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05월 13일 생명의 밧줄을 던짐(수원 스테이크 권선와드 대회 역원훈련 모임)]

생명의 밧줄을 던짐

오래 전, 학창 시절 제가 좋아하던 스포츠는 암벽등반 이었다고 여러분들께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암벽에서는 선, 후배가 자일(밧줄)로 서로 몸을 연결 하고 선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후배들은 바위를 오르는 법을 배웁니다. 때때로 선배의 오르는 모습이 바위 뒤로 돌아가서,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곳에 곧 이어 도달하여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위에 먼저 올라가 확보하고 있는 선배에게 물어보면, 그는 그 곳을 오를 수 있는 특이한 몸 동작을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산에서는 오랫동안 많은 것을 경험한 선배들로부터 귀중한 교훈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높은 산에서 밥하는 방법에서부터, 추위로부터 체온을 유지하는 법, 외상을 방지하는 법, 여러 가지 안전 수칙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산에서 선배들의 그러한 충고에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온갖 위험에 자신의 목숨을 내맡기는 것’이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교사로서 여러분의 성공과 행복은, 그러한 선배들의 충고와 조언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세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 따라, 여러분이 오를 수 있는 고도가 결정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의 능력과, 태도와, 영성과 신앙에 따라 여러분은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스펜서 W 킴볼)

만약 제가 바위 절벽에 있을 때, 선배와 저 사이를 이어주던 자일이 없었다면 저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암벽을 오를 때에는 약 2~3M 마다 자신의 자일을 고정된 볼트나 하켄, 캐러비너 등에 통과를 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오르다 보면 미끄러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떨어지는 것을 산사람들은 나른다고 표현합니다.  많이 나르는 경우에는 20여m 정도를 나를 경우도 있습니다.  즉 10여m를 확보 없이 올라가다가 떨어지면 올라간 10m와 또 그 만큼을 더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떨어진 뒤에는 자일에 의지하여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암벽에서 자일, 즉 밧줄은 선배와 후배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선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감 받은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선입니다.  몰몬경의 선지자들 중 이노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굶주림을 느껴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노스서 3절~4절) 보라 내가 숲으로 짐승 사냥을 갔을 때, [내가 종종 들었던 나의 부친께서 영생과 성도들의 기쁨에 관하여 하신 그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듬을 느꼈고,] 내가 영으로 굶주림을 느껴 나를 지으신 나의 창조주 앞에 엎드려 간절히 울부짖어 구하며 내 영육을 위해 심령을 다하여 간구하였고, 밤이 되도록 소리를 높혀 하늘에까지 소리가 들리도록 부르짖었더니,

이노스는 중요한 순간에 그의 부친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억한 그 말씀과 기도로 인해 죄사함을 얻게 된 것에 대하여 간증하였습니다.  이노스는 그의 부친이 의로운 분이었음을 기억했으며 부친의 훈계와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이노스가 변화하게 된 동기는 그의 부친의 가르침과 자신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앨마 2세도 역시 부친의 말씀으로 인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앨마서36:17) 내가 이처럼 지은 죄를 기억하며 고난을 받고 있을 때, 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구속하시러 세상에 내려 오시리라고, 나의 부친이 사람들에게 예언한 말씀을 들었던 일을 기억하였느니라.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앨마 2세와 이노스는 모두 부친으로부터 가르침 즉,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주님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데 있어서, 부친의 말씀은 그들을 끌어 올려 주는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말씀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마치 씨앗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우리의 자녀들이나 회원들, 또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변화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뿌려진 그 말씀들을 싹 티우게 즉,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빈아다이의 말씀을 당시에는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오직 한 사람 앨마 1세는 그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열매가 거두어졌음이 몰몬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사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기억’이라는 단어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단어요 프로그램입니다. 일지를 쓰는 것은 바로 이 중요한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을 읽는 것이나 일지를 쓰는 것이나 그 목적은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니파이는 (니파이 이서33:1)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야기 할 때에는, 성령의 권세가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을 전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그 말씀에는 특별한 권세가 함께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전해지는 말씀은, 인간의 영혼에 오래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권세, 바로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영과 함께 전해지는 모든 말씀들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일컫는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4:4)“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영양에 떡이 필요하듯이 영혼의 영양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영감 받은 훌륭한 말씀은 우리의 굶주린 영혼을 채워주며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단단한 토대 위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항상 가르치거나 가르침 받으면서 교회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빼고는 교회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말의 교회라는 단어에도 가르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고린도전서 12:28) 라고 말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도와 선지자의 부름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사의 부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여러 부름 가운데 교사의 부름은 가장 중요한 부름입니다. 모든 부름 받은 역원은 교사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거의 모든 부름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임무입니다. 맥케이 대관장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책임은 없습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1916년 10월, 대회보고, 57쪽) 라고 하셨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대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스테이크 부장님, 감독님, 그리고 지부장님, 교회에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 회원 대다수가 교회에 와서, 공과 반이나 모임에서 빈번히 [영감 받지 않은 채]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삶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유혹을 받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영으로 감동 받고 양육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효과적인 교수법은 영으로 감동되고 양육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종종 회원들을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일합니다만, 그런 후에 그들이 와서 무엇을 얻는지를 충분히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에드워드 엘 킴볼 편저, 1982년, 524쪽)

이점에 대해서 힝클리 대관장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효과적인 교수법은 교회 내에서 매우 중요한 지도력의 본질입니다.  모든 남녀가 효과적인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훈육 시킬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강제로 의로움이나 천국으로 데려 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인도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곧 가르침입니다. (지도자로서 가르쳐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교사가 되는 방법, 1969년 2월 5일, 총관리 역원 신권 임원회)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뿐입니다.  첫째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권세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으로 감화되어 전해지는 간증입니다.  간증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말씀과 함께 주어지는 권세인 바로 이 간증인 것입니다.  간증이 함께 할 때 그 말씀은 받아 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도록 도장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교리와 성약42:14) 영을 받지 못하면 가르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가르침에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이 바로 영의 권세, 또는 개인적인 계시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 즉, 선물입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러한 도구가 없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향을 미치는 가르침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배움[학습]은 하늘로부터 [오는] 영적인 자극을 받지 않고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홀런드 장로, 성도의 벗, 98년 7월 호, 26쪽)

제가 선교사업을 했을 때 저의 첫 임지인 포항에 도착하여 선교사로서 맞이한 저의 첫 전도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날 구도자와의 약속이 모두 연속해서 셋 있었습니다.  선교사업을 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대체로 처음 만나는 구도자와의 약속 중 50% 이상이 바람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날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나왔습니다.  동반자가 외국인이었기에 토론의 많은 부분을 풋내기 선교사인 제가 담당해야 했습니다.

첫번째 구도자와의 토론이 끝난 후 저는 제가 참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기도할 곳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결국 교회 화장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곧 이어 두 번째 구도자와의 토론이 끝났지만 이 역시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세 번째 토론인 이 날의 마지막 토론이 끝났을 때 저는 선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저의 첫 전도날인 이날 저는 큰 교훈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있었던 구도자와의 마지막 토론에 대해 저는 제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기도를 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대체적으로 성공했다.

간절한 기도는 우리가 주님의 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에 그 임무에 임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제이 루벤 클라크 부대관장님은 말씀하시기를 회원들은 영적인 것들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복음을 배우기를 원하고 있으며, 복음이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것이기를 원합니다. (제이 루벤 클라크 부대관장, 1938년 8월 8일, 브리감 영 대학 하계 학교에서 행한 말씀)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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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의사가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해치게 되는 무서운 도구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이러한 날카로운 칼에 비유하셨습니다. (교리와 성약 6:2) “보라, 나는 하나님이니, 내 말을 들으라. 내 말은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어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나니, 그러므로 나의 말에 유의하여 들을지어다.”  잘 가르쳐진 말씀은 한 사람의 영혼에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사는 자신의 부름이 얼마나 중요한 부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밧줄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공과를 잘 준비하십시오.  경전에 바탕을 둔 설교를 하십시오.  계시된 교리를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진심에서 우러난 간증을 하십시오.  기도하고 실천하며 여러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관리 모임[즉, 회장단 모임이나 감독단 모임 등]에서도 계시의 말씀처럼 서로 가르치고 선도합시다. (성도의 벗, 1998년 7월 호, 27쪽)

가르치는 자나 듣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되는 일이, 바로 교사의 부름임을 간증 드립니다.  가르치는데 수고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우리의 모임과 모든 우리의 메시지에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한다면, 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그러한 일에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간증 드립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분)

2000년 5월 13일, 수원 스테이크, 권선와드 대회, 역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장단 제2보좌,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