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03월 선교사 일지]

 1986년 3월 선교사 일지

 1986년 3월 2일 일 맑음

[편지]

사랑하며 존경하는 하퍼 부장님께.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뜻밖의 발령 소식을 듣고 좀 놀랐습니다. 그 동안 정들었던 포항을 떠난다는 것이 매우 섭섭하기만 합니다. 또 Crapo장로님과 헤어지게 되는 것도 슬픕니다. 동반자는 성품이 착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분과 함께 한달 밖에 봉사하지 못했지만 선교사업이 끝날 때까지 그분과 봉사했던 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제 안식일 모임이 끝난 후 아주 영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두 분의 자매님과 5번째 토론을 하면서 간증을 할 때 아주 강하게 영을 느꼈습니다. 두 자매님과 동반자 그리고 저 모두가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손동완 형제님은 아주 특별한 구도자입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학생으로 아주 준비가 잘된 구도자입니다. 침례 받고 교회에서 아주 큰 일을 할 형제님이 될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포항 지부에서 특별 우정의 밤을 가졌습니다. 본부에서 보내 준 영화를 보고 선교사들이 준비한 연극과 선교사업에 대한 말씀, 그리고 다과를 함께 하며 특별한 밤을 보내었습니다. 제가 목포로 가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목포에서 군 생활을 하며 목포 와드에 참석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대하며 목포를 떠날 때 그곳 회원들에게 농담으로, 선교사업을 하면 목포에 꼭 오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현되고 만 것입니다. 목포에서 반드시 더욱 좋은 성과를 올리겠습니다. 언제나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선교부장님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6년 3월 5일 수 맑음

짐이 많아 택시 두 대를 불러 터미널로 갔다. 이범용 형제님이 전송을 나왔다.  사탕을 사가지고 버스에 올라탄 그의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이 흐른다. 눈물을 짓는다.  너무나 순수한 사람이다.  많은 생각을 하며 대구에 도착하니 이광열 장로님이 Zoney로 마중을 나왔다.  일전에 미아 와드 스테이크 신권대회에서 훌륭한 간증을 해 주었던 장로님이다.  바로 광주로 떠나는 차가 있어 버스에 올랐다. Church장로님과 D.L.과 함께 - 목포, 나주 District - 목포에 도착 선교사 집으로 왔다.  2층 집이다.  장판이 엉망이라 장판과 매트를 사고 분주히 짐을 정리했다. 

 

1986년 3월 6일 목 맑음

아침에 동반자의 Pass off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아주 훌륭하다.  한국에 온지 3개월 여 만에 이만큼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좋다.  나주에서 District모임이 있었다.  이상호 장로님이 우리의 D.L.이다.  찬송을 하며 돌아오는 버스에서 특별한 영적인 느낌을 받았다.

저녁에 목포 와드에서 독신성인 모임이 있었다.  모임 중간에 이인호 형제님께서 오셨다.  그 분은 81년 가을 나에게 몰몬경을 선사해 주었던 선교사이다.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저녁 9시 10분쯤 집으로 돌아왔다.  전 장로님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이곳 목포에서 하루하루 맞이하는 나날들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봉사하리라.  주여! 내일 하루도 축복해 주소서!!!

 

1986년 3월 7일 금 맑음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아침에 일어나니 동반자가 늦장을 부리며 영어로 뭐라고 투정을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 공부를 오랫동안 했다.  어제 책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후 7시 반쯤 동반자와 모임을 가졌다.  이번 달 목표를 5명으로 정하고 서로 간증을 나누었다.  그에게 간증을 하는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의 간증과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간다.  그 동안의 그의 괴팍스러움이라든지 성격, 말씨 태도가 다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그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다.  그는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오! 내가 주님과 같은 사랑을 지녀 그를 감쌀 수가 있다면.  저녁에 OOO 장로님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교 사업 중에 특별히 어떤 미국인에게서 받은 축복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귀환 후 미국으로 가 레스토랑을 차릴 계획이란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오직 선교사업, 모든 것은 귀환 후에 생각하기로 한다.

 

1986년 3월 8일 토 맑음

집에 돌아와 영으로 굶주림을 느껴 간절히 기도하였다. 가가호호에 대해 기도하며 주께 인도를 간구했다. 가가호호를 시작했다.  서산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인호 형제님 집 부근부터 시작했다.  첫 집에 어떤 아저씨에게 이야기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앉아서 회복과 요셉 스미스에 대해 잠시 토론을 했다. 간절한 기도 후 방문한 첫 집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찌 나에게 자꾸 이러한 축복이 주어지는가!  놀라울 따름이다.  준비가 부족함을 느낀다.  더욱 열심히 기도하리라.  오! 주여 감사하나이다.

 

1986년 3월 9일 일 흐리고 한때 비

아침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누가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떤 이상한 영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식사당번인지라 팬 케익을 만들었는데 실패하여 빈대떡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목포와드 대회 - 스테이크장단과 스테이크 역원들이 방문하였다. 성찬식에서 스테이크 행사로 그 동안 10여 년 동안 수고하셨던 조용태 감독님이 해임되고 이인호 감독님이 성임 되었다.  1보좌에 유승구 형제, 2보좌에 김옥경 형제가 각각 부름을 받았다. 

모임 후 식사와 특별 노변의 모임이 있었다.  조용태 감독님이 과거를 이야기 해 주셨다.  그분은 많은 성도들을 꾸지람하여 그들을 의무에 충실하게끔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 이유를 오늘 모임에서 말씀해 주셨다.  동반자가 집에 가겠다고 하여 잠시 말다툼이 벌어졌다.  어이없는 일이다.

 

1986년 3월 10일 월

[편지]

존경하는 하퍼 부장님께. 그간 안녕히 지내셨습니까? 목포에서 첫 주를 보내었습니다. 구도자가 별로 없어 실적이 미미합니다. 어제 목포 와드 대회에서 그 동안 수고하셨던 조용태 감독님이 해임되시고 귀환 선교사 출신인 이인호 감독님이 새로운 감독님으로 지지 받으셨습니다. 동반자는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선교사업을 떠났더군요. 그의 배경을 그에게서 직접 듣고 나니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두 사람에서 넷으로 늘고 보니까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들이 많습니다. 부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곧 성전에서 만나 뵙겠지요! 부족한 저를 선임으로 불러 주신 것에 아직도 놀라고 있습니다. 제가 선임이라는 사실을 광주에 도착하여 안재석 장로님으로부터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요즈음은 더욱 기도를 간절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장님과 가족의 평온함과 행복을 기도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6년 3월 12일 수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성전에 다녀왔다.  엔다우먼트를 받았다.  상징과 표시의 연속이었다.  긴장했었는지 모임이 끝난 후 머리가 조금 아팠다.  직접 목포로 내려오는 버스를 탔다.  집 근처 시장에서 책상과 의자를 구입했다.  가먼트를 입고 잠을 잤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OOO 장로에게 간증을 했다.

 

1986년 3월 13일 목

비가 구슬피 내린다.  어제 사온 책상을 방에 들여 놓으면서 좁은 공간으로 동반자와 시비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양보를 구하는데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후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서글픔과 함께 자신의 어리석음, 욕심 등에 깊이 후회했다.  그리고 동반자에게 가서 용서를 빌었다. 

 

1986년 3월 15일 토 흐림 - 한때 비

동반자가 신분증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수요일에 여수에 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옳지 않은 행동 - 화가 나서 물건을 내리치는 -을 한다.  이번 주는 너무나 저조했다.  성전에 가서 엔다우먼트를 받고 돌아왔지만 토론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의 기분을 맞추어 줄 수 있는가?  나는 사랑이 없고 참으로 부족한 자이다.  그런데 내가 선임이 되어 후임 동반자를 이끌어야 하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오 주여!  얼마나 인내해야 하며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옵니이까?  어찌해야 제가 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겠나이까?

 

1986년 3월 16일 일 오전 흐림 - 오후 맑음 0530 기상

집에 돌아와 86년 1,2월 수고지와 마음의 문을 잠그라는 킴볼 대관장님 말씀, 그리고 하늘의 힘을 끌어 내릴 수 있는 신앙을 이행함이라는 자료들을 다시 한 번 정독했다.  왜냐하면 읽으므로 해서 다시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읽으며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다.   읽다가 자리에 앉은 채로 기도했다.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하늘 아버지께 간구했다.

다시 한 번 불신앙의 막을 벗어 던지고 이곳 목포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나에게 주어진 능력 - 주변을 정리 정돈하며 깨끗이 청소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아니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동반자에게 앞으로 미소와 친절한 태도와 그의 모든 일에 성의와 열의를 보여 주며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많이 용서 받았으므로 그의 모든 사소한 실수와 약점을 눈감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제 내일 모든 약속을 기필코 수행하리라.

 

1986년 3월 17일 월 맑음 05:30 기상

사과를 썰어 넣은 맛있는 빵을 만들었다.  편지를 썼고 화장실과 마루를 청소했다. 동반자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그와 생기는 자질구레한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편지]

하퍼 선교부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참으로 부족한 저를 선임으로 불러 주시고 목포로 보내신 것은 분명 무슨 뜻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난주에 제가 선교사업을 시작한지 처음으로 토론을 한번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한 주를 맞이하면서 더 이상 퇴보할 수 없다는 각오 아래 편지를 씁니다. 내일 광주에서 접견 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전에서 저희들을 위해 보여주신 수고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평안 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6년 3월 18일 화 하루 종일 비 05:30

전도 지침서를 읽으며 많은 좋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어젯밤엔 기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잔 것 같다.  동반자와 이야기하며 그가 매일 틀어 놓는 음악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아침 6:00이전에는 불을 켜지 않겠다고 했다.  광주 충장 와드에 도착했다.  몇몇 선교사들이 와 있었다.  선교부장님과 접견을 한다.

하퍼 부장님이 나에게 너무 고생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동반자가 어려운 사람이며 구 장로님이 항상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그와 동반자가 되도록 했다고 하신다.  그와 같은 사람은 많이 고생을 해야만 발전하며 다른 방법이 없다 하신다.  전 장로님과 접견 때도 구 장로가 너무 고생하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한다.  세심한 배려에 고마우며 한편으로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모임 후 동반자가 친구를 만나겠다고 지하상가에 들어간다.  모든 일에 스스로 나서는 그에게 잠시 화가 났나 보다.  시간이 없다고 하니까 그가 이상한 말을 한다.

그래서 분노를 억제치 못하고 심한 말을 했다.  조금 전에 부장님과 접견을 하며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고 했으면서 돌아서자마자 인내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 동반자는 광주에 어린 좋아하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에 침울해 있다.  그에게는 고생이 약이라는 선교부장님 말씀과 때때로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안재석 장로님 말씀이 귓전에 쟁쟁히 울린다.

 

[선교부장님과 접견을 마치고]

 

1986년 3월 24일 월 맑음, 쾌적 07:30

너희는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한 후에 와서 기도하라 요즘 축복을 받고 있으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번 주가 축복을 받는 주가 될 것 같다.  동반자와의 관계는 점점 개선되어 가고 있다.  좋은 징조이다.  주께서 나를 분명 축복 주고 계신다.  모든 일에 충실해야 한다. 주여!  오늘도 함께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리며 언제까지나 함께 하여 주시길!

[편지]

존경하는 하퍼 부장님께. 그 동안 구도자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제 일요일에는 한꺼번에 7명이 오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 광주 Zone선교사들이 이곳 목포에서 Activity를 갖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감독님과 함께 회원의 집을 방문하느라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젊으신 데다가 선교사업을 마치셨으므로 여러 가지로 우리 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목포에서 봉사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동반자와 함께 봉사할 수 있음도 저에겐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를 통하여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선교부장님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6년 3월 31일 월

[편지]

선교부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27-29일간 열렸던 선교 전시회는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약 400여명이 방문자 기록부에 기록을 했습니다. 다녀간 인원은 약 1,000여명이 되지 않을까 추산됩니다. 목포 와드 감독님과 회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특히 감독님은 3일 동안 계속 저희들과 함께 해주셨고 독신 성인들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구도자가 생겼습니다. 동반자 관계가 좋지 않으면 선교사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곳 목포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