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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요한 복음 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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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가나에서 물을 술로 만듬.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깨끗케 하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심. Jesus turns water into wine in Cana—He attends the passover, cleanses the temple, foretells his death and resurrection, and performs miracles.

요한복음 2~4장 소개 및 연대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화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지상에 사는 우리가 영원한 삶을 상속하기에 알맞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갈고 닦아 줍니다.”(“큰 계명”,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29쪽) 신약 시대 사람들은 구주의 말씀을 듣거나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면서,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그분의 능력을 감지했다. 구주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고(요한복음 2:1~11 참조) 성전을 깨끗이 하여 성전이 “아버지의 집”으로 존중받게 하셨으며(요한복음 2:16) “죽게” 된 왕의 신하의 아들에 대해 단순히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요한복음 4:47, 50) 그를 낫게 하셨다. 또한 구주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영적으로 거듭나라고 권유하셨으며(요한복음 3:1~21 참조), 야곱의 우물가에서는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알아보도록 사마리아 여인의 이해력을 키워 주셨다.(요한복음 4:5~29 참조) 

요 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And the third day there was a marriage in Cana of Galilee; and the mother of Jesus was there:

요한복음 2:1~11.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

요한복음 2장 1~11절에는 구주의 지상 성역에 있었던 기록상의 첫 번째 기적,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 기적의 의미나 상징에 관한 설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적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에 참석하신 것은 그분이 은둔 생활을 하는 분이 아니셨음을 보여 준다. 그분은 평범하게 생활하며 그 시대의 사람들과 교류하셨다. 예수께서 혼례에 참석하신 것은 그분이 결혼 관계를 인정하셨음을 보여 준다. 또한, 우리는 그분이 모친의 요구에 응하시는 모습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마땅히 보여야 할 존중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구주께서는 기록상의 이 첫 기적에서 성분을 다른 상태로 바꾸는 능력을 드러내셨으며, 그렇게 하여 창조주라는 자신의 역할을 증명하셨다.(Bruce R. McConkie,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1965–73], 1:135–36 참조)

구주께서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신 일은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육에 속한, 타락한 상태에서 의로움의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모사이야서 3:19 참조)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기적적인 표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키워 주고 굳건히 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교리와 성약 63:9~11 참조)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거기에는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가 “그를 믿는 제자들의 신앙이 강화되었느니라”로 수정되어 있다.(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2:11)

가나의 혼례에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있었다.(요한복음 2:6)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돌로 만든 그릇은 의례적인 청결을 지속적으로 유지했으나 도자기로 만든 그릇은 의례적으로 불결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한 “통”은 약 34리터였으므로, 여섯 항아리에는 약 380에서 600리터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 

요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And both Jesus was called, and his disciples, to the marriage.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And when they wanted wine, the mother of Jesus saith unto him, They have no wine.
요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Jesus saith unto her, Woman, what have I to do with thee? mine hour is not yet come.

요한복음 2:4.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흠정역의 표현대로라면 구주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이신 반응이 퉁명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과 그리스어판에는 그분이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대답하셨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사용한 ‘여자여’라는 호칭은 불경스럽기까지 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귀에 다소 거슬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정반대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통을 당하셨던 지상 생활의 최후의 두려운 순간에 울고 있는 마리아 즉 그의 어머니를 내려다 보시며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보살핌을 받도록] 부탁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한복음 19:26] 이와 같은 최후의 순간에 곧 죽음으로 헤어져야 할 어머니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영예와 친절과 사랑 이외의 어떤 감정에 차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 149~150쪽)

또한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을 보면, 예수께서 단지 어머니에게 자신에게 시킬 일이 무엇인지 여쭈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겠다는 의지도 표현하셨음을 알 수 있다. “여자여, 저에게 시키실 일이 무엇이오니이까? 그 일을 제가 하겠사오니.”(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2:4)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를 의미했다. 구주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신 말씀은, 비록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요한복음 2:4) 이제 자신이 바야흐로 마리아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을 성취하려는 과도기에 있음을 어머니에게 전한, 섬세하고 애정 어린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요 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His mother saith unto the servants, Whatsoever he saith unto you, do it.
요 2: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And there were set there six waterpots of stone, after the manner of the purifying of the Jews, containing two or three firkins apiece.

 

요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Jesus saith unto them, Fill the waterpots with water. And they filled them up to the brim.

 

요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And he saith unto them, Draw out now, and bear unto the governor of the feast. And they bare it.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When the ruler of the feast had tasted the water that was made wine, and knew not whence it was: (but the servants which drew the water knew;) the governor of the feast called the bridegroom,

 

요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And saith unto him, Every man at the beginning doth set forth good wine; and when men have well drunk, then that which is worse: but thou hast kept the good wine until now.

요한복음 2:1~11. “좋은 포도주”

성경에는 술에 취하는 것과 독한 음료의 해악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예를 들어, 잠언 23:20~21; 이사야 5:11~12; 에베소서 5:18 참조) 이들 성구에서는 알코올 섭취를 특별히 금하지는 않으나, 과음과 술에 취하는 상태를 비난하는 내용은 나온다. 우리 시대에 주님께서는 지혜의 말씀을 계시해 주셨으며, 그 계시에서는 알코올 음료 섭취를 금한다.(교리와 성약 89:4~7 참조)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시대에 주신 계명으로 과거 경륜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This beginning of miracles did Jesus in Cana of Galilee, and manifested forth his glory; and his disciples believed on him.
요 2: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After this he went down to Capernaum, he, and his mother, and his brethren, and his disciples: and they continued there not many days.

 

요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And the Jews’ passover was at hand, and Jesus went up to Jerusalem,

요한복음 2:13~22.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공관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지상 성역 마지막 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고 나온다.(마태복음 21:12~16; 마가복음 11:15~18; 누가복음 19:45~48 참조) 요한복음 2장 13~22절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것과 같은 사건일 수도 있으며, 정말 그렇다면 요한은 그 사건을 자신의 복음서 초반에 싣기로 계획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이 마지막 주뿐만 아니라 성역 초기에도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적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요한의 기록이 다른 복음서들과 보이는 이러한 차이점은, 아마도 [예수님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일은 두 차례가 있었을 것이며, 또한 두 번째로 성전을 깨끗이 하셨을 때 격분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마가복음 11:18; 누가복음 19:47; Bruce R. McConkie,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636 참조)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And found in the temple those that sold oxen and sheep and doves, and the changers of money sitting: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And when he had made a scourge of small cords, he drove them all out of the temple, and the sheep, and the oxen; and poured out the changers’ money, and overthrew the tables;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And said unto them that sold doves, Take these things hence; make not my Father’s house an house of merchandise.

요한복음 2:16. 주님의 집은 거룩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성전에 들어가신 구주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황소 외양간, 양 우리, 비둘기 새장” 등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환전하는 사람들이 펼쳐 놓은 상이 사방에 가득했는데, 그들은 희생 동물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로마 동전과 기타 동전을 성전 동전으로 바꾸어 주는 일을 하며 이윤을 챙겼다.”(Bruce R. McConkie,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137–38)

구주께서 성전 주위의 불경과 세속적인 상태를 깨끗이 하고자 보이셨던 결연한 행동에 대해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돈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 시대에 많은 유대인의 마음을 변질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이득을 얻는 데 더욱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왜 그분의 성전에 관심을 가져야 했겠습니까? 그들은 성전 뜰을 시장으로 타락시켰고, 신앙 깊은 사람들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탐욕스러운 돈 바꾸는 사람들의 흥정 소리와 양이 우는 소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게 하실 때처럼 격렬한 감정을 노출시키신 적은 없습니다. …

이같이 격렬한 행동을 보이게 된 이유는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세 단어에 들어 있습니다. 이 집은 보통 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이 집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 집은 경건한 자들의 집이었습니다. 이 집은 인간의 근심과 걱정을 위로해 주는 위로의 집이며 천국의 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6) 가장 높으신 이에 대한 그분의 헌신은 그분의 영혼에서 불을 밝혔으며 그분의 말씀은 칼과 같이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는 힘이 있었습니다.”(“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79쪽)

구주께서 성전을 신성하게 대하신 태도를 본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주님의 집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은 성전 추천서를 받기 위해 감독과 스테이크 회장과 접견을 하게 됩니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그들과 이야기하십시오. 그 접견은 통과 시험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거룩한 의식을 받고 주님의 집에서 제공되는 교화적인 성약을 받고 지키기에 합당한 성숙도와 영성이 여러분에게 있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개인의 합당성은 성전 축복을 누리는 데에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합당하지 않게 성전에 들어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성전 축복을 받음”,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29쪽)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And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it was written, The zeal of thine house hath eaten me up.

요한복음 2:17. “제자들이 … 기억하더라”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자, 제자들은 시편 69편 9절에 기록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라는 예언을 떠올렸다.(요한복음 2:17) 이 구절은 예수께서 성전이 장사하는 집으로 사용되는 불의에 분노하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집을 “열심”, 즉 열렬히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음을 알려 준다. 

요 2: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Then answered the Jews and said unto him, What sign shewest thou unto us, seeing that thou doest these things?

요한복음 2:18~21.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구주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보내시자, 몇몇 유대인 지도자들은 성전의 신성을 더럽히는 사람들을 그분 아버지의 집에서 내쫓을 권능이 있음을 표적으로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했다. 구주께서 하신 대답은 실제의 성전을 의미하는 듯 비쳐졌으나,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구주께서 사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그것을 되찾을 권능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위대한 부활의 신권 권능은 이 세상의 주님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태복음 28:18)고 가르치셨습니다. …

그분은 유대인에게 말씀하실 때, 이 권능을 은밀히 선포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복음 2:19~21)

부활의 열쇠는 안전하게 우리 주님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사후의 삶”, 성도의 벗, 1987년 7월호, 10쪽)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them, 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
요 2: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Then said the Jews, Forty and six years was this temple in building, and wilt thou rear it up in three days?
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But he spake of the temple of his body.
요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When therefore he was risen from the dead,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he had said this unto them; and they believed the scripture, and the word which Jesus had said.

 

요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Now when he was in Jerusalem at the passover, in the feast day, many believed in his name, when they saw the miracles which he did.

 

요 2: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But Jesus did not commit himself unto them, because he knew all men,

 

요 2: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And needed not that any should testify of man: for he knew what was i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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