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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누가 복음 14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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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다시 안식일에 고창병 걸린자를 고치심. 겸손을 가르치심. 큰 잔치를 배설하여 사람들을 청하는 주인의 비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함. Jesus again heals on the Sabbath—He teaches humility, and gives the parable of the great supper—Those who follow him must forsake all else.

누가복음 9~14장 소개 및 연대

누가복음 9~14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구주의 성역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 들었음을 보여 준다. 그분은 더 큰 책임을 맡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고, 십이사도와 칠십인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치유하도록 권능을 부여해서 그들을 내보내기 시작하셨다.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심, 기도, 신앙, 회개, 희생, 겸손, 인내 등 제자가 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면들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셨다. 그분은 또한 영적인 우선순위보다 현세적인 염려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과 위선에 대해 경고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면서부터 제자의 요건을 점점 더 강조하셨는데(누가복음 9:51), 그분은 자신이 그곳에서 고통받고 죽게 될 것임을 아셨다.(누가복음 9:22, 31 참조) 구주께서는 지상 사명 중 이 어려운 국면에 접어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모범을 보이셨으며, “모범의 힘”으로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강화하셨다.(Neal A. Maxwell, “The Pathway of Discipleship,” Ensign, Sept. 1998, 13)  

눅 14: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And it came to pass, as he went into the house of one of the chief Pharisees to eat bread on the sabbath day, that they watched him.

누가복음 14:1~6.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구주께서 지상 성역을 베푸시던 당시, 많은 유대인 지도자들은 자신이 안식일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동물은 기꺼이 구하려 하면서도 사람을 구하지 않는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셨다.(누가복음 13:15~16; 14:5~6 참조) 우리 시대에 일부 사람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과 모순되는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가복음 14장 5절에 근거한 “수렁에 빠진 소”라는 말을 사용한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안식일에 위급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고의로, 혹은 습관적으로 안식일을 합당하게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구주께서는 소가 안식일에 수렁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어떤 소도 매주 일부러 수렁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Conference Report, Oct. 1953, 55) 

눅 14: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And, behold, there was a certain man before him which had the dropsy.
눅 1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And Jesus answering spake unto the lawyers and Pharisees, saying, Is it lawful to heal on the sabbath day?
눅 14: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And they held their peace. And he took him, and healed him, and let him go;
눅 14: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And answered them, saying, Which of you shall have an ass or an ox fallen into a pit, and will not straightway pull him out on the sabbath day?
눅 14: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And they could not answer him again to these things.
눅 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And he put forth a parable to those which were bidden, when he marked how they chose out the chief rooms; saying unto them,

누가복음 14:7~11.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4장 1절에는 구주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셨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는 가르침의 배경을 이해하게 해 준다.(누가복음 14:11) 또한 7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명예로운 자리를 스스로 구했는지 눈여겨 보셨다고 나와 있다. “높은 자리”라는 말은 명예로운 자리를 의미한다. 관습에 따르면, 가장 명예로운 손님이 주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구주께서는 이 상황을 포착하여 겸손과 승영 간의 관계에 대한 영원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 또한 교리와 성약 101:42 참조) 

눅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When thou art bidden of any man to a wedding, sit not down in the highest room; lest a more honourable man than thou be bidden of him;
눅 14: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And he that bade thee and him come and say to thee, Give this man place; and thou begin with shame to take the lowest room.
눅 14: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But when thou art bidden, go and sit down in the lowest room; that when he that bade thee cometh, he may say unto thee, Friend, go up higher: then shalt thou have worship in the presence of them that sit at meat with thee.
눅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For whosoever exalteth himself shall be abased; and he that humbleth himself shall be exalted.
눅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Then said he also to him that bade him, When thou makest a dinner or a supper, call not thy friends, nor thy brethren, neither thy kinsmen, nor thy rich neighbours; lest they also bid thee again, and a recompence be made thee.

누가복음 14:12~24. 큰 잔치의 비유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겸손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누가복음 14장 12~14절에 기록된 대로 겸손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드셨다. 그분은 우리가 특히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을 잘 대해 줄 때, “의인들의 부활” 시에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런 다음 구주께서는 큰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4:15~24 참조) 이 비유에서 잔치는 복음의 축복을 나타낸다. 이 복음 잔치는 특별히 우리를 위해 준비되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만족감을 안겨 줄 수 있다. 우리는 잔치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초대를 거절할 수도 있다. 이 비유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복음 축복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들은 잔치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축복은 아직 초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졌다. 이 비유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나타내며, “잔치할 시각에 [종]”은 예수님과 그분의 사도들을 나타낸다.

후기의 계시에서는 이 비유를 다른 상황에 적용한다. 후기에는 모든 민족이 “주의 집의 만찬”에 초대될 것이다. 첫 번째로 “부자와 유식한 자, 현명한 자와 고귀한 자”가 초대받을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때에 가난한 자, 저는 자, 그리고 앞 못 보는 자, 그리고 듣지 못하는 자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와 … 예비된 주의 만찬을 취[할]” 것이다.(교리와 성약 58:9~11)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 중 하나가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한 말은(누가복음 14:15) 복천년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종들이 성찬 빵과 물을 함께 취할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교리와 성약 27:5~14 참조)

칠십인 정원회 일원으로 봉사하던 에프 버튼 하워드 장로 교리와 성약 58편 8~10절을 언급하면서, 이 성구들은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염려가 어떻게 복음의 축복을 취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주님께서 큰 잔치의 비유에 대해 직접 해설을 하시는 것이라면, 물론 그렇게 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이 현세적인 문제, 예를 들어 밭, 소 몇 마리, 또는 잔치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아내에 더 관심을 두었음을 주목할 때, 겁이 납니다. 이 비유에서 재물의 역할을 살펴볼 때, 우리는 거기에 큰 위험이 잠재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영원한 중요성을 띠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흐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Overcoming the World,” Sept. 1996, 13) 

눅 14: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But when thou makest a feast, call the poor, the maimed, the lame, the blind:
눅 14: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And thou shalt be blessed; for they cannot recompense thee: for thou shalt be recompensed at the resurrection of the just.
눅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And when one of them that sat at meat with him heard these things, he said unto him, Blessed is he that shall eat bread in the kingdom of God.
눅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Then said he unto him, A certain man made a great supper, and bade many:
눅 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And sent his servant at supper time to say to them that were bidden, Come; for all things are now ready.
눅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And they all with one consent began to make excuse. The first said unto him, I have bought a piece of ground, and I must needs go and see it: I pray thee have me excused.

누가복음 14:18~20. 변명을 늘어놓음

큰 잔치의 비유에 나오는 변명은 주인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 변명은 손님들이 사전에 참석하겠다고 이야기했더라도 결국 참석하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었다. 처음 두 명의 손님은 밭을 보지도 않고 구매하거나 시험도 안 해 보고 다섯 겨리의 비싼 황소를 사는 등 터무니없는 재정적 투기에 정성을 들이기 위해 잔치 참석을 거절했다. 자신이 최근에 결혼했다는 세 번째 손님의 변명은 좀 더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신명기 24:5 참조) 하지만 이것은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나오는, 배우자라도 주님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구주의 가르침에 대한 예가 된다.

칠십인 정원회 일원으로 봉사하던 에프 멜빈 하몬드 장로는 우리에게 변명하지 말고 주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하라고 권고했다. “우리가 주님의 잔치에 참석하려면 우리 삶에서 중요한 변화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이 그런 변화를 뒤로 미루며, 긴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비유는 ‘주님, 지금은 저를 성가시게 하지 마세요’ 비유로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핑곗거리를 대려고 합니다. 모든 합리화는 이기심에서 비롯되며, 거의 항상 현세적인 것들과 관련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지혜의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십일조의 법입니다. 마지못해 순결의 법에 따라 생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구주의 초대를 거절하거나 미루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 왕이신 그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Parables of Jesus: The Great Supper,” Apr. 2003, 52) 

눅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And another said, I have bought five yoke of oxen, and I go to prove them: I pray thee have me excused.
눅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And another said, I have married a wife, and therefore I cannot come.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So that servant came, and shewed his lord these things. Then the master of the house being angry said to his servant, Go out quickly into the streets and lanes of the city, and bring in hither the poor, and the maimed, and the halt, and the blind.

 

눅 14: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And the servant said, Lord, it is done as thou hast commanded, and yet there is room.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And the lord said unto the servant, Go out into the highways and hedges, and compel them to come in, that my house may be filled.

 

눅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For I say unto you, That none of those men which were bidden shall taste of my supper.

 

눅 14: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And there went great multitudes with him: and he turned, and said unto them,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If any man come to me, and hate not his father, and mother, and wife, and children, and brethren, and sisters, yea, and his own life also, he cannot be my disciple.

누가복음 14:26. “미워하[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맥락 속에서 “미워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덜 사랑하다” 또는 “덜 존경하다”라는 뜻이다. 구주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을 취소하신 것이 아니라(출애굽기 20:12) 우선순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셨다. 제자는 가족에 대한 헌신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 가르침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10:34~37 주해를 참조한다.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And whosoever doth not bear his cross, and come after me, cannot be my disciple.

누가복음 14:26~33. 희생은 모든 제자에게 요구된다

누가복음 14장 26~33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계속 제자로 남기 위해 기꺼이 치러야 하는 희생에 대해 가르치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감수한 새로운 개종자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받은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당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막 귀환한 상태였고, 수많은 가능성이 제 앞에 펼쳐진 듯했습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는 있을까요?

당시 고든 비 힝클리 장로님께서는 [1973년 4월 연차 대회에서] 아시아에서 온 한 젊은 해군 장교를 만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장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나 미국에서 훈련받는 동안 교회에 대해 배웠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모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힝클리 회장님께서 그 장교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님의 민족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형제님이 기독교인, 특히 몰몬 교인이 되어 귀국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장교는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제 가족은 실망하겠죠. … 저의 미래와 경력에 있어서 모든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힝클리 회장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기꺼이 치르시겠습니까?’

눈물에 젖은 어두운 눈빛을 한 그는 이런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복음이 참되지 않습니까?’

힝클리 회장님께서는 ‘예, 참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장교는 다시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The True Strength of the Church,’ Ensign, July 1973, 48 참조]

여러 해를 지내오면서 저는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음이 참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 질문은 제가 적절한 관점에서 어려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스물한 살의 청년으로서 힝클리 회장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학업에 전념할 필요가 있었으며, 학교에 계속 다니기 위해 일자리도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 특별한 젊은 숙녀가 저와 사귀어 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방법도 알아내야 했으며, 또한 저는 다른 가치 있는 활동을 즐겼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많은 일 중에서 어떻게 우리의 길을 찾습니까? 우리는 관점을 단순하게 만들고 순화시킵니다. 어떤 것은 악하며 피해야만 합니다. 어떤 것은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은 중요한 것이며, 어떤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이것이 참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74쪽) 

 

조셉 스미스 역, 누가복음 14:28. 계명에 따라 생활하라

칠십인 정원회 일원으로 봉사하던 래리 더블유 기븐스 장로는 복음에 정주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계명에 따라 생활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셉 스미스 역, 누가복음 14장 28절에서 주님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명하는 바를 명심하여 행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명심하라’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우리가 ‘명심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축복들이 있습니다.

젊은 형제 자매 여러분,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때, 인생의 유일한 참된 안전은 계명을 지키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

정직, 겸손, 순결, 지혜의 말씀, 그리고 성전 결혼과 관련하여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인생의 초기에 단호하게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곧고 좁은 길 위에, 아니, 곧고 좁은 길의 가운데에 머무십시오. 표류하지 마시고, 방황하지 마시고, 장난삼아 하지 마시고, 조심하십시오.

… 여러분이 계명에 따라 산다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이를 명심하라”,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103~104쪽)

눅 14: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For which of you, intending to build a tower, sitteth not down first, and counteth the cost, whether he have sufficient to finish it?
눅 14: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Lest haply, after he hath laid the foundation, and is not able to finish it, all that behold it begin to mock him,
눅 14: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Saying, This man began to build, and was not able to finish.
눅 14: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Or what king, going to make war against another king, sitteth not down first, and consulteth whether he be able with ten thousand to meet him that cometh against him with twenty thousand?
눅 14: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Or else, while the other is yet a great way off, he sendeth an ambassage, and desireth conditions of peace.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So likewise, whosoever he be of you that forsaketh not all that he hath, he cannot be my disciple.
눅 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easoned?

누가복음 14:34~35. 세상의 소금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구주의 가르침에 대한 더 많은 통찰을 얻고자 한다면, 마태복음 5:13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5:13.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소금은 짠 맛을 내고 식품을 보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또한 모세의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에도 뿌려졌다. 이렇게 소금은 기쁨, 영구성, 그리고 성약을 맺는 것과 연관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마태복음 5:13) 되라고 가르치셨을 때, 그 말씀은 그들의 삶이 주님과 맺은 성약을 반영해야 하고 세상 전반에서 방부제 역할을 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칠십인 정원회 회장단의 카를로스 이 애시(1926~1999) 장로는 소금은 오염되면 그 맛을 잃으므로, 우리는 영적인 오염을 피함으로써 우리의 “맛”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애시 장로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신권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전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우리 각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학자가 소금은 세월이 지나도 그 맛을 잃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불순물이 섞임으로써 맛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권의 권능도 세월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불순물이 섞임으로써 잃게 됩니다.

청년이나 성인 남자가 외설 문학에 생각을 쏟을 때 맛을 잃게 됩니다.

신권 소유자가 거짓말이나 불경스러운 말을 하면 맛을 잃게 됩니다.

우리 중에 대중을 따라 부도덕한 행위나 약물, 담배, 알코올 및 그 밖의 해로운 물질의 사용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맛을 잃게 됩니다.

불순한 생각으로 마음을 더럽히고, 진실이 아닌 말로 입을 속되게 쓰며, 악한 행동에 힘을 잘못 쓸 때 그 사람의 풍미와 특성은 사라져 버립니다. …

저는 특히 청년들이 자신의 맛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삼도록 이 간단한 지침을 드립니다. 깨끗하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참되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마십시오. 이 아닌 것은 행하지 마십시오.”(“세상의 소금: 그 맛과 인간의 구원자들”, 성도의 벗, 1980년 11월호, 64쪽) 

눅 14: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It is neither fit for the land, nor yet for the dunghill; but men cast it out. He that hath ears to hear, let him h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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