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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누가 복음 2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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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성찬식을 제정하심. 겟세마네에서의 고난. 배반당하여 사로잡히심. 베드로의 부인. 그리스도가 매맞고 조롱당하심. Christ institutes the sacrament—He suffers in Gethsemane, and is betrayed and arrested—Peter denies knowing him—Christ is smitten and mocked.

누가복음 18~22장 소개 및 연대

누가복음 18~22장은 구주의 지상 성역 마지막 주간에 그분이 예루살렘을 향하신 과정과 거룩한 성에 도착하신 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전한다. 이 장들은 누가복음 15장에 소개된 중요한 주제,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다는 주제를 보조한다.(누가복음 19:10; 또한 누가복음 15:6, 9, 24 참조) 따라서, 이 장들은 사회와 하나님에게서 스스로 멀어진 개인들에 대한 그분의 동정심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과부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에 속하며 세리는 가장 경멸을 받는 계층 중 하나인데도, 누가복음에 유일하게 기록된 구주의 두 가지 비유에서 그들은 긍정적인 본보기로 나온다.(누가복음 18:1~14 참조) 또한 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타락해서 구속받을 수 없다고 여겨졌던 세리장 삭개오의 개종을 기록했다.(누가복음 19:1~10 참조) 누가복음 18~22장은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통으로 끝이 난다. 그 고통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모두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었을 것이다.(니파이전서 10:6 참조)  

눅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Now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drew nigh, which is called the Passover.

누가복음 22장. 이 교재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주해

누가복음 22장에 나오는 구주의 성역 중에 있었던 가르침과 사건의 다수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요한복음에도 나온다. 이런 가르침과 사건에 대한 주해를 이 학생 교재의 어느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다음 도표에서 확인한다.

누가복음에서 각 주제가 나오는 위치

이 교재에 나오는 주해

누가복음 22:1~6.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으며, 유다는 그분을 배반할 준비를 했다.

마태복음 26:1~5  마태복음 26:14~16

누가복음 22:7~18. 최후의 만찬이 베풀어졌다.

마태복음 26:17~30  요한복음 13:1~17

누가복음 22:21~23. 예수께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셨다.

마태복음 26:21~22  요한복음 13:18~30

누가복음 22:24~27.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자인지에 대한 다툼을 벌였다.

마가복음 9:33~37; 10:35~45

누가복음 22:33~38. 예수께서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다.

마태복음 26:31~35

누가복음 22:47~53. 유다가 구주를 배반했다.

마태복음 26:47~50

누가복음 22:54~62.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다.

마태복음 26:69~75  요한복음 18:15~18, 25~27

누가복음 22:63~71. 대제사장들 앞에서 재판이 열렸다.

마태복음 26:59  마태복음 26:61~66  마태복음 26:66~68  마가복음 14:53~65

눅 22: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And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sought how they might kill him; for they feared the people.
눅 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Then entered Satan into Judas surnamed Iscariot, being of the number of the twelve.
눅 22: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And he went his way, and communed with the chief priests and captains, how he might betray him unto them.
눅 22: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And they were glad, and covenanted to give him money.
눅 22: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And he promised, and sought opportunity to betray him unto them in the absence of the multitude.
눅 22: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Then came the day of unleavened bread, when the passover must be killed.

누가복음 22:7~18. 최후의 만찬이 베풀어졌다.

마태복음 26:17~30  요한복음 13:1~17

 

눅 22: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And he sent Peter and John, saying, Go and prepare us the passover, that we may eat.
눅 22: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And they said unto him, Where wilt thou that we prepare?
눅 22: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And he said unto them, Behold, when ye are entered into the city, there shall a man meet you, bearing a pitcher of water; follow him into the house where he entereth in.
눅 22: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And ye shall say unto the goodman of the house, The Master saith unto thee, Where is the guestchamber, where I shall eat the passover with my disciples?
눅 22: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And he shall shew you a large upper room furnished: there make ready.
눅 22: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And they went, and found as he had said unto them: and they made ready the passover.
눅 22: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And when the hour was come, he sat down, and the twelve apostles with him.
눅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And he said unto them, With desire I have desired to eat this passover with you before I suffer:
눅 22: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For I say unto you, I will not any more eat thereof, until it be fulfilled in the kingdom of God.
눅 22: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And he took the cup, and gave thanks, and said, Take this, and divide it among yourselves:
눅 22: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For I say unto you, I will not drink of the fruit of the vine, until the kingdom of God shall come.
눅 22: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And he took bread, and gave thanks, and brake it, and gave unto them, saying, This is my body which is given for you: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누가복음 22:19~20.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와 바울은 둘 다 구주께서 빵과 포도주의 상징을 소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가르치셨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 22:19; 고린도전서 11:24) 조셉 스미스 역은 성찬의 목적이 구주를 기억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뒷받침한다. 조셉 스미스 역에는 “기억하라”와 “기념하여”라는 용어가 덧붙여져 있다.(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26:22, 24~25[경전 안내서]; 조셉 스미스 역, 마가복음 14:20~25[경전 안내서]; 제3니파이 18:7, 11 참조) 유대인의 언어와 관습에서,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회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다시 경험하고, 다시 확인하며, 다시 결심한다는 뜻이었다.

유월절 식사가 그랬듯이, 유대인의 관습에 깃든 주된 목적은 기억하는 것이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께서 조상들을 속박에서 구해 주신 것을 기념했는데, 상징적인 식사와 그에 따르는 구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유월절을 기념함으로써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또한 주님과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개인적인 충실함을 언명했다. 마찬가지로, 구주께서 유월절에 제정하신 성찬은 유월절 식사를 대신하는,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인 “식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성찬을 취함으로써 그분이 이루신 속죄의 축복을 다시 경험하며, 그분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충성심을 재확인하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다시 할 수 있다. 성찬의 상징에 관하여 통찰을 얻고자 한다면, 마태복음 26:26~28 주해  누가복음 26:26~29 주해를 참조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성찬식 동안 기억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몇몇 진리들을 이렇게 말했다.

“만약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과제라면, 그 평범하고도 귀한 상징물이 전달될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구주의 전세 생활과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행하셨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회의에서조차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매우 강하셨으며, 우리는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권능과 어린 양의 피에 대한 우리의 신앙으로 승리를 거두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요한계시록 12:10~11 참조)

우리는 …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그분의 육신의 탄생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기적과 가르침, 치유와 도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맹인에게는 시력을, 못 듣는 자에게는 청력을 주셨으며,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마르는 병에 걸린 자들에게는 활동의 능력을 주셨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성장이 정지되거나 우리의 기쁨과 안목이 흐려진다고 느낄 때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과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니파이후서 31:19~20 참조)

구주께서는 자신에게 장엄한 사명이 주어졌지만, 삶에서 기쁨을 찾았고, 사람들과 즐거워했으며, 제자들에게는 안심하라고 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마치 현관에서 위대한 보물, 즉 매우 진귀한 진주를 실제로 발견한 사람들이 기뻐하듯 우리도 복음을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친구라 하셨으며, 친구란 외롭고 절망적일 수 있는 시기에 우리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일들과 ‘선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모로나이서 7:24) …

언젠가 우리는 그분께서 받으신 몰인정한 대우, 그분께서 경험하신 거부, 그리고 그분이 견디셔야 했던 불공평을 기억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그러한 것들을 겪을 때 그리스도께서도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셨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고린도후서 4:8~9 참조)

그런 어려운 시기가 닥쳐올 때 우리는 예수께서 만물 위로 오르시기 전에 그 아래로 내려오셨으며, 고난과 고통과 온갖 종류의 유혹에 시달리시면서 자비로 충만해지셨고 어떻게 연약한 백성들을 도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88:6; 앨마서 7:11~12 참조)

그분은 비틀거리고 흔들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계시며 그들을 강화하십니다. 결국,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곳에 계시며, 이 모두를 위해 그분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

이 모든 것이 바로 제사 신권을 소유한 어린 형제들이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를 항상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구할 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68~69쪽)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Likewise also the cup after supper, saying, This cup is the new testament in my blood, which is shed for you.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렇게 말씀했다. “겟세마네와 골고다로 가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있었던 이 일 이래로, 성약의 자녀들은 더 새롭고 높으며 좀 더 거룩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겠다는 성약을 맺어 오고 있습니다. 만일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주된 과제라면, 그러한 평범하고 귀한 상징물들이 전달될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대회 보고, 1995년10월, 88, 90쪽;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67, 68쪽)

눅 22: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But, behold, the hand of him that betrayeth me is with me on the table.

누가복음 22:21~23. 예수께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셨다.

마태복음 26:21~22  요한복음 13:18~30

 

눅 22: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And truly the Son of man goeth, as it was determined: but woe unto that man by whom he is betrayed!
눅 22: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And they began to enquire among themselves, which of them it was that should do this thing.
눅 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And there was also a strife among them, which of them should be accounted the greatest.

누가복음 22:24~27.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자인지에 대한 다툼을 벌였다.

마가복음 9:33~37; 10:35~45

 

눅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And he said unto them, The kings of the Gentiles exercise lordship over them; and they that exercise authority upon them are called benefactors.
눅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But ye shall not be so: but he that is greatest among you, let him be as the younger; and he that is chief, as he that doth serve.
눅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For whether is greater, he that sitteth at meat, or he that serveth? is not he that sitteth at meat? but I am among you as he that serveth.
눅 22: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Ye are they which have continued with me in my temptations.

누가복음 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누가복음 22장 28절은 광야에서 받은 세 가지 시험이 구주께서 유혹과 시련, 시험을 직면한 유일한 시기는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셨다.(히브리서 4:15) 지상 생활의 끝이 다가오자, 구주께서는 사도들에게 자신이 유혹과 시험을 받을 때 그들이 자신과 함께했다는 것을 상기시키셨다.(누가복음 22:28 참조) 그분의 성역 초기에 그들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 질문으로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 일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그분이 고향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롱받으실 때,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분노한 폭도들이 돌을 던져 그분을 죽이려 했을 때도 옆에서 이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그분이 지치고, 시장하며, 슬퍼하실 때에도 그분과 함께 있었다.

구주께서는 자신과 함께해 온 사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신 후, 그들이 자신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며,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누가복음 22:29~30 참조) 

눅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And I appoint unto you a kingdom, as my Father hath appointed unto me;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That ye may eat and drink at my table in my kingdom, and sit on thrones judgi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And the Lord said, Simon, Simon, behold, Satan hath desired to have you, that he may sift you as wheat:

누가복음 22:31.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누가복음 22장 31절에서, “너희”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대명사는 복수형으로, 구주께서 이 경고를 모든 제자에게 주셨음을 나타낸다. 밀을 까부르면 낟알과 겉껍질로 분리된다. 귀중한 낟알은 보관되지만, 하잘것없는 껍질은 버려진다. 만일 성도들이 유혹에 굴복하여 세상의 죄를 짓는다면, 그들은 세상과 구별되는 특수성을 잃어버려 껍질처럼 된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님은 사탄이 우리를 밀 까부르듯 하려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 이 말은 사탄이 우리를 주변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고귀하고 특별한 ‘세상의 소금’이 되고(마태복음 5:13) 온 인류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복음 5:14, 16; 제3니파이 18:24 참조)”(“비이기적인 봉사”,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94쪽)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But I have prayed for thee, that thy faith fail not: and when thou art converted, strengthen thy brethren.

누가복음 22:32. “너는 돌이킨 후에 …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누가복음 22장 32절에 기록된 마지막 만찬에서 구주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개심하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하셨”다고 언급하며 “심지어 진리에 대한 간증을 가진 사람에게도 그 중요성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형제들을 굳게 하기 위해, 즉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고 인도하기 위해 삼 년이나 예수님을 따랐고, 거룩한 사도의 권세를 받았고, 그리스도 복음의 용감한 교사요 증언자였으며, 자신의 간증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복되다는 칭찬을 받은 그였지만, 여전히 그러한 그도 ‘개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자들에게 요구하신 개심에는(마태복음 18:3 참조) 복음이 진실함을 증거할 만큼 변하는 것 이상의 훨씬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간증한다 함은 알고 선언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개심’할 것을 권유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행함 됨됨이가 요구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전적으로 복음 지식과 간증에만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께 ‘개심’하도록 권유받았던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축복은 받았으나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강한 간증을 갖고 있으나 그 간증을 좇아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개심하지 않는 누군가를 알고 있습니다. …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 각자가 자신의 개심을 향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을 향해 일할 때입니다.”(“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과제”,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41쪽) 

눅 22: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And he said unto him, Lord, I am ready to go with thee, both into prison, and to death.

누가복음 22:33~38. 예수께서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다.

마태복음 26:31~35

 

눅 22: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And he said, I tell thee, Peter, the cock shall not crow this day, before that thou shalt thrice deny that thou knowest me.
눅 22: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And he said unto them, When I sent you without purse, and scrip, and shoes, lacked ye any thing? And they said, Nothing.
눅 22: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Then said he unto them, But now, he that hath a purse, let him take it, and likewise his scrip: and he that hath no sword, let him sell his garment, and buy one.
눅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For I say unto you, that this that is written must yet be accomplished in me, And he was reckoned among the transgressors: for the things concerning me have an end.
눅 22: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And they said, Lord, behold, here are two swords. And he said unto them, It is enough.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And he came out, and went, as he was wont, to the mount of Olives; and his disciples also followed him.

누가복음 22:39~44.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통에 대한 상세한 사항

몇몇 현대 성경에는 누가복음 22장의 43~44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모든 고대 그리스어 필사본의 누가복음에는 이 성구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증거로 볼 때, 사도들이 사망한 후 수 세기에 걸쳐 몇몇 필경사들이 이 성구들을 삭제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필경사들은 그리스도의 고뇌가 묘사된 것을 당혹스러워했다. 이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고통을 겪는 대중적인 헬레니즘 이상과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성경 본문에 그러한 변경을 가한 것은 몰몬경의 선지자 니파이가 했던 다음 간증이 진실임을 증명해 준다. “그들이 어린 양의 복음에서 명백하고 극히 귀한 많은 부분들을 제하여 버렸음이요.”(니파이전서 13:26) 후기의 경전과 선지자들은 누가복음 22장 43~44절에 기록된 내용의 진실성을 증언한다.(모사이야서 3:7; 교리와 성약 19:18 참조) 겟세마네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기도와 고뇌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26:36 주해, 마태복음 26:37~39 주해  마가복음 14:32~36 주해를 참조한다. 

눅 22: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And when he was at the place, he said unto them, Pray that ye enter not into temptation.
눅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And he was withdrawn from them about a stone’s cast, and kneeled down, and prayed,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Saying, Father, if thou be willing, remove this cup from me: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thine, be done.
눅 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And there appeared an angel unto him from heaven, strengthening him.

누가복음 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누가는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고통을 받으실 때 천사가 나타나 그분에게 힘을 더하였다고 기록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천사가 구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왔다고 가르쳤다.

“누가복음에는 주님이 무릎을 꿇고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물리치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Joseph Smith Translation, Luke 22:42)

… 하나님 아버지의 응답은 독생자의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속죄는 조금도 흠이 없는 어린 양에 의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아들의 탄원은 거절되었지만 그분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경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Joseph Smith Translation, Luke 22:43)

하늘로부터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한 힘을 얻은 구주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성취하셨습니다.”(“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99쪽)

그러나 마침내 천사도 구주를 떠났다. 그분 혼자서 위대한 속죄 희생을 완수하는 것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후기에, 구주께서는 자신이 영광을 띠고 지상에 올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신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나는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고 모든 백성에게 심판을 가져 왔나니,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교리와 성약 133:50) 구주께서는 죄와 사망을 완전히 극복하셨다.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And being in an agony he prayed more earnestly: and his sweat was as it were great drops of blood falling down to the ground.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 동산에서 겪으셨던 고뇌가 얼마나 격심했으며, 그 고뇌의 큰 뜻이 무엇인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었다ㆍㆍ 그는 지상의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시달리며 괴로워하시고 투쟁하셨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모든 구명에서 피를 쏟게 하는 아픔을 느끼게 한 육체적 고통도 정신적인 고뇌만도 아니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경험하실 수 있는 영혼의 영적인 고뇌였다ㆍㆍ 그와 같은 고뇌로 괴로워하던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사탄 곧, '이 세상 임금'이 위협하는 모든 공포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셨다ㆍㆍ 어느 의미로는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구세주께서는 아담의 때로부터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죄의 짐을 몸소 짊어지셨다"(예수 그리스도, 3판(1916), 613~614쪽)

누가복음 22:44.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우리의 모든 기도는 진실하며 “마음에서 나오는 가장 진지한 느낌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고뇌하셨을 때 했던 기도처럼 어떤 기도는 다른 기도들보다 더욱 열성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는 온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기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예레미야 29:13 참조] 이노스는 어떻게 자신의 영혼이 굶주림을 느껴 하루 종일 기도하였는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이노스서 1:4 참조] 기도는 그 강도에 있어서 매우 다양합니다. 구주의 경우 격심한 고통의 시각에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44 참조] 어떤 기도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계속되는 축복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는 한편 그러한 축복을 간구하는 간단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커다란 아픔이나 필요 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단순한 간구 이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 기도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축복은 때로 우리 자신의 일과 노력과 부지런함을 필요로 합니다.”(“기도라는 구명 밧줄”,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62, 67쪽)

눅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And when he rose up from prayer, and was come to his disciples, he found them sleeping for sorrow,

누가복음 22:44.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는 구주께서 겪으신 고통 중에는 “떨어지는 핏방울”도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한 유일한 복음서 저자이다.(누가복음 22:44) 온 인류의 무한한 죄와 슬픔, 죄책감을 짊어져야 하는 극심한 압박감으로 비할 데 없는 고통이 임했고, 구주의 몸은 혈한증이라고 알려진 신체 상태를 일으켰다. 이 상태는 피부 표면 바로 아래에서 모세 혈관의 파열을 초래하여, 피부에서 피가 섞인 땀을 흘리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 상태라면 모든 땀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나 구주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우리를 위해 이 극심한 고통을 견디실 수 있었다.

다른 경전 구절들도 구주께서 모든 땀구멍에서 피를 흘리신 일의 진실성과 원인에 대해 통찰을 더해 준다. 몰몬경에서 베냐민 왕은 이렇게 간증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 이르는 것을 제외하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과 육신의 고통, 주림, 갈증과 피로를 겪으리니, 이는 보라, 피가 모든 땀구멍에서 나옴이라, 그의 백성의 사악함과 가증함으로 인한 그의 고뇌가 그처럼 크리라.”(모사이야서 3:7; 강조체 추가)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죄와 싸우되 …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셨음을 기억하여 충실히 남으라고 권고했다.(히브리서 12:4) 주님께서도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신 것에 대해 친히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9:16~19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구주께서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뇌를 겪으신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는 아픔을 느끼게 한 육체적 고통도 정신적인 고뇌만도 아니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경험하실 수 있는 영혼의 영적인 고뇌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리 강인한 인내력을 가진 자라 하더라도 그러한 고통을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인체 기관이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무의식과 망각의 가사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고뇌로 괴로워하던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사탄, ‘이 세상 임금’이 위협하는 모든 공포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셨다.”(예수 그리스도, 613쪽)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통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그분이 겟세마네에서 무엇을 견디셨는지는 우리도 조금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일을 완전하게 알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으며,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아버지께서 주신 쓴 잔의 찌꺼기를 남김없이 마시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신 일을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이르는 것을 제외하고 육신으로나 영으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고통받으셨음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 그분의 고난이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켰고, 회개하는 영혼을 죄의 고통과 형벌로부터 구속했으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비가 임하도록 해 주었음을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죄의 무게로 고통과 고난을 받아 땅에 엎드려 떨며, 가능하면 쓴 잔을 마시지 않으려 하기까지 하셨음을 압니다.

우리는 고된 시련을 받고 있는 그분께 힘을 주고자 영화로운 곳에서 한 천사가 내려왔음을 압니다. 우리는 그 천사가 육신을 입은 사람이 존재하게 하려고 가장 먼저 타락한 미가엘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러한 무한한 고뇌, 비할 데 없는 고통이 서너 시간 계속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겟세마네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힘”, 성도의 벗, 1985년 7월호, 11쪽)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에서 고뇌를 겪으시는 동안 온 인류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으셨다. 이에 더하여, 그분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고난, 아픔, 슬픔, 질병에 대해 고뇌하는 짐도 지셨다.(이사야 53:4~5; 앨마서 7:11~12 참조) 칠십인 회장단의 태드 알 콜리스터 장로는 지상 생활의 몇몇 경험도 예수께서 지셨던 극심한 무게에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무수한 환자의 상처를 계산해 본다고 할 때 저울에 올려진 아픔의 무게는 얼마나 되겠는가? 이제, 거기에 사회 요양소에서 그저 바깥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기억해 주는 카드 한 장, 방문 한 번, 전화 한 통을 몹시 갈망하고 있는, 잊힌 노인들의 외로움을 더해 보자. 굶주린 아이들의 상처와 기근, 가뭄, 전염병에 시달리는 고통도 계속해서 더해 보자. 속을 썩이는 자녀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매일 눈물로 간구하는 부모들의 심적 고통도 더해 보자. 모든 이혼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모든 낙태의 비극도 포함하자. 어린 나이에 죽은 모든 자녀와 결혼 직후에 배우자를 여의고 겪는 회한도 더해 보자. 넘쳐나는 감옥, 초만원의 사회 복귀 훈련 시설과 정신병자 수용 기관들의 비참함도 더해 보자. 여기에 세계 역사상 모든 세기에 겪었던 모든 아픔과 고통, 그리고 끝없이 창조된 다른 많은 세상의 것도 곱해 보자. 이 모든 고통을 더해도 구주께서 짊어지신 고통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이처럼 태산같이 거대한 시련을 견딜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결단코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다.”(The Infinite Atonement [2000], 105)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통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26:36 주해  마가복음 14:32~36 주해를 참조한다. 

눅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And said unto them, Why sleep ye? rise and pray, lest ye enter into temptation.  
눅 22: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And while he yet spake, behold a multitude, and he that was called Judas, one of the twelve, went before them, and drew near unto Jesus to kiss him.

누가복음 22:47~53. 유다가 구주를 배반했다.

마태복음 26:47~50

 

눅 22: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But Jesus said unto him, Judas, betrayest thou the Son of man with a kiss?
눅 22:49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When they which were about him saw what would follow, they said unto him, Lord, shall we smite with the sword?
눅 22: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And one of them smote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and cut off his right ear.
눅 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And Jesus answered and said, Suffer ye thus far. And he touched his ear, and healed him.
눅 22: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Then Jesus said unto the chief priests, and captains of the temple, and the elders, which were come to him, Be ye come out, as against a thief, with swords and staves?
눅 22: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When I was daily with you in the temple, ye stretched forth no hands against me: but this is your hour, and the power of darkness.
눅 22: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Then took they him, and led him, and brought him into the high priest’s house. And Peter followed afar off.

누가복음 22:54~62.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다.

마태복음 26:69~75  요한복음 18:15~18, 25~27

 

눅 22: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And when they had kindled a fire in the midst of the hall, and were set down together, Peter sat down among them.
눅 22: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But a certain maid beheld him as he sat by the fire, and earnestly looked upon him, and said, This man was also with him.
눅 22: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And he denied him, saying, Woman, I know him not.
눅 22: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And after a little while another saw him, and said, Thou art also of them. And Peter said, Man, I am not.
눅 22: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And about the space of one hour after another confidently affirmed, saying, Of a truth this fellow also was with him: for he is a Galilaean.
눅 22: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And Peter said, Man, I know not what thou sayest. And immediately, while he yet spake, the cock crew.
눅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And the Lord turned, and looked upon Peter. And Peter remembered the word of the Lord, how he had said unto him, Before the cock crow, thou shalt deny me thrice.
눅 22: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And Peter went out, and wept bitterly.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베드로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우리는 대체로 너무나 그와 흡사합니다. 우리는 충성을 맹세하고 큰 용기를 갖겠다고 결심하고,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의를 행하고 의로운 대업을 위해 일어서며, 우리 자신과 남에게 진실하겠다고 다짐하며, 어떤 때는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압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압력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욕망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압력은 허망한 야심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의지가 약해지고 기강이 해이해져서 결국 우리는 그 압력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찾아드는 것은 후회이며 가책과 쓰라린 눈물뿐입니다.

"ㆍㆍ이제 전세계의 교회 회원 중에서 행동이나 말로 신앙을 부인한 분들이 계시다면, 베드로의 예에서 위로를 얻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한때 예수님과 매일 동행했으나 곤경의 시간에는 주님과 자신이 간직했던 간증까지 잠시 부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딛고 일어섰으며, 마침내 신앙의 위대한 수호자요 강한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왕국을 건설하는 사업에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신앙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성도의 벗, 1994년 8월호 4, 7쪽)

눅 22: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And the men that held Jesus mocked him, and smote him.

누가복음 22:63~71. 대제사장들 앞에서 재판이 열렸다.

마태복음 26:59  마태복음 26:61~66  마태복음 26:66~68  마가복음 14:53~65

 

눅 22: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And when they had blindfolded him, they struck him on the face, and asked him, saying, Prophesy, who is it that smote thee?
눅 22: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And many other things blasphemously spake they against him.
눅 22: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And as soon as it was day, the elders of the people and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came together, and led him into their council, saying,
눅 22: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Art thou the Christ? tell us. And he said unto them, If I tell you, ye will not believe:
눅 22: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And if I also ask you, ye will not answer me, nor let me go.
눅 22: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Hereafter shall the Son of man sit on the right hand of the power of God.
눅 22: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Then said they all, Art thou then the Son of God? And he said unto them, Ye say that I am.
눅 22: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And they said, What need we any further witness? for we ourselves have heard of his own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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