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09일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 참으로 감추인 보화도 찾으리니 (수원 ST 일요 대회)]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 참으로 감추인 보화도 찾으리니”

약 20여 년 전 선교사시절 초기 어느 날 저녁에 지갑을 열어 보았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저는 포항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경주에서 선교사 모임이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갑에는 경주까지 갈 차비만 달랑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동반자가 미국인 장로였는데, 그에게 도움을 청할까 생각하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주님께 간절히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룩한 선교사 기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경주로 가서 선교사 모임은 잘 끝났습니다.  모임 후 이제 돌아오려는데, 어떤 장로님이 저에게 다가와서, ‘구 장로님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없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저는 ‘괜찮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또 다시 저에게 ‘제가 뭐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세 번째로 저에게 질문한 뒤에야 저는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즉석에서 저에게 2만원을 주면서 이것으로 차비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도하면서 참으로 많이 울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앞으로 십일조의 법을 온전히 지키겠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 때 당시 저에게 도움을 준 그 장로님이 바로 여러분께서 모두 잘 알고 계신 신풍 와드의 안재석 형제님입니다.

말라기서 3장에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3:8~12)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가 수년 전에 지부 회장으로 봉사하던 시절, 어떤 독신 자매님의 십일조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의 십일조가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 자매님은 십일조를 내면서, 거의 십일조에 육박하는 금액을 금식헌금으로 내는 자매님이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십일조가 아닌 거의 오분의 일조를 바치는 자매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의 금식헌금을 보면서, 제가 내는 금식헌금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저의 금식헌금을 후하게 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혹시 실직, 사업 실패 등으로 고민하고 계시는 성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계명인 십일조의 법을 기억하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이 계명에 충실한 자에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후한 금식 헌금을 바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침례를 받은 후, 6개월 만에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부대에 배치된 후 첫 외박을 고참들과 나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참들은 저와 몇 명의 신참 졸병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술잔을 따라주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마시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저에게 협박, 기합 등으로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별로 유쾌한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관련하여 별로 유쾌하지 못한 경우를, 직장 등에서 경험하신 분들께서 계실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대학에서, 직장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에 등록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날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은 반원들을 모두 데리고 어떤 술집으로 갔습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갔습니다. 둥그런 원탁에 약 20여명의 반원들과 교수님이 빙 둘러 앉았습니다.  저는 그 교수님의 바로 왼쪽에 앉았습니다.  교수님이 맥주와 양주를 이용해서 일명 폭탄주를 만든 뒤, 주욱 들이키고 나서 모든 반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술을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드셔야 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드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술을 드시지 않으시면 벌칙이 있습니다. 벌금을 내야하고 벌도 받아야 합니다.”

자리에 함께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셨습니다.  교수님의 오른쪽부터 한 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술잔을 집어 들고 그 자리에 함께한 회중들에게 약 1분 내외의 짧은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이 좋은 분위기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 모두가 제가 이 술을 마시기 바란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뜻한 바가 있어서 교회에 다닌 뒤부터 약 20여 년간, 술, 담배, 커피, 홍차 등을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이러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 술을 마시지 않고, 벌을 받고 벌금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몇 만원 정도로 기억되는 벌금을 내려고 지갑을 꺼내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이 저의 술잔을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벌금은 안 내셔도 됩니다.  저는 신념이 확실한 사람을 존경합니다.  선생님의 술은 제가 대신 마시겠습니다.  여러분 동의하시죠?”

그러면서 그는 제 술을 대신 마셨습니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저는 안주만 먹으면서 함께 하였습니다.  모든 모임이 끝난 뒤 술에 취한 그 교수님을 부축하여 택시를 잡으려고 가는데, 그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나이에 이르도록 아직도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 날은 참으로 유쾌한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지혜의 말씀과 관해 난처한 경험을 한 적이 많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키려면 세상적으로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말은, 거짓된 사탄의 가르침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세상의 신뢰를 받고 세상적으로도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간증 드립니다.

지혜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을,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신 계시를 통해 찾아 봅시다.  (교성89:18~20) “무릇 계명에 순종하여 생활하면서 이 말씀을 지키며 행하기를 기억하는 모든 성도는 그들의 배꼽에 건강과 그들의 뼈에 골수를 얻을 것이요,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 참으로 감추인 보화도 찾으리니, 달려도 피곤하지 아니하며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지혜와 지식의 큰 보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해하고 알게 된, 이 참된 복음에 대한 지식입니다.  바로 이 복음에 대한 간증입니다.  순결하게 되고 정결케 된 우리 자신입니다.

 

저의 축복사의 축복을 주의 깊게 다시 읽어 보니, 거기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네 번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대한 사랑’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찌어다.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전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참된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 - 복음을 가르치는 일 - 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웃과 복음을 나누는 사람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교사업을 하는 자는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사랑을 베푸는 자입니다.  여러분의 봉사는 바로 여러분의 사랑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위대한 이유는, 경전에 다음과 같이 그분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니전19:9) “또 세상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이 그를 채찍질하나 그는 이를 참으시며, 그들이 그를 치나 그는 이를 참으시느니라. 참으로 그들이 그에게 침을 뱉으나, 사람의 자녀들을 향한 그의 사랑의 친절과 그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를 참으시느니라.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사랑을 지니신 분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유는, 그분이 늘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친히 커다란 고통을 인내로 견디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3장 20절에 보면,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참는 것이라면, 사랑을 지니기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부 사이에 인내하고 참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 관해 참고 견뎌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만이 사랑을 지닌 자로 인정될 것입니다.

몰몬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드러나는 자는잘 될 것'(모로7:47)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고난을 인내로 극복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복음이, 참으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는 나의 구속주 이시며 우리의 구세주 이심을 간증 드립니다.

이제 다음 스테이크 대회가 돌아오기까지,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은혜와 은총의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4년 5월 9일,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에서, 스테이크 회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