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8월 31일 (신풍) 신앙의 뿌리]

(신풍) 신앙의 뿌리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3가지

약 20여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시골의 과수원에서 아름드리 사과나무 수십 그루를 수일동안 캐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과수원에 다른 나무를 심기위해서 였습니다.  어떤 나무는 주변으로 뻗어나간 큰 뿌리 몇 개만 제거하면 쉽게 흔들어 넘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주변 뿌리를 다 잘라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넘어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나무는 깊이 파보면 나무의 뿌리가 수직으로 깊숙이 박혀 있는 경우였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3:18, 20)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 돌 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신앙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환난이나 고통, 박해, 시련이 닥쳐올 때, 우리의 신앙은 말라 비틀어져 쓰러지는 고목처럼 넘어지게 됩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나무 자체가 잘 자라지도 못하거니와 좋은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지 ‘세가지 방법’을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경전 읽기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신앙은 간증을 들으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키우고 복음의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또 서로 격려하고 봉사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이 유지되겠습니까?  일주일에 한번만 음식을 취한다면 과연 얼마나 살수 있을까요?

우리의 영혼과 신앙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매일 해 주어야 합니다.  매일 경전을 읽지 않으면, 즉 고대와 현대의 예언자들의 말씀,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상고하라고 권고해 주시는 말씀들을 읽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1982년 겨울, 해군에 입대하여 졸병 시절 구축함을 타고 근무할 때, 저는 몰몬경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고참들이 지켜보고 있고, 많은 고된 업무에 시달리며 편지도 눈치 보며 읽어야 하는 환경에서, 경전을 꺼내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몇 주간 경전을 읽지 못하면서, 저는 점점 무엇인가 허전해 지는 듯한 느낌에,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느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의 속 가슴에 몰몬경을 품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모두가 다 잠든 깊은 밤중에 혼자 일어나 배 안의 화장실로 갔습니다.

해군은 밤에는 배 안의 모든 등불을 끄기 때문에, 책을 읽을 만큼 밝은 불을 켜 놓은 곳은 화장실 밖에 없었습니다.  파도가 치면 배는 상하 좌우로 흔들립니다. 때문에 해군 화장실에는 장애자용 화장실처럼 모든 곳에 손잡이가 있습니다.  배가 흔들리기 때문에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굳게 잡고 몰몬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냄새도 나고, 불빛도 희미하고,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 정도로 배는 흔들렸습니다.  고된 업무 끝에 곤히 자야 할 시간을 빼내어, 몸도 매우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에게 간증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수 년간의 신앙생활 동안 경전을 읽었던 그 어느 순간 보다도, 그 때 해군 졸병 시절 화장실에서 읽었던, 몰몬경의 그 ‘감미로운 말씀’과 ‘영적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된 군 생활에서 저의 신앙을 지탱해준 지팡이요 막대기요 손잡이는, 바로 그 몰몬경의 ‘말씀’이었습니다.

후에 몰몬경을 읽는 저의 모습이 동료와 고참들에게 드러난 이후로, 저의 별명은 ‘몰몬’이 되었습니다.  배 안의 고참들이 저를 “야! 몰몬” 하며 부를 때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조롱하며 불렀겠지만, 그것은 저에게 전혀 부끄러운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때 제가 몰몬경의 위대한 기록자인 ‘몰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몰몬경을 읽고 나서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자비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는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임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지금까지 소홀히 해 왔던 ‘경전을 다시 집어 들고 읽는 것’입니다. 경전을 읽으면 신앙의 뿌리 하나가 튼튼하게 뻗어나가게 됩니다. 첫째는 ‘경전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 기도

신앙을 키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항상 고통과 좌절, 그리고 유혹과 시험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인내’ 입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복음의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도자로써 신앙의 시험과 시련을 겪는 회원들을 접견하면서, 그들에게 질문을 해 보면,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기도하는 생활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삼18:15~2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항상 깨어 기도하라. 행여 마귀가 너희를 꾀어 사로잡을까 염려함이라.

보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항상 깨어 기도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 사탄이 너희를 사로잡아 밀같이 채로 치려 하는도다. …”

(니삼:18:24~25) “그러므로 너희의 빛을 들어 세상을 비치게 하라. 보라 나는 너희가 치켜들 빛이니 너희는 나의 행함을 본 대로 행하라. …, 너희도 세상에 나아가 이같이 행하라. 이 계명을 어기는 자는 모두 스스로 유혹에 빠지게 되리라.”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자는 ‘모두 스스로 유혹에 빠지게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모두 스스로 유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반드시 매일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기도로 인해 튼튼해 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하기 위한 두 번째 방편은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이유

최근에 저희 스테이크 신풍와드의 배용미 자매님이 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남편은 허희 형제님입니다.  수원 스테이크는 약 2년 전에도 같은 와드에서 구진자 자매님이 어린 자녀들과 남편을 두고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또 몇 년 전에는 신풍와드의 당시 현임 감독인 지헌재 감독님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배용미 자매님은 저의 아내의 고등학교 때부터의 단짝 친구였습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자신의 앨범사진의 절반이 배 자매와 찍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그 추억을 가슴에 묻게 되었다’고 하면서 슬퍼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왜 이와 같은 엄청난 시련이 닥치는 것일까요?

저에게 어린 막내 아이가 있는데, 그는 제가 집에 퇴근하여 들어가면 저의 뒤를 항상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아이의 면전에서 문을 닫는 것입니다.  주로 제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방에 살충제를 뿌릴 때 등 아이의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될 때 문을 닫습니다.  문이 닫히면 그 아이는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며 울고 불고 하며 난리를 피웁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놓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문을 닫고 응답을 하시지 않는 것을, 어린아이 같은 우리들은 그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께 매달려 보채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84년도에 저는 해군으로써 거문도라는 섬에서 근무했습니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저는 밤이 새도록 목소리를 높여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학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을 다니다가 제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제대하고 선교사업을 마친 후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는지를 타진해 보았지만 불가능 했었습니다.  학교 문제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94년도 여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자격증 공부를 하기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고 특별한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제가 다녔던 대학의 교무과에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특별히 지시하시기를 대학을 다니다가 제적된 학생은 그들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었든 가정 형편상 제적되었든 불문하고 모두 원하면 복학 시켜서 학교에 받아주라는 대통령령을 선포하였다”는 말과 함께 다시 학교에 복학하라는 학교측의 권유의 전화였습니다.

10년만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2001년 가을 스테이크장에 부름을 받았을 당시 저는 대학 4학년에 재학 중 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생 스테이크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는 드디어 작년 8월에 처음 입학한지 21년 만에, 다시 복학한지는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로 인해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이러한 ‘간증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 주시려고’, 학교와 관련된 제 기도에 늦게 응답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스가랴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스가랴7: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주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먼저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원리에, 예언자와 주님의 종들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금식

우리가 인생에서 설정한 어떤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며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 즉 열정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복음의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세 번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금식입니다.

금식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굶는 것이 우리의 의지를 굳세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금식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이틀을 금식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금식을 활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사탄으로부터 시험과 유혹을 받으셨고 그것을 극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40일을 금식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틀 정도는 금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사 시절에 처음으로 선임이 되어, 후임 동반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반자가 매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행동 하나 하나와 말 한마디 등에 몹시 신경이 쓰여, 주님의 영을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금식을 하기로 결심했고 저 혼자 24시간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을 끝내고 식사를 한 후, 그와 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둘째 날 금식이 끝나 가는 오후에, 당시 저희가 봉사하던 와드의 감독단 보좌인 유승구 형제님의 가정에서, 회원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동반자와 함께 그 모임에 참석했는데,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동반자는 집에 가고 싶다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이 저녁을 먹고 가라며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단호했습니다.  이틀째 금식하여 몹시 시장했지만, 늘 상 겪는 일이었기에 저는 별수 없이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떠날 때 회원들이 저에게 여러 가지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반자 때문에 힘드시겠습니다.” 등등. 이런 말은 제가 그를 만난 후 여러 동료 선교사들로부터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교 부장님과의 접견 때도 부장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선교부에서 매우 유명한 장로였으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며 동반자가 자주 바뀌며, 이동을 자주 다니는 장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를 따라 나서는 저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와 저를 위해 이틀씩이나 금식하고 기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위로는 오히려 저를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화가 나서 먼저 집을 나서는 동반자의 뒤를 저는 급히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난 채로 씩씩거리며 먼저 가고 있는 동반자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갈 때, 제 마음에 아주 고요한 평화로운 느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반자의 모습이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그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하는 모습같이 여겨졌습니다.  그의 살아온 과정이 그를 그처럼 어리광장이요, 말썽꾸러기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제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동반자가 아니라, 바로 저의 마음이 문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에 찾아온 특별한 변화였고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제가 얻기를 간구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때 이후로도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교 부장님께서 두 달이 지난 뒤에 이동이 있기 전에, 저에게 그를 계속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그와 세달 째 함께 지내게 되었으나, 그는 저를 떠나 이동 보내주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교 부장님을 협박하여 결국 원하는 이동을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의 금식 이후로, 동반자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는 것임을 깨달았고, 귀환할 때까지 별 문제없이 다른 동반자들과 원만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금식에 대하여 요엘서 2장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요엘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옷을 찢는 것은 금식하는 흉내를 내는 것을 비유한 말씀이고, 마음을 찢는 것이 참된 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식은 ‘우리의 마음을 찢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금식하면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주님의 영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면 귀신도 쫓아낼 수 있다(영감역 막9:29)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하늘의 축복을 끌어내릴 수 있는 효과적인 복음의 원리 가운데, 금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금식에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주는 권세가 있습니다.  금식을 활용하여 우리의 나약함과 연약함, 부족함 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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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읽기’와 ‘기도’, 그리고 ‘금식’을 통해 하늘의 능력에 의지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의 뜻대로 우리의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가지 원리가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2003년 8월 31일, 신풍와드 성찬식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