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전 니후 야곱 이노 예이 몰말 모사 3니 4니 이더 모로 TITLE

주석 이더서 1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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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선지자 이더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을 것을 권면함 - 모로나이가 신앙으로 이루어진 이적과 기사를 말함 - 신앙이 야렛의 형제로 하여금 능히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했음 - 주께서 사람에게 연약함을 주심은 그들로 겸손하게 하려 하심임 - 야렛의 형제는 신앙으로 지린 산을 옮겼음 - 신앙, 소망, 사랑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임 - 모로나이가 예수를 대면하여 봄.

The prophet Ether exhorts the people to believe in God—Moroni recounts the wonders and marvels done by faith—Faith enabled the brother of Jared to see Christ—The Lord gives men weaknesses that they may be humble—The brother of Jared moved Mount Zerin by faith—Faith, hope, and charity are essential to salvation—Moroni saw Jesus face to face.

주) 이더서 12장 주석(영문) (www.josephsmith.com)

"선지자 이더가 쓴 그의 백성의 역사는 슬픈 이야기이다. 이더는 계속되는 분쟁과 전쟁과 반역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주님은 그를 축복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성역과 예루살렘의 재건, 미대륙에서의 새로운 예루살렘 건설, 기타 모로나이에게 기록을 금한“크고 놀라[운]”일들을 보게 해주셨다. (이더서 13:4~6, 13 참조)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칠십인 회장단의 일원이던 당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더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구주의 대업에 헌신한 선지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코리앤투머의 때에 임하여’ 이더는 선지자로서 ‘그의 안에 있는 바 주의 영으로 인하여 그가 스스로 억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영적 발전의 어느 한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더서 12:2) 우리들이 관망하는 것과는 달리 이더는 참을 수 없는 의로움으로 인해 사실상 …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수 세기 전에 미래의 절정의 시대를 보았던 것이다 …

“이더는 왕가의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한때 그의 가족은 속박되어 있었다. 이더의 아버지는‘평생을 사로잡힌 가운데 거하다가 죽었[다.]’(이더서 11:23; 1:6~33, 6:22~27 참조) …

“후에, 이더가 주님에 의해 인도되었을 때, 그는 용감하게 코리앤투머 왕에게 직접 예언했다 …

“‘그러나 이렇게 되었나니 코리앤투머도, 그의 권속도, 백성들도 회개하지 아니하였고, 전쟁도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또 그들이 이더를 죽이려 하였으나, 저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여 바위로에 다시 숨었[다.]’(이더서 13:20~22) …

“틀림없이 이더는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이 무정부 상태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을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물리적이며 정치적인 무질서였다. 결국, 그 상황은‘사람이 자기의 무리와 함께 자기의 원하는 바를 위하여 싸[우는]’상황으로 악화되었다.(이더서 13:25)” (닐 에이 맥스웰, “The Jaredites: Contrasting Contemporaries,”Ensign, Aug. 1978, 6~8쪽)

“경전에 따르면, 오직 두 사람만이 야렛 민족의 끔찍한 멸망에서 살아 남았다. 즉 이러한 종말이 오리라고 경고를 받았던 왕 코리앤투머와 주님의 경고를 전했던 선지자 이더였다. 이더는 기록을 인봉했고, 이것을 요약한 것이 모로나이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곧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그의 가득한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 때 그들이 쓸어버림을 당하리라’”는 간증을 전하기 위해 우리 시대에 나온 것이다.(이더서 2:8) (몰몬경 교사 교재, 교회 교육 기구 편)

이더 12:1 또 이렇게 되었나니 이더의 시대는 코리앤투머의 시대에 있었고, 코리앤투머는 그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었더라.

And it came to pass that the days of Ether were in the days of Coriantumr; and Coriantumr was king over all the land.

주) 최후의 야렛인인 코리앤투머는 후손을 남겼는가? : “Did the 'Last Jaredite,' Coriantumr, Leave Descendants?” JBMS 8:2, ??.

주) (옴1:21) "이에 그것은 코리앤투머라 하는 자와 죽임을 당한 그의 백성에 대한 기사더라. 또 코리앤투머는 제이라헤믈라 백성들이 발견하였고, 그는 그들과 함께 아홉 달 동안 거하였더라."

이더 12:2 또 이더는 주의 선지자였나니, 그리하여 이더가 코리앤투머의 시대에 나아와 백성들에게 예언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는 그의 안에 있는 바 주의 영으로 인하여 그가 스스로 억제할 수 없었음이라. And Ether was a prophet of the Lord; wherefore Ether came forth in the days of Coriantumr, and began to prophesy unto the people, for he could not be restrained because of the Spirit of the Lord which was in him.

주)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더 12:3 이에 그가 아침부터 참으로 해가 지기까지 외치며, 백성들을 권면하기를 멸망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믿어 회개에 이르라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신앙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나니 - For he did cry from the morning, even until the going down of the sun, exhorting the people to believe in God unto repentance lest they should be destroyed, saying unto them that by faith all things are fulfilled-  
이더 12:4 그런즉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더 나은 세상, 곧 참으로 하나님 우편의 처소를 바랄 것이요, 이 소망은 신앙에서 비롯하여, 사람의 영혼에 닻이 되어, 그들로 확실하고 굳건하며, 늘 선행이 넘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 하였더라.

“여러분의 삶의 닻을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내리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여러분의 삶에서 최우선에 두십시오. 삶 그 자체보다, 또 지상의 사랑하는 동반자나 자녀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그분들의 뜻을 가장 먼저 따르겠다는 열망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이 행복하게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질 것입니다.”(1993년 7월호 성도의 벗,“올바른 원리의 힘”, 리차드 지 스코트, 34쪽)

이더서 12:4

이더서 12장 4절, 몰몬서 5장 18절, 힐라맨서 5장 12절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영혼에 닻이 된 적은 언제인가?

Wherefore, whoso believeth in God might with surety hope for a better world, yea, even a place at the right hand of God, which hope cometh of faith, maketh an anchor to the souls of men, which would make them sure and steadfast, always abounding in good works, being led to glorify God.

이더서 12:4. “사람의 영혼에 닻”

•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생활의 중심에 두는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큰 성취를 거두겠지만, 어떤 이는 낙담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기쁨과 즐거움과 건강과 은혜로운 삶을 누리겠지만, 또 어떤 이는 질병과 많은 슬픔을 겪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정말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하늘의 북극성처럼 미래가 아무리 어떻다 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우리 불멸의 삶에 닻으로서 굳건히 서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분은 우리 구원의 반석이요, 힘이며, 위안이요, 신앙의 중심이십니다.”(고든 비 힝클리,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101쪽)

주) 그냥 소망이 아니라 '보증이 되는 소망' 이다.  (히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By so much was Jesus made a surety of a better testament.)

제임즈 이 파우스트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입니다 …

“소망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이자 우리가 지금 행동한다면 미래에는 바라는 축복이 성취되리라는 신앙입니다 …

“절대적으로 확실한 희망의 원천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며, 그분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임즈 이 파우스트, “소망, 영혼의 닻”,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70~72쪽)

(야곱4:6) "이러므로 우리가 선지자들의 기록을 상고하고, 또 우리에게 많은 계시와 예언의 영이 있어, 이 모든 증거를 가짐으로 우리가 소망을 얻으며,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되어 진실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할 수 있게 되나니, 바로 그 나무들이나, 산들이나, 바다의 물결이 우리에게 순종하느니라."

이더 12:5 또 이렇게 되었나니 이더가 백성들에게 크고 기이한 일들을 예언하였으나, 그것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함이었더라. And it came to pass that Ether did prophesy great and marvelous things unto the people, which they did not believe, because they saw them not.  
이더 12:6 또 이제 나 모로나이는 이 일에 관하여 얼마간 말하고자 하노라. 내가 세상에 보이고자 하거니와 신앙이란 비록 보이지 아니하나 바라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논박하지 말지니,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기까지는 너희가 증거를 받지 못함이니라.

이더서 12:6

앨마와 앰율레크, 니파이와 리하이(힐라맨의 아들들), 암몬과 그 형제들은 이 원리의 가르침을 어떻게 보여주었는가?

“젊은이들이 재정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을 지기 시작하는 것은 신앙이, 보이지 않는 신앙이 요구됩니다. 젊은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 대신에 자녀를 갖는 것, 특히 남편의 학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갖는 것은 신앙이 요구됩니다. 시간 외 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을 때, 이윤이 생길 때, 상품이 잘 팔릴 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신앙이 요구됩니다. 돈은 부족하고 쓸 일은 많을 때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큰 신앙이 요구됩니다. 금식하고 가족 기도를 하고 지혜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신앙이 요구됩니다. 희생이 필요한 가정 복음 교육, 스테이크 선교 사업, 기타 봉사는 신앙이 요구됩니다. 전임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신앙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심으면 그 수확으로 충실하고 경건한 가족, 영적인 안정과 화평,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스펜서 더블류 킴볼,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 11쪽)

주)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롬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앨32:21) "또 이제 내가 신앙에 관하여 말한 것같이 - 신앙이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만일 너희에게 신앙이 있으면 너희는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느니라."

And now, I, Moroni, would speak somewhat concerning these things; I would show unto the world that faith is things which are hoped for and not seen; wherefore, dispute not because ye see not, for ye receive no witness until after the trial of your faith.

이더서 12:6.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어야]”

• 신앙의 시련이 항상 역경의 형태로 오는 것은 아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때때로 “신앙[의] 시련”은 단순히 우리 신앙을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가르쳤다. “여러분은 모로나이가 가르친 이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신앙을 더욱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비록 보이지 아니하나 바라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논박하지 말지니,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기까지는 너희가 증거를 받지 못함이니라.’[이더서 12:6; 기울임체 첨가] 이에 따라 여러분이 자신의 신앙을 시험할 때마다, 다시 말해 영의 영향을 받기에 합당하게 행동할 때마다 영으로부터 확인하는 증거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을 받을 때 여러분의 신앙은 강해집니다. 그런 일이 반복될 때 여러분의 신앙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리아호나, 2003년 5월호, 76쪽)

•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우리가 경험하는 여러 단계의 신앙과 그 전제 조건들을 서술했다. “예비하는 신앙은 알려진 과거 경험으로 형성되며, 이것은 믿음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미래 경험을 위해 속죄를 이루는 신앙을 행사해야 하며, 이것은 기적이 일어나는 기회가 된다. 엄격한 신앙, 산을 움직이는 신앙, 야렛의 형제와 같은 신앙은 기적과 지식에 선행한다. 야렛의 형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믿어야 했다. 그는 그 행위를 완성하는 능력이 명확해지기 전에 행동해야 했다. 그는 온전한 경험이 실현되는 초기 단계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경험을 행해야 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가깝고 먼 장래에 요구하실 조건들을 무조건, 그리고 미리 동의하는 것이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1997], 18~19)

•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신앙이 “시련을 겪[은 후]”에 증거를 받는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한 자매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그분이 직접 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교에는 등록금이 밀린 학생들은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월급을 받으면 먼저 십일조와 헌금을 따로 떼 놓은 뒤 나머지를 등록금과 기타 비용으로 분배했습니다.

한번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목요일이 월급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그 달에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계산해보니 십일조와 등록금 둘 다를 낼 수는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했습니다. 격월로 실시되는 시험이 바로 그 다음 주에 시작되는데, 만일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그 학기는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 ……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정을 해야 하는 고통스런 순간이 다가오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십일조를 내느냐 아니면 학교에서 인정받는 데 필요한 학점을 딸 것이냐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고민 때문에 기진맥진해졌으며 토요일까지 그런 상황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침례 받을 때 십일조 법에 따라 생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선교사들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무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 번민이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으로 즐겁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

그날 저녁에 기도를 드리면서 저는 주님께 제 우유부단함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요일에 성찬식 시작 전에 감독님을 뵙고 기쁜 마음으로 십일조와 헌금을 바쳤습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제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행복하고 평안을 느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날, 출근을 한 후 수요일에 시작되는 시험을 치를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도무지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

근무 시간이 끝날 무렵, 사장님이 오시더니 그날 마지막 일을 주셨습니다. 그런 뒤 그분은 가방을 들고 작별 인사를 하셨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저를 보고 물어 보셨습니다. “대학교는 잘 다니죠?” 저는 깜짝 놀라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 것이 “네 그럼요!” 한 마디였습니다. 그분은 저를 찬찬히 보시더니 다시 작별 인사를 하셨습니다. ……

느닷없이 비서가 방에 들어와서 제가 정말 운 좋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오늘부터 언니의 대학 등록금과 책값 전액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셨어요. 퇴근 전에 제 자리에 오셔서 내일 언니한테 얼마를 지급해야 할지 알려 주세요.”

비서가 나간 뒤에 저는 겸손한 마음으로 펑펑 울면서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주님의 사랑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렇게 많은 축복을 주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달치 등록금만 내면 되는데 제가 받는 금액과 비교하면 제가 일요일에 바친 십일조는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기도하는 동안 말라기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그 순간까지 저는 그 경전에 들어 있는 약속의 위대함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이 계명이 참으로 하나님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지상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사랑의 증거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고든 비 힝클리,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81~82쪽)

이더 12:7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우리 조상들에게 자기를 보이신 것도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이니, 그들이 그를 믿기까지는 그들에게 자기를 보이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즉 누군가가 그를 믿었음이 분명하니, 이는 그가 세상에게는 자기를 보이지 아니하셨음이라. For it was by faith that Christ showed himself unto our fathers, after he had risen from the dead; and he showed not himself unto them until after they had faith in him; wherefore, it must needs be that some had faith in him, for he showed himself not unto the world.  
이더 12:8 그러나 사람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그는 세상에 자기를 보이시고,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며, 길을 예비하사 그로써 다른 자들이 하늘의 은사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사 그들로 그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바라게 하셨느니라. But because of the faith of men he has shown himself unto the world, and glorified the name of the Father, and prepared a way that thereby others might be partakers of the heavenly gift, that they might hope for those things which they have not seen.  
이더 12:9 그런즉 너희가 신앙을 갖기만 하면, 너희는 또한 소망을 가지고, 은사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Wherefore, ye may also have hope, and be partakers of the gift, if ye will but have faith.  
이더 12:10 보라 옛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반차를 좇아 부르심을 받은 것도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느니라. Behold it was by faith that they of old were called after the holy order of God.  
이더 12:11 그런즉 신앙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이 주어졌도다. 그러나 그의 아들의 은사로써 하나님은 더욱 좋은 길을 예비하셨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도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Wherefore, by faith was the law of Moses given. But in the gift of his Son hath God prepared a more excellent way; and it is by faith that it hath been fulfilled.  
이더 12:12 이는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 신앙이 없을진대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으심이라.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신앙을 갖기까지 자기를 보이지 아니하셨느니라. For if there be no faith among the children of men God can do no miracle among them; wherefore, he showed not himself until after their faith.  
이더 12:13 보라, 옥을 땅에 무너지게 한 것도 앨마와 앰율레크의 신앙이었느니라. Behold, it was the faith of Alma and Amulek that caused the prison to tumble to the earth.  
이더 12:14 보라, 레이맨인들에게 변화를 일으켜 불과 성신으로 침례 받게 한 것도 니파이와 리하이의 신앙이었느니라. Behold, it was the faith of Nephi and Lehi that wrought the change upon the Lamanites, that they were baptized with fire and with the Holy Ghost.  
이더 12:15 보라, 레이맨인들 가운데 그처럼 큰 기적을 이룬 것도 암몬과 그 형제들의 신앙이었느니라. Behold, it was the faith of Ammon and his brethren which wrought so great a miracle among the Lamanites.  
이더 12:16 참으로 또한 그리스도 이전에 있던 자들과 또한 후에 있은 자들, 곧 무릇 기적을 행한 모든 자들이 신앙으로 기적을 행하였느니라. Yea, and even all they who wrought miracles wrought them by faith, even those who were before Christ and also those who were after.  
이더 12:17 그리고 세 제자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얻은 것도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며, 그들이 신앙을 갖기까지는 약속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And it was by faith that the three disciples obtained a promise that they should not taste of death; and they obtained not the promise until after their faith.  
이더 12:18 또 어느 때라도 신앙을 갖기까지는 아무도 기적을 행하지 못하였나니, 이러므로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더라.

And neither at any time hath any wrought miracles until after their faith; wherefore they first believed in the Son of God.

이더서 12:6~18. 신앙 :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신앙을 영원한 수확을 위한 씨뿌림에 견주어 이야기했다.

“교회의 수많은 충실한 성도들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일념과 확신으로 주님의 사업에 그들의 삶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으며, 주께서 ‘나를 시험하여 보라’하며 주신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또한 많음은 우리에게 실망을 준다. 나는 종종 왜 사람들이 그들의 주님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주님은 자녀들에게 신앙에 따라 모든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인간은‘육신의 힘’을 신뢰하며, 그토록 많은 것을 행하실 수 있는 주님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셨다.

“‘…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선지자 모로나이는 갑자기 요약해 가던 기록을 중단하고 신앙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영감 받은 말씀을 하였다.

“‘또 이제 나 모로나이는 이 일에 관하여 얼마간 말하고자 하노라. 내가 세상에 보이고자 하거니와 신앙이란 비록 보이지 아니하나 바라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논박하지 말지니,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기까지는 너희가 증거를 받지 못함이니라.’(이더서 12:6)

“선조 아담도 이러한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 주의 천사가 아담에게 나타나 이르되, 어찌하여 너는 주께 희생을 드리느냐? 한즉, 아담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하노라.’(모세서 5:6)

“아담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보였고, 그 신앙이 증거와 기적보다 앞서서 나타났으므로 천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이 일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희생하실 모형이니 … (모세서 5:7)

“우리는 신앙의 씨를 심어 곧 그 씨가 꽃을 피우는 기적을 본다. 흔히 사람들은 잘못 이해하여 이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그들은 씨를 심기 전에 거두려 하고 봉사하기 전에 보상을 받으려 하며 신앙을 갖기 전에 기적을 먼저 기대한다. 아무리 요구 조건만을 강력히 내세우는 노동 조합이라 할지라도 노동도 제공하기 전에 임금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중 대부분의 사람이 건강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강건한 체력을 바라며, 십일조도 바치지 않고 천국의 창문이 열려 번영이 쏟아져 내리기를 바란다.(말라기 3:10) 금식도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 긴밀히 교통하려 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님의 다른 계명도 지키지 않으면서 철에 맞게 비가 오기를 바라고 땅에 화평이 오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 뿌리를 땅에 심기도 전에 장미꽃을 꺾으려 하며, 씨를 뿌려 재배도 하기 전에 그 곡식을 거두려 한다.

“모로나이가 기록한 대로, 우리가 깨달을 수만 있다면 …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 신앙이 없을진대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으심이라’

“‘또 어느 때라도 신앙을 갖기까지는 아무도 기적을 행하지 못하였나니, 이러므로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더라.’ (이더서 12:12, 18) …

“주님은 신앙이 기적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셨다.

“‘그러나, 보라, 신앙은 표적으로 인하여 오지 아니하며, 믿는 자들에게 표적이 따르는 것이니라.”(교리와 성약 63:9)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신앙과 노력 없이 표적을 요구했을 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 (마태복음 12:39)

“어느 때보다도 신앙이 필요할 때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사고와 질병, 심지어 죽음까지도 매일 우리를 엄습해 오는 듯하다. 그러한 재앙이 닥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거의 알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재정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하면서도 계속하여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이 필요하다. 특별히 남편의 학업이 끝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젊은 아내가 직업 전선에 나서기보다 가족을 뒷바라지 하는 데에는 신앙이 필요하다. ‘한 시간 반’의 일이 주어져 이윤이 남을 수 있고, 물건을 팔 수 있을 때 성찬식을 준수하려면 신앙이 필요하다. 가진 돈은 적고 쓸 곳은 많을 때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는 큰 신앙이 필요하다. 금식하며 가족 기도를 함은 물론 지혜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도 신앙이 필요하다. 가정 방문, 스테이크 선교사로서의 임무 및 희생이 요구되는 여러 다른 봉사를 하기 위해서도 역시 신앙이 필요하다. 전임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서도 신앙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충실하고 헌신적인 가족, 영적인 안전, 평화, 영생 등의 수확을 기대한다면, 지금 말한 모든 것은 단지 씨뿌림의 단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스펜서 더블류 킴볼, 기적을 낳는 신앙, 3~5, 10~11쪽)

이더 12:19 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 일지라도 그 신앙이 그처럼 심히 강하였던 자가 많이 있었으매, 그들에게는 휘장 안을 금할 수 없었던지라, 그들은 그들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을 진실로 그들의 눈으로 보고 기뻐하였더라. And there were many whose faith was so exceedingly strong, even before Christ came, who could not be kept from within the veil, but truly saw with their eyes the things which they had beheld with an eye of faith, and they were glad.  
이더 12:20 또 보라, 우리는 이 기록에서 이들 중 하나가 야렛의 형제이었음을 보았느니라. 대저 하나님께 대한 저의 신앙이 심히 컸던지라, 하나님이 그 손가락을 내미셨을 때 그것을 야렛의 형제가 보는 데서 감추실 수 없으셨나니, 이는 저에게 하신 자기의 말씀으로 인함이요, 그 말씀은 저가 신앙으로 얻은 것이더라. And behold, we have seen in this record that one of these was the brother of Jared; for so great was his faith in God, that when God put forth his finger he could not hide it from the sight of the brother of Jared, because of his word which he had spoken unto him, which word he had obtained by faith.  
이더 12:21 또 야렛의 형제가 주의 손가락을 본 후에, 야렛의 형제가 신앙으로 얻은 약속으로 인하여, 주께서는 야렛의 형제가 보는 데서 아무것도 감추실 수 없으셨나니, 그리하여 그가 저에게 모든 것을 보이셨음은 저를 더 이상 휘장 바깥에 머물게 할 수 없으셨음이라. And after the brother of Jared had beheld the finger of the Lord, because of the promise which the brother of Jared had obtained by faith, the Lord could not withhold anything from his sight; wherefore he showed him all things, for he could no longer be kept without the veil.  
이더 12:22 그리고 나의 조상들이, 이러한 것들이 이방인들을 통하여 그들의 형제들에게 나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얻은 것도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인즉, 그러므로 주께서 나에게 명하셨나니, 곧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명하셨느니라. And it is by faith that my fathers have obtained the promise that these things should come unto their brethren through the Gentiles; therefore the Lord hath commanded me, yea, even Jesus Christ.

이더서 12:8~22. 신앙과 기적

• 이더서 12장 8~22절은 “신앙으로 이루어진 이적과 기사”(이더서 12장 요약)에 대한 예로 가득 차 있다. Lectures on Faith에는 신앙이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의 원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신앙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모든 지적 존재의 행동 원리일 뿐만 아니라 권능의 원리이기도 하다. ……

…… 신앙으로 여러 세상이 형성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조직되지 않은 물질이 그 말씀을 들었으며, 그분 안에 있는 신앙으로 여러 세상이 조직되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신앙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면 해가 정지하고, 달이 순종하며, 산들이 없어지며, 옥이 무너지고, 사자의 입이 닫히며, 인간의 마음에 적의가 없어지고, 불은 그 맹렬함을 잃으며, 군대는 그 힘을 잃고, 칼은 그 무서움을 잃으며, 죽음은 그 지배력을 잃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신앙으로 일어난다.”([1985], 3, 5)

이더 12:23 이에 내가 주께 고하되, 주여, 우리의 기록함이 연약함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이 이를 비웃으리이다. 이는 주여, 주께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말에 능하게 하셨사오나, 우리로 기록함에는 능하게 하지 아니하셨음이오니, 이는 주께서 이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성신으로 인하여 말을 많이 할 수 있게 하셨음이니이다. And I said unto him: Lord, the Gentiles will mock at these things, because of our weakness in writing; for Lord thou hast made us mighty in word by faith, but thou hast not made us mighty in writing; for thou hast made all this people that they could speak much, because of the Holy Ghost which thou hast given them;  
이더 12:24 또 주께서는 우리 손의 둔함으로 인하여 우리로 조금밖에는 기록할 수 없게 하셨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우리로 야렛의 형제처럼 기록함에 능한 자가 되게 아니하셨사오니, 이는 주께서 저로 하여금 저가 기록하는 것이 실로 주와 같이 힘있게 하사, 사람을 압도하여 그것을 읽게 함이니이다. And thou hast made us that we could write but little, because of the awkwardness of our hands. Behold, thou hast not made us mighty in writing like unto the brother of Jared, for thou madest him that the things which he wrote were mighty even as thou art, unto the overpowering of man to read them.

주) (이더4:1) "또한 주께서 야렛의 형제에게 명하사 주의 면전에서 물러가 산을 내려가서 그가 본 것을 기록하게 하시되,"  야렛의 동생의 기록이 강한 이유는 영에 감동되었을 때 바로 기록한 것에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이더 12:25 주께서는 또한 우리의 말을 크고 힘있게 하사 우리가 그것을 기록할 수 없게 하셨사온즉, 이러므로 우리가 기록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보오며, 우리 글의 나열로 인하여 실족하오니, 이에 이방인들이 우리의 말을 비웃을까 내가 두려워하나이다. Thou hast also made our words powerful and great, even that we cannot write them; wherefore, when we write we behold our weakness, and stumble because of the placing of our words; and I fear lest the Gentiles shall mock at our words.  
이더 12:26 그리고 내가 이같이 고하자, 주께서 내게 일러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들이 비웃으나 그들이 애통할 것이요, 나의 은혜가 온유한 자에게는 족하니, 그들은 너희의 연약함을 이용하지 아니하리로다. And when I had said this, the Lord spake unto me, saying: Fools mock, but they shall mourn; and my grace is sufficient for the meek, that they shall take no advantage of your weakness;  
이더 12:27 또 만일 사람들이 내게로 오면 내가 그들에게 그들의 연약함을 보일 것이라. 내가 사람들에게 연약함을 주는 것은 그들로 겸손하게 하려 함이요, 내 은혜가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진 모든 자에게는 족하니, 이는 만일 그들이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내가 그들을 위하여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 할 것임이니라.

And if men come unto me I will show unto them their weakness. I give unto men weakness that they may be humble; and my grace is sufficient for all men that humble themselves before me; for if they humble themselves before me, and have faith in me, then will I make weak things become strong unto them.

이더서 12:27. 연약함, 겸손, 은혜

• 아담의 타락을 통해 인간은 연약함을 얻게 되었다. 신체와 정신은 질병에 걸리고 쇠약해지기 쉽다. 우리는 유혹과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연약함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겸손과 신앙으로 나아가면 우리의 연약함이 강해지도록 도우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우리에게 있는 능력을 능가하여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리기에 주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다. 아주 개인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속죄 권능이 어떻게 타락의 영향을 극복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도록 도우실 수 있는지를 말씀했다. “우리가 경전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읽을 때, 이 말은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선천적인 연약함도 포함하여 말한다. 이 연약함 때문에 육체는 끊임없이 영에 영향을 미친다.(이더서 12:28~29 참조) 또한 연약함에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특정한 자신만의 연약함도 있다.(교성 66:3; 야곱서 4:7 참조)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러한 연약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Lord, Increase Our Faith [1994], 84)

맥스웰 장로는 또한 자신에게 있는 연약함을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가 더 많이 배우도록 정하신 방법이 되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될 때까지 제대로 인내하지도 못하면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아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이상하게도 …… 고작 손목시계를 차고 있으면서 우주의 시계와 달력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훈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그분과 그분의 아들처럼 되어서 본향에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당연히 이 발전 과정에는 우리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궁극적인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유순해질 것입니다.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 그러한 약점까지 장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더서 12:27 참조)

그러나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약점은 인생에서 각 상황에 따라 정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과정 중 하나이며,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행복의 계획에서 절대로 필요한 부분입니다.”(리아호나, 1999년 1월호, 63쪽)

경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적합함과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음을 증거한다.

1.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2:9)

2.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

3.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에게 보이시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러한 일을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그의 은혜[에] …… 의한 것인 줄을, 우리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야곱서 4:7)

4.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노니, 내 능력으로는 내가 약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아니하겠고, 내 하나님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의 능력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이라.”(앨마서 26:12)

5. “너희가 만일 모든 경건하지 아니한 것을 거부하고, 너희의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 같으면, 그러면 그의 은혜가 너희에게 족하니, 그의 은혜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될지라.”(모로나이서 10:32)

모로나이는 우리가 주님을 믿는 신앙을 행사해야 할뿐만 아니라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신앙에 충실함 책에서는 참된 겸손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겸손해진다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의지함을 깨닫는 것, 즉 끊임없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겸손은 여러분의 재능과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연약함, 수줍음, 혹은 두려움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신앙에 충실함: 복음 참고서 [2004], 20쪽)

• 경전 안내서에는 은혜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남자와 여자가 이 생에서 축복을 얻고 또 그들이 신앙을 행사하고, 회개하고 또 계명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최선의 노력을 행한 이후에 영생 및 승영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힘. 그러한 신성한 도움 또는 힘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통하여 주어진다.”(“은혜”)

•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다음과 같이 위안을 주는 말씀을 전했다. “계속 추락하는 삶의 궤도를 바꾸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다고 느끼거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두려움인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전하신 다음 말씀에서 가장 큰 위안과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은혜가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진 모든 자에게는 족하니, 이는 만일 그들이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내가 그들을 위하여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 할 것임이니라.’”(리아호나, 2000년 7월호, 58쪽)

주) (야곱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에게 보이시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러한 일을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그의 은혜와 사람의 자녀들에 대한 그의 위대한 낮추어 오심에 의한 것인 줄을, 우리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더 12:28 보라, 내가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연약함을 보일 것이요, 또 그들에게 신앙, 소망 그리고 사랑이 나, 곧 모든 의의 근원인 내게로 인도함을 보이리라 하시니라. Behold, I will show unto the Gentiles their weakness, and I will show unto them that faith, hope and charity bringeth unto me-the fountain of all righteousness.  
이더 12:29 이에 나 모로나이는 이 말씀을 듣고 위로를 얻어 이르되, 주여, 주의 의로운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는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좇아 역사하심을 내가 앎이니이다. And I, Moroni, having heard these words, was comforted, and said: O Lord, thy righteous will be done, for I know that thou workest unto the children of men according to their faith;  
이더 12:30 이는 야렛의 형제가 지린 산더러 이르기를 옮기우라 하매 - 그것이 옮겨졌음이요, 저가 만일 신앙을 갖지 아니하였더라면 그것이 움직이지 아니하였을 것임이니이다. 그러하온즉 주께서는 사람이 신앙을 가진 후에 역사하시나이다. For the brother of Jared said unto the mountain Zerin, Remove-and it was removed. And if he had not had faith it would not have moved; wherefore thou workest after men have faith.

주) (마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힐10:9) "또 만일 네가 이 산더러 이르기를 너는 낮아져서 편편하게 되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라."

이더 12:31 이는 그와 같이 주께서 주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음이오니, 이는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에 주께서 큰 권능으로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셨음이니이다. For thus didst thou manifest thyself unto thy disciples; for after they had faith, and did speak in thy name, thou didst show thyself unto them in great power.  
이더 12:32 또 주께서 참으로 아버지의 거처 가운데 사람을 위하여 집을 예비하사, 이로써 사람이 보다 좋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말씀하신 것을 내가 또한 기억하나이다. 그러하온즉 사람은 반드시 소망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주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기업을 받을 수 없나이다. And I also remember that thou hast said that thou hast prepared a house for man, yea, even among the mansions of thy Father, in which man might have a more excellent hope; wherefore man must hope, or he cannot receive an inheritance in the place which thou hast prepared.

이더서 12:32

이더서 12장 32절; 모로나이서 7장 40~41절과 교리와 성약 138편 14절에 따르면,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는가?

주)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영감역 요한복음14:2)내 아버지의 왕국에 많은 왕국들이 있도다. 그렇지 않으면... "

(모로7:40-41) "그리고 또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내가 소망에 관하여 너희에게 말하고자 하노라. 너희가 소망을 갖지 아니하고 어찌 신앙에 이를 수 있느냐? 또 너희가 바라야 할 바는 무엇이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으로 일으키심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할지니, 이는 약속대로 그를 믿는 너희의 신앙으로 인한 것이니라."

(교성 138:14) "이들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영화로운 부활의 소망을 굳게 품고 필멸의 생을 떠난 자들이더라."

이더 12:33 그리고 또 주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사, 세상을 위하여 주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셨사오며, 이는 주께서 생명을 다시 취하사, 사람의 자녀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려 하신 것이라 말씀하신 것을 내가 기억하나이다. And again, I remember that thou hast said that thou hast loved the world, even unto the laying down of thy life for the world, that thou mightest take it again to prepare a place for the children of men.  
이더 12:34 또 이제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을 사랑하신 이 사랑이 참 사랑인 줄 내가 아오니, 이러므로 사람들이 이 사랑을 갖지 아니할진대, 주께서 주의 아버지의 거처에 예비하신 그 처소를 기업으로 얻을 수 없삽나이다.

주) (모로7:47)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이라. 영원히 견딤이요, 누구든지 마지막 날에 이를 지닌 것으로 드러나는 자는 잘 될 것임이니라."

And now I know that this love which thou hast had for the children of men is charity; wherefore, except men shall have charity they cannot inherit that place which thou hast prepared in the mansions of thy Father.

이더서 12:33~37. 이 사랑이 참 사랑이다

• 구주께서는 우리 각자를 위해 생명을 바쳐 속죄하심으로써 가장 완전한 자애 또는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이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모로나이서 7:48) 십이사도 정원회의 마빈 제이 애쉬튼(1915~1994) 장로는 참 사랑을 지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아마도 사랑(자애)이란 여러 가지로 오해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병자를 방문하거나 궁핍한 이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거나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여분을 나눔으로써 사랑(자애)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참된 사랑(자애)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자애)이란 남에게 어떤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어떤 것을 얻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사랑(자애)이라는 미덕이 심어질 때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바로 그러한 사랑(자애)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헐뜯는 것을] 혐오하게 됩니다.

아마 가장 큰 사랑(자애)은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할 때,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분류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대해 선의로 해석하거나 침묵을 지킬 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랑(자애)이란 다른 사람의 차이점과 약점, 단점을 수용하거나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을 인내심을 갖고 대하거나 다른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어떤 일을 처리하지 않더라도 화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사랑(자애)이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자애)이란 상대방에게서 가장 좋은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마빈 제이 애쉬튼,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19쪽)

이더 12:35 그러하온즉 주께서 말씀하신 이 일로 말미암아 내가 알거니와, 이방인들이 만일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이 사랑을 갖지 아니하면, 주께서는 그들을 시험하시고, 참으로 그들이 받은 달란트를 빼앗아 더욱 풍성하게 가질 자들에게 주실 것이니이다 하였느니라. Wherefore, I know by this thing which thou hast said, that if the Gentiles have not charity, because of our weakness, that thou wilt prove them, and take away their talent, yea, even that which they have received, and give unto them who shall have more abundantly.  
이더 12:36 이에 이렇게 되었나니 내가 주께 기도하여, 주께서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들로 사랑을 갖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였느니라. And it came to pass that I prayed unto the Lord that he would give unto the Gentiles grace, that they might have charity.  
이더 12:37 이에 이렇게 되었나니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사랑을 갖지 아니할지라도 네게는 상관이 없나니, 너는 충실하였도다. 그런즉 네 옷이 정결하게 될 것이요, 또 네가 네 연약함을 알았은즉 네가 강하게 되어, 내가 내 아버지의 거처에 예비한 처소에 앉기에 이르리라 하셨느니라. And it came to pass that the Lord said unto me: If they have not charity it mattereth not unto thee, thou hast been faithful; wherefore, thy garments shall be made clean. And because thou hast seen thy weakness thou shalt be made strong, even unto the sitting down in the place which I have prepared in the mansions of my Father.  
이더 12:38 또 이제 나 모로나이는 이방인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그뿐 아니라 또한 내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에게도 작별을 고하나니, 곧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만날 때까지라. 거기서 나의 옷이 너희의 피로 더럽혀지지 아니하였음을 만인이 알게 되리로다. And now I, Moroni, bid farewell unto the Gentiles, yea, and also unto my brethren whom I love, until we shall meet before the judgment-seat of Christ, where all men shall know that my garments are not spotted with your blood.

주) (야곱1:19) "또 우리는 주께 대하여 우리의 직분을 영화롭게 하되, 책임을 맡으며, 만일 우리가 부지런함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지 아니할진대, 백성들의 죄가 우리의 머리 위에 돌아오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힘을 다하여 일함으로써 그들의 피가 우리의 옷에 묻지 않게 하고자 하였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그들의 피가 우리의 옷에 묻을 것이요, 마지막 날에 우리가 흠 없다 함을 얻지 못하리라."

이더 12:39 또 그때에 너희는 내가 예수를 뵈었고, 그는 나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으며, 이러한 것에 관하여 내 자신의 언어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같이 명백하게 스스로 낮추시어 내게 말씀하신 줄을 알게 되리로다. And then shall ye know that I have seen Jesus, and that he hath talked with me face to face, and that he told me in plain humility, even as a man telleth another in mine own language, concerning these things;  
이더 12:40 또 나의 기록하기에 연약함으로 인하여 내가 조금만 기록하였도다. And only a few have I written, because of my weakness in writing.  
이더 12:41 이제 내가 너희에게 권하고자 하노니,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이 예수를 구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이들을 증거하시는 성신이 영원토록 너희 안에 계시며 또 거하시게 하라. 아멘. And now, I would commend you to seek this Jesus of whom the prophets and apostles have written, that the grace of God the Father, and also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Holy Ghost, which beareth record of them, may be and abide in you forever. Amen.

이더서 12:41. 거하다

• 칠레에서 일 년을 보낸 후,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거하다(abide)라는 말에 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나누었다.

“킹 제임스판 성경에서 고상한 문체로 쓰인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개념이지만 ‘거하다’라는 말은 이제 영어에서 그다지 많이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언어로 번역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주님께서 주신 이 권고 말씀에 대해 더 큰 감사를 느꼈습니다. 스페인어로 이 단어와 유사한 표현은 permaneced en mi입니다. 영어 동사인 abide처럼 permanecer는 ‘남아 있다, 머물다’라는 뜻이지만 저와 같은 [영어 사용자는] ‘permanence(영속)’와 같은 어원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머물되, 영원히 머물라’는 의미입니다.”(제프리 알 홀런드,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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