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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요한 복음 17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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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그리스도의 기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Jesus offers the great intercessory prayer—He is glorified by gaining eternal life—He prays for his apostles and all the saints—How the Father and Son are one.

요한복음 17~19장 소개 및 연대

요한복음 17~19장에는 속죄를 이루는 사건들에 대한 요한의 기록이 담겨 있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구주의 기도는 중보 기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기도에서 구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재하셨으며, 하나님 아버지께 사도들과, 우리를 포함해서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셨다. 중보 기도에 이어, 18~19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 재판, 십자가에 못 박히심, 매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고난을 겪으신 목적에 관한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이들이 보호받고, 기뻐하며, 성결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그리고 서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속죄[Atonement](at-one-ment)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하나가 되게 하다”, 즉 화해시킨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8~19장에 설명되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지도록 하기 위해 고난을 겪으셨다.

여러분은 이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대해 공부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주해는 요한복음에만 유일하게 나오거나 강조된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요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These words spake Jesus, and lifted up his eyes to heaven, and said, Father, the hour is come; glorify thy Son, that thy Son also may glorify thee:

요한복음 17장. 중보 기도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던 구주의 기도나 고난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요한은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에 관련 내용을 덧붙이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는 방향으로 기록을 남겼다. 요한복음 17장에만 기록되어 있는 구주의 중보 기도는 속죄의 목적에 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보 기도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주님이 그의 제자들의 유익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중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기도를 인용하는 동안 세상의 구주께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사오니]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요한복음 17:1, 4, 8~9]

주님의 이 기도에서 우리는 그분이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서 중재자요 변호인으로서의 책임을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주기도문에서 배우는 교훈”,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47쪽)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As thou hast given him power over all flesh, that he should give eternal life to as many as thou hast given him.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life eternal, that they might know thee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thou hast sent.

요한복음 17:3.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듭 가르친다.(예레미야 31:31~34; 호세아 4:6; 앨마서 22:18; 교리와 성약 132:23~24 참조) 이것은 특히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는 주제로,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드러내시기 위해 지상에 오셨음을 증거한다.(요한복음 1:18; 14:6~11; 16:25; 또한 요한복음 14:7~11; 16:25 참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이 존재하심을 믿거나 그분에 대해 지식적으로 아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생활함으로써 그분과 친숙한 사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그분을 아는 것 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별개이다. 그분이 인격을 가진 존재이며 그분의 형상에 따라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배울 때, 그분의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배울 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모두 특정한 속성과 권능이 있으시다는 것을 배울 때, 우리는 그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들이 하시는 같은 일들을 기뻐하고 경험할 때, 우리는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그분들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그분이 느끼시는 것을 느끼고, 그분이 지니신 권능을 지니고, 그분이 이해하시는 진리들을 깨달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며, 그분의 삶과 같은 삶, 즉 영생을 누리게 된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1965–73], 1:762) 

요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I have glorified thee on the earth: I have finished the work which thou gavest me to do.

요한복음 17:4~8. 구주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음을 보고하셨다

구주께서는 중보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이 지상 사명을 순종적으로 완수했다고 말씀드렸다.(요한복음 17:4~5 참조)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었다.(아브라함서 3:24) 그분은 그때 영광과 주권을 누리셨으며, 그런 후 하나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이 지구와 더불어 무수히 많은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주가 되셨다. (모세서 1:31~33) 정해진 시간이 되자 그분은 자신의 구원과 온 인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할 속죄를 이루기 위해 특별히 지정된 이 지상으로 오셨다.

속죄 희생이 이미 이루어진 듯이 말씀하는 이 기도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아들이 맡은 일을 다했음을 증언하고 그 결과로서 자신이 지녔었던 위엄과 영예의 상태가 다시 주어지기를 간구하셨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762)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And now, O Father, glorify thou me with thine own self with the glory which I had with thee before the world was.
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I have manifested thy name unto the men which thou gavest me out of the world: thine they were, and thou gavest them me; and they have kept thy word.
요 17: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Now they have known that all things whatsoever thou hast given me are of thee.
요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For I have given unto them the words which thou gavest me; and they have received them, and have known surely that I came out from thee, and they have believed that thou didst send me.
요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I pray for them: I pray not for the world, but for them which thou hast given me; for they are thine.

요한복음 17:9~10.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정결하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니파이인들 가운데 계시는 동안 요한복음 17장 9~10절에 기록된 것과 유사한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여, 저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내가 택한 자들을 정결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내가 저들과 또한 저들의 말을 믿을 자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그들도 저들이 내 안에서 정결하게 된 것같이 저들의 말을 믿는 신앙을 통하여 내 안에서 정결하게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여,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그 신앙으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오니, 그들로 내 안에서 정결하게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같이,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시옵고,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사, 나로 그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시옵소서.”(제3니파이 19:28~29

요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And all mine are thine, and thine are mine; and I am glorified in them.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And now I am no more in the world, but these are in the world, and I come to thee. Holy Father, keep through thine own name those whom thou hast given me,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요한복음 17:11, 20~23.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구주께서는 이 기도를 하시기 훨씬 전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0:30) 이 중보 기도는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구주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따르는 이들도 “우리와 같이 …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7:11; 기울임체 추가; 또한 21~23 참조)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요한복음 17:20)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간에 존재하는 하나됨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경험할 수 있다.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며, 그분들은 우리가 자신들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신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분들은 뚜렷이 구별된 개체이나, 목적과 하시는 일에서 하나가 되십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과 승영을 위한 위대하고 신성한 계획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 사이의 완전한 결합으로 이 세 분이 거룩한 신회의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아버지와 아들과 성신”, 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67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는 하나님 아버지 및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과정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처럼 온전히 하나가 되도록 권유받았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요? …

예수님은 그분의 육과 영 모두를 아버지의 뜻에 맡기심으로써 아버지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항상[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느니라.]’(요한복음 8:29)

우리가 두 분의 뜻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기 전에는 하나님 및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유순해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꺼이 하려 할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수 있게 될 때까지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두려워집니다. 그러나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려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와 구속주로서 존경하고 경배하는 거룩한 분들과 하나가 되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점에 대해 뭐라고 감사의 말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리아호나, 2002년 11월호, 71~73쪽) 

요 17: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While I was with them in the world, I kept them in thy name: those that thou gavest me I have kept, and none of them is lost, but the son of perdition; that the scripture might be fulfilled.

요한복음 17:12. “멸망의 자식”

“멸망[perdition]”으로 번역된 그리스어(apōleia)는 잃었거나 파멸된 존재의 상태를 가리킨다. 신약전서의 다른 곳에서는 apōleia가 “멸망[destruction]”(마태복음 7:13; 로마서 9:22), “허비[waste]”(마태복음 26:8; 마가복음 14:4), “멸망[damnation]”(베드로후서 2:3)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용어들은 가룟 유다에게 적절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가룟 유다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신성한 계획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기도를 듣고, 병자를 고치시는 모습을 보고 그분의 손길을 느꼈던 특별한 증인 중 한 사람이, 고작 은 삼십에 그분을 배반할 수 있었음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세계 역사상, 그만한 푼돈으로 그처럼 큰 오명을 산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유다의 운명을 심판할 자격은 없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6:24]”(“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86~87쪽)

조셉 에프 스미스(1838~1918) 회장은 유다가 멸망의 자식인가의 여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면서, 교리와 성약 76편 31~37, 43절을 먼저 언급했는데, 여기에는 멸망의 자식이 되려면 어떠한 지식을 얻은 후에 그것을 부인해야만 하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유다가 이 모든 지식을 받았으며, 이 위대한 진리들이 그에게 계시되었고, 그가 하나님의 은사로 성령을 받았으니, 그런 까닭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간주할 만한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생각건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당시 제자 중 어느 누구도 승영이든 정죄에 대해서든 충분한 빛이나 지식, 지혜를 지녔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이 열려 경전 말씀을 이해하고,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부여받은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권능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아는 지식은 이후 영의 영향력을 받아 알게 된 지식에 비해 어린아이의 수준에 불과했다.”(Gospel Doctrine, 5th ed. [1939], 433) 

요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And now come I to thee; and these things I speak in the world, that they might have my joy fulfilled in themselves.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I have given them thy word; and the world hath hated them, because they are not of the world, even as I am not of the world.

요한복음 17:11, 14~16. 구주를 따르는 이들은 “세상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한다

구주께서는 중보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의 제자들이 “세상에” 있되(요한복음 17:11)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요한복음 17:14) 말씀하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이 각각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암시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교회에서 우리는 종종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듣습니다. …

우리는 이 말을 두 가지 권고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세상에 살되’, 참여하십시오. 지식을 넓히십시오. 이해심 있게 아량을 베풀며 다양성을 감사하십시오. 봉사와 참여를 통해 사회에 의미 있는 공헌을 하십시오. 둘째, ‘세상에 속하지 말라.’ 그릇된 길을 따르지 말며 옳지 못한 일을 수락하지 마십시오. …

세상이 온통 사악하다 할지라도, 우리 주위에 악이 둘러싸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 세상에서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 누룩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33) 우리는 이 세상을 개선시켜야 하며 모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악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5)

교회의 회원들인 우리는 영향을 받기보다는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악의 조류에 수동적으로 휩쓸리기보다는 그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문제점을 피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해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텔레비전의 영향력”,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98~99쪽)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I pray not that thou shouldest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thou shouldest keep them from the evil.
요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They are not of the world, even as I am not of the world.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교회에서 우리는 종종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신성 모독과 폭력과 배신을 일상적인 일이며, 심지어 멋있는 일처럼 보이게 하는 텔레비전 쇼를 볼 때, 우리는 종종 어떤 방법으로든 이 세상과 차단되어 우리 가족들을 이러한 것으로부터 격리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합니다ㆍㆍ

“앞에서 인용했던 말씀, 즉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요 17:14)를 두 문장으로 된 별도의 훈계로서 구분하여 말씀드립니다. 첫째, ‘세상에 살되’ 참여하십시오. 지식을 넓히십시오.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십시오. 사회에 봉사하고 참여함으로서 뜻 깊은 공헌을 하십시오. 둘째, ‘세상에 속하지 말라.’ 그릇된 길을 따르지 마십시오. 자신을 합리화하여 옳지 못한 것에 순응하거나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 혐오감을 주거나 품위를 저하시키는 것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사회가 타락하여 부도덕한 곳으로 빠지려는 경향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이 온통 사악하다 할지라도, 우리 주위에 악이 둘러싸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 세상에서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ㆍㆍ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개선시켜야 하며, 모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악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세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대회 보고, 1989년 4월, 101쪽;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98~99쪽)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Sanctify them through thy truth: thy word is truth.

요한복음 17:17, 19.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거룩하게 [한다](sanctify)”라는 것은 신성하고 정결하게 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는 거룩한 삶을 사셨으며, 그런 후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어 우리가 그분을 따를 경우 거룩하게, 즉 성결하게 되도록 하셨다. 성결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순수하고, 깨끗하며, 거룩하게 되는 과정”이다.(경전 안내서, “성결하게 됨”; scriptures.lds.org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As thou hast sent me into the world, even so have I also sent them into the world.
요 17: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And for their sakes I sanctify myself, that they also might be sanctified through the truth.
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Neither pray I for these alone, but for them also which shall believe on me through their word;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That they all may be one; as thou, Father, art in me, and I in thee, that they also may be one in us: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thou hast sent me.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And the glory which thou gavest me I have given them; that they may be one, even as we are one: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및 성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다. “그분들은 독특한 개체이나, 그분들은 목적과 하는 일에서 하나가 되십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과 승영을 위한 위대하고 신성한 계획을 이루는 데 있어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ㆍㆍ이것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 사이의 완전한 결합으로 이 세 분이 거룩한 신회의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대회 보고, 1986년 10월, 69쪽; 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67쪽

요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I in them, and thou in me, that they may be made perfect in one; and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thou hast sent me, and hast loved them, as thou hast loved me.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Father, I will that they also, whom thou hast given me, be with me where I am; that they may behold my glory, which thou hast given me: for thou lovedst me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요 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O righteous Father, the world hath not known thee: but I have known thee, and these have known that thou hast sent me.

 

요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And I have declared unto them thy name, and will declare it: that the love wherewith thou hast loved me may be in them, and I in them.

요한복음 17:26.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중보 기도를 마치면서 모든 시대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간구하셨다. 칠십인 회장단에서 봉사하던 존 에이치 그로버그 장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의 삶에 임하는 축복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행하거나 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행하고, 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두려움을 없애고, 거리낌 없이 용서하고, 논쟁을 피하고, 힘을 새롭게 하며, 자신에게조차도 놀라운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잔인함, 그리고 부당함을 견디어 내셨듯이, 깊은 사랑으로 가득 차 계십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그분은 다른 방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셨습니다. 그분의 사랑 앞에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고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취하여, 우리도 이 세상의 고통과 잔인함, 그리고 부당함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용서하고 축복하라고 권유하십니다.”(“하나님이 지니신 사랑의 힘”,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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