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3월 10일 (신풍)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언 23:7)

불교나 도가에서 수행하는 것 가운데 참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무념 무상으로 몰입하는 수련인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수행할 때 마음은 잠시도 마음대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생각은 한 순간도 우리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참선은 안 해봤지만 명상을 하면서 그와 같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노력하면 다스릴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다스리기가 힘이 듭니다.  아마 생각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가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경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일어나는 생각으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모든 선과 악이 시작됩니다.

형인 알빈 스미스가 교회가 회복되기 전에 죽었는데, 주님의 품 안에 구원 받는 것을 시현으로 보고, 의아해 하는 조셉 스미스에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성137:9) 이는 나 주가 모든 사람을 그들의 행위에 따라, 그들 마음의 소원에 따라 심판할 것임이니라.

소망에 따라 심판한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 동기,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을 지라도 사람은 마음에 어떤 생각을, 어떤 소망을, 어떤 목표를 가졌느냐에 따라 선한 자와 악한 자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의로운 소망도 지나치거나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범주를 넘어서게 되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도나 원칙이나 질서를 무시한 채,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것은 배도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선한 의도에서 그렇게 했을 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그러한 죄 중에 대표적인 것입니다.  앨마는 의로운 소망조차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 자제해야 함을 스스로 깨달았고 소원 중에 죄를 범[한다](앨29:1~3)고 기록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온의 스테이크를 인도하는 엄청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대해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우리가 이 부름을 받은 것은, 그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러한 것에 대하여 회원들에게 간증하고 가르치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최근에 소망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제가 신앙도 부족하고 사랑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소망하나 만큼은 넘치도록 지닌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교회 회원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제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한 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훌륭한 경지에 이른 분들을 항상 부러워하며 닮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더 훌륭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닌 소망으로 인해 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제가 회원들에게 신앙을 강조하기 이전에 소망을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제 간증의 기초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제가 온전해 지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저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개선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만약 제가 변화할 수 없다면 저는 오래 전에 교회 다니기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모로7:40~41) " 너희가 소망을 갖지 아니하고 어찌 신앙에 이를 수 있느냐? 또 너희가 바라야 할 바는 무엇이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으로 일으키심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할지니, 이는 약속대로 그를 믿는 너희의 신앙으로 인한 것이니라."

모세가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였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기적의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베풀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셨고, 인간의 몸으로 바다를 가르는 위대한 기적을 보인 분입니다.  모세의 무엇이 그러한 위대한 신앙의 권세, 기적의 권세를 갖게 하였는지 우리는 경전에서 한 구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로 세우실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신앙의 일을 할 사람으로 모세를 택하신 것은, 그가 이세상 사람가운데 가장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훌륭한 사람의 뒷면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애통해 하며 주님께 매달려 울부짖는 수많은 기도가 뒷받침 되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푸른 하늘의 태양처럼 빛나는 드높은 절개는,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길러진 것이며, 천지를 뒤 흔드는 뛰어난 경륜도, 깊은 연못가에서 살얼음을 밟듯 조심스럽게 마련된 것이다. (아하 채근담 진동일譯 도서출판 대흥)

신앙을 지니려면 반드시 소망도 있어야 된다고 모로나이는 가르쳤습니다. (모로7:42~43) "그런즉 사람이 신앙을 가지려면 반드시 소망을 가져야만 하나니, 이는 신앙 없이는 아무 소망도 있을 수 없음이라. 그리고 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그가 온유하며 마음이 겸손하게 되지 아니하고는 신앙과 소망을 가질 수 없느니라. 그리고 신앙과 소망을 갖게 되는 열쇠는 온유하며 낮아진 마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와드 대회 주제 성구를 생각해 봅시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구약시대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레19:2, 20:7) “…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 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온전해지고 거룩해지라는 이러한 말씀들은 소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온전한 소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사명 선언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축복사의 축복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축복사의 축복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인생의 사명과 목표를 생각하듯이,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가 이루어야 할 삶의 목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온전해 지는 첫 걸음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그 무엇인가가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하여 끊임없이 배우는 교훈과 계명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비행기 교관이 조종학교에서 훈련생들을 가르칠 때, 훈련생과 함께 비행하다가 비행기 기수를 한번에 약 2도씩 기울여서, 마침내 180도로 비행기를 뒤집은 뒤에 훈련생에게 비행기 조종간을 넘겨준다고 합니다. 처음에 훈련생은 비행기가 거꾸로 날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 비행하다가, 나중에 비행기가 뒤집혀 날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비백산하며 교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거꾸로 날 때 조종사 자신은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이 거꾸로 뒤집혀 날고 있거나, 아니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매달 배달되는 리아호나를, 한 달이 다 지나 다음호가 온 뒤에도 미처 읽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면,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온전한 것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내 생활이 지금 기울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기도도 하지 못하고 바쁘게 뛰쳐나가고 있다면, 이렇게 생활에 질서가 없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침례 받은 이후로 저는 늘 자신에게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지금까지 생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적인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슬퍼하며 많은 눈물을 흘려 왔으며 애통해 왔습니다.  저는 제가 변하지 못하고 여러분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스테이크를 인도하도록 부름 받은 주님의 종으로써, 저는 반드시 여러분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준비할 것이며, 제 가족을 온전히 하는데 제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오래 전에 관리 선교사에게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입니다.  선교사들의 어떤 모임에서 그 관리 선교사가 우리 선교사 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선교부 회장 보조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선교부 회장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교부 회장님으로써 가장 큰 책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선교부 회장님이 바로 지체 없이 답변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1987년 4월 20일, 선교사 일지)

우리의 가장 큰 책임은 교회 부름도 아니고 직장 일도 아닙니다.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우리 가정에 있습니다. 어느 교회 지도자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자신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것에서 가정을 제외 시킨다면-즉 가정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그때부터 심신의 허약함을 향한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와드 대회 주제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은 바로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가족]도 온전하라. (마5:48)

오늘 와드 대회의 주제인 온전해짐을 우리와 우리 가족의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고, 이 소망을 항상 기억하며 우리가 죽을 때 까지 계속하여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히시겠다(계3:18~21)는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생애 동안 이루는 성품소망언행이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을 아름답게 해주고, 우리가 속한 이 와드와 스테이크를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이 대회를 계기로 올 한해 더 큰 변화와 성공을 이루고, 그러한 것들을 주님께 감사의 기도로써 바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을 지켜보고 계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이 교회가 참되며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요 구속주 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2년 3월 10일, 수원 스테이크 신풍와드 대회에서, 스테이크 회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