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04월 15일 선교사업을 향상시킴(수원 스테이크 대회 신권 역원회)]

“선교 사업을 향상시킴”

형제 여러분! ‘선교사업’이라는 단어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언어는 어떤 사물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 사물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습니다.  선교사업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선교사업을 아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선교사업의 뜻과 그 의미에 대하여, 여러분의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宣敎事業’이라는 한자 단어를 보면 ‘베풀 宣’, ‘가르칠 敎’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영어 단어의 ‘Mission’을 ‘전도, 포교’ 등으로 번역하는데 우리는 ‘선교사업’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쓰는 ‘선교사업’이라는 단어야 말로 영감 받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어떤 공과를 하면서 저는 ‘宣敎師’의 ‘宣’자가 ‘먼저 先’자인 줄로 잘못 알고, 선교사를 ‘먼저 교사가 된 자’라고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실수를 저는 오늘 바로 잡고 싶습니다.  베푸는 행위는 주는 것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베풀며 살거나, 폐를 끼치며 사는 두 가지 형태가 있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삶을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선교사업의 가장 훌륭한 동기입니다.

그렇다면 ‘가르칠 敎’에서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 이겠습니까?  그것은 일반 사람들의 용어를 빌린다면 ‘확신’일 것이고, 교회 용어를 빌린다면 ‘간증’이 될 것입니다.  확신, 즉 간증이 함께 할 때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할 수 있고, 그러한 감동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할 때, 비로서 ‘개심’ 즉 ‘개종’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하는 간증이 포함되지 않는 가르침은, 영혼이 없는 육체처럼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할 수 없고, 그들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빛을 지니지 않고, 남을 비추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간증은 또한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앙을 논할 때 간증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宣敎事業이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의 ‘宣’ 즉 ‘베품’ 다른 말로 하면 ‘사랑’과, ‘敎’ 즉 ‘가르침’ 또는 ‘간증’ 다른 말로 하면 ‘신앙’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가족이나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사랑과 신앙이 부족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인 선교사업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事業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 종류의 사업을 보면, 훌륭한 사업계획 없이 성공하는 사업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목표 즉 계획이 없이 무슨 훌륭한 일을 이루겠으며, 원대한 포부가 없이 어찌 사업가가 성공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사업이란 근본적으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각오와, 마음의 준비에서 출발합니다.  교회 용어를 빌린다면 이것은 곧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宣敎事業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수 차례 강조하신 가장 근본적인 복음 원리인, ‘신앙’, ‘소망’,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宣敎事業’이라는 단어의 뒤에 숨어 있는 이러한 원리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스테이크가 작년에 선교사업에 있어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회원들과 지도자들의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훌륭하게 준비된 자들은, 언젠가는 그러한 준비의 결과가 열매로 맺힐 것입니다.  우리에게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우리말에 배은망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빚을 지고 그것을 갚지 않는 것, 은혜를 모르고 보답하지 않는 것 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참되고 충실할 때, 비로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게 되며 성결케 될 것입니다.

선교사 시절 처음으로 선임이 되어, 후임 외국인 동반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반자가 매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행동 하나 하나와 말 한마디 등에 몹시 신경이 쓰여, 주님의 영을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금식을 하기로 결심했고 저 혼자 24시간 금식을 했습니다.  식사를 한 후 그와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식사를 한 후 다시 24시간 금식을 시작한 이유는, 활동이 많은 선교사가 48시간 연속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고 현명치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 금식이 끝나 가는 오후에 당시 저희가 봉사하던 와드의 감독단 보좌 형제님의 가정에서, 회원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동반자와 함께 그 모임에 참석했는데,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동반자는 집에 가고 싶다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이 저녁을 먹고 가라며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단호했습니다.  이틀째 금식하여 몹시 시장했지만, 늘 상 겪는 일이었기에 저는 별수 없이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떠날 때 회원들이 저에게 여러 가지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반자 때문에 힘드시겠습니다.” 등등. 이런 말은 제가 그를 만난 후 여러 동료 선교사들로부터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교 부장님과의 접견 때도 부장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선교부에서 매우 유명한 장로 였으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며 동반자가 자주 바뀌며, 이동을 자주 다니는 장로 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를 따라 나서는 저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와 저를 위해 이틀씩이나 금식하고 기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위로는 오히려 저를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화가 나서 먼저 그 집을 나서는 동반자의 뒤를 저는 급히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난 채로 씩씩거리며 먼저 가고 있는 동반자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갈 때, 제 마음에 아주 고요한 평화로운 느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반자의 모습이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하는 모습같이 여겨졌습니다.  그의 살아온 과정이 그를 그처럼 어리광장이요, 말썽꾸러기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제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동반자가 아니라, 바로 저의 마음이 문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에 찾아온 특별한 변화였고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제가 얻기를 간구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 때 이후로도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교 부장님께서 두 달이 지난 뒤에 이동이 있기 전에, 저에게 그를 계속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그와 세달 째 함께 지내게 되었으나, 그는 저를 떠나 이동 보내주지 않으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교 부장님을 협박하여 결국 원하는 이동을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의 금식 이후로, 동반자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는 것임을 깨달았고, 귀환할 때 까지 별 문제없이 원만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신권 지도자 여러분!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먼저 우리자신의 내면의 능력을 일깨워야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훌륭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계기와 능력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자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 외에, 간악한 자들에게는 나의 힘을 보이지 아니하리라”(힐7:23)  회개와 순종, 그리고 금식과 기도만이 우리에게 하늘의 권세의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선교사업은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의 사업이므로 ‘사업계획’ 즉 ‘목표’, 다른 말로 하면 ‘소망’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사업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식었기 때문에 선교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사업을 하라는 주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준비시키고, 우리의 교회 회원들을 준비시키는데 충실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소망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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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용한 시간에 방해 받지 않고 기도할 때 저의 마음속의 모든 소망과 동기를 하나님께 말씀 드리며 기도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특별한 느낌이 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주님께서 반드시 들으신다는 사실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선교사 시절에 저의 일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저의 글씨이고 제가 쓴 것이 분명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훨씬 뒤에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는 저의 좌우명이 된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저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 주 하나님은 그대를 불러 더[욱] 훌륭한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느니라. 너는 너의 손을 정결히 씻고, 내가 너를 불러 시킬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1987년 5월 20일 일지 중에서, 교리와 성약 35편 3절과 비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년 4월 15일,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신권 역원회에서, 제2보좌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