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성도의 벗 1978년 5월호, 1973년★]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Agency or Inspiration-Which?

브르스 알 맥콩키 장로 (1915-1985)
   십이사도 정원회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성도의 벗, 1978 5월호, 31)

 최근에 나는 아내와 함께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로 인해, 가족으로 인해, 후일에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영원한 복음의 회복으로 인해 우리가 받게 된 수많은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의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 토론은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애에 있었던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었나요?

즉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생애에 있었던 가장 큰 축복은 1937년 10월 13일, 오전11,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을 내 영원한 동반자로 맞았을 때였소.

“그 시험에는 합격했군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후기 성도가 해야 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일은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권능에 의해 올바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선지자 엘리야가 회복하신 권세와 권능으로 인봉된 후에, 모든 후기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맺은 성약대로 생활하여 현세뿐 아니라 영원히 결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는 모든 면에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제언은 잘 인도되기만 하면 모든 면, 적어도 모든 중요한 활동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특히 다른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영원한 결혼 문제에 적용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서 살고 있었을 때 우리는 선택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기회, 즉 특권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살고 있었을 때 그에게도 같은 권세가 있었으며, 현재 우리도 그 권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여 받은 은사와 재능과 능력과 감각과 판단력과 선택의지를 행사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는 주님을 찾고 그의 영을 구하며 계시와 영감의 영을 받도록 노력할 것을 명령 받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 합법적인 의식 집행자는 우리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신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신의 은사를 받게 되는데, 성신의 은사란 충실하게 생활할 때 신회의 구성원인 성신의 끊임 없는 동반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명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영감의 영 즉 계시의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선택의지로써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가져다주며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영원한 보상을 가져다 주는 과정을 우리가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 두 가지 명제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전세에서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살펴보셨으며, 우리가 그분의 면전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며 모든 가르침이 그분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우리가 알 때, 그 율법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행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가 신앙으로 행하고 그의 면전을 떠나 그분으로부터 받은 개인적인 권고가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해야 할 때,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세 가지 사례 연구를 제시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사례 연구로부터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규정지어져야 할 실질적이고 건전한 결론을 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들을 저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에서 찾고자 합니다.

 

“너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나니”

사례 연구 1: 올리버 카우드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그는 선지자의 일을 도운 서기였습니다. 성령이 임할 동안 그는 선지자가 번역하는 내용을 받아 적었습니다. (몰몬경을 번역하고 있을 때였음) 그 당시 카우드리 형제는 영적으로 아직 미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역량 이상의 것을 해보고 싶어했습니다. 번역을 하고 싶어서 선지자에게 졸라댔습니다. 선지자는 이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를 주셨습니다. “올리버 카우드리여,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고대의 것이며 나의 영의 나타냄으로 이야기된 내 경전의 그 부분이 들어 있는 새겨진 옛 기록, 즉 고대 기록에 관한 지식을 네가 받게 되리라 믿으면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것에 관한 지식을 네 하나님이요 네 구속주인 주께서 살아 계심같이 확실히, 참으로 그와 같이 분명히 너는 받게 될 것이니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시면서 주님께서는 이 일과 이와 비슷한 상황에 해당되는 원리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임하여 네 마음에 거할 성신으로 말미암아 네 생각과 네 마음에 말하리라. 이제 보라, 이것은 계시의 영이니,(교리와 성약 8:1~3)

올리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했을 법한 것을 한 셈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것은 신앙을 갖고 하나님께 구하면 번역할 수 있는 권능을 얻게 될 것이라는, 표면상의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었던 그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실로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신앙을 보이고, 기도의 응답을 얻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간구했으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혀 번역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지자와 그는 걱정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다시 주님께 여쭈어 보게 되었으며, 주님께서는 왜 그가 번역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보라, 너는 이해하지 못하였나니,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내게 간구하기만 하면, 내가 네게 그것을 줄 줄로 여겼도다.(교리와 성약 9:7)

신앙으로 구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다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신앙으로 구한다는 것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지 행해야 한다는 선행 조건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선택의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란 몰몬경 번역일 수도 있고, 아내를 택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직업 선택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될 수많은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이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 그러고 나서 그것이 옳은지를 내게 물어야 하나니, 만일 그것이 옳으면, 내가 네 가슴을 네 속에서 뜨겁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는 그것이 옳은 줄 느끼게 되리라.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아니하면, 네게는 그러한 느낌이 없을 것이요, 도리어 생각이 둔하여져 그른 것을 잊어버리게 되리니, 그러므로 내게서 네게 주어지지 아니하면, 너는 성스러운 것을 기록할 수 없느니라.(교리와 성약 9:8~9)

여러분은 어떻게 아내를 택합니까? 브리검 영 대학교나 그 밖의 다른 곳에서 나는 젊은이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영감을 느껴야 합니다. 계시를 받아야지요. 금식하고 기도하여 주님께서 제가 누구하고 결혼해야 할지를 보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일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 번도 주님께 내가 누구와 결혼해야 할까를 간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주님께 여쭈어봐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나가서 내가 원하는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맞는 여인이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평가하고 판단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100% 완벽한 여인이었습니다. 내가 일을 완전하게 행했더라면 주님께 상의해야 했을 터이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일은 주님께 기도로써 내가 내린 결정과 관련된 지침과 인도를 구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좀더 완전하게 일을 처리했다면 그와 같은 결정에 대해서도 주님께 상의해야 했을 테고, 내가 나의 선택의지와 능력으로 내린 결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얻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내게 청함이 어쩜이냐?

사례 연구 2: 고대 기록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단지 야렛의 형제이라고만 불리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자료에는 그의 이름이 모리앤쿠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야렛인들의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이 바벨탑으로부터 약속된 미대륙으로 오기 시작할 때 그는 그들 민족에 필요한 지시와 영적인 인도를 주님께 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몇 가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건너야 할 바다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는“배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님은 배를 짓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야렛의 형제는 과거에 배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계시가 없어도 배를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배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특별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될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좀더 필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우선 공기가 필요했습니다. 이 문제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주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 문제는 완전히 그의 능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주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이러이러하게 하면 공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확신을 갖게 된 야렛의 형제는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말씀드리지 않고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배 안에 빛이 없나이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배 안에 빛을 갖도록 내가 어떻게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이더서 2:23) 이 말씀을 풀이하면 이와 같습니다. “왜 나에게 구하느냐? 이것은 너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주님께서는 조금 더 말씀하신 다음 질문의 요점을 다시 반복하셨습니다. “너희가 바다 깊은 곳에 삼키울 때에 너희가 빛을 갖도록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예비하여 주기를 원하느냐?(이더서 2:25) 다시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모리앤쿠머야, 이것은 네 문제이다. 왜 나를 괴롭히느냐? 나는 너에게 선택의지를 주었고 너는 행할 능력을 부여 받았다. 나가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라.

야렛의 형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셀렘이라 하는 산에 올라 가서, “작은 돌 열여섯 개를 녹여내었으니, 그것들은 투명한 유리같이 희고 맑았더라.(이더서 3:1)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렛의 형제는 열여섯 개의 작고 투명한 돌을(전부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기록에는 “그가 그것들을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이시여 이러이러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묻지 않고 다만 영감을 받아 스스로의 판단력을 사용하여 결정한 다음 주님께 그것에 대해 간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리앤쿠머는 주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주의 손가락으로 이 돌들을 만지사, 그것들이 암흑 중에 빛을 발하도록 예비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시오면 그것들이 우리가 예비한 배 안에서 우리에게 빛을 발하리니, 우리가 바다를 건너는 동안 우리에게 빛이 있으리이다.(이더서 3:4)

주님께서는 야렛의 형제가 구하는 대로 행하셨으며, 야렛의 형제가 주님의 손가락을 본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는 그 때까지의 어느 선지자가 받았던 계시보다 더욱 큰 계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 때까지 밝혀졌던 것보다 더 많이 그분의 성품과 인격에 대해 밝혀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모두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스스로 행했고 주님께 상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택의지와 영감 사이에는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다한 후에 주님으로부터의 응답 즉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확신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기치 않았던 진리와 지식을 더 얻게 됩니다.

 

“저들은 나와 의논하여야 할지니”

사례 연구 3: 교회사 초기에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미주리 주의 특정한 곳으로 모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모이라”는 이 명령은 특히 “감리 감독은 나와서 이러이러한 일을 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나의 종 에드워드 파트리지에 관하여 말한 대로 이 땅은 그와 또 그가 자기 보좌로 임명한 자들이 거주할 땅이요, 또한 나의 창고를 관리하도록 내가 임명한 자들이 거주할 땅이니라.

“그런즉 그들은 그들과 나 사이에서 상의하는 대로 자기 가족을 이 땅으로 데려올지니라.(교리와 성약 58:24~25)

주님께서는 시온으로“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어떠한 상황으로 모이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이도록 명령 받은 자들의 선택의지에 따라 결정하도록 맡겨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과 의논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의논할 때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저는 자녀들 문제도 무엇에 대해 의논할 때는 아이들을 불러 의논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해야 할 바를 이야기하지 않고, “네 생각은 어떠니? 너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니? 이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책이겠니?”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의견을 저에게 말합니다. 그 문제에 관해 저도 지혜와 판단이 서게 되면, 제 의견을 말해 줍니다. 주님께는 모든 지혜와 지식과 권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완전한 율법으로 통치하고 제어하며 지시할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도록 해 주시지만 그에 대해 그분과 의논할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주께서 이를 교회 감리 감독에게 말씀하신 후, 이러한 상황을 다스리는 원리를 주셨으며, 이 원리는 모든 상황을 지배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은 영광스러운 계시의 하나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내가 범사에 명령해야 함은 적절하지 아니함이라. 무릇 범사에 강요당하는 자는 게으르고 현명하지 못한 종이니, 그런즉 그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사람은 모름지기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자유의사로 많은 일을 행해야 하며 많은 의를 이룩해야 하느니라.

“이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 이로써 그들이 스스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가 되는 까닭이니, 사람이 선을 행하는 만큼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명령을 받기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명령을 받고 그것을 게을리 지키는 자, 그는 정죄를 받느니라.(교리와 성약 58:26~29)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후기 성도를 어떻게 다스립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올바른 원리를 가르쳐 주어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합니다.

이것이 곧 하늘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운영 방법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가 채택하여 사용해야 할 운영 방법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후에 그것을 주님께 말씀드려 그분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할지니”

지금 살펴본 것이 세 가지 사례 연구였습니다. 이제는 결론을 내려보기로 하겠습니다. 앨마라 하는 힘세고 위대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힐라맨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모범을 따른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앨마는 힐라맨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그리하여 네가 젊었을 때에 지혜를 배우라. 참으로 네가 젊었을 때에 하나님 계명 지키기를 배우라. 참으로 또한 하나님께 부르짖어 네 모든 도움을 구하라.(앨마서 37:35~36) 만일 여러분이 물질적인 면에서나 영적인 면에서나 기도로써 주님께 도움을 구하라는 권고를 받았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기도문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여러분은 사막 한 가운데나 높은 산 꼭대기로 나아가 온 심혈을 기울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만 하겠습니까? 아니면 밭에 나가 곡식을 뿌리고 채소를 재배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겠습니까?

경전에는 다음과 같이 계속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네 모든 행위로 주께 드리는 것이 되게 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안에서 행하도록 하라. 참으로 네 모든 생각으로 주를 향하게 하라. 참으로 네 마음의 사랑을 영원히 주께 두도록 하라.(앨마서 37:36) 다음 구절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너의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유익하도록 지도하시리라.(앨마서 37:37)

올리버 카우드리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내게 간구하기만 하[] … 도다. …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교리와 성약 9:7~8)

여러분은 아내를 원하십니까? 무엇이든지 옳고 바른 것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나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여러분의 선택의지와 능력과 힘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능력을 사용하고, 가능한 한 그 문제에 집중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린 다음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주님과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말씀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성신에게서만 올 수 있는 고요하고 따뜻한 확신이 마음에 느껴지면 여러분은 올바른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면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손이 그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신의 은사를 받은 교회 회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재가를 받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네가 밤에 누울 때 주께로 누워, 그로 네가 자는 동안 너를 지키시게 하고, 네가 아침에 일어날 때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네 마음이 가득 차게 하라. 이렇게 하면 마지막 날에 네가 들리움을 받으리라.(앨마서 37:37)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택의지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결정하려고 노력하며, 올바르고 건전한 결론에 도달한 후 하나님과 의논하여 여러분이 내린 결론에 대해 재가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계시를 받은 것이며, 또한 영생이라는 위대한 상을 받고 마지막 날에 들리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러한 능력과 재능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또다른 능력과 재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재능을 사용한다면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언젠가 조지 워싱턴 탄생일인 월요일에 저는 뒤뜰에 나아가 통나무를 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제게 몇 가지 지시를 하시고 제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하는 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대로 통나무를 켜지 못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조금 있다가 동생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뒤뜰에 나가서 형을 좀 도와 주고 형이 제대로 잘하는지 살펴보려무나.”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르스는 아무래도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은가 보구나.

그래서 저는 제가 현재 처한 곳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제가 지닌 재능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영원한 진리의 원리를 제 삶에 적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늘 주님과 상의하고 그분의 권고를 들었습니다. 제가 어느 곳에 처하건 복음은 저를 앞으로 그리고 위로 나아가게 했으며, 이 생에서 저를 기품있게 하고 성결케 하며 또 향상시키어 마침내 내세에서 영광과 영예와 존귀를 주게 될 축복들이 제게 넘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을 지니고 있음

이제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원리가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앨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모두가 아니니라. 너희는 내가 스스로 이러한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앨마서 5:45) 그것이 그가 그들에게 사례 연구로 준 것이고 계시를 인용한 것이며, 그 후에 그는 자신의 간증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이와 같이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가르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복음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마칠 때 우리가 한 말이 옳은지를 알게 될 것이며, 사업의 신성과 진실성은 물론 우리가 반포하는 교리와 우리가 설명하는 영원한 진리가 옳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음성이라는 간증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사업과 이 교리에 대한 영광스럽고 놀라운 일은 그것들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사업이 진실한 것이며, 주님의 영향력이 여기에 미치고 있다는 것에 비교할 만한 진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신의 은사와 권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 간증의 영, 예언의 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와 왕국에 있지 아니한 것일 뿐 아니라 주님의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영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계시는 역사하고 있습니다. 계시를 받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조셉 스미스는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이사도에게 알리실 것을 제외하고는 조셉에게 아무 것도 밝혀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성도라 할지라도 조셉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149) 우리는 계시의 영을 받기 전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올바른 방법과 절차와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다음에 주님과 의논한 다음,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성령의 재가를 얻는 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이 재가가 곧 계시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에 대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설 수 있고 우리의 선택의지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용기와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겸손하고 영에 따름으로써 주님의 뜻 앞에 우리의 뜻을 굽히고, 그분의 재가 곧 승인을 확인하시는 인을 받고, 계시의 영이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할진대, 결과에 대한 의심이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란 이 생에서의 화평이요, 영광과 존귀와 위엄인 것입니다.

(선택의지인가, 혹은 영감인가?, 브르스 알 맥콩키(1915-1985), 성도의 벗, 1978 5월호,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