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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마가 복음 1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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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예수께서 변형되심. 벙어리 귀신을 쫓아 내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심. 가장 큰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Jesus is transfigured on the mountain—He casts out a dumb and deaf spirit—He teaches concerning his death and resurrection; who shall be greatest; and the condemnation of those who offend his little ones.

마가복음 8~10장 소개 및 연대

8~10장은 마가복음의 전환점에 해당한다. 지금까지는 구주께서 성역을 베푸실 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신성 모독자라고 했고, 서기관들은 그분이 악마의 권능을 지녔다고 비난했으며, 거라사에 사는 지방 사람들은 그분을 두려워하며 그 지역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했다.(마가복음 2:7; 3:22; 5:15~17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그분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선생이나 기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여기기는 했지만(마가복음 1:40; 5:23, 28; 6:56 참조), 그분과 가장 가까웠던 이들도 그분을 아는 데는 더디었다.(마가복음 1:22; 4:41; 6:2, 51~52 참조)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이런 혼동은 그들이 “영적 소경”임을 나타낸다. 마가복음에는 구주의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 일이 종종 나온다. 8~10장에 기록된 사건과 가르침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결국에는 인간의 영적 원수를 이기실 메시야로 알아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마가복음 8~10장에는 구주께서 세 차례에 걸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임박한 고통과 죽음, 부활에 대해 가르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마가복음 8:31~33; 9:30~32; 10:32~34 참조) 구주는 예언을 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그들의 역할에 대한 가르침을 조금 더 주시면서 그들의 “이해력”을 밝혀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에 겸손과 고통, 죽음이 수반되듯이, 제자의 사명에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잃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수반된다.(마가복음 8:34~38; 9:32~37, 43~48; 10:35~45 참조)  

막 9: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And he said unto them, Verily I say unto you, That there be some of them that stand here, which shall not taste of death, till they have seen the kingdom of God come with power.

 

막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And after six days Jesus taketh with him Peter, and James, and John, and leadeth them up into an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and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막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And his raiment became shining, exceeding white as snow; so as no fuller on earth can white them.

 

막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And there appeared unto them Elias with Moses: and they were talking with Jesus.

(조막9:3) 이에 그 곳에 모세와 더불어 일라이어스, 곧 다른 말로 하면 침례 요한과 모세가 그들에게 나타났더라. 그리고 그들이 예수와 더불어 말씀하더라.

마가복음 9:4. 일라이어스

조셉 스미스 역에는 침례 요한도 변형의 산에 나타났다고 명시되어 있다.(조셉 스미스 역 성경, 마가복음 9:3[경전 안내서] 참조) 침례 요한이 예수님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나타난 것은 후기에 아론 신권을 회복하러 올 그의 역할을 나타내는 전조였다. 경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많은 일들이 변형의 산에서 일어났다.(베드로후서 1:16~19; 교리와 성약 63:21 참조) “일라이어스”라는 용어를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7:3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17:3. 일라이어스

구주의 변형이 나오는 마태복음의 기록에서 엘리야라는 이름은 선지자 엘리야를 지칭하는 것이다.(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마태복음 17장 3절에는 ‘일라이어스(Elias)’라고 나와 있다—옮긴이) 경전 안내서에는 일라이어스라는 이름 또는 칭호가 경전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고 설명되어 있다.

엘리야: 마 17:3~4, 눅 4:25~26, 그리고 약 5:17에 있는 것처럼 일라이어스는 엘리야(히브리어)의 신약전서(그리스어) 형태이다. 이러한 경우를 살펴 보건대, 일라이어스는 열왕기상하에 그의 성역이 기록되어 있는 고대 선지자 엘리야이다.

예비자: 일라이어스는 또한 예비자에 대한 칭호이다. 예를 들어, 침례 요한은 그가 예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내어졌기 때문에 하나의 일라이어스였다.(마 17:12~13)

회복자: 일라이어스라는 칭호는 또한 계시자 요한(교성 77:14), 그리고 가브리엘(눅 1:11~20; 교성 27:6~7; 110:12)처럼 성취할 특정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적용되어 왔다.

아브라함의 경륜의 시대의 한 사람: 아브라함의 시대에 살았으며 이사이어스 또는 일라이어스라 불리었던 선지자(교성 84:11~13; 110:12)”(경전 안내서, “일라이어스”; scriptures.lds.org)

일라이어스라는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께도 적용될 수 있다.(조셉 스미스 역, 요한복음 1:28[경전 안내서])

조셉 스미스 역에는 침례 요한이 구주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도록 보내진 일라이어스였다는 것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알았으며, 또한 또 다른 일라이어스가 “선지자들이 기록한 대로, 와서 만유를 회복”할(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17:10~14[경전 안내서] 것임이 드러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 역시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일라이어스였다.

막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And Peter answered and said to Jesu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and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 one for thee, and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as.

 

막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For he wist not what to say; for they were sore afraid.

 

막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And there was a cloud that overshadowed them: and a voice came out of the cloud,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hear him.

 

막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And suddenly, when they had looked round about, they saw no man any more, save Jesus only with themselves.

 

막 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And as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he charged them that they should tell no man what things they had seen, till the Son of man were risen from the dead.

 

막 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And they kept that saying with themselves, questioning one with another what the rising from the dead should mean.

 

막 9: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And they asked him, saying, Why say the scribes that Elias must first come?

 

막 9: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And he answered and told them, Elias verily cometh first, and restoreth all things; and how it is written of the Son of man, that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set at nought.

 

막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But I say unto you, That Elias is indeed come, and they have done unto him whatsoever they listed, as it is written of him.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And when he came to his disciples, he saw a great multitude about them, and the scribes questioning with them.

 

막 9: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And straightway all the people, when they beheld him, were greatly amazed and, running to him saluted him.

 

막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And he asked the scribes, What question ye with them?

 

막 9: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And one of the multitude answered and said, Master, I have brought unto thee my son, which hath a dumb spirit;

마가복음 9:17~29.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그 믿음이 작을지라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신약전서에서 구주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울부짖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인용했다.(마가복음 9:24) 홀런드 장로는 이 이야기에서 배우는 세 가지 교훈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점은, 신앙의 시련을 맞았을 때 그 아버지는 먼저 자신의 힘을 단언한 후에 한계를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처음 했던 ‘내가 믿나이다’라는 선언은 확정적이었으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더 큰 신앙을 소망하시는 모든 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사람을 기억하십시오! 두려움이나 의심, 고난의 시기가 오면, 먼저 여러분에게 이미 있는 신앙을 붙드십시오. 그 신앙이 비록 작고 부족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인 이 필멸의 시간에서, 그 아이가 겪은 고통이나 그 부모에게 닥친 고초, 절망에 버금가는 영적인 시련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고 시련이 닥칠 때,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즉시 주어지지 않을 때,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굳게 붙들고 더 많은 지식이 주어질 때까지 굳건하게 견디십시오. 

두 번째로 알 수 있는 점은 첫 번째 사항을 약간 변경한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고 의심이 들 때, 신앙을 탐구해 나가는 여정을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말하면서 ‘불신’부터 시작하지는 마십시오. … 저는 여러분에게 없는 신앙을 있는 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여러분에게 있는 신앙에 진실하라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의심이 있음을 정직하게 선언하는 것이 신앙이 있음을 선언하는 것보다 더 높은 도덕적 용기의 표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경전 속 일화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를 기억합시다. 여러분이 느끼는 의문에 솔직하십시오. 삶에는 이런저런 의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가족들이 치유받기 원한다면, 신앙이 기적을 이루려 할 때 의심이 그 길을 가로막지 않게 하십시오. …

마지막 사항입니다. 의심이나 고난이 올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이 일화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겸손하고 정직하게 바란다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그런 정직한 소망과 바람을 ‘마음의 뜻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서 위선이나 거짓을 행함이 없이’ 추구하는 ‘진정한 의도’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니파이후서 31:13] 그렇게 끈질기고 간절하게 탄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휘장 양편에서 도움을 줄 이들을 보내실 것이며 우리의 믿음은 강화될 것임을 간증드립니다.”(“내가 믿나이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93~94쪽) 

막 9: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And wheresoever he taketh him, he teareth him: and he foameth, and gnasheth with his teeth, and pineth away: and I spake to thy disciples that they should cast him out; and they could not.

마가복음 9:18, 28~29. 영적 힘을 키우는 기도와 금식(또한 마태복음 17:19~21 참조)

귀 먹고 말 못하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구주께서는 마가복음 9장 28~29절에 기록되어 있듯이(또한 마태복음 17:19~21 참조) 그 기회를 활용해 제자들에게 금식과 기도의 힘을 가르치셨다 신앙에 충실함 책자에는 그 경험이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 기록은 기도와 금식이 신권의 축복을 주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기록은 또한 복음대로 생활하려는 개인적인 노력에 적용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극복하려고 애썼던 약점이나 죄가 있을 경우, 여러분은 필요한 도움이나 용서를 받기 위해 금식과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것처럼, 여러분의 어려움도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신앙에 충실함: 복음 참고서[2004], 43쪽) 금식 기도가 약점과 부족한 신앙을 극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더 알고 싶다면, 마태복음 4:2 주해를 참조한다.

막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He answereth him, and saith, O faithless generation, how long shall I be with you? how long shall I suffer you? bring him unto me.
막 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And they brought him unto him: and when he saw him, straightway the spirit tare him; and he fell on the ground, and wallowed foaming.
막 9: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And he asked his father, How long is it ago since this came unto him? And he said, Of a child.
막 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And ofttimes it hath cast him into the fire, and into the waters, to destroy him: but if thou canst do any thing, have compassion on us, and help us.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Jesus said unto him, If thou canst believe, all things are possible to him that believeth.

 “신앙은 하나님의 종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옵니다. 간증은 항상 예언과 계시의 영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143쪽)

막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And straightway the father of the child cried out, and said with tears, Lord, I believe; help thou mine unbelief.

 “신앙으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주님에게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의 권능으로 고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해로운 질병이나 질환 또는 역병은 없습니다. 신앙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관해서든 죽음에 관해서든 그 어떠한 것도 앞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의로운 사람들조차도, 신앙이나 권능을 누리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질병은 다른 것보다도 더 큰 병고침의 권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브르스 알 맥콩키, 신약 교리 주해서, 1:409)

막 9: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When Jesus saw that the people came running together, he rebuked the foul spirit, saying unto him, Thou dumb and deaf spirit, I charge thee, come out of him, and enter no more into him.
막 9: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And the spirit cried, and rent him sore, and came out of him: and he was as one dead; insomuch that many said, He is dead.
막 9: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But Jesus took him by the hand, and lifted him up; and he arose.
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And when he was come into the house, his disciples asked him privately, Why could not we cast him out?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And he said unto them, This kind can come forth by nothing, but by prayer and fasting.

 “신중하게 실시된 금식과 진실한 기도는 선을 행할 권능을 부여해주며 신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이 원리를 개인적으로 적용해도 유익할 수 있다. 신앙이 약해진 적이 있는가? 죄악에 빠져서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적은 없는가? 그리스도께서 꾸짖었던 [아이의] 몸 안에 있는 악한 귀신과 같이, 여러분의 죄도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만이 쫓아낼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 (제임스 이 탈매지, 예수 그리스도, 402쪽)

막 9: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And they departed thence, and passed through Galilee; and he would not that any man should know it.

 

막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For he taught his disciples, and said unto them, The Son of man is delivered into the hands of men, and they shall kill him; and after that he is killed, he shall rise the third day.

 

막 9: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But they understood not that saying, and were afraid to ask him.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And he came to Capernaum: and being in the house he asked them, What was it that ye disputed among yourselves by the way?

마가복음 9:33~37; 10:35~45. 봉사와 지도력에 대한 구주의 가르침(또한 마태복음 18:1~5; 20:20~28; 누가복음 22:24~26 참조)

마가복음 9장 33~37절  마가복음 10장 35~45절에 기록된 일화는 사도들이 하나님 왕국의 지도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각 일화에서 구주께서는 그들의 부름이 영광과 명예를 얻는 일이 아니라 겸손히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임을 참을성 있게 가르치셨다.

마가복음 10장 35~45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 나아가 질문을 하나 여쭈었다. 그들은 영원한 왕국에서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 명예로운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구주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면서, 자신이 견뎌야 할 모든 일을 그들이 견딜 수 있겠냐고 물으시고는 그런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결정하실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후 예수님은 십이사도들을 자기 주위로 모아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이방인의 지도자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시켰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모든 이를 섬기는 종이다.

스펜서 제이 콘디 장로는 칠십인의 일원으로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지도력은 곧 봉사라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솔로몬이 40년간 통치한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이 되기 위해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는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지 장로들의 조언을 구했으며, 그들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열왕기상 12:7, 기울임체 추가) 구주께서도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9:35) 하나님의 왕국에서 이끈다는 것은 곧 봉사한다는 것입니다.”(“지도자의 자질에 관한 경전의 가르침”, 성도의 벗, 1990년 7월호, 32~33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주님의 교회 지도자들이 “어디에서 봉사하느냐보다 어떻게 봉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은 교회 직책으로 승영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충실함을 통해 승영에 이릅니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직책에 연연하고 종보다 주인이 되려고 힘쓰며 봉사하는 사람의 영과 그 일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때때로 종과 주인에 관한 혼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 9:34~35, 기울임체 추가]”(“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성도의 벗, 1996년 7월호, 16쪽) 

막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But they held their peace: for by the way they had disputed among themselves, who should be the greatest.
막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And he sat down, and called the twelve, and saith unto them, If any man desire to be first, the same shall be last of all, and servant of all.
막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And he took a child, and set him in the midst of them: and when he had taken him in his arms, he said unto them,

마가복음 9:36~37. 구주께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구주께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 상세하게 나온다. 이 추가된 부분에는 구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 아이 하나와 같이 겸손하며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의 이름으로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 곧 아버지도 받아들이는 것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9:34–35) 

막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Whosoever shall receive one of such children in my name, receiveth me: and whosoever shall receive me, receiveth not me, but him that sent me.

 “주님의 지상 왕국에서의 참된 위대함은 지위나 탁월함의 경지에 이른 것, 인간의 영예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부적인 장점과 선함에 의해 측정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된 사람들과 스스로 하나님의 속성을 얻은 사람들은 그들이 봉사하도록 부름받을 수 있는 위치와 상관없이‘하늘 왕국에서 가장 큰 자’인 것입니다.” (브르스 알 맥콩키, 신약 교리 주해서, 1:415)

막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And John answered him, saying, Master, we saw one casting out devils in thy name, and he followeth not us: and we forbad him, because he followeth not us.

마가복음 9:38~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또한 누가복음 9:49~50 참조)

구주께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마가복음 9:4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라는 말씀과(마태복음 12:30)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두 말씀은 그 맥락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야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 12장에 기록된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은 구주께서 귀신의 능력으로 악령을 쫓아냈다고 말했다. 구주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악령을 내쫒았으며 바리새인들은 자신에 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할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태복음 12:30; 마태복음 12:30 주해 참조)

마가복음 9장 38~40절에는 다른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서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분명한 어떤 사람이 악령을 쫓아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그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염려를 나타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마가복음 9:38)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요한이 염려를 나타낸 몇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 사람은 우리 제자들과 같이 다니고, 먹고, 잠자고, 선생님과 함께 계속 친교를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가복음에는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한다고 나온다.[누가복음 9:49; 기울임체 추가] 즉, 그 사람은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주님이 하신 대답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왕국의 회원이었으며, 신권 권세와 신앙의 힘으로 적법하게 성역을 베푸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요한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에게 권세가 없다고 잘못 추정했거나, 악령을 쫓아낼 힘은 제한적으로 십이사도만 받았을 뿐 모든 충실한 신권 소유자들까지 받은 것은 아니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악령을 쫓아낸 사람은 칠십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누가복음 10:1, 17 참조]”(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417)

마가복음 9장 40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요한과 십이사도들은 구주의 대답을 듣고서, 그 사람이 십이사도는 아니지만 권세를 받은 제자임을 알고 안심했다. 

막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But Jesus said, Forbid him not: for there is no man which shall do a miracle in my name, that can lightly speak evil of me.
막 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For he that is not against us is on our part.
막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For whosoever shall give you a cup of water to drink in my name, because ye belong to Christ, verily I say unto you, he shall not lose his reward.

 

막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And whosoever shall offend one of these little ones that believe in me, it is better for him that a millstone were hanged about his neck, and he were cast into the sea.

마가복음 9:42~48.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마가복음 9장 42~48절에서 “범죄하게 [한다](offend)”라는 말은 그리스어 skandalizō에서 유래하며, “길에 장애물 또는 방해물을 놓다, 죄를 짓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구주께서는 죄를 범하게 하는 우리의 손, 발, 또는 형제가 있으면 그것을 잘라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관계나 영향력은 아무리 소중할지라도 우리 삶에서 제거해야 함을 가르치셨다. 칠십인 회장단의 월터 에프 곤잘레스 장로는 우리 삶에서 무가치한 영향력을 “찍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며 조셉 스미스 역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인용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네 손이 너로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혹 만일 네 형제가 너로 범죄하게 하고 고백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면 그를 끊어 버리라.’(조셉 스미스 역 성경, 마가복음 9:40[경전 안내서]; 기울임체 추가)

다행스럽게도, 구주께서는 친히 우리의 손을 찍어버리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일의 [역경에] 대비할 수 없게 만드는 영향들을 오늘 우리의 생활에서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만일 제게 나쁜 영향을 주는 친구가 있다면, 여기 분명한 충고가 있습니다. ‘이는 네가 네 형제 없이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와 네 형제가 지옥에 던져[지는] … 것보다 나음이니.’(조셉 스미스 역 성경, 마가복음 9:41[경전 안내서]; 기울임체 추가) 주님께서는 니파이에게 위험한 영향력이 되어버린 그의 형제들을 떠나라고 경고하실 때 같은 원리를 적용하셨습니다.(니파이후서 5:5 참조)

그처럼 끊어 버린다는 것은 친구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텔레비전 쇼, 인터넷 사이트, 영화, 문학, 게임 또는 음악과 같은 모든 악한 영향에 해당됩니다. 우리의 영혼에 이 같은 원리를 새기게 되면 어떤 종류의 나쁜 영향력에도 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오늘이 바로 그때입니다”,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54~55쪽) 이 가르침을 좀 더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5:29~30 주해를 참조한다.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And if thy hand offend thee, cut it off: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maimed, than having two hands to go into hell, into the fire that never shall be quenched:

(조막9:40) 그러므로 만일 네 손이 너로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혹 만일 네 형제가 너로 범죄하게 하고 고백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면 그를 끊어 버리라. 네가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4 (없음)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조막9:41)  이는 네가 네 형제 없이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와 네 형제가 지옥에 던져져 결코 꺼지지 아니할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음으니 그 곳은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는 곳이니라.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And if thy foot offend thee, cut it off: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halt into life, than having two feet to be cast into hell, into the fire that never shall be quenched:

(조막9:42)  그리고 또 만일 네 발이 너로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그 곁을 네가 걸을 때 네 깃발이 되는 자, 만일 그가 범법자가 되거든 그를 끊어버리라.

막 9:46 (없음)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조막9:43-45) 네가 다리 저는 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결코 꺼지지 아니할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하게 하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게 하라. 내 아버지께 구하라. 그리하면 만일 너희가 받게 되리라 믿으면서 신앙으로 구하면 너희가 구하는 것이 바로 그때에 이루어지리라.

“닥쳐올 어려움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이 사업의 진리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습득해야 할 지식이나 증거가 없는 사람들에게 바로 이러한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간증을 얻지 못했다면 의롭게 살면서 주님께 간구하고, 그것을 얻을 때까지 그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

“어떤 남자나 여자도 빌린 등불로는 견딜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내부에 있는 등불로 인도받아야 할 것입니다. …”

“여러분에게 그러한 등불이 없으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구하고 잘 간직하십시오, 그리하여 시련의 때가 오더라도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올슨 에프 휘트니, 히버 시 킴볼의 생애, 3판, [1967년], 450쪽)

막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And if thine eye offend thee, pluck it out: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with one eye, than having two eyes to be cast into hell fire:

(조막9:46-47) 그리고 만일 너를 위하여 보는 너의 눈, 즉 네게 빛을 보여주기 위하여 너를 살펴보도록 지명된 자가 범법자가 되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그를 빼어 버리라. 네가 한쪽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으로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리라.

막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조막9:48) 이는 네 자신이 구원받음이 네 형제와 더불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음이라. 그 곳은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곳은 불이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For every one shall be salted with fire, and every sacrifice shall be salted with salt.

마가복음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9장 43~48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구주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왕국에 들어가려면, 삶에서 (손, 발, 눈으로 상징된) 적절하지 않은 측면들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마가복음 9장 49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어서 구주께서는 사람을 온전히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로마서 12:1 비교)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소금과 불을 사용하여 제물을 바쳤다. 소금은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성약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었으며(레위기 2:13 참조), 불은 종종 영적 보존, 정결, 시련,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헌신 등을 상징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 마가복음 9장 49절에서 가르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든 교회 회원은 ‘죽음에 이르기까지’(교리와 성약 98:14) 성약에 따라 생활할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모든 것에서 시험과 시련을 받게 될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421)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ltness, wherewith will ye season it? Have salt in yourselves, and have peace one with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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