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1월 09일 (곡반정)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훌륭하게 준비된 건물에서,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 건물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훌륭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건물을 지니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종종 한적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이, 부족한 저에게도 저의 잘못을 깨닫게 해 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여주신 이 말씀을 담대한 마음으로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은, 충실한 자들에게는 위안과 위로가 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미대륙을 방문하셔서 맨 처음에 모인 무리들에게, 주님의 옆구리의 상처와 손바닥의 못 자국을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침례의 절차와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은 다음 말씀이었습니다.

(니삼11:29~3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서로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악마에게 속한 자니 악마가 분쟁의 아비가 됨이라. 저가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여 서로 성내게 하며 다투게 하는도다. 보라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고 분노를 돋구어, 서로서로 다투게 함은 나의 가르침이 아니요, 이러한 일을 금하게 함이 나의 가르침이라.

주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서로 다투지 말라 이었습니다.  두 번째 가르침은 다음 말씀이셨습니다.

(니삼11:38) 내가 거듭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회개하여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작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왕국을 기업으로 얻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전해 주신 후에, 마태 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인 산상 수훈을 전해 주셨습니다.

서로 다투지 말고, 회개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미 대륙에 방문하시어 백성들에게 주신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성50:4) 보라, 나 주는 너희를 지켜 보아 왔고, 나의 이름을 믿는다 고백하는 교회 회원 가운데 있는 가증한 것들을 보아 왔도다. 성도들간에 사랑이 희미해지거나 다툼이 있게 되면, 교회는 곧 무너지게 됩니다.  몰몬경 시대의 여러 백성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니이26:32) 또한 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하사, 살인하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며, 주 저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며, 시기하지 말며, 원한을 품지 말며, 서로 다투지 말며, 음행을 행하지 말라 하시고, 아무도 이러한 일을 범치 말라 하셨으니, 이를 행하는 자는 멸망당함이라.

안식일을 지키는 성도들은 살인, 도적질, 음행 같은 큰 죄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기, 원한, 다툼은 우리 성도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가증한 죄악 들입니다.

우리는,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 대라는 가르침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5:38~47)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훌륭한 신앙의 일과,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평상시 보다는 극한 상황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의 참 신앙과 참 성품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현재 참기 어려운 상태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과 성품을 온전케 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만약 우리의 의로움이 세상 사람보다 더 낫지 못하면, 우리가 과연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과 사랑은,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성결케 되고 거룩하게 되며, 정결하게 된 그러한 성품과 신앙입니다.

단련되고 연단된 신앙과 성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쉽게 낙담하고 절망하는 신앙이라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사랑이라면, 그러한 편협한 신앙과 사랑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45편 서문에 보면, 이 계시가 주어질 당시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교회에 있어서, 많은 헛소문과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발설되고 널리 퍼져, 이로써 사람들이 …… 신앙을 품는 일에 방해를 받았다고 예언자 요셉 스미스께서 기록하신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45편은, 마태복음 24장 및 요셉 스미스 1서의 말일의 환란에 대한 예언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몇 구절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교성45:4~5) 아버지여 당신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아무 죄도 짓지 아니한 자가 겪은 고난과 죽음을 보소서. 당신의 아들이 흘린 피를 보소서. 당신께서 영광을 얻으려고 주신 자의 피로소이다. 그러하오니 아버지여, 내게 와서 영생을 얻으려고 나의 이름을 믿는 이 형제들을 용서하소서.

(교성45:28~29) 이방인의 시대가 시작되면 빛이 암흑 속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비치리니, 이 빛은 나의 충만한 복음이 되리라. 그러나 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들이 빛을 깨닫지 못함이요, 인간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내게서 돌이키는 연고니라.

(교성45:32~33) 그러나 나의 제자들은 거룩한 곳에 서 있어 움직이지 아니 하려니와, 악인 중에는 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는 자들도 있으리라. 각 처에 지진과 많은 황폐가 있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내게 대적하며, 검을 들어 서로 치며 죽이리라. …”

(교성45:69)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 시온으로 모여드는 자들이 있으리니, 서로 싸우지 아니하는 유일한 백성이 되리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싸운다 하더라도, 말일성도만큼은 결코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싸운다면, 서로 시기하고 험담한다면, 서로 말을 안하고 눈을 흘긴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온의 백성이 아닙니다.

 

교리와 성약 42편 끝 부분에 보면, 교회 안에서 악, 또는 잘못, 죄나 옳지 못한 일 등을 보았을 때, 이를 처음 보거나 알게 된 회원들이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성42:88) 만일 너희 형제 자매 중 어떤 자가 너를 해칠 때에는, 형제 자매와 단 둘이 만나며, 만일 그 형제 자매가 죄를 고백하면 서로 화해할지니라.

왜 단둘이 만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우게 된다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은밀한 장소에서 기도하듯이, 단 둘이 만 있는 장소에서 지적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하면 안됩니다.

(교성50:33) 그 때에 너희는 욕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리하면 도리어 너희가 지게 되나니,

상호간에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을 때, 감정을 감정으로 대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게 되면, 오히려 악령에 사로 잡혀, 악에게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교성42:89) 만일 그 형제 자매가 죄를 고백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 자매를 교회에 넘기되, 회원에게 넘기지 말고 장로에게 넘겨야 하느니라.

단둘이 이야기 해도 해결이 안될 때, 주님께서는 왜 회원에게 넘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회원에게 넘긴다는 말 뜻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교회 안에서 소문이 바람보다 빠르고, 어쩌면 빛보다도 빠른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회원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소식이, 몇몇 회원을 거쳐서 심지어는 제 귀에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잘못된 행동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그 것을 처음 본 회원이, 바로 지도자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고, 여러 회원을 거쳐서 전달되어 오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회원에게 넘기지 말고 장로에게 넘겨야 하느니라.

 

(교성42:91) 만일 어떤 자가 공공연히 죄를 지으면, 공공연히 꾸짖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

공공연한 죄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든 잘못은 전부다 공공연한 죄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교회 안에서 공공연한 죄는 극히 드물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죄의 종류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하여, 주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참고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성121:43~44) 성령에 감동되었을 때에는 즉시 날카롭게 꾸짖을 것이나,

어떤 죄가 공공연한 죄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감동을 주었을 때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승인해 주시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꾸짖거나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2:92) 만일 어떤 자가 은밀히 죄를 범하면, 은밀히 꾸짖어 저가 죄를 지은 남자나 여자와, 그리고 하나님에게 은밀히 죄를 고백할 기회를 갖게 하라. 그리하여 교회에서는 그 남자나 여자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교회에서는 그 남자나 여자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잘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잘못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회원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비난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비난을 받았을 때, 내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상대방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떤 대상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우리의 신앙과 성품을 온전히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어떤 노 신사가 친구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마친 후, 그 친구와 함께 그 날 저녁에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 신사의 바지를 보더니 바지에 껌이 붙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정말로 보니 어린애 손바닥만한 껌이 바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 껌을 떼어내면서 이 신사는 어떤 몰지각한 작자가 껌을 함부로 뱉었을까? 하면서 몹시 불쾌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와 함께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사는 하늘을 쳐다 보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습니다. 저토록 높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우주는 저토록 넓은데, 나는 이 땅에서 바지에 붙은 껌 하나 때문에 신경질을 내는구나 (선택, 136페이지, 모아북스, 박창규 지음)

높은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우리와 우리 주변 상황을 바라 볼 수 있는, 폭넓은 통찰력을 느끼게 됩니다.  성전에 가면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세상일에 분주하게 보내다가 잊어버리고 간과한, 많은 값진 삶의 교훈들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된 사람은, 스스로의 결점까지 사랑할 수 있다.  결점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사람은, 장점을 더욱 놀랍게 키워낼 수 있다. (선택, 53페이지, 모아북스, 박창규지음)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결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결점 까지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해의 왕국의 상속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랑과 인내심의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주님께서 유대 공회 법정에 서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많은 자들이 주님에 대하여 거짓증언을 한 뒤에,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막14:60~65)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빌라도 앞에서도 마찬가지 이셨습니다.

(막15:2~5)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주님께서는 무고하게 고난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조롱 당하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합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벧전2: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난을 받는 중에 인내하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성품 입니다.  성품은 우리의 의지로 단련되어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함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참는 자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고난 중에 인내하며,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하나님과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만약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주님께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님은 이러한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일과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늘이 우리의 사랑과 신앙을 보시고, 우리에게 미소 지으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 및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저의 미흡함에 대하여 여러분들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믿고 지지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해당 회원들과 그 지도자들을 고쳐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고쳐 주시며, 우리 모두에게 평안과 화평을 끼쳐 주시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리가 마음의 화평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성전에 가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분들의 이름을 적어내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렇게 할 때만이 진정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는, 결코 이 복음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있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이, 성경의 진리의 말씀과 주님의 성역을 증거해주는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며, 이 진리의 말씀들과 이 교회를 회복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도구가 되신 예언자 요셉 스미스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예언자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이 복음이 하나님의 참된 복음이며, 복음 가운데 충실할 때 우리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와 영감으로 그의 종들을 통해서 이 교회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이 주님을 대신하여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의 대변자 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주님께 기름부음 받은 종들을 지지하고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빠른 길임을 간증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아름다운 건물처럼 이 건물을 닮아 가는, 곡반정와드의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5년 1월 9일, 곡반정 와드 원바이원 성찬식 모임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