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03월 22일 "속죄의 기적"]

속죄의 기적

선교사와 토론을 하며 이러한 말도 들은 것이 기억났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을 때는 교회의 지도자나 장로 앞에 죄를 고백하며 회개해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교회에서 선교사들을 만났고 조용한 곳에 앉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옥상으로 - 교회는 아파트의 2층이고 옥상은 4층이다 - 데리고 갔다.  교회와 붙어 있는 학원에서 올려놓은 책상과 의자가 어지러이 널려 있는 한 구석에 돗자리가 있었다.  그것을 옥상 한 가운데 깔고 자리에 앉았다.  화창한 봄 날씨에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나의 마음은 심히 괴로웠고 어둡기만 했다.  도저히 두 사람 모두에게 고백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김기용 장로에게 Green장로(마이클 패트릭 그린 장로)님이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김 장로는 동반자이므로 괜찮다고 하는 것을 간곡히 부탁하여 아래층으로 내려 보내었다.

단 둘이 마주 앉았고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계속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백한다고 해서 나의 죄가 용서될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이렇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용서받지 못하면 나는 정말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어젯밤엔 간절히 기도도 했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 남은 일이다.  용기를 내자! ’  결정을 내렸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을 시작했다.  나의 양심을 괴롭히는 가장 큰 죄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말을 하며 다시 마음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젯밤의 기도 때 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의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는 듯한 후회스러움과 가책과 고통을 겪는 가운데 고백을 마쳤을 때 나는 계속 통곡하고 있었다.  김기용 장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고통은 너무나도 나의 마음을 괴롭혔으며 나의 육신까지도 떨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죽어 없어졌으면, 나의 존재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랬다.  눈물에 젖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이 모두 노란 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고통으로 떠는 나의 손을 붙잡으며 김기용 장로는 ‘형제님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했고 그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죄 사함을 비는 그의 간구가 끝난 후, 그가 다시 나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했다.  이번엔 내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죄 사함을 비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쳤고 마음은 몹시 상하였지만 잠시 후 마침내 일어섰다.  눈물 자국을 닦고 아래로 내려왔다.  두 선교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들과 헤어져 혼자 지부 건물을 나섰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그 순간 일어났다.  약 1 Km 정도 떨어진 나의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막 길로 접어 들면서 마음이 괜히 즐거워 지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점점 더 강하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엔 미소가 떠 올랐고 마침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머리 속에서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 걸어갔다.

누군가가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는 그러한 나의 광경을 보았다면 분명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온 육신의 손끝 발끝까지 가득 채우는 행복감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불과 조금 전에 통곡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생애에서 죄를 고백할 때 느꼈던 것보다 더 큰 괴로움은 없었으며, 그 후 집으로 돌아가며 느꼈던 것 같은 큰 기쁨과 행복도 없었다.  온 몸이 둥둥 날아갈 것 같았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이 치료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치료되었다.

여기에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  그때 _ 고백 _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내가 과거에 저지른 죄로 인해 전혀 양심의 가책이라든가 후회와 미련을 느껴보지 못했다.  분명 죄를 지은 사실은 기억하는데 전혀 그에 따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적이다.  아들을 믿는 나의 신앙대로 나의 회개가 받아들여졌고 용서를 받은 것이다.

1982년 3월 22일 월요일, 서울 동 스테이크 삼선지부 (1987년 5월경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