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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마태 복음 14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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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침례요한이 목베임을 당함.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심. 물위를 걸으심. 옷가에라도 손대는 자들은 모두 병고침을 얻음. John the Baptist is beheaded—Jesus feeds the five thousand and walks on the sea—Those who touch the hem of his garment are made whole.

마태복음 13~15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13~15장의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점점 더 심한 반대를 받던 시기에 일어났다.(마태복음 12:14; 15:1~20 참조) 구주의 공식적인 성역 기간 중 이 시점부터는 청중의 영적 수준에 맞는 교수법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비유법이었다.(마가복음 4:34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를 사용하여 천국, 즉 교회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앞으로 있을 배도와 후기의 회복에 대해서도 가르치셨다.(Bible Dictionary, “Kingdom of heaven or kingdom of God”“Parables” 참조)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신 기록은 자연력을 다스리는 구주의 권능을 보여 주는 예이다. 이 사건은 구주께서는 물 위를 걷고 폭풍을 잠재우실 수 있는 분이며, 제자들이 거센 반대에 부딪힐 때 바로 그 구주께서 그들을 영적으로 강화하고 평안을 주시리라는 것을 알려 준다. 폭풍우는 또한 당시 주님과 제자들이 직면한 반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강화하고 치유하는 구주의 권능은 마태복음 15장에 묘사된 여러 병고침의 예에서 더 볼 수 있다. 

마태복음에는 8~9장에 구주의 기적, 12장에 안식일의 활동, 13장에 비유, 그런 다음 14~15장에 기적에 대한 두 번째 기록이 분류되어 있다. 여러분이 14~15장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그분의 권능을 보이셨던 다른 방법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 14: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At that time Herod the tetrarch heard of the fame of Jesus,

마태복음 14:1~12. 침례 요한의 죽음

침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14~29 주해를 본다. 

마 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And said unto his servants, This is John the Baptist; he is risen from the dead; and therefore mighty works do shew forth themselves in him.

마가복음 6:14~29. 침례 요한의 죽음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기 전까지 약 6개월 동안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후에도 헤롯 안디바의 명으로 투옥되기 전까지 약 6개월에서 9개월 동안 계속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투옥되어 있는 동안 고대에 늘상 행해지던 방식대로 고문받고 채찍질당하며(마태복음 17:12~13 참조) 쇠사슬에 묶였을 것입니다. … 어린 소녀인 살로메의 춤을 보고 욕망에 사로잡힌 헤롯은 요한을 파멸시키려는 헤로디아의 흉악한 계략에 말려 들었고, 그는 토굴 감옥에서 9개월 내지 12개월 동안 갇혀 있던 요한을 불러내어 참수했습니다. (마가복음 6:17~29 참조) …

요한은 주님의 많은 종들이 그렇듯이 순교자로서 사망했습니다.“(Robert J. Matthews, “‘There Is Not a Greater Prophet’: The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Ensign, Jan. 1991, 16–17)

마가복음에서는 침례 요한이 행한 성역보다 그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 더 강조되어 있다.(마가복음 1장 4~9, 14절 마가복음 6장 14~29절과 비교한다.) 마가는 십이사도가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졌다는 기록과(마가복음 6:7~13 참조) 그들이 귀환했다는 기록(마가복음 6:30 참조) 사이에 요한의 순교 기사를 삽입했다.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는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야기의 서술이 잠시 끊긴다.” 그럼으로써 마가는 하나님의 종이 치를 수 있는 대가를 강조하려 했다. 침례 요한은 메시야에 앞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기에, 악인의 손에 그의 생명이 희생된 일은 임박해 오는 구주의 고통과 죽음을 예시했고(마가복음 8:31; 9:31; 10:33~34 참조),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제자가 맞게 될 박해와 폭행을 보여 주는 전조가 되었다.(마가복음 8:34~35; 10:38; 요한복음 15:20; 16:2 참조) 

마 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For Herod had laid hold on John, and bound him, and put him in prison for Herodias’ sake, his brother Philip’s wife.
마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For John said unto him, It is not lawful for thee to have her.
마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And when he would have put him to death, he feared the multitude, because they counted him as a prophet.
마 14: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But when Herod’s birthday was kept, the daughter of Herodias danced before them, and pleased Herod.
마 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Whereupon he promised with an oath to give her whatsoever she would ask.
마 14: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And she, being before instructed of her mother, said, Give me here John Baptist’s head in a charger.
마 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And the king was sorry: nevertheless for the oath’s sake, and them which sat with him at meat, he commanded it to be given her.
마 14: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And he sent, and beheaded John in the prison.
마 14: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And his head was brought in a charger, and given to the damsel: and she brought it to her mother.
마 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And his disciples came, and took up the body, and buried it, and went and told Jesus.
마 14: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When Jesus heard of it, he departed thence by ship into a desert place apart: and when the people had heard thereof, they followed him on foot out of the cities.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And Jesus went forth, and saw a great multitude, and was moved with compassion toward them, and he healed their sick.

마태복음 14:13~14. “불쌍히 여기사”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따로 빈 들에 가신 이유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가능한 이유로 그분이 침례 요한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애도하러 가셨다는 추측은 해 볼 수 있다.(마태복음 14:13 참조) 예수께서는 혼자 있고 싶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찾는 무리를 보았을 때는 노하거나 성가시게 여기시지 않고 연민을 보이셨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구주께서 보이신 연민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구주의 크나큰 동정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동정심이라는 말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길을 보여 주셨으니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을 표시해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사심없는 봉사 그 자체였습니다. … 구주께서는 모든 성역 기간 동안 … 이웃 사랑을 몸소 보이셨습니다.”(“주님의 길”, 성도의 벗, 1996년 7월호, 55쪽) 

마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And when it was evening, his disciples came to him, saying, This is a desert place, and the time is now past; send the multitude away, that they may go into the villages, and buy themselves victuals.

마태복음 14:15~21. 오천 명을 먹이심(또한 마가복음 6:34~44; 누가복음 9:11~17; 요한복음 6:3~14 참조)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32~44 주해  요한복음 6:15 주해를 본다. 

마 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But Jesus said unto them, They need not depart; give ye them to eat.

마가복음 6:32~44. 오천 명을 먹이심(또한 마태복음 14:15~21; 누가복음 9:12~17; 요한복음 6:3~14 참조)

마가복음 6장 44절을 그리스어 원전에서 찾아보면, “오천 명”은 오천 명의 남자를 의미했다는 점이 분명하게 나온다. 마태복음 14장 21절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라는 말이 있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준다.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은 부활을 제외하고 사복음서 모두에 실려 있는 유일한 기적 중 하나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 기적에서 배우는 영원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이 소진하여 여러분을 도와주지 못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영적 교훈입니다.”(Trusting Jesus [2003], 73)

마 14: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And they say unto him, We have here but five loaves, and two fishes.

칠십인의 제이 데븐 코니쉬 장로는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그 이야기는] 구주께서 베푸신 속죄의 은혜에 대한 풍성함과 권능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 그분의 은혜는 참으로 풍성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 주고도 남습니다.”(“Learning How the Atonement Can Change You,” Ensign, Apr. 2002, 23) 다음과 같은 일련의 말씀과 행동을 주목해 보면 이 진리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마가복음 6:37) 그들의 현재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명하셨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제자들의 대답에서 드러나는데, 그 대답은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그들은 그처럼 많은 사람을 먹이는 데 필요한 떡의 양이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에게 대략 8개월치 급료에 해당하였다.
  • 구주께서는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알아보셨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마가복음 6:38) 제자들은 구주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 구주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명하셨다.(마태복음 14:18)
  •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구주께 드렸다.
  • 구주께서는 제자들이 드린 음식을 축복하고 늘리셨는데, 기적처럼 필요한 양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우리와 구주의 관계와 관련된 한 가지 방식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완전함과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마태복음 5:48; 로마서 3:23 참조) 하지만 우리가 온 영혼을 구주께 바친다면, 그분이 베푸신 속죄의 은혜와 권능이 우리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 이상으로 베풀어질 것이다.(니파이후서 25:23; 옴나이서 1:26; 모로나이서 10:32~33 참조) 

마 14: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He said, Bring them hither to me.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구주께서 떡과 물고기를 늘리신 일은 우리가 그분의 교회에서 봉사할 때 비록 우리의 노력이 몇 개의 떡과 물고기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지더라도 그분이 우리가 행한 충실한 노력을 더 크게 해 주실 것을 보여 준다며 이렇게 가르쳤다.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 정도에 불과한 은사를 가진 무명의 사람들이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교회에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며 실제로 수천 명을 먹이며 봉사합니다. … 이들은 모든 보조 조직과 신권 정원회에 속한 수십만 명의 지도자와 교사들과 가정 복음 교사들과 상호부조회의 방문 교사들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겸손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도 있으나 그들은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항상 배우며 주님과 와드 회원들을 섬기고자 하는 겸손한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

보잘것없이 시작한 이 교회가 오늘날 이같이 크게 발전한 주된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만을 가진 겸손하고 성실한 수백만 명의 충실함과 헌신입니다.”(“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5~6쪽) 

마 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And he commanded the multitude to sit down on the grass, and took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es, and looking up to heaven, he blessed, and brake, and gave the loaves to his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the multitude.

 

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And they did all eat, and were filled: and they took up of the fragments that remained twelve baskets full.

 

마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And they that had eaten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beside women and children.

 

마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And straightway Jesus constrained his disciples to get into a ship, and to go before him unto the other side, while he sent the multitudes away.

마태복음 14:22~33. 예수께서 “밤 사경에”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시다(또한 마가복음 6:45~52; 요한복음 6:15~21 참조)

로마인들은 밤 시간을 네 개의 경으로, 즉 대략 저녁 6시~9시, 9시~자정, 자정~새벽 3시, 새벽 3시~새벽 6시로 구분했다. 구주께서 밤 사경에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마태복음 14:25 참조), 그들은 역풍에 맞서 밤새 노를 젓고 있었다. 수잔 더블유 태너 자매는 본부 청녀 회장으로 봉사하던 당시에 우리가 인내하고 기다린다면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로 오실 것이라고 간증했다.

“저는 [주님의] 친절하신 자비와 기적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들은 그분이 정하신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옵니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가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갈릴리 바다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역풍을 맞으며 힘들게 노를 저은 후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도우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밤 사경인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6:45~51 참조) 때로는 밤 사경이 되어서야 오겠지만 저는 기적이 분명히 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나의 영혼은 주의 것을 기뻐하며”,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2~83쪽)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And when he had sent the multitudes away, he went up into a mountain apart to pray: and when the evening was come, he was there alone.
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But the ship was now in the midst of the sea, tossed with waves: for the wind was contrary.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And in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 Jesus went unto them, walking on the sea.
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And when the disciples saw him walking on the sea, they were troubled, saying, It is a spirit; and they cried out for fear.

마태복음 14:26. “제자들이 … 보고 …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구주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록을 들어, 두려움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에게 나아가는 데에서 방해가 되는지를 설명했다.

“경전의 이 기록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첫 걸음, 또는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는 첫 걸음이 공포감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 두려움이 없어야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의 큰 역설 가운데 하나는 필멸의 인간이 지닌 근시안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과 안전을 제공하는 그 근원으로부터 우리가 도망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저는 침례를 안 받으려고 달아나는 구도자들, 선교사 부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로들, 결혼을 피해 도망가는 연인들, 그리고 가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젊은 부부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너무나 자주 우리를 축복하고, 구원하고, 위로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칩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복음의 의무와 계명들을 두려워하고 저버려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Come unto Me”[Brigham Young University fireside, Mar. 2, 1997], 8; speeches.byu.edu

마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But straightway Jesus spake unto them, saying, Be of good cheer; it is I; be not afraid.

마태복음 14:27~31.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와(마태복음 14:27) 같은 표현은 표준 경전에 여러 차례 나온다. 이렇게 안심하라는 말은 대개 사도 등의 어떤 개인이 절망하거나 좌절스런 상황에 있을 때 구주께서 해 주신 말씀이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제자들은] 큰 곤경에 빠져 있던 순간에 어둠 속에서 겉옷을 펄럭이며 굽이치는 물결 위로 걸어오는 어떤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물 위를 걸어오는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마치 우리들이 인생의 어둠 한가운데서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대양을 조그만 배로 저어 나갈 때처럼 폭풍우와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근원적이고 위안을 주는 평화로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오라’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성난 파도 위를 걸어가는 동안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물방울에 옷이 젖을지라도 모든 것이 안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흔들려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성난 파도와 자기 밑에 있는 어두운 소용돌이로 시선을 돌리자, 곧바로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대부분의 우리들처럼 그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손을 내밀어 물에 빠진 제자를 붙잡으시며 부드럽게 나무라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 (Farrar, The Life of Christ, pp. 310–13에서 각색; 마태복음 14:22~33 참조)

저는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지역 사회와 국가로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불신앙의 세찬 파도를’ 이기고 확신에 차 걸으며 ‘의심의 회오리 바람 가운데서 두려움 없이’ 남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할 그분에게서 눈을 돌린다면, 그러기가 쉽고 또 세상은 그렇게 하도록 크게 유혹하기에, 우리가 우리를 돕고 또 구할 수 있는 그분을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주위에 있는 끔찍하고 파괴적인 요소들이 지닌 힘과 맹렬함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필코 다툼과 슬픔과 절망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엄청난 파도에 압도당하여 물속에 잠길 것 같고 우리 신앙의 배가 깊은 바다에 삼켜질 것 같을 때 우리 모두가 폭풍우와 어둠 가운데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4:27)라는 세상의 구주의 부드러운 음성을 항상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항구에서 비치는 불빛”,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19쪽)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And Peter answered him and said, Lord, if it be thou, bid me come unto thee on the water.
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And he said, Come. And when Peter was come down out of the ship, he walked on the water, to go to Jesus.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But when he saw the wind boisterous, he was afraid; and beginning to sink, he cried, saying, Lord, save me.

마태복음 14:30. “바람을 보고”

베드로가 주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된 것은 세찬 바람 때문이었다. 패트리시아 피 피네거 자매는 본부 청녀 회장단 제2보좌로 봉사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구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오늘날의 방해 요소들을 나열했다.

“[베드로가]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곧 ‘바람’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자, 그는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활에서 바람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그분에게서 돌려놓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우리의 친구나 다른 사람들을 더 기쁘게 해 줄 것을 생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5:44 참조) 그것은 우리가 TV나 비디오, 음악을 통해 듣는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소리일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고합니다.(요한복음 12:37 참조) 언제나 방해가 있고, 바람도 불겠지만, 우리가 주님께 향하고, 주님을 믿고, 그분을 따를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키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주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마태복음 14:30~31]”(“신앙이 증가됨”,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95쪽)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And immediately Jesus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caught him, and said unto him, O thou of little faith, wherefore didst thou doubt?

 

마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And when they were come into the ship, the wind ceased.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Then they that were in the ship came and worshipped him, saying, Of a truth thou art the Son of God.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성난 파도 위를 걸어가는 동안,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물방울에 옷이 적셔졌을지라도 모든 것이 안전하였습니다.[프레데릭 더블류 패러, 그리스도의 생애(1964년), 311쪽] 그러나 흔들리는 신앙으로 주님에게서 눈을 돌려 성난 파도와 자기 밑에 있는 어두운 소용돌이를 바라보자 바로 그 순간에 그는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였습니다. …”

“저는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지역 사회와 국가 조직으로서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불신앙의 세찬 파도를 이기고 힘차게 걸으며 의심의 회오리바람 가운데서 두려움없이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그분에게서 눈길을 돌린다면 우리가 빠지기 쉬운 세상의 많은 유혹들, 즉 우리를 도와 주고 구하실 수 있는 그분을 따르지 않고 격렬하고 파괴적인 힘과 광기를 따른다면, 필연적으로 분쟁과 슬픔과 절망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하워드 더블류 헌터, Conference Report, 1992년 10월, 24쪽; 또는 성도의 벗1993년 1월호, 19쪽)

마 14: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And when they were gone over, they came into the land of Gennesaret.

 

마 14: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And when the men of that place had knowledge of him, they sent out into all that country round about, and brought unto him all that were diseased;

 

마 14: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And besought him that they might only touch the hem of his garment: and as many as touched were made perfectly w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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