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회란 무엇입니까", 엘 톰 페리,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정원회란 무엇입니까?
What Is a Quorum?

  신권 소유자가 되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들 가운데 하나[] … 신권 정원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엘 톰 페리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엘 톰 페리, 정원회란 무엇입니까, 제174차 반연차대회, 리아호나 2004 11월호, 23)

 “성신의 감동을 받아 그 기초를 놓으며 지극히 거룩한 신앙을 위하여 이를 쌓아 올릴지니라.

이 교회는 너희 주의 일천팔백삽십년 넷째 달 곧 사월이라 하는 그 달의 여섯째 날에 조직되고 설립되었느니라.”(교리와 성약 21:2~3)

이 날은 조셉 스미스, 올리버 카우드리, 그리고 스미스 가족과 휘트머 가족이 뉴욕 주 세네카 군 페이에트에 있는 피터 휘트머 일세의 집에 모였던 날이었습니다. 적절한 노래와 기도 후에 교회의 조직에 관한 계시가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낭독되었습니다. 이 계시는 신권의 반차와 교회에 있는 역원들의 의무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모형에 따라 오늘날 교회의 모든 조직이 구성되었습니다.

“이전에 주어진 계명에 따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참석한 형제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일에 있어서 자신과 올리버 카우드리를 그들의 교사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계명에 따라 교회를 조직해야 한다는 것에 기꺼이 동의하는지를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B. H. Roberts, A Comprehensive History of the Church, Vol 1., 196쪽)

이렇게 하여 우리는 초창기에 확립된 모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모든 일은 많은 기도와 신앙으로써 만장일치로 행해져야 하나니, 이는 모든 일을 너희가 신앙으로써 받아야 할 것임이니라.”(교리와 성약 26:2)

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힘차게 올려진 그 손들을 보노라면 제 온 몸을 격동시키는 듯한 특별한 느낌을 갖습니다. 오늘, 십이사도 정원회에 두 명의 새로운 회원들이 이곳 컨퍼런스 센터에서, 그리고 지상의 거의 모든 곳에 중계되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그리고 위성을 통해 교회 회원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우흐트도르프 장로님과 베드나 장로님은 데이비드 비 헤이트 장로님과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의 부고로 생긴 공석을 채우기 위해 지지 받았습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서 저는 두 팔을 벌려 우리가 가진 이 성스러운 부름의 일부가 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물론 지금 헤이트 장로님, 그리고 맥스웰 장로님과 가졌던 교분이 그립기도 합니다. 헤이트 장로님은 지난 28년 동안 이러한 대회들에서 제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맥스웰 장로님은 오랫동안 헤이트 장로님 옆에 앉으셨습니다. 헤이트 장로님의 열정적인 정신이나 맥스웰 장로님의 정교한 언어 능력을 갖고서 제가 이 두 훌륭한 형제님들과 경험했던 오랜 교분에 대한 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두 분은 제 인생에 너무도 많은 것을 더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같이했던 이 교분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십이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전세계를 다니면서 행한 사업에 대해 풍부한 전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1837년 6월 4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커틀랜드 성전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히버 시 킴볼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히버 형제님, 주님의 영이 제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나의 종 히버를 영국으로 가게 하여 내 복음을 전파하고 그 나라에 구원의 문을 열게 하라’”(Orson F. Whitney, Life of Heber C. Kimball[1945년], 104쪽에서 인용)

영국을 향해 집을 떠나는 히버 시 킴볼과 브리감 영의 이야기는 그들이 받았던 부름에 대해 기꺼이 치른 그들의 희생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839년] 9월 14일, 브리감 영 회장은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몬트로스에 있는 집을 떠났다. 그는 너무 몸이 아파 도움 없이는 150미터 떨어진 미시시피 강으로 갈 수조차 없었다. 강을 건넌 후 그는 이스라엘 발로우가 모는 말의 뒷자리에 타고 우리 집으로 와서는 18일까지 계속 아팠다. 그는 병든 아내를 태어난 지 겨우 3주 된 아기와 함께 두고 왔고, 다른 모든 자녀들도 아파서 서로를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물 한 통을 길르러 우물로 갈 수 없었고, 미주리에서 폭도들이 그들이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17일에 한 소년이 매리 앤 영 자매를 마차로 실어 집으로 데려 올 수 있었으며 그녀는 그 곳에서 영 형제를 간호하고 위로했다.”(Life of Heber C. Kimball, 265쪽에서 인용)

히버 시 킴볼의 가족 또한 병에 걸려 있었다. 찰즈 허바드는 두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도록 돕기 위해 한 아들을 구조팀과 마차와 함께 보냈다. 킴볼 장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거의 죽음의 문턱에 있는 것과 다름 없는 그런 상태에 가족을 두고 떠나는 순간,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이 느꼈다. 마부에게 멈추라고 부탁하고는 브리감 형제에게 말했다. ‘이렇게 떠나면 너무 모질지 않습니까? 일어서서 저들에게 용기를 줍시다.’우리는 일어섰고 머리 위로 모자를 세 번 흔들며 소리쳤다. ‘만세, 이스라엘 만세’”영 자매와 킴볼 자매는 문으로 나와 작별을 고했고, 그것은 브리감과 히버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으며 그들은“전대나 지갑 없이”영국을 향해 여행을 계속했다.(Life of Heber C. Kimball, 265~266쪽 참조)

성경 사전에는 사도란 “‘… 보내진 자’이며, 사도의 부름은 온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특히 그분의 신성과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그분의 육신의 부활에 대한 특별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 숭고한 부름을 지닌 열두 명의 형제들은 사역에 있어 행정적 평의회를 구성한다. … 오늘날 이와 같은 신성한 부름과 성임을 받은 열두 명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십이사도 정원회를 구성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도”, 612쪽)

오늘날도 사도는 계속해서 “보내진 자”가 됩니다.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행할 때 당면하는 상황은 초기 사도들의 상황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세계 곳곳으로 여행하는 방법도 초기 사도들의 방법과는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구세주께서 그분이 직접 부르신 십이사도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라고 가르치실 때 주신 임무와 여전히 똑같습니다.

이제 두 분의 새로운 사도에게 저는 정원회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새로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평의회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과 존경심이 교회의 모든 정원회에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집사, 교사, 제사, 장로, 대제사 정원회 여러분들은 신권 소유자가 되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들 가운데 하나라고 제가 믿고 있는 것에 잠시 귀기울여 보시겠습니까? 그 특별한 축복은 바로 신권 정원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스티븐 엘 리차즈 회장님은 오래 전에 교회 행정에 관한 훌륭한 권고를 주셨습니다. 그의 권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교회 행정의 독특한 특성은 평의회를 통한 행정입니다. … 저는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를 평의회에서 봅니다. 그것은 그분의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영의 인도로 일하면서 우리는 외견상 일치하지 않게 보이는 견해들과 매우 다른 배경을 갖고 만나, 그 영의 작용 아래에서 서로 권고함으로써 합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 여러분에게 기대되는 대로 평의회에서 논의한다면, 여러분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여러분께 주저하지 않고 드리겠습니다. …(Conference Report, 1953년 10월, 86쪽)

그리고 여러분이 정원회에 속함으로써 경험하게 될 커다란 유익은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스티븐 엘 리차즈 회장님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정원회는 세 가지가 함축된 것입니다. 첫째, 공과 반입니다. 둘째, 우애입니다. 셋째, 봉사 단위입니다.”(Conference Report, 1938년 10월, 118쪽)

저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기능에서 이 독특한 특성이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왕국의 교리를 함께 공부할 때 우리는 한 반입니다. 정원회 모임에 참석하여 에즈라 태프트 벤슨 장로, 마크 이 피터슨 장로, 리그랜드 리차즈 장로, 하워드 더블류 헌터 장로, 브르스 알 맥콩키 장로, 데이비드 비 헤이트 장로, 또는 닐 에이 맥스웰 장로로부터 복음 교리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제가 현재 생존해 있는 사도들 중에서 누구를 편애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이 지상에서의 성역을 끝낸 형제님들만 거명했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이런 똑같은 축복을 여러분의 각 정원회에서도 가질 수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의 사도들의 말씀을 경전과 연차 대회 말씀, 교회 잡지, 영적인 모임 등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왕국의 교리들의 권세를 여러분의 정원회 공과 시간에 가져오기 위해 그 말씀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구세주의 복음에 관한 여러분의 지식을 늘리기 위해 정원회를 공과 반으로 만드십시오.

정원회에서 우리는 특별한 형제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임에서 부름의 영으로 서로를 고양시켜 주고 영감을 주며 축복해 줍니다. 무거운 짐을 진 한 형제가 있다면, 그 짐을 들어올려 주고 나누고자 하는 열한 명의 다른 형제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성취감으로 함께 기뻐합니다. 우리는 슬픔의 때엔 함께 슬퍼합니다. 우린 결코 문제를 홀로 직면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정원회에는 언제나 권고, 지지, 도움, 그리고 격려가 존재합니다.

신권 및 교회 행정책자에는 신권 정원회에 있어야 할 형제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신권은 복음의 뼈대를 구성하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율법들에 의해 유지되는 위대한 형제애입니다. 형제애의 느낌은 정원회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형제애가 정원회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 물질적,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궁핍할 수도 있는 모든 회원들을 도와야 합니다. 형제애의 정신은 정원회의 모든 계획과 운영에서 지시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영이 현명하게 지속적으로 강화된다면, 다른 어떤 조직도 신권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러드거 클로슨, A Guide for Quorums of the Melchizedek Priesthood [1930년]의 서두, 3쪽; 존 에이 윗소, comp.,Priesthood and Church Government [1939년], 135쪽에서 인용) 교회의 각 정원회가 그러한 형제애를 발전시킬 것을 권고드립니다.

결국 정원회의 유일한 목적은 봉사하는 것 입니다. 아마도 이 책임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깊은 느낌은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평의회 의장으로 봉사하고 있던 윌포드 우드럽이 쓴 1886년 10월 26일자 서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는 사도들에게 우리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온 세상이 죄악으로 무르익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시온은 신랑의 재림에 대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우리에 관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도록 성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갖고서 우리에게 주어진 부름의 영으로 가득찰 수 있는 위치, 그리고 우리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의를 이루며, 끝까지 용감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사업이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오늘날 보다 더 충실한 간증과 수고를 요구했던 때가 없었습니다.”(Deseret News Weekly, 1886년 11월 24일, 712쪽) 여러분의 정원회 하나하나를 정원회의 모든 구성원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위대한 봉사 조직으로 만드십시오.

이제 경전에서 경고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그런즉 이제 모든 사람은 자기 의무를 배우고 자신이 임명된 그 직분을 부지런히 행하기를 배울지어다.

게으른 자는 그 직을 맡기에 합당한 자로 헤아림을 받지 못할 것이요, 자기 의무를 배우지 아니하고 인정받음을 보이지 못하는 자도 그 직분을 맡기에 합당한 자로 헤아림을 받지 못하리라.”(교리와 성약107:99~100)

십이사도 정원회에 이제 막 들어온 두 형제님과 하나님의 신권에 속한 모든 형제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며, 우리가 우리의 부름에 따라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의 안에서 봉사하며, 충실하게 계명을 지킬 때, 우리의 신앙이 더 강화되기를 빕니다. 영원한 진리의 샘을 찾으려 노력할 때 우리의 간증이 더 커지기를 빕니다. 필멸의 삶을 헤쳐 나가면서 우리의 정원회에 있는 형제애를 통해 위안과 힘과 보호를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왕국에서 일하는 종으로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려고 앞으로 나아갈 때, 복음 안에서의 봉사의 기쁨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간구합니다. 아멘.

(엘 톰 페리, 정원회란 무엇입니까, 제174차 반연차대회,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