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주석 창세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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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명하심.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 아브라함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와 별들처럼 무수히 많게 될것. 그의 후손으로 말미암이 모든 나라가 축복을 받을것. 브두엘에게서 리브가가 태어남. Abraham commanded to sacrifice Isaac, his son—Both father and son yield to the will of God—Abraham’s seed shall be as the stars and the sand in number—In his seed all nations shall be blessed—Rebekah is born to Bethuel.

이삭을 제물로 바침

만약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실 경우, 여러분이 내놓기 가장 어려운 것 한 가지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그렇게 하겠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 2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 중 가장 큰 시험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22장을 읽기 전에 교리와 성약 101편 4~5절에서 주님이 교회 회원에게 말씀하신 것을 읽는다. 창세기 22장을 읽는 동안 여러분 자신을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입장에 놓고 이 이야기의 각 장면에서 여러분이 생각하게 될 것들을 숙고해 본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se things, that God did tempt Abraham, and said unto him, Abraham: and he said, Behold, here I am.

 창세기 2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을“시험”했는가?

“시험한다”로 번역된 낱말은“시험하다, 증명하다”의 의미인 히브리어 니사(nissah)에서 나온 말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첫째, 그는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것을 버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녀를 죽인다는 그 일 하나만으로도 가혹한 일인데 수십 년간 기다렸고, 또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약속하였고, 그를 통하여 성약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아들을 죽인다는 일은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 소중한 이삭을 기꺼이 포기하려 했던 아브라함의 마음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구주에게 물었던 젊은 부자의 주저하는 마음과 좋은 대조가 된다. 모든 재산을 팔고 주를 따라야 한다고 하자“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 근심하며”(마태복음 19:22) 떠났다.

그러나 더 크지는 않다 해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시험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의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상의 제단에서 생명을 잃을 뻔했던 아브라함은 주님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아브라함서 1:12~20 참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을 제물로 바치거나 어떤 형태로든지 살인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이런 명을 받으면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렇게 자문할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이런 명령이 올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모순되지 않는가?”더 나아가서 이 명령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직접 약속하신 성약의 혈통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아브라함은 더욱 고통이 컸을 것이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그 시험의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브라함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시험이 주어졌을 때 놀라운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왕국의 아버지가 될 운명을 타고난 그의 젊은‘약속의 자녀’를 제단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이기는 했으나 너무 모순된 것 같았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이 어려서 생을 마쳐야 한다면 어떻게 그가 수많은 백성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왜 아브라함은 엄청난 행위를 해야만 했겠습니까? 그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대담한 신앙으로 부친이 겪는 고뇌를 조금도 모르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슬픈 심령으로 모리아 땅으로 갔습니다.”(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48쪽) 경전에서 아브라함을 계속해서 신앙심 있고 순종하는 자의 위대한 모범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And he said, Take now thy son, thine only son Isaac, whom thou lovest, and get thee into the land of Moriah; and offer him there for a burnt offering upon one of the mountains which I will tell thee of.

창세기 22장 — 왜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는가?

“왜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일을 요구하셨을까요? 그의 장래와 그가 수많은 자손의 아버지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시험하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이 일을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큰 교훈을 얻고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지식을 갖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시험하시는 이유입니다. 모든 일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행할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즉 우리가 자신을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영광과 승영과 영예를 주려고 이 시험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려 하셨고 자신이 행사하는 권능과 영광과 통치권을 나누려고 하셨습니다.(George Q. Cannon, Conference Report, 1899년 4월, 66쪽)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신앙이 충만하고 걱정이 없는” 삶은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면서 이 진리들을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시켰다.

“따라서 이 세상을 죄없이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바라는 것은 마치 ‘주님이시여 저에게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되 슬픔과 비애와 고통을 당하지 않고 반대에 부딪치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또는 버림을 받지 않는 경험을 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오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 겪으신 모든 경험을 제가 겪지 않도록 하시고, 다만 주님과 함께 거하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닐 에이 맥스웰, 성도의 벗, 1991년 7월호, 87쪽)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더 큰 신앙을 얻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희생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같은 경험을 했다면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게 발전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하신 제물을 바치는 일을 거절했다면 그의 신앙은 발전했겠는가? 조셉 스미스는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종교는 생명과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신앙을 갖게 할 만큼 충분한 힘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Lectures on Faith [1985], 69쪽)라고 말했다.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And Abraham rose up early in the morning, and saddled his ass, and took two of his young men with him, and Isaac his son, and clave the wood for the burnt offering, and rose up, and went unto the place of which God had told him.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Then on the third day Abraham lifted up his eyes, and saw the place afar off.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And Abraham said unto his young men, Abide ye here with the ass; and I and the lad will go yonder and worship, and come again to you.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And Abraham took the wood of the burnt offering, and laid it upon Isaac his son; and he took the fire in his hand, and a knife; and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

 

창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And Isaac spake unto Abraham his father, and said, My father: and he said, Here am I, my son. And he said, Behold the fire and the wood: but where is the lamb for a burnt offering?

 

창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And Abraham said,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so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And they came to the place which God had told him of; and Abraham built an altar there, and laid the wood in order, and bound Isaac his son, and laid him on the altar upon the wood.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And Abraham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took the knife to slay his son.

 “바로 그 시간에 저는 휘장 뒤편에서 죽어가는 자의 몸부림을 지켜보고 계시는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을 구하실 수 있었던 바로 그 순간, 그분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 것에 관해 감사드리고 찬양합니다. … 그분이 간섭하지 않으시고, 게다가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이 그분의 아들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을 인내하도록 했으며, 결국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구주요 구속주로서 주셨음을 기뻐합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그분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고, 그분의 면전에서 영화롭게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인간들에게 그분의 아들을 선물로 주기 위해 치르셨던 것입니다.”(Melvin J. Ballard … Crusader for Righteousness [1966년], 137쪽)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And the angel of the LORD called unto him out of heaven, and said, Abraham, Abraham: and he said, Here am I.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And he said, Lay not thine hand upon the lad, neither do thou any thing unto him: for now I know that thou fearest God, seeing thou hast not withheld thy son, thine only son from me.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And Abraham lifted up his eyes, and looked, and behold behind him a ram caught in a thicket by his horns: and Abraham went and took the ram, and offered him up for a burnt offering in the stead of his son.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And Abraham called the name of that place Jehovah-jireh: as it is said to this day, In the mount of the LORD it shall be seen.

창세기 22장 14절 —“여호와이레”는 어디에 있으며, 그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라함은 번제 드릴 단을 쌓은 곳을 “여호와이레”라고 불렀는데 이는 주님께서 훗날 같은 산에 계시게 될 것이란 예언이었다. 흔히 모리아산이라 불리는 산 줄기에 솔로몬 성전과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이 있다.

창 22: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And the angel of the LORD called unto Abraham out of heaven the second time,

 

창 22: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And said, By myself have I sworn, saith the LORD, for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ing, and hast not withheld thy son, thine only son: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That in blessing I will bless thee, and in multiplying I will multiply thy seed as the stars of the heaven, and as the sand which is upon the sea shore; and thy seed shall possess the gate of his enemies;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And in thy seed shall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be blessed; because thou hast obeyed my voice.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의 또 다른 면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구원을 얻기만큼 충분한 신앙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설명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추론 과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추론의 중요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1.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세 종류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성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사실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첫째는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성품과 완전함과 속성에 대한 정확한 개념입니다.”

“셋째는 실제로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 행로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 이지적인 사람들의 신앙은 모두 불완전하고 헛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안전하고 성실하고 의롭게 될 수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스미스, 신앙 강좌, 3:2~5)

2. 자신의 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신앙의 발전에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 항로가 실제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고대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신앙으로 더 많이 참아야 함을 알고는 모든 시련과 박해와 자기 재산이 파괴되는 것을 기꺼이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인데 비하면 만물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신의 성품과 명성, 명예, 갈채, 집, 땅, 형제와 자매, 아내와 자녀,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으려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단순히 믿거나 가정하는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즉 그러한 고통이 끝나면 자기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게 된다는 것을 실제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스미스, 신앙 강좌, 6:25)

3. 자기 생활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종교는 결코 생명과 구원을 가져오는 데 필요한 믿음을 가져올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탄생할 때부터 천수를 누릴 때까지 믿음은 필요하며, 모든 세상적인 것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쟁취할 수 있는 구원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희생을 통해서만 영생을 누리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도 모든 세상에 속한 것을 희생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기 때문에 이런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믿고 그 사실을 가장 확실히 인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과 제사를 열납하시고, 또 앞으로도 열납하실 것이며, 우리 역시 헛된 가식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조건 하에서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스미스, 신앙 강좌, 6:7; “예수와 그의 사도의 생애와 가르침”, 제39과, 324쪽 참조)

4.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희생하기를 주저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는 능력이 감소된다.

“하나님을 위하여 이렇게 희생하지 않는 사람은 그들이 추구하는 과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지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신조와 의견을 갖고 있든, 그들에게는 의심과 불확실한 마음밖에 없게 됩니다. 확신이 없고 의심밖에 없는 곳에는 신앙이 없으며, 있을 수도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의심과 신앙이 동시에 있을 수는 없으므로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없으면 신앙은 약해지며, 신앙이 약해지면 그리스도인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견디어야 하는 반대와 환난과 시련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약해지고 악마가 그들을 지배하여 멸하게 됩니다.”(스미스, 신앙 강좌, 6:12)

이 논리를 아브라함의 경우에 적용하여 다음 질문에 답한다.

1.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완전한 신앙을 축복해 주시기 전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어야만 하는가?

2. 기꺼이 이삭을 희생시키려 한 아브라함의 마음은 자신의 생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아는 지식과 어떤 관련이 있었나?

3.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시험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점에서 그런가?

주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에 대해 조지 큐 캐넌이 언급한 것에 유의한다. 아브라함이 겪은 시험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일을 요구하셨을까요? 주님은 그의 장래와 그가 수많은 자손의 아버지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시험하시기로 결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아셨으므로 하나님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교훈을 심어 주고, 또한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지식을 갖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시험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알고 계시므로 그분이 지식을 얻기 위해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을 모두 알고 계시며, 또한 우리가 행할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은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자신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즉 우리를 위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영광과 승영과 영예를 주려고 이 시험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왕으로, 제사장으로 만들려 하셨고 자신이 행사하는 권능과 영광과 지배력을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조지 큐 캐넌, Gospel Truth, 1:113)

하나님은 시험이 있기 오래 전에 아브라함의 홀륭한 성품을 잘 알고 계셨다는 것에 유의한다.(창세기 18:17~19 참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미리 아셨던 것이 그분이 우리를 아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창 22: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So Abraham returned unto his young men, and they rose up and went together to Beer-sheba; and Abraham dwelt at Beer-sheba.

 

창 22: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se things, that it was told Abraham, saying, Behold, Milcah, she hath also born children unto thy brother Nahor;

 

창 22: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Huz his firstborn, and Buz his brother, and Kemuel the father of Aram,

 

창 22: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And Chesed, and Hazo, and Pildash, and Jidlaph, and Bethuel.

 

창 22: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And Bethuel begat Rebekah: these eight Milcah did bear to Nahor, Abraham’s brother.

 

창 22: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And his concubine, whose name was Reumah, she bare also Tebah, and Gaham, and Thahash, and Maachah.

 창세기 22:1~19. 이삭의 제물-예표

몰몬경의 야곱은 아브라함이 기꺼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것은“하나님과 그의 독생자의 표상”(야곱서 4:5)이라고 분명히 가르쳤다. 예표는 더욱 큰 영적인 실체와 연관되는 물질적인 목적, 행위, 혹은 일이 될 수 있다.(주님이 예표를 사용하신 이유에 대한 설명은 보충 자료 다, “구약전서의 상징과 예표”참조)

구약전서를 읽는 사람은 대부분이 아브라함의 시험과 아버지의 희생이 비슷하다는 것을 곧 알 수 있게 된다. 장차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시킬 것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한 예표의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아버지의 예표였다. 그의 이름 아브람은 “승영한 아버지”를 의미하고 아브라함은“열국의 아버지”를 의미한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교성 17:5 참조) 이 이름은 둘 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해당되는 이름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아들의 예표였다. 그의 이름에는“그가 기뻐하리니”라는 뜻도 있다. 그도 예수처럼 기적적으로 태어났다. 이삭의 탄생은 마리아를 통한 예수의 탄생만큼 기적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90세가 된 사라는 어떤 상식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중재를 통하여 잉태하였고, 아들을 낳았다. 바울은 이 일을 언급할 때 이삭을“외아들”(히브리서 11:17) 이라고 불렀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미래의 행위의 예표를 행하도록 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체적으로 정하신 장소에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곳은“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창세기 22:2)이라고 하신 모리아였다. (오늘날 모리아산은 예루살렘의 주요한 산이다.) 구전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다고 알려진 곳은 아름다운 모슬렘 사원인 바위의 둥근 천장이 있는 곳이다. 그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북쪽으로 몇 백 야드 떨어진 곳이 바로 고오든의 갈보리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고오든은 히브리 말로는 골고다였다. 아브라함은 예표를 행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희생시킬 바로 그 장소에서 행하였다.

그들이 모리아에 도착한 상황이 창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창세기 22:6) 이 행위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길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의 예표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요한복음 19:17 참조)

이삭은 자진하여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였다. 이 중요한 유사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구약전서에는 이 당시 이삭의 나이가 정확하게 몇 살이었는지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 같다. 모리아산의 희생 제물의 기사 바로 뒤에 사라가 127세로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23:1 참조) 이삭은 사라가 사망할 때 37세였을 것이다. 모리아 산의 일이 사라의 사망 수년전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구주와 같은 30대였을 것이다. 정확한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은 100살이 훨씬 넘었으며 이삭은 하려고만 하면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는 강건한 젊은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구주가 행하실 것과 똑같이 부친의 뜻에 기꺼이 복종했다.

이 일이 끝나고 모든 것이 잘 되자 아브라함은 그곳을 여호와이레라고 이름 지었는 데 이 말은“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창세기 22:14)라는 의미이다. 아담 클라크는 다른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합당한 번역은“이 산에서 여호와가 보이리라”로 되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그러고 나서 클라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친 희생은 상징적인 희생으로 이해되며, 구전에 의하면 여호와가 이 산에서 제물로 보여지리라고 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 절정의 시대에 예수가 고통 받을 바로 그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는 것을 나타낸다.” (Bible Commentary, 1:141) 예수는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리던 곳에서 약 100야드밖에 떨어지지 않은 안토니아 성곽 안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모리아와 같은 능선인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학자들은 이 장소가 예수 자신의 희생의 장소로서의 의미뿐만아니라 모세의 경륜의 시대에 제사를 지냈던 솔로몬 성전 부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제물을 드린 곳은 합법적인 체제 아래 전형적인 모든 제물을 여호와에게 바치던 모리아산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 이 한 가지 참된 제물에 의해 전형적인 제물의 예표가 진실되고 참된 것이 될 수 있었음을 나타낸다.” (케일과 델릿츠, 주해서, 1: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