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 수잔 더블류 태너 자매, 리아호나 2003년 10월호]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
We Are Daughters of Our Heavenly Father, Who Loves Us

   수잔 더블류 태너 자매
   본부 청녀 회장

  (수잔 더블류 태너 자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 리아호나 2003 10월호, 42)

 수줍은 얼굴을 하면서도 열의로 가득한 12세 소녀들이 모여 있는 교실을 둘러보면서, 저는 청녀 주제의 첫째 줄에 있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청녀들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가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많은 소녀들이 머리를 숙이고 초조하게 발을 움직이면서 자신이 호명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한 것이 분명했고 어쩌면 그들이 비공개로 답하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공과를 하는 동안 그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사랑을 찾음

공과를 마칠 때, 저는 청녀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면서 익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적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답을 적으려고 애쓰면서 “이건 너무 어려워” 혹은 “내가 정말 그 사실을 아는지 확신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공과를 진행하는 동안 줄곧 눈물을 흘리던 조슬린이 특히 저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들이 적어 낸 종이를 혼자서 조용히 읽으면서, 저는 구겨진 종이가 그녀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종이에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적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제 어머니를 구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 소녀의 어머니는 저의 친한 친구이기도 하며 저도 그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드렸었습니다. 그녀는 막 심장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직후 퇴원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장 동맥이 파열되었습니다. 그녀는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재빠르게 그녀의 상태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녀가 회복된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조슬린과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조슬린의 대답에 대해 걱정이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여전히 그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까? 인생의 불가피한 슬픔과 비극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러자 제 조카인 애슐리 생각이 났습니다. 그녀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슬린의 경우와는 상당히 반대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 년 전쯤 애슐리는 부모와 함께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 근처 해변가의 커다란 바위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중에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 물의 색깔이 나타나도록 아름다운 경치의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거대한 파도가 해변가를 덮치더니 그녀의 아버지를 바다로 휩쓸어 가고 어머니를 바위로 끌어갔습니다. 애슐리는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살인적인 파도는 그녀를 해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방금 목격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곧 휴대폰을 갖고 있던 사람이 긴급 전화를 걸어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파도에 휩쓸려가 있던 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었기 때문에 헬리콥터가 아니고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날카로운 바위와 거친 바다로 인해 부러진 등과 팔 그리고 찢기고 터진 상처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애슐리의 아버지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애슐리의 어머니는 바닷가에 누워 구조를 기다리면서 남편이 곁에 있다고 느꼈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시신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애슐리의 아버지를 구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슐리는 여전히 그분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한 일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성신으로부터 오는 위안을 느꼈습니다. 저는 아빠를 다시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친절한 보살핌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매주 교회의 모든 청녀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일어서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 사실이 우리를 강화하고 지탱시켜 줄 만큼 깊이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더 잘 알고 느낄 수 있을까요? 조슬린과 애슐리의 예가 우리의 삶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경전에서 그분의 사랑을 찾음

이 상반되는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는 동안, 서로 비교가 되는 경전상의 예들이 제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뜨거운 풀무에서 구출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화형으로 순교당한 아빈아다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주님의 충실한 종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풀무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분의 뜻일 경우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다니엘 3:17)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구하실 수 있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호를 받든, 받지 못하든 그들에 대한 그분의 뜻을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신앙에 놀란 느브갓네살 왕은 그들이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것을 목격했으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의뢰[한] 종들”(다니엘 3:28)에게 보이신 큰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몰몬경에 나오는 선지자 아빈아다이 역시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주님을 신뢰했습니다. 노아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와 나의 백성들에 관하여 불길하게 이야기한 것을 취소하지 않을진대 이로써 너를 사형에 처하리로다.”(모사이야서 17:8) 아빈아다이는 당당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에 타 죽게 될 상황이 되었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구출되지 않았습니다. 쓰러졌으니, 불에 타 죽음을 당함이라. 참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부인하지 않으려 한 연고로 죽임을 당함이니, 자기의 죽음으로 자기 말의 참됨을 인봉함이었더라.”(모사이야서 17:20) 그는 자신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그분의 뜻을 신뢰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화형으로부터 구출되었으며, 아빈아다이는 구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그들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거나 나쁜 일보다 위대합니다. 때로 그분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를 축복하시고,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깨어진 소망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위안과 힘을 주심으로써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범사에 그분의 사랑을 찾음

저는 제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저는 특별한 축복을 위해 기도를 드렸으며 그분은 그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자비와 사랑 안에서”( “Bless Our Fast, We Pray”, 영문 찬송가, 138쪽), 출생과 침례에서, 건강과 병고침에서, 아침과 산에서, 우정과 가족의 사랑 안에서, 기도의 응답이 오는 때와 성전에서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반면, 저는 역경 중에도 신앙을 지탱해 왔습니다. 어떤 짐들은 이 잔이 내게서 옮겨졌으면 하고 소망할 정도로 저를 짓누릅니다.(누가복음 22:24 참조) 사실, 제가 주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풍성한 사랑을 느끼는 것은 그러한 힘든 경험을 할 때입니다. 저는 그분께 가까이 나아감을 느끼며, 그분께서 저를 업고 가시고, 위로하시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용기를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아무리 큰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친 그 의미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 38~39)

조슬린과 애슐리의 경우, 한 소녀의 부모는 살아나고 다른 소녀의 부모는 그렇지 못했지만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기쁘고 슬픈 모든 경험에서 그분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저는 온 세상에 있는 청녀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조슬린이나 애슐리처럼,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라는 확신으로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잔 더블류 태너 자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다, 리아호나 2003년 10월호,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