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03월 12일 좁은문으로 들어감(수원 스테이크장단 메시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TV 시사 토론의 진행자인 정운영 교수가 쓴 세기말의 질주(해냄 출판사, 6쪽, 1999년 10월)라는 책에 보면, 그는 오늘날 재주와 요령이 뛰어난 사람들도, 정직한 노동대신 일확천금의 투기로 달려드는 것이 세기말의 세태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차 대회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왜 주님의 훌륭한 종들이,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이러한 투기의 열풍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경고하지 않으실까? 하는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최근에 저는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경전과 사도들의 말씀을 대하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저는 니파이삼서 27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몇 가지 권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곧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아 밤이 되어 아무도 일할 수 없을 때까지 그 길로 나아 가느니라 하시니라. (니파이삼서27:33)

이 말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면서, 저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주식투자가, 오늘날 마치 도박판처럼 변질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세금 제도를 보면, 불로 소득에 대하여는 매우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사고 팔 때, 만약 100%의 이익을 남기면 특별한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한, 상당한 이익을 세금의 형태로 정부에서 환수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로소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주식시장에서 불과 4~5일만에 벌어져도,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적절한 만큼의 세금을 매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불로 소득은 우리의 영혼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한번 그러한 것에 매료된 사람은 그러한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몹시 힘듭니다.  그것은 도박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이며, 마약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한 인생행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전능하신 분의 손길로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대가입니다.

우리는 대가를 치루지 않고 쉽게 행복을 추구하려 하는 습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날 TV와 같은 대중 매체를 보면 짧은 시간에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고, 그 해결방안도 아주 쉽게 제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으면 짜증을 부리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 시대는 참으로 인스턴트 시대이며 조급증의 병에 걸린 시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내, 오래 참음, 근검절약 및 땀 흘려 일하는 것 등의 소중함을 아는 백성들입니다.  이러한 길에 들어서는 문은 좁아서, 찾는 이가 적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곧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니파이삼서 27:33)  그 길은 또한 좁을 뿐만 아니라 평탄하지 않은 가시밭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시밭 길의 중간에는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도 놓여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 이유는 우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닌 복음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고 융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가르침, 순교자의 이유)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찬송가 142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휩쓸어)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휩쓸어 잃은 것을 생각해 낙심할 때, 네가 받은 복을 모두 세어라 주의 크신 복에 네가 놀라리.

세상 근심 걱정으로 시달려 십자가가 무겁게 생각될 때, 네가 받은 복을 모두 세어라 너의 모든 의심 사라지리라.

다른 사람 재물 네가 볼 때에 한량없는 허락 생각 하여라.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축복과 하늘에서 받을 보수 세어라.

 (후렴) 주가 주신 복을 세어라 주가 하신 일을 알리라. 크신 복을 세어보아라 주가 주신 복을 네가 알리라.

다른 사람의 재물을 보기 전에 주님께서 주신 한량없는 축복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돈을 주고는 결코 살 수 없는 축복이 분명히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은 교사가 된 자들에게 우리가 행해야 할 바를 구체적으로 일일이 가르치도록 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관하여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복음 원리를 가르치도록 명을 받은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구체적인 규칙이나 적용 이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무엇이 완전한 십일조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어떠한 법칙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목록은 제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단 어떤 교사가 교리와 관련된 원리들을 가르치면, 그와 같은 구체적인 적용 또는 규칙은 일반적으로 개인 및 가족의 책임인 것입니다. (리아호나, 2000년 1월 호, 96쪽, 복음 교육,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주식 투자는 동전의 앞, 뒤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건전한 투자와 마치 도박판 같은 투기의 열풍이라는 양면입니다.  이 교회에서는 아무도 회원들에게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원들이 선택할 규칙인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회원들에게 불로 소득의 위험성투기에 대하여 경고해야 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질병과 같은 것으로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교회 회원으로서 이러한 것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자들은, 그러한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를 언젠가는 치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피해야 할 사탄의 가르침이며 멸망의 아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보라 지금으로부터 넷째 세대의 백성으로 인하여 내가 슬퍼하노니, 저들이 멸망의 아들과 더불어 속박되어 끌려 가서, 은과 금과 또한 좀이 쓸며 도적들이 들어가 도적질해 갈 것을 받고 나를 팔 것임이라. 그날에 내가 저들에게 임하여, 저들이 행한 대로 그 보응을 저들의 머리 위에 부으리라. (니파이삼서27:32)

사탄은 금과 은으로, 좀이 쓸 것들로, 그리고 도적들이 들어와 도적질해 갈 것들을 이용하여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교만이 마음에 싹트도록 버려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몹시 부하매 교만이 선한 것을 뛰어 넘었음이라.  힐라맨서 7장26절의 말씀입니다.  부유한 자만이 교만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를 추구하되 현명치 못한 방법을 택하는 자들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교만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때가 오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허망한 것들임을 스스로 알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과식은 배탈을 초래하며, 과속은 사고를 유발합니다.  과욕은 우리의 영혼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에는 때때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우리의 능력을 비웃음으로써 우리를 끌어내리려 노력합니다. 생명나무의 시현에서처럼 조롱하는 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은 자는 모두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니파이일서8:34)

이 교회의 초창기에, 최초로 선택된 십이사도 가운데 무려 여섯 명이나 배도하던 시절에도, 오늘날과 같은 투기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선택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권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들이 유혹을 받으며 무수한 환난을 겪은 뒤에, 보라, 나 주는 저희 마음을 살피리니, 만일 저들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하여 교만하지 아니하면, 나는 저들의 마음을 개심하게 하고 저들을 고쳐 주리라. (교리와 성약112:13)

우리가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않고 주님께 대하여 교만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개심하게 하고 우리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 1.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2. 말에 귀를 기울이는 외에, 간악한 자들에게는 나의 힘을 보이지 아니하리라(7:23)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권세인 주님의 힘과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따라야 가지 필수적인 원리는 바로 회개와, 순종입니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유혹과 무수한 환난으로 인하여 험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다음 노래에서 위안과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87장, 가시밭 험한 길)

가시밭 험한 길 찌는 더위 중에, 저 높은 곳 오르려 할 때, 있는 힘 다해야 도달되는 저곳, 여행 길게 생각 되느냐.

근심의 짐 져서 맘에 약함 절망, 영혼 모두 피곤해질 때, 네가 진 그 짐은 너무 무거웁고, 도움 없다 생각 되느냐.

맘의 고통으로 네 가슴 아플 때, 이제까지 걸은 저 아래 골짜기 내려다 보고, 한숨 지며 되돌아 가기 원하느냐.

너의 여행 이제 시작되어 가니, 네 마음에 낙담 말아라, 오라 손짓하는 우리 주 계시니, 위를 보고 기뻐하여라.

길은 험하며 가시밭 투성이 인데다가, 날씨마저도 찌는 더위 등, 참으로 모든 것이 악조건입니다. 근심 걱정과,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낙담하게 될 때, 형제 자매 여러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손짓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늘에서 우리가 받을 축복을 생각하며 위를 보고 기뻐합시다!

모로나이의 간증처럼 교회에 속하여 있어 화평한 중에 그리스도를 좇는 자가 되며, 지금으로부터 주와 더불어 하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때까지 참으로 주의 안식에 참여할 있으리라는 소망 (모로나이서7:3)을 우리 모두가 지니게 되기를 바랍니다.  확고한 소망은 우리를 지켜주는 그 어떠한 보증서, 그 어떠한 보험 계약서 보다도 우리를 안심케 하고 흔들리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모로나이는 몰몬경의 여러 예언자들 중 가장 고달픈 삶의 역경을 헤쳐 나가야 했던 분 중의 하나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간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노니, 하나님의 낙원으로 가서 나의 영과 육이 다시 결합되며 공중을 나는 승리를 얻어, 산자와 죽은 자의 영원한 재판관이신 여호와의 즐거운 심판대에서 만날 때까지 쉬리로다.” (모로나이서10:34)

우리가 안식을 얻을 때가 반드시 다음 세상뿐만은 아니지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편히 쉬게 될 날이 언젠가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 이 복음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 되는 소망(surety hope;이더서12:4)임을 여러분들에게 증거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년 3월 12일, 수원 스테이크장단 메시지, 제 2보좌,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