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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누가 복음 10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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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칠십인을 부르심.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자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임. 아버지는 아들을 통하여 나타나심.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Jesus calls, empowers, and instructs the seventy—They preach and heal—Those who receive his disciples receive Christ—The Father is revealed by the Son—Jesus gives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누가복음 9~14장 소개 및 연대

누가복음 9~14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구주의 성역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 들었음을 보여 준다. 그분은 더 큰 책임을 맡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고, 십이사도와 칠십인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치유하도록 권능을 부여해서 그들을 내보내기 시작하셨다.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심, 기도, 신앙, 회개, 희생, 겸손, 인내 등 제자가 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면들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셨다. 그분은 또한 영적인 우선순위보다 현세적인 염려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과 위선에 대해 경고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면서부터 제자의 요건을 점점 더 강조하셨는데(누가복음 9:51), 그분은 자신이 그곳에서 고통받고 죽게 될 것임을 아셨다.(누가복음 9:22, 31 참조) 구주께서는 지상 사명 중 이 어려운 국면에 접어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모범을 보이셨으며, “모범의 힘”으로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강화하셨다.(Neal A. Maxwell, “The Pathway of Discipleship,” Ensign, Sept. 1998, 13)  

눅 10: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After these things the Lord appointed other seventy also, and sent them two and two before his face into every city and place, whither he himself would come.

누가복음 10:1~16.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사”

누가는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분을 위한 길을 준비하도록 십이사도 외에도 칠십인을 부르셨다고 기록한 복음서 저자이다. 구주께서 칠십인을 부르시고 그들을 가르치신 내용은(누가복음 10:1~16 참조) 십이사도들에게 주신 가르침과 유사했다.(마태복음 10장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현대의 사도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갈 수가 없기에 대신 칠십인 정원회 일원들을 지명하여 성역을 베풀게 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칠십인은 사도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 십이사도가 수적인 제약으로 갈 수 없는 곳에는 칠십인이 갑니다. 칠십인들은 교회의 초창기 시절과 마찬가지로 온 세계로 보내집니다.”(“Fledgling Finches and Family Life” [Brigham Young University devotional, Aug. 18, 2009], 4; speeches.byu.edu)

오늘날 칠십인은 “순회 성역자”로 불린다.(교리와 성약 107:97) 한편, 집사와 교사와 장로들은 “교회의 상주 성역자”로 지명된다.(교리와 성약 84:111; 124:137

눅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Therefore said he unto them, The harvest truly is great, but the labourers are few: pray ye therefore the Lord of the harvest, that he would send forth labourers into his harvest.

누가복음 10:2.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구주께서 구원의 추수에 참여하도록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기의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수의 선교사들을 부르고 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되풀이해서 전했다.

“오랫동안 선지자들이 가르치신 내용을 되새겨 드리겠습니다. 모든 합당하고 건강한 젊은 남성은 선교 사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선교 사업은 신권 의무이며, 많이 받은 자인 우리에게 주님께서 바라시는 의무입니다. 청남 여러분, 선교 사업을 준비할 것을 권고합니다. …

청녀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청남들처럼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신권 책임은 없지만 여러분도 선교사로서 귀중한 공헌을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봉사를 환영합니다.”(“다시 함께 만나서”,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5~6쪽) 추수와 일꾼에 관한 구주의 가르침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9:37~38 주해를 참조한다. 

눅 10: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Go your ways: behold, I send you forth as lambs among wolves.

 

눅 10: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Carry neither purse, nor scrip, nor shoes: and salute no man by the way.

 

눅 1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And into whatsoever house ye enter, first say, Peace be to this house.

 

눅 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And if the son of peace be there, your peace shall rest upon it: if not, it shall turn to you again.

 

눅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And in the same house remain, eating and drinking such things as they give: for the labourer is worthy of his hire. Go not from house to house.

 

눅 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And into whatsoever city ye enter, and they receive you, eat such things as are set before you:

 

눅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And heal the sick that are therein, and say unto them, The kingdom of God is come nigh unto you.

 

눅 10: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But into whatsoever city ye enter, and they receive you not, go your ways out into the streets of the same, and say,

 

눅 10: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Even the very dust of your city, which cleaveth on us, we do wipe off against you: notwithstanding be ye sure of this, that the kingdom of God is come nigh unto you.

 

눅 10: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But I say unto you, that it shall be more tolerable in that day for Sodom, than for that city.

 

눅 10: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Woe unto thee, Chorazin! woe unto thee, Bethsaida! for if the mighty works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which have been done in you, they had a great while ago repented, sitting in sackcloth and ashes.

 

눅 10: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But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at the judgment, than for you.

 

눅 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And thou, Capernaum, which art exalted to heaven, shalt be thrust down to hell.

 

눅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He that heareth you heareth me; and he that despiseth you despiseth me; and he that despiseth me despiseth him that sent me.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And the seventy returned again with joy, saying, Lord, even the devils are subject unto us through thy name.

 

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And he said unto them, I beheld Satan as lightning fall from heaven.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Behold, I give unto you power to tread on serpents and scorpions, and over all the power of the enemy: and nothing shall by any means hurt you.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Notwithstanding in this rejoice not, that the spirits are subject unto you; but rather rejoice, because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눅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In that hour Jesus rejoiced in spirit, and said, I thank thee,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t thou hast hid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prudent, and hast revealed them unto babes: even so, Father; for so it seemed good in thy sight.

 

눅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All things are delivered to me of my Father: and no man knoweth who the Son is, but the Father; and who the Father is, but the Son, and he to whom the Son will reveal him.

 

눅 10: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And he turned him unto his disciples, and said privately, Blessed are the eyes which see the things that ye see:

 

눅 10: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For I tell you, that many prophets and kings have desired to see those things which ye see, and have not seen them; and to hear those things which ye hear, and have not heard them.

 

눅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And, behold, a certain lawyer stood up, and tempted him, saying, Master, what shall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눅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He said un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how readest thou?

 

눅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And he answering sai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strength, and with all thy mind; and thy neighbour as thyself.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And he said unto him, Thou hast answered right: this do, and thou shalt live.

 

눅 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But he, willing to justify himself, said un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ur?

누가복음 10:29~37.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율법교사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한 것에 응하여(누가복음 10:29), 구주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0:30~37 참조) 그리스도 시대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에게 상당한 적개심을 느꼈다. 이 두 부류는 보통으로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은 유대인에게 동정 어린 행동을 보였던 “사마리아인은 우리에게 순수한 기독교인의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라고 가르쳤다. 헌터 회장은 또한 이 비유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친구를 만들지만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이웃을 만들어 놓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에는 경계선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편협한 애착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46)”(“주님의 시금석”, 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44쪽) 

눅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And Jesus answering said, A certain man went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and fell among thieves, which stripped him of his raiment, and wounded him, and departed, leaving him half dead.
눅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And by chance there came down a certain priest that way: and when he saw him,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누가복음 10:31~36.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사마리아인

모세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준수하는 교사와 본보기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도록 임명되었다. 이 신권 소유자들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잘 알고 있었다.(레위기 19:18) 사실, 레위인들은 특히 여행자들을 경제적으로나 여러모로 도와야 할 책임이 있었다.(레위기 25:35~36 참조) 그러나 구주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계명을 어겼다. 그들은 모두 다친 사람을 보았으나 “피하여 지나”갔다.(누가복음 10:31~32) 제사장과 레위인은 구전 율법 또는 랍비의 전통을 따랐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아니거나 어느 민족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웃이 아니므로 그들을 죽음에서 구하여 줄 의무가 없었던 것이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구전 율법 또는 전통이 요구하는 바는 따랐으나 순수 모세 율법에서 요구하는 바는 따르지 않았다.

모순되게도, 성문화된 모세 율법에 따른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마리아인이었으며, 반면 구전 율법 또는 전통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동에 대한 변명의 구실이 되어 주었다.

예수님에게서 그 비유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 비유가 실화라고 느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1,035미터의 고도차가 있었는데(누가복음 10:30), 그 당시에는 강도와 도둑이 들끓어 “붉은 길” 또는 “피의 길”로 알려져 있었다. 

눅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And likewise a Levite, when he was at the place, came and looked on him, and passed by on the other side.
눅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But a certain Samaritan, as he journeyed, came where he was: and when he saw him, he had compassion on him,

누가복음 10:33~35. “기름과 포도주”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의 상처를 기름과 포도주로 치료해 주었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약효가 있다. 기름은 통증을 완화하고, 포도주는 소독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포도주와 기름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기도 한다.(마태복음 26:27~29  마태복음 26:36 주해 참조) 사마리아인이 사용한 기름과 포도주는 그가 다친 유대인에게 보여 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비유는 구주께서 치르신 속죄를 상기시켜 준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죄가 낳은 영적인 상처를 치유하신다. 그분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안전을 가져다주시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돕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를 통해 우리의 회복을 위한 값을 친히 지불하셨다. 

눅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And went to him, and bound up his wounds, pouring in oil and wine, and set him on his own beast, and brought him to an inn, and took care of him.
눅 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And on the morrow when he departed, he took out two pence, and gave them to the host, and said unto him, Take care of him; and whatsoever thou spendest more, when I come again, I will repay thee.
눅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Which now of these three, thinkest thou, was neighbour unto him that fell among the thieves?

 

눅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And he said, He that shewed mercy on him. Then said Jesus unto him, Go, and do thou likewise.

누가복음 10:3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우리 자신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빗대어 보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우리 각자는 지상 생활이라는 여정을 통해, 자신만의 여리고 길을 여행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리고 길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고 저는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강도를 만나 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제가 알아보지 못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부상당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고도, 피하여 지나갈까요?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저는 그것을 보고, 듣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는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길을 따라 갈 때 완전으로 인도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여리고 길”, 성도의 벗, 1989년 9월호, 2~3쪽)

  “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첫째 되는 큰 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무시하고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만이 그의 자녀를 가장 잘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자기 자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계시며 그들의 복리를 위하여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의 자녀를 잘 돕기 위하여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자기 이웃을 가장 잘 돕고 싶다면 첫 번째 계명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두는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인간에의 위대한 사랑을 주장하는 교활한 사람들에게 쉽게 속게 됩니다. “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

눅 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Now it came to pass, as they went, that he entered into a certain village: and a certain woman named Martha received him into her house.

누가복음 10:38~42.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유대인 사회에서 환대는 매우 중요했다. 여성의 명예와 명성은 그녀가 손님을 대접하는 역할에 관하여 문화적인 기대치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일정 부분 달려 있었다. 이런 사회적 관습 때문에, 마르다가 동생 마리아에게 일을 거들지 않는다고 불평한 것은(누가복음 10:40 참조) 대체로 당시 사람들 눈에는 당연하게 비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라고 응답하심으로써(누가복음 10:42) 동생의 선택을 칭찬하셨다. 구주의 응답으로 명확해진 것 중 하나는 비록 좋은 사회적 관습이라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의로운 교회 회원들이 마리아처럼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들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저 어떤 것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모두 다 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모자랍니다.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활에서 우선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들입니다.

예수께서 이 원리를 마르다의 집에서 가르치셨습니다. … 마르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 것은 칭찬 받을 일이지만(41절), 위대한 스승에게서 복음을 배우는 것이 ‘더욱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복되다는 가르침이 경전의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사도행전 20:35; 앨마서 32:14~15 참조) …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책 또는 잡지 읽기를 선택하는 동안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건전한 오락물을 시청하거나 흥미로운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좋거나 가장 좋은 선택들이 있습니다. …

개인 및 가족 시간을 사용하는 데는 더 좋은 것이 있고 또 가장 좋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좋은 것 내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몇 가지 좋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발전시키고 우리 가족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좋은 것,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104~105, 107쪽) 

눅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And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ich also sat at Jesus’ feet, and heard his word.
눅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But Martha was cumbered about much serving, and came to him, and said, Lord, dost thou not care that my sister hath left me to serve alone? bid her therefore that she help me.

누가복음 10:40~42. 마르다의 성품

칠십인 정원회의 그레고리 에이 슈바이처 장로는 교회 회원들에게 마르다가 이 한 가지 경우에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였다고 해서 그녀를 성급하게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권유했다.

“여러 주일학교 공과에서 이 이야기가 다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마르다가 신앙적인 면에서 약간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마르다라는 여인의 이해력과 간증을 제대로 보여 주는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주께서 그녀의 오빠인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기 위해 도착하셨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은]’ 이는 마르다였습니다.”

구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부활이라는 위대한 교리”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녀에게 자신을 믿는지 물으셨다.

“이에 마르다는 강한 간증으로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 11:20~27 참조] …

많은 자매님들이 첫 번째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이 마리아에 속하는 사람인지 마르다에 속하는 사람인지 고려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담긴 진리는 올바른 판단력으로 한 사람을 제대로 아는 데에서 나옵니다. 마르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우리는 그녀가 영성이 깊고, 생명을 지배하는 구주의 신성한 권능과 그분이 짊어진 사명에 대해 훌륭한 간증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마르다에 대한 잘못된 판단 때문에 우리는 이 훌륭한 여인의 진정한 성품을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올바른 판단력을 키우고 남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리아호나, 2010년 5월호, 103~104쪽) 

눅 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And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er, Martha, Martha, thou art careful and troubled about many things:
눅 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But one thing is needful: and Mary hath chosen that good part, which sha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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