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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요한 복음 21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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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의 순교와 요한이 변형될 것을 예언. Jesus appears to the disciples at the sea of Tiberias—He saith: ‘Feed my sheep’—He foretells Peter’s martyrdom and John’s translation.

요한복음 20~21장 소개 및 연대

요한복음 20장과 21장에는 구주께서 부활 후에 행하신 성역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무덤이 비어 있음을 발견한 일과 구주께서 그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리고 그 후에 열 명의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했다. 구주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라고 말했다.(요한복음 20:25) 여드레가 지난 후, 도마는 실제로 그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20:29) 또한, 요한은 구주께서 디베랴(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과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명하신 일을 기록했다.(요한복음 21:15~17) 요한은 이처럼 구주께서 나타나신 일들을 기록하는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요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After these things Jesus shewed himself again to the disciples at the sea of Tiberias; and on this wise shewed he himself.

요한복음 21:1~22. 구주께서 갈릴리에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향후에 갈릴리에서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태복음 28:10; 마가복음 16:7 참조) 요한은 구주께서 예루살렘에서 열한 명의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이후 어느 시점에, 베드로와 그 외 여섯 명의 사도가 갈릴리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 가서(요한은 디베랴 호수라고 칭했음) 물고기를 잡기로 했는데, 그 일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사도로 부르시기 전에 늘 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들이 해안에 가까이 이르자, 한 남자가 그들에게 그물을 어디로 던져야 하는지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사람이 구주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요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There were together Simon Peter, and Thomas called Didymus, and Nathanael of Cana in Galilee, and the sons of Zebedee, and two other of his disciples.
요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Simon Peter saith unto them, I go a fishing. They say unto him, We also go with thee. They went forth, and entered into a ship immediately; and that night they caught nothing.
요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But when the morning was now come, Jesus stood on the shore: but the disciples knew not that it was Jesus.
요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Then Jesus saith unto them, Children, have ye any meat? They answered him, No.

요한복음 21:5. 구주께서 제자들을 “얘들”이라고 부르셨다

구주께서는 사도들을 “얘들”이라고 부르셨다.(요한복음 21:5) “얘들[children]”에 대한 그리스어는 paidia이며, “유아” 또는 “매우 어린 아이들”을 의미한다.(또한 요한복음 4:49; 16:21 참조) 구주께서 이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사도들이 몇 년간 구주와 함께 지냈음에도 여전히 신앙 면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1832년에 주님께서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 외 회복된 교회의 초기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린아이들이라. 아버지께서 자기 손에 가지고 계시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아직은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고, 지금은 너희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도다. 그러할지라도, 담대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음이라.”(교리와 성약 78:17~18

요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And he said unto them, Cast the net on the right side of the ship, and ye shall find. They cast therefore, and now they were not able to draw it for the multitude of fishes.

 

요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Therefore that disciple whom Jesus loved saith unto Peter, It is the Lord. Now when Simon Peter heard that it was the Lord, he girt his fisher’s coat unto him, (for he was naked,) and did cast himself into the sea.

요한복음 21:7. 시몬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는 동안 정말로 “벗고 있[었는가?]”

흠정역에서 “벗고 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항상 “나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가볍게 입은 상태” 또는 “겉옷을 입지 않은 상태”를 의미할 수 있다. 주님을 알아본 베드로는 급히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다.]”(요한복음 21:7) 이 상세한 묘사는 베드로가 구주와 함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드러낸다. 

요 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And the other disciples came in a little ship; (for they were not far from land, but as it were two hundred cubits,) dragging the net with fishes.

 

요 21: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As soon then as they were come to land, they saw a fire of coals there, and fish laid thereon, and bread.

 

요 21: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Jesus saith unto them, Bring of the fish which ye have now caught.

 

요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Simon Peter went up, and drew the net to land full of great fishes, an hundred and fifty and three: and for all there were so many, yet was not the net broken.

 

요 2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Jesus saith unto them, Come and dine. And none of the disciples durst ask him, Who art thou? knowing that it was the Lord.

 

요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Jesus then cometh, and taketh bread, and giveth them, and fish likewise.

 

요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This is now the third time that Jesus shewed himself to his disciples, after that he was risen from the dead.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So when they had dined, Jesus saith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He saith unto him, Yea, Lord;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He saith unto him, Feed my lambs.

요한복음 21:15.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마태복음 22:36~38)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언급하며 충실하게 구주를 사랑하도록 격려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반갑게 재회한 베드로는 주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이 대화가 전반적인 사도의 성역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분명히 베드로 개인에게도, 위대한 반석이라 불린 그가 헌신적인 봉사와 지도력을 발휘하여 장엄한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작고 낡은 배, 너덜너덜해진 그물,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153마리의 물고기 더미를 보시며 선임 사도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 모두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5]

그 대답을 들으신 구주께서는 베드로의 눈을 계속 응시하시며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분명히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것에 조금 당황스러웠을 이 위대한 어부는 두 번째로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6]

구주께서는 이에 대한 짧은 응답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응시하시며 세 번째로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제 베드로는 분명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마음에는 불과 며칠 전에 받았던 세 차례의 다른 질문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단호하게, 하지만 부정적인 답변을 했었습니다. 또는 아마도 자신이 선생님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너무 쉽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그 대답에 대해 정말로 솔직하게 확신하고 있는지를 마음속으로 탐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베드로는 세 번째로 대답합니다. ‘주님 …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7]

그 말에 주님은(여기서 다시, 경전에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제가 고심한 것을 덧붙이자면) 아마도 이렇게 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왜 우리가 이 똑같은 해변에서, 같은 그물을 곁에 두고, 똑같은 대화를 하고 있느냐?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물고기를 원한다면 내가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으냐? 베드로야, 내가 필요한 것은 제자들이며, 나는 그들이 영원토록 필요하니라. 나는 내 양을 먹이고 구원할 사람이 필요하니라. 나의 복음을 전파하고 나의 신앙을 수호할 사람이 필요하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 진실로,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 자,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도록 맡기신 그 일을 사랑하는 자가 필요하니라.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심판의 날에 우리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날 어느 시점에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네가 나를 사랑했느냐?’는 질문을 우리에게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필멸의 삶을 살면서 아주 미숙하고 때로는 사물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이해력 속에서도 최소한 모든 계명 중의 한 가지 계명, 곧 첫째 되는 가장 큰 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누가복음 10:27; 마태복음 22:37~38] 이해했는지를 알고 싶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 순간에 우리가 더듬거리며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때 그분께서는 사랑의 궁극적인 특성이란 바로 변함없는 충실함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 우리 주위에는 축복해야 할 이웃과 보호해야 할 자녀, 구제해야 할 궁핍한 사람들과 수호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잡아야 할 잘못, 나눠야 할 진리, 행해야 할 선한 일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일에서 헌신적인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념할 수 없으며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마주한 후에는 그 어떤 것도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크고 첫째 되는 계명”, 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84~85쪽) 

요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He saith to him again the second time,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He saith unto him, Yea, Lord;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He saith unto him, Feed my sheep.

요한복음 21:15~17. “내 어린 양을 먹이라”와 “내 양을 먹이라”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장로는 그리스어 원문을 이해하면 구주께서 베드로와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을 어떻게 더 깊이 알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먹이다’, 즉 feed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bosko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기르다 또는 가축에게 풀을 뜯기다’라는 의미입니다. 한편 ‘어린 양’, 즉 lamb이라는 단어는 arnion의 작은 말로서, ‘작은 어린 양’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 21장 16절]에서 치다[feed]라는 말은 poimaino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양을 치다, 보살피다, 혹은 돌보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경우 양[sheep]이란 어휘는 arnion, 즉 ‘성숙한 양’을 의미합니다. …

[요한복음 21장 17절]에서 먹이다[feed]는 다시 그리스어 bosko에서 비롯되었으며, 영양분 공급을 뜻합니다. ‘양’이란 단어 sheep은 역시 그리스어 probaton에서 유래되었고, ‘어른 양’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성구는 영어로는 매우 유사하게 보이지만 그리스어로 볼 때, 사실상 서로 구별되는 세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작은 어린 양은 자라기 위해 영양분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 양은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 양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목자, 양, 그리고 가정 복음 교사”, 리아호나, 1999년 4월호, 44~45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마빈 제이 애쉬튼(1915~1994) 장로는 주님께서 자신의 양을 먹이라고 하신 계명을 우리가 어떻게 이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16) 그들이 있는 곳을 모르면 그들을 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거부하도록 원인을 제공한다면 그들을 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양식이 없으면 그들을 먹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들을 기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기꺼이 일하고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들을 기를 수 없습니다. …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연령 계층에든지 다 있습니다. 주님의 양 가운데는 어리고, 외롭고, 길 잃은 양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치고, 고난받고, 나이 들어 쇠약해져 있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우리 가족 안에 또는 우리 이웃에도 있으며, 또 금식 헌금으로 도와줄 수 있는 먼 나라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과 관심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양들이 우리를 거부하도록 원인을 제공한다면, 그들을 돌보기가 설령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렵게 됩니다. 빈정거림이나 조롱으로는 아무도 가르치거나 도울 수 없습니다. 독재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적인 태도는 방황하는 양들을 먹이려는 온갖 노력을 수포로 돌릴 것입니다. 저항의 벽이 세워지면, 아무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랑의 표현은 공허한 것입니다. 주님의 모든 양들은 목자의 관심 어린 손길이 필요합니다.”(“품위있게 받아들이도록 지혜롭게 줍시다”, 성도의 벗, 1982년 4월호, 136~137쪽)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He saith unto him the third time,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Peter was grieved because he said unto him the third time, Lovest thou me? And he said unto him, Lord, thou knowest all things;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Jesus saith unto him, Feed my sheep.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When thou wast young, thou girdedst thyself, and walkedst whither thou wouldest: but when thou shalt be old, thou shalt stretch forth thy hands, and another shall gird thee, and carry thee whither thou wouldest not.

요한복음 21:18~19. 베드로는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일반적으로 베드로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도를 박해하던 시기인 주후 64년 또는 65년경에 로마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여겨진다.(Bible Dictionary, “Peter” 참조) 베드로는 주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기에는 자신이 합당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다고 전해진다. 베드로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는가에 관계없이, 베드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는 구주의 예언은 확실히 성취되었다.(요한복음 21:19) 삶과 죽음 모두에서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신 다음 권유에 대한, 제자 됨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34; 또한 마가복음 8:34~38 주해 참조)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This spake he, signifying by what death he should glorify God. And when he had spoken this, he saith unto him, Follow me.
요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Then Peter, turning about, seeth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following; which also leaned on his breast at supper, and said, Lord, which is he that betrayeth thee?

요한복음 21:20~22. “네게 무슨 상관이냐”

구주로부터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들은 베드로가(요한복음 21:18~19 참조) 요한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여쭈었다.(요한복음 21:21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이 질문을 인용하면서, 우리 삶의 환경을 주님께서 다른 이들에게 주신 환경과 비교하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르게 주시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요한이 장차 맡을 일에 대해 물어보자, 예수님은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22) 형제 자매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너무 많이 비교하면서도 주님을 따르는 일에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선택하신 것을 원망하며, 자기가 무시당한 것이라 여겨 영성을 잃게 됩니다.”(“내게 대답하라”,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35쪽) 

요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Peter seeing him saith to Jesus, Lord, and what shall this man do?
요 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Jesus saith unto him, If I will that he tarry till I come, what is that to thee? follow thou me.

요한복음 21:22~23. “내가 올 때까지 … 머물게”

구주께서는 지상 성역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셨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태복음 16:28)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그 예언을 성취하여 자신이 다시 올 때까지 지상에 “머물게” 될 사람이라고 예언하셨다.(요한복음 21:22~23 참조) 구주와 베드로, 요한 사이에 있었던 이 대화의 전체 내용은 교리와 성약 7편에 실려 있다. 이 7편은 “요한이 양피지에 기록하고 직접 감춘 기록의 번역문”이다.(교리와 성약 7편, 머리말) 이 계시는 요한이 구주께 “죽음을 이길 힘을 내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살아서 영혼들을 당신에게 데려올 수 있게 하시옵소서”라고 간청했으며, 그에 응하여 구주께서 자신이 재림할 때까지 요한이 살아 있도록 힘을 부여해 주셨음을 분명하게 밝혀 준다.(교리와 성약 7:1~3 참조) 그렇게 해서 요한은 “변화된” 존재가 되었다. 그러한 존재는 “불멸의 부활 때까지 고통이나 사망을 경험하지 않도록 변화된 사람”이다.(경전 안내서, “변화된 존재”; scriptures.lds.org) 변화된 존재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제3니파이 28장 4~40절을 참조한다. 여기에서는 세 명의 니파이인 제자들이 요한과 같은 동일한 변화를 겪었음을 알려 준다.(제3니파이 28:6 참조) 

요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Then went this saying abroad among the brethren, that that disciple should not die: yet Jesus said not unto him, He shall not die; but, If I will that he tarry till I come, what is that to thee?
요 21: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This is the disciple which testifieth of these things, and wrote these things: and we know that his testimony is true.

요한복음 21:24~25.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요한복음 21장 24절에 나오는 대명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요한복음의 원본 작성에 도움을 주었거나 이후에 이 복음서에 자신들의 간증을 덧붙였음을 암시한다. 전문 필기사들이 온갖 고대 문서의 저작 및 보존에 도움을 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저자와 필기사에 따라 다양했다. 원저자가 구술하면 필기사가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받아 적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가 작품을 다듬고 펴내도록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필기사가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요점을 적은 후, 자신의 말로 글을 쓴 뒤에 화자에게 제출하여 승인을 받기도 했다. 요한복음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필기사들이 어느 단계에서 도움을 주었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애초에 기록한 분명한 간증은 바뀌지 않는다. 

요 21: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And there are also many other things which Jesus did, the which, if they should be written every one, I suppose that even the world itself could not contain the books that should be written.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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