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4월 14일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

‘이러므로 …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눅7:47)

제가 오래 전 해군에서 배를 타며 군 복무 할 때의 일입니다.  군 생활 초창기에 저는 몰몬경 읽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당시 졸병이었던 저에게는 친지들로부터 오는 반가운 편지도 마음 놓고 뜯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전을 드러내 놓고 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모두 잠든 뒤에 몰몬경을 내의 속에 품고, 화장실로 가서 양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았습니다.  배가 계속 흔들리기 때문에, 해군의 화장실에는 마치 장애자 화장실처럼 좌우에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용변을 보다가 배가 흔들리면 곤란한 일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한 손으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몰몬경을 펼쳐 읽었습니다.

냄새가 났고 불빛은 희미했으며 배는 계속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일어나 이런 식으로 몰몬경을 읽었습니다.  가장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힘든 군 생활 중에 몰몬경의 주옥 같은 말씀들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저의 신앙생활의 손잡이요 길잡이가 되어 저의 신앙을 지켜주었습니다.  흔들리는 배처럼 우리의 인생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러할 때 경전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쇠막대기요 손잡이가 됩니다.  니파이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 부친이 보신 바, 그 나무로 인도하는 쇠막대기는 무엇을 뜻하느냐?  내가 저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이를 굳게 지킬진대 멸망 당하지 아니하며, 유혹이나 원수의 불길 같은 창도 이러한 자들을 사로잡아 눈멀게 하거나, 멸망으로 인도하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니파이일서15:23-24)

작년 10월 28일 하반기 스테이크 대회 아침에, 저는 신약성경 첫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고, 지금은 구약을 읽고 있습니다.  매일 30분씩 지금과 같은 속도로 경전을 읽어 나가면, 아마 올해 10월이 다 가기 전에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스테이크 대회를 두 달여 앞두고, 저희 스테이크장단은 형제 자매 여러분들께 ‘신약성경 읽기 목표’를 드렸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이 목표를 달성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미처 시간을 내지 못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 새로운 목표를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내년 이맘때까지 ‘1년 동안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겠다’는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1년 동안 4대 표준경전을 모두 읽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계속 읽을 것이고 반드시 이 목표를 달성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 주 전에 율전와드 김현수 감독님께서 공과를 해주셨는데, 감독 부름을 받고 2년 만에 처음 공과를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감명 깊게 공과를 들었습니다.  좀더 자주 감독님이 가르침을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분의 가르침 중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부부간의 싸움은 사탄이 충동질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서로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악마에게 속한 자니 악마가 분쟁의 아비가 됨이라.  저가 사람의 마음을 책동하여 서로 성내게 하며 다투게 하는도다.” (니삼11:29)

저는 ‘한때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 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미워하기 보다는 무관심 하게 될 것입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상처의 아픔을 간직하고서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화평은 회개하고 용서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 이요’(마5:9) 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화평’입니다.” (성도의 벗 1991년 11월호, 고든 비 힝클리)

신약성경에는 4대 복음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은 누가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바리새인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 그 동네의 죄를 지은 어떤 여자가 와서, 예수님에게 다가와 울며 주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고,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그 발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이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여자가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빚 주는 사람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그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많이 탕감 받은 자니이다 하니, 주님께서 그에게 “네 말이 옳도다” 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시몬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7)

사랑은 용서를 통해 오게 됩니다. 용서 받은 일이 없는 자는 사랑을 모르는 자입니다. 용서하는 일이 적은 자도 사랑이 적은 자입니다.  올해 스테이크 목표가운데 ‘감사하고 용서하자’는 목표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때 사랑이 커질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용서를 구할 때 사랑이 나타나게 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하며 주님께 간구했을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러자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크게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 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12:9~10)

몬슨 부대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장하게 되는 뜻 깊은 기회는 가장 어렵고 힘든 때에도 발견하게 됩니다. 성공을 위한 도약의 기회는 가장 어려울 때 찾을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저는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15:7)

한 사람의 회개가 왜 그렇게 주님께 기쁨이 될까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회개한 사람은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그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가족과 그와 함께하는 많은 주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게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침례 받기 전에 저를 가르친 선교사들이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속죄의 교리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죄값을 치르고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선교사들은 저에게 이사야서 1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쳤습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1:18) 토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회개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결심을 했습니다.

밤늦은 저녁 시간에 자취방을 나와 그 옆에 있는 작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곳을 찾다가 한군데 자리를 정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저의 모든 죄를 사함 받으며 화평과 기쁨을 얻기 바라며,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기억되는 모든 죄악을 낱낱이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저의 죄를 기억하며 모든 고백을 마쳤을 때, 저는 통곡하고 있었고 마음이 심히 떨렸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뜨고 앉았을 때, 자신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나 마음만 아플 뿐, 아무런 기쁨이나 평온의 감정이 없었습니다.  기도가 부족한가 보다 생각했고 전과 같이 무릎을 꿇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모두 세 번의 기도를 마친 후에는, 다리가 저려 일어 설수가 없을 정도였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평온이나 기쁨의 느낌은 찾아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교회에서 저를 가르친 선교사들을 만났고, 조용한 곳에 앉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 전세 건물 옥상에서 선교사와 마주 앉았습니다. 화창한 봄 날씨에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저의 마음은 심히 괴로웠고 어둡기만 했습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서는 계속 갈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한다고 해서 나의 죄가 용서될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이렇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용서 받지 못하면 나는 정말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어젯밤엔 간절히 기도도 했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 남은 일이다.  용기를 내자!’  결정을 내렸고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양심을 괴롭히는 가장 큰 죄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말을 하며 다시 마음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어젯밤의 기도 때 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의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는 듯한 후회스러움과, 가책과 고통을 겪는 가운데 고백을 마쳤을 때, 저는 계속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은 너무나도 저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저의 육신을 온통 떨게 만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죽어 없어졌으면, 나의 존재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눈물에 젖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이 모두 노란 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고통으로 떠는 저의 손을 붙잡으며 그 선교사는 ‘형제님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했고, 그가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죄 사함을 비는 그의 간구가 끝난 후, 그는 다시 저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번엔 제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저의 죄 사함을 비는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마쳤고 마음은 몹시 상했지만 잠시 후 마침내 일어섰습니다.  눈물 자국을 닦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두 선교사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그들과 헤어져 혼자 지부 건물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그 순간 일어났습니다.  약 1 Km 정도 떨어진 저의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막 길로 접어 들면서 마음이 괜히 즐거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느낌은 점점 더 강하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엔 미소가 떠 올랐고 마침내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제 마음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 걸어갔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는 저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느낌은 제 온 육신의 손끝 발끝까지 가득 채우는 행복감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불과 조금 전에 통곡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저의 생애에서 죄를 고백할 때 느꼈던 것보다 더 큰 괴로움이 없었으며, 그 후 집으로 돌아가며 느꼈던 것 같은 큰 기쁨과 행복도 없었습니다.  온 몸이 둥둥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저의 마음이 가벼워졌고 상처 입은 저의 영혼이 치료된 것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저의 신앙대로 저의 회개가 받아들여졌고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누가 복음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이 나와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격심했는지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22:42, 44)

이제 저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 소망은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 ‘자신을 온전히 지켜 흠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제가 앞으로도 저의 연약함을 천 번 만 번 회개해야 한다면, 저는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길이라 할지라도 ‘회개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일]것입니다. (고전15:19)

회개한 여인에게 하신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는 (눅7:47)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저는 저의 남은 생애 동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사명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점점 더 교회가 가족중심의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곳에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 지구대회에서 옥스 사도님께서 한국의 이러한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 대한 통계를 지적하시면서 ‘참으로 기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어린 자녀들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준비시켜야 합니다.

선지자 니파이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하며 예언에 따라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저들이 저들의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니이25:26)

제프리 알 홀랜드 장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라는 부름은 우리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997년 4월 연차대회)

저는 저의 부름이 저의 자녀뿐만이 아니라, 이 스테이크에 속한 모든 하나님의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간증해야 하는 부름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형제 자매의 자녀들을 온전히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곳에 아름다운 시온이 건설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를 표하는 것도 사랑의 위대한 속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려고 노력하는 자가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을 구할 때 신앙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아울러 받게 됨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문둥병 환자 열명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이 고쳐주기를 간청하니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로 돌아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1~19)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람에게,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저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 믿음을 지니는데 있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제임스 이 파우스트 부대관장님께서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인생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또 자주 저의 현재의 부름을 수행하면서, 저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에 가서, 겸손한 영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종종 저는 번민에 찬 마음으로 가서, 생명 자체보다 더 감사하게 된 이 사업에서 저를 붙잡아 주실 것을,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구하였습니다.

때로는 마음의 상처와 번민으로 인해, 끔찍한 외로움을 겪기도 하고, 사탄과 싸우기도 했지만, 따듯하게 감싸주는 주님의 영으로 위로를 얻었습니다.

또 저는 자신을 억누르는 무거운 짐의 무게와, 자신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다는 자신감 상실과, 덧없이 버림 받았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으나, 그런 뒤에는 백배로 강화되었습니다.

주님과 대화하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십 번도 더 영적인 시내 산에 올랐습니다.  제가 마치 정말로 변형의 산에 올라가는 것 같거나,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 면전에서 강한 힘과 권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떤 특별하고도 성스러운 느낌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가까이에 함께하며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거룩한 사도의 부름을 받아 봉사하면서, 저는 자신이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특별한 은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나사렛 예수가 우리의 거룩한 구세주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계심을 압니다.  형언할 수 없는 속죄의 고통을 통하여, 저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한다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부활의 기적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사랑을 느끼며, 우리 각자를 위해 그분이 치르신 대가에 놀랍니다.  저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핏방울이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그분에 대한 저의 간증입니다. (2000년, 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들 비디오 테이프 중, 제임스 이 파우스트 사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이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참되고 유일하며 온전한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저의 남은 생애에도 자비의 팔로 저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여러분의 삶도 그와 같이 인도되기를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간구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2002년 4월 14일,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에서, 스테이크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