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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갈라디아서 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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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심.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 베드로와의 논쟁.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Paul goes to Jerusalem—He contends for the true gospel—Salvation comes through Christ.

갈라디아서 소개 및 연대

바울은 이방인 성도도 모세 율법의 의례를 준수해야 한다는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성도들을 꾸짖었다.(갈라디아서 1:6~7; 3:1~3; 5:2~4; 6:12 참조; 또한 사도행전 15:1~31 참조)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가르쳤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의 승인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성역을 베풀었다고 해명함으로써 사도로서 자신의 부름을 변론했다.(갈라디아서 1:1, 11~24; 2:1~9 참조)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세 율법의 행위와 의례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갈라디아서 2:16) 바울은 이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으며(갈라디아서 3:6~18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해진 구속에 대해 가르치고(갈라디아서 3:13 참조), 모세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로서(갈라디아서 3:24) 주어졌다는 것을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며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갈라디아서 3:26~4:7 참조) 바울은 성도들에게 성령에 따라 생활하고 복음의 자유를 고수하라고 요청했다.(갈라디아서 4:21~6:18 참조)  

갈 2: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Then fourteen years af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with Barnabas, and took Titus with me also.

갈라디아서 2:1~5. 유대주의자들이 할례를 계속 시행하기를 원하다

갈라디아서 2장 1절에는 바울이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며, 디도가 거기에 동행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 사람인 디도는 할례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일부 유대주의자들은 모든 이방인이 할례를 받아 모세 율법의 의례를 계속 순종하기를 바랐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거짓 형제들이 부지중에 데려온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다.”(Joseph Smith Translation, Galatians 2:4) 거짓 형제들이 데려온 이 첩자들은 디도와 같은 기독교인들에게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단념하고 모세 율법의 속박으로 돌아가도록 강요하고자 했다. 

갈 2: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And I went up by revelation, and communicated unto them that gospel which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privately to them which were of reputation, lest by any means I should run, or had run, in vain.
갈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But neither Titus, who was with me, being a Greek,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갈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And that because of false brethren unawares brought in, who came in privily to spy out our liberty which we have in Christ Jesus, that they might bring us into bondage:
갈 2: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To whom we gave place by subjection, no, not for an hour;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continue with you.
갈 2: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But of these who seemed to be somewhat, (whatsoever they were, it maketh no matter to me: God accepteth no man’s person:) for they who seemed to be somewhat in conference added nothing to me:

 

갈 2: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But contrariwise, when they saw that the gospel of the uncircumcision was committed unto me, as the gospel of the circumcision was unto Peter;

 

갈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For he that wrought effectually in Peter to the apostleship of the circumcision, the same was mighty in me toward the Gentiles:)

 

갈 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And when James, Cephas, and John, who seemed to be pillars, perceived the grace that was given unto me, they gave to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s of fellowship; that we should go unto the heathen, and they unto the circumcision.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Only they would that we should remember the poor; the same which I also was forward to do.

 

갈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But when Peter was come to Antioch, I withstood him to the face, because he was to be blamed.

갈라디아서 2:11~16. 바울과 베드로의 대립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그들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최고 선임 사도인 베드로와 대립했던 일을 상세히 기록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모임을 한 후(갈라디아서 2:1 참조), (비시디아에 있는) 안디옥의 성도들을 방문했는데, 마침 바울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곳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한 무리의 유대인 기독교도들이 그곳에 오자 식사를 멈추었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 성도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 유대인 방문자들이 불쾌하게 여길까 봐 두려워했다.(갈라디아서 2:12 참조) 유대인 문화를 포함하여 고대 세계의 여러 문화에서 식사는 우정과 충성의 관계를 확약하는 것이었다.(마가복음 2:15~16; 사도행전 10:28 참조) 하지만 일부 유대인 기독교도들에게는 이방인들과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는 문화적 전통이 이방인 성도들과 기독교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바울은 이 상황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가르쳤다.(갈라디아서 3:28)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인 성도들을 두고 떠남으로써 그들이 “유대인답게” 살지 않으면(갈라디아서 2:14) 베드로와 같은 교회 회원들과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암시했다고 여겼다.

이 대립에 대해서는 현재 바울의 기록만 있다는 점과 베드로가 주로 유대인들에게 성역을 베풀었음을 바울도 인정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갈라디아서 2:7~8 참조)

“그러나 최고 선임 사도를 변호하는 측면에서 볼 때, 베드로는 감정적으로 부서지기 쉬운 두 분파로 구성된 비교적 작은 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이쪽에서는, 즉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일부 이방인들이 모세 율법의 규정, 특히 할례를 꺼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반면, 바울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모세 율법의 전통을 아직도 굳게 고수하는 유대인 기독교도들의 감정 문제를 개의치 않아 했다. 선지자인 베드로는 당연히 교회의 유대인 회원들과 이방인 회원들을 모두 사랑하고 염려했다.

베드로에게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이방인들과 함께 계속 식사를 한다면 방문을 온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감정이 상할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자리를 떠난다면 바울과 안디옥의 이방인 기독교도들이 불쾌해할 것이다. 타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감정이 상할 사람들이 발생한다. 베드로는 아마 바울은 감정이 상하더라도 계속 충실하게 남겠지만,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감정이 상하면 아직 유아기 단계에 있던 교회를 반대하거나 떠나도록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Frank F. Judd Jr., “The Jerusalem Conference: The First Council of the Christian Church,” Religious Educator, vol. 12, no. 1 [2011], 67; rsc.byu.edu)

갈라디아서 2장에는 주후 49년에 개최된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사도행전 15장 참조) 바울은 그 대회에 참석했으며, 이후에 자신이 성역을 베풀었던 사람들에게 그 대회의 결정을 전했다.(사도행전 15:30; 16:4 참조) 바울이 그 대회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결정이 언급된 서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갈라디아서 2장 11~21절에 서술된 일이 예루살렘 회의 전에 일어났다고 여긴다. 

갈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For before that certain came from James, he did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were come, he withdrew and separated himself, fearing them which were of the circumcision.
갈 2: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And the other Jews dissembled likewise with him; insomuch that Barnabas also was carried away with their dissimulation.
갈 2: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But when I saw that they walked not uprightly according to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unto Peter before them all, If thou, being a Jew, livest after the manner of Gentiles, and not as do the Jews, why compellest thou the Gentiles to live as do the Jews?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We who are Jews by nature, and not sinners of the Gentiles,

갈라디아서 2:15~16.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언급했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든 사람은 모세 율법의 행위를 수행함으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즉, 죄에 대한 형벌을 사면받는다.) 베드로도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와 비슷한 관점을 보였다.(사도행전 15:7~11 참조) 의롭게 됨에 관하여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1:16~17 주해를 참조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문구에 대해 통찰을 얻으려면, 로마서 3:22 주해를 참조한다.

의롭게 됨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종종 성결하게 됨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언급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는 이 두 교리가 어떻게 관련이 있으면서도 분리되어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의롭게 된 사람을 우리는 용서받아 죄 없는 사람이라고 적절히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내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자는 충만하게 될 것이요, 만일 그가 끝까지 견디면, 보라,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설 그 날에 내가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죄 없다 할 것이라’(제3니파이 27:16; 강조체 추가) 속죄는 죄 사함과 같이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냅니다. 모로나이는 ‘더 많은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또,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고 그의 권능을 부인하지 아니하면, 그러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하게 되나니, 이 피 흘리심은 아버지의 성약 안에서 너희의 죄 사함을 위한 것으로서 너희를 거룩하며 흠 없게 되게 하는 것이니라.’(모로나이서 10:33; 강조체 추가)

그리스도의 피로써 성결하게 되는 것은 깨끗하고 순결하며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어 과거의 죄에 대한 형벌이 없어진다면, 성결하게 됨으로써 죄의 얼룩이나 결과가 사라집니다.”(“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Ensign, June 2001, 20, 22; 또한 모세서 6:59~60 참조)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며 의로운 행위는 구원에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 성구를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뿐만 아니라 바울의 기록 대부분에서, 행위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선행이나 복음대로 생활하려는 노력, 즉 순종의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 갈라디아서 2~3장에서 바울이 했던 말에 나오는 행위라는 단어는 모두 “율법의 행위”라는 문구 안에서 쓰였다. 이는 할례 의식, 음식물 규제, 성일 등 모세 율법의 준수를 의미했다.(로마서 3:27~31 주해 참조) 따라서 바울이 의미한 바는 모세 율법의 행위는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복음의 계명에 따라 생활하려는 노력이라는 의미의 “행위”가 우리를 의롭게 하거나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에베소서 2:8~9; 니파이후서 25:23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우리의 행위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바울이 했던 말 중 또 다른 말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12) 이 표현은 우리의 의로움이 구원과 승영을 얻게 해 준다는 뜻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신성한 운명을 타고났다 해서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 세상을 거쳐 영생을 얻도록 해 준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때로 그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말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잊을 수가 있습니다. 니파이가 말한 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부지런히 권고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후에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은혜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니파이후서 25:23)

… 그러나 순종과 선한 일을 한 후에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죄의 영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73~74쪽)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But if, while we seek to be justified by Christ, we ourselves also are found sinners, is therefore Christ the minister of sin? God forbid.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For if I build again the things which I destroyed, I make myself a transgressor.

갈라디아서 2:18~20; 3:10~11, 2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라는 바울의 말은(갈라디아서 2:18) 자신이 구주를 믿는 새로운 삶을 떠나 모세 율법을 준수했던 예전 생활로 돌아갈 때 일어날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행위이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갈라디아서 3:10) 그는 어느 누구도 율법만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알았다.(갈라디아서 3:10~11, 22 참조) 바울은 분명 모세 율법의 일부 관습을 여전히 따르고 있었지만(사도행전 16:1~3; 18:18; 21:26 참조), 이제 그것은 그와 하나님의 관계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승영을 위한 필수 요건도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기에, 그는 자신의 예전 삶을 죽은 것으로 묘사했으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갈라디아서 2:18~20 참조)

칠십인 정원회의 로버트 엘 백맨 장로는 구주께 자신을 온전히 바칠 때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자발적으로 드리는 신뢰와 신앙과 사랑의 선물로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바치는 자세를 시 에스 루이스는 이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치라. 너의 많은 시간과 많은 돈과 많은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원하는 것은 너 자신이니라. 나는 육으로 난 너에게 고통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육으로 난 너를 죽이러 왔노라. 일부만 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니, 나는 가지만 여기저기 쳐내는 것을 원치 않고, 나무를 송두리째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 육으로 난 너를 모두 넘기라. 네가 가진 모든 악한 욕망은 물론 네가 순수하다 생각하는 욕망도 모두 나에게 넘기라. 너에게 새로운 너를 주겠노니, 곧 나 자신이라. 그러면 나의 것이 너의 것이 될지니라.”’ (Mere Christianity, New York: Collier Books, 1960, p. 167)”(“예수 그리스도”, 성도의 벗, 1992년 1월호, 11쪽)

바울이 신앙으로 의롭게 된 본보기로서 아브라함을 언급한 것을 이해하려면, 로마서 4장 주해  로마서 4:18~22 주해를 참조한다.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For I through the law am dead to the law, that I might live unto God.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I do not frustrat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me by the law, then Christ is dead in v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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