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01월 16일 고통의 몇 가지 이유]

고통의 몇 가지 이유

몰몬경의 첫번째 페이지의 첫 구절에 보면, 니파이는 “살아오는 동안 많은 환난을 겪”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몰몬경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구절에 보면, 모로나이가 “여호와의 즐거운 심판대에서 만날 때까지 쉬리로다”라고 말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몰몬경은 전체가 고통과 고난의 역사이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그러한 상태에서 구원하시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최근 몰몬경 니파이삼서를 읽다가 예수님께서 미 대륙에 방문하시어, 택하신 열 두 제자 가운데 세 명의 제자에게 주신 다음 말씀에서,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느낀 몇 가지 저의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너희가 육신으로 세상에서 지내는 동안, 세상의 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고난이나 슬픔을 겪지 아니하리니,” (니파이삼서 28:9)  인간이 육신으로 지내면서 고난과 슬픔을 겪지 않는 것은, 몇몇 선택된 분들 만이 경험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고통을 겪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평안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저는 여러분에게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고통의 다섯 가지 이유 :

첫째.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고통이 옵니다.  니파이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니파이이서4:17~19) “…오 나는 불쌍한 인간이로다. 나의 육신이 나를 슬프게 하며, 나의 죄가 나를 비탄케 하는 도다 …이는 나를 쉽사리 뒤엎어 버리는 유혹과 죄 가운데 묻혀 있음이라. 내가 의지하여 온 분이 누구이신가를 알면서도, 내가 기뻐하고자 할 때에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마음이 신음하게 되는도다.”

(니파이이서4:26~27) “오 그러면 어찌하여 내가 그토록 놀라운 일을 보았으면서, 주님께서 그토록 크신 자비로 인간들을 찾아 주셨음에도 나의 마음이 슬피 울며 나의 심령이 슬픔의 골짜기에서 방황하며, 나의 육신이 쇠진하여지고 고난으로 하여 나의 기력이 진하는고?  또한 어찌하여 육체로 말미암아 죄를 지어야 하느뇨? 어찌 하여 유혹에 굴하여 악마가 마음으로 들어와 나의 평화를 깨치며, 나의 심령을 아프게 하게 하는고? 어찌하여 내가 나의 원수로 하여 노하느뇨?”

우리의 육체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게 태어난 것은, 주님께서 모로나이에게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더서12:27) “만일 사람이 내 앞에 이를진대 내가 저들의 연약함을 보이리라. 내가 사람을 연약하게 하였음은 저들로 겸손해지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나의 은혜는 내 앞에 겸손하게 임하는 자 모두에게 흡족할지니, 저들이 내 앞에 겸손하여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질진대 내가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 하리로다.”

둘째. 우리 마음의 연약함 (죄, 현명치 못한 선택, 어리석음, 또는 무지) 때문입니다. 앨마는 아들 코리앤톤에게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앨마서41:10) “… 죄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닌 것이니라. (앨마서42:29) 나의 아들아, 이러한 일로 다시는 염려하지 않기 바라노니, 오직 죄가 너를 괴롭히게 하고 그 괴로움으로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노라.”

주님께서는 나중에 사도 바울로 불리게 된 사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26:1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죄를 짓는 것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죄를 짓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반드시 괴로움과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신권 소유자들에게 주신 권고의 말씀에서도 그러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121:37~38) “이 권능은 우리에게 수여되는 것이니, 이 또한 사실이니라. 그러나 우리가 1) 우리 죄를 숨기려 하거나, 2) 우리의 교만과 헛된 야망을 채우며 3) 조금이라도 불의 하게 인간의 자녀를 지배하며 통어하며 강압하려 하면 보라, 여러 하늘은 스스로 물러가며 주의 영은 슬퍼하시나니, 주의 영이 물러가면 그 사람의 신권 곧 권위는 아멘이니라. 보라, 저는 깨닫기전에 홀로 있게 되어 가시를 걷어차며 성도들을 박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도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인해 축복 또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곁을 떠날 때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셋째. 전능하신 이의 손길(매) 때문일 경우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받는 고통의 이유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매일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매(막대기)로 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리와 성약19:20, 15, 17) “…내가 나의 전능한 힘으로 너희를 낮추게 하지 않도록 하라. … 회개하라, 그리하여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막대기와 나의 분노와 나의 노여움으로 너희를 치지 않게 하고, 너희 고난이 극심하지 않게하라. …그러나 저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겪은 것 같이 고난을 겪어야 하리니,”

(힐라맨서12:1~3) “이같이 우리는 인간들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고 또한 연약하여 변하기 쉬운 것인가를 아나니, … 이는 오로지 저들이 안이한 때문이요, 크게 번영하는 때문이라. 그리하여 주가 이 백성들을 고난으로 징계하시며, 사망과 공포와 기근과 온갖 역병으로 저들을 치지 아니하시면, 저들이 결코 주를 기억하지 아니 하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그분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치실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의 목적이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지를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다른 사람(즉 우리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죄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맨과 레뮤엘로 인해 그들의 부친인 리하이는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니파이일서18:17) “…나의 부친은 이미 노령에 이르셨고 아들들로 인하여 크게 근심하였던지라 마침내 병석에 누우시게 되었느니라.”  이 세상에 자식의 죄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부모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시편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주님의 종들도 이러한 고통에서 예외 될 수 없습니다.  니파이는 정원 탑 꼭대기에 올라가 간절히 울부짖었습니다. (힐라맨서7:6) “이토록 끔찍한 죄악이 여러 해를 두고 니파이인들에게 창궐한지라, 니파이가 이를 보매 마음 속에 치솟는 슬픔으로 가슴이 메었고, 영혼을 쥐어 뜯는 아픔으로 통곡하여 부르짖 ”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 대륙에 방문하신 주님도 그러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니파이삼서17:14) “저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앉자 예수께서 마음으로 괴로워하시며 이르시기를, 아버지시여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간악함에 마음이 편안치 못하나이다.” 니파이삼서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연민의 고통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고통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혹은 다른 이유로 고통을 받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마치 영혼을 쥐어뜯는 듯한 아픔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받는 고통입니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수반하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세상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과부와 고아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과부와 고아를 특별히 보살피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된 것이 이들의 잘못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을 당하는 경우는 누구의 잘못 때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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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경우가 있습니까?  악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재산을 빼앗긴 적이 있습니까?  그로 인해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신 경우가 있습니까?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 이유는 우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닌 복음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고 융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가르침, 순교자의 이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원리 :

선지자 니파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이러한 영육의 고통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자신이 할 일들에 대한 각오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니파이이서 4:28) “잠을 깨어라, 나의 영혼이여! 다시는 죄에 빠지지 말라. 기뻐하라. 나의 마음이여 영육의 원수에게 다시는 굴하지 말지어다.”  그의 기도는 주님께 부탁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주님의 도움을 청한 기도입니다.  그의 기도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니파이이서 4:31~32, 34~35)…“내가 죄의 면전에서 몸을 떨게 하여 주시겠나이까? 내가 상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아오니, …내가 낮은 골짜기로 뻗은 길을 걷게 하시며, 외길을 똑바로 걷게 하시옵소서. …내가 당신께 의지하여 왔으며, 영원토록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육신의 권세에 저주가 임함을 앎에 내가 육신의 권세를 섬기지 아니하겠나이다. …진정 내가 아노니,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며, 내가 합당하게 구할진대 나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임에, 내가 음성을 높여, 나의 하나님이시며 의의 반석이신 당신께 간구하겠나이다. 보소서 나의 음성이 영원토록 나의 반석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이신 당신께로 향하게 하겠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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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단계는, 그러한 고통이 왜 우리에게 찾아왔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원인을 모르고서야 어찌 그 해결책을 찾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러한 고통은 모두, 우리의 영혼을 순화시켜주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이러한 것을 알고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많은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주님과 성약을 맺은 선택된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굳은 신앙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끝까지 참고 견딜 때, 주님께서 주신 다음 약속은 우리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니파이이서31:20)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한 희망의 밝은 빛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느니라. 너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며 끝까지 참을진대, 보라 아버지께서 이르시어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으로 우리를 시험치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모든 고통을 벗고 편히 쉴 날을 고대했던 몰몬경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오늘의 고통을 인내로 견딜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0년 1월 16일, 수원 스테이크 율전 와드,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