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2일 (율전) 신앙의 자세]

신앙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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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신앙을 측정하는 잣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매년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명대로 십일조를 바칩니다.  십일조의 법은 1년 단위로 지키는 계명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119:3~4) 그리고 이것은 나의 백성의 십일조의 시작이 되리라. 그리한 후에, 이같이 십일조를 바친 자들은 해마다 그들의 모든 수익의 십분의 일을 바칠지니, 이는 나의 거룩한 신권을 위하여 영원토록 그들에게 항구적인 율법이 되리라. 주가 이르노라.

  매년 12월이 되면, 감독님은 회원들의 완전한 십일조 여부를 결산합니다.  이 때 십일조의 완전 여부를 판단하는 열쇠는, 감독이 아닌 회원들이 쥐고 있습니다.  회원들은 주님을 대신한 감독님 앞에서, 자신의 1년 동안의 십일조가 완전했는지 아닌지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완전, 불완전, 참여하지 않음 등이 판단되면, 이는 교회 회원마다 매년 철해져서 기록에 남게 됩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신앙을 재어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매년 남는 십일조를 제외하고, 사람들의 신앙을 볼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예전에 제가 여러분들께 신앙의 반대는 불신앙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연차대회 일요일 오전 모임에서, 데니스 이 시먼즈 장로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구약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않자, 매우 화가 난 느부갓네살 왕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말하며, 명령대로 절하지 않는다면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그들을 내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젊은이는 곧바로 그리고 자신 있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당신께서 우리를 던질지라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우리를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들은 또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의 선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바라던 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이 정신적 일치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인정 이상의 것으로, 즉 신앙은 바로 그분에 대한 완전한 신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데니스 이 시먼즈 장로, 2004년 5월 리아호나, 73페이지)

 

경전을 읽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과 시험을 통해 얻는 지식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참된 신앙은 책만 읽고 얻는 죽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경험과 간증에서 비롯되는,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우리는 그러한 절대적인 신뢰의 자세를 보인, 참된 신앙인의 모범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니파이의 태도와 자세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몰몬경의 기록을 시작하도록 명하신 선지자 니파이를 통해, 말일의 독자들에게 강조하시려는 첫 번째 메시지는 바로 신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몰몬경의 첫 번째 사건인 놋쇠판을 가져오는 일에서, 우리는 신앙의 자세와 불신앙의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태도와, 그렇지 못한 자의 태도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니파이는 어려움 속에서도 전혀 낙담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니파이 후서 4장 후반부에서 보인 니파이의 겸손한 기도를 통해, 그가 자신의 연약함과 죄 이외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자세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불신앙의 태도를 보이는 자들의 특징을, 우리는 몰몬경 첫 번째 사건에서 레이맨과 레뮤엘을 통해 보게 됩니다.

 

신앙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불신앙의 태도와 증상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 봅시다.

첫째, 불평입니다.  레이맨과 레뮤엘은 놋쇠판을 가져오라는 부친의 명이 어렵다고 불평을 토했습니다.  신앙의 자세가 안된 자는 불평 불만이 많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쉽게 포기합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 그들은 낙담하여 부친에게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셋째, 일이 잘못되었을 때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책임을 전가합니다.  금은 보화를 가져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실패 후에, 형들은 동생들에게 마구 화를 내고 그들을 때렸습니다.  쉽게 화를 내는 것에서 신앙의 자세가 안된 자의 성품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 화를 낸다는 것은,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정말 나에게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쉽게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태도를 사람들과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 됩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비록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자세의 출발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리한 상황에서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가 반발했던 그 사건들이, 모두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마련된 장치요, 준비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 미래를 바라보시며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는 바로 앞 일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세의 성품과 자질을 알고 계시며, 오늘날 우리를 알고 계시며, 미래에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알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자세입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 분 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노스는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하여 하늘에 소리가 들리도록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노스야, 네 죄가 사하여졌나니 네가 복이 있으리로다 이 음성을 듣고 이노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노1:6) 이에 나 이노스는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지라, 그리하여 나의 허물은 씻기워졌더라.

이노스는 양심에 화평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신뢰하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한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신앙과 영성을 갖추려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과 능력에 대한 신뢰와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의 종들이 비록 온전한 자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주님의 일을 할 때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고 있음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도자를 험담하지 말라고 권고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아는 것이 바로 신앙의 열쇠입니다.

 

이더서에는 놀라운 신앙을 행사한 야렛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렛의 동생은 배를 밝힐 불을 기도로 간구했지만, 창문이나 불빛에 의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과 함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예비하여 주기를 원하느냐?[이더2:25 참조]는 응답을 받고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가 높은 산에 올라가, 투명한 돌 열 여섯 조각을 끊어내어 그것을 손에 받쳐들고 기도했을 때, 그는 주님께서 친히 그의 손가락으로 그 돌들을 만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주님께서 야렛의 동생에게 당신의 손가락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신갈 와드 주일학교 공과 시간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손가락을 보고 두려워하는 야렛의 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더3:9) 네 신앙으로 인하여 장차 내가 살과 피를 입게 될 것을 네가 보았거니와, 사람이 일찍이 너와 같이 그처럼 큰 신앙으로 내 앞에 나아온 일이 결코 없었느니라. 이는 그렇지 아니하였더라면 네가 나의 손가락을 볼 수 없었을 것임이니라. 네가 이것 외에 본 것이 더 있느냐?

주님께서는 분명히 야렛의 동생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손가락을 보지 못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렛의 동생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시기 전에 그의 신앙으로 주님의 손가락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하늘이 정해 놓은 원칙이므로, 사람의 신앙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하늘의 장막도 걷히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신앙을 보고 당신의 전체 모습을 야렛의 동생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이더3:15) 내가 창조한 사람에게 내가 결코 나를 보이지 아니하였었나니, 이는 사람이 결코 너와 같이 나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네가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네가 보느냐? 참으로 만인이 태초에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느니라.

 

모로나이는 이러한 신앙의 원리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더3:19~20) 이 사람의 지식으로 인하여 저에게는 휘장 안을 바라볼 수 없도록 금할 수 없었나니, 이에 저가 예수의 손가락을 보았으며, 이를 저가 보았을 때 저가 두려움으로 엎드러졌으니, 이는 그것이 주의 손가락인 줄을 저가 알았음이라. 이에 저가 더 이상 신앙에서 그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알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아니함이었더라.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한 이 완전한 지식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저에게는 휘장 안에 금한 바 될 수 없었던지라, 그러므로 저가 예수를 보았고 예수께서는 저에게 성역을 베푸셨더라.

 

신앙은 시험과 시련이 있을 때 나타나며, 강화되고, 증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스스로 자청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고통에 대하여 의연하게 신앙의 태도로 임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신앙을 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의 원리를 기억하는 가운데, 하루 하루 충실히 생활하여 이 원리를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성도가 됩시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율전와드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가운데, 이 조직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강화되고, 주님의 교훈을 더욱 풍성히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예수께서 우리의 구속주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우리가 잠시 소홀할 때에라도, 하나님은 결코 변치 않는 사랑과 인도하심과 인내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4년 12월 12일, 율전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 회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