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0월 14일 "끊어진 실 다시 이어" (가족 역사 사업)]

‘끊어진 실 다시 이어’ (계보 사업, 1985 10)

1985년 9월 해군 제대 후, 감독님과 접견을 마쳤고 선교사 부름장을 보냈다.  부름이 오기를 기다리며 서울과 집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보내던 때였다.  그러다가 어느 주일 아침 미아와드 감독실에서 성찬식 준비 기도모임에 참석했다.  그 모임에서 감독님은 참석한 몇몇 형제들에게, “이제 성전이 세워지고 있으니 그것을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다만 한 장이라도 좋으니 완성된 가족 기록서를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이야기 하셨다.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 ‘능성구씨 직장공파 세보’를 통해, 직계로 17대 정도까지의 가족 기록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아직까지도 4대 프로그램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였다.   군에 있을 때 ‘제대하면 계보사업을 해야지’라고 생각 했었는데, 이제 그 기회와 의무가 찾아온 것이다.

동숭동에 계신 이모님과, 마침 서울에 들르신 외 할머니를 통해, 충남 서천군 종천면 종천리 외갓집에 가는 길을 알아놓았다.  친가 쪽은 4대까지 어느 정도 찾았지만, 외가 쪽 증조 부모님들의 성함과 기록을 찾기가 묘연 했었다.  서울 이모님 댁에서 만난 외삼촌을 통해, 외갓집에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족보를 남에게 빌려주어 잃어버렸다는 애석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경주 최씨 시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직계후손만을 기록해 놓은, 약보(가승, 한 장의 긴 종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약보를 꼭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느 날을 택해 외갓집에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1985년 10월 14일 월요일 아침, 10시 기차를 타기 위해 서부역으로 가는 버스를 종로5가에서 올라탔다.  그런데 차가 서부역으로 빠지지 않는다.  잘못 탄 것이다.  동교동 부근에서 내려 다시 갈아 탔는데 또 잘못 탔다.  세 번째 탄 버스로 서부역에 가니 이미 기차는 떠나고 말았다.  한 시간 뒤에 있을 열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 외갓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서천역에 도착하여 여러 사람에게 묻고 물어, 버스를 타고 논둑 길을 걸으며 저녁 어스름한 무렵 외갓집에 도착했다.  그 집은 소를 몇 마리 기르고 있었으며, 밤나무가 많이 있는 과수원이었다.  인사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침 계셨던 외할머니와 외숙모님에게 ‘약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한참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장롱 서랍 구석 버선짝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넣어져 있는 것을 꺼내 주셨다.

약보를 펼쳐보니, 시조부터 직계로 후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적힌 이름이 (최선기) 생소했고, 약 100여 년 전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신 외 할아버지와 어떤 관계가 되는지 전혀 알 길이 막막했다.  중간에 끊어진 기록이었다.  그날 밤을 외가댁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 인사를 나누고, 기록을 잘 챙긴 후 종천면 사무소로 향했다.  외할아버지의 제적등본을 한 통 떼기 위해서였다.

고갯길을 홀로 걸어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한참 만에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새로 건물을 짓는지 임시 가건물에서 직원들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면직원에게 부탁하여 큰 삼촌의 이름으로 호적등본을 떼었고, 외할아버지(최병성)의 제적 등본을 떼었다.  그 제적 등본에 외증조 할아버지(최익한)의 성함이 있기에, 다시 제적 등본을 신청했다.  그 기록에 또 외고조 할아버지(최춘보)가 있었다.

다시 제적등본을 신청하니, 면사무소 직원이 약간 성가신 듯이 이런 것을 떼어서 무엇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나에게 꼭 필요한 기록이라’고 간청하여 다시 제적등본을 또 떼었다.  시대는 일제 시대 초로 접어 들었다.  이 최춘보 할아버지의 제적 등본상에 나와 있는 그분의 부친의 이름에 ‘최선기’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 약보에서 본 마지막 이름 같았다.  약보를 꺼내어 대조해 보니 틀림없었다.

끊어진 실, 기록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나는 조금 흥분했고 들떠 있었다.  계속하여 조상을 더듬어 찾아 가는 것은 즐거운 모험이다.  면사무소를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난 길을 걸으며, 왜 그리 마음이 즐거운지!  뛸 듯이 기뻤다.  온 세상이 나의 기쁨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고, 새들의 노래 소리가 감미로운 음악으로 울려왔다.

계보사업에 이러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침례 받기 전에 느꼈던 기쁨 못지않은 큰 기쁨이었다.  돌아가신 조상을 탐구하며 기록을 찾는 자에게는 특별한 영의 인도가 있고, 보상으로 큰 기쁨이 찾아오게 된다.  내가 그 기록을 찾았을 때 하늘에 계신 모든 조상들이 기뻐했을 것이다.  계보 사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중대한 사업이다.  이 일에 충실한 자에게는 하늘에서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1985년 10월 14일~15일, 서울 동 스테이크 미아와드 (1987년 여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