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계. TITLE

주석 누가 복음 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Prev Chap. Next Chap.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소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하라는 명령.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리스도의 탄생. 예루살렘에 가서 할례를 받음. 시므온과 안나의 예언. 열두살때의 일. Angelic ministrants herald the birth of Jesus in Bethlehem—He is circumcised, and Simeon and Anna prophesy of his mission—At twelve years he is about his Father’s business.

누가복음 1~3장 소개 및 연대

누가복음의 1~3장은 천사 가브리엘(노아)의 간증으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친히 선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으로 끝이 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속 사명에 대한 수많은 증언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이 장들에는 사가랴, 엘리사벳, 마리아, 천사 무리, 목자들, 시므온 및 안나의 증언과 더불어 예수께서 열두 살 소년이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 말씀하신 사실이 실려 있다. 누가는 또한 구주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요셉이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예수님의 아버지이나(누가복음 3:23)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언급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단언했다.

또한 누가복음 1장에서는 가브리엘이 선언하고 사가랴가 예언한, 침례 요한의 예임된 사명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3장에는 요한이 사람들이 구주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사명을 어떻게 완수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으며, 경전의 다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요한의 일부 가르침이 담겨 있다.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And it came to pass in those days, that there went out a decree from Caesar Augustus, that all the world should be taxed.

누가복음 2:1~6.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가이사 아구스도는 주전 31년부터 주후 14년까지 질서와 합법성으로 로마를 다스렸던 유능하고 활동적인 통치자였다. 누가복음 2장 2절에 언급된 “호적”이란 실제로는 등록한 사람들에게 향후 세금을 징수할 목적으로 행해졌으며, 납세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둘 다 다윗 왕의 후손이었기에, 그들은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다. 또한 요셉이 베들레헴에 재산이 있어서 베들레헴에서 등록하도록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대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예루살렘 땅에 있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증언했다.(미가 5:2; 앨마서 7:10 참조)

베들레헴은 나사렛에서 남쪽으로 약 137~14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도보로는 적어도 4~5일 정도 걸렸는데 아마도 마리아의 상태를 고려해 보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캐러밴서리[caravansary]로 알려진 여관에 머물렀는데, 직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여행자들은 방에서 문을 열고 자신의 동물을 맡겨 둔 중앙 안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조셉 스미스 역을 보면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들”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머물 방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여관에는 빈방이 없었을 것이며, 구주께서 탄생하신 그 밤에 마리아와 요셉은 여관의 북적거리는 안뜰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그곳에는 당나귀, 개, 황소, 낙타 등 여행자들의 동물이 있었다. 

눅 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And this taxing was first made when Cyrenius was governor of Syria.)
눅 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And all went to be taxed, every one into his own city.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And Joseph also went up from Galilee, out of the city of Nazareth, into Judaea, unto the city of David, which is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of the house and lineage of David:)
눅 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To be taxed with Mary his espoused wife, being great with child.

누가복음 2:5. “약혼한 [여성]”

신약 시대의 “약혼” 전통에 관해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1:18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1:18.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사이의 결혼은 양가의 가장, 주로 아버지들이 주선하고 동의하여 이루어졌다. 신랑의 아버지 또는 그 집안의 가장이 신부가 될 만한 여성을 찾으면,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중점을 두는 것 중 하나는 신랑의 아버지나 가장이 신부의 가족에게 지불하는 “신붓값”, 즉 지참금의 상대 개념이라 할 돈의 액수였다. 결혼이 합의되면, 결혼식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즉 약혼과(마태복음 1:18 참조) 결혼식이었다.

약혼은 그 뒤에 하는 결혼식보다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더 중요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후에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약혼은 엄숙한 성약의 마지막 부분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쪽 당사자들이 준수해야 할 성약으로서 구속력이 있었다.(창세기 2:24; 에스겔 16:8; 에베소서 5:21~33 참조) 약혼한 남녀는 법적으로 남편과 아내로 간주되었지만(신명기 22:23~24 참조), 약혼과 결혼식 사이의 기간에는 엄격한 순결 규정을 지켜야 했다.(마태복음 1:18, 25 참조) 약혼한 젊은 남자는 상대인 젊은 여성에 대한 법적 소유권이 있었지만, 그것이 육체적인 소유를 뜻하지는 않았다.

눅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And so it was, that, while they were there, the days were accomplished that she should be delivered.

 

눅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And she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and wrapped him in swaddling clothes,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누가복음 2:7. “강보”

강보[Swaddling Clothes]란 일반적으로 작은 젖먹이를 단단히 싸매는 담요나 천 조각을 말한다. swaddle이란 말은 “편안하게 감싸다”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2:7. 초라한 탄생

칠십인 정원회의 브루스 디 포터 장로는 우리가 구주의 초라한 탄생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분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탄생은 사람의 태생이 미천하거나 가난하거나, 신분이 평범하거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 아니거나 하는 문제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문자 그대로, 또는 비유적으로,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해서, 세상에서 떨어져 살도록 강요받았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며, 동물들의 거처도 더 품격 있는 다른 처소만큼이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일지도 모른다. … 그리스도의 탄생과 소박한 성장 과정은 태생이나 세속적인 신분 때문에 누구를 절대로 멸시하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킨다. 초라한 사람들을 멸시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녀들을 멸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The King of Kings [2000], 26)

눅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And there were in the same country shepherds abiding in the field,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And, lo, the angel of the Lord came upon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round about them: and they were sore afraid.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And the angel said unto them, Fear not: for, behold, I bring you good tidings of great joy, which shall be to all people.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And this shall be a sign unto you; Ye shall find the babe wrapped in swaddling clothes, lying in a manger.

 

눅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And suddenly there was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good will toward men.

 

눅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And it came to pass, as the angels were gone away from them into heaven, the shepherds said one to another, Let us now go even unto Bethlehem, and see this thing which is come to pass, which the Lord hath made known unto us.

 

눅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And they came with haste,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babe lying in a manger.

 

눅 2: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And when they had seen it, they made known abroad the saying which was told them concerning this child.

 

눅 2: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And all they that heard it wondered at those things which were told them by the shepherds.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But Mary kept all these thing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누가복음 2:19, 51.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누가는 목자들이 방문했을 때, 그리고 성전에서 열두 살 난 예수님을 찾았을 때, 마리아가 그 사건들과 모든 말을 깊이 생각하였으며, “마음에” 새기었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 2:19, 51) 그녀의 행위는 성스러운 경험을 소중히 다루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간증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성스러운 경험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나누라는 속삭임이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은 조심해서 간직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도록 영이 직접 우리에게 그 경험을 사용하라고 권고하실 때에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

한번은 매리온 지 롬니 회장님께서 여러 선교부 회장님들과 그 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 만일 제가 신성한 것을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면 그다음에는 주님께서 저를 신뢰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대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출생을 둘러싼 여러 사건에 대하여 행한 것처럼, 우리도 이런 영적인 경험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주님의 등불”, 성도의 벗, 1983년 10월호, 31~32쪽) 

눅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And the shepherds returned,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e things that they had heard and seen, as it was told unto them.

 

눅 2: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And when eight days were accomplished for the circumcising of the child, his name was called JESUS, which was so named of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눅 2: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And when the days of he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were accomplished, they brought him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누가복음 2:22~24. 마리아가 물질적으로 가난했음이 그녀가 드린 제물에서 나타나다

모세 율법에는 출산한 여인은 경배 의식에 참여하기에 정결하지 않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어머니가 된 여인은 정결해지기 위해 성전에 번제로 어린 양 한 마리를, 그리고 속죄제로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만 했다.(레위기 12:5~6 참조) 또한,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와야 했다.(레위기 12:8) 마리아가 어린 양 대신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를 바쳤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증거이다.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male that openeth the womb shall be called holy to the Lord;)
눅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And to offer a sacrifice according to that which is sai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turtledoves, or two young pigeons.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And, behold,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whose name was Simeon; and the same man was just and devout, waiting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Ghost was upon him.

누가복음 2:25~38. 시므온과 안나의 증언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시므온과 안나가 성신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임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사십 일이 지난 뒤 주님께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고령에 이른 영적인 성전 봉사자 두 명이 그분의 신분에 대해 증거를 받고 그분에 대해 간증하였습니다.

안나와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목격했지만 그들도 [구주의]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신성한 사명에 관한 지식을 성신에 의한 증거를 통해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요한계시록 19:10) 그러므로, 시므온과 안나가 각기 그 증거를 받았을 때 그들이 선지자와 여선지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을 함으로써 선지자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43) 이것은 또한 모세가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기원했을 때 의미했던 것입니다. (민수기 11:29)” (“그리스도의 증인”, 성도의 벗, 1991년 1월호, 34쪽) 

눅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And it was revealed unto him by the Holy Ghost, that he should not see death,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Christ.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And he came by the Spirit into the temple: and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do for him after the custom of the law,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Then took he him up in his arms, and blessed God, and said,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Lord, now lettest thou thy servant depart in peace, according to thy word: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For mine eyes have seen thy salvation,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Which thou hast prepared before the face of all people;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A light to lighten the Gentiles, and the glory of thy people Israel.
눅 2: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And Joseph and his mother marvelled at those things which were spoken of him.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And Simeon blessed them, and said unto Mary his mother, Behold, this child is set for the fall and rising again of many in Israel; and for a sign which shall be spoken against;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Yea, a sword shall pierce through thy own soul also,) that the thoughts of many hearts may be revealed.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And there was one Anna, a prophetess,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er: she was of a great age, and had lived with an husband seven years from her virginity;
눅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And she was a widow of about fourscore and four years, which departed not from the temple, but served God with fastings and prayers night and day.
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And she coming in that instant gave thanks likewise unto the Lord, and spake of him to all them that looked for redemption in Jerusalem.
눅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And when they had performed all things according to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into Galilee, to their own city Nazareth.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And the child grew, and waxed strong in spirit, filled with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누가복음 2:40. 예수님의 어린 시절

비록 경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관한 내용이 조금 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몇 가지 강력한 교훈을 배우기에는 충분하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관해 밝혀진 바를 이렇게 요약했다.

“현재 우리의 영적인 이해력 상태를 볼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얻는 것은 의도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틀림없이 복천년 동안에는 그 부분을 완전히 알게 될 것이다. 그날에 주님께서 ‘그 모든 일을 드러내’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교리와 성약 101:32) 그러나 현재 알려진 그러한 지식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을 수 있다. 마리아의 아들은 (1) 그 시대의 통상적인 활동과 경험을 했으며, (2) 지상에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과 영적인 능력을 축복받았다. 그분이 순종적이며 죄가 없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필멸의 삶의 제한과 시험을 당하셨으며, 모든 것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유혹을 받았고(히브리서 2:10~18; [4:15]; 5:8~9), 그리고 ‘계속하여 은혜에 은혜를’ 받으셨으며 (부활 후에) 마침내 ‘아버지의 영광의 충만함을 받으셨고’ 자신의 구원을 완전케 하셨다. (교리와 성약 93:6~16)”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111)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대해 경전상의 통찰을 더 얻으려면, 마태복음 2:23 주해  Bible Dictionary, Education을 참조한다. 

눅 2: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Now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every year at the feast of the passover.

 

눅 2: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And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to Jerusalem after the custom of the feast.

 

눅 2: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And when they had fulfilled the days, as they returned, the child Jesus tarried behind in Jerusalem; and Joseph and his mother knew not of it.

 

눅 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But they, supposing him to have been in the company, went a day’s journey; and they sought him among their kinsfolk and acquaintance.

 

눅 2: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And when they found him not, they turned back again to Jerusalem, seeking him.

 

눅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And it came to pass, that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itting in the midst of the doctors, both hearing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누가복음 2:46. “성전에서 만난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렸을 때 성전에 계셨으며, 성역 내내 계속해서 성전에 머무셨다. 성전은 그분에게 영감과 힘의 원천이었다.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은 기사는 구주께서 지상 생활을 통해 성전의 중요성을 드러내 보이신 방식의 일면이라고 설명했다.

“예수께서 어린 시절에 많은 가르침을 받으셨던 곳은 바로 성전이었다. 그곳에서 그분은 아버지의 사업을 하기 위해 받았던 영적인 통찰을 드러내셨다. 성전에서 구주께서는 자신의 메시야적 사명을 밝히셨다. 시므온은 영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왔다. 그리고 그가 성신을 통해 받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성전에서 성취되었다.(누가복음 2:18~29 참조) 누가복음의 마지막 성구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누가복음 24:52~53) 만일 성전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 중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면, 왜 사도들이 계속해서 성전에 있었겠는가?” (James P. Bell, In the Strength of the Lord: The Life and Teachings of James E. Faust [1999], 444–45) 

눅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And all that heard him were astonished at his understanding and answers.

누가복음 2:46~47. “듣는 자가 다 … 놀랍게 여기더라”

조셉 스미스 역에 보면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던 박사들이 “그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에게 묻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조셉 스미스 역, 누가복음 2:46[경전 안내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년이었을 때에도 예지 면에서 모든 필멸의 사람보다도 뛰어나셨다고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년이었을 때 그분은 유대인 왕국을 통치하고 다스릴 만한 예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고, 가장 현명하며 율법과 신학에 가장 조예가 깊은 학자들과 논하면서 그들의 이론과 실제를 자신의 지혜로 무색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History of the Church, 6:608) 사도 요한은 단지 열두 살에 불과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위대한 지식을 얻으셨는지에 대한 통찰을 전했다. 이는 요한복음 8장 25~30절에 기록되어 있다. 

눅 2: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And when they saw him, they were amazed: and his mother said unto him, Son, why hast thou thus dealt with us? behold, thy father and I have sought thee sorrowing.

 

눅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And he said unto them, How is it that ye sought me? wist ye not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눅 2: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And they understood not the saying which he spake unto them.

 

눅 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And he went down with them, and came to Nazareth, and was subject unto them: but his mother kept all these sayings in her heart.

누가복음 2:51.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는 말은 구주의 온유함에 관한 소중한 통찰을 제공한다.(누가복음 2:51) 그분은 세상의 창조주이셨으며 구약의 하나님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열두 살이셨지만, 영성과 이해력에서 요셉과 마리아보다도 뛰어나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필멸의 보호자들에게 “순종하여 받드시”었다. 세실 오 사뮤엘슨 이세 장로는 칠십인 회장단에서 봉사하던 시절, 구주께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신 것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때로 여러분은 부모와 지도자들이 마리아나 요셉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에 관한 중요한 질문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셨을 때,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그 부모[는]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누가복음 2:50]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행동에 특별히 주목해 보십시오! 그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성취하려고 노력할 경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모범이 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그들을]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누가복음 2:51~52]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의무가 가족들에 대한 의무, 특별히 여러분의 부모님과 분명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신권 지도자에게 합당하게 순종하는가에도 달려 있습니다.”(“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 리아호나, 2002년 1월호, 49쪽)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ur with God and man.

누가복음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시절에 이루신 발전은 우리의 개인적인 발전 측면에서 완전한 귀감이 된다고 가르쳤다.

“3년간의 공적인 성역을 준비하셨던 삼십 년 동안 그분은 어떠한 분이셨습니까? 신약에서 누가복음을 펴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현대 계시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러하심을 압니다. ‘처음에는 충만함을 받지 아니하셨으나 계속하여 은혜에 은혜를 받으시더니, 드디어는 충만함을 받으시더라.’ (교리와 성약 93:13)

우리 역시,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 우리 모두 우리의 지도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정신적, 신체적, 영적 및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주님의 발자취 따라”, 성도의 벗, 1989년 2월호, 3, 7쪽) 


Prev Chap. Next Ch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