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02월 19일 원칙 중심의 리더십(수원 스테이크 신권 대회)]

원칙 중심의 지도력

19세기 중반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불과 열 여덟 살의 소년인 학생회장에게 매우 큰 권력과 책임을 위임했습니다.  그 학생회장의 침대 위에는 다른 학생에게 체형 즉, 매질(학교에서 인정함)을 가할 수 있는 회초리가 놓여 있는데,  그 침대 다리에 세 마디 희랍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다스림은 인간의 됨됨이를 밝히 보여 준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본성이 그의 통치의 방법에 의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지도력의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겠습니까?

몰몬경에는 어린 나이에 지도자가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모로나이 장군은 불과 25세에 전 니파이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몰몬은 자신에 관하여 겸손하게 “비록 나이는 어렸으나 체구가 큰 나를 백성들은 저들의 지도자, 곧 저들 군사의 지휘자로 삼은지라, 내 나이 열 여섯에 레이맨인들을 대적하여 니파이 군대의 앞장을 서 나아가니,”(몰몬서2:1~2)라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니파이인들이 불과 열 여섯 살밖에 안된 몰몬을, 다만 체구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그들 군대의 지휘관으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몰몬이 기록한 다른 글들을 통하여, 몰몬을 포함하여 이러한 자질을 지닌 의로운 지도자들의 됨됨이에 관하여 충분히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지도력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지도력의 원칙(The Power Principle)’ 참조, 블레인 리 저, 김영사, 1999년)

1. 강압적인 지도력

강압적인 지도력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질, 위협, 협박, 통제, 겁주기, 무시, 두렵게 함, 비방, 기만, 부추김, 술수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교리와 성약121:37~41)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숨기려 하거나, 우리의 교만과 헛된 야망을 채우며 조금이라도 불의 하게 인간의 자녀를 지배하며 통어하며 강압하려 하면 보라, 여러 하늘은 스스로 물러가며 주의 영은 슬퍼하시나니, 주의 영이 물러가면 그 사람의 신권 곧 권위는 아멘이니라. …우리는 슬픈 경험을 통하여 이 사실을 배웠나니, 곧 거의 모든 사람은 사소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마자 불의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천성과 기질이 있도다. …신권의 권능을 구실삼아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유지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아니되나니,”  강압적인 지도력은 두려움을 바탕으로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소한 권능을 지니게 되었을 때 이러한 강압적인 지도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쉽게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형태의 지도력은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형태를 군대 생활이나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주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2. 실리적인 지도력

실리적인 지도력은 공정함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가게에서 물건을 삽니다.  우리는 가게 점원을 협박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만 그 물건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 뿐입니다. 실리적인 지도력의 형태는 이러한 금전적인 보상, 칭찬이나 인정, 협상, 자신의 지위를 이용함, 전문가로서의 권위, 카리스마의 힘, 정보의 힘, 도구의 힘, 인간관계의 힘 등을 이용하는 형태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칭찬이나 인정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라면 실리적인 지도력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실리적인 지도력은 강제적인 지도력 보다는 한 차원 높은 힘이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다음에 설명할 원칙 중심의 지도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리적인 지도력은 그 지도력을 이어주는 끈이 사라지면, 언제라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3. 원칙 중심의 지도력 (존경 받는 지도력)

“신뢰 받는 것이 사랑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를 신뢰하는 것이며 그의 선함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성실하며, 존경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다고 믿습니다.  새로 부름을 받는 역원을 지지할 때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더라도 그들을 부른 지도자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전에서 살펴보면 존경스러움은 고결한 도덕적 원칙으로 살아가는 것,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진실함을 지켜나간다는 뜻입니다. 존경심은 타협하지 않는 정직과 신용, 어떠한 지도력이나 영향력에 의해서도 약화되지 않는 올바른 도덕적인 신조를 일컫습니다.  존경심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존중, 경의, 경외, 숭배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간디는 살아 생전에 그가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끼쳐왔으며, 이로 인해 ‘덕의 정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원칙 중심의 지도력은 존경심을 그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원칙중심의 지도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지속적입니다. 2000여년 전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 전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지금까지도 강력하고 영원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브리감 영 대관장님의 가르침을 신권회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조셉 에프 스미스 대관장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참된 지도자의 영향력이 지속적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위인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도 남아, 이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며 위대한 업적과 유산으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들은 평생토록 이러한 원칙을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몰몬은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다하여 저들을 사랑하였고, 평생을 두고 저들을 위하여 심령을 다 기울여 기도하였다” (몰몬서3:12)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도력은 지도하는 사람이나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영원한 결과를 낳게 해 줍니다.

둘째, 주도적입니다. 새로 온 병사 한 명이 지휘관에게 물었습니다.  “제 참호가 어디 있습니까?”  장교가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지금 참호 위에 서 있으니 열심히 흙을 파내게.” 책임을 맡았을 때 그 책임에 걸맞은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로 주도적인 행위입니다.  몰몬은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수고를 그칠진대 정죄를 받을 것인즉, 저들이 비록 강퍅할 지라도 우리는 열심으로 일하자.  또한 우리에게는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 다해야 할 임무가 있으니, 이를 다하여 온갖 의의 원수가 되는 것들을 이기고, 우리의 영육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자.” (모로나이서9:6) 주도적인 사람은 상황에 좌우 되지 않는 지도력을 행사합니다.  이들은 부정적인 주변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셋째, 자기 통제력입니다. 이것은 희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할 수 있는 능력 즉 ‘자기관리’를 뜻합니다. “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금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희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희생 정신이 자기 통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리가 됩니다. 존경을 바탕으로 한 원칙중심의 지도력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윤리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며, 계획된 삶을 살게 해줍니다. 앨마서 60장은 모로나이가 나라의 통치자인 페이호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모로나이 장군의 인간 됨됨이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대들의 형제가 수천명이나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구해 주시리라고 생각하느냐? …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수 없이 구출된 일을 그대들은 잊었느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바를 따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시리라고 생각하느냐? …이제 나는 먼저 그릇의 안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릇 바깥도 깨끗하게 닦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이 기억하기 바라노라. …다만 내가 두려워 하는 이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보라 나 모로나이는 나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로 서약한 대로 틀림없이 계명을 지키리로다. …나는 세상의 명예를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나니 내 나라의 자유와 복리를 구하노라.”

끈임 없는 절제와 절대자에 대한 신앙, 흔들리지 않는 원칙 등이 이러한 지도력을 지닌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불의를 미워하고 자신과 주변에 질서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한번 선택한 원칙에 있어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을 통하여 그런 사람들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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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상호 의존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지도자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항상 다음 경전 구절들을 생각합니다. (교리와 성약 101:16) 그러므로 시온에 대하여는 너희 마음을 놓을지어다. 모든 육체는 내 손안에 있나니,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 (니삼28:39) 저들에게 있었던 변화로 인하여 사탄이 저들을 사로잡아 유혹하지 못하며, 육체로 있으면서 성결케 되어 거룩한지라 땅의 권세가 저들을 속박하지 못하느니라.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저는 저의 마음이 성결하지 못함을 탓합니다. (교성20:34)  참으로 거룩하게 된 자까지도 조심하게 할지니라.

(교리와 성약 121:41~45) “신권의 권능을 구실삼아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유지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아니되나니, 다만 설득오래 참음온화함온유함거짓 없는 사랑과, 친절깨끗한 지식으로 할 것이니, 이것들은 위선이나 간교함이 없어 사람을 심히 크게 만드느니라. …그리하여 저로 네 성실함이 죽음의 사슬보다 더 강한 줄 알게 하라. …쉬지 말고 덕으로써 네 생각을 장식하라. 그리하면 주의 면전에서 네 신임이 두터워 지리니, …”

상호의존성은 이러한 온전한 성품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즉 함께 하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원칙중심의 지도력은 존경심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존경심은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것을 완전히 중단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희랍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통치자로서 적합한 사람은 철학자 뿐이며, 그 철학자가 진정한 철인이라면,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여기에 대하여 “자신의 본의가 아니고 남에 의해 마지 못해 된 통치자만이 바람직한 통치자”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말일 성도 신권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을 포함하여 자신이 원해 그 자리에 서게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도 역시 이 자리에 선 것이 제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권의 맹세와 성약을 받아들인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통치자요 왕과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을 운명을 타고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참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이 필멸의 세상에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 1.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2. 말에 귀를 기울이는 외에, 간악한 자들에게는 나의 힘을 보이지 아니하리라(7:23)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이러한 참된 권세인 올바른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지 필수적인 원리는 바로 회개,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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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도력의 모범이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년 2월 19일 수원 스테이크 신권 대회에서 스테이크장단 제 2보좌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