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계. TITLE

주석 마태 복음 18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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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우리를 훼방하는 형제들을 대하는 방법. 길 잃은 양을 찾는 사람의 비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는 권능이 주어짐. 일만달란트 빚진자의 비유. How we are to treat our offending brethren—The Son of Man ca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All of the Twelve receive the keys of the kingdom—Why we should forgive.

마태복음 16~18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16장에는 구주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16:18~19 참조) 그로부터 엿새 후에 주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변형되셨고, 그 자리에는 모세와 일라이어스, 즉 엘리야가 있었다.(마태복음 17:1~13 참조) 후기의 선지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약속된 신권의 열쇠들을 이때 받았다고 가르쳤다. 그런 후, 마태복음 18장에 기록된 대로 구주께서는 자신이 떠난 후 제자들이 교회를 이끌 때 이 열쇠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이 될 교리와 원리를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16장에 기록되었듯이,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간증했고, 구주께서는 베드로가 그 지식을 계시를 통해 받았다고 설명하셨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At the same time came the disciples unto Jesus, saying,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마태복음 18: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교회를 인도하는 데 사용할 원리를 가르치시다

마태복음 18장 1~22절에 기록된 대로,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교회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중요한 원리들을 가르치셨다. 이 원리들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유능한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돌이키고(3절 참조), 겸손하며(2~4절 참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7~9절 참조), 어린이를 귀중하게 여기고(10절 참조), 길 잃은 자들을 찾으며(11~14절 참조), 다른 사람의 범법을 주의 깊고 신중하게 다루며( 15~17절 참조),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단합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19~20절 참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다.( 21~22 참조)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And Jesus called a little child unto him, and set him in the midst of them,

마태복음 18:1~4. 하나님의 왕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경전에는 그 외에도 어린아이들의 바람직한 특성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유순하고, 온유하며, 인내하고, 사랑이 충만하며, 그리스도 안에 살아 있고, 무죄하다는 것이다.(모사이야서 3:19; 모로나이서 8:12; 교리와 성약 74:7 참조)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어린아이같이 되는 것은 유치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께 그분의 뜻을 행할 힘을 주시도록 간구한 후 그것을 해내신 구주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 위해 본성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어린아이와 같이”,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15쪽)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은 진정한 위대함이란 자기의 삶을 구주께 드리고 복음대로 생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매일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공동 목표로 성임하여 주신 일을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수많은 작은 행위와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희생과 봉사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복음을 아는 지식이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을 갖게 하여 그분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 일상적인 생존 경쟁의 마당에서, 그리고 실패에 직면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계속되는 생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나가면 이러한 투쟁과 과제는 다른 사람들을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며, 자신의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세상 사람들이 하찮은 것으로 생각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정하신 일들을 행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참으로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진정한 위대함”, 성도의 벗, 1982년 7월호, 29~30쪽)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And said, Verily I say unto you, Except ye be converted, and become as little children, ye shall 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Whosoever therefore shall humble himself as this little child, the same is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And whoso shall receive one such little child in my name receiveth me.

마태복음 18:5~10.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경고

예수께서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주셨을 때 그것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마태복음 18장 5~10절에 기록된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교리와 성약 50편 40~41절에서 “작은 자”에 대한 더 포괄적인 정의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든 복음 계획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신앙을 실족시키거나 영생을 향하여 진보하는 데 방해가 될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경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사람들을 하나님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이끄는 것만큼 중대하고 사악한 범죄는 거의 없다. … 진리를 가르치고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영원한 기쁨이라면,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사람들을 형벌로 이끄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영원한 자책이 아니겠는가? (교리와 성약 18:10~16)

…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이끌어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보다 죽는 것, 즉 필멸의 존재로 계속 생활하는 축복을 잃는 것이 더 낫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420)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But whoso shall offend one of these little ones which believe in me, it were better for him that a millstone were hanged about his neck, and that he were drowned in the depth of the sea.
마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Woe unto the world because of offences! for it must needs be that offences come; but woe to that man by whom the offence cometh!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Wherefore if thy hand or thy foot offend thee, cut them off, and cast them from thee: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halt or maimed, rather than having two hands or two feet to be cast into everlasting fire.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And if thine eye offend thee, pluck it out, and cast it from thee: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with one eye, rather than having two eyes to be cast into hell fire.
마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Take heed that ye despise not one of these little ones; for I say unto you, That in heaven their angels do always behold the face of my Father which is in heaven.
마 18:11 (없음) For the Son of man is co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

 (조마 18:11) "이는 인자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고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 왔으되 이 어린아이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나니, 내가 그들을 구원할 것임이니라."

마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How think ye? if a man have an hundred sheep, and one of them be gone astray, doth he not leave the ninety and nine, and goeth into the mountains, and seeketh that which is gone astray?

마태복음 18:12~14. 잃은 양을 찾다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대해 알아보려면 누가복음 15:3~7 주해 누가복음 15:11~32 주해를 본다. 

누가복음 15:3~7. 잃어버린 양의 비유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사람들이 주님과 교회 활동에서 벗어나는 이유에 대해 가르치면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 담긴 메시지를 이렇게 적용했다.

“일부는 다르기 때문에 길을 잃습니다. 그들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다르기 때문에, 무리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보고, 행동하며, 생각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때때로 자신이 이 교회에 맞지 않는다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연민을 보이기만 해도, 오늘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문제와 슬픔들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일부는 지쳤기 때문에 길을 잃습니다. 너무 벅차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매일 직면하는 모든 스트레스와 시간에 대한 압박과 요구가 있기에, 지치게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낙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너무 약해서 기여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무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점차적으로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뒤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잃어버린 한 사람에 대한 관심”,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18~19쪽)

브루스 시 하펜 장로는 브리검 영 대학교 교무처장으로 있을 때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비슷하게 적용한 바가 있다. 그는 우리가 모두 삶의 어느 시기에 잃어버린 양처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단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만이 잃어버린 양은 아닙니다. … 자녀 출산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는 어머니도 잃어버린 양입니다. 집에서 멀리 떠나 생활하면서 고독과 유혹을 경험하고 있는 젊은이 역시 잃어버린 양입니다. 꼭 필요한 직장을 막 잃은 사람, 재정적 위기에 봉착한 사업가, 외국 문화를 접한 신출내기 선교사, 갓 감독으로 부름받은 사람, 서로 오해하고 있는 기혼자 부부, 또는 자식이 찾아오지 않는 노인도 잃어버린 양입니다. 저는 잃어버린 양입니다. 여러분도 잃어버린 양입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이사야 53:6; 강조체 추가)

길을 잃은 느낌은 우리가 곧고 좁은 길에서 벗어났을 때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있기를 바라시는 곳에 있음에도 그렇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The Broken Heart: Applying the Atonement to Life’s Experiences [1989], 60)

누가복음 15:11~32.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비유는 특정한 명칭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다. 탕자라는 단어는 낭비벽이 심하고 돈을 무모하게 함부로 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비유에는 두 명의 아들이 나온다. 하나는 낭비벽이 심하고(누가복음 15:11~24 참조), 다른 하나는 성마른 아들이어서(누가복음 15:25~32 참조) 둘 다 그들의 아버지와 화해할 필요가 있었다.

마 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And if so be that he find it, verily I say unto you, he rejoiceth more of that sheep, than of the ninety and nine which went not astray.
마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Even so it is not the will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that one of these little ones should perish.
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Moreover if thy brother shall trespass against thee, go and tell him his fault between thee and him alone: if he shall hear thee, thou hast gained thy brother.

 

마 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But if he will not hear thee, then take with thee one or two more, that in the mouth of two or three witnesses every word may be established.

 

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And if he shall neglect to hear them, tell it unto the church: but if he neglect to hear the church, let him be unto thee as an heathen man and a publican.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Verily I say unto you, Whatsoever ye shall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soever ye shall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마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Again I say unto you, That if two of you shall agree on earth as touching any thing that they shall ask, it shall be done for them of my Father which is in heaven.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마태복음 18:15~20. 증인법

마태복음 18장 15~20절에 있는 구주의 가르침은 증인법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일을 확립하거나 결정할 때 두세 증인을 요구하는 이 법의 근거는 신명기 19장 15절에 명시되어 있다. 구주의 가르침도 그와 마찬가지로, 먼저는 변형의 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권세의 열쇠들을 처음 주시고(마태복음 17:1~13; 18:18 참조) 그 후에 모든 사도들에게 주시는 그러한 방식을 보인다. 우리 시대에도 이 방식에 따라 왕국의 열쇠들이 처음에는 조셉 스미스에게 전해졌고, 후에는 십이사도들에게도 전해졌다.(교리와 성약 13편; 27:5~14; 128:18~21; 132:46~47 참조) 

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Then came Peter to him, and said, Lord, how oft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till seven times?

마태복음 18:21~22.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타인을 용서하는 것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과 구주의 대답에 깃든 의미를 설명했다. “유대 율법주의에서는 잘못을 범한 자가 그 형제와 화해하는 과정을 밟도록 요구했으며, 누구든 잘못을 범한 자를 세 번 이상 용서하지 말도록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아직 성령으로 영혼이 불타오르는 상태가 아니었던 베드로는 랍비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한 규정을 예상하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은 사람이 그 형제를 용서하는 데에는 몇 번까지라는 제한이 없다는 뜻이다.”(The Mortal Messiah: From Bethlehem to Calvary, 4 vols. [1979–81], 3:91) 

마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Jesus saith unto him, I say not unto thee, Until seven times: but, Until seventy times seven.
마 18: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Therefore is the kingdom of heaven likened unto a certain king, which would take account of his servants.

마태복음 18:23~35.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

얼마나 자주 남을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에 뒤이어,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용서를 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더 가르치셨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주님을 상징하고, 첫 번째 종은 주님께 빚진 우리 각자를 상징하며, 두 번째 종은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을 상징한다.

이 비유에서는 “만 달란트”와(24절) “백 데나리온”이(28절) 언급되어 있는데, “주후 1세기에 10,000달란트는 100,000,000데나리온과 동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데나리온은 평범한 노동자가 일반적으로 받는 하루 품삯이었다. 이 노동자가 한 해 동안 300일을 일했다면, 1달란트를 모으는 데는 약 33년이 걸렸을 것이다. 따라서 그 종이 빚진 10,000달란트를 벌려면 300,000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Jay A. Parry and Donald W. Parry, Understanding the Parables of Jesus Christ [2006], 95) 반면에, 그의 동료 종이 진 100데나리온의 빚은 첫 번째 종이 진 빚의 약 백만 분의 일만큼에 지나지 않는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종교 교육원 학생 시절에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 나오는 돈의 금액에 대해 배우고 나서 그 비유에서 가르치는 영원한 진리 몇 가지를 이해하게 된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교사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해 주어야 하는 100데나리온짜리 용서에 주목하며 그것이 상당히 큰 금액임을 인정한 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10,000달란트 상당의 용서에 비하면 정말 작은 금액임을 지적했습니다.

[교사는] 우리가 진 빚이 천문학적인 숫자이며 거의 이해 불가한 규모임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구주께서 이 가르침에서 전하시는 요점이며, 이 비유의 골자라고 교사는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분이 주시는 자비와 용서, 속죄라는 선물의 영원한 범위와 깊이를 조금이나마 감지하기를 의도하셨습니다. …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하셨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거의 불가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통해 저는 처음으로 남을 용서해야 하며 그들의 감정과 필요 사항과 상황에 대해 언제나 관대해야 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Students Need Teachers to Guide Them”[Church Educational System satellite broadcast, June 20, 1992], 3;si.lds.org

마 18: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And when he had begun to reckon, one was brought unto him, which owed him ten thousand talents.
마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But forasmuch as he had not to pay, his lord commanded him to be sold, and his wife, and children, and all that he had, and payment to be made.
마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The servant therefore fell down, and worshipped him, saying, Lord, have patience with me, and I will pay thee all.
마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Then the lord of that servant was moved with compassion, and loosed him, and forgave him the debt.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But the same servant went out, and found one of his fellowservants, which owed him an hundred pence: and he laid hands on him, and took him by the throat, saying, Pay me that thou owest.
마 18: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And his fellowservant fell down at his feet, and besought him, saying, Have patience with me, and I will pay thee all.
마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And he would not: but went and cast him into prison, till he should pay the debt.
마 18: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So when his fellowservants saw what was done, they were very sorry, and came and told unto their lord all that was done.
마 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Then his lord, after that he had called him, said unto him, O thou wicked servant, I forgave thee all that debt, because thou desiredst me: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Shouldest not thou also have had compassion on thy fellowservant, even as I had pity on thee?

마태복음 18:33.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 담긴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남을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마태복음 5:7; 6:12, 14~15 참조)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이 원리를 가르치며 우리에게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용서하라고 권고했다.

“위대한 속죄는 용서의 최고 행위였습니다. 그 속죄의 크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곤 그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저와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뿐입니다. 구주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드릴 때의 그 고난은 너무도 크고 그 고뇌는 너무 격렬하여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얻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입니다. 온 인류에게 죽음에서의 부활과 함께 구원의 축복이 허락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 주어지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입니다. …

우리가 좀 더 친절해져서 보다 큰 관용을보이고, 보다 많이 용서하고, 보다 기꺼이 십 리를 더 동행하고, 죄를 지었으나 회개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을 들어올리고, 오래된 악감정을 잊고 그러한 감정을 더는 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용서”,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84쪽)

데이비드 이 소렌슨 장로는 칠십인 정원회 회장단에서 봉사하던 시절에,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과거를 떠나 보내고 신앙과 사랑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해 주었다.

“누군가에게서 우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를 입는다면, 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고통이나 불의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우리의 선택은 복수뿐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한 차원 높은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해를 입으면 용서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용서하면 더 나은 미래를 펼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악행이 더는 우리의 앞길을 막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우리의 삶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자유로워집니다. 용서란 우리의 운명이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미래를 향해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용서를 통해 원한은 사랑으로 바뀝니다”,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12쪽)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And his lord was wroth, and delivered him to the tormentors, till he should pay all that was due unto him.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So likewise shall my heavenly Father do also unto you, if ye from your hearts forgive not every one his brother their tresp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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