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계. TITLE

주석 마가 복음 1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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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사천명을 먹이심.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벳새다에서 소경을 고치심. 베드로의 신앙고백.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Jesus feeds the four thousand—He counsels: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He heals a blind man in Bethsaida—Peter testifies: Thou art the Christ.

마가복음 8~10장 소개 및 연대

8~10장은 마가복음의 전환점에 해당한다. 지금까지는 구주께서 성역을 베푸실 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신성 모독자라고 했고, 서기관들은 그분이 악마의 권능을 지녔다고 비난했으며, 거라사에 사는 지방 사람들은 그분을 두려워하며 그 지역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했다.(마가복음 2:7; 3:22; 5:15~17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그분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선생이나 기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여기기는 했지만(마가복음 1:40; 5:23, 28; 6:56 참조), 그분과 가장 가까웠던 이들도 그분을 아는 데는 더디었다.(마가복음 1:22; 4:41; 6:2, 51~52 참조)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이런 혼동은 그들이 “영적 소경”임을 나타낸다. 마가복음에는 구주의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 일이 종종 나온다. 8~10장에 기록된 사건과 가르침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결국에는 인간의 영적 원수를 이기실 메시야로 알아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마가복음 8~10장에는 구주께서 세 차례에 걸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임박한 고통과 죽음, 부활에 대해 가르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마가복음 8:31~33; 9:30~32; 10:32~34 참조) 구주는 예언을 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그들의 역할에 대한 가르침을 조금 더 주시면서 그들의 “이해력”을 밝혀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에 겸손과 고통, 죽음이 수반되듯이, 제자의 사명에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잃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수반된다.(마가복음 8:34~38; 9:32~37, 43~48; 10:35~45 참조) 

막 8: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In those days the multitude being very great, and having nothing to eat, Jesus called his disciples unto him, and saith unto them,

마가복음 8:1~9. 구주께서 사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신 일은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것을 예시하는 전조였다(또한 마태복음 15:29~38 참조)

마가복음 7장 31절에 따르면, 구주께서 사천 명의 사람을 먹이신 사건은 갈릴리 바다의 남동 해안 중 하나인, 이방인들이 주로 사는 데가볼리 지방에서 일어났다. 이 지방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생겨난 시기는 적어도 구주께서 귀신 군대가 들어 있던 사람에게서 그들을 쫓아내어 치유하신 이후부터였을 것이다.(마가복음 5:19~20; 마태복음 4:25 참조) 그리고 믿는 이들의 수는 “큰 무리”를 이룰 정도로 늘어났다.(마가복음 8:1)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방인 사천 명을 먹이신 일은 복음이 세상의 모든 나라로 전파되는 축복을 예시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사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신 이 기적은 앞서 벳새다 근처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단순히 반복하거나 되풀이한 것이 아니다. 전에 주님께서는 자신의 혈족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계셨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이방인으로 추정되는 데가볼리 주민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또한, 그때 주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으뜸되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기초를 놓으셨고, 지금은 앞으로 이방 나라에 살아 있는 떡이 제공될 것임을 예시하고 계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사는 이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무리는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가르침을 더 잘 받아들였으며, 그분 안에 있는 창조적 힘을 사용하여 수천 명을 먹이신, 비할 데 없이 놀라운 기적을 좀 더 건전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판단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375) 

막 8: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I have compassion on the multitude, because they have now been with me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막 8: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And if I send them away fasting to their own houses, they will faint by the way: for divers of them came from far.
막 8: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And his disciples answered him, From whence can a man satisfy these men with bread here in the wilderness?

마가복음 8:4~6.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제자들은 더 적은 규모의 군중을 보게 된 상황에서 구주께 이렇게 여쭈었다.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마가복음 8:4) 왜 그들은 이전에 목격했음에도 그런 질문을 했겠는가? 생각해 볼 만한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제자들은 이전에 기적을 목격했지만, 신앙은 여전히 다소 약했다. 이번에 구주께서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고 마음이 우둔하다며 제자들을 꾸짖으셨다.(마가복음 8:17~21 참조)

어쩌면 제자들은 구주께서 이방인에게 그러한 기적을 행하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가 말했듯이 그들은 “그 기적을 다시 행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나 특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예수 그리스도, 363쪽)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구주께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하나님께 감사를 표할 때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구주께서]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구주께서 그들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셨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마태복음 15:32~38 참조; 기울임체 추가; 또한 마가복음 8:1~8 참조] …

잠시 멈추어 서서 받은 축복을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천국을 맛보는 일입니다.”(“감사라는 성스러운 선물”,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87~88, 90쪽) 

막 8: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And he asked them, How many loaves have ye? And they said, Seven.
막 8: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And he commanded the people to sit down on the ground: and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gave thanks, and brake, and gave to his disciples to set before them; and they did set them before the people.
막 8: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And they had a few small fishes: and he blessed, and commanded to set them also before them.

 

막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So they did eat, and were filled: and they took up of the broken meat that was left seven baskets.

 

막 8: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And they that had eaten were about four thousand: and he sent them away.

 

막 8: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And straightway he entered into a ship with his disciples, and came into the parts of Dalmanutha.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And the Pharisees came forth, and began to question with him, seeking of him a sign from heaven, tempting him.

 

막 8: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And he sighed deeply in his spirit, and saith, Why doth this generation seek after a sign? verily I say unto you, There shall no sign be given unto this generation.

 

막 8: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And he left them, and entering into the ship again departed to the other side.

 

막 8: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Now the disciples had forgotten to take bread, neither had they in the ship with them more than one loaf.

 

막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And he charged them, saying, Take heed,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of the leaven of Herod.

 

막 8: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And they reasoned among themselves, saying, It is because we have no bread.

 

막 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And when Jesus knew it, he saith unto them, Why reason ye, because ye have no bread? perceive ye not yet, neither understand? have ye your heart yet hardened?

 

막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Having eyes, see ye not? and having ears, hear ye not? and do ye not remember?

 

막 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When I brake the five loaves among five thousand, how many baskets full of fragments took ye up? They say unto him, Twelve.

 

막 8: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And when the seven among four thousand, how many baskets full of fragments took ye up? And they said, Seven.

 

막 8: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And he said unto them, How is it that ye do not understand?

 

막 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And he cometh to Bethsaida; and they bring a blind man unto him, and besought him to touch him.

마가복음 8:22~25. 맹인을 점차적으로 치유하심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기적에서 배울 수 있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기적은 독특한 것으로, 예수님이 사람을 단계적으로 치유하신 내용이 기록된 유일한 사례이다. 주님께서는 이 과정에 따라 약한 사람을 강화하시면서 맹인의 신앙을 키워 주셨을 것이다. 예수님과 한 잇따른 신체 접촉은 맹인에게 희망과 확신, 신앙을 더해 주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1) 그 맹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으며, (2) 자신의 침을 맹인의 눈에 바르셨고, (3) 안수 의식을 행하셨으며, (4) 다시금 그 사람의 눈에 안수하셨다.

이 치유의 방식은 기껏해야 부분적인 치유만 받을 수 있는 정도의 힘과 신앙이라 하더라도 주님께 치유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 부분적인 치유를 받은 후에, “그들은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더 큰 확신과 신앙을 얻을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 때 사람의 영적인 질병은 점진적으로 치유되기도 한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379–80) 

막 8: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And he took the blind man by the hand, and led him out of the town; and when he had spit on his eyes, and put his hands upon him, he asked him if he saw ought.
막 8: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And he looked up, and said, I see men as trees, walking.
막 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After that he put his hands again upon his eyes, and made him look up: and he was restored, and saw every man clearly.
막 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And he sent him away to his house, saying, Neither go into the town, nor tell it to any in the town.

 “이 기적은 독특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단계적으로 한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던 것으로 기록된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아마 주님께서 연약하지만 계속 커 가는 맹인의 신앙을 강하게 하기 위해 취하셨던 과정이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과의 신체적인 접촉을 했던 일련의 단계가 그 눈먼 사람에게 소망과 확신과 신앙을 더해주는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

“분명히 이러한 병고침이 일어났던 방법은 사람들이 온 힘과 신앙을 다해 주님께 병고침의 은혜를 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와 같은 것은 단지 부분적인 치유에는 충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은 이후에, 그들은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더욱 큰 확신과 신앙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늘의 계획과 목적에 일치하여 살아갈 때, 종종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그들의 영적인 질병을 치유받게 됩니다.” (브르스 알 맥콩키, 신약 교리 주해서, 1:379~380)

막 8: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And Jesus went out, and his disciples, into the towns of Caesarea Philippi: and by the way he asked his disciples, saying unto them, Whom do men say that I am?

마가복음 8:27~3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선임 사도인 베드로가 특히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간증한 지(마가복음 8:29) 얼마 되지 않아 구주께 항변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일 것이다. 이 사건을 이해할 실마리는 마가복음 8장 29절에 기록된 베드로의 간증과 마가복음 8장 32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항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님은 인자가 고통을 겪고 죽임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셨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적국을 정복하는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당시의 많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메시야가 고통을 겪고 죽게 되리라는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즉 고통을 겪고 죽으신 메시야를 전파하는 것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다고 기록했다.(고린도전서 1:23) 오늘날 우리가 구주의 속죄에 관한 예언으로 분명히 인식되는 구약전서의 많은 성구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그처럼 분명하게 이해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예언에는 “메시야”라는 언급이 없으며, 그 예언에서 묘사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한 이런 예언과 그 밖의 예언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와 그 외 제자들만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누가복음 24:13~27, 36~47; 베드로전서 2:21~25 참조) 

막 8: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And they answered, John the Baptist: but some say, Elias; and others, One of the prophets.
막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And he saith unto them, But whom say ye that I am? And Peter answereth and saith unto him, Thou art the Christ.
막 8: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And he charged them that they should tell no man of him.

마가복음 8:30. 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하고 명하셨는가?

공관복음, 그중에서도 특히 마가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 기적이나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말하지 말도록 명하신 경우가 여러 번 나온다.(마가복음 1:34, 44; 5:43; 7:36; 8:26, 30 참조) 경전에는 구주께서 어떤 일들을 비밀로 해 달라거나, 아니면 침묵해 달라고 요청하셨던 몇 가지 이유가 다음과 같이 암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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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는 예수님의 명성이 너무 자자해서 곤란한 일들이 생겼다고 말한다. 때로 예수님은 몇몇 마을에 들어가실 수 없었고, 그분을 뵈려는 사람들은 군중에 길이 막혀 그분에게로 갈 수가 없었다. 제자들은 인파에 시달리며 끼니를 때울 틈이나 그럴 장소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마가복음 1:45; 2:2; 3:20 참조) 구주께서 자신이 행한 기적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그런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주의함으로써 자신의 궁극적인 사명에 방해를 받지 않으시려는 한 가지 방편이었을 것이다.
  • 구주께서는 적절한 때가 되기도 전에 적대감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생기는 것을 미리 방지하려고 침묵을 요청하셨을 것이다.(마가복음 9:30~31 참조; 요한복음 7: 1~10 마태복음 26:18 비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대제사장들은 더더욱 그분을 반대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적 권위가 약해질까를 염려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임을 분명하고도 공개적으로 알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으나 일주일도 되지 않아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셨다.(마가복음 11:8~11; 14:1~2; 15:22~25; 니파이후서 10:5 참조)
  • 구주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는 귀신들에게도 잠잠하라고 명하셨다.(마가복음 1:24, 34; 3:11~12 참조; 사도행전 16:16~18 비교)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께서는 “[귀신이] 자신의 신성을 증거하는 것을 줄곧 허용하지 않으셨다. 개심을 일으키는 간증은 하나님에게서 오며, 루시퍼에게서 오지 않는다. 예수께서 악한 영들을 꾸짖지 않으셨다면, 다시 말해 자신에 대한 간증을 묵인하셨다면(비록 그 간증이 사실일지라도), 유대인들은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라고 말하며 그분을 거짓 고소하는 일에 더 큰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20)”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168)
  • 구주께서는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적들을 몰아내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려 주기를 바라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아셨다. 예수께서는 대중이 기대하는 그런 메시야로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구주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알리지 말라고 명하신 한 가지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마태복음 16:20; 마가복음 8:29~30 참조) 그분은 자신이 어떤 종류의 구원을 주려고 왔는지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분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원수인 사망과 죄와 고통을 정복하려고 오셨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And he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of the elders, and of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

마가복음 8:31~33; 9:30~32; 10:32~34. 구주의 고통, 사망, 부활에 대한 세 차례의 예언

마가복음 8~10장에는 구주의 고통과 사망, 부활에 대한 세 차례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또한 마태복음 16:21~23; 17:22~23; 20:17~19; 누가복음 9:22, 44~45; 18:31~34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속죄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완수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비전은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일은 곧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모세서 1:39)”(“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성도의 벗,1998년 7월호, 75쪽) 

막 8: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And he spake that saying openly. And Peter took him, and began to rebuke him.
막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But when he had turned about and looked on his disciples, he rebuked Peter, saying, Get thee behind me, Satan: for thou savourest not the things that be of God, but the things that be of men.

마가복음 8:33. 구주께서는 왜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셨는가? (또한 마태복음 16:23 참조)

베드로는 다가오는 구주의 죽음만을 신경 썼기 때문에 구주의 진정한 사명이 온 인류를 구속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구주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면서 그를 “사탄”으로 언급하신 것은(마가복음 8:33) 베드로가 루시퍼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탄이라는 히브리어는 “대적 또는 유혹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순간 베드로가 대적의 역할을 하며 인류를 구원하려는 구주의 궁극적 사명에 반대한 것이라고 판단하셨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과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한 것은 선의에서 한 일이었을 것이다.(마태복음 16:22; 마가복음 8:32 참조) 하지만 예수님이 베드로의 소원에 부응하여 속죄의 고통을 피하셨다면, 인류가 죄에서 구속받고 죽음을 극복하여 부활하게 되는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온 인류는 멸망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고(앨마서 34:9 참조),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일은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모세서 1:39) 이 모든 것은 사탄의 파괴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일이다. 베드로는 충동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순간 자기도 모르게 대적의 편을 들었던 것이다.

전세에서 사탄이 했던 모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자신의 소원에 맞게 변경시키려는 시도였다.(교리와 성약 29:36~39; 모세서 4:1~4; 아브라함서 3:27~28 참조) 이 점을 고려해 보면, 구주의 꾸짖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소원에 맞게 변경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화합되게 하고, 악마[의] 뜻에 화합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니파이후서 10:24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And when he had called the people unto him with his disciples also, he said unto them, Whosoever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마가복음 8:34~38. 구주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잃음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마가복음 8:34 참조)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았기에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제자들은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에서 사형 집행에 흔히 사용되는 수단이었으며,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가로대를 처형장까지 직접 운반해야 했다.(요한복음 19:16~17 참조) 구주께서는 십자가형의 이미지를 사용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모범을 따라 삶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라고 요청하셨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는 이 내용에 더하여 우리가 날마다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스스로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모든 세상 정욕을 부인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16:26)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베드로나 바울, 선지자 조셉 스미스 등이 순교했던 것처럼 우리도 글자 그대로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 봉사하는 삶을 삶으로써 그런 의지를 나타내 보일 수는 있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8:37–38 참조)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구주께서 가르치셨듯이 “목숨을 잃[는]” 몇 가지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잃는 기회는 매일같이 일어납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필요 사항을 돌보아야 하고, 아버지는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시간을 내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합당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세속적인 즐거움을 버려야 하며, 자녀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살펴야 합니다. 가정 복음 및 방문 교육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로해 주고, 교회 부름을 부지런히 이행하고, 지역 사회 및 공익 봉사를 하여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며, 십일조와 금식 헌금을 내고, 선교사와 복지와 건축 및 성전 공사도 지원해야 합니다. 참으로 희생의 날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지금은 희생의 날”, 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52쪽)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구주를 위해 목숨을 잃는 것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좀 더 잘 이해하게 해 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또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나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릴 것이요, 나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리지 않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8:37; 마가복음 8:35 비교)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은 구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이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한 사람은 그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을 생전에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큰 기쁨을 맛보게 되며,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고,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힘을 얻게 되며, 영혼을 고양시키고, 축복이 배가되며, 기회가 늘어나고, 영혼을 위로하고, 친구를 얻게 되고, 화평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됩니다.”(“예수 그리스도—우리의 은사와 유산”, 성도의 벗, 1977년 4월호, 25쪽) 

막 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shall lose his life for my sake and the gospel’s, the same shall save it.
막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For what shall it profit a man, if he shall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막 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Or 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Whosoever therefore shall be ashamed of me and of my words in this adulterous and sinful generation; of him also shall the Son of man be ashamed, when he cometh in the glory of his Father with the holy angels.

마가복음 8:38. 구주를 따르는 것을 선택할 때 일어날 결과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구주를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그분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에게 일어날 결과에 관한 구주의 가르침이 더 자세하게 나온다.

“[구주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올 때 자신들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리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올 것임이니라. 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는 그와 함께 올 것이요, 구름 가운데서, 인자의 우편에 서서 그분의 영광을 입을 것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8:42–43; 마가복음 8:38 비교) 

 

 

마가복음 8~10장. 이 교재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주해

구주의 성역 중 마가복음 8~10장에 나오는 구주의 성역에서 있었던 가르침과 사건들 다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온다. 이런 가르침과 사건에 대한 주해를 이 학생 교재의 어느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지 다음 도표에서 확인한다.

마가복음에서의 주제의 위치

이 교재에 나오는 주해

마가복음 8:10~12.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하다.

마태복음 16:1~4

마가복음 8:14~21.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태복음 16:6~12

마가복음 8:27~30.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태복음 16:13~19

마가복음 8:31. “인자”

마태복음 8:20; 9:6; 10:23; 11:19; 12:8, 32, 40

마가복음 9:1~13.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변형되셨다.

마태복음 17:1~13, 마태복음 17:2, 마태복음 17:3, 마태복음 17:3~5, 마태복음 17:3~9(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신권 열쇠를 받음); 마태복음 17:3~9(변형의 산에서 일어난 일)

마가복음 10:13~16.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라

마태복음 19:13~15

마가복음 10:2~12. 결혼과 이혼에 관한 가르침

마태복음 19:1~12  마태복음 19:9

마가복음 10:17~31. 부자 청년

마태복음 19: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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