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1월 선교사 일지]

 1985년 11월 선교사 일지

1985년 11월 17일

모임에서 간증과 인사를 하고 장위 지부로 갔다. 이층에서 (동 스테이크 김병희 부장님에 의해) 선교사에 성임 되었다.

[전날인 토요일 미아와드 독신 성인들이 마련해준 송별회에서]

 

1985년 11월 21일 목요일 서교 호텔 6층 612호실, 새벽 3시

지금 이방에는 나 외에 세 분의 장로님이 잠을 자고 있다.  약 한달 전부터 기침이 시작되어 오늘 MTC교육을 받고 생활하는 지금까지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약 두어 시간 전인 새벽 1시쯤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기침이 자주 나와 괴로웠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기도할 장소를 찾다가 호텔 엘리베이터 뒤에 있는 비상 계단에 나가 계단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겸손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딘가 고통을 받을 때에는 자연히 겸손해 지는가 보다!  눈물의 기도를 한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대에 누워 건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 훈련원에 들어오기 전에 이러한 육신의 병을 해결치 못하고 이곳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내가 고통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께서 이러한 시련을 주시며 나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 결국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주님의 영감이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구하는 마음의 결여였다. 선교사업 첫날인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3일 동안 기침에 고생하며 건강하지 못했던 것은 누구의 탓이었던가!

“오직 인간이 시험과 고통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불순종과 무지와 사악함 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으신다” 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이 났고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침례 받은 후 지금까지 술, 담배, 커피 등을 취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동안 너무나도 자주 잦은 병마에 시달렸으며 지혜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세상 사람보다 건강치 못한 적이 아주 많았다.  그러한 이유를 오늘에서야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 바로 내가 주님께서 주신 원리와 말씀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실과 깨달음을 기록하며 이러한 마음이 나의 평생에까지 지속되어 주님의 모든 원리에 충실하여 기쁨을 누리며 건강과 영적인 복지를 늘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바이다. 

아침에 최동일 부장님이 교수님 자격으로 오셔서 Teaching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10시에 학과 후 최 부장님께 가서 병자 축복을 부탁 드렸으나 기름이 없어 위안과 권고의 축복만을 받았다.  조만구 교수님도 함께 해 주셨다.

 

1985년 11월 23일 토

어제 오후 기차를 타고 부산 역에 도착했다.  두 분의 장로(A. P.)님과 하퍼 부장님 내외의 마중을 받았다.  선교 본부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장님과 각자 접견을 마쳤다.  씻고 잠을 잘 준비를 한다.  3층에서 미국인 장로 6~7명과 함께 자는데 10시 반이 되자 그들이 정확히 취침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다음날인 오늘 나는 포항으로 임지가 결정되었다. 12시쯤 동반자가 될 Ortolani장로님과 순천으로 떠나시게 된 이경묵 장로님을 만났다.

 

[임지에 도착하여]

1985년 11월 24일 일

밤새 기침 때문에 고생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지독한 감기가 생겼다.  토론 노트를 작성하며 기도한다. 6시가 되니 모두 일어나 목욕 갈 준비를 한다.  나도 따라 준비하여 대명탕 이라는 목욕탕까지 약 5분 동안 걸어갔다.  돌아와 Open the day라는 것을 하고 선교사 지침서를 돌아가며 한 페이지씩 모두 다섯 페이지를 읽었다. 모임을 끝낸 후 동반자 Ortolani장로와 함께 개인 경전 공부를 30분하고 함께 30분간 주제별 학습을 했다.

아침으로 팬 케이크를 먹는다.  케이크에 마가린을 바르고 시럽을 얹어 포크로 찍어 먹는데 두 개를 먹다가 배가 불러 혼났다.  식사 후 집을 나선다. 

침례식에서 간증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갑자기 받았다.  성신의 은사의 중요성에 대해 간증했다.  온몸이 전기에 찌릿한 듯한 느낌에 휩싸여 말씀을 전했다.  이경묵 장로님의 발령때문에 기초 복음반에 생긴 교사의 공석을 내가 맡게 되었다.  동반자에게 물어보고 승낙하였다.  침례식 마치는 기도를 또 내가 했다.

몇 명의 구도자와 이야기 하고 약속을 정했다.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Bus Contacting을 해 보았다.  좀더 동반자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그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찾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985년 11월 25일 월

선교사 숙소는 아직 난방이 되어 있지 않아서 매우 춥다. 어제 E. Ortolani와 한 주일의 계획을 짰다.  침례식에서 성신의 은사에 관한 간증을 했더니 사람들이 나에게 장로님은 교회에 들어 오신지 오래 되셨나요?하고 묻는다.  이 질문은 내가 침례 받고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늘 들어왔던 말이다.

4:30 전도에 나섬. 교회에서 신미애 자매님과의 1토론을 내가 맡았다.  영이 함께 하지 않은 실패작.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너무나 교만한 자였다는 것과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뒤이어 이채화, 김현철-김연욱, 김정숙 자매님과 세 차례의 토론을 마쳤다.  기도를 했기 때문인지 대체적으로 성공했다.

 

1985년 11월 26일 화

저녁으로 산산 조각난 감자와 스프를 먹었다.  처음에 배가 고파 막 먹었으나 조금 먹으니 비위에 맞지 않는다.  이런걸 2년 동안 먹어야 할 생각을 하니 걱정스럽다.

기관지가 안 좋아 목 아플 때 먹는 약을 매끼마다 두 캅셀씩 먹고 있다.  목이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기도를 했다. 너무나 준비가 부족함을 느낀다.  오늘 저녁시간은 전도도 하지 못하고 그냥 소모한 것 같다.

 

1985년 11월 27일 수

구도자인 류상석 자매님이 세가지 꿈을 삼일 동안 꾸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꿈은 십자가와 고통 받는 얼굴을 둘째 꿈은 십자가 위에 하얀 천이 덮이는 꿈을 셋째는 물밑 - 아주 투명하고 깨끗한 -에 트로피(상패)가 잠겨 빛나고 있는 모습을 꾸었단다. - 내가 회개와 용서와 침례라는 말로써 그 꿈을 해몽해 주었더니 우리와 만나 토론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1985년 11월 30일 토

이달의 마지막 날. 이제 나의 선교사업의 첫 달도 저물어 간다.  부풀었던 기대와 달리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선교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최선의 노력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내가 알면 유익할 많은 원리들을 깨닫도록 도와 주셨다.

내일은 포항지부에서 맞는 첫 번째 금식 주일이다.  이날 주일학교 기초복음반 교사로서 준비를 한다.  오늘 이채화 형제님을 만나 마지막 토론을 끝내고 침례 접견 약속을 했다.  그리고 Film strip몰몬경개관을 보여 주었다.  미국장로들이 저녁에 쿠키를 만들었길래 한 개 먹어보니 맛이 있었다.  고광수 형제(포항지부서기)에게 부탁해서 옛 서울 서 선교부자료인 이단에 대한 답변일부다처제도 토론이라는 것을 얻었다.

좀더 건강하기 위해 많이 먹고 운동을 좀더 열심히 꾸준히 하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옷을 두둑이 껴입으며 지내야겠다.  아침식사는 카스텔라와 어제 먹다 남은 비빔국수, 점심은 햄과 소시지를 곁들인 샌드위치, 저녁은 잡채밥, 간식은 쿠키였다.  거창한 것 같지만 보리밥에 된장 찌게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