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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요한 복음 1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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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말씀은 곧 그리스도라. 그가 만물을 지으시고 육신을 입으심.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침례하고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증거. 요한, 안드레, 시몬, 빌립, 나다나엘을 그리스도를 좇음. Christ is the Word of God—He created all things and was made flesh—John baptizes Jesus and testifies he is the Lamb of God—John, Andrew, Simon, Philip, and Nathanael believe in Christ and follow him.

요한복음 1장 소개 및 연대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요한복음이 지니는 독특한 가치와 유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간증이 들어 있다. 또한 가장 상세한 비유와 상징이 담겨 있으며, 좀 더 깊이 있는 교리적 개념이 다수 실려 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371)

요한복음의 서막을 여는 첫 번째 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세에 누리셨던 신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자로서의 그분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또한 그분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하면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데 개인적인 간증이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은 구주를 “말씀”(요한복음 1:1), 이 세상의 창조주(요한복음 1:3 참조), “생명”(요한복음 1:4), “빛”(요한복음 1:7)으로 소개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요한복음 1:14),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신다고(요한복음 1:12) 간증했다. 요한은 또한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간증한 내용도 기록했다. 침례 요한은 예수께서 이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보내진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간증했다.(요한복음 1:29) 안드레는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라고 간증했는데,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요한복음 1:41) 그리고 나다나엘 역시 구주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말했다.(요한복음 1:49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 1:1~34.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 수정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요한복음 1장 1~34절에서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 있다. 경전 안내서에 나오는 이런 수정은 경전 본문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한복음 1:1.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불리시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로 경전의 여러 부분에 나온다.(요한복음 1:1, 14; 요한1서 1:1; 요한계시록 19:13; 교리와 성약 93:8~10; 모세서 1:32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구주의 칭호인 “말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어 신약전서에서 말씀 로고스[Logos], 즉 ‘표현’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 용어는 생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적절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표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또는 표현인 것입니다.”(“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우리의 주님이며 그 이상의 분이심”, 리아호나, 2000년 4월호, 4~5쪽)

후기의 계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칭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덧붙여졌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이는 그가 말씀 곧 구원의 사자요.”(교리와 성약 93:8)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으로 보내신 사자임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선포하신다.(요한복음 7:16; 8:26~28; 12:49~50; 17:8 참조)

후기 성도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태초에 복음이 아들을 통하여 전파되었느니라. 그리고 복음은 곧 말씀이었으며, 말씀 아들과 함께 있었고 아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아들은 하나님께 속하였더라.”(경전 안내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세에 존재하셨음을 증명한다. 그분은 만물이 시작하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또한 이 내용은 그분이 맡으신 구원의 사명이 전세에서 시작되었음을 확언한다. 그분은 “말씀”, 곧 구원의 사자이셨으며(교리와 성약 93:6~8 참조), “태초에” 복음을 가르치셨다. 경전의 다른 곳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세에 위대한 여호와이셨음을 배운다.(제3니파이 15:5; 교리와 성약 110:3~4 참조)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The sam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요한복음 1:1~2.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사복음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지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전세에 대해 가르치는 유일한 복음서이다.(요한복음 1:1~2 참조) 후기의 경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세에 존재하셨음과 그분의 위대함에 대한 수많은 진리를 확언해 준다. 구주께서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나니, 나는 장자니라.”(교리와 성약 93:21) 아브라함서에는 전세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으신 이”로(아브라함서 3:24) 묘사되어 있다. 모세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태초부터 … 사랑하는 자요 택한 자”였고, 이미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영광이 영원토록 당신의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음이 기록되어 있다.(모세서 4:2; 또한 아브라함서 3:27~28 참조)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 thing made that was made.

 " ... 아버지는 아들을 통하여 창조 사업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뜻과 명령과 말씀을 실제로 집행한 분이셨습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지칭한 것과 아버지께서 '권능의 말씀' 이라 한 것은 극히 적절한 것입니다. "   - 제임스 E 탈매지 장로 -

“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의 도움도 있었으나 지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 수 있도록 재료를 취하여 이 천체를 만드신 분은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    -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 -

“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영적으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도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칠 때 이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중 처음 태어난 분으로 영적으로는 장자이시며 육체적으로는 유일한 독생자이십니다. 모든 남자와 여자는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았으며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   - 조셉 F 스미스 회장 -

요한복음 1:3,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시를 따른 창조주이시다

요한은 “만물이 [구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증언했다.(요한복음 1:3, 10) 구주께서는 “무수한 세상”과(모세서 1:33) “이 땅과 같은 수백만의 땅”(모세서 7:30), 그리고 “태초로부터 만물”을(모사이야서 3:8) 창조하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로서 하신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하여 창조 사업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뜻과 명령과 말씀을 실제로 집행한 자였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지칭한 것과 아버지께서 ‘권능의 말씀’이라 한 것은 극히 적절한 처사이다.[요한복음 1:1; 모세서 1:32]”(예수 그리스도, 33쪽)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두 가지 창조적 사건”을 담당하셨다. “첫째, 그분은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모든 영의 아버지이시다. … 둘째, 그분은 인간의 육신을 지은 창조주이시다.[모세서 2:27 참조]”(Bruce R. McConkie, A New Witness for the Articles of Faith[1985], 63)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comprehended it not.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There was a man sent from God, whose name was John.

요한복음 1:6~8, 15~18, 23~34. 침례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 요한복음 1장 1~18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후기의 계시를 통해 우리는 (사도이자 계시자이며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의 복음서 첫 부분이 원래는 침례 요한이 남긴 기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교리와 성약 93:6~18 참조] …

그러나 그 계시가 아니더라도, 요한복음 서두에 기록된 사건들이 침례 요한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침례 요한이] 유대인들과 했던 대화와 주님이 침례를 받으셨을 때 그가 목격했던 것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침례 요한보다 약간 늦게 성역을 시작한 사도 요한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랑받는 제자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 분명 침례 요한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70–71)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 요한복음 1장 6~8절을 인용하면서, 이 성구들은 침례 요한이 베푼 성역의 목적을 서술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침례 요한이 받은 사명의 당면 목적은 예수가 참된 빛이요 영생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임을 증거하고,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그분을 믿고 침례를 받도록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메시야도 아니며, 대규모 사회 운동을 이끄는 선도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본질과 거룩한 칭호를 증거하는 사자이며 증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셨습니다.”(Conference Report, Oct. 1968, 141)

요한복음 1장 31절에 나오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는 구절을 두고,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요한이 정말로 알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는 구절이 두 차례 수정되어 나온다. 요한복음 1장 31절이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 있다. “나는 그를 알았나니 그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내 보이심을 받아야 했느니라.”(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30[경전 안내서]) 요한복음 1장 33절에 나오는 못하였으나와 같은 단어도 조셉 스미스 역에는 빠져 있으며,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내가 그를 알았나니”(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32[경전 안내서]) 이런 수정을 보면 예수가 메시야였다는 사실을 요한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길을 예비해야 했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그 성구 바로 앞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분명한 간증과도 일치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한복음 1:29~30; 또한 15절 참조)

침례 요한의 사명과 간증을 더 알아보려면, 누가복음 7:24~30 주해를 참조한다.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The same came for a witness, to bear witness of the Light, that all men through him might believe.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He was not that Light, but was sent to bear witness of that Light.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That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요한복음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신약전서에서 그리스도의 빛에 관한 가르침은 요한복음에만 유일하게 실려 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성경 사전[Bible Dictionary]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빛’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그것에 적용되는 원리들은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 성구들에 나온다. 앨마서 28:14, 모로나이서 7:18, 교리와 성약 88:7. 이따금 ‘그리스도의 빛’과 동의어로 쓰이는 성경 어구는 ‘주의 영’과 ‘생명의 빛’이다.(예를 들어, 요한복음 1:4; 8:12 참조) 그러나 ‘주의 영’이 성신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므로,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빛이란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그대로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주어지는 깨우침이고, 지식이며, 희망을 주고 기품을 높이며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게 하는 영향력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교리와 성약 93:2; 요한복음 1:9 참조) 그리스도의 빛은 ‘광활한 우주’를 채우며, 그리스도께서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통하여 계시고, 만물 주위에 계’실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은 ‘만물에게 생명을 주며’ ‘만물을 다스리는 율법’이다. 그것은 또한 사람의 이해력을 ‘일으키는 … 빛’이다.(교리와 성약 88:6~13, 41 참조)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빛은 인간의 양심에 관여하며 옳고 그름을 알려 준다.(모로나이서 7:12~19)

그리스도의 빛을 성신이라는 인격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빛은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은 성신을 받기에 앞서 예비적이고 준비적인 차원에서 행사된다.”(Bible Dictionary, “Light of Christ”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by him, and the world knew him not.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He came unto his own, and his own received him not.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요한복음 1:12~1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

모든 남성과 여성은 하늘 부모가 낳으신 영의 아들과 딸이기 때문에(“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129 참조)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이(요한복음 1:12) 왜 필요한지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전에는 거듭나고 하나님과 복음 성약을 맺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모사이야서 5:7; 27:25 참조) 모든 사람이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이긴 하지만, 침례와 성전 엔다우먼트와 같은 복음 성약을 맺는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의 성약의 자녀가 된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이 어떻게 우리가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교회에 들어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인 후에야 그 신분에 도달할 능력과 자격 및 권능을 받습니다.(교리와 성약 39:1~6 참조)

성전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은 구원의 의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녀라는 신분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며,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이 되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Conference Report, Oct. 1955, 12–13)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Which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요한복음 1: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신약전서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하려 “독생자”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곳은 요한복음 1장 14절이다. 칠십인의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로버트 이 웰즈 장로는 “독생자”라는 칭호가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이 지상에서 수행하는 사명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는 데 중심이 됩니다. 그분은 전세에서는 아버지의 장자이셨으며 이 지상에서는 아버지의 독생자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문자 그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영의 자녀들의 아버지이십니다.(니파이전서 11:18, 21; 제임스 이 탈매지, 신앙개조, 419쪽 참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할 때, 이것은 전세에서 하나님으로서의 그분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이신 엘로힘의 장자는, 최초의 천국 회의에서 앞으로 태어날 인류의 구주로 선택받고 성임되었습니다.(제임스 이 탈매지, 예수 그리스도, 3쪽 참조) 예수님은 또한 이 지구와 우리의 태양계, 은하계와 수없이 많은 세계를 조직하고 창조하도록 아버지께서 선택하여 보내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나 현재에 구약전서의 여호와시요, 아담과 노아의 하나님이시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고대의 선지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실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렇게 하셨으며, 그분은 아버지께서 하실 말씀을 대신 하셨습니다. 구약전서의 여호와는 신약전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필멸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또한 ‘육신을 입은 독생자’라는 명칭을 의미합니다. 고대와 현대 경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독생자’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호칭은 예수님의 육신이 필멸의 어머니와 불멸의 영원하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의미하는데, 이 근본적인 진리는 속죄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것이며, 이 속죄는 보통 사람이 달성할 수 없었던 최상의 행위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불멸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버릴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능도 있었습니다. 모친인 마리아로부터 그리스도께서는 필멸의 권능, 또는 죽을 수 있는 권능을 상속받았습니다.”(“세상에 전하는 우리의 메시지”,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65쪽) 

요한복음 1:14, 16~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다

신약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묘사한 것은 요한복음 1장 14절이 유일하다. 후기의 경전에서 구주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묘사한 것은 일곱 차례나 더 있다. 요한복음 1장 16~17절에 설명되어 있듯이, 구주께서는 당신의 “충만[함]”을 우리와 나누신다. 물론 구주께서는 당신의 은혜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신다. “은혜”로 번역된 그리스어 charis는 “인자함, 호의, 또는 친절”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낱말의 주요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자비와 사랑을 통해 주어지는 도움 또는 힘의 신성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 이 은혜란 곧 남자와 여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영생과 승영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Bible Dictionary, “Grace”)

“진리”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alētheia는 “사실, 진실, 또는 확실성”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사물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지식”이라고 정의하신다.(교리와 성약 93:24) 진리는 절대적이며,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님께서 변하지 않는 분이신 것처럼 진리도 변하지 않는다.(교리와 성약 93:30; 몰몬서 9:19; 교리와 성약 20:17 참조)

다음 참조 성구들은 구주께서 어떻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신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니파이후서 2:6~10; 앨마서 9:26~27; 교리와 성약 93:8~17.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John bare witness of him, and cried, saying, This was he of whom I spake, He that cometh after me is preferred before me: for he was before me.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And of his fulness have all we received, and grace for grace.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For the law was given by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No man hath seen God at any time; the only begotten Son, which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declared him.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흠정역 요한복음 1장 18절에 대해 영감받은 요건을 추가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증언하셨던 때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나니 이는 그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어떠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음이니라.”(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19[경전 안내서]) 이 중요한 추가 부분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려 지상의 인간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혀 준다.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타락 이후의 모든 계시는 구약의 여호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입니다. 경전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이 언급되고 그가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는 아브라함, 노아, 에녹, 모세 그리고 모든 선지자와 말씀하신 여호와를 뜻하는 것입니다. … 아버지는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과 직접, 친히 관계하신 적이 없으며, 아들을 소개하고 증거한 때를 제외하고는 나타나신 적도 없었습니다.”(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제1권, 26쪽) 경전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셨던 때가 다음과 같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3:17; 17:5; 제3니파이 11:6~7; 교리와 성약 76:23; 조셉 스미스—역사 1:17.

요한복음 1장 18절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경전에서, 특히 요한복음에서 보다[see]라는 단어는 “우리의 마음을 인지하다” 또는 “이해하다”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볼 때, 요한복음 1장 18절은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본” 적이 없음을, 즉 이해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인간에게 “나타내”거나 알려 주시고자 하나님의 사자로 오셨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요한복음 1:1, 14; 8:19; 14:7~9; 요한1서 2:23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인간이 알도록 어떻게 도우려 오셨는지에 대해 더 이해하고자 한다면, 요한복음 14:7~11; 16:25 주해를 참조한다. 

요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And this is the record of John, when the Jews sent priests and Levites from Jerusalem to ask him, Who art thou?

요한복음 1:19. “유대인들”이란 어떤 의미인가?

공관복음서에서 “유대인들”이란 말은 드물게 나오지만,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그 말을 71번이나 사용했다. 요한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이 용어를 몇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 단어가 나오는 맥락 내에서 신중하게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장 6절에서 “유대인”은 유대인 민족 전체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5장 10절, 9장 22절, 18장 12절에서 “유대인”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및 장로들을 포함하는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은 구주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유대 민족의 일원들을 의미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요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And he confessed, and denied not; but confessed, I am not the Christ.

요한복음 1:19~28. 침례 요한의 신원

요한복음 1장 19~28절에서, 요한은 침례 요한의 신원과 성역에 관해 기록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침례 요한이 성역을 시작했을 때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대 민족 전체가 메시야와 일라이어스가 나타날 순간을 기다리며, 큰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의 수많은 무리가 요한에게로 떼를 지어 몰려가 그를 선지자로 받아들였으며, 요단 강둑에는 침례를 받고 개종한 무리로 북적거렸으므로 유대인 지도자들, 즉 선지자가 외치는 것들을 시험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였던 대산헤드린의 회원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상세한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129)

유대인 지도자들은 요한에게 그가 훗날에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된 바로 그 “일라이어스”냐고(히브리어의 “엘리야”에 대한 그리스어 명칭) 물었다.(말라기 4:5~6 참조)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서, 주님께서는 요한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대답한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계시해 주셨는데, 그 대답을 살펴보면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메시야를 위해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캐묻자, 요한은 “드러내어 자신이 일라이어스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드러내어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더라.”(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21[경전 안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분명히 알지 못했지만, 요한은 일라이어스라는 명칭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Bible Dictionary, “Elias”; 경전 안내서, “일라이어스”; scriptures.lds.org 참조) 요한은 한 명의 일라이어스였으며, 그것은 메시야에 앞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그 일라이어스, 즉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었다. 요한은 또한 그리스어 이름이 일라이어스인 선지자 엘리야도 아니었다. “나는 만물을 회복하게 될 일라이어스가 아니라 …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니라.”(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22, 24[경전 안내서]) 요한의 간증은 자신이 예비자라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며, 자기 뒤에 오시는 자신보다 “앞선” 분의 신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나는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리니 그는 내가 증언하는 분이시니라. 그가 그 선지자요, 바로 일라이어스시니, 그는 내 뒤에 오시나 나보다 앞선 분이시니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며, 그의 자리는 내가 채울 수 없느니라. 이는 그가 침례를 베풀려니와 물로써뿐만 아니라 불로써 또 성신으로써 그리할 것임이니라.”(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27~28[경전 안내서])

요한이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에게 “네가 그 선지자냐” 하고 물었다. (요한복음 1:21) 그들의 질문은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가 언급한 다음 예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그러나 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그에게 “그 선지자”냐고 물음으로써,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모세가 예언한 메시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오기를 기대했지만, 모세는 메시야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이후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수많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선지자”라고 외친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요한복음 7:40~41; 또한 6:14 참조) 

요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And they asked him, What then? Art thou Elias? And he saith, I am not. Art thou that prophet? And he answered, No.
요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Then said they unto him, Who art thou? that we may give an answer to them that sent us. What sayest thou of thyself?
요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He said,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in the wilderness,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said the prophet Esaias.
요 1: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And they which were sent were of the Pharisees.
요 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And they asked him, and said unto him, Why baptizest thou then, if thou be not that Christ, nor Elias, neither that prophet?
요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John answered them, saying, I baptize with water: but there standeth one among you, whom ye know not;
요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He it is, who coming after me is preferred before me, whose shoe’s latchet I am not worthy to unloose.
요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These things were done in Bethabara beyond Jordan, where John was baptizing.

요한복음 1:28~34. “이 일은 … [베다바라]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니파이는 요한이 “요단 건너편 베다바라에서” 침례를 베풀 것이며, “참으로 그가 메시야에게 물로 침례를 줄 것이라”고(니파이전서 10:9) 예언했다.[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베다니”로 번역되어 있으나,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요한복음 1장 28절에는 “베다바라”로 나옴—옮긴이] 구주께서는 요단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 부근에서 침례를 받으신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역은 대략적으로 여호수아가 광야에서 유랑하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는 담수 지역이다.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이 장소가 띠는 상징성이 어떻게 구주의 사명과 우리 자신이 받는 침례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통찰하게 해 주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단 강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기 위해 선택하신 장소였습니다. … 이 성스러운 의식이 지구 상에서 사실상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담수에서 행해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그분이 내려갔다가 올라오신 낮은 위치의 심연을 상징하기 위해 그보다 더 좋은 장소를 선택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분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갔다가 모든 것 위로 오르시는 본보기를 보이심으로써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분명히, 그분이 받으신 침례의 방식에 따라 침례를 받는다면, 순종과 노력을 통해 우리도 심연에서 우리의 운명이라는 높은 고지로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요단 강은 성스러운 물줄기입니다. 요단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방랑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곳입니다. 나일 강둑에서 시작한 여행이 그곳까지 이어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약 60만 명의 장정과 그들의 가족들을 이끌고 홍수기에 소용돌이치는 그 강을 건너려 했을 때, 물길이 갑자기 멈추어 한 곳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충실한 이스라엘인들은 언약궤를 메고 물이 없는 강바닥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 참조)

 베다바라는 히브리어로 ‘건너는 집’을 의미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기 위해 이 장소를 택하신 것은 오래 전 그 충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지시에 따라 그 강을 건넌 것을 조용히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침례를 통해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건너가는 것을 상징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Why This Holy Land?” Dec. 1989, 15)

이 기사에서 우리는 상징적인 통찰을 더 이끌어 낼 수 있다. Joshua[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이며, 그리스어로는 Iēsous이고, 이후에 라틴어로 Iesus(나중에 Jesus[예수])가 되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넌 것은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받으실 것을 나타내는 예표, 또는 전조로 볼 수 있다.

흠정역 성경의 요한복음 1장 28절 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장 34절로 나온다.(경전 안내서 참조) 이 수정 내용은 요한복음 1장 29~34절에 묘사된 예수님의 침례가 베다바라에서 있었음을 명확히 밝혀 준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The next day John seeth Jesus coming unto him, and saith,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요한복음 1:29, 36. 하나님의 어린 양(또한 요한계시록 5:6~12 참조)

신약전서의 저자 중 요한이 유일하게 구주께 “어린 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불린 것은 두 차례이며(요한복음 1:29, 36), 또한 요한이 저술한 요한계시록에도 “어린 양”이라는 칭호가 20번 이상 나온다. (이 외에 신약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 양에 비유되는 것은 두 차례가 더 있다. 사도행전 8:32~35, 베드로전서 1:19 참조) 몰몬경에서 선지자 니파이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니파이전서 11~14; 니파이후서 31 참조)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속죄를 통해 희생에 대한 모세 율법을 성취하셨다며 이렇게 가르쳤다.

“구약에는 속죄에 대해 많은 관련 성구가 있는데, 그것은 동물의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아무 동물이나 바치지 않았으며 특별히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되었습니다.

• 양떼 중에 흠없는 첫 새끼를 선택하여[레위기 5:18; 27:26 참조]

• 그 피를 흘림으로써 그 동물의 생명을 바쳤고[레위기 9:18 참조]

•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죽였으며[출애굽기 12:46; 민수기 9:12 참조]

•한 동물이 다른 동물들을 대신해서 희생되었습니다.[레위기 16:10 참조]

그리스도의 속죄는 구약의 이 상징들을 실현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흠 없는 첫 번째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분의 희생은 피 흘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는데, 이것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두 강도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요한복음 19:31~33 참조] 그리고 그분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희생되었습니다.”(“속죄”,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35쪽) 

요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This is he of whom I said, After me cometh a man which is preferred before me: for he was before me.

 

요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And I knew him not: but that he should be made manifest to Israel, therefore am I come baptizing with water.

 

요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And John bare record, saying, I saw the Spirit descending from heaven like a dove, and it abode upon him.

 

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And I knew him not: but he that sent me to baptize with water, the same said unto me, Upon whom thou shalt see the Spirit descending, and remaining on him, the same is he which baptizeth with the Holy Ghost.

 

요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And I saw, and bare record that this is the Son of God.

 

요 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Again the next day after John stood, and two of his disciples;

요한복음 1:35~51. 예수께서 자신을 따를 제자들을 부르셨다

구주께서는 성역 초기에 안드레, 요한,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바돌로매로도 불림)을 제자로 부르셨다.(요한복음 1:35~51 참조) 이들 중 적어도 두 명, 즉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인 아마도 요한은 침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구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마자 그분을 따랐다.(요한복음 1:35~37 참조)

로버트 제이 매튜는 이렇게 적었다. “[침례] 요한은 공식적인 성역 동안 자신을 따르는 이들, 즉 자신을 ‘랍비’로(요한복음 3:26) 불렀던 제자들을 모아, 그들에게 금식하고(마태복음 9:14; 마가복음 2:18; 누가복음 5:33) 기도하도록(누가복음 11:1) 가르쳤다. 요한이 재촉하자 그의 제자 중 다수가 그를 떠나 예수님을 따랐으나 일부는 요한에게서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 … 처음에 요한을 따랐던 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예수님이 사도로 선택하신 열두 명 가운데 속하였다. 이들 중 한 명은 야고보의 형제인 요한이며, 또 한 사람은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이다.”(A Burning Light: The Life and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1972], 37–38)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 가르쳤는데, 특히 제자들이 부름을 받아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때 그들이 했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러분은 안드레와 아마도 요한이 처음으로 그리스도가 말씀하는 것을 들었을 때 너무 감동하고 예수님께 반하여 무리를 떠나 주님을 따랐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따라오고 있음을 느끼신 주님께서는 뒤돌아서 이 두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38] 다른 번역에는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 계시오니이까’, 다른 말로 하면 ‘어디에 사십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단지 ‘와서 보라’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9] 얼마 후 주님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동일한 권유를 하시며 그들을 공식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4:19]

우리 필멸의 삶의 본질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구주의 지상 성역의 시작이 된, 이 간단한 두 원리에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원리는 이 지상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어떤 답변을 하든지, 우리가 누구이든지, 우리가 어떤 응답을 하든지, 그분의 응답은 항상 같습니다. ‘[오라.]’ 그분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와서] 나를 따라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우선 와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라, 내가 어디에 어떻게 시간을 쓰는지 보라. 내게 배우라. 나와 함께 걷고, 나와 이야기하며, 믿으라.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네 기도에 응답받을지어다. 하나님이 네 마음에 쉼을 가져다주리니, 와서, 나를 따르라.”(“주리는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65쪽) 

요 1: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And looking upon Jesus as he walked, he saith, Behold the Lamb of God!
요 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And the two disciples heard him speak, and they followed Jesus.
요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Then Jesus turned, and saw them following, and saith unto them, What seek ye? They said unto him, Rabbi, (which is to say, being interpreted, Master,) where dwellest thou?
요 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He saith unto them, Come and see. They came and saw where he dwelt, and abode with him that day: for it was about the tenth hour.
요 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One of the two which heard John speak, and followed him, wa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요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He first findeth his own brother Simon, and saith unto him, We have found the Messias, which is, being interpreted, the Christ.

요한복음 1:41, 45.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비 헤이트(1906~2004) 장로는 구주께서 요한과 안드레를 만나셨던 때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 그분이 사시는 곳으로 갔으며, 얼마간 그분과 함께 지냈다.(요한복음 1:35~39 참조) 그런 후 헤이트 장로는 이 경전 기록이 진리에 대한 간증을 나누는 데 어떻게 영감이 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한과 안드레는 구주와 여러 시간을 함께 있었습니다. 그분의 면전에 있다고, 그분과 함께 앉아 그분의 눈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누구이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설명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젊은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그분의 손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의 고귀하고 훌륭한 성품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만남이 있은 후 기록은 안드레가 이 사실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했기 때문에 그의 형제 시몬을 찾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을 발견했을 때 그는 시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한복음 1:41) 아마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느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네, 그렇습니다. 안드레는 이것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을 나눌 때 하는 행동입니다.”(“감사와 봉사”,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87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신성한 진리에 대한 간증이 있는 사람이 그 간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복된 복음에 대한 간증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나눠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몰몬경은 우리가 ‘어느 때에나 무슨 일에나, [우리가] 있게 될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한다고 가르칩니다.(모사이야서 18:9)

간증의 은사와 그것을 나누는 책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교리와 성약 46편에 있습니다. 이 계시는 여러 종류의 영적인 은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알게 해 주느니라.

다른 이들에게는 그들의 말을 믿게 해 주나니, 이는 만일 그들이 계속하여 충실하면 그들도 또한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13~14절; 또한 요한복음 20:29 참조)

아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믿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그들의 증거를 나눌 명백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대중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해야 할 필요가 지금보다 더 절실했던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교리와 성약 60:2 참조) 어떤 사람들은 무신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진리에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구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사명과 회복의 실재성에 대해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에 대한 간증에 용감해야 합니다.”(“간증”,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27쪽) 

요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And he brought him to Jesus. And when Jesus beheld him, he said, Thou art Simon the son of Jona: thou shalt be called Cephas, which is by interpretation, A stone.

요한복음 1:42. 베드로가 선견자로 부름을 받았다

요한복음 1장 42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구주께서는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그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셨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그 이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네가 요나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선견자 또는 돌이니라.”(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42[경전 안내서])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구주께서 그때 베드로에게 주신 이름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교회에 선견자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장이 되어 왕국의 열쇠들을 온전히 행사해야 할 운명인 베드로는 선지자요 선견자이며 계시자가 되어야 했다. (교리와 성약 81:2) 나중에 이 부름을 받게 될 전조로서, 예수님은 수석 제자에게 게바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시는데, 그 이름은 선견자 또는 돌을 의미한다.

이 명칭은 곧이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음부의 권세가 계시의 반석, 다시 말해 선견자를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왕국의 열쇠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에 중요한 의미를 더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6:18) 선견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알도록 능력을 부여받는 특별히 선택된 선지자이다. ‘아무도 더 큰 은사를 가질 수 없나이다.’ (모사이야서 8:13~18)”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132–33) 

요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The day following Jesus would go forth into Galilee, and findeth Philip, and saith unto him, Follow me.

 

요 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Now Philip was of Bethsaida, the city of Andrew and Peter.

 

요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Philip findeth Nathanael, and saith unto him, We have found him, of whom Moses in the law, and the prophets, did write,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요한복음 1:45. 경전의 증언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에 관해 말하면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요한복음 1:45) 그 사람을 자신이 만났다고 말했다. 빌립과 그 밖의 제자들은 메시야의 징표에 대해 경전을 연구했기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서 율법은 모세오경을, 선지자는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스가랴 등의 예언서를 지칭했다. 이후에 예수께서는 성역을 베푸시면서 청중에게 경전, 즉 그 시대의 구약전서를 연구하라고 명하셨는데, 그 안에는 당신에 대한 증언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요한복음 5:39 참조) 

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And Nathanael said unto him, Can there any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Philip saith unto him, Come and see.

요한복음 1: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사렛은 대략 200에서 400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로, 갈릴리 바다 서쪽으로 약 24킬로미터, 지중해 동쪽으로 약 32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고고학적 유물로 유추해 볼 때, 그 마을에는 포장된 길이 전혀 없었으며 어떤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또는 경제적 활동이 일어나는 곳도 아니었다. 구주의 생애 동안 대체로 사람들은 나사렛을 하찮은 마을로 여겼지만, 이후 신약전서 시대에는 인류의 구속주의 고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사도행전 2:22; 3:6; 4:10; 6:14; 10:38 참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는 나다나엘의 질문은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나다나엘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제시했다.

“장님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 거지를 걷게 하고, 죽은 자까지 살리신 이가 나사렛에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변화시킨 기쁜 소식을 가르치셨습니다.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습니까?

나사렛에서 모범이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시력이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힘이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생명이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신앙이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평화가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용기가 왔습니다.

나사렛에서 그리스도가 왔습니다.”(“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성도의 벗, 1989년 4월호, 2~3, 6쪽)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Jesus saw Nathanael coming to him, and saith of him, Behold an Israelite indeed, in whom is no guile!

요한복음 1:47. 간사한 것이 없도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구주께서 나다나엘에 대해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요한복음 1:47) 하신 말씀을 언급하면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생각이나 행동에 기만이나 교활함이나 위선 및 부정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간사하게 속인다는 것은 기만하거나 루시퍼가 에덴 동산에서 이브를 속였듯이 탈선시키는 것입니다. 간사함이 없는 사람은 매일 온전한 의로움의 원리에 따라 생활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순수하고, 생각이 정직하며, 순수한 동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무리로 헤아림을 받을 사람들의 필수적인 미덕인 마음이 청결한 것입니다. …

우리가 간사함이 없다면 우리는 정직하고, 진실하고, 의롭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의 속성이며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들은 공평하며, 하는 말이 진실하며, 그 처사가 올바르고, 궤사가 없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이나 기만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

저는 교회 회원들에게서 간사함이 없어야 할 필요성은 다른 어느 때보다 지금 더욱 시급한 문제로 생각하는데, 이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미덕의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 때문입니다.”(“간사함이 없나니”, 성도의 벗, 1988년 7월호, 87~88쪽) 

요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Nathanael saith unto him, Whence knowest thou me?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Before that Philip called thee, when thou wast under the fig tree, I saw thee.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Nathanael answered and saith unto him, Rabbi, thou art the Son of God; thou art the King of Israel.

 

요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Because I said unto thee, I saw thee under the fig tree, believest thou? thou shalt see greater things than these.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And he saith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reafter ye shall see heaven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upon the Son of man.

요한복음 1:5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자이시다

“인자”라는 칭호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마태복음 8:20; 9:6; 10:23; 11:19; 12:8, 32, 40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8:20; 9:6; 10:23; 11:19; 12:8, 32, 40.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이다

“인자”라는 호칭은 사복음서에서 구주께서 스스로를 칭하실 때 즐겨 사용하신 용어로서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칭하면서 이 호칭을 80회 이상 사용하셨다. 마태복음 12장 8절 마가복음 8장 29~31절과 같은 성구는 이것이 메시야를 뜻하는 호칭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 왜 이 호칭을 사용하셨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 다니엘 7장 13절에는 “인자”가 오신다는 예언이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예언을 성취할 자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이 호칭을 사용하셨을 수도 있다.(마가복음 14:61~62 비교)

둘째, 모세서 6장 57절 7장 35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 하였을 때, 이는 아버지와 그와의 신성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었다.”(경전 안내서, “인자”)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은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를 유일한 분이며 최고로 승영에 이른 분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과 아들 예수는 영과 육체가 있으며 아버지의 모든 영의 자녀 중 장자이며 육신을 입은 독생자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그는 현재나 과거나 ‘거룩한 사람’ 곧 영원하신 아버지인 엘로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예수 그리스도, 148쪽)

셋째,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의도하신 한 가지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분이셨지만 지금은 승영하시어 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 여러분이 오늘 그분을 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분이 형상을 가진 인간처럼 보이며 여러분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007], 40쪽)

 

요한복음 소개

왜 요한복음을 공부하는가?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가 증가하고, 정치적 및 사회적 소요가 확산되며, 배도가 늘어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 점점 커지던 시기에, 사도 요한은 구주에 대한 개인적인 간증을 기록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그와 유사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요한이 기록한 구주의 생애와 가르침을 주의 깊게 공부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강화하며 그분을 따르고자 애쓸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면 세상의 반대되는 압력과 평판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확신을 키울 수 있다.(요한복음 14:6)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 복음서의 제목이 “요한복음”에서 “요한의 간증”으로 변경되어 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요한복음 제목 각주 참조—옮긴이] 따라서, 요한복음은 목격자가 자신이 눈으로 본 사건들을 직접 쓴 기록인 것이다.

 

요한복음은 누가 기록했는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명칭으로 언급된다.(요한복음 13:23; 19:26; 20:2; 21:7, 20 참조) 일찍이 2세기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이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요한이라는 데 동의했다. 후기의 계시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이 제자가 요한이었으며, 구주께서 요한이 재림 때까지 지상에서 계속 성역을 베풀도록 권한을 주셨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요한복음 21:20~22; 교리와 성약 7:1~6 참조) 요한복음에서는 이 책이 오늘날의 형태를 얻게 되기까지 복음서 저작 과정에서 서기관이나 편집자와 같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으리라는 점이 몇몇 암시를 통해 드러난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1장 24절에 나오는 우리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이 요한을 돕고 있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갈릴리 바다에서 아버지 세베대(마태복음 4:21 참조), 그리고 시몬 베드로(누가복음 5:10 참조)와 함께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전에 침례 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요한복음 1:35~40; 경전 안내서, “요한, 세베대의 아들”; scriptures.lds.org 참조) 요한은 베드로 및 야고보와 함께 “경륜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대에 … 제일회장단”으로 봉사했다.(데이비드 비 헤이트, “왕국의 열쇠”, 성도의 벗, 1981년 4월호, 123쪽) 따라서, 구주께서는 성역 중에 있었던 비교적 친밀한 자리에 요한과 자주 함께하셨다.(마태복음 17:1~13; 26:36~45; 마가복음 5:37~43 참조)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마가복음 16장 1절에 언급된 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자매이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요한이 친척이어서 특별히 구주의 사랑을 받았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요한복음은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주후 2세기의 초기 기독교 저자들은 요한이 소아시아(현대의 터키)에 있는 에베소에서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요한복음은 주후 60년에서 주후 10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요한은 계시록을 저술한 후에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이다.

 

요한복음은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요한은 “온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의 특별한 증인”(교리와 성약 107:23) 중 한 사람으로 사도의 부름을 받았기에, 그의 기록과 메시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특정 독자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렇게 적었다. “요한복음은 성도들을 위한 기록이다. 주로 교회를 위한, 즉 경전 말씀과 그 상징들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영적이며 영원한 것들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위한 복음서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1965–73], 1:65) 요한은 예수께서 하신 말과 행위들을 모두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리라는 것을 알았다.(요한복음 21:25) 그래서 그는 기록할 내용을 신중하게 선별했다.

주후 1세기 후반의 몇 십 년의 기간은 교회 내에서는 배도가, 외부에서는 반대가 늘어나던 때였는데, 그런 상황들은 당시에 살던 2세대 또는 3세대 기독교도의 신앙에 엄청난 도전이 되었다. 복음서에서 요한은 자신의 목적이 독자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임을 밝혔다.(요한복음 20:31) “[요한이] 묘사한 예수님 생애의 각 장면들은 바로 그 목적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되고 구성되었다. …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사실이 수많은 기적과 증언과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자신의 목소리로 증명되었음을 분명하게 확언했다.”(Bible Dictionary, “John, Gospel of”)

 

요한복음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요한복음에 있는 내용 중 약 92퍼센트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요한이 염두에 둔 독자층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미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교회 회원들로, 마태와 마가, 누가가 의도했던 독자층과 분명히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의 기적들은 이 복음서가 지닌 독특한 특징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예이다. 요한이 언급한 일곱 가지 기적 중 다섯 가지는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다.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베푸신 성역에 대해 상당히 많은 내용을 언급한 반면, 요한은 유대 지역에서 있었던 많은 사건들을 기록했다. 요한복음은 교리적으로 풍성하다. 이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께서 지니신 신성, 그리스도의 속죄, 영생, 성신, 믿음의 의미와 중요성을 주요 주제로 삼는다.

다른 어떤 복음서의 저자보다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니신 신성을 강조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언급하신 것을 100차례 이상 기록했으며, 요한복음 14장에만도 20차례 이상 언급되어 있다. 요한복음 21장을 제외한 요한복음의 모든 장에 하나님 아버지가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요한이 기여한 주요 공헌 중 하나는 구주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몇 시간 동안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 기록에는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고난을 겪으셨던 밤에 드린, 위대한 중보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 가르침에 대한 기록은(요한복음 13~17장) 요한복음의 전체 분량 중 18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구주의 교리와 그분이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 중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몇 가지가 실려 있다. 예를 들면, 말씀(요한복음 1:1~2 참조),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 1:29, 36 참조), 세상의 빛(요한복음 8:12; 9:5 참조), 선한 목자(요한복음 10:11, 14 참조) 등이다. 다른 어떤 복음서 저자보다도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에 대해 하신 간증과(요한복음 5:17~37; 8:23~59; 10:30~38; 16:27~28 참조) 자신이 구약의 여호와라고 하신 간증을(요한복음 4:26; 8:58 참조) 더 많이 기록했다.

 

개요

요한복음 1장

제자 요한이 침례 요한의 말을 인용했다.(교리와 성약 93:6~18 참조)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세에서 누리셨던 신성과 위대함을 증언하고,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밝혔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을 부르셨다.

요한복음 2~4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영적 거듭남에 관해 가르치시고 우물가의 여인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셨다. 또한 그분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다.

요한복음 5~7장

구주께서 베데스다 못에서 다리 저는 사람을 고치시고 자신의 신성한 권능과 권세를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생명의 떡에 대해 설교하셨다. 초막절에 그분은 자신이 메시야이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요한복음 8~10장

예수께서 음행 중에 잡혀온 여인의 경험을 통해 연민과 회개에 관해 가르치시고 온 인류를 심판하는 자신의 신성한 권리를 설명하셨다. 또한 그분은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셨고, 자신을 자기 양을 사랑하고 돌보며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선한 목자로 묘사하셨다.

요한복음 11~13장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는 권능을 증명하려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셨다. 예수께서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으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리도록 그들을 이끌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요한복음 14~16장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가르치셨다. 또한 그분은 제자들에게 보혜사(성신)를 보내어 개인적으로 성역을 베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자신은 참포도나무이며 자신이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7~19장

예수께서 위대한 중보 기도를 하고 배반당하여, 체포되고, 재판받고, 유죄 판결을 받으셨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겪은 후, 사망하여 매장되셨다.

요한복음 20~21장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산 무덤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후 예루살렘에 있는 몇몇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여드레 후에 그분은 제자들을 다시 방문하셨는데, 그 자리에는 도마도 있었다. 또 다른 날에는 갈릴리 바다에 있는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사람들에게 성역을 베풀라고 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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