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계. TITLE

주석 마태 복음 9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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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예수께서 죄를 사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심. 마태를 부르심. 한 여인이 그리스도의 옷을 만짐으로 병고침을 얻음.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복음을 전파하심. Jesus forgives sins, heals a paralytic, and calls Matthew—He eats with sinners; a woman is healed by touching his garments; and he raises Jairus’ daughter to life—He opens blind eyes, casts out a devil, and preaches the gospel.

마태복음 8~12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8~12장 마태복음 4장 23절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 가르치시[고] … 전파하시며 … 모든 병[을] … 고치시니”라고(또한 마태복음 9:35 참조) 소개한 바와 같이, 갈릴리에서 계속된 구주의 성역을 다루고 있다. 마태는 구주께서 가르치고 전파하신 중요한 일부 내용을 5~7장에 실었고, 8~9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기적들에 관한 기록은 만물에 대한 구주의 권능과 권세를 보여 주고, 또한 독자들이 마태복음 10장, 즉 구주께서 사도들에게 비슷한 기적을 행하며 성역을 베풀 권능을 부여하신 기록을 읽기에 준비되게 해 준다. 구주의 권능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의 짐을 가볍게 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준다.(마태복음 11:28~30 참조)

마태는 종종 그의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성역을 연대순보다는 주제별로 편성하였다. 예를 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기적들을 8장과 9장에, 많은 안식일 활동들을 12장에, 그리고 많은 비유의 말씀을 13장에 모았다. 그는 종종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였음을 보여 주는 구약전서의 성구들을 포함시켰다. 여러분이 마태복음 8~10장을 공부할 때, 마태가 구약전서에서 인용한 것을 주목해 보고(마태복음 8:17; 11:10, 14; 12:17~21; 13:35), 마태가 사건을 분류했던 방법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마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And he entered into a ship, and passed over, and came into his own city.

마태복음 9:1~8.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일종의 마비 때문에 침상에 누워 지내는 사람을 그의 친구 네 사람이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신앙에 감동을 받으셨지만, 그를 즉각적으로 고치시는 대신에 훨씬 더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누가복음 5:20) 일부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 말이 신성 모독에 해당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불평하고 비난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실로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죄를 사하신 것이었다. 여러 경륜의 시대에 주님은 큰 신앙이 죄 사함을 가져올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야고보서 5:15 참조) 용서는 또한 구주에 대한 열렬한 간증을 전함으로써(교리와 성약 62:3; 84:61 참조),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자신을 바치는 것을 통해 올 수 있다.(교리와 성약 31:5; 60:7 참조) 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2:2~5 주해를 본다.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And, behold, they brought to him a man sick of the palsy, lying on a bed: and Jesus seeing their faith said unto the sick of the palsy; Son, be of good cheer; thy sins be forgiven thee.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And, behold, certain of the scribes said within themselves, This man blasphemeth.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And Jesus knowing their thoughts said, Wherefore think ye evil in your hearts?
마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For whether is easier, to say, Thy sins be forgiven thee; or to say, Arise, and walk?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But that ye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th power on earth to forgive sins, (then saith he to the sick of the palsy,) Arise, take up thy bed, and go unto thine house.

마태복음 8:20; 9:6; 10:23; 11:19; 12:8, 32, 40.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이다

“인자”라는 호칭은 사복음서에서 구주께서 스스로를 칭하실 때 즐겨 사용하신 용어로서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칭하면서 이 호칭을 80회 이상 사용하셨다. 마태복음 12장 8절 마가복음 8장 29~31절과 같은 성구는 이것이 메시야를 뜻하는 호칭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 왜 이 호칭을 사용하셨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 다니엘 7장 13절에는 “인자”가 오신다는 예언이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예언을 성취할 자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이 호칭을 사용하셨을 수도 있다.(마가복음 14:61~62 비교)

둘째, 모세서 6장 57절 7장 35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 하였을 때, 이는 아버지와 그와의 신성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었다.”(경전 안내서, “인자”)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은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를 유일한 분이며 최고로 승영에 이른 분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과 아들 예수는 영과 육체가 있으며 아버지의 모든 영의 자녀 중 장자이며 육신을 입은 독생자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그는 현재나 과거나 ‘거룩한 사람’ 곧 영원하신 아버지인 엘로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예수 그리스도, 148쪽)

셋째,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의도하신 한 가지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분이셨지만 지금은 승영하시어 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 여러분이 오늘 그분을 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분이 형상을 가진 인간처럼 보이며 여러분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007], 40쪽) 

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And he arose, and departed to his house.

 

마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But when the multitudes saw it, they marvelled, and glorified God, which had given such power unto men.

 

마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And as Jesus passed forth from thence,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receipt of custom: and he saith unto him, Follow me. And he arose, and followed him.

마태복음 9:9~13. 마태를 부르시다

세리(라틴어로는 publicani)라는 단어는 로마 정부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징세를 감독하는 사람들을 일컬으며, 이들 휘하에서 일하며 실제로 세금을 걷는 자들도 그에 포함된다.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은 해마다 정부에 정해진 금액을 바쳐야 했으나 주민들에게 얼마를 걷을지 정하는 것은 그들의 재량이었다. 따라서 예수님 시대에 세리들은 가장 부패하고 유대인의 혐오를 받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세리가 된 유대인들은 종종 파문을 당했다.

주님의 초대 사도 중 하나인 마태(개종하기 전에 레위라고도 알려짐) 역시 세리였다. 마태복음 9장 9절은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강조한다. “나를 따르라”라는 단순한 권유에 응하여 마태는 “세관”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다. 마태는 많은 동료 세리를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이들을 죄인들이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기회로 잡아 교만에 관한 강력한 가르침을 전하셨다.(누가복음 5:27~32 참조) 그곳에 있던 다른 많은 다른 세리들도 예수님을 따랐다.(마가복음 2:15 참조) 신약전서에 언급된 세리 중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아마도 그들은 낮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겸손했을 것이 다.(마태복음 9:9~11; 10:2~3; 21:31~32; 누가복음 7:29; 18:13~14; 19:2, 8)

마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And it came to pass, as Jesus sat at meat in the house, behold, many publicans and sinners came and sat down with him and his disciples.
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And when the Pharisees saw it, they said unto his disciples, Why eateth your Master with publicans and sinners?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But when Jesus heard that, he said unto them, They that be whole need not a physician, but they that are sick.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But go ye and learn what that meaneth, I will have mercy, and not sacrifice: for I am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마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Then came to him the disciples of John, saying,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 but thy disciples fast not?

마태복음 9:14~17. 생베 조각과 새 부대

요한의 제자들이 구주께 와서 왜 그분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신랑에,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을 신랑 친구에 비유하여 대답하셨다. 혼인 잔치는 크게 기뻐하는 시간이며 구주께서 친구들과 함께 계시는 시간과 같다. 당시 금식은 주로 슬픔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구주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는 적절하지 않을 일이었다. 곧 그분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며, 그때가 바로 금식을 할 때였다. 

마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And Jesus said unto them, Can the children of the bridechamber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but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shall be taken from them, and then shall they fast.

 

마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No man putteth a piece of new cloth unto an old garment, for that which is put in to fill it up taketh from the garment, and the rent is made worse.

(조성, 마태복음 9:18~21) (이 절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회복하여 마태복음 9:15와 마태복음 9:16사이에 끼워 넣은 것임.)

 (조마 9:18~21) "그때에 바리새인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가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침례로써 받아들이려 하지 아니하나이까?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너희가 율법을 지켰더라면 나를 영접하였으리라. 이는 내가 율법을 준 자임이라. 나는 너희를 침례로써 받아들이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것이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아니함이니라. 이는 새 것이 올 때에 낡은 것은 버려지게 됨이니라."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Neither do men put new wine into old bottles: else the bottles break, and the wine runneth out, and the bottles perish: but they put new wine into new bottles, and both are preserved.

마태복음 9장 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대”라고 부르신 것은 염소 가죽으로 만든 용기를 뜻한다. 그것은 주로 가죽 부대라고 불렸고,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리나 토기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죽 부대는 늘어나고, 균열이 생기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가 되었다. 새 포도주를 오래된 가죽 부대에 넣으면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생기는 가스 때문에 팽창하게 되고, 그러면 오래된 가죽 부대는 부풀어서 터져 버릴 수 있었다. 마태복음 9장 16절에 나오는 “생베 조각”은 줄어들지 않은 새 천을 뜻한다. 이 천 조각을 낡은 옷에 대면, 이것이 줄어들 때 상대적으로 튼튼하지 못한 주변의 낡은 천을 잡아당겨 자칫 찢어지게 만들 수 있으므로 생베 조각은 덧대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생베 조각과 새 부대라는 두 비유 모두 옛것과 새것이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구주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보이신 반응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마태복음 9:14~15 참조), 구주께서는 자신이 주는 복음이 단지 유대교를 고치는 것이 아닌, 그 시대의 많은 종교적 문화적 관습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가르치려 하신 듯하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구주께서는 우리를 단지 더 나은 남자와 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고린도후서 5:17; 또한 갈라디아서 6:15; 모사이야서 27:26 참조) 만들기 위해 오셨다.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렇게 덧붙여져 있다. “이는 새 것이 올 때에 낡은 것은 버려지게 됨이니라.”(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9:21[경전 안내서]) 

마 9: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While he spake these things unto them, behold, there came a certain ruler, and worshipped him, saying, My daughter is even now dead: but come and lay thy hand upon her, and she shall live.

마태복음 9:18, 23~26. 관리의 딸을 고치시다

관리의 딸을 고치신 것에 대해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5:22~24, 35~42 주해를 본다.

마가복음 5:22~24, 35~42.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시다(또한 마태복음 9:18~19, 23~26; 누가복음 8:41~42, 49~55 참조)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신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기록상의 단 세 가지 사례 중 하나인데,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분이 온 인류에게 다시 생명을 가져다주실 위대한 부활을 기대하게 된다.(또한 누가복음 7:11~15; 요한복음 11:38~44 참조) 각각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구주께서 슬퍼하는 이들을 다정히 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를 분석하며 그 이야기에서 구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구절 외에는 경전 어디를 보아도 이 사람[야이로]이나 그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그가 예수님과 잠시 나눈 만남으로 그에 대한 기억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구주의 손길이 닿아 생각과 행동이 크게 변화되고, 새롭고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이끌림을 받지 않았다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의 삶이 기억되었습니다. …

‘내 어린 딸’이라고 말하는 야이로의 떨리는 목소리는 구주 앞에서 무릎 꿇은 이 지체 높은 사람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영혼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후 그는 다음과 같이 신앙을 표명합니다.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마가복음 5:23] 이것은 비통에 젖은 아버지의 신앙에서 나온 말일 뿐만아니라 예수께서 손을 얹으시면 무엇이나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께서 부부에게 손을 얹으시면 그들은 곧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 가족에게 손을 얹으시면, 가족은 생명을 받게 됩니다. …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자, 예수님은 어린 소녀의 손을 잡아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모든 사람을 새롭고 더 나은 삶으로 일으켜 세워 줍니다.”(“경전 읽기”,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96쪽)

마 9: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And Jesus arose, and followed him, and so did his disciples.

 

마 9: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And, behold, a woman, which was diseased with an issue of blood twelve years, came behind him, and touched the hem of his garment:

마태복음 9:20~22.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치시다

구주께서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치신 일에 대해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5:25~34 주해를 본다.

마가복음 5:25~34.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치유(또한 마태복음 9:20~22; 누가복음 8:43~48 참조)

마가복음에는 그 여인의 “혈루증”(마가복음 5:25)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 따라 혈루증을 앓는 사람은 의식을 행하기에 불결하다고 간주하였으므로(레위기 15:19~33 참조), 그 여인은 질병을 앓았던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회당과 성전에서 배척되었을 것이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자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다고 말한 것은(마가복음 5:26) 그 여성이 자신의 상황으로 자포자기한 상태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구주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심으로써 (마가복음 5:31) 그 여인은 자신이 신앙을 행사했으며, 또한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밝힐 기회를 얻었다. 구주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답하셨다.(마가복음 5:34; 기울임체 추가) 이로써 구주께서는 여인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의 옷에서 기적적인 권능이 나와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잘못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또한, 이는 그녀가 이제 치유되었으므로 오랜 세월에 걸친 사회적 및 종교적 배척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는, 여인의 이웃과 마을 사람들을 향한 선언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순결함과 완전함을 둘 다 회복할 수 있다. 

데니스 비 노인슈완더 장로는 칠십인의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인이 구주께 나아갈 신앙을 어떻게 행사했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중 속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 표면적으로 여인은 군중의 여느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향해 나아갈 때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도들도 여인을 눈치채지 못했으며 그녀를 멈추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 여인에게는 그곳에 모인 무리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혼잡한 사람들 틈에 묻혀서 여인은 굳은 마음으로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으며 마음에는 구주께 나아간다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치유하실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자신을 염려하시고 자신의 필요를 돌보시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한 가지 면에서 여인은 군중과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 모였으나 이 여인은 치유받기 위해 왔습니다. …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라는 군중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사람들 틈에서 주님께로 나아온 여인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단 한번의 손길이 고통받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고 우리 내면의 필요를 충족해 줄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생의 모든 경우에서 조용히, 결의에 찬 태도로 구주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분이 우리를 염려하시고 돌보심을 믿으며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하실 권능이 그분에게 있음을 믿는 신앙으로 그렇게 합시다.”(“무리 중의 한 사람”,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101~103쪽)

마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For she said within herself, If I may but touch his garment, I shall be whole.
마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But Jesus turned him about, and when he saw her, he said, Daughter, be of good comfort;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And the woman was made whole from that hour.
마 9: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And when Jesus came into the ruler’s house, and saw the minstrels and the people making a noise,

 

마 9: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He said unto them, Give place: for the maid is not dead, but sleepeth. And they laughed him to scorn.

 

마 9: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But when the people were put forth, he went in, and took her by the hand, and the maid arose.

 

마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And the fame hereof went abroad into all that land.

 

마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And when Jesus departed thence, two blind men followed him, crying, and saying, Thou Son of David, have mercy on us.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And when he was come into the house, the blind men came to him: and Jesus saith unto them, Believe ye that I am able to do this? They said unto him, Yea, Lord.

 

마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Then touched he their eyes, saying, According to your faith be it unto you.

 

마 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And their eyes were opened; and Jesus straitly charged them, saying, See that no man know it.

 

마 9: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But they, when they were departed, spread abroad his fame in all that country.

 

마 9: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As they went out, behold, they brought to him a dumb man possessed with a devil.

 

마 9: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And when the devil was cast out, the dumb spake: and the multitudes marvelled, saying, It was never so seen in Israel.

 

마 9: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But the Pharisees said, He casteth out devils through the prince of the devils.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And Jesus went about all the citie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sickness and every disease among the people.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But when he saw the multitudes, he was moved with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fainted, and were scattered abroad, as sheep having no shepherd.

 

마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Then saith he unto his disciples, The harvest truly is plenteous, but the labourers are few;

마태복음 9:37~38.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구주께서 갈릴리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가르치시자(마태복음 9:35) 무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 구주께서는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것임을 아셨기에 “일꾼이 적[다]”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더 필요했다. 바로 다음 장에 기록된 대로 십이사도들은 부름을 받고, 권세를 받은 후, 세상으로 보내졌다.(마태복음 10:1 참조) 후에 구주께서는 복음을 전하도록 칠십 명을 더 보내셨다.(누가복음 10:1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우리 시대의 교회에도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함을 가르쳤다. 그는 교회 회원들이 친구와 이웃에게 복음을 나누는 일에 적극 참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수년 전에 충실한 개종자인 조지 맥로플린 형제님은 메인 주 파밍데일에서 회원 20여 명의 조그만 지부를 이끌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유 배달로 생계를 꾸려 가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금식과 진지한 기도를 통해 그는 자신과 지부 회원들이 그 지역에서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관해 영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커다란 신앙과 끊임없는 기도와 강력한 모범을 통해 회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나누어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이야기로, 이 경룬의 시대에 펼쳐진 위대한 선교사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일 년 내에, 그 지부에 450명의 개종자 침례가 나왔습니다. 그다음 해에 추가로 200명의 개종자가 생겨났습니다. …

불과 5년이 지난 후에, 메인 오거스타 스테이크가 조직되었습니다. 새로 조직된 그 스테이크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파밍데일 지부의 개종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시에 어떻게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하고 질문해 본다면, 아마도 교회를 강화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같은 절박한 필요성은 오늘날 교회의 모든 단위 조직에서도 그때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회원 선교 사업의 필수적 역할”,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38~39쪽) 또한 누가복음 10:2 주해를 참조한다. 

“우리의 시대처럼 짧은 기간 내에 충실한 자를 그토록 많이 필요로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Pray ye therefore the Lord of the harvest, that he will send forth labourers into his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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