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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마태 복음 11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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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예수께서 침례요한에 대해 언급하심.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을 꾸짖으심. 아들이 아버지를 나타냄.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Jesus acclaims John as more than a prophet—The cities of Chorazin, Bethsaida, and Capernaum upbraided for unbelief—The Son reveals the Father—The yoke of Christ is easy and his burden light.

마태복음 8~12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8~12장 마태복음 4장 23절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 가르치시[고] … 전파하시며 … 모든 병[을] … 고치시니”라고(또한 마태복음 9:35 참조) 소개한 바와 같이, 갈릴리에서 계속된 구주의 성역을 다루고 있다. 마태는 구주께서 가르치고 전파하신 중요한 일부 내용을 5~7장에 실었고, 8~9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기적들에 관한 기록은 만물에 대한 구주의 권능과 권세를 보여 주고, 또한 독자들이 마태복음 10장, 즉 구주께서 사도들에게 비슷한 기적을 행하며 성역을 베풀 권능을 부여하신 기록을 읽기에 준비되게 해 준다. 구주의 권능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의 짐을 가볍게 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준다.(마태복음 11:28~30 참조)

마태는 종종 그의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성역을 연대순보다는 주제별로 편성하였다. 예를 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기적들을 8장과 9장에, 많은 안식일 활동들을 12장에, 그리고 많은 비유의 말씀을 13장에 모았다. 그는 종종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였음을 보여 주는 구약전서의 성구들을 포함시켰다. 여러분이 마태복음 8~10장을 공부할 때, 마태가 구약전서에서 인용한 것을 주목해 보고(마태복음 8:17; 11:10, 14; 12:17~21; 13:35), 마태가 사건을 분류했던 방법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강력한 기적(마태복음 8~9장 참조)과 안식일에 행하신 일(마태복음 12장 참조)은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다윗의 자손”, 즉 약속된 메시야(마태복음 12:23 참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당시 대다수의 유대 지도자들은 그가 사탄의 권능으로 기적을 일으켰다고 비난했다.(마태복음 12:24 참조)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보여 주기를 원했다.(마태복음 12:38~45 참조)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일을 빌미로 그분을 비난했으며,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였다.]”(마태복음 12:2, 14 참조) 그때 예수님은“거기를 떠나[셨다.]”(마태복음 12:15 참조) 그 이후로 그분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3:34 참조)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들이 화내거나 비난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면서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실 수 있었다.

마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And it came to pass, when Jesus had made an end of commanding his twelve disciples, he departed thence to teach and to preach in their cities.

 

마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Now when John had heard in the prison the works of Christ, he sent two of his disciples,

마태복음 11:2~6. 침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의심했는가?

예수께서 갈릴리 지경에서 성역을 행하시는 동안, 헤롯의 명으로 수감된 침례 요한은 “자신의 두 제자들이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그들을 보내어 예수께 알아보게 했다. 이 사건이 요한의 확신이 부족했음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기회를 빌어 요한이 이룬 훌륭한 업적을 증거하시며 그가 흔들림 없고 진실하다고 강조하셨다.”(Bible Dictionary, “John the Baptist”)

로버트 제이 매튜스는 더 나아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께 하라고 했던 질문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교화하기 위해서였다.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에 관해서는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으며, 눈으로 직접 보았고, 귀로 들었으며, 성신에게서 오는 증거를 얻었다. … 가장 만족할 만한 답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그분이 누구신지 질문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그동안 간증해 왔던 진리를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A Burning Light: The Life and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1972], 92) 

마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And said unto him, Art thou he that should come, or do we look for another?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them, Go and shew John again those things which ye do hear and see:
마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The blind receive their sight, and the lame walk, the lepers are cleansed, an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up, and the poor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마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And blessed is he, whosoever shall not be offended in me.
마 11: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And as they departed, Jesus began to say unto the multitudes concerning John, What went ye out into the wilderness to see? A reed shaken with the wind?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But what went ye out for to see? A man clothed in soft raiment? behold, they that wear soft clothing are in kings’ houses.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But what went ye out for to see? A prophet? yea, I say unto you, and more than a prophet.

 

마 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For this is he, of whom it is written,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thy face, which shall prepare thy way before thee.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Verily I say unto you, Among them that are born of women there hath not 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notwithstanding he that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

마태복음 11:11. “극히 작은 자”

“극히 작은 자”에 관하여 이해하려면 누가복음 7:28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7:28.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고 언급하셨다.(누가복음 7:28)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님은 누구를 극히 작은 자로 가리켰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왕국에서 권리가 가장 적은 분으로 간주되었으며, [외형적으로 보기에] 그분을 선지자로 믿기에는 자격도 가장 적은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분은 마치 ‘너희 중에 극히 미약한 자로 여겨지고 있는 자는 요한보다 큰 자이니, 그는 나니라.’ 하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가르침: 조셉 스미스, 82쪽)

 “첫째,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성스러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

“둘째, 그는 중요한 사명을 위임받았고, … 그것은 곧 인자에게 침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

“셋째, 당시 요한은 지상의 왕국의 일을 수행하는 권능의 열쇠를 지닌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선지자였습니다.”(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269~270쪽)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For all the prophets and the law prophesied until John.

마태복음 11:13~14. 침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 예수께서는 침례 요한의 위대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침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길을 예비할 사람으로 예임되었으며, 이 사명은 조셉 스미스 역에서 분명히 밝히듯 구약전서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침노하는 자들이 힘을 갖지 못하는 때가 오리니,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하기를 그것이 요한까지라고 하였느니라.

그러하도다, 예언을 한 많은 이들이 이 시대를 예언하였도다.

그리고 너희가 받을진대, 참으로 그는 엘리야니, 와서 모든 것을 준비할 바로 그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11:13–15)

다음 경전 구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길을 예비할 사람으로 예임된 침례 요한의 사명이 묘사되어 있다. 이사야 40:3; 말라기 3:1; 누가복음 1:76~77; 니파이전서 10:7~10; 교리와 성약 84:27~28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And if ye will receive it, this is Elias, which was for to come.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He that hath ears to hear, let him hear.

 

마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But whereunto shall I liken this generation? It is like unto children sitting in the markets, and calling unto their fellows,

마태복음 11:16~19. 장터의 아이들

마태복음 11장 16~19절에서 구주께서는 자신과 침례 요한을 거절한 사람들의 변덕과 불신을 설명하셨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성구들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설명했다. “너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치졸하고, 성마르며, 불성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내가 어떤 예를 들어야 하겠느냐? 너희는 마치 놀이를 하는 변덕스러운 아이들 같으니라. 너희가 혼인 잔치 놀이를 하면 친구들이 춤 추기를 거부하고, 장례 행렬 놀이로 바꾸면 친구들이 슬피 울기를 거부하는도다. 이와 같이 너희는 종교에 대해 놀이를 할 뿐이라. 심술궂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처럼 너희는 요한을 거절하는 이유가 나실인의 엄격함 때문이고, 나를 거절하는 이유는 내가 다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때문이도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263) 

마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And saying, We have piped unto you, and ye have not danced; we have mourned unto you, and ye have not lamented.
마 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For John came neither eating nor drinking, and they say, He hath a devil.
마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The Son of man came eating and drinking, and they say, Behold a man gluttonous, and a winebibber, a friend of publicans and sinners. But wisdom is justified of her children.

마태복음 8:20; 9:6; 10:23; 11:19; 12:8, 32, 40.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이다

“인자”라는 호칭은 사복음서에서 구주께서 스스로를 칭하실 때 즐겨 사용하신 용어로서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칭하면서 이 호칭을 80회 이상 사용하셨다. 마태복음 12장 8절 마가복음 8장 29~31절과 같은 성구는 이것이 메시야를 뜻하는 호칭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 왜 이 호칭을 사용하셨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 다니엘 7장 13절에는 “인자”가 오신다는 예언이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예언을 성취할 자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이 호칭을 사용하셨을 수도 있다.(마가복음 14:61~62 비교)

둘째, 모세서 6장 57절 7장 35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 하였을 때, 이는 아버지와 그와의 신성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었다.”(경전 안내서, “인자”)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은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를 유일한 분이며 최고로 승영에 이른 분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과 아들 예수는 영과 육체가 있으며 아버지의 모든 영의 자녀 중 장자이며 육신을 입은 독생자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그는 현재나 과거나 ‘거룩한 사람’ 곧 영원하신 아버지인 엘로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예수 그리스도, 148쪽)

셋째,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의도하신 한 가지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분이셨지만 지금은 승영하시어 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 여러분이 오늘 그분을 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분이 형상을 가진 인간처럼 보이며 여러분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007], 40쪽) 

마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Then began he to upbraid the cities wherein most of his mighty works were done, because they repented not:

 

마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Woe unto thee, Chorazin! woe unto thee, Bethsaida! for if the mighty works, which were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in sackcloth and ashes.

 

마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But I say unto you,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at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you.

 

마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And thou, Capernaum, which art exalted unto heaven,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for if the mighty works, which have been done in thee, had been done in Sodom, it would have remained until this day.

 

마 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But I say unto you, That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the land of Sodom i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thee.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At that time Jesus answered and said, I thank thee,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because thou hast hid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prudent, and hast revealed them unto babes.

 

마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Even so, Father: for so it seemed good in thy sight.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All things are delivered unto me of my Father: and no man knoweth the Son, but the Father; neither knoweth any man the Father, save the Son, and he to whomsoever the Son will reveal him.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마태복음 11:28~30. “내게로 오라”

구주께서는 인생에서 얼마나 힘든 시련을 겪고 있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내게로 오라”라는 구주의 반복된 권유를 따르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면, … 신앙의 ‘분자’만을 갖고 오로지 믿는 간단한 이 방법은, 예전부터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걸음, 즉 구주의 영원한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였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입니다.

둘째, 문제의 일부일지라도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고쳐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아마도 회개는 기독교인의 어휘 가운데 가장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단어일 것입니다. … 우리는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 후 바꿀 수 없는 것은 너그럽게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불완전하더라도 구주의 속죄에 거침없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분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그분의 존재를 받들기 위해 노력하며, 이는 그분의 이름을 받듦으로써 시작합니다. 그 이름은 복음의 구원 의식에서 성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주어집니다. 이러한 것들은 침례로 시작되고, 성전 성약과 더불어 성찬을 취하는 것 등 부가적인 축복들과 징표로서 우리 생활 전반의 다른 많은 의식들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따르면, 그리스도께 이르는 빛나는 많은 길들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이러한 길에는 기도와 금식과 주님의 목적에 대한 명상, 경전을 상고하는 것,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 ‘약한 자를 [돕고],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며, 연약한 무릎을 강건하게 하[는 것]’[교리와 성약 81:5]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으뜸되는 것은 ‘언제까지나 시들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모로나이 7:45]는 은사인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는 우리의 삶에 주께로 인도되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우리가 아무리 약할지라도 그분에게 손을 내밀 때마다 그분께서는 간절하게 우리의 손을 붙드시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고쳐야 하는 부서진 것들”,리아호나, 2006년 5월호, 69~70쪽)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마태복음 11:28~30. “나의 멍에를 메고”

과거에 쓰이던 나무 멍에는 보통 그것을 메는 동물의 목에 맞도록 목수가 세심하게 다듬어서 만들었다. 그 용도가 동물 한 마리를 다른 한 마리와 연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멍에는 우리와 구주를 묶어 주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끌” 수 있도록 해 주는 성약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고대의 성서 시대에 멍에는 밭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도구였습니다. 이 멍에를 두 마리의 소에 함께 메어 주면 한 마리가 할 때 드는 힘이 두 마리에게 똑같이 배분되기 때문에 쟁기나 짐마차를 끄는 힘을 그만큼 줄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에 겹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짐이라도 두 사람이 함께 멍에를 메면 둘 다 똑같이 쉽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왜 삶의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하며 쉽사리 걸려 넘어질 세상적인 도움만으로 그 짐을 옮기려 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이 세상에서 거칠고 딱딱한 땅을 파내는 것과 같은 힘든 일과를 견뎌 낼 수 있게 돕고 짐을 나누어 가지며 힘을 공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멍에이며, 한 하나님과 나란히 서게 됨으로써 받게 되는 권능과 평화입니다.

삶의 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분명 모든 사람이 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개인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각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십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고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말미암는 세상의 죄 때문에 슬픔을 당하는 수도 있으나, 이유야 어떻든 삶의 역경을 모두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짐을 지고 멍에를 메어야 한다면, 내 것을 지고 메지 않겠느냐? 내가 약속하나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마태복음 11:28~30 참조)” (“내게로 오라”, 성도의 벗, 1991년 1월호, 20쪽)

구주께서는 자신의 멍에를 메는 이들에게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마태복음 11:29) 약속하셨다. 약속된 이 “쉼”은 우리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이며(모사이야서 24:15 참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얻는 것이 될 수 있다.(교리와 성약 84:24; 히브리서 4:1~11 참조)

 “우리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또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귀기울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주시고, 우리의 슬픔을 덜어 주시며, 어둠을 몰아내고, 빛과 성신을 통해 그분에게서 나오는 하늘의 느낌으로 우리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조지 큐 캐논, “셀 수 없이 큰 축복”, 브라이언 에이치 스튜이 편, 윌포드 우드럽 회장, 그의 두 보좌, 십이사도 및 기타 여러 사람의 말씀에서 발췌, 5권, [1987~1992년], 4:12)

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계명을 지키고 교회에서 충실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멍에, 즉 봉사와 헌신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이 멍에를 멜 것이며, 그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을 위한 안식을 얻고(마태복음 11:28~30), 주님의 계명이 힘겨운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요한1서 5:3)” (브르스 알 맥콩키, 몰몬 교리, 2판, [1966년], 8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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