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과                     “위대한 행복의 계획”                앨마서 40~42장

1. 앨마가 코리앤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다

 (1) 부활과 죽음 사이의 영혼(앨40:11~13)

 (2) 낙원과 영옥에 대한 묘사(40:11~15, 21) 교성138편 참고

낙원; 의로운 자들, 행복의 상태, 안식의 상태,

      평화의 상태로 영접되어 모든 곤경과 염려와 슬픔이 없는 상태

영옥; 악한 자들, 바깥 어둠으로 쫓겨다나며 울고 통곡하며 이를 갊.

      하나님의 진노를 기다리는 참담하고 두려운 상태


 (3) 부활의 의미? (40:21,23) 영과 육이 재결합되어 육신은 완전한 구조로 회복됨

 (4) 부활할 대상; (앨40:5, 11:42~44) 모든 사람

 (5) 앨마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앨40:2~5,8,19~21)우리는 앨마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부활의 교리에 대해 간증한 사실에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가?

- 어떤 교리나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간증을 얻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상세히 다 알 필요는 없다.

* 우리에게 주어진 경전은 선지자들의 하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으로 경전을 기록한 것이기 보다 그들의 간증,

그들이 오랜 세월 열심히 연구하고 생활함으로 인해 알게 된 지식이다. 따라서 경전은 선지자들과 신앙의

조상들의 삶속에 실존하는 하나님을 알고 순종함으로서 얻게 된 간증의 책으로 하늘왕국의 모든 비밀이

실린 책은 아니다.

우리가 왕국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충실한 종으로서 열심히 일할 뿐이다.


2. 앨마가 부활 후에 의로운 사람들은 행복한 상태로 사악한 사람들은 비참한 상태로 회복될 것이라고 가르치다

 (1) 앨마는 영과 육이 재결합되어 육신이 “완전한 구조”로 회복되기 때문에 부활을 회복으로 칭했다.

(앨40:23,41:2) 우리가 부활되어 “행위대로 심판받”을 때 어떻게 회복이 될 것인가?(앨41:3~6)

~ 의로운 사람들은 행복한 상태, 사악한 사람들은 비참한 상태로 회복됨


 (2) 선 또는 악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 “부활은 회복입니다. 영과 육의 회복이며, 이생에서 가졌던 것과 똑같은

개인의 정신적, 영적인 습득 및 태도의 회복입니다.”    <브르스 알 맥콩키>


* 부활은 모든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원래의 상태는

불완전한 몸이 완전한 몸, 즉 불멸의 상태로 바뀌며 각 왕국의 상태에 따라 부활의 등급도 다르다.

그것은 이생에서 우리가 지녔던 정신, 즉 어느 왕국의 율법에 부합되는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영과 육이 그러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은 최고의 훌륭한 모습, 하나님과 같은 몸을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생에서 지닌 가치관과 행동 습관에 의한 불멸의 몸을 갖게 되는 것이다.


(3) 어떤 점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심판관”인가“(41:7~8)

* 모든 것이 회복될 때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며 우리의 양심도 회복된다.

 따라서, 양심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 자신에 대해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 우리는 선이든 악이든 죽은 후에 회복될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소망으로

모든 일을 선택하며 그것이 회복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앨마는 “간악함은 결코 행복이 아니”기 때문에 코리앤톤이 죄에서 행복으로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간악함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는가?(41:10~13)

* 간악함, 즉 사탄의 영역은 일순간의 달고 행복한 것으로 사람을 기만할 수 있으나

그 속에는 슬픔과 절망뿐이다. 간악함이 행복한 것이 아닌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본성,

행복의 본질과 상반된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죄를 지을 때나 잘못된 일을 선택할 때  행복하리라,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죄의 근원은 악마로서 악마는 우리에게 결코 좋은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5) 앨마는 코리앤톤에게 “모든 일을 행하면 네 보상을 받게” 되므로 자신에게 회복될

선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41:14~15) 이 말씀이 진실됨을 본 경험이 있는가?

* 우리가 지속적으로 선행하고 의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희생할 때 보상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 것은 신앙이며 충실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일해야 하나 우리가 신앙을 행사함으로서 신앙의 증거를 얻고 크게

발전하기 위한 것으로 순수한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 의한 선에 대한 보상의

기대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이웃을 축복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앨마가 코리앤톤에게 공의와 자비에 대해 가르치다

 (1) 공의에 대한 앨마의 가르침(앨42:6~7,10,18)

 1)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우리는 타락의 상태, 필멸의 상태,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불멸의 완전한 하나님의 면전에 거할 수 없다.

우리에게 공의가 요구될 때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

  2)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은 즉”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다. 공의는 죄에 대한 벌을 받도록 요구한다.


 (2) 우리가 공의의 지배만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앨42;14)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남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 거하기 위해 돌아갈 수 있도록 공의를 이룰 요건에는

무엇이 있는가?(앨42:15) ~ 하나님의 속죄의 희생 - 자비

* 공의는 죄인의 죄 값을 원한다. 그것은 어떠한 희생으로도 대신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희생, 무한하고 영원한 희생, 하나님의 희생으로만 공의가 충족된다.


 (4) 앨마는 “자비는 속죄로 말미암아 오느니라”고 간증했다.(앨42:23) 하나님의 충만한 자비를

받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42:13,23,27,29~30,41:14 교성 19:15~18)

*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를 속량해 주는 것으로 자비의 법에 해당된다.

 그리스도의 자비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죄를 버리고자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소망에 대한 선택의지의 중요성을 밝히는 것이다.

속죄의 축복은 각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에 대한 소망과 선택, 즉 회개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