를 통해 “도둑질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회복의 기초에서 이렇게 다시 되풀이되었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교성 59:6)

공적인 직책과 개인 생활에서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울려퍼집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 이와 비슷한 어떠한 일도 하지 말지니라.”(교성 59:6)

우리는 가게의 물건을 슬쩍 가져가는 것을 포함하여 온갖 형태의 부정직을 합리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귀하고 고상하다고 자처하는 수백 만의 사람들이 빠져 있는 비겁하고 저속한 행동입니다.

부정직은 여러 다른 형태로 다가옵니다. … 그것은 부당 이득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과 감정, 즉 현금 서랍을 강탈하거나 고용주의 물건을 훔치는 일, 회계 장부 위조, … 허위 면세 요청, 상환 의도 없이 정부 또는 민간 대출을 받는 일, 대출 상환을 피하기 위한 부정하고 부당한 파산 선언, 길거리나 가정에서 돈이나 기타 귀중품을 강탈하는 일, 온전한 하루 분의 보수를 받고 그보다 적은 시간을 일하여 시간을 훔치는 일, 요금을 내지 않고 공공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일 등과 같이 모든 곳에서, 모든 상황에서 부정직한 온갖 형태로 찾아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라는 말을 사람들은 자주 핑계로 댑니다. 어떠한 사회도 정직, 신뢰, 자제 없이는 건전할 수 없습니다.13

무리 없이 지불할 수 있다고 예상한 금액 이상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부정직합니다. 이것은 속여서 빼앗는 것입니다. 정당한 부채를 갚지 않는 사람은 도의심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채권자의 비용으로 즐기는 모든 사치는 정말로 제게는 정직하지 않게 보입니다. … 부채 상태에 있는 것이 항상 부도덕한 것은 아니지만, 부채를 소홀히 대하는 것은 분명 그렇습니다.14

크든 작든 일용품의 절도는 그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금전적 어려움을 가져다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훔친 사람은 스스로 품격이 손상되고 약화 됩니다.15

고결성에 대한 우리의 표준은 우리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전시회 입장료나 비행기, 기차 및 버스 요금에 대해 성인 가격을 내지 않으려고 자녀의 나이를 적게 말하는 부모는 그 자녀에게 부정직을 강력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는 이런 교훈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허가증 없이 폭죽, 총기의 사용, 낚시 및 사냥에 관한 법을 어기도록 허용합니다. 또한 자녀들이 면허증 없이 운전을 하거나 나이를 속이도록 허용합니다. 이웃집 마당에 있는 열매, 책상 위의 필기 도구, 셀프 서비스 판매대의 껌 상자와 같이 작은 것들을 그 사용을 알리지 않고 취하는 사람들은 정말 사소한 절도와 부정직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무언 중에 배웠던 것입니다.16

자녀들을 감싸서 부정 행위를 감추고, 그들을 용납하고 그들이 한 절도에 대해 대신 변상하는 부모는 교훈을 가르칠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더 큰 해를 끼칩니다. 만일 자녀에게 적절한 사과와 함께 동전이나 연필이나 과일 등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면, 훔치는 버릇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를 치켜세우고 작은 영웅처럼 대한다면, 만일 그의 비행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훔치는 습관은 점점 커지게 되고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17

부모는 모범과 교훈으로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재산과 권리에 대한 존중심을 길러 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빼앗거나, 부수거나, 파괴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변상하고 돌려줄 것을, 아마 그것도 두 배나 세 배로 그렇게 할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명예로운 시민이 될 것이며, 그들의 부모에게 명예와 영광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스스로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모든 법규를 준수하는 부모는 그러한 생활 방식 및 허락 또는 반대의 의사 표현을 통해 자녀들을 훈련하고 또 무질서와 반항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18

우리는 명예와 고결성과 정직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줄 것을 여러분께 촉구합니다. 우리 자녀 중 일부가 훔치는 것이 얼마나 사악한 일인지를 모른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공공 시설의 훼손, 도둑질, 강도, 절도의 정도를 볼 때 그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적절한 가르침을 통해 그런 일에서 여러분의 가족을 보호하십시오.19

정직과 고결성에 관한 공과를 가정의 밤 시간에 꼭 포함시키도록 합시다.20

강한 사회적 풍조와 맞설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죄는 죄라는 점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운동시 부정직하게 벌칙을 피하거나 또 경기에서 속이는 것이 자녀들에게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속임수는 대학으로 또 직업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고 사업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잘못, 그것도 큰 잘못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자녀들의 교양과 성품의 기초 체계를 약화시킵니다.21

뉴욕에서 볼티모어로 가는 기차의 식당칸에서 우리는 한 사업가의 맞은 편에 앉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이처럼 비가 내리는 법이 좀처럼 없습니다.”

대화는 곧 자연스럽게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신은 이 교회에 관해 많이 알고 계십니까?”

“그 교회에 관해 별로 알지 못하지만 거기에 다니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택지 한 구획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계속 말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하도급 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사장은 정말 정직하고 고결성이 가득한 사람으로, 저는 그에게 입찰을 [요구]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는 명예의 귀감입니다. 다른 몰몬들도 이 사람과 같다면, 그런 명예로운 사람들을 만들어 주는 교회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소책자를 주었으며, 그를 가르칠 선교사들을 보냈습니다.22

경전은 커다란 용기와 고결성에 대한 모범을 제공한다.

베드로가 자신을 투옥시키고, 매질하고, 어쩌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행정관들과 통치자들 앞에서 정말 담대하고 힘차게 서 있는 모습을 보일 때 … 얼마나 많은 칭송이 그에게 쏟아집니까? 우리는 마치 그가 적들과 대면하여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29)고 두려움 없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군중들의 눈을 보면서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하나님에 관해 간증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3:13~15 참조] …

이런 간증과 교훈을 들었던 사람들 중 5,000명이 그의 용기가 위대하며 그의 고결성이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5,000명은 믿게 되었습니다.

포로이며 노예였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확신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던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다니엘의 예를 봅시다. 고결성이 그처럼 높게 여겨진 적이 있습니까? 복음은 다니엘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 왕의 궁정에서 그는 큰 비난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왕을 위해서조차도 왕의 포도주를 마시거나 고기와 잘 차려진 음식을 지나치게 먹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절제와 신앙의 순수함은 그에게 건강과 지혜와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이해력을 함께 가져다 주었으며, 그의 신앙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를 가까이 연결시켜 주었고, 그에게 계시는 필요한 만큼 자주 주어졌습니다. 왕의 꿈을 드러내어 그것을 해석한 일은 그에게 명예와 칭찬과 선물,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팔기도 하는 높은 지위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중지할 것인가,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길에 섰을 때, 그는 공개적으로 기도를 했고 처벌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1~2, 6장 참조]

우리는 다니엘처럼 자신에게 참되고, 또 자신의 신앙을 통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과 관원들을 물리쳤던 세 히브리인, 즉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의 고결성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무릎을 꿇고 왕이 세운 웅대한 금 신상에게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맹렬한 풀무 불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기에 높은 신분과 지위를 잃어버리고 왕을 화나게 했습니다.

… 미리 배치된 나팔과 피리와 수금, 그리고 다른 악기들이 그 지역 곳곳에 울려 퍼지고 어디서나, 무릎 꿇고 거대한 금 신상을 예배하는 많은 남녀들이 그들의 가정과 거리를 가득 채웠건만, 이 세 사람은 그들의 참된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매우 격노한 왕 앞에 끌려 나왔을 때, 그들은 분명히 왕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용기 있게 대답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7~18)

고결성!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에 대한 약속은 위대함, 위안, 특권을 보장해 주는 인간의 모든 약속들보다 위대합니다. 용기와 고결성을 지닌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하나님께 참되지 않으면 굳이 목숨을 부지할 필요가 없다.” …

우리가 추구하는 완전함에서 어떤 덕성도 고결성과 정직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매우 높이 평가하는 영혼의 특성을 우리 자신이 지닐 수 있도록 발전하기 위해 완전하고, 흠 없고, 순수하고, 성실해지도록 합시다.23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125쪽에 있는 둘째 단락을 살펴본다. 어린 스펜서의 반응은 어떤 성품을 보여 주는가? 오늘날 우리는 이와 비슷한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는가?

        126쪽에서 처음 네 단락을 공부하면서, 고결성을 정의하기 위해 킴볼 회장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찾아본다. 고결성이 “내적인 평화, 목적의 확실함, 행동의 안전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 알았는가? 고결성의 부족이 “분열, 두려움, 슬픔, 불확실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 알았는가?

        성약에 관한 태도 중에서 고결성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26~127쪽 참조) 우리는 이런 태도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여러분이 성약을 지키게끔 해주는 고결성을 깊이 생각해 본다.

        우리가 부정직하다면, 어떤 면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28~129쪽 참조)

        부모의 부정직과 정직에 관한 킴볼 회장의 예를 살펴본다. (129~130쪽) 자녀들에게 고결성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

        130쪽에서 마지막 두 번째 단락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읽는다. 여러분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고결성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126쪽에서 다섯 번째 단락을 공부한다. 킴볼 회장이 권고한 것처럼, 여러분의 삶을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을 고려해 본다. 그가 했던 질문들을 자문해 본다.

관련 성구: 욥기 27:5~6; 잠언 20:7; 앨마서 53:20~21; 교성 97:8; 136:20, 25~26

1.       Francis M. Gibbons, Spencer W. Kimball: Resolute Disciple, Prophet of God (1995년), 106쪽.

2.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 The Story of Spencer W. Kimball: A Short Man, a Long Stride (1985년), 23쪽.

3.       Conference Report, 1974년 10월, 103, 106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3월호, 40, 42쪽.

4.       “Give the Lord Your Loyalty”, Ensign, 1980년 3월호, 2쪽.

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192쪽.

6.       Conference Report, 멕시코 멕시코시티 지역 대회 1972년, 32쪽.

7.       “아브라함의 모범”, 성도의 벗, 1975년 12월호, 4쪽.

8.       Ensign, 1980년 3월호, 2쪽.

9.       용서가 낳는 기적(1969년), 92~93쪽.

10.     “On My Honor”, Ensign, 1979년 4월호, 5쪽.

11.     Ensign, 1979년 4월호, 5쪽.

12.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234쪽.

13.     “보고와 목표”,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5~6쪽.

1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96쪽.

1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98쪽.

16.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343쪽.

17.     용서가 낳는 기적, 53쪽.

18.     “아이에게 가르치라”, 성도의 벗, 1978년 8월호, 3쪽.

19.     Conference Report, 1974년 10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2월호, 31쪽.

20.     Conference Report, 뉴질랜드 템플뷰 지역 대회 1976년, 29쪽.

21.     “What I Hope You Will Teach My Grandchildren”,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직원들에게 행한 연설, 브리검 영 대학교, 1966년 7월 11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2쪽.

22.     Faith Precedes the Miracle, 240~241쪽.

23.     Faith Precedes the Miracle, 244~246, 248쪽.

  13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순종

주님을 믿는 신앙은 우리가 기꺼이 계명에 따라 생활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받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1972년 3월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 대리였을 때 심각한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다. 당시 그의 주치의들 중 한 사람이 러셀 엠 넬슨 장로였으며, 그는 훗날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넬슨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심장이 쇠약해져 가고 있고 죽음이 가까웠음을 느끼자, 킴볼 회장님은 교회의 상위 지도자들, 즉 제일회장단과 함께 회의를 가졌습니다. 요청에 따른 의학적 정보를 제공하도록 헌신적인 심장 전문의였던 어니스트 엘 윌킨슨 박사와 저를 불렀습니다.”

“킴볼 회장님은 가쁜 숨을 쉬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 목숨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속도로 악화되면 앞으로 겨우 두 달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 주치의가 의견을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윌킨슨 박사는 킴볼 회장님의 느낌을 시인했고, 회복될 가망이 없으며 머지않아 사망하실 것이라는 결론을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킴볼 회장님은 심장 전문의인 저에게 물었습니다. ‘수술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수술을 하게 된다면, 두 부분에 걸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선 대동맥 판막을 교체해야 하고, 그 후 막혀 있는 중요한 관상 동맥 하나에 우회로를 만들어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일회장단의 해롤드 비 리 회장님이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수술에 따르는 위험은 무엇입니까?’

“‘모르겠습니다.’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일흔 일곱 살 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수술 중 하나만 해도 상당한 위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심장이 쇠약해지고 있는 사람에게 두 가지 수술 모두를 실시하는 것은 너무도 큰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수술을 권할 수가 없습니다. …’

“지친 킴볼 회장님이 ‘저는 늙은 사람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리 회장님이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리 회장님은 일어서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그가 가진 선지자로서의 권능을 갖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은 부름을 받으신 분입니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님은 자신을 돌보고 앞으로 더 살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셔야 합니다.’

“킴볼 회장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수술을 받겠습니다.’

“그가 그 복잡한 수술을 받았던 것은 의학 전문가들의 견해로 볼 때 그 수술이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위험과는 관계없이 교회 지도자를 통해 나타난 주님의 권고에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병세를 호전시켜 준 그 수술을 이겨내도록 축복 받았습니다.”1

킴볼 회장은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모범과 권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그분에 대한 신앙을 보일 때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참된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동기를 준다.

신앙을 행사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증거 없이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서 일을 성취해 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신앙]은 죽은” [야고보서 2:26] 것이고, 죽은 신앙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 삶을 변화시키거나 용감하게 봉사하도록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사람이 마치 확실히 알듯이 건설적이고 유익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해 줍니다.2

인간은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적과 관련된 기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기적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는 스위치를 눌러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기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거나 집에 배선을 하기 위한 지식은 그에게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등을 구해 오기에 충분한 신앙, 그리고 스위치를 켜기 위한 신앙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그가 라디오를 만들거나 그 작동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도 주파수 다이얼을 돌려서 멀리서 오는 감미로운 음악을 즐길 수는 있지만, 라디오를 전기에 연결하고 다이얼을 올바로 맞추지 않는다면 그 축복은 결코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다이얼을 돌리고 맞춤으로써 영적인 축복과 나타내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기도와 행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신앙입니다.3

우리는 지혜를 위해 기도하고, 그런 다음 영감을 얻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힘과 책, 생각과 의로움으로 구합니다. 우리는 판단력을 간구하고, 그런 다음 지혜롭게 행하고 지혜를 키우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우리의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도하고, 그런 다음 열심히 공부하고 온 힘을 다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노력합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건강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고 우리의 몸을 건강하고 활력있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호를 위해 기도하고, 그런 다음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온당한 예방책을 세워야 합니다. 신앙이 수반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4

인간은 자신의 삶을 깨끗하게 해 주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을 잊고, 육신의 모든 약점을 이겨 내도록 해 주는 신앙입니다. 완전하면서도 지속적인 회개를 일으키며 또한 침례, 신권, 성전 의식으로 이끌어 주는 신앙입니다.5

오직 영의 눈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정으로 가득한 복음의 율법 아래, 부유하든 가난하든, 학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은 신앙의 눈으로 먼저 본 후, 노력을 통해 좀 더 높고 고귀한 삶을 삶으로써 그 신앙을 나타내도록 격려 받습니다.6

신앙에 기초를 둔 순종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다.

자진해서 겸손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현명하고도, 건설적인 순종을 바치게 됩니다.7

순종하는 것! 귀를 기울이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 요구 사항입니까!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거나 마실지 명령할 수 없어. 아무도 내 안식일을 정하거나, 내 수입을 가져가거나, 어떤 식으로든 내 개인적인 자유를 제한할 수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구! 난 맹목적인 순종은 하지 않는단 말이야!”

맹목적인 순종이라니오! 그들이 이해하는 바는 얼마나 작습니까! …

인간이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전제 군주에게 신하가 움츠리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고귀하고 기꺼운 순종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독재자는 야심차고 이기적이며 감추어진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의롭고, 모든 지시에는 목적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다스림을 받는 자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전자는 맹목적인 순종일 수도 있겠지만, 후자는 분명 신앙에 기초를 둔 순종입니다. …

“고압 주의”라는 표지를 존중할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아니면 위험을 알고 있는 전문가의 판단에 대한 믿음에 기초를 둔 순종입니까?

안전 벨트 착용 표시등이 켜져서 항공기 승객들이 안전 벨트를 맬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아니면 위험과 돌발 사태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에 바탕을 둔 신뢰입니까?

어린아이가 신이나서 탁자에서 뛰어내려 미소짓고 있는 아버지의 힘센 팔에 안길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아니면 붙잡아 줄 수 있음을 확신하며 생명 그 자체보다도 자녀를 더 사랑하는 애정 어린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까? …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 세상을 지으셨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감추어진 동기가 전혀 없이 우리를 위하여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계획하셨고, 모든 자녀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모세서 1:39 참조]이 가장 큰 기쁨과 영광이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와 명을, 제한된 안목과 초보적인 지식, 이기적인 소망과 마음 속의 동기뿐만 아니라 육욕적인 충동마저 갖고 있는 우리들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과연 맹목적인 순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8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자신을 이미 증명해 보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따르는 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9

경전은 신앙에서 나오는 순종에 관한 본보기를 제공해 준다.

의롭고 지혜로운 부모인 아담과 이브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훌륭한 순종에 대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 아담이 주의 계명에 순종하더라.”

“여러 날 후에 주의 천사가 아담에게 나타나 이르되, 어찌하여 너는 주께 희생을 드리느냐? 한즉, 아담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하노라.”

“이에 천사가 말하여 이르되, 이 일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희생하실 모형이니라.” (모세서 5:5~7)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그분과 함께 걸었으며, 그분의 선하심, 공의로우심, 이해심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흠 없는 어린 양을 죽여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는 의로운 목적이 있으며, 순종한 후 그 이유가 밝혀질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0

히브리 사람들에게 말씀하던 중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브리서 11:7)

그러나 비와 홍수의 징조는 없었습니다. 그의 백성은 그를 조롱하고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훈계는 무시당했습니다. 그의 경고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대홍수가 땅을 뒤덮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빛나고 모든 것이 평소와 같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마른 땅에서 방주를 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방주가 완성되었습니다. 홍수가 닥쳤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던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방주의 기적은 방주를 지을 때 보였던 신앙의 결과로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히브리서 11:11) …

100살 된 사람에게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이치에 맞지 않았으므로, 사라조차도 처음에는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한 고귀한 부부의 신앙은 효험이 있었으며, 만국의 아버지가 될 기적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초인간적인 시험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을 때 그는 대단한 신앙을 보였습니다. 그는 만국의 아버지가 될 운명을 타고난 그의 어린 “약속의 자녀”를 희생 제단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너무도 모순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 이삭이 어린 시절에 필멸의 생을 마친다면 과연 어떻게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의 아버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어찌하여 이렇게 끔찍한 행동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모순되는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굽히지 않는 신앙은 그가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어린 아들과 함께 모리아 땅으로 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20~21)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으며,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삭은 분명히 살아서 수많은 후손의 아버지가 될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삭이 죽어야 한다 해도 그들은 이삭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삭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질 수 있음을 알았으며, 이 신앙이 기적을 낳았습니다.11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이 처음부터 끝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 보지 못했어도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떤 문도 열려 있지 않았고, 라반은 술에 취해 있지 않았으며, 니파이가 신앙을 행사해서 판들을 얻기 위해 마침내 출발했던 순간에는 그 어떤 소망도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맹렬한 불길 속에는 세 히브리인을 죽음에서 보호하기 위한 어떤 내화성 의료 또는 그 밖의 평범한 보호 장치도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굴에 감금되었을 때 가죽이나 금속 재갈이 사자의 입에 물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

… 박해 받던 개척자들이 평원을 건넜을 때 유타에는 마을과 도시, 농장과 정원, 가옥과 창고가 하나도 없었으며, 번영한 사막도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지식을 갈구하던 조셉이 조용히 숲으로 들어가서 강둑에서 무릎 꿇고 기도 드리고 성스러운 언덕의 비탈을 올랐을 때, 팔마이라, 사스케하나 또는 쿠모라에는 하늘에서 온 사자가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12

신앙이 기적을 낳는다.

우리는 신앙으로 씨앗을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이 피는 기적을 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오해하여 그 과정을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심기 이전에 수확을, 봉사 이전에 보상을, 신앙 이전에 기적을 보고 싶어합니다. …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율법을 준수하지도 않고 강한 체력을 기대하며, 십일조를 내지도 않고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번영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금식과 기도를 하지도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의사소통을 원합니다. 안식일을 준수하지도 않고 주님의 다른 계명들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적절한 절기에 비를 바라고, 땅에 평화를 바랍니다. 뿌리를 심기도 전에 장미를 꺾고자 합니다. 곡식을 심고 경작하기도 전에 수확하고자 합니다.

모로나이가 기록한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 신앙이 없을진대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으심이라. …

“또 어느 때라도 신앙을 갖기까지는 아무도 기적을 행하지 못하였나니, 이러므로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더라.”(이더서 12:12, 18)13

이제 우리가 신앙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들을 믿을 수 있다면, 순종하고 인내로 기다릴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풍성한 약속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고린도전서 2:9)14

돈은 부족하고 쓸 곳은 많을 때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는 커다란 신앙이 필요합니다. 금식을 하고 가족 기도를 하고 지혜의 말씀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할 때 가정 복음 교육, [회원] 선교 사업, 그리고 다른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씨앗을 심는 일이며, 그에 따르는 수확은 충실하고 헌신적인 가족, 영적인 보호, 평화, 그리고 영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

… 굽히지 않는 신앙이 사자의 입을 멈추게 하고, 맹렬한 불꽃을 쓸모 없게 만들며, 강과 바다를 지나는 마른 길을 열어 주고, 대홍수와 가뭄에서 보호하며, 선지자들의 간청에 의해 하늘의 증거하심이 나타났던 것처럼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신앙은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애통하는 자에게 위안을 가져다주며, 유혹에 대한 각오를 강화시키고, 해로운 습관의 속박에서 구해 주고, 회개하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얻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꿋꿋한 신앙은 우리가 기꺼이 계명에 따라 생활하도록 돕고, 하나님의 왕국에서의 평화와 온전함, 그리고 승영과 함께 무수한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15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이 장의 제목을 살펴본다. 순종이 신앙의 행위인 까닭은 무엇인가?

        1972년 3월에 킴볼 회장이 내려야 했던 결정에 대해 읽는다. (135, 137쪽) 우리가 어려운 결정에 직면할 때 어떤 복음 원리들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는가?

        “맹목적인 순종”과 “신앙의 순종”에 대한 킴볼 회장의 비교를 읽으면서 어떤 차이점을 볼 수 있는가? (139~140쪽 참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 우리가 그분께 “자발적으로, 겸손하게 그리고 기쁘게”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 회원들이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여러분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

        140~142쪽에 있는 경전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이 이야기들에 나오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에는 무엇이 있는가? 여러분은 그들과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여러분은 신앙이 기적을 낳는 것을 언제 보았는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42~143쪽을 참조 한다) 신앙이 기적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 가족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

관련 성구: 여호수아 22:5; 야고보서 2:14~26; 이더서 12:4~21; 모로나이서 7:33; 교성 130:20~21

1.       “Spencer W. Kimball: Man of Faith”, Ensign, 1985년 12월호, 40쪽.

2.       “The Fourth Article of Faith”, Instructor, 1955년 4월호, 109쪽.

3.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62쪽.

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22쪽.

5.       “Beloved Youth, Study and Learn”, Life’s Directions (1962년), 188~189쪽.

6.       Conference Report, 영국 런던 지역 대회 1976년, 36쪽.

7.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55쪽.

8.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51, 52, 53쪽.

9.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9쪽.

10.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54쪽.

11.     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48, 49쪽.

12.     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51쪽.

13.     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47쪽.

14.     Conference Report, 1952년 4월, 22쪽.

15.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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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대업을 우선으로 하고, 거짓 신들을 숭배하기를 삼가야 합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후기 성도들에게 그들의 삶에서 주님을 우선으로 하고, 그들의 마음을 세상의 것들에 두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는 물질적 재산, 사업, 여가 활동, 명성과 같은 것들을 주님보다 우선시 하는 것은 거짓 신들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의무, 충실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에서 사람을 멀어지게 유인하는 모든 것”은 거짓 신 또는 우상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1

킴볼 회장의 생애와 그 부모의 삶의 밑바탕에는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있었다. 1890년대 후반, 스펜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그의 부친인 앤드류는 애리조나 동남부에서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사막 변방에서 살기 위해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비교적 편한 생활을 뒤로 하고 떠나는 일은 킴볼 가족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나, 앤드류 킴볼에게는 “오직 하나의 대답만이 있었고, 그것은 간다는 것이었다.”2

여러 해가 지난 뒤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스테이크 회장단 제2보좌로 부름을 받았을 때 주님에 대해 이와 비슷한 헌신을 보였다. 킴볼 장로와 아내 카밀라 자매는 “회계사나 교사가 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교회 부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한 계획을 보류해 둔다는 것을 의미했다.3

킴볼 회장이 사도로 성임되었을 때,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이 그에게 주는 다음과 같은 권고는 주님과 그분의 왕국을 우선으로 하는 원리를 강화시켜 주었다. “형제님의 마음을 주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 집중하십시오. 바로 이 순간부터 형제님의 모든 생각에서 이 대업과 이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4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마음을 다른 곳에 둘 때, 우리는 우리만의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것이다.

저는 고대의 경전을 공부하면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명이 십계명 중에서 첫 번째라는 사실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 그리고 그분께서 주시는 축복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거부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행사하는 것이 지금 당장 손 닿는 곳에 있는 것들에 의지하는 것보다 늘 더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육욕적인 인간은 그의 신뢰를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것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었음을 경전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에 인간이 사탄의 힘 아래 쓰러지고 신앙을 잃었을 때, 그들은 “육신의 팔”과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 (다니엘 5:23), 즉 우상들에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구약전서의 주요 주제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마음을 두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 사람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의 신이 이스라엘의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전들을 읽고, 니파이가 제언했듯이 “그것을 [우리들] 자신에게 비유” (니파이전서 19:24) 하려 노력할 때, 조각된 신상을 향한 고대의 숭배와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나타나는 행동 양식 사이에서 많은 유사성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 저의 확고한 믿음입니다.5

우상 숭배는 가장 심각한 죄에 속합니다. …

현대의 우상들이나 거짓 신들은 옷, 집, 사업, 기계, 자동차, 레저용 보트, 그리고 신격을 향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많은 다른 물건과 같은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

마찬가지로 무형적인 것들도 언제든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학위와 증서와 직함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은 우선 집을 짓고 가구를 비치하고 자동차를 삽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십일조를 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누구를 섬기는 것입니까? 하늘과 땅의 주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

많은 사람들은 사냥, 낚시여행, 휴가, 주말 피크닉과 소풍을 숭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 경기, 야구, 축구, 투우, 또는 골프 등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삼습니다. …

인간이 숭배하는 또 한 가지 신상은 권력과 명성입니다. … 권력, 부, 그리고 영향력이라는 우상들은 무척 많은 것을 요구하며 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만든 금송아지만큼이나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6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면 사탄의 영향력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현대적이라고 정의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그리고 과거의 어떤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양을 우리가 갖추었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체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며, 그것은 주님께 가장 거슬리는 상황입니다.7

원숭이를 사로잡기 위해 밀림으로 갔던 한 무리의 사람들에 대한 몇 년 전에 읽었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원숭이를 잡기 위해 그물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물은 그처럼 작은 동물에게는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한 후 그들은 결국 독창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상자를 여러 개 만들었고, 각 상자 위에 원숭이가 손을 집어넣을 정도의 크기로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 상자들을 나무 아래에 늘어놓고는, 각 상자 안에 원숭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 열매를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자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상자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열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원숭이들은 그것들을 집으려고 팔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열매를 쥐고 손을 빼려 했을 때, 손에 열매를 쥔 그 작은 주먹이 이제는 너무 커져서 손을 상자 밖으로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사람들이 덤불 속에서 나와 원숭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원숭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생각에 이리저리 날뛰었지만, 매우 쉬운 일일 텐데도 불구하고 열매를 손에서 놓지 않아 상자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결국 도망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을 쉽게 잡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것들, 즉 별의 왕국에 속한 것들을 너무나 단단히 움켜잡고 있는 나머지 그 어떤 촉구와 비상 사태도 해의 왕국의 것들을 위해 그러한 것들을 버리도록 설득하지 못합니다. 사탄은 그들을 쉽게 손아귀에 넣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위해서 세상적인 왕국을 세우는 데 모든 시간과 자원을 써 버릴 것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상속 받게 될 것은 바로 세상적인 왕국입니다.8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것들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데 우리의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부유하다는 것이 반드시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부를 획득하고 사용하는 중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

부에 대한 열정에서 기인한 파괴적인 결과는 몰몬경의 역사에서 생생히 나타납니다. 백성들은 의로울 때마다 번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번영에서 부로, 부에서 부에 대한 사랑으로, 그 다음에는 안락함에 대한 사랑으로의 변천이 따랐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영적인 나태함, 그 다음에는 저속한 죄와 간악함, 그 다음에는 적에 의해 거의 멸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 만일 백성들이 선한 목적을 위해 그들의 부를 활용했다면, 그들은 계속되는 번영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9

주님은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번성한 백성으로 축복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들은 훌륭하며, 그것들은 이 지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양떼와 소떼와 땅과 헛간과 부를 갖게 되어 그것을 거짓 신으로 숭배하기 시작했고, 그 신은 우리를 다스릴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이러한 많은 자원들을 가족과 정원회 안에서 활용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선교 사업에 매진하고, 계보 및 성전 사업을 발전시키며, 우리의 자녀를 주님 앞에 유익한 종으로 키우고, 다른 사람들도 또한 번영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이 축복들을 우리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고 있으며, 모로나이가 말한 것처럼 “어찌하여 너희는 생명이 없는 것으로 너희 스스로를 꾸미면서도, 주린 자와, 궁핍한 자와, 벗은 자와, 병든 자와 고난당하는 자들이 너희 곁을 지나가도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는도다.]” (몰몬서 8:39)

우리 시대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그들은 주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주를 구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길로, 또 자기 자신의 신의 형상을 따라 걷나니, 그 형상은 세상의 모습이요, 그 실체는 우상의 것이니, 점점 낡아져 바벨론 곧 무너질 대 바벨론에서 멸망”(교성 1:16; 사체 추가)할 것입니다.10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그러나 너무 많은 경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먼저 구합니다.11

아마도 죄는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숭배에 있을 것입니다. 부를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그분의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히 충실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보유할 수 없다면, 부자가 안식일을 지키고, 그의 마음과 육체와 영을 오염되지 않게 유지하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을 통해 이웃들에게 아낌없는 봉사를 할 수 없다면, 유복한 사람이 승인된 종들을 통하여 온 주님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신뢰 가운데 보유할 수 있고 완전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반드시 “가서 [그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 [주]를 따[라야]” (마태복음 19:21)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여러분의] 마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6:21)12

주님을 섬기면서 받는 축복은 세상이 주는 보상보다 크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직책에 부름을 받았으나, 그가 주님의 사업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것보다 그의 투자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아야 했기 때문에 그 직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재물을 얻으려고 주님을 위한 봉사를 저버렸고, 현재 그는 백만장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세로 100만 달러 상당의 금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는 지구의 얇은 지각에 매장되어 있는 금 전체의 약 270억 분의 일 정도만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머리로 상상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비율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온 지구에 대한 권능을 지니신 주님은 마찬가지로 다른 많은 지구들, 나아가 “무수한 세상” (모세서 1:33)을 창조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신권의 맹세와 성약 (교성 84:33~44)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내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38절)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금궤 하나와 세속적인 안도감을 얻으려고 이 모든 훌륭한 약속들을 거절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입니다. 그처럼 하찮은 것에 안주했다면 참으로 슬프고 측은한 일일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이보다 훨씬 더 귀중합니다.

한 젊은이는 선교 사업 부름을 받았을 때 자신은 그런 일을 위한 재능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잘 하는 일은 자신의 강력한 새 자동차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힘을 소유한 듯한 느낌과 빠른 속도를 낼 때의 느낌을 즐겼으며, 운전할 때 계속해서 나아가는 움직임은 그가 실제로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줄곧 “그 아이는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며 만족해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충분합니까? 이 젊은이는 그가 가진 자동차의 힘이 바다나 태양의 힘에 비해 지극히 작다는 것, 즉 또 많은 태양들이 있으며, 그 모두가 궁극적으로 율법에 의해 그리고 신권, 그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면서 발전시킬 수도 있었던 신권 권능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보잘것없는 신, 즉 강철과 고무와 번짝이는 크롬으로 된 보잘 것 없는 신에 안주했습니다.

좀 더 나이 든 한 부부는 직업 세계에서 은퇴했고, 사실상 교회에서도 은퇴했습니다. 그들은 픽업 트럭과 캠프용 트레일러를 사들였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세상 곳곳을 구경하고 그들이 축적해 둔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단순히 여생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갈 시간이 없었으며, 계보 탐구를 하고 선교사 봉사를 하기에는 너무 바빴습니다. 그는 대제사 정원회와 접촉이 끊겼으며, 개인 역사를 작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집에서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 지부는 그들의 경험과 지도력이 몹시 필요했지만, “끝까지 견딜” 수 없었던 그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13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따라야 한다.

주님을 최고로 인정하고 우상 숭배를 멈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 마음과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을 존중하고 영생의 사업을 향해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의 자녀들의 의로움이 그분께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14

우리의 임무는 분명합니다. 그 자체로서 최종 목표가 되는,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멈추고 신앙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우리의 적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더 이상 적이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는 하나도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교성 64:24)고 우리 시대의 온 세상에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현대의 우상과 “육신의 팔”에 의존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사도행전 2:37)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고] 성령[성신] … 을 받으[라.]” (38절)

… 우리의 메시지는 베드로가 전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나아가 주님께서 친히 주신 다음과 같은 말씀과도 똑같습니다. “땅 끝까지 미치나니, 듣고자 하는 자는 모두 듣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는 대비하라. 너희는 장차 임할 일에 대비하라. 이는 주께서 가까우심이니라.” (교성 1:11~12)

각 개인과 가족이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준비하는 방법은 더욱 큰 신앙을 행사하고, 회개하며, 지상에 있는 그분의 왕국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참된 사업이 무엇인지 보기 시작할 때, 영원의 것을 올바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할 때, 그에 따르는 축복은 “세상”을 뒤로 하는 것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것입니다.15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이 왜 십계명 중에서 첫 번째라고 생각하는가?

        다음 말을 깊이 생각해 본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마음을 두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 사람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146쪽) 오늘날 세상에 있는 거짓 신은 무엇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46~147쪽 참조)

        원숭이 덫에 관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47~148쪽 참조) 이 세상의 것들을 우리가 너무 굳게 붙잡고 있다면 어떤 위험이 따르는가?

        148~150쪽을 살펴본다. 부유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위험이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원들을 의롭게 사용할 수 있는가?

        150~151쪽에 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은 왜 주님의 왕국에서 봉사하는 축복을 스스로 잃는다고 생각하는가? 봉사할 때 우리의 동기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온 마음과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151쪽) 자녀들이 주님을 사랑하도록 돕기 위해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련 성구: 출애굽기 20:3~6; 마태복음 6:24; 22:36~38; 골로새서 3:1~5; 니파이후서 9:30, 37; 교성 133:14

1.       용서가 낳는 기적 (1969년), 44쪽.

2.       Andrew Kimball, Edward L. Kimball 및 Andrew E. Kimball Jr.에서, Spencer W. Kimball (1977년), 20쪽.

3.       Edward L. Kimball, “Spencer W. Kimball”, The Presidents of the Church, ed. Leonard J. Arrington (1986년), 381쪽 참조.

4.       Spencer W. Kimball, 205쪽.

5.       “우리가 섬기는 우상”,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2~3쪽.

6.       용서가 낳는 기적, 44~45쪽.

7.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4쪽.

8.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3~4쪽.

9.       용서가 낳는 기적, 50쪽.

10.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3쪽.

11.     Conference Report, 1972년 4월, 28쪽; 또는 성도의 벗, 1973년 2월호, 35쪽.

1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358쪽.

13.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3쪽.

1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243쪽.

15.     성도의 벗, 1977년 8월호,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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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건한 백성이 되어야 함

경건은 태도 이상의 것으로, 우리의 생활 방식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덕성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1955년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은 유럽 최초의 성전인 스위스 베른 성전을 헌납했다.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헌납 첫날 오후 모임에서 말씀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그날 “오후를 위해 차분하고, 조용하고, 정중하고, 경건하게 생각과 마음을 준비하면서” 성전에서 홀로 한 시간을 보냈다.1 말씀 도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깨어나 정신을 차리며 새벽이 밝아 오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 헌납될 예정인 거룩한 성전이 제일 먼저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금식을 해야겠구나. 구두를 닦고, 옷을 다리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졸리코펜으로 오면서 내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이 방으로 들어와서는 [맥케이 회장님] 곁에 앉았고 그분이 말한 모든 것이 성스러운 속삭임으로 다가올 때에서야 그분이 가졌던 느낌을 어느 정도 제가 느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께 거룩함, 거룩함은 주님의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2

킴볼 회장이 성전 헌납과 같은 경우에만 경건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킴볼 회장은 경건을 삶의 한 방식이라고 말했으며, 매일매일의 작은 활동에서조차도 이러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예를 들어, 한번은 어느 집회소를 방문했을 때, 그는 화장실로 조용히 들어가서 바닥에 있던 휴지를 주워서 버리고는 세면대를 깨끗이 닦았다. 교회의 한 지역 지도자가 존중심이 깃든 이 단순한 행동을 보았다. 킴볼 회장의 모범에 감동된 그는 성스러운 장소와 물건에 더 큰 경건심을 보일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다.3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경건은 일요일에만 취하는 일시적인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의 태도이다.

경건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깊은 존경, 사랑, 외경심의 느낌이나 태도”입니다. 이를 하나님에 대한 헌신으로 묘사하는 것은 경건의 의미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우리 지도자 중 많은 이들이 경건함을 중히 여기는 것을 영혼의 가장 고귀한 품성의 하나로 표현했으며, 거기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의로움에 대한 참된 신앙, 뛰어난 교양, 삶의 더 훌륭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의 다른 원리들과 마찬가지로, 경건은 더욱 큰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경건이 일요일만 취하는 엄숙하고 일시적인 태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경건에는 사랑, 존경, 감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행복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덕성입니다. 사실상 후기 성도들은 온 지상에서 가장 경건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4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그리고 그분들의 거룩한 이름에 대해 경외심을 지녀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에 대한 경건은 해의 왕국에 이르는 사람들의 필수 자격 곧 특성입니다. “시현”으로 알려져 있으며, 1832년 2월에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에게 주어진 교리와 성약 76편에서 다음 구절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이같이 우리는 모든 것에 뛰어난 해의 영광을 보았나니-그곳은 하나님 곧 아버지께서 자기 보좌에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시는 곳이니라,

“그의 보좌 앞에 모든 것이 겸손하고 경건히 절하며 영원무궁토록 그에게 영광을 돌리느니라.

“그의 면전에 거하는 자들은 장자의 교회요,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는 것같이 보고 하나님이 그들을 아시는 것같이 아나니, 그의 충만함과 그의 은혜를 그들이 받았음이라.

“그리고 그는 권능에 있어서, 힘에 있어서, 주권에 있어서 그들을 동등하게 하시느니라.” (교성 76:92~95)

현대의 또 한 가지 계시는 신의 이름 그 자체도 경건하게 다루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며, 나아가 그것을 자주 사용하는 일도 피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교성 107:2~4) …

하나님과 그분의 이름에 대한 경건은 우리가 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품성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5

어느 날 병원에서 저는 한 간병인에 의해 수술실 밖으로 실려 나갔는데 그 간병인은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고, 분노에 찬 그의 입에서는 지독한 악담이 구주의 이름과 뒤섞여 튀어나왔습니다. 비록 혼미한 상태였지만 저는 움찔하며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제발! 제발! 당신이 욕하는 이름을 지닌 분은 바로 저의 주님입니다.”

쥐 죽은 듯한 침묵이 있은 다음에 억제된 음성으로 그는 “죄송합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20:7)고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명하셨다는 것을 그 순간에 잊고 있었습니다. …

무대에서, 전화를 통해, 예민한 귀와 눈들은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부당하며 불경스럽게 사용되는 것 때문에 매일 격분합니다. 클럽에서, 농장에서, 친목회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삶의 모든 터전에서 구속주의 이름이 너무나도 주제넘고 사악하게 사용됩니다. 경솔하고 부주의한 우리는, 그리고 사악하고 반항적인 우리는 형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모든 것을 모독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일상적인 대화에서 그것을 흔하고 불경스럽게 사용함으로써 궁극적인 파멸을 불러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하게 사용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주님의 이름을 권세 없이 사용하는 것을 포함하며, 계시와 권세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주님으로부터 그것들을 직접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시대를 통해 선지자들은 이런 심각한 죄를 꾸짖는 것을 결코 그친 적이 없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는]” (이사야 48:1)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고 회개하기를 촉구했습니다. …

교회의 회원으로서 경건하게 주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단순하게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훌륭한 후기 성도로서 우리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차와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저속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악담을 하거나 중상하지 않으며,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욕하는 습관을 피하는 것과 관련하여 완전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욕설에 관한 한 입을 다문다면 그 문제에서는 완전해지는 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죄를 범하는 일을 멈추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의로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와 설교와 토론 중에서 주님의 이름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말해야 합니다. …

예수께서는 그분의 삶을 완성하셨으며,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값진 피를 흘리셨고,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한 삶을 바치셨으며, 우리의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그분의 속죄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을 입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얼마나 경솔하며 배은망덕합니까! 은혜를 모르는 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일어나는 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그분의 행함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그분을 존중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우리 중 수백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칭하고 있지만, 좀처럼 그분의 가장 높은 은사인 그분의 생명에 감사드리며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르신 우리 주님에 대해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바칩시다. “그런즉 모든 사람은 나의 이름을 어떻게 입술에 담을지 조심할지어다.”(교성 63:61)라는 현대의 계명을 기억합시다.6

성전, 집회소, 가정은 경건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중요한 또 하나의 분야에서 현대의 계시를 통해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집에 대해 합당한 경건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지시하셨습니다. 조셉 스미스에게 주어진, 커틀랜드 성전의 헌납 기도로 알려져 있는 중요한 계시를 통해, 주님께 건립된 다른 성스러운 모든 성전들과 마찬가지로 이 성전도 그분에게 경건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지시가 주어졌습니다. (교성 109:13, 16~21 참조)

참으로 실질적인 의미에서, 교회의 성스러운 성전들에 대해 주어진 말씀은 모든 “주님의 집”, 즉 집회소 또는 성도들이 예배하는 다른 장소, 또는 모든 후기 성도 가정에 적용됩니다.7

후기 성도들에게 예배당은 대성당에 있는 구석진 곳이나 방이 아니며, 금과 보석으로 된 제단이 있는 곳도 아닙니다. 겉치레도 허식도 없고, 동상도 없고 그림도 거의 없는, 간단하고 평범하게 장식된, 깨끗하고 밝고 예배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참된 형제애 속에서 편안하게 앉는 곳이고, 공과를 배우고, 합창단이 노래하고, 회원들이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곳이며, 모든 사람들이 지식과 영감을 얻는 곳이고, 또한 노소를 막론하고 성찬을 취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 시작되어 삶 속으로 들어오며, 여기서 신앙이 생기고 되살아나며 성결케 됩니다.

예배당은 침울한 얼굴, 딱딱한 격식, 또는 차갑고 메마른 침묵이 있는 형식적인 경건을 위한 장소는 아니지만 그곳에는 항상 거룩한 장소와 성스러운 목적과 신성한 존재들에 대한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8

우리는 경건한 사람들입니까? 가정과 교회에서의 우리의 행동에는 창조주에 대한 경건이 나타나 있습니까?

때때로 우리는 의심하기도 합니다. 성찬식과 여러 대회에서는 어린이들이 통제 받지 않고 복도를 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 동안 성인들이 옆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졸며, 젊은이들이 현관에 모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늦게 와서 소란스럽게 자리로 가는 가족들과 모임 후에 예배당에서 시끄러운 대화를 나누는 무리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구도자들, 친구들, 그리고 간증이 약하고 이제 막 커 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임이 주님의 영이 임재하며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모임이 되고, 효과적인 선교 사업 도구로서의 힘을 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영을 느끼기 위해 불필요하며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막아내야 합니까?9

훌륭한 사람은 경건합니다. 그는 비록 예배의 집에 홀로 있더라도 정중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을 때 그곳에는 어떤 회중도 모여 있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3:5 참조] 감리 역원들은 매우 세심하게 계획하여 단상에서 어떤 속삭임도 들리거나 보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훈련하고 훈육하며 (반별로 나누어 감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께 앉아야 합니다. 안내자는 훈련을 받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조용하게 자리 안내를 마쳐야 합니다. 참석자들은 미리 도착하여 조용한 음성으로 친근한 인사를 나누고, 천천히 발걸음을 떼고,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조용하게 명상의 분위기 속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노래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기도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이전에 맺은 성약을 새로이 하며 성찬을 취함으로써 최대한 온전히 참여해야 합니다. 공과의 가르침과 설교의 내용과 서로 나눈 간증을 유창함이 아닌 진실함의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으로 따를 기회가 주어집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교사 또는 연사마저도 우리가 진전시킬 수 있는 생각을 나눔으로써 기여하기 때문에 생의 원천에서 깊이 들이마실 기회가 주어집니다. 예배당의 문을 통해 조용히 들어가면서 우리는 모든 비판, 걱정, 근심, 그리고 직업, 정치, 사회 및 여가와 관련된 모든 계획을 뒤로 하고, 우리 자신을 차분히 명상과 예배에 바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배우고, 회개하고, 용서하고, 간증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10

경건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경건은 어디서 시작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습니까?

다른 모든 신성한 덕성이 그렇듯, 경건을 위한 비결은 바로 가정입니다.

자녀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 자녀들이 머리를 숙이고, 팔을 포개고, 눈을 감는 법을 배우는 것은 개인 및 가족 기도를 하는 동안입니다. 가정에서 배운 행동이 교회 모임에서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가정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운 어린이는 예배 모임에서 기도하는 동안 조용히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곧 이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밤이 가정 생활의 일부가 될 때, 자녀들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배우고 모든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특별한 시간이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음악은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입니다.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찬송가들은 가정에서도 친숙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집에서 간단한 찬송가를 배우도록 부모가 돕는다면 유익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자녀들은 성찬식과 그 밖의 모임에서 노래 부르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일요일 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노력하여 모임을 위한 준비가 즐거운 가족 경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이 다 되어 자녀들을 모으고, 옷을 입고, 모임으로 급히 가는 것은 경건을 해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이러한 습관에 빠지면, 가시 돋친 말로 인해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종종 생기며, 자녀들은 종종 예배하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해 합니다. 모임을 위해 미리 잘 준비하여,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예배당에 도착하고, 함께 앉아 전주 음악을 듣고, 세상적인 관심사를 마음에서 내보내는 가족은 얼마나 더 경건하겠습니까.

어린 자녀들이 있는 부모는 때때로 어린이들이 모임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돕고 소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참을성과 단호함, 그리고 가정에서의 준비는 성공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교회에서 자녀들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젊은 부모들은 와드에 계시는 경험 많은 부부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모임 전후에 교회 회원들이 예배당에서 무리를 지어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표면상으로 볼 때 불경한 어떤 행동들은 우리가 호의적인 사람들이며, 사람을 방문하고 우정 증진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에 안식일은 편리한 시간이라는 악의 없는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부모들은 모임 전후에 현관에서 또는 예배당 밖의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가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모임 후에 부모들은 가정에서 한 가지 생각, 음악 순서, 또는 그 밖에 모임의 긍정적인 면 몇 가지에 대해 자녀들과 토론함으로써 예배의 영을 가정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11

경건에 대한 우리의 모범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경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그 의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경건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지역 지도자들과 가족들이 경건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 향상될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회 전체의 노력을 마음속에 그려 봅니다. …

참된 경건은 매우 중요한 특성인 동시에, 악의 세력이 영향력을 넓혀갈 때 세상에서 가장 빨리 사라져 가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의 수백 만 회원들이 경건한 행동에 대한 본보기가 된다면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선한 영향이 얼마나 될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그러한 경건한 백성이 될 때 우리 가족에게 미치는 커다란 영적 영향이야말로 우리가 미처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12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155쪽에서 경건의 예들을 살펴본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경건하게 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여러분의 삶에서 경건의 어떤 예를 보았는가? 여러분은 이런 경험들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156쪽에서 처음 네 단락을 살펴보면서, 무엇이 경건이고 또 무엇이 경건이 아닌지에 관한 킴볼 회장의 가르침을 찾아본다. 후기 성도들은 왜 “온 지상에서 가장 경건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취하는 것을 들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킴볼 회장의 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57쪽 참조)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58~161쪽을 살펴보면서, 경건한 행동과 태도, 그리고 경건하지 못한 행동과 태도를 찾아본다. 어떤 방식으로 그런 행동과 태도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이 어떻게 우리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교회에서 경건해지기 위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

        여러분은 자녀들이 성찬식에서 경건해지기를 바라도록 돕기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교회의 다른 모임과 활동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161~162쪽에 있는 예들 참조)

        이 장의 마지막 두 단락을 공부한다. (163쪽) 향상된 우리의 경건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 지역 사회에는 어떤가?

관련 성구: 열왕기상 6:1, 7; 마태복음 21:12~14; 앨마서 37:14~16; 교성 63:61~62, 64

1.       Francis M. Gibbons, Spencer W. Kimball: Resolute Disciple, Prophet of God (1995년), 192쪽 참조.

2.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534쪽.

3.       Gibbons, Spencer W. Kimball: Resolute Disciple, Prophet of God, xi쪽 참조.

4.       We Should Be a Reverent People (소책자, 1976년), 1, 2쪽.

5.       We Should Be a Reverent People, 1~2쪽.

6.       “신성 모독에 대한 킴볼 회장의 말씀”, 성도의 벗, 1981년 9월호, 1, 3~5쪽.

7.       We Should Be a Reverent People, 2쪽.

8.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222쪽.

9.       We Should Be a Reverent People, 1쪽.

10.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222~223쪽.

11.     We Should Be a Reverent People, 2~3쪽.

12.     We Should Be a Reverent People, 4쪽.

  16 

안식일-기쁨에 찬 날

안식일은 활기와 기쁨에 찬 예배의 날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교회를 두루 여행하면서 안식일을 존중하는 성도들을 볼 때 무척 기뻐했다. 그는 특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노력으로 인해 축복 받았던 두 사람을 만났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저는 한 지역의 스테이크를 재조직하면서 스테이크 내의 한 중요한 직분에 봉사할 어떤 사람과 접견을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정비소를 운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십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요.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운영이 됩니까? 보통 정비소 주인들은 안식일에도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라고 저는 물었습니다. ‘저는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펴 주시니까요’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습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정말 치열합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일요일에도 종일 문을 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형제님은 한 번도 열지 않습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열지 않습니다. 저는 감사하고 있고, 주님은 관대하시며, 제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스테이크에서도 재조직을 하게 되었는데, 가장 높은 직책 중 하나를 위해 한 형제가 거론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형제의 직업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식품점을 운영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식일에도 문을 여는데, 형제님은 어떻습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열지 않습니다.’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칠일을 여는 사람들과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제가 다시 물었고, 그는 ‘경쟁이 됩니다. 적어도 저희가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매출이 제일 좋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그렇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안식일에는 평일에 파는 것보다 두 배 정도는 많이 팔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 삽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호의를 베푸셨으며, 또 은혜로움으로 보살펴주셨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주님은 희생처럼 보이는 이런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님이 버는 돈은 깨끗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찾는 일에서 그 돈은 분명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1

킴볼 회장은 안식일을 활기와 기쁨에 찬 예배의 날, 다시 말해 세상의 것들을 뒤로 하고 의로운 활동으로 하루를 채우는 시간으로 보았다. 경전을 인용하여 그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만들고, “유쾌한 마음과 얼굴”로 그날을 맞이하도록 권고했다. (이사야 58:13; 교성 59:15)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주님은 항상 그분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존중할 것을 명하셨다.

모세는 땅이 진동하고 연기가 자욱한 시내 산에서 내려와 방황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인간의 삶에서 행동의 근본이 되는 규칙인 십계명을 전해 주었습니다.그러나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태초부터 그에 따라 살도록 명을 받았었는데, 단지 주님에 의해 모세에게 되풀이된 것뿐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계명들은 지상 생활 이전에 존재했으며 인류를 위해 천국 회의에서 제정된 시험 중 일부였습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에 따라 사람은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네 번째 계명은 그러한 경배를 위해 특별히 안식일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3, 8~11)

많은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순간의 문제이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그것은 으뜸가는 계명들 중 하나에 불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창조 이전에 우리 각자를 위해 세워진 개별적인 시험, 즉 “주 그들의 하나님이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다 행하는지를 보[는]” (아브라함서 3:25) 시험을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입니다. …

시내 산의 우레 소리에서 전해져 내려온 엄숙한 명령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계명은 결코 폐지되거나 수정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대에 다음과 같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곧 주의 날에는 네 죄를 네 형제들에게 그리고 주 앞에 고백하며, 네 헌물과 네 성찬을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바칠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 날에는 다른 어떠한 일도 하지 말 것이요, 다만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 네 기쁨이 충만하게 되도록 할지니라.”(교성 59:12~13)3

안식일은 사업이나 여가 활동을 위한 날이 아니다.

저는 … 도처에 계신 모든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더욱 엄격히 준수할 것을 촉구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날이 세계 곳곳에서 그 성스러운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부와 쾌락과 여가 활동과 거짓 신과 물질적인 신을 좇아 안식일의 성스러운 목적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도처에 계신 모든 성도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고 또 거룩하게 지킬 것을 계속해서 촉구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에 거래하지 않는다면 상점은 그 거룩한 날에 문을 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휴양지, 운동 행사, 온갖 종류의 여가 활동을 하는 곳에도 적용됩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금전의 추구가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레위기 19:30)는 주님의 계명 위에 승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4

우리 기독교 세계의 많은 곳에서 성스러운 안식일에 영업을 위해 문을 여는 사업체들이 아직도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구매하는 사람들인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만약 우리들, 즉 사람들이 상점과 업체에서 구매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업체들은 문을 계속 열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 가정의 밤 시간에 자녀들과 논의해 보십시오. 모든 가족이 이제부터는 안식일에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5

세상은 대부분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식일에 호수는 보트로 가득 차며, 해안은 만원이고, 극장은 최대 인원을 기록하고,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안식일은 이제 로데오나 집회, 가족 소풍을 즐기는 날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야구 경기마저 성스러운 날에 열립니다. “평소대로 영업합니다”는 많은 사람들의 선전문구가 되었으며, 우리의 거룩한 날은 휴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휴일로 여기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락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돈벌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주고 있습니다. …

주의 날에 사냥하고 낚시하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농작물을 심거나 경작하거나 수확하는 것도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에 협곡으로 소풍을 가든지, 운동 경기나 로데오, 경마나 쇼 같은 다른 오락에 참여하는 것도 역시 그날을 거룩하게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다른 모든 면에서는 충실한 후기 성도들 중 일부가 낚시철이 시작되는 첫날에 강에 있지 않으면 최고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거나, 일요일에 여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휴가가 충분히 길지 않을 것이라거나, 또는 안식일에 가지 않으면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끔씩 여가 활동을 목적으로 교회 모임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어기면서 종종 그들의 가족을 데려가기도 합니다. …

합리적인 여가 활동, 즉 운동, 소풍, 연극, 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교회는 조직체로서 그런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에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즉 일할 때와 놀 때, 예배드릴 때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

안식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참으로 필요한 일, 예를 들어 병자를 돌보는 일은 실제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바로 우리의 동기입니다.6

때때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희생과 자제의 문제로 단정되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시간 관리와 시기 선택의 문제입니다. 일주일에 6일은 우리가 일하고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며, 세계 역사 중 특히 우리 시대에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안식일을 피하면서 평일 활동을 계획하고 장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7

안식일은 예배와 합당한 행동을 통해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한 날이다.

안식일은 합당하고 거룩한 일들을 행하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일과 여가 활동을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안식일에는 건설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며,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빈둥거리는 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준수하고자 한다면, 무릎 꿇고 기도하고 공과를 준비하며, 복음을 공부하고 명상하며, 아픈 사람과 괴로운 사람을 방문하며, 선교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낮잠을 자고, 건전한 자료를 읽고, 그날 참석해야 할 모든 모임에 참석하는 것입니다.8

[안식일에] 가족이 자리를 함께하여 서로 대화하고, 경전을 공부하고, 친구와 친척 그리고 아픈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안식일은 또한 일지를 기록하고 계보 사업을 하기에 매우 좋은 시간입니다.9

히브리어로 안식일(Sabbath)이라는 말은 “휴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조용한 평안, 마음과 영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이기적인 관심사와 열중케 하는 활동에서 벗어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영속적인 성약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출애굽기 31:16 참조] 그것은 영원토록 주님과 그분의 자녀 사이의 표적입니다. [출애굽기 31:17 참조] 주님을 예배하며 그분께 우리의 감사와 사의를 표현하는 날입니다. 모든 세상적인 관심사를 떠나 주님을 겸손하게 찬양하는 날입니다. 겸손은 승영을 향한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고통과 괴로움을 위한 날이 아니라, 휴식과 의로운 기쁨을 위한 날입니다. 호화로운 향연을 위한 날이 아니라, 간단한 식사와 영적인 잔치의 날입니다. … 이날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자비롭게 주신 날입니다. 가축이 풀을 뜯고 쉴 수 있는 날입니다. 쟁기를 헛간에 넣어 두고 다른 기계 또한 쉬게 하는 날입니다. 고용주와 종업원, 주인과 종들이 쟁기로 갈고, 땅을 파고, 힘써 일하는 것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날입니다. 사무실을 잠그고, 거래를 연기하고, 고민을 잊을 수 있는 날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 [창세기 3:19 참조]라는 첫 번째 명으로부터 인간이 잠시 해방될 수 있는 날입니다. 육신이 휴식을 취하고, 마음은 긴장을 풀고, 영이 자랄 수 있는 날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설교를 하고 간증할 수 있는 날이며, 아울러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거리를 초월하여 인간이 높이 오를 수 있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보는, 다시 말해 우리의 약점을 분석하고, 우리의 죄를 관련자들과 주님께 고백하는 날입니다.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금식하는 날입니다. 좋은 책을 읽고, 명상하고 깊이 생각하는 날이며, 신권 및 보조 조직을 위한 공과를 공부하는 날이며, 경전을 공부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날이며, 잠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고 긴장을 늦추는 날입니다. 아픈 사람을 방문하고 복음을 전하는 날이며, 전도하는 날입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자녀와 좀 더 친해지며, 합당한 교제를 하고, 선을 행하며, 지식과 가르침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우리가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영과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를 영적인 상태로 끌어올리며, 그분의 희생과 속죄의 상징물을 취하고, 복음과 영원한 왕국의 영광을 생각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높은 길로 오르는 날입니다.10

우리는 여러분 각자의 … 모임 일정에 따라 일련의 일요 모임이 있기 전이나 후에, 구주께서 니파이인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가르치신 후에 집으로 가서 그분이 말한 내용을 깊이 생각하고 그에 관해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니파이전서 17:3 참조) 그러한 절차를 마음에 간직합시다.11

충만하고 풍성한 안식일에는 교회 모임에 참석하고 성찬을 취하는 일이 포함된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충만하고 풍성한 안식일은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에 대해 배우며 성찬을 취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날을 유용하고 영적인 활동으로 채우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큰 웃음 소리가 아니라 감사와 기쁜 마음과 얼굴로 이러한 일들을 하기를 바라시고, 우리의 성인 남자들과 소년들이 공과를 준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권 모임에 참석하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백성들이 주일학교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구원의 계획을 배우기를 바라시십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성찬식에 참석하여 성도들과 함께 노래하고, 입을 열어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영으로 기도하며, 성찬의 상징물을 취하기를 바라십니다. 전적인 헌신과 조건 없는 순종을 바치고, 옳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행하며, 그분을 한결같이 기억하겠다고 다시 서약하기를 바라십니다.12

성찬식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선지자 조셉을 통해 전해진 계명에는 “그 발이 시온의 땅을 딛고 있[는]” 사람들인 그분의 교회에 속한 회원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교성 59:3, 9 참조] 그 요건은 성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 모두를 포함합니다. … 가족을 결속시키는 일을 더 잘 돕기 위해, 크건 작건 온 가족이 하나로 뭉쳐 성찬식이 열리는 집회소로 가는 일 이외에 부모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자녀들은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습관을 배울 것이고, 안식일을 어기지 않을 것이며, 비록 아주 어리더라도 가르침과 간증 그리고 그곳에 있는 영을 흡수할 것입니다. 스테이크와 와드와 정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13

매우 어린 소년이었을 때 저는 성찬식에 참석하는 습관에 대해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항상 함께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그런 따뜻한 날 오후면 곧 나른해져 어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잠을 자곤 했습니다. 예배 중에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저는 “모임에 참석하는” 습관을 배웠습니다. 그 습관은 평생 제 몸에 배었습니다.14

어떤 어린이도 의식적으로 햇빛을 흡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의식 중에 빛이 그 작은 몸에 힘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이도 영양분을 주는 자기 어머니의 모유나 뚜껑 열린 통에서 나오는 음식의 가치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결국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힘과 체력을 얻습니다. …

완전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도 모든 어린이는 성찬식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번 무엇인가를 흡수할 것입니다.15

일요일 아침마다 우리가 멈춰 서서 “신권회에 갈까, 가지 말까? 오늘 성찬식에 갈까, 말까? 우리가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하고 말한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허비하는 것입니까. … 지금뿐만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도 단호히 결정을 내리십시오.16

제가 아는 사람은 안식일마다 집에 있으면서 성찬식에 참석하고 보잘 것 없는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집에서 좋은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정당화했습니다. 가정은 물론 성스러운 곳이어야 하지만 그곳은 기도의 집이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성찬이 집행되지 않으며, 그곳에는 회원들과의 우정 증진이나 역원들에게 하는 죄의 고백도 없습니다. 산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리고 숲과 시냇물을 그분의 수공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오직 집회소나 기도의 집에서만 주님의 모든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주 예수를 기념하여 떡과 포도주를 취하기 위하여 자주 함께 모일 필요가 있느니라.” (교성 20:75)17

우리는 흥겨워지기 위해, 또는 교훈을 얻기 위해서만 안식일 모임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책임이며, 어떤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주님을 예배하기를 원한다면, 연단에서 전해지는 내용에 관계없이 모임에 참석하고, 성찬을 취하고, 복음의 아름다움을 숙고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모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바로 여러분이 부족한 것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대신해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주님을 받들어야만 합니다.18

주님은 안식일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의 목적은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박탈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그것을 받아들여 순종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주의 깊게 정확하게 순종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것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림으로써 고통을 받는 것도 바로 그 사람입니다. …

여행을 하면서 저는 안식일에 얻을 수 있는 이윤을 포기하고 금지된 일들을 하지 않는 충실한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안식일에는 소를 몰지 않는 목축업자, 과일이 제철일 때면 대체로 밤낮 없이 열려 있으나 안식일에는 닫혀 있는 길가의 과일 판매대, 주의 날에는 닫혀 있는 잡화점, 식당, 가두 판매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사업도 잘 되어 가며 율법을 지키면서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수익을 희생하는 훌륭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기뻐하고, 그들의 신앙과 확고부동함에 대해 그들을 축복하고 싶은 느낌이 마음속에 일곤 합니다.19

저는 궁극적으로, 재정적인 희생으로 보이는 그 어떤 일로도 인간은 결코 고통받지 않을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율법에 따라 생활할 것을 명하신 후 다음과 같이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20

이 계명에 관해서는 다른 선지자들 가운데에서도 여호수아를 따릅시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14~ 15)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된 다음과 같은 축복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레위기 26:2~6)21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안식일을 준수하고 거룩하게 지킬 것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율법이 여전히 그들의 마음이 아닌 돌판 위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듯 합니다. …

… 우리 시대에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백성들의 이해력이 높음을 인식하시고는, 그들이 예배와 안식일 준수에 관한 완전한 정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주 네 하나님께 의롭게 희생을, 참으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의 희생을 바칠지어다.” (교성 59:8)

… 그분은 우리에게 첫째 되는 이 커다란 계명을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또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니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무한한 은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하며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의 선한 사업을 발전시키면서 칠 일 중 하루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측정하는 표시입니다.22

사람들은 종종 안식일에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합당하거나 합당하지 않은지,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온 마음과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기심을 멀리 보내고 욕망을 억제할 수 있다면, 또한 예배하는 마음이라는 척도로 각 안식일 활동을 가늠할 수 있고, 주님과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며,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바친다면, 그런 사람의 삶에서 안식일을 깨뜨리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23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167~168쪽을 살펴본다. 주님께서 안식일에 부여하신 중요성과 안식일이 주중의 다른 날과 다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이 안식일을 “기쁨에 찬 날”로 만드는가?

        168~169쪽을 살펴보면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을 찾아본다. 이러한 활동들은 왜 안식일에 적절하지 않은가? 170~174쪽에서 킴볼 회장은 안식일을 위한 “유용하고 영적인 활동”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은 안식일 준수를 강화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한 적이 있는가?

        킴볼 회장은 안식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고려사항은 바로 … 동기입니다.”라고 말했다. (169쪽) 일을 해야만 할 때 사람들은 안식일 예배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안식일이 휴식의 날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70~172쪽 참조)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왜 잘못된 것인가?

        172~174쪽에서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목적들을 살펴본다. 여러분이 최근에 교회 모임에서 경건하게 느낀 것은 언제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교회 참석과 예배를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가?

       킴볼 회장은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받는 축복에 대해 간증했다. (174~175쪽; 또한 165, 167쪽에 있는 이야기 참조) 이 계명을 지켰을 때 여러분이 받았던 축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가정의 밤 또는 가족 평의회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서로를 돕기 위해 여러분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관련 성구: 창세기 2:1~3; 마가복음 2:23~28; 3:1~5; 모사이야서 13:16~ 19; 교성 68:29

1.       Conference Report, 1953년 10월, 55쪽.

2.       “안식일-기쁨의 날”,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5쪽 참조.

3.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267~269쪽.

4.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6쪽.

5.       Conference Report, 1975년 10월, 6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2월호, 5쪽.

6.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3~5쪽.

7.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쪽.

8.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5쪽.

9.       Conference Report, 1981년 4월, 62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10월, 67쪽.

10.     “The Fourth Commandment”, M Man-Gleaner Manual 1963~1964년 (leader’s manual), 277~278쪽.

11.     Conference Report, 1980년 4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80년 11월호, 5쪽.

12.     “The Fourth Commandment”, 279~280쪽.

13.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221쪽.

14.     Conference Report, 1944년 10월, 43쪽.

1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17쪽.

16.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17쪽.

17.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220쪽.

18.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5쪽.

19.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 6쪽.

20.     Conference Report, 1953년 10월, 56쪽.

21.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5쪽.

22.     “The Fourth Commandment”, 275~276쪽.

23.     “The Fourth Commandment”, 280쪽.

  17 

순결의 법

주님은 도덕성에 관해 오직 하나의 표준, 즉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결혼 전의 완전한 순결과 결혼 후의 완전한 정절이라는 표준을 갖고 계십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데이트, 구애, 그리고 결혼에 관해 교회 회원들에게 조언을 하면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순결과 정절에서 주님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 율법을 범하는 것이 정당하며 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사탄의 시도에 대해 경고했다. 악마의 이같은 속임수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한 쌍의 젊은이들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맡겼지만,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 청년의 말을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부도덕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후기 성도 젊은이가 그런 일을 정당화하는 것을 듣고 저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잘못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요.’라고 반복했다.

“그들은 이 가증스러운 반론을 수 차례 반복한 나머지 스스로 설득당했으며, 저항의 벽이 세워졌고, 이 벽 뒤에서 그들은 완강하게, 거의 반항적으로 버텼습니다.”

그들의 합리화에 맞서 킴볼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랑하는 젊은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를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로를 탐욕한 것입니다. … 만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에게 해를 미치기보다는 차라리 그를 위해 죽고자 할 것입니다. 탐닉의 시간에는 순수한 사랑이 한쪽 문 밖으로 내몰려 나가고, 탐욕이 다른 문으로 슬쩍 들어옵니다.”1

킴볼 회장은 또한 기쁨과 평화는 순결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온다고 간증했다. 그는 성전에서 자신이 겪었던 다음과 같은 경험에서처럼, 충실한 회원들의 삶에서 이러한 축복들을 보았다.

“이곳에는 화평과 조화 그리고 간절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준수한 용모의 한 청년과 매우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처녀가 제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위엄을 가지고 저는 지상에서 그리고 해의 영광의 세계에서 영원토록 그들을 결혼시키고 인봉시키는 천국의 의식을 선포했습니다. 그곳에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천국이 그곳에 있었습니다.”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순결의 법은 결혼 관계 밖에서의 일체의 성적 관계를 금한다.

도덕성에 관한 교회의 입장이 이해될 수 있도록, 우리는 도덕성이 퇴색되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올이 보일 정도로 낡아 빠진 것이 아님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며, 그분의 성약과 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식고 별이 더 이상 빛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세계와 주님의 교회에서 순결의 법은 여전히 기본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오래된 가치관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옳기 때문입니다.3

결혼 전의 완전한 순결과 결혼 후의 완전한 정절은 여전히 죄, 비참함, 그리고 불행이 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표준입니다.4

결혼이란 제도를 비웃고 결혼 전의 순결과 결혼 후의 정절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새로운 풍조를 세워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하려고 작정한 듯이 보입니다. 결국은 깊은 고독으로 이어지게 될 커다란 이기심을 그들은 볼 수 없는 것일까요? 쾌락에 의해 떠밀려 자신들이 기쁨에서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볼 수 없는 것일까요? 그런 종류의 성취가 공허함과 허탈함을 낳을 것이며, 덧없는 쾌락이 결국 그들을 거기서 구출해 줄 수 없음을 그들은 볼 수 없는 것일까요? 수확의 법칙은 폐기된 적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7 참조]5

초기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거슬리는 수많은 죄를 언급했습니다. 그 중 많은 것들은 간음, 동성애, 음탕함, 부정, 무절제, 저속한 대화, 불순, 무절제한 애정, 음행 등의 성적인 죄였습니다. 거기에는 결혼 생활 밖에서의 모든 성적 관계, 즉 애무, 성도착, 수음, 생각과 말에서 성에 몰두하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숨겨지고 은밀한 모든 죄 그리고 거룩하지 못하고 불순한 생각과 행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 가운데 가장 나쁜 것 중 하나는 근친 상간입니다.6

어떤 사람이 [동성애적] 욕망과 경향을 갖고 있다면, 애무나 음행이나 간음에 대한 충동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행위를 간음과 그 밖의 비슷한 성적 행동에 대한 정죄와 같은 정도로 강하게 정죄하고 금하십니다. … 다시 말씀드리건대 많은 사람들이 믿는 바나 말하는 바와 달리 이런 [행위는] 간음과 마찬가지로 극복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다만 깊고 지속적인 회개를 기초로 하여서만 이루어지며, 이 회개는 그런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버리고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 정부와 교회, 그리고 매우 많은 타락한 개인들이 그러한 행위를 형사 범죄에서 개인적인 특권으로 바꾸어 놓으려 애쓴다는 사실이 이 행위의 본질이나 심각성을 변경시키지는 않습니다. 도처에 있는 선한 사람들, 현명한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 행위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규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행위를 규탄하며 고발합니다. … 이 추악한 동성애라는 죄는 모든 시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도시와 문명이 그것으로 인해 사라져 갔습니다.7

적합한 결혼 관계에서의 순수한 성 생활은 승인된 것입니다. 가치를 지닌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와 적합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인 결혼 관계 밖에서의 성적 만남은 그 상대를 이용하고 착취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쉽게 상대를 바꿔버릴 수 있으며, 착취하거나 가치없이 소모되도록 만듭니다.

불법적인 성 관계는 이기적인 행동이며 배신이며 부정직한 것입니다.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불충실한 일입니다. 결혼은 현세와 영원을 위한 것입니다. 음행과 기타 모든 일탈은 오늘, 이 시각, “지금”만을 위한 것입니다. 결혼은 생명을 줍니다. 음행은 죽음으로 이끕니다.8

사랑은 건전하고 비이기적이지만 정욕은 부도덕하고 이기적이다.

젊은 청년이 줄 수 있는 것이 열정과 그에 따르는 사악한 열매, 즉 심한 죄책감, 역겨움, 미움, 혐오감, 그 결과로 일어나는 강한 증오, 그리고 혼외 관계에서의 불명예스러운 임신 가능성밖에 없으면서 인기, 유쾌한 시간, 안전, 즐거움, 나아가 사랑을 약속한다면 그는 자신의 남성다움에 충실치 못한 것입니다. 그는 사랑으로 자신의 처지를 주장하지만 그가 주는 것은 정욕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젊은 여성은 자신을 값싸게 파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삶의 파괴와 영혼을 좀먹는 고뇌입니다. …

그러면서도 이 젊은이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말을 이 얼마나 타락시킨 경우입니까! 열매가 쓴 이유는 그 나무가 썩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술은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육신은 “당신을 원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온화하며 건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주는 것이지,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봉사하는 것이지, 착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육체적 이끌림으로 생각하며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과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관해 말합니다. … 첫눈에 다른 사람에게 이끌릴 수도 있지만, 사랑은 육체적 이끌림 훨씬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깊고 포괄적이며 포용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이끌림은 많은 요소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신앙과 신뢰 그리고 이해와 협력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공통된 이상과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커다란 헌신과 동반자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깨끗함이며, 발전과 희생, 그리고 비이기심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결코 지치거나 약해지지 않으며, 질병과 슬픔, 가난과 궁핍, 성취와 실망, 현세와 영원 속에서 살아 숨쉽니다.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신뢰와 이해, 빈번하고도 진지한 감사와 애정의 표현이 끊임없이 커져야 합니다.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 소망, 목표가 끊임없이 단 하나의 채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용 또는 악용 당하는 것, 그리고 모욕과 불명예로부터 자신의 연인을 보호하는 젊은이는 참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일시적인 만족을 주는 생물학적 노리갯감으로 자신의 동반자를 이용하는 젊은이는 욕정에 빠진 것입니다.

영적, 정신적, 또 신체적인 면에서 매력적으로 보이게 처신하고, 말이나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자신 곁에 있는 동반자를 흥분시키거나 신체적인 반응을 자극하지 않는 젊은 여성은 참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만지고 흥분시키고 어루만지고 유혹하고 이용하는 젊은 여성은 욕정과 이용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

사악한 것의 특성을 감추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악한 것을 선하게 보이게 하는 악마의 술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욕정을 사랑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술수의 한 예입니다.9

성은 결혼 생활에서 중요하고 만족스러운 부분일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단지 성을 위해서만 계획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10

남편과 아내(오직 남편과 아내)의 성적 결합은 자녀를 세상으로 데려오는 주요한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성적인 경험이 단순한 노리개가 되거나 또는 단순히 열정과 욕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되도록 계획하시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합당한 성적인 경험이 자녀의 출생에만 완전히 국한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지시는 없었지만, 무분별한 성을 허용하는 어떤 조항도 주님에 의해 주어진 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현재까지의 많은 증거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11

우리는 외설물과 다른 형태의 부도덕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자녀이며, … 그분의 가장 훌륭한 피조물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순수하고 거룩하고 참되며, 힘 있고, 강력하며, 지상의 세력에서 자유로운 하나님이 될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영원한 존재이며,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경전에서 배웁니다. (아브라함서 3:22 참조) 그러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도처에는 거짓 교사들이 있어, 연설과 외설 문학,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저속한 말을 사용하여 육신의 욕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도덕적 표준을 해체하려는 비난 받아 마땅한 반론을 퍼뜨리고 있습니다.12

우리는 땅에 범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설물을 혐오합니다. 입법 행위를 통해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를 중단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남녀가 가족과 함께 이에 대항하는 장벽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께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이 사회의 선량한 시민인 여러분은 이런 추악한 악이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을 타락시키기를 원하십니까?”13

사람들에게 천하거나 음란한 대화, 그리고 비정상적인 관습을 강요하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사악한 행위를 볼 때, 우리는 사탄이 그의 사악하고 못된 손을 내밀어 이 지상의 사람들을 그의 손아귀로 끌어넣은 것은 아닌가 걱정하게 됩니다. 이 세계를 위협하는 악을 짓밟아 버릴 선한 사람들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계속해서 악과 타협하며, 왜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묵인합니까?14

우리는 부모와 지도자들이 외설물을 묵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정말로 쓰레기와 같지만, 오늘날에는 정상적이고 만족스러운 음식처럼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 외설물, 저속한 성적 충동, 그리고 성적 도착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15

외설물에 의한 죄는 불행하게도 낙태를 포함한 다른 심각한 범법 행위를 끊이지 않게 합니다.16

외설물이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범죄와 분명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살인, 강도, 강간, 매춘, 상업화된 악습은 이런 부도덕을 기반으로 자라납니다. 성 범죄 통계가 범죄와 외설물 사이의 관계를 잘 나타내 주는 듯 합니다.

외설물에 그것의 결점을 보완해 주는 사회적 가치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자녀들을 보호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퇴보해 가는 자유방임적인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17

곳곳에 있는 교회 회원들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외설물이라는 전염병에 저항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이 세상 도처에 있는 인류의 이 교활한 적에 맞서는 싸움에 적극적으로 또 열성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

… 전염병을 피하듯 외설물을 피하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시민으로서 여러분의 지역 사회에서 외설물에 맞서는 싸움에 동참하십시오. 외설물을 통해 부당 이익을 얻는 사람들의 주장, 즉 외설물을 제거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를 사람들에게서 박탈한다는 주장에 속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상태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들이 성적인 부도덕을 자유인 척 속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각자에게 소중한 영혼들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18

부모와 지도자들은 부도덕한 영향력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떤 종류의 부도덕한 행위에도 결코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삶의 초기에 여러분에게서 배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단 한 번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수백 번을 들려 주어야 하며, 가족과 부모가 이런 훌륭한 일을 기대할 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이 깨끗함을 유지하고 부도덕에서 자유롭기를 바라신다는 점을 자녀들은 알아야 합니다.19

부정은 시대의 크나큰 악마입니다. 그것은 문어처럼 촉수로 사람을 단단히 사로잡습니다. 청소년을 이같은 더러움으로 이끄는 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도덕 체계를 해체하는 몇 가지 수단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활동에 이따금 참석하며, 정련해 주고 보호해 주는 교회의 영향력에서 자신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복음은 그들의 개인적인 관심사보다 낮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들은 학업과 사교 생활, 또는 사업이나 직업을 우선시하여 중요한 교회 활동과 복음을 뒷전에 둠으로써 모임에 빠지게 되고, 교회와 그 표준에 관한 느낌이 다소 무감각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부정으로 이끄는 많은 것들 가운데 또 하나는 몰염치함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 남녀는 성에 관한 사실을 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해 합니다. 그들은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동차와 쇼 그리고 옷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성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몰염치한 정신은 아무 것도 신성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확장되었습니다.20

목이 깊이 파였거나 다른 방법으로 몸을 노출시키는 옷이 세상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

젊은이들이 몸을 드러내고 노출시키는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젊은 여성 친구들에게 단정한 옷을 입도록 권장한다면, 자신들 또한 용기와 좋은 판단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부적절한 옷을 입는 젊은 여성과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면, 스타일은 무척 빨리 변할 것입니다. …

주님은 용감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높은 지위와 무한한 축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위험도 무릅써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것도 박탈당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고 깨끗하고 순수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여러분은 “악의 형상 “과 “악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21

우리가 유혹을 피하고 자신을 계속 깨끗하게 지키고자 할 때, 순결하지 못한 것이 피해야 할 함정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22

다음과 같은 표준을 제언하는 바입니다. 사교적 만남에서 데이트, 즉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적어도 16세 이상이 될 때까지 미뤄야 하며, 설령 그때가 되더라도 상대의 선택과 관계의 깊이에 대해 크나큰 판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여러 해 동안 밀접한 교제를 여전히 제한해야 하는데, 이는 소년들은 19세가 될 때 선교사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트를 하는 것, 특히 이른 십대에 한 사람과 계속해서 데이트하는 것에는 많은 위험이 따릅니다. 이것은 인생의 전체적인 모습을 왜곡시킵니다. 그것은 가치 있고 풍부한 경험을 여러분에게서 빼앗아 가며, 우정을 제한하고, 현세와 영원을 위한 반려자를 선정하는 데 필요한 너무도 귀중한 교우 관계를 감소시킵니다.

춤, 여행, 교제, 데이트, 심지어는 영원한 결혼을 위해 젊은이들을 거룩한 성전으로 데려다 줄 연애로 꽃피게 될 한 사람과의 지속되는 데이트를 위한 시간도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타이밍이 참으로 종요합니다. 옳은 일이라도 그릇된 환경, 그릇된 장소에서 그릇된 시간에 행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23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깨끗하게 유지하고, 거룩하지 않고 불순한 모든 생각과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십시오. 우리를 위해 세워진 높고 의로운 표준을 손상시키고 낮추는 모든 교제를 피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은 평탄한 항해를 하게 될 것이며,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을 둘러쌀 것입니다.24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킴볼 회장이 179쪽에서 묘사한 한 쌍의 젊은이들과 180쪽의 두 번째 단락에서 언급한 한 쌍의 젊은이들을 비교해 본다. 어떤 것이 이들 두 쌍의 후기 성도 젊은이들을 그와 같이 다른 태도와 행동으로 이끌었는가?

        180쪽에 있는 세 번째 단락을 읽는다. 순결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80~181쪽 참조) 순결의 법을 소홀히 하는 것의 결과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율법에 순종할 때의 축복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다음의 문장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에 관해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것은 _______이다. 욕정은 _______이다.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81~183쪽 참조) 사랑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왜 킴볼 회장과 그 이후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외설물에 대해 경고해 왔다고 생각하는가? (183~184쪽 참조) 우리는 외설물의 확산과 영향력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싸울 수 있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방벽을 세우기” 위해 가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85~187쪽에 있는 표준을 살펴본다. 부모와 지도자들은 왜 자녀들의 인생 초기에 순결의 법을 가르치기 시작해야 하는가? 부모와 지도자들은 청소년들이 교회와 그 표준에 따라 참되게 생활하도록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청소년들이 교회 표준을 이해하고 지키도록 돕기 위해 교회는 어떤 자료를 제공하는가?

        단정함과 순결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옷을 입는 것에서 단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는가? (186쪽)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단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청소년들이 그들 삶의 모든 면에서 단정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도록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관련 성구: 고린도전서 6:9, 18~20; 야곱서 2:7; 앨마서 39:3~5, 9; 제3니파이 12:27~30; 교성 42:22~23, 40~41; 59:6

1.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151~152, 153, 154쪽.

2.       Conference Report, 1971년 10월, 153쪽; 또는 성도의 벗, 1972년 4월호, 4쪽.

3.       Faith Precedes the Miracle, 155쪽.

4.       Conference Report, 1980년 10월, 4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5쪽.

5.       Conference Report, 1978년 4월, 117쪽; 또는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21쪽.

6.       “킴볼 회장께서 도덕에 관해 강조하심”,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57쪽.

7.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59~160쪽.

8.       Faith Precedes the Miracle, 155, 156~157쪽.

9.       Faith Precedes the Miracle, 157~159쪽.

10.     용서가 낳는 기적(1969), 73쪽.

11.     “인류를 위한 주님의 계획”, 성도의 벗, 1976년 4월호, 3쪽.

12.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55~156쪽.

13.     Conference Report, 1975년 4월, 8~9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8월호, 33쪽.

14.     Conference Report, 1975년 4월, 162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11월호, 2쪽.

15.     Conference Report, 1974년 10월, 7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2월호, 32쪽.

16.     “보고와 목표”,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4쪽.

17.     Conference Report, 1974년 10월, 7쪽; 또는 성도의 벗, 1975년 2월호, 33쪽.

18.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4쪽.

19.     Conference Report, 볼리비아 라파스 지역 대회 1977년, 22~23쪽.

20.     Faith Precedes the Miracle, 162~163쪽.

21.     Faith Precedes the Miracle, 166, 167, 168쪽.

22.     용서가 낳는 기적, 207쪽.

23.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59쪽.

24.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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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롭고 행복하며 성공적인 결혼

결혼한 부부가 주님과 서로에게 변함없이 진실할 때 그들은 화목하고 영원한 관계를 향유합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을 받기 전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은 애리조나 주 새포드에 있는 한 보험 및 부동산 회사의 공동 소유주였다. 그의 종업원 중 하나였던 카르멘 리처드슨 스미스는 스펜서 킴볼과 카밀라 킴볼의 아들 에드워드가 1930년대 초에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렸을 때 두 사람이 보여 준 충실한 신앙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킴볼 형제와 그의 아내 사이의 관계는 제가 정말 감동했던 관계였습니다. 에드워드가 캘리포니아에서 장기 치료를 받고 있었을 때 킴볼 자매가 아들과 함께 있었고, 킴볼 회장은 위급할 때만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에드워드가 수술을 받은 후 회복되는 동안, 킴볼 형제가 집으로 돌아가서 나머지 가족을 보살폈고, 그의 아내는 에드워드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는 매일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짧은, 대여섯 줄의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에 특히 쫓길 때면 그는 내게 편지를 불러 주며 받아 적게 했는데, 그때의 느낌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것은 거의 성스러운 영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훌륭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서로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정말로 서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같이 보였습니다.”1

두 사람이 젊었을 때에도 매우 분명히 나타났던 스펜서와 카밀라 킴볼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강해지고 깊어졌다. 킴볼 회장은 자신과 아내가 나누었던 관계에 대한 감사를 종종 이렇게 표현했다. “카밀라는 내 곁에서 모든 경험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부모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잃은 적도 있었고, 조산한 우리의 유아들을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깊은 슬픔에 빠지기도 했고 또 희망으로 높이 솟아오르기도 했습니다. …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웃었습니다. … 온갖 슬프고 심각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카밀라 아이어링과 같은 아내와 함께하는 나의 삶은 원만하고 충만하며 풍성했습니다.”2

길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경험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주름살이 몇 개나 되는지 세거나, 우리가 한 어리석은 일들을 기억하거나, 우리의 약점을 기억하지 않는 현명한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 우리는 함께 고난을 겪고 눈물 흘리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사랑 많은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함께 슬픔과 낙담을 겪어 온 동반자, 꾸며진 겉모습에 나타나는 우리가 아니라 지금 그대로의 우리, 또는 앞으로 되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우리를 사랑하는 동반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3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영원한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며, 가족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서 필수적이다.

결혼, 즉 명예로운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정과 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명하셨으며, 우리는 이 시대의 그릇된 문화 때문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이 계획에서 사람들이 돌아서고 있다는 경고를 받아야만 합니다. …

일부 퇴보한 세상에서는 결혼에 반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고, 자녀가 없는 결혼 생활을 지향하는 추세가 강한 것 같습니다. 자연적으로 “왜 결혼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결혼 반대 혁명”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녀들은 부담이요, 구속이며 책임이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주장, 즉 구속과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이 즐거운 삶이라고 자신들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런 무지하고 파괴적인 생각이 우리 백성들 일부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4

대중 매체와 영상 매체 그리고 극장과 거리에 나타나는 악한 가르침들을 대체하고 무효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결혼, 합당한 결혼, 영원한 결혼을 가르쳐야 합니다.5

영원한 결혼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삶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영원한 목적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지속 시간이 삶과 일치해야 합니다. 일반 주례자 또는 성전 밖에서의 교회 주례자에 의한 결혼은 오직 현세에만, 즉 “죽음이 여러분을 갈라놓을 때까지” 또는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을 위해서만 맺어집니다. 그것은 죽음과 함께 끝나게 됩니다. … 영원한 결혼은 주님의 선지자 또는 그가 권세를 위임한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에 의해 집행됩니다. 이러한 결혼은 그 목적을 위해서 세워졌으며 헌납된 거룩한 성전에서 집행됩니다. 오직 그런 결혼만이 무덤을 초월하여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식 관계를 영원토록 지속시켜 줍니다.6

명예롭고 행복하며 성공적인 결혼은 틀림없이 모든 표준적인 사람들의 으뜸가는 목표일 것입니다. 결혼은 튼튼하고 행복한 가정과 후손을 위해 주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고의로 결혼을 피하는 사람은 표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계획 또한 좌절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지상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여자인 아담과 이브를 맺어 주시고 거룩한 결혼식을 집행하여 그들을 남편과 아내로 만듦으로써 친히 표준(norm)을 세우셨기 때문에 저는 표준적인(normal)이라는 말을 옹호합니다. 그들의 역할은 서로 달랐으며 본질도 매우 달랐습니다. 결혼식을 집행하신 직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다스리라” (창세기 1:28)

결혼하는 것은 표준적이며, 자녀를 낳는 것 또한 표준적이고 합당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결혼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계획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7

[주님의] 전체적인 프로그램은 자녀들이 사랑과 상호 존중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오도록 현명하게 계획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피상적인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면, 이 세상, 인류, 그리고 모든 합당한 일들은 이미 오래 전에 끝이 났을 것입니다. …

… 주님께서는 해의 영광 안에 있는 세 하늘 또는 등급 가운데서 가장 높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 신권의 이 반차[새롭고도 영원한 결혼 성약을 의미함]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그는 그것을 얻을 수 없느니라.”(교성 131: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합당한 방법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결혼하지 않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축복을 박탈하는 여성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께서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실 것이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해서는 남자나 여자 어느 누구도 결코 책망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

그러나 결혼과 남녀의 역할에 대해 그 누구도 하나님께 반항해서는 안 됩니다. …

저는 후기 성도 소녀와 여성, 소년과 남성이 생명의 물을 깊이 들이마시고 자신들의 삶을 주님께서 그들에게 지정해 주신 아름답고 포괄적인 역할들에 맞추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저는 이미 완전한 계획을 우리가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온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