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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마태 복음 26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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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그리스도가 기름부음 받음. 유월절을 지키며 성찬을 제정하심. 겟세마네의 고난.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Jesus is anointed—He keeps the passover and institutes the sacrament—He suffers in Gethsemane, is betrayed by Judas, and taken before Caiaphas—Peter denies that he knows him.

마태복음 26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26장은 구주께서 자신에게 곧 일어날 일을 예언하신 내용에서부터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속죄와 관련된 사건들의 기록이 시작되는 장이다. 속죄 및 속죄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건들에는 다음이 포함되어 있다. (1) 구주의 마지막 만찬. 이 만찬에서 구주께서는 자신의 속죄를 나타내는 의식인 성찬을 제정하셨다. (2)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는 고통. 이때 구주께서는 육신과 영혼에 격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다. (3) 그분은 배반당하고 체포당하셨으며, 유대 공회에서 재판 받으셨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들에는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며칠 동안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는 성찬의 제정, 그리스도의 속죄, 사망, 부활 등과 같은 성스러운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러한 사건들이 지닌 비할 바 없는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우리 종교의 근본 원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 곧 그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간증이며,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이 원리에 부수되는 것들이다.”(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113쪽)

이 장들에는 속죄와 부활에 대한 위대한 교리가 담긴 성구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 26: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And it came to pass, when Jesus had finished all these sayings, he said unto his disciples,

마태복음 26: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다

유월절 축제 기간이 다가오자, 구주께서는 자신이 배반당하고 십자가형에 처해질 날이 임박했음을 아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축제 기간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셨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 사이에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방법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일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대 산헤드린(great Sanhedrin)의 종교적 지도자들과 일반 지도자들을 대표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흠모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는 동안 예수님을 잡는다면 소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염려했다. 

마 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Ye know that after two days is the feast of the passover, and the Son of man is betrayed to be crucified.

 

마 26: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Then assembled together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the elders of the people, unto the palace of the high priest, who was called Caiaphas,

 

마 26: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And consulted that they might take Jesus by subtilty, and kill him.

 

마 26: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But they said, Not on the feast day, lest there be an uproar among the people.

 

마 26: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Now when Jesus was in Bethany, in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마태복음 26:6~13. 베다니에서 구주께 향유가 부어지다

구주께 향유가 부어진 일을 이해하려면 마가복음 14:3~9 주해  요한복음 12:1~8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14:3~9. 예수님의 매장을 위해 그분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또한 마태복음 26:6~13; 요한복음 12:1~8 참조)

요한은 마가복음 14장 3~9절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이 바로 마르다와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라고 밝혔다.(요한복음 12:1~3 참조) “옥합”은 향수로 사용되고 시체에도 바르는 방향제인 “순전한 나드”가 들어 있는 병을 말한다.(마가복음 14:3) 그 여인은 예수님이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 그분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분의 임박한 죽음과 매장을 인정하였다. 구주께서는 “그[녀]는 …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4:8) 향유는 매운 비싼 기름으로, 3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가 있었으며, 보통 노동자의 약 일 년 치 임금에 해당하였다.(마가복음 14:5 참조)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기름을 손님의 머리에 붓는 것은 손님을 존중하는 표시이다. 일반 기름을 손님의 발에 붓는 것은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그러나 머리와 발에 값비싼 향유 나드를 한 근씩이나 붓는다는 것은 왕에게까지도 대접하기 어려운 대접이었다. 마리아의 행동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었다. 이 행동은 마음속 깊이 경배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아름답고 멋진 행동이었다.”(예수 그리스도, 513쪽)

구주께서는 세상 곳곳에서 그 여인의 행동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4:9) 이 일은 어떤 점 때문에 그토록 오래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베다니의 여인은 넘쳐 흐르는 감사를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구주께서 고통을 겪고 죽어야만 한다는 가르침을 이해하고 공개적으로 받아들인 첫 번째 제자로서 마가복음에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탈매지 장로는 마리아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야 할 때가 가까이 왔다고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으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마리아의 명확하고 진지한 의도를 암시해” 준다고 설명했다.(예수 그리스도, 514쪽) 주님께 기름을 부은 마리아의 이야기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요한복음 12:1~8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12:1~8. 마리아가 구속주께 경의를 표했다(또한 마태복음 26:6~13; 마가복음 14:3~9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시기 전날 저녁에 베다니에서 저녁 식사를 하셨으며,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도 그곳에 있었다. 이때 마리아가 했던 행동은 구주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타내 보인 것이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늘의 주님께서는 가장 큰 시련을 겪어야 하는 시간이 임박한 이때에 이곳 친구들의 집에 앉으셨으며, 그 곁에는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분이 곧 배반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낱 필멸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 한 사람이 영원하신 구주를 위해 어떤 사랑, 헌신, 숭배, 예배의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윗이 말한 일 이상을 할 수 있겠는가? 다윗은 선한 목자가 친히 다른 사람에게 영광을 부여하고 축복을 베푸실 때 하실 일에 대해 ‘주께서 …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라고 말했다. (시편 23:5)”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700)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300데나리온은 일 년치 평균 임금에 상당하는 금액이었음)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음으로써 그분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곧 자신의 영혼을 루시퍼에게 팔게 될 가룟 유다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것은 단지 자신의 도둑질을 숨기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이렇게 답하셨다. “그녀를 가만히 두어라. 그녀가 이때를 위해 이 향유를 간직해 왔으니, 나를 매장하는 표시로써 나에게 부으려고 했던 것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12:7) 영적인 것에 민감한 마리아는 이때를 위해 준비해 왔었다.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There came unto him a woman having an alabaster box of very precious ointment, and poured it on his head, as he sat at meat.
마 26: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But when his disciples saw it, they had indignation, saying, To what purpose is this waste?
마 26: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For this ointment might have been sold for much, and given to the poor.
마 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When Jesus understood it, he said unto them, Why trouble ye the woman? for she hath wrought a good work upon me.
마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For ye have the poor always with you; but me ye have not always.
마 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For in that she hath poured this ointment on my body, she did it for my burial.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Verily I say unto you, Wheresoever this gospel shall be preached in the whole world, there shall also this, that this woman hath done, be told for a memorial of her.
마 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Then one of the twelve, called Judas Iscariot, went unto the chief priests,

마태복음 26:14~16. “은 삼십”

대제사장들은 가룟 유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넘기는 대가로 “은 삼십”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마태복음 26:15)[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은 삼십을 준 것이 아니라 주기로 약속했다(covenanted)고 나옴—옮긴이] 이 금액은 스가랴의 다음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다.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라] …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스가랴 11:12)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은 삼십 세겔은 죽은 종에 대해 상전에게 변상하는 금액이었다.(출애굽기 21:32 참조) 따라서 구주를 판 값은 예언의 성취 외에도 유다와 제사장들이 그분을 비천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악을 행하도록 미리 운명으로 정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주를 팔기로 한 것은 유다의 선택이었다. 조셉 스미스 역에는 유다가 구주를 팔았던 한 가지 이유가 구주가 가르치신 교리에서 기인했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이사도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겼다. 그가 예수님에게서 돌아섰으며, 그분이 하신 말씀 때문에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었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14:31)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And said unto them, What will ye give me, and I will deliver him unto you? And they covenanted with him for thirty pieces of silver.
마 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And from that time he sought opportunity to betray him.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Now the first day of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the disciples came to Jesus, saying unto him, Where wilt thou that we prepare for thee to eat the passover?

마태복음 26:17~30. 유월절과 성찬(또한 마가복음 14:12~25; 누가복음 22:7~30; 요한복음 13:1~2 참조)

모세 시대에 주님은 유월절을 제정하여,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해 주신 일을 기념하게 하셨다. 그날 주님께서는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셨으나 상징적으로 문설주에 희생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넘어가”셨다.(출애굽기 12:3~14, 26~32 참조)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구주께서는 자신을 기념할 새로운 상징적인 “식사”로서 성찬을 제정하셨다. 유월절의 상징물을 취하는 것이 미래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고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었듯이, 성찬을 취하는 것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풀어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성찬을] 안전과 구원과 구속을 기억하게 하는 방편인 유월절로 여기고 있습니까?”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68쪽) 

마 26: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And he said, Go into the city to such a man, and say unto him, The Master saith, My time is at hand; I will keep the passover at thy house with my disciples.

 

마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And the disciples did as Jesus had appointed them; and they made ready the passover.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Now when the even was come, he sat down with the twelve.

 

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And as they did eat, he said, Verily I say unto you, that one of you shall betray me.

마태복음 26:21~22. “주여 나는 아니지요”

사도들은 구주와 함께 갈릴리와 유대 지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런 여정 동안 구주와 더불어 지내면서 그들은 그분의 신뢰를 받는 친구들이 되었다. 당연히 그들은 유월절 식사 동안 구주께서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하신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각자 돌아가면서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태복음 26:21~22)라고 묻기 시작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이 성구들에 나오는 사도들의 모범을 따르고 주님과 그분 종들의 권고가 자신에게 해당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함을 권고했다.

“마태복음 26장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21)[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 번역된 ‘주여 나는 아니지요’가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Lord, is it I(주여 내니이까)’로 나옴–옮긴이]

이 사람들이 사도였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그들은 사도로서의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늘 흥미롭게 여긴 점은 그 자리에서 그들이 팔꿈치로 서로를 슬쩍 찌르면서 ‘내가 장담하건대 그 사람은 바로 유다야. 요즘 들어서 그가 하는 짓이 확실히 [수상했거든.]’ 하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을 반영합니다. 그런데 기록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마태복음 26:22)

권고를 무시하려는 성향을 다스리고 잠시 적어도 사도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이렇게 자문해 보시겠습니까? ‘나 자신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가? 이 권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행해야 할까?’ 혹 약하거나, 실패하고 있거나 사도들과 제일회장단을 기꺼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다면 주여 그 사람이 저입니까라고 묻지 않으시겠습니까?” (That All May Be Edified [1982], 237) 

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And they were exceeding sorrowful, and began every one of them to say unto him, Lord, is it I?
마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And he answered and said, He that dippeth his hand with me in the dish, the same shall betray me.

마태복음 26:23.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

그릇에 손을 넣는 관습을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13:26~27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13:26~27. 한 “조각”이란 무엇인가?

요한복음 13장 26절에 묘사된 “조각”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그릇에 담긴 고기와 국물을 떠 담는 데 사용하는 작은 빵 조각이었다. 주인이 한 조각을 적셔서 만찬 손님에게 주는 것은 친절과 존경의 행위였기 때문에, 구주께서는 그 행위를 함으로써 유다에게 우애를 나타내 보이신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그에게 배반 계획을 단념하도록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신 것일 수도 있다. 구주께서는 한 조각을 유다에게 주셨고, 그런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요한복음 13:27) 주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3:27) 이는 유다가 어떤 일을 행하기로 결심했는지, 그리고 그가 내린 최종 결정에 따라 행동할 시간이 왔음을 그분께서 알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The Son of man goeth as it is written of him: but woe unto that man by whom the Son of man is betrayed! it had been good for that man if he had not been born.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Then Judas, which betrayed him, answered and said, Master, is it I? He said unto him, Thou hast said.

 

마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And as they were eating, Jesus took bread, and blessed it, and brake it, and gave it to the disciples, and said, Take, eat; this is my body.

마태복음 26:26~28. 성찬의 상징물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동안 성찬을 제정하시며 성찬의 상징물이 자신의 몸과 피를 나타낸다고 사도들에게 가르치셨다.(또한 제3니파이 18:1~3, 7, 11 참조)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성찬 상징물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물보다 앞서서 떼어지고 축복된 빵 조각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찢긴 살과 상한 마음과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육체적 고통을 기억하게 되는데,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신 뒤 최후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요한복음 19:28; 마태복음 27:46)라고 외치셨습니다.

구주께서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셨기에 그분의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니파이후서 2:8) 모든 인류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며, 무덤에서 나와 승리의 부활에 이를 것입니다. … 

작은 잔의 물 한 잔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영적인 고통과 고뇌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태복음 26: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 중에서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누가복음 22:44) 되었습니다.

구주의 영적인 고통과, 사랑이 지극하여 값 없이 주신 무죄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경전에서 지칭하는 아담의 범법인 ‘원죄’(모세서 6:54)의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살았던 인간들과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인류의 죄와 슬픔, 그리고 아픔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분이 가르치셨던 복음의 원리와 의식에 순종하여 살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니파이후서 9:21~23 참조)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값으로 산 것’(고린도전서 6:20)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값비싸며 자비로운 구매였습니까!

그것이 바로 모든 복음 의식이 여러 가지 면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이며, 또한 모두 상징과 비유로 이루어진 이 특별한 의식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쉽고 반복적으로 오게 되는 이유입니다.”(“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67쪽) 성찬에 관한 추가 정보는 고린도전서 11:17~29 주해를 참조한다.

 (조마 26: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떼어 축복하시고 자기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대속물로 주는 내 몸을 기억하는 것이니라."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And he took the cup, and gave thanks, and gave it to them, saying, Drink ye all of it;

마태복음 26:26~29. 구주의 속죄를 기념하다

조셉 스미스 역에는 구주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계속 행하라고 명하셨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이들 성구는 또한 성찬식을 행하는 한 가지 목적이 구주를 따르는 이들에게 그분의 속죄를 기념하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떼어 축복하시고 자기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대속물로 주는 내 몸을 기억하는 것이니라.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그들의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내 이름을 믿는 자를 위하여 흘린 새 언약의 피를 기억하는 것이니라.

또 내가 너희에게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내가 행한 것을 본 대로 지켜 행하고 끝까지 나에 대하여 증거할지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내가 와서 아버지의 왕국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26:22–26; 마태복음 26장 26~29절과 비교)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For this is my blood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shed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마태복음 26:28. “이것은 …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구주께서 “이것은 …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마태복음 26:28) 하신 말씀은 구약 시대에 사용되었던 중요한 용어들을 언급한 것이었다. 언약[testament]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성약[covenant]”을 의미할 수 있다.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약을 맺으셨을 때,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성약했다. 모세는 여호와께 희생 제물을 드렸으며, 그런 후 그는 희생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 너희와 세우신 [성약의] 피니라.”(출애굽기 24:8; 또한 출애굽기 24:3~8 참조) 마태복음 26장 28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언약을 언급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새 “언약”, 즉 성약이 옛 성약처럼 이제 곧 피로 확인받을 것이며, 모세 시대에 희생 제물의 피가 상징적으로 그 시대의 백성을 덮었듯 그분이 우리를 위해 흘릴 피는 우리의 죄를 덮고 지워 없앨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옛 성약이 대체될 것임을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글을 기록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예레미야 31:31)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잔을 주신 것은 옛 성약이 성취되었다는 것과 이제 새 성약을 세운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조마 26:24) "이것은 그들의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내 이름을 믿는 자를 위하여 흘린 새 언약의 내 피를 기억하는 것이니라."

마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But I say unto you, I will not drink henceforth of this fruit of the vine, until that day when I drink it new with you in my Father’s kingdom.

마태복음 26:29. 구주께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취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29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아버지의 왕국에서 그들과 함께 마시기 전까지는 그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성찬은 구주의 속죄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영광 중에 지상으로 돌아오실 때를 내다보고 고대하는 행위이다.(고린도전서 11:26 참조)

후기에 주님께서는 미래에 자신이 지상에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게 될 때에 관하여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상세하게 계시하셨다. 교리와 성약 27편에 기록되어 있듯이, 주님께서는 모로나이, 일라이어스, 침례 요한, 엘리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베드로, 야고보, 요한, “또한 미가엘 곧 모든 자의 조상 … 아담”(교리와 성약 27:4~14 참조) 등 수많은 고대 선지자들을 포함하여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지상에서 다시 성찬을 취하실 것이라고 밝히셨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는 “내 아버지께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모든 자”가 포함된다.(교리와 성약 27:14) 이 말은 우리가 맺은 성약에 충실하게 남고 끝까지 견딘다면 미래의 그날 구주와 함께 성찬의 상징물을 취하는 이들 가운데 우리도 함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마 26:25) "또 내가 너희에게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내가 행한 것을 본 대로 지켜 행하고 끝까지 나에 대하여 증거할지니라."

“우리는 빵과 물을 취할 때마다 다시 한 번 성별되고 헌납되어야 한다. 우리가 계명에 따라 생활하지 않을 때, 우리가 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심과 원한이 있을 때, 우리는 성찬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225쪽)

마 26: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And when they had sung an hymn, they went out into the mount of Olives.

마태복음 26: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구주와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마치면서 했던 “찬미”는 아마도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암송했던 시편 113~118편이었을 것이며, 이것은 할렐이라고 불렸다. 시편 113~114편은 전통적으로 유월절 식사를 시작할 때 노래했으며 시편 115~118편은 그 식사를 정식으로 마칠 때 불렀다. 

마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Then saith Jesus unto them, All ye shall be offended because of me this night: for it is written, I will smite the shepherd, and the sheep of the flock shall be scattered abroad.

마태복음 26:31~35.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구주와 제자들이 다락방을 떠나 감람 산을 향하여 걸어갈 때,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모두 그날 밤 자신을 버리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 스가랴 13장 7절에 나오는 예언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마태복음 26:31) 베드로가 자신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대답은 베드로 자신보다 주님이 그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는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잘 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날, 밤이 더 깊어진 시각에 구주께서는 체포되셨고, 제자들은 일시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베드로는 구주를 세 번 부인했다.

목자를 치리라는 예언은 제자들이 앞으로 다가올 구주의 죽음에 준비되도록 도우시고자 구주께서 지상 성역 동안 여러 번 언급하신 말씀 중 하나였다. 그런 예언들의 또 다른 예는 다음 성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12:38; 16:21; 17:9, 22~23; 20:17~19; 및 21:33~39

마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But after I am risen again, I will go before you into Galilee.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Peter answered and said unto him, Though all men shall be offended because of thee, yet will I never be offended.
마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Jesus said unto him, Verily I say unto thee, That this night, before the cock crow, thou shalt deny me thrice.
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Peter said unto him, Though I should die with thee, yet will I not deny thee. Likewise also said all the disciples.
마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Then cometh Jesus with them unto a place called Gethsemane, and saith unto the disciples, Sit ye here, while I go and pray yonder.

마태복음 26:36. “겟세마네라 하는 곳”

예루살렘 성벽 바로 바깥쪽의 감람 산에, 또는 그 가까이에 있는 겟세마네는 감람나무 동산으로, 구주께서 종종 찾으시던 곳이었다.(누가복음 22:39; 요한복음 18:1~2 참조) 이날 밤, 구주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통을 겪고 무한한 속죄를 행하기 위해 겟세마네로 가셨다. 이 동산의 위치는 예루살렘 성전의 동편이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번제를 드렸던 사람들은 “흠 없는 수컷[짐승]”을 골라 동쪽 회막문에서 그것을 제사장에게 건넸다.(레위기 1:3) 신약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동쪽 문에서 번제물을 제사장에게 건넸다. 이런 행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는 구주의 모습과 유사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올리브를 찧고 압착해서 기름과 식료품으로 만들던 곳인 그 동산은 히브리어로 ‘기름을 짜다’라는 의미의 겟세마네로 불렸습니다. 그곳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려고 모든 사람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8:11] 그분은 모든 인류가 지은 죄의 짐을 짊어지셨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모든 땀구멍에서 피를 쏟으셨습니다.[누가복음 22:44; 교리와 성약 19:18 참조]”(“속죄”,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35쪽)

다음 이야기는 압착된 올리브에서 나오는 기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흘리신 피를 생생하게 상징한다고 할 만한 일면을 보여 준다.

“어느 가을 학기에 나는 브리검 영 대학교 예루살렘 센터에서 올리브를 수확하여 기름을 짜는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감독했다. 올리브를 얌, 즉 돌 절구에 담고 분쇄하는 돌을 밀어서 돌리자 올리브에서 기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름이 석회암 절구의 가장자리로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다시 말해서 해마다 새로 짜는 기름이 나오는 첫 순간에는 기름이 선명한 붉은 색을 띤다.

올리브 압착기 주위에 둘러서서 고대에 기름을 짜는 과정을 재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170명의 학생들에게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기름이 평범한 황금색으로 변해 가는 일 분이라는 시간은 충격적이고 오싹하기까지 했다. 그 현상을 지켜본 학생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했던 상징에 대한 놀라운 확인 이상의 경험이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그 광경은 겟세마네의 실제 모습이었다. … ‘기름을 짜다’, 즉 겟세마네라 불린 이곳에서 구주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 무한하고도 영원한 속죄를 행하시면서 우리를 대신하여 올리브를 압착하는 듯한 고통을 겪으셨다.”(Andrew C. Skinner, Gethsemane [2002], 89–90)

마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And he took with him Peter and the two sons of Zebedee, and began to be sorrowful and very heavy.

마태복음 26:37, 40~45.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시다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듯이, 주님은 사도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가셨다.(마태복음 17:1; 마가복음 5:37 참조) 주님께서 이때 그 세 사람을 뽑아 가신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승천 후에 교회를 감리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겟세마네에서 한 경험은 이후에 속죄에 대한 증인으로서 일하게 될 그들에게 구주의 고통에 대한 귀중한 지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경험을 통해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마태복음 26:41)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Then saith he unto them, My soul is exceeding sorrowful, even unto death: tarry ye here, and watch with me.

마태복음 26:37~39.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통

마태의 기록은 겟세마네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알려 주지만, 이 외의 경전 기록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의 의미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베냐민 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고통, 주림, 갈증과 피로”와 “그의 백성의 사악함과 가증함으로 인한 … 고뇌”를(모사이야서 3:7) 겪으셨다고 가르쳤다. 앨마는 예수님이 “육체를 따라, 그의 심정을 자비로 충만하게 하사, 육체를 따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연약함을 좇아 어떻게 도울지 아시고자”(앨마서 7:11~12 참조) 자기 백성의 온갖 고통과 고난과 시험, 질병, 약함을 경험하셨다고 기록했다. 앨마는 또한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따라 고난을 받으심은 자기 백성의 죄를 지심으로, 그의 구원의 능력을 좇아 그들의 범법을 지워버리려 하심이니[라.]”(앨마서7:13)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구주께서 속죄를 행하시면서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셨다고 말했다.

“첫째, 어마어마한 책임감입니다. 주님은 속죄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버지의 자녀들 중 누구도 아버지께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셨습니다.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 면전에 거할 수 없기에, 율법을 어긴 사람에게 회개할 방도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국 아버지 면전에 머물지 못하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영의 자녀들은 모두가 사탄에게 영원토록 압제와 학대를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둘째, 정신과 마음이 모두 지극히 순수하신 주님께서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의 결과, 심지어 가장 사악하고 비열한 죄의 결과까지도 몸소 느끼셔야 했습니다.

셋째, 사탄의 무리들이 주님을 육체적, 정서적으로 극한까지 몰아가며 사악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분은 견뎌 내셔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이유들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그 힘을 모두 소진하여 도움이 가장 절실한 그 순간에 오로지 혼자의 힘과 능력으로 그 어마어마한 책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에!” 리아호나, 2010년 5월호, 76~77쪽) 

칠십인 회장단의 태드 알 콜리스터 장로는 온 인류가 사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겟세마네와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몇 가지 일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자비하고 광포한 사탄의 세력이 전후좌우에서 구주를 공격했음이 틀림없다. … 구주께서는 집요하게 달라붙는 사탄으로부터 모든 포로가 풀려날 때까지 나아가 담대히 싸우셨다. 그것은 무한한 결과가 따르는 구조의 사명이었다. 구주의 모든 육체적 힘과 모든 미덕, 축적된 모든 영적 힘까지도 그 싸움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모든 능력을 혹사하고, 모든 힘을 발휘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사용한 후에야 사탄의 세력은 자신의 주둔지를 버리고 참패를 맛보며 퇴각했을 것이다. … 위대한 구조자께서 우리를 현세와 영원토록 구원하신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투였던가! 그 고통은 또 얼마나 컸던가! 그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었던가! 그 얼마나 큰 희생이었던가!” (The Infinite Atonement [2000], 130–31)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And he went a little further, and fell on his face, and prayed, saying, O my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thou wilt.

마태복음 26:39.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구주께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마태복음 26:39) 하신 것은 그분이 하늘 아버지께 복종하셨다는 점을 나타낸다. 구주께서 속죄의 쓴 잔을 마실 수 있도록 그분을 떠받치고 힘을 돋우어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분명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 경전과 선지자의 가르침에서 몇 가지 답을 얻을 수 있다.

구주의 동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완전무결한 사랑과 그분을 향한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요한복음 8:29; 17:1~26 참조) 그분은 자신이 “세상을 그처럼 사랑하여 자기의 생명을 주었”다고(교리와 성약 34:3; 또한 니파이전서 19:9 참조) 밝히셨다. 그분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히브리서 12:2) 로렌조 스노우(1814~1901) 회장은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요구하신 속죄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과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신앙을 발휘해야 했다.”라고 가르쳤다.(The Teachings of Lorenzo Snow, comp. Clyde J. Williams [1984], 98)

구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것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우리를 북돋우는 모범이 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간구하려면 커다란 신앙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믿고 견디는 신앙은 위대한 힘을 가져옵니다. 충분한 신앙이 있으면 시련과 환난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다르게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 상황을 참고 견디기 위한 것입니까? 우리는 생활하는 가운데 상황이 바뀌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매번 기도를 끝낼 때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태복음 26:42)라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에는 그분에 대한 신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성도의 벗, 1998 7월호, 77쪽)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And he cometh unto the disciples, and findeth them asleep, and saith unto Peter, What, could ye not watch with me one hour?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Watch and pray, that ye enter not into temptation: the spirit indeed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마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He went away again the second time, and prayed, saying, O my Father, if this cup may not pass away from me, except I drink it, thy will be done.

 올슨 에프 휘트니 장로는 사도로 성임되기 몇 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구세주에 관한 시현을 받았다. 이 시현에 대한 휘트니 장로의 다음 설명을 읽는다.

“나는 구세주의 혹심한 고통을 목격하는 증인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보통 사람을 보는 것처럼 분명하게 구세주를 보았다, 나는 나무 뒤에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나의 오른편에 있는 좁은 문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세 제자에게 무릎을 끊고 기도하라고 이르고 나서 저쪽으로 가 그 곳에서 무릎을 끊고 기도하였다. 주님은 경전에 나와 있는 대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에 눈물이 나를 향한 그분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흘렸다. 나의 온 마음은 그분에게로 쏠렸다. 나는 진심으로 그분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직 그분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윽고 예수님은 일어나 제자들에게 무릎을 끊고 기도하도록 한 곳으로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고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희가 나와 함께 잠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꾸짖으셨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그분의 어깨 위에 짊어지시고 만인을 위하여 그 영혼이 찢기 우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그들은 한 시간도 그분과 함께 깨어 있지 못했다.

“주님이 다시 방금 기도하시던 곳으로 가셔서 전과 같은 기도를 하고 돌아와 보니 세 제자가 다시 잠이 들어 있었다. 주님은 그들을 다시 깨워 훈계하고 또 그 곳으로 돌아가 기도하셨다. 이러한 일이 세 번씩 반복되는 동안ㆍㆍㆍ .”(올슨 휘트니, 메모리 홀, 1930년 ;성도의 벗 1976년 4월호7~8쪽)

마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And he came and found them asleep again: for their eyes were heavy.

 

마 26: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And he left them, and went away again, and prayed the third time, saying the same words.

 

마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Then cometh he to his disciples, and saith unto them, Sleep on now, and take your rest: behold, the hour is at hand, and the Son of man is betrayed into the hands of sinners.

 

마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Rise, let us be going: behold, he is at hand that doth betray me.

 

마 26: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And while he yet spake, lo, Judas, one of the twelve, came, and with him a great multitude with swords and staves, from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of the people.

마태복음 26:47~50. 구주를 배반하다

신약 시대에는 사람들이 서로 뺨에 입을 맞추며 인사하는 관습이 있었다.(로마서 16:16; 고린도전서 16:20; 데살로니가전서 5:26 참조) 특히 제자가 위대한 스승에게 그러한 인사를 하는 것은 존경을 나타내는 의미였다. 그 인사는 형제애와 우정을 전달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유다에게 하신 다음 말씀은 반어법으로 하신 것이었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마태복음 26:50)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누가복음 22:48

마 26: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Now he that betrayed him gave them a sign, saying, Whomsoever I shall kiss, that same is he: hold him fast.

 

마 26: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And forthwith he came to Jesus, and said, Hail, master; and kissed him.

 

마 26: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And Jesus said unto him, Friend, wherefore art thou come? Then came they, and laid hands on Jesus, and took him.

 

마 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And, behold, one of them which were with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drew his sword, and struck a servant of the high priest’s, and smote off his ear.

마태복음 26:51~54. 구주께서 천군을 불러들일 수도 있었다

구주께서 자신이 기도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마태복음 26:53)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하신 말씀은 그분이 기꺼이 체포되어 학대를 받겠다고 하신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자 그대로 “열두 군단”은 36,000명과 72,000명 사이의 천사였을 것이다. 구주께서 바로 며칠 전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은 그분이 말 한 마디로도 멸망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마태복음 21:19~20 참조) 그분은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있었으나 이 상황에서 그 힘을 사용하지는 않으셨다. 몰몬경의 선지자 야곱은 백성에게 주님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그가 너희를 꿰뚫을 수 있으시며, 그 눈으로 한 번 쳐다보심으로써 너희를 티끌에 쳐버리실 수 있으심[이라.]” (야곱서 2:15)

후에 칠십인이 된 제럴드 엔 런드는 구주께서 학대를 받으셨을 때 자신을 지킬 힘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으신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자신의 권능, 빛, 영광으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분, 자신의 말로 태양계, 은하, 별들도 생겨나게 하는 분이 악인들 앞에 서서 아무런 가치나 쓸모도 없는 존재로 판단받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자신을 재판하려고 잡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구주께서 하실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그분이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과 관련하여 새롭고도 색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유다가 병사와 대제사장들을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에 와서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을 때, 그분은 한 마디 말로 예루살렘 성 전체를 초토화하실 수도 있었다. 대제사장의 종이 앞으로 나와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때렸을 때, 예수님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그 사람을 원래의 원소로 되돌리실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와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예수님은 눈을 깜빡거리는 것만으로도 태양계 전체를 소멸시킬 수 있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그곳에 서서 인내하고, 감내하며, 자신을 낮추셨다.”(“Knowest Thou the Condescension of God?” in Bruce A. Van Orden and Brent L. Top, eds., Doctrines of the Book of Mormon: The 1991 Sperry Symposium [1992], 86)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 버렸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반응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까지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Then said Jesus unto him, Put up again thy sword into his place: for all they that take the sword shall perish with the sword.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Thinkest thou that I cannot now pray to my Father, and he shall presently give me more than twelve legions of angels?
마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But how then shall the scriptures be fulfilled, that thus it must be?
마 26: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In that same hour said Jesus to the multitudes, Are ye come out as against a thief with swords and staves for to take me? I sat daily with you teaching in the temple, and ye laid no hold on me.

 

마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But all this was done, that the scriptures of the prophets might be fulfilled. Then all the disciples forsook him, and fled.

 

마 26: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And they that had laid hold on Jesus led him away to Caiaphas the high priest, where the scribes and the elders were assembled.

마태복음 26:57. 가야바는 누구였는가?

 가야바는 주후 18년부터 36년까지 대제사장[high priest]이었으며, 주후 7년부터 14년까지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의 사위였다. 가야바는 사두개인에 속했다. 신약 시대에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은 합법적인 신권 직분이라기보다는 부정한 정치적 관직이었다. 가야바는 신약 시대의 그 어떤 대제사장보다도 더 오랜 기간 그 직분을 유지하였으며, 이는 그가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로마 정부 지도자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음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으로서 가야바가 맡은 책임에는 성전의 헌금함을 관리하고 성전 의식을 감독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으로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다. 성전에서 이런 책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구주께서 성전 뜰을 깨끗이 하셨을 때 그분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신의 부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마태복음 21:12~15 참조) 구주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일이 있고 난 후,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여야 할 필요성을 피력했다. 아마도 그는 주도적으로 그 일을 모의했을 것이다.(요한복음 11:49~53 참조) 대제사장으로서 가야바는 산헤드린을 관장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한 그날 밤 그분을 심문한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마 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But Peter followed him afar off unto the high priest’s palace, and went in, and sat with the servants, to see the end.

 

마 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Now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and all the council, sought false witness against Jesus, to put him to death;

마태복음 26:59. “예수를 죽이려고”

마태복음 26장 59절에 언급된 공회는 예루살렘의 대 산헤드린으로, 레위인, 대제사장들[chief priests],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 외 정치 단체에 속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71명으로 구성된 의결 기관이다. 그곳의 의장은 대제사장[high priest]이었는데, 이 시기에는 가야바가 그 직위에 있었다. 이것은 유대인의 최고 사법 재판소이자 예루살렘의 최고 입법 의회였다. 이곳의 주된 기능은 유대인의 율법을 해석하고 유대인의 생활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이 공회에 속한 대제사장들과 그 밖의 구성원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았는데,]” 이는 그들이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음과, 그분을 소송할 논거가 빈약하고, 그들의 행동은 계획적인 것이었음을 암시한다.(또한 Bible Dictionary, “Sanhedrin” 참조) 

마 26: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But found none: yea, though many false witnesses came, yet found they none. At the last came two false witnesses,

 

마 26: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And said, This fellow said, I am able to destroy the temple of God, and to build it in three days.

마태복음 26:61~66. 신성 모독죄

신성 모독은 하나님을 욕하거나 경멸하거나 조롱하거나 저주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중 어느 것도 하지 않으셨으나 가야바는 구주께서 자신이 “권능의 우편에” 앉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여겼다.(마태복음 26:63~64 참조) 그러나 신성한 권능과 권세에 대한 구주의 주장은 그것이 진실이 아닐 경우에만 신성 모독이 되었을 것이다. 그 말씀을 들은 가야바는 자신의 옷을 찢고 구주께서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모세 율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죄였기 때문이었다.(레위기 24:11~16 참조) 가야바와 공회의 회원들은 구주께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신성 모독은 유대인의 문제이지 로마 당국의 관심사는 아니었기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로 호송하면서 죄목을 선동죄로 바꾸었다. 선동죄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15:1~2 주해를 참조한다. 

마 26: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And the high priest arose, and said unto him, Answerest thou nothing? what is it which these witness against thee?
마 26: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But Jesus held his peace. And the high priest answered and said unto him, I adjure thee by the living God, that thou tell us whether thou be the Christ, the Son of God.
마 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Jesus saith unto him, Thou hast said: nevertheless I say unto you, Hereafter shall ye see the Son of man sitting on the right hand of power, and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마태복음 26:64. “이후에 인자[를] … 너희가 보리라”

“인자”를(마태복음 26:64) 보는 것에 관한 구주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마가복음 14:53~65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14:53~65. 공회 앞에 서심(또한 마태복음 26:57~68; 누가복음 22:63~71; 요한복음 18:19~24 참조)

마가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공회 앞에 서신 일을 사복음서 중 가장 길게 기록했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세부 사항은 구주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던 증인들이 서로 상충하는 증언을 했다는 점이다.(마가복음 14:56~59 참조) 모세 율법에서 사형을 선고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적어도 두 가지는 있어야 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고소는 무효였다.(민수기 35:30; 신명기 17:6; 19:15 참조) 그리고 대응할 가치가 없는 거짓 앞에서 구주께서는 침묵하셨다.

마침내,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물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마가복음 14:61) 마가복음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구주의 단언은 사복음서 중 가장 솔직 담백하다. “내가 그니라.” 이 강력한 답변에 더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가복음 14:62) 구주께서는 이 말씀에서 경전에 나오는 예언을 인용하셨다. 해당 구절은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라고 나오는 다니엘 7장 13~14절과 메시야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이라고 나오는 시편 110편 1절이다.(또한 마가복음 12:36; 13:26; 16:19 참조) 자신에 대한 이 증언으로 그분은 메시야, 즉 “인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전하셨다.

구주께서 하신 증언은 자신을 재판하는 공회에게 전하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분은 자신이 왕좌에 앉아 그들을 심판할 때가 오리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셨다. 구주의 대답은 그분이 당면한 고통을 넘어서서 미래의 승리, 특히 아버지에게로 승천하고 미래에 영광 중에 올 날을 내다보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예수[는] …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신성 모독죄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26:61~66 주해를 참조한다.

마 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Then the high priest rent his clothes, saying, He hath spoken blasphemy; what further need have we of witnesses? behold, now ye have heard his blasphemy.

 

마 26: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What think ye? They answered and said, He is guilty of death.

마태복음 26:66~68. 유대인 공회에서 학대받는 구주

유대인 지도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육체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심문을 받기 전에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미 여러 시간 동안 고통을 겪으셨다. 그분은 키드론 계곡을 왔다갔다 하셨다. 그분은 또한 출혈에 따른 증상에 시달리고, 약해진 몸으로 밤 공기를 맞아 오한을 느끼고 계셨을 것이다. 또한 여러 시간 동안 잠도 주무시지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그분은 자신을 고소한 자들에게 학대를 당하셨다. 니파이는 구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을 향한 그의 사랑의 친절과 그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니파이전서 19:9) 자신에게 퍼붓는 학대와 모욕을 기꺼이 감내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그분을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다.(마태복음 26:67 참조) 그들은 그분의 눈을 가리고 그분을 조롱했다.(마가복음 14:65; 누가복음 22:63~64 참조) 후에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심이라.]”(베드로전서 2:21, 23)

칠십인의 브루스 디 포터 장로는 속죄를 이루기 위해서는 죄 없는 구주께서 유대인과 로마 지도자들로부터 학대를 받으셔야만 했다고 가르쳤다. “예수님이 여러 차례 재판을 받는 동안 당하신 잔학 행위와 모욕은 그리스도를 실족시키려는 루시퍼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나타낸다. 단 한 번의 실수, 다시 말해 한 마디라도 화를 내거나 한 번이라도 분노가 폭발하거나, 심지어 한 순간이라도 자기 연민이나 교만에 빠진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거짓 고소, 불경스러운 감정의 폭발, 가시관, 뼛조각이 박힌 채찍으로 가하는 채찍질, 왕복 입히기, 군병들의 침 뱉음, 조롱, 구타 등 온갖 모욕이 구주께 퍼부어졌다. 이 모든 비참한 장면은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거두신 승리를 수포로 돌릴 방법을 찾고자 한 루시퍼가 도모한 것이었다.”(The King of Kings [2000], 106–7) 

마 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Then did they spit in his face, and buffeted him; and others smote him with the palms of their hands,
마 26: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Saying, Prophesy unto us, thou Christ, Who is he that smote thee?
마 26: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Now Peter sat without in the palace: and a damsel came unto him, saying, Thou also wast with Jesus of Galilee.

마태복음 26:69~75.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다(또한 마가복음 14:66~72 참조)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베드로가 구주를 세 번이나 부인한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그가 구주를 극심하게 사랑했으며 구주께서도 그를 신뢰하셨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권했다.

“그 끔찍한 밤에 베드로가 정신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인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담대함, 용기, 큰 헌신과 구주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그에 대해 선의로 해석하고 적어도 구주께서 하셨듯이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온전히 그렇게 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의 즉시 그를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분으로 올려 주시고 왕국의 열쇠를 모두 부여해 주셨습니다.

… 그는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자신이 주님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셨던 십자가형까지도 모두 성취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단지 개인적인 회개만을 위해 눈물을 흘렸을까요, 아니면 그와 더불어 주님의 운명을 깨닫고서 큰 상실감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린 것일까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믿음이 있는 자들의 선두에 섬으로써 제일 먼저 무덤에 온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몇 주 후에 그는 성도들을 모아 조밀하고, 강하며, 통일된 공동체로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그는 감옥에서 고생하고, 두들겨 맞고, 학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밀 까부르듯’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2:31 참조)” (Peter, My Brother, Brigham Young University Speeches of the Year [July 13, 1971], 5) 베드로의 부인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요한복음 18:15~18, 25~27 주해를 참조한다.

마 26: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But he denied before them all, saying, I know not what thou sayest.
마 26: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And when he was gone out into the porch, another maid saw him, and said unto them that were there, This fellow was also with Jesus of Nazareth.
마 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And again he denied with an oath, I do not know the man.
마 26: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And after a while came unto him they that stood by, and said to Peter, Surely thou also art one of them; for thy speech bewrayeth thee.
마 26: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Then began he to curse and to swear, saying, I know not the man. And immediately the cock crew.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And Peter remembered the word of Jesus, which said unto him, Before the cock crow, thou shalt deny me thrice. And he went out, and wept bitterly.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베드로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우리는 대체로 너무나 그와 흡사합니다. 우리는 충성을 맹세하고 큰 용기를 갖겠다고 결심하고,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의를 행하고 의로운 대업을 위해 일어서며, 우리 자신과 남에게 진실하겠다고 다짐하며, 어떤 때는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압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압력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욕망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압력은 허망한 야심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의지가 약해지고 기강이 해이해져서 결국 우리는 그 압력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찾아드는 것은 후회이며 가책과 쓰라린 눈물뿐입니다.

"ㆍㆍ이제 전세계의 교회 회원 중에서 행동이나 말로 신앙을 부인한 분들이 계시다면, 베드로의 예에서 위로를 얻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한때 예수님과 매일 동행했으나 곤경의 시간에는 주님과 자신이 간직했던 간증까지 잠시 부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딛고 일어섰으며, 마침내 신앙의 위대한 수호자요 강한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왕국을 건설하는 사업에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신앙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성도의 벗, 1994년 8월호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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