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계. TITLE

주석 요한 복음 6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Prev Chap. Next Chap.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소개 오천명을 먹이심. 바다위를 걸으심.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Jesus feedeth the five thousand—He walketh on the sea—He is the living manna sent from God—Salvation gained by eating living bread—How men eat the flesh and drink the blood of Jesus—Peter testifies that Jesus is the Messiah.

요한복음 5~7장 소개 및 연대

요한복음 5~7장은 교리상으로도 내용이 풍성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초래한 적대와 적개심 등 그분에 대한 사람들의 갖가지 태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구주께서는 38년간 투병해 온 사람에게 “일어나 …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신 후(요한복음 5:8),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모두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5:21~29 참조) 또한 그분은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회를 통해 자신이 생명의 떡, 즉 영생의 근원임을 가르치셨다.(요한복음 6:35, 48 참조) 하지만 한때 제자였던 많은 이들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요한복음 6:66) 예수님의 신분과 목적에 관하여 사람들의 견해가 점점 더 분분해지는 가운데, 초막절 축제에서 그분은 당신의 말에 충실히 순종하는 사람만이 그분의 신분과 가르침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음을 선언하셨다.(요한복음 7장 참조) 

요한복음 6장.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구주의 성역

니파이인들을 방문하신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신명기 18장 15, 18~19절에 언급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제3니파이 20:23 참조) 구주의 성역과 모세의 성역 간의 중요한 유사점은 요한복음 6장과 출애굽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유월절 기간에 일어났는데(요한복음 6:4 참조), 유월절은 모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다.(출애굽기 12장 참조)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로마의 공식 명칭인 디베랴 바다로 불렸음)를 건너가시자, 큰 무리가 그분을 따라갔다.(요한복음 6:1~2 참조)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인도에 따라 홍해를 지나 광야로 들어갔다.(출애굽기 12:38; 13:18 참조) 예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적적으로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다.(요한복음 6:5~14 참조) 모세는 하늘에서 기적적으로 내려온 만나로 백성들을 먹였다.(출애굽기 16:3~4; 요한복음 6:31 참조) 무리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분은 그들을 떠나 그날 밤에 갈릴리 바다를 직접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요한복음 6:15~21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따라 밤새 홍해를 건넜다.(출애굽기 14:21 참조) 무리를 먹이신 다음 날,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선언하셨는데(요한복음 6:22~65 참조), 이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에 빗대어 볼 수 있다.

모세의 성역과 구주의 성역 간에 가장 두드러지는 유사점 중 하나는 “I Am”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분의 이름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을 때, 주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THAT I AM]”라고 대답하셨다.(출애굽기 3:13~14) 요한은 구약 시대에 구주의 명칭 중 하나로 알려진 “I Am”을 반복적으로 기록했으며, 모세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을 이스라엘 백성이 알도록 그 명칭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요한은 구주께서 “나는[I am] 생명의 떡이니”라고 선언하셨다고 기록했다.(요한복음 6:35, 48, 51; 기울임체 추가) 구주께서는 성역 동안 이와 유사한 “I am”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셨다.(요한복음 8:12; 10:9, 11; 11:25; 14:6; 15:1 참조) 

요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After these things Jesus went over the sea of Galilee, which is the sea of Tiberias.

요한복음 6:1~14.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32~44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6:32~44. 오천 명을 먹이심(또한 마태복음 14:15~21; 누가복음 9:12~17; 요한복음 6:3~14 참조)

마가복음 6장 44절을 그리스어 원전에서 찾아보면, “오천 명”은 오천 명의 남자를 의미했다는 점이 분명하게 나온다. 마태복음 14장 21절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라는 말이 있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준다.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은 부활을 제외하고 사복음서 모두에 실려 있는 유일한 기적 중 하나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 기적에서 배우는 영원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이 소진하여 여러분을 도와주지 못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영적 교훈입니다.”(Trusting Jesus [2003], 73)

칠십인의 제이 데븐 코니쉬 장로는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그 이야기는] 구주께서 베푸신 속죄의 은혜에 대한 풍성함과 권능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 그분의 은혜는 참으로 풍성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 주고도 남습니다.”(“Learning How the Atonement Can Change You,” Ensign, Apr. 2002, 23) 다음과 같은 일련의 말씀과 행동을 주목해 보면 이 진리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ol class="decimal" style="box-sizing: border-box; display: block; margin: 0px; padding: 0px 0px 0px 1.778em; border: 0px; font-style: normal; font-variant-ligatures: normal; font-variant-caps: normal; font-variant-numeric: inherit; font-variant-east-asian: inherit; font-weight: 400; font-stretch: inherit; font-size: 18px; line-height: inherit; font-family: "" Ensign:Serif", McKay, "McKay ldsLat", Palatino, "Palatino Linotype", Palatino-Roman, serif; vertical-align: baseline; list-style: outside none decimal; color: rgb(222, 225, 225); letter-spacing: normal; orphans: 2; text-align: left; text-indent: 0px; text-transform: none; white-space: normal; widows: 2; word-spacing: 0px; -webkit-text-stroke-width: 0px; background-color: rgb(33, 34, 37); text-decoration-thickness: initial; text-decoration-style: initial; text-decoration-color: initial;" type="1">
  •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마가복음 6:37) 그들의 현재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명하셨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제자들의 대답에서 드러나는데, 그 대답은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그들은 그처럼 많은 사람을 먹이는 데 필요한 떡의 양이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에게 대략 8개월치 급료에 해당하였다.
  • 구주께서는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알아보셨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마가복음 6:38) 제자들은 구주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 구주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명하셨다.(마태복음 14:18)
  •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구주께 드렸다.
  • 구주께서는 제자들이 드린 음식을 축복하고 늘리셨는데, 기적처럼 필요한 양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우리와 구주의 관계와 관련된 한 가지 방식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완전함과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마태복음 5:48; 로마서 3:23 참조) 하지만 우리가 온 영혼을 구주께 바친다면, 그분이 베푸신 속죄의 은혜와 권능이 우리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 이상으로 베풀어질 것이다.(니파이후서 25:23; 옴나이서 1:26; 모로나이서 10:32~33 참조)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구주께서 떡과 물고기를 늘리신 일은 우리가 그분의 교회에서 봉사할 때 비록 우리의 노력이 몇 개의 떡과 물고기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지더라도 그분이 우리가 행한 충실한 노력을 더 크게 해 주실 것을 보여 준다며 이렇게 가르쳤다.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 정도에 불과한 은사를 가진 무명의 사람들이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교회에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며 실제로 수천 명을 먹이며 봉사합니다. … 이들은 모든 보조 조직과 신권 정원회에 속한 수십만 명의 지도자와 교사들과 가정 복음 교사들과 상호부조회의 방문 교사들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겸손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도 있으나 그들은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항상 배우며 주님과 와드 회원들을 섬기고자 하는 겸손한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

보잘것없이 시작한 이 교회가 오늘날 이같이 크게 발전한 주된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만을 가진 겸손하고 성실한 수백만 명의 충실함과 헌신입니다.”(“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5~6쪽) 

요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And a great multitude followed him, because they saw his miracles which he did on them that were diseased.
요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And Jesus went up into a mountain, and there he sat with his disciples.
요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And the passover, a feast of the Jews, was nigh.
요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When Jesus then lifted up his eyes, and saw a great company come unto him, he saith unto Philip, Whence shall we buy bread, that these may eat?
요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And this he said to prove him: for he himself knew what he would do.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Philip answered him, Two hundred penny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that every one of them may take a little.
요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One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saith unto him,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There is a lad here, which hath five barley loaves, and two small fishes: but what are they among so many?
요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And Jesus said, Make the men sit down. Now there was much grass in the place. So the men sat down, in number about five thousand.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And Jesus took the loaves;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distributed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them that were set down; and likewise of the fishes as much as they would.
요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When they were filled, he said unto his disciples, Gather up the fragments that remain, that nothing be lost.
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Therefore they gathered them together, and filled twelve baskets with the fragments of the five barley loaves, which remained over and above unto them that had eaten.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에 상당하는 은사 밖에 갖고 있지 않은 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며, 실제로 수천 명을 먹이며 봉사합니다. ... 이들은 보조조직과 신권정원회에 속한 수십만 명의 지도자와 교사들과 가정복음교사들과 상호부조회의 방문교사들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겸손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도 있으나 그들은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항상 배우면서 주님과 와드 회원들을 섬기고자 하는 겸손한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이 시작한 이 교회가 오늘날 이같이 크게 발전한 주된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데 바칠 것이라고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만을 가진 겸손하고 성실한 수백만 명의 충실함과 헌신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여 그렇게 함으로써 ‘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빌4:7) ’을 발견합니다. “   - 제임즈 E 파우스트 회장 -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Then those men, when they had seen the miracle that Jesus did, said, This is of a truth that prophet that should come into the world.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When Jesus therefore perceived that they would come and take him by force, to make him a king, he departed again into a mountain himself alone.

요한복음 6:15. 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으려 했는가?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대중 사이에서 그분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요한은 일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고 기록했다.(요한복음 6:15) 당시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눈에 매우 고귀한 존재로 비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통적으로 오래된 숙원을 성취하신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랍비들이 가르친 전통 가운데 대중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던 한 가지는 메시야가 오시면 하늘의 떡으로 백성들을 먹이시리라는 것이었다. … 게다가 메시야가 오시면 그분이 자신의 강림을 알리기 위해 이 엄청난 기적을 반복해서 행하시리라는 믿음도 사람들 사이에 확고해 있었다. 랍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신 첫 번째 구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셨듯이, 메시야이신 두 번째 구주께서도 다시 한 번 이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게 하실 것이다.’[Cunningham Geikie, The Life and Words of Christ(1886), 516–17]

따라서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몇 배로 늘리셨을 때, 전통적으로 염원해 왔던 그 징후가 주어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분의 대중적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분으로 보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분은 메시야이므로 왕으로서 나라를 통치하셔야 했던 것이다.”(Mortal Messiah, 2:367–68) 

요 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And when even was now come, his disciples went down unto the sea,

요한복음 6:16~21. 물 위를 걸으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릴 바다 위를 걸으신 내용을 보려면, 마태복음 14:22~33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14:22~33. 예수께서 “밤 사경에”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시다(또한 마가복음 6:45~52; 요한복음 6:15~21 참조)

로마인들은 밤 시간을 네 개의 경으로, 즉 대략 저녁 6시~9시, 9시~자정, 자정~새벽 3시, 새벽 3시~새벽 6시로 구분했다. 구주께서 밤 사경에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마태복음 14:25 참조), 그들은 역풍에 맞서 밤새 노를 젓고 있었다. 수잔 더블유 태너 자매는 본부 청녀 회장으로 봉사하던 당시에 우리가 인내하고 기다린다면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로 오실 것이라고 간증했다.

“저는 [주님의] 친절하신 자비와 기적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들은 그분이 정하신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옵니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가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갈릴리 바다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역풍을 맞으며 힘들게 노를 저은 후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도우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밤 사경인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6:45~51 참조) 때로는 밤 사경이 되어서야 오겠지만 저는 기적이 분명히 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나의 영혼은 주의 것을 기뻐하며”,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2~83쪽)

요 6: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And entered into a ship, and went over the sea toward Capernaum. And it was now dark, and Jesus was not come to them.
요 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And the sea arose by reason of a great wind that blew.
요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So when they had rowed about five and twenty or thirty furlongs, they see Jesus walking on the sea, and drawing nigh unto the ship: and they were afraid.
요 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But he saith unto them, It is I; be not afraid.
요 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Then they willingly received him into the ship: and immediately the ship was at the land whither they went.
요 6: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The day following, when the people which stood on the other side of the sea saw that there was none other boat there, save that one whereinto his disciples were entered, and that Jesus went not with his disciples into the boat, but that his disciples were gone away alone;

 

요 6: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Howbeit there came other boats from Tiberias nigh unto the place where they did eat bread, after that the Lord had given thanks:)

 

요 6: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When the people therefore saw that Jesus was not there, neither his disciples, they also took shipping, and came to Capernaum, seeking for Jesus.

 

요 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And when they had found him on the other side of the sea, they said unto him, Rabbi, when camest thou hither?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Jesus answered them and said,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Ye seek me, not because ye saw the miracles, but because ye did eat of the loaves, and were filled.

요한복음 6:26~27.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요한복음 6장 3~14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께서 기적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자, 그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더 많은 음식을 주시기를 원했다. 하지만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떡”이며 그들은 자신이 제공한 영적 음식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 후, 그분의 제자 중 다수가 더는 그분을 따르지 않았다.(요한복음 6:26~27, 66 참조)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작은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있는 위험성을 일러 줍니다. 그 위험이란 우리도 일시적인 성공이나 학식으로 참으로 중요한 영생의 떡으로부터 멀어져 실질적으로, 영적으로 영양 미달이 되거나 고의로 영적인 식욕부진에 빠지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고대의 어리석은 갈릴리인들처럼 우리는 거룩한 음식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 거절할지도 모릅니다. …

… 우리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초기 사도들의 경험에 동참할 것을 바랍니다. 그들 또한 생명의 떡을 갈망했으며, 돌아가지 않고 주님께 와서 그분과 함께 머물렀으며, 주님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안전과 구원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요한복음 6:68 참조]”(“주리는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65쪽)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32~44 주해를 참조한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Labour not for the meat which perisheth, but for that meat which endureth unto everlasting life, which the Son of man shall give unto you: for him hath God the Father sealed.
요 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Then said they unto him, What shall we do, that we might work the works of God?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them,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e believe on him whom he hath sent.

 

요 6: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They said therefore unto him, What sign shewest thou then, that we may see, and believe thee? what dost thou work?

 

요 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Our fathers did eat manna in the desert; as it is written, He gave them bread from heaven to eat.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Then Jesus said unto the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Moses gave you not that bread from heaven; but my Father giveth you the true bread from heaven.

요한복음 6:32~35, 48~51. “하늘로부터 [온] 참 떡”

여러 문화에서 주식인 떡[빵]은 구주와 그분의 가르침이 우리 삶에서 담당해야 하는 주요 역할을 이상적으로 잘 나타내는 비유의 대상이 된다. “생명의 떡”에 대해 가르치셨을 때, 예수님은 청중의 배경을 활용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 역사를 하나의 교수 도구로 활용하셨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생명의 떡 설교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던 시기에 일어났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월절 기간에 애굽에서 해방된 것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기억하기 위해 무교병을 먹었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가르침에 활용하셨다. 이 설교를 할 때 구주의 말씀을 듣던 청중 다수가 바로 전날 그분이 기적적으로 제공하신 떡을 먹었던 오천 명의 무리 가운데 속해 있었다.(요한복음 6:1~14 참조)

구주께서는 또한 청중의 지리적 위치도 고려하셨다. 이때 구주께서는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셨는데, 이 지역은 빵 제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가버나움에서 더 많은 제분 기구가 유물로 발견되었다. 군중이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제공된 만나를 언급하자,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주신, 같은 하나님이 이제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셨음을 상기시키셨다.(요한복음 6:32)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떡을 줄 수는 있으나, 자신은 또한 “생명의 떡”으로서(요한복음 6:48) 자신이 주는 영적 자양물을 취하려 하는 이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다.(요한복음 6:51 참조)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For the bread of God is he which cometh down from heaven, and giveth life unto the world.
요 6: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Then said they unto him, Lord, evermore give us this bread.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And Jesus said unto them, I am the bread of life: he that cometh to me shall never hunger; and he that believeth on me shall never thirst.
요 6: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But I said unto you, That ye also have seen me, and believe not.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All that the Father giveth me shall come to me; and him that cometh to me I will in no wise cast out.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For I ca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ine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And this is the Father’s will which hath sent me, that of all which he hath given me I should lose nothing, but should raise it up again at the last day.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And this is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that every one which seeth the Son, and believeth on him, may have everlasting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요 6: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The Jews then murmured at him, because he said, I am the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요 6: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And they said, Is not this Jesus, the son of Joseph, whose father and mother we know? how is it then that he saith, I came down from heaven?

 

요 6: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Jesus therefore answered and said unto them, Murmur not among yourselves.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No man can come to me, except the Father which hath sent me draw him: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요한복음 6:44, 65.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구주에게 나아오도록 어떻게 도우시는가?

구주께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설교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분의 아들에게로 오도록 도우시는 방법들을 강조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주에게로 “이끌” 것이다. “이[끈]”다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처럼 마음을 끌어들이거나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것이다.(요한복음 6:44; 모사이야서 3:19 참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구주께로 갈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신앙을 갖거나 회개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위해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요한복음 6:65; 고린도전서 12:3; 니파이후서 31:19 참조) 

요 6: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It is written in the prophets, And they shall be all taught of God. Every man therefore that hath heard, and hath learned of the Father, cometh unto me.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Not that any man hath seen the Father, save he which is of God, he hath seen the Father.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 that believeth on me hath everlasting life.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I am that bread of life.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Your fathers did eat manna in the wilderness, and are dead.

 

요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This is the bread which cometh down from heaven, that a man may eat thereof, and not die.

 

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I am the living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if any man eat of this bread, he shall live for ever: and the bread that I will give is my flesh, which I will give for the life of the world.

요한복음 6:51~58. “살아 있는 떡”을 먹음

일부 독자들에게는 구주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비유가 깜짝 놀랄 말이겠지만, 구주께서는 자신이 “먹고” “마[신다]”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셨다.(요한복음 6:58, 63 참조)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하는 방법으로 먹는 것이 “[구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셨다.(요한복음 6:57) 구주의 말씀은 또한 그분이 마지막 만찬에서 제정하신 성찬 의식의 전조가 되었다.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를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단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본질의 일부로써 지속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인간이 먹는 음식이 그의 신체 조직에 동화되는 것과 같다.

…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 즉 예수를 인류의 구주로서 철저히 무조건으로 받아들임을 상징하는 것인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에 관한 비유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이로써 그의 인격체의 신성과 그가 전세에서 존재한 영원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만찬인 성찬은 구주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정하여 주신 것으로 구주를 기억하여 떡과 물을 취함으로써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상징을 영속시켜 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복음의 법과 의식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예수 그리스도, 347~348쪽) 

요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The Jews therefore strove among themselves, saying, How can this man give us his flesh to eat?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Then Jesus said unto the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Except ye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e have no life in you.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Whoso eateth my flesh, and drinketh my blood, hath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For my flesh is meat indeed, and my blood is drink indeed.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He that eateth my flesh, and drinketh my blood, dwelleth in me, and I in him.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As the living Father hath sent me, and I live by the Father: so he that eateth me, even he shall live by me.
요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This is that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not as your fathers did eat manna, and are dead: he that eateth of this bread shall live for ever.

 “ ...우리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더 잘 알아야 하고, 현재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자주 그분을 기억해야 하며, 우리가 지금 섬기는 것보다 더 담대하게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 ”   - 하워드 W 헌터 회장 -

 "나는 언제나 이 축복된 특권을 영적인 성장의 수단으로 생각해 왔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주님의 만찬인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육신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우리는 약해지고 병에 걸려서 육체적으로 쇠약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을 위하여 이 성찬에 참여하여 우리의 영혼을 위한 영적인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굶주린 상태로 성찬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만약 좋은 음식을 차린 잔치에 배부르고 식욕이 없는 상태로 참여한다면 그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성찬식에 나아오려면 의와 영적인 성장에 굶주리고 목마른 상태로 나아와야 합니다.

 "...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합당한 상태에 두면 용서받게 되며 우리의 영혼이 영적인 치료를 받게 될 것입니다. ... 진심으로 영적인 음식을 갈망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합당한 사람에게는 화평과 행복이 주어집니다. “      - 멜빈 J 밸라드 장로 -

요 6: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These things said he in the synagogue, as he taught in Capernaum.

 

요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Many therefore of his disciples, when they had heard this, said, This is an hard saying; who can hear it?

요한복음 6:60~69. “[어려운] 말씀”이 제자들을 시험하다

요한복음 6장에는 구주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극변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절정에 올랐던 그분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바로 전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요한복음 6:15 참조) 어떻게 다음날 그분을 버릴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요한복음 6:66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렸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어려운 복음 교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예수께서 처음에 강한 교리(경전에서는 ‘[어려운]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음)를 전파하시기 시작하자, 그분을 따랐던 사람들 대다수가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 (요한복음 6:66) 그분의 교리가 실제로 어려운 일을 행하도록 요구하자마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현세적인 사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기가 주저하게 되지만 들려주어야만 하는 ‘[어려운] 말씀’들이 있다. 그런 말씀은 인기가 없다. … 진리는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거나, 지루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저 불편함을 안겨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진리에 대한 반응일 뿐이며, 그런 반응이 진리 자체의 실체를 변경하지는 못한다. … 잘 생각해 보면 … 어려운 말씀은 세상적인 것들을 더 쉽게 내려놓게 해 줄 수 있다. …

니파이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지식을 깨달으려’ 하지 않아서 비탄에 잠겼다. (니파이후서 32:7) 교리가 복잡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음은 너무도 분명하고 단순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단호하게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아, 구주의 메시지에 담긴 소중한 진리들을 깊이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Wherefore, Ye Must Press Forward[1977], 6–7, 22) 

요 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When Jesus knew in himself that his disciples murmured at it, he said unto them, Doth this offend you?
요 6: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What and if ye shall see the Son of man ascend up where he was before?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But there are some of you that believe not. For Jesus knew from the beginning who they were that believed not, and who should betray him.
요 6: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And he said, Therefore said I unto you, that no man can come unto me, except it were given unto him of my Father.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From that time many of his disciples went back, and walked no more with him.
요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Then said Jesus unto the twelve, Will ye also go away?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Then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thou hast the words of eternal life.
요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And we believe and are sure that thou art that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요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them, Have not I chosen you twelve, and one of you is a devil?

 

요 6: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He spake of Judas Iscariot the son of Simon: for he it was that should betray him, being one of the twelve.

 


Prev Chap. Next Ch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