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전 니후 야곱 이노 예이 몰말 모사 3니 4니 이더 모로 TITLE

주석 앨마서 3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36장. 37장. 38장. 39장. 40장. 41장. 42장. 43장. 44장. 45장. 46장. 47장. 48장. 49장. 50장. 51장. 52장. 53장. 54장. 55장. 56장. 57장. 58장. 59장. 60장. 61장. 62장. 6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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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앨마가 고난으로 겸손하게 된 가난한 사람들을 가르침 - 신앙은 보이지 않는 참된 것을 바라는 것임 - 앨마가 천사들이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성역을 베푼다는 것을 증거함 - 앨마가 말씀을 씨앗에 비유함 - 그것은 심고 가꾸어야 함 - 그리하면 그것은 영생의 열매를 따는 나무로 자라게 됨. 주전 74년경.

주) 앨마서 32장 주석(영문) (www.josephsmith.com)

Alma teaches the poor whose afflictions had humbled them—Faith is a hope in that which is not seen which is true—Alma testifies that angels minister to men, women, and children—Alma compares the word unto a seed—It must be planted and nourished—Then it grows into a tree from which the fruit of eternal life is picked. [About 74 B.C.]

소개

앨마와 그의 형제들은 배도에 빠진 조램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다. 시련을 겪은 일부 조램인들은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개인 및 집단 예배에 관한 앨마와 앰율레크의 가르침은 속죄 권능, 회개, 신앙, 하나님의 말씀, 기도의 중요성 등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일부를 다룬다. 앨마와 앰율레크는 자신의 간증 외에도 고대 선지자 세 명의 간증과 메시지를 전했다. 여기에 실린 교리와 원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앨마서 32장.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 앨마서 32장의 핵심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이다. 앨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옥한 마음 밭에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말씀을 시험할 때, 또는 순종하여 씨앗을 잘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귀한 열매, 모든 것 중에 가장 감미롭고, 가장 희고, 가장 순수한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그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어떻게 말씀을 믿는 신앙을 키워서 이 열매를 먹을 수 있을까?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만일 우리가 생생하고 영속하는 신앙을 갖고자 한다면 교회 회원으로서 맡는 모든 의무를 활동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조셉 필딩 스미스, 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2권, 276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주었다. “신앙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라는 행동과 하나가 될 때 존재합니다. 첫째, 절대적인 신뢰, 둘째, 행동, 셋째, 절대적인 순종.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약하고 힘 없는 모조 신앙뿐입니다.”(조셉 비 워스린, 리아호나, 2002년 11월호, 83쪽)

앨마서 32~34장. 생명 나무

•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앨마서 32~34장을 서로 연관지어 공부해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앨마서 32장에 나오는] 앨마의 훌륭한 설교를 통해, 독자들은 씨앗과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에 대해 간략하게 이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열매 맺는 나무로 자란 신앙, 일찍이 리하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표현한 바로 그 열매를 맺는 나무에 관한 설교에 집중하게 된다. ……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 생명수, 참 포도나무다. 그리스도는 씨앗, 나무, 영생의 열매다. 그러나 독자들이 몰몬경에서 다음 두 장을 계속해서 읽지 않으면, 이 연설에 나오는 심오하고 핵심적인 생명 나무 비유를 놓치거나 그 의미를 이해하는 폭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제프리 알 홀런드, Christ and the New Covenant [1997], 169)

앨 32:1 이에 이렇게 되었나니 저들이 나아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회당에도, 또 그들의 집에도 들어가고, 또한 참으로 그들의 거리에서도 말씀을 전파하였더라. AND it came to pass that they did go forth, and began to preach the word of God unto the people, entering into their synagogues, and into their houses; yea, and even they did preach the word in their streets.

앨마서 32:1~16. 겸손한 자들에게 주는 설교 : "앨마서 32장에는 경전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신앙에 대한 교리 중 가장 중요한 설교가 담겨져 있다. 조램인들은 배도 상태에서 생활했으며 잘못된 교리를 배웠다. 따라서 앨마는 그처럼 영적으로 미숙한 추종자들에게 신앙을 키우는 예비 단계에 대해 설교했다. 앨마의 설교는 단순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지만, 그것에 담긴 내용은 심오하다." (몰몬경 학생교재 종교 121-122)

앨 32:2 이에 이렇게 되었나니 그들 가운데서 많은 수고를 한 후, 저들이 가난한 계층의 백성 가운데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으니, 이는 보라, 그들이 그 의복의 조악함으로 인하여 회당에서 쫓겨났음이러라 - And it came to pass that after much labor among them, they began to have success among the poor class of people; for behold, they were cast out of the synagogues because of the coarseness of their apparel—  
앨 32:3 그리하여 그들은 더러운 것으로 여겨져, 하나님을 예배하러 그들의 회당에 들어감이 허락되지 아니하였더라. 이러므로 그들은 가난하였으니, 참으로 그들은 그 형제들에게 찌꺼기같이 여겨졌더라. 이리하여 그들은 세상의 것으로도 가난하였고, 또한 마음으로도 가난하였더라. Therefore they were not permitted to enter into their synagogues to worship God, being esteemed as filthiness; therefore they were poor; yea, they were esteemed by their brethren as dross; therefore they were poor as to things of the world; and also they were poor in heart.  
앨 32:4 이제 앨마가 오나이다 산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 큰 무리가 그에게로 나아오니, 이는 우리가 말하던 자들이요, 그들이 세상의 것에서 가난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가난하다 한 자들이라. Now, as Alma was teaching and speaking unto the people upon the hill Onidah, there came a great multitude unto him, who were those of whom we have been speaking, of whom were poor in heart, because of their poverty as to the things of the world.  
앨 32:5 이에 그들이 앨마에게로 와서, 그들 중 으뜸 되는 자가 앨마에게 말하되, 보소서 나의 이 형제들이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이는 그들이 그 가난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받되, 참으로 우리의 제사들에게 특히 더 그러함이라. 이는 저들이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많이 수고하여 지은 우리의 회당에서 우리를 쫓아내었음이오며, 또 저들이 우리의 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우리를 쫓아내어, 우리에게 우리의 하나님을 예배할 장소가 없음이오니, 보소서,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And they came unto Alma; and the one who was the foremost among them said unto him: Behold, what shall these my brethren do, for they are despised of all men because of their poverty, yea, and more especially by our priests; for they have cast us out of our synagogues which we have labored abundantly to build with our own hands; and they have cast us out because of our exceeding poverty; and we have no place to worship our God; and behold, what shall we do?  
앨 32:6 이에 이제 앨마가 이를 듣고, 몸을 돌이켜, 자기 얼굴을 바로 그에게로 향하고, 큰 기쁨으로 바라보았으니, 이는 그들의 고난이 진실로 그들을 겸손하게 한 것과 또 그들이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음이라. And now when Alma heard this, he turned him about, his face immediately towards him, and he beheld with great joy; for he beheld that their afflictions had truly humbled them, and that they were in a preparation to hear the word.

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닌지 돌아보아, 스스로 겸손해져야 한다.

앨 32:7 그리하여 그가 다른 무리에게 더 말하지 아니하고, 그 손을 내밀고, 자기가 바라보는 바 진실로 뉘우치는 자들에게 외치며, 그들에게 이르되, Therefore he did say no more to the other multitude; but he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cried unto those whom he beheld, who were truly penitent, and said unto them:  
앨 32:8 내가 보니 너희는 마음이 겸손하도다, 만일 그렇다면 너희가 복이 있도다.

I behold that ye are lowly in heart; and if so, blessed are ye.

 
앨 32:9 보라 네 형제가 말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하리요, 이는 우리가 우리 회당에서 쫓겨나, 우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음이라 하였도다. Behold thy brother hath said, What shall we do?—for we are cast out of our synagogues, that we cannot worship our God.  
앨 32:10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오직 너희 회당에서가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생각하느냐? Behold I say unto you, do ye suppose that ye cannot worship God save it be in your synagogues only?  
앨 32:11 또 더욱이 내가 묻고자 하노니, 너희는 일 주일에 한 번 밖에는 하나님을 예배해서 안된다 생각하느냐? And moreover, I would ask, do ye suppose that ye must not worship God only once in a week?  
앨 32:1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겸손하게 되고, 또 지혜를 배우도록, 너희가 너희의 회당에서 쫓겨난 것이 잘 된 일이라. 이는 너희가 지혜를 배움이 꼭 필요함이요, 너희가 마음이 낮아지게 된 것이, 너희가 쫓겨나고, 너희의 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너희 형제들에게 멸시를 받은 연고임이니, 이는 너희가 불가불 겸손하게 되었음이니라.

I say unto you, it is well that ye are cast out of your synagogues, that ye may be humble, and that ye may learn wisdom; for it is necessary that ye should learn wisdom; for it is because that ye are cast out, that ye are despised of your brethren because of your exceeding poverty, that ye are brought to a lowliness of heart; for ye are necessarily brought to be humble.

 
앨 32:13 또 이제 너희가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었음으로 인하여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는 사람이 간혹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면, 회개를 구함이요, 이제 정녕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가 자비를 얻을 것임이며, 자비를 얻고 끝까지 견디는 자 그 같은 자가 구원을 받을 것임이니라. And now, because ye are compelled to be humble blessed are ye; for a man sometimes, if he is compelled to be humble, seeketh repentance; and now surely, whosoever repenteth shall find mercy; and he that findeth mercy and endureth to the end the same shall be saved.  
앨 32:14 또 이제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었음으로 인하여 너희가 복이 있다 이른 것같이, 너희는 말씀으로 인하여 진실로 스스로 겸손하여진 자들이 더욱 복있다 생각하지 않느냐? And now, as I said unto you, that because ye were compelled to be humble ye were blessed, do ye not suppose that they are more blessed who truly humble themselves because of the word?  
앨 32:15 진실로 스스로 겸손하게 되어, 자기 죄를 회개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 그 같은 자는 복이 있으리니 - 참으로 자기의 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는 자들보다 훨씬 더 복되리라. Yea, he that truly humbleth himself, and repenteth of his sins, and endureth to the end, the same shall be blessed—yea, much more blessed than they who are compelled to be humble because of their exceeding poverty.

“복음은 우리가 무릎을 꿇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비울 것을 요구한다. 마음은 무릎보다 더 자주 불구일 때가 있다.” (닐 에이 맥스웰, That Ye May Believe [1992], 101)

앨 32:16 그러므로 어찌할 수 없어 겸손하게 됨이 없이 스스로 겸손하여진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곧 그보다 달리 말하자면, 참으로 믿기 전에 말씀을 알게 되거나, 또는 불가항력으로 알게 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의 완고함이 없이 침례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앨마는 가난한 조램인들이 복음을 배울 준비가 되었음을 감지했다. 부유한 조램인들에게 거부 당했기 때문에 그들은 겸손한 상태에 이르렀다.

감리 감독단의 리차드 시 에즐리 감독은 사람이 복음의 축복을 받는 데 필요한 덕성은 겸손과 유순함이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대부분 겸손이 나약함으로 오인받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거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이나 회사에서는 겸손을 소중한 덕목이나 경영상 바람직한 특성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배우면서 겸손과 순종적인 마음 자세에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미덕은 하나님의 축복과 신권 권능을 누리게 하는 중요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학력이 얼마나 높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겸손하고 순종하며 감사드리는 마음을 품을 때 힘과 희망이 생겨납니다.”(리차드 시 에즐리,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98쪽)

주) (교성58:26~29) "이는 보라, 내가 범사에 명령해야 함은 적절하지 아니함이라. 무릇 범사에 강요당하는 자는 게으르고 현명하지 못한 종이니, 그런즉 그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사람은 모름지기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자유의사로 많은 일을 행해야 하며 많은 의를 이룩해야 하느니라. 이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 이로써 그들이 스스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가 되는 까닭이니, 사람이 선을 행하는 만큼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명령을 받기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명령을 받고 그것을 게을리 지키는 자, 그는 정죄를 받느니라."

Therefore, blessed are they who humble themselves without being compelled to be humble; or rather, in other words, blessed is he that believeth in the word of God, and is baptized without stubbornness of heart, yea, without being brought to know the word, or even compelled to know, before they will believe.

앨마서 32:8~16. “스스로 겸손하여진 자들은 복이 있도다”

• 주님께서는 때때로 일부러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실 만큼 겸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앨마서 32장 8~16절에는 겸손해지는 두 가지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13절에는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 14절과 16절에는 “말씀으로 인하여” 스스로 겸손해지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 칠십인인 카를로스 이 에이시(1926~1999) 장로 또한 이 두 부류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 성품에 ‘니파이인 주기’가 일정 부분 포함된 것 같다. 즉, 우리는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때가 있으며, 겸손할 때 성장하고 영성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족하고 교만해지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 …… 하나님과 우리 종교를 늘 기억하고 계속 예배와 의로운 생활을 통해 그 주기를 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주님 말씀으로 겸손해지고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할 만큼 우리 영이 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카를로스 이 에이시, Family Pecan Trees: Planting a Legacy of Faith at Home [1992], 193~194)

•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우리 스스로 겸손해지는 방법과 시련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지는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우리는 형제 자매에게 품은 적의를 극복하고 그들을 우리 자신과 같이 존중하며, 우리와 같이, 또는 더 높이 올려 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교성 38:24; 81:5; 84:106 참조)

우리는 권고와 징계를 받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야곱서 4:10; 힐라맨서 15:3; 교성 63:55; 101:4~5; 108:1; 124:61, 84; 136:31; 잠언 9:8 참조)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 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제3니파이 13:11, 14; 교성 64:10 참조)

우리는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모사이야서 2:16~17 참조)

우리는 선교사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앨마서 4:19; 31:5; 48:20 참조)

더 자주 성전에 들어감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버려 하나님에게서 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교성 58:43; 모사이야서 27:25~26; 앨마서 5:7~14, 49 참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따르며, 우리 생활에서 그분을 앞세움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제3니파이 11:11; 13:33; 모로나이서 10:32 참조)”(에즈라 태프트 벤슨, Ensign, May 1989, 6~7)

앨 32:17 참으로 이르기를, 네가 만일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면, 그러면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이요, 그러면 우리가 믿으리라 하는 자가 많으니라. Yea, there are many who do say: If thou wilt show unto us a sign from heaven, then we shall know of a surety; then we shall believe.

앨마서 32:17~43. 신앙을 키움 : "신앙에 대한 앨마의 설교에는 교회 회원들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신앙관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앨마의 접근 방법은 영적이고 지적이며, 과학적이어서 관심을 둘 만하다.

가. 가설

  1.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이 있다.(앨마서 32:32 참조)
  2. “신앙이 있으면 [너희는]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21절)지만,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앨마가 의미하는 완전한 지식이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인 것 같다.(17~18, 21, 26, 33~34절 참조) 신앙을 토대로 생활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의 증거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바울은“신앙은 바라는 것들의 토대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조셉 스미스 영감역, 히브리서 11:1)라고 가르쳤다. 앨마는 사람이 그 말을 시험하면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되어 그 정수에 대한 완전한 자신의 지식이 된다고 설명했다.(앨마서 32:33~34 참조)
  3. 보지 못한 것을 처음부터 완전히 확실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신앙으로 시작해야 하며, 신앙은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다.(26절 참조)
  4. 신앙의 씨앗(믿고자 하는 의욕일지라도)을 마음에 심고 영양을 적당히 공급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되는 지식으로 성장할 수 있다.(27절 참조)

나. 실험

  1. 하나님의 말씀을 씨에 비유한다.(28절 참조)
  2. 씨앗을 단순히 머리 속이 아니라 가슴 속에도 심는다.(28절 참조)
  3. 불신앙으로 그 씨앗을 내던지거나 그것을 동반하는 주님의 영을 거스리지도 말아야 한다.(28절 참조) 씨가 우리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 영혼을 키우며 이해력을 밝혀 준다면, 그 씨앗은 좋은 씨앗이며, 그렇지 않는다면 그 씨앗은 나쁜 씨앗임으로 버려야 한다.(28~32절 참조)

다. 결론

  1. 만일 씨가 자라기 시작하면, 신앙은 훌륭히 그에 내재하게 되며, 여러분은 그 씨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33~35절 참조)
  2.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여 영양분을 주고 잘 보살펴 주면 씨앗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것이다.(36~37절 참조)
  3. 씨앗이나 나무를 소홀히 하면, 나무는 마르지만, 이것이 씨앗 자체가 나빴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적인 토양이 메마르고 비생산적임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실험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실험을 잘못한 것이므로, 여러분은 열매를 얻는 기쁨을 얻지 못할 것이다.(38~40절 참조)
  4. 근면, 인내와 지속적인 신앙은 나무가“영생”으로(41절) 뻗어 오르게 할 것이며 여러분은“지극히 귀하고, 감미로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감미로우며, 흰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희며, 순결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순결한 그 열매를 거두”(42절)게 될 것이다." (몰몬경 학생교재 종교 121-122)
앨 32:18 이제 내가 묻노니, 이것이 신앙이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이는 사람이 어떤 일을 알고 있으면 믿을 이유가 없음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알고 있음이라. Now I ask, is this faith? Behold, I say unto you, Nay; for if a man knoweth a thing he hath no cause to believe, for he knoweth it.

앨마서 32:17~18. 신앙은 표적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신앙을 위해 표적을 구하는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표적이 나타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지식을 얻은 사람에게 저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앙을 발전시킬 기회를 놓치고, 신앙을 발전시키는 정상적인 길에서 영적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쳐서 더 엄한 벌을 자초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행 조건으로 요구하신 신앙을 먼저 발전시키지 않고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저주’는 더 있다.

한 가지 저주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이한 일을 보여준 다음에 이방 신을 예배하도록 이끄는 선지자들을 따르지 말라며 고대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다.(신명기 13:1~3) 구주께서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마지막 날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성약에 따라 택함 받은 자인 바로 그 택함 받은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임이니라.’ (조셉 스미스-마태 1:22; 또한 마태 24:24; 마가 13:22 참조) ……

…… 우리 시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확신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적 또는 표적을 사용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목적으로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영적 증거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큰 의혹을 품어야 한다.”(댈린 에이치 옥스, The Lord’s Way [1991], 85~86)

앨 32:19 그럼 이제 단지 믿기만 하거나, 단지 믿을 근거만 가지고 범법에 빠지는 자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가 얼마나 더 저주를 받았느냐? And now, how much more cursed is he that knoweth the will of God and doeth it not, than he that only believeth, or only hath cause to believe, and falleth into transgression?  
앨 32:20 이제 이 일에 대해서는 너희가 판단해야 하거니와,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편이 어떠함같이, 저 편도 그러하니, 각 사람에게는 그 행위대로 되리라. Now of this thing ye must judge. Behold, I say unto you, that it is on the one hand even as it is on the other; and it shall be un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ork.  
앨 32:21 또 이제 내가 신앙에 관하여 말한 것같이 - 신앙이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만일 너희에게 신앙이 있으면 너희는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느니라.

주) 믿음과 신앙과 지식은 어떻게 다른가? : "믿음은 단순히 어떤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것인 반면, 신앙은 능동적인 것이다.  신앙은 믿음과 신뢰를 요한다.  이는 우리에게 신뢰와 확신을 주어 행동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믿음 없이 신앙을 가질 수 없지만, 믿음이 있어도 신앙이 없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믿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복음이 우리의 삶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그분을 따르도록 동기를 주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믿음과 마찬가지로 지식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행동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어떤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거나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지식에 대해 행동하지 않는 한, 소용이 없다.  우리가 신앙을 행사하고 복음대로 살고자 추구할 때 영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움직여 준다.  우리는 성신으로부터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며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적인 증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이 탈매지, 신앙개조, 90-91쪽)

주) (이더12:6) "... 신앙이란 비록 보이지 아니하나 바라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논박하지 말지니,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기까지는 너희가 증거를 받지 못함이니라."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배가 고파야지만 비로소 음식을 갈구하듯이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를 알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어떠한 사람도 타락의 교리와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를 정확히, 그리고 올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에즈라 태프트 벤슨, 성도의 벗, 1987년 7월호, 95쪽)

And now as I said concerning faith—faith is not to have a perfect knowledge of things; therefore if ye have faith ye hope for things which are not seen, which are true.

앨마서 32:21. 신앙과 소망

•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신앙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앙은 알려지지 않은 것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은 확인된 증거를 초월해야 합니다. 신앙은 미지의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빛의 가장자리를 걷고, 어둠 속으로 몇 발자국 더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알려져야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설명되어야 한다면, 모든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면 신앙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신앙이 있을 여지가 없게 됩니다. ……

“선지자 앨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면, 그러면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이요, 그러면 우리가 믿으리라 하는 자가 많으니라. 이제 내가 묻노니, 이것이 신앙이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이는 사람이 어떤 일을 알고 있으면 믿을 이유가 없음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알고 있음이라. … 신앙에 관하여 말한 것같이- 신앙이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만일 너희에게 신앙이 있으면 너희는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느니라.’(앨마서 32:17~18, 21)

…… 신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영혼의 삶에 일상적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경험으로 생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으로 우리는 새날이 밝아 오고, 봄이 올 것이며,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정된 일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또한 다른 종류의 신앙이 있습니다. 이것은 드문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합당하고 준비되어 있으며 굽히지 않는 신앙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나게 만듭니다. 이런 신앙이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며, 때때로 사물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 이 신앙은 점진적으로 성장합니다. 이것은 기이하고 초월적인 동력, 전기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동력이지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되면,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

“그러나 신앙은 어디까지나 신앙이어야 합니다. 어느 사람이 신앙을‘시험’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는 자신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으니, 그가 그토록 열망하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에 그는 비탄에 젖어 말했습니다. ‘글쎄, 사건이 발생하진 않았어. 그럴 줄 몰랐어.’

회의론과 의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표현은 ‘보여 주면 믿을게.’라는 태도를 조장합니다. 우리는 모든 증명과 증거를 먼저 원합니다. 신앙을 얻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작용하는 것, 믿는 것이 곧 보는 것인 영적인 것들을 우리는 언제 배울 것입니까? 영적 믿음이 영적 지식에 선행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참된 것들을 믿을 때 우리에게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What Is Faith?” in Faith [1983], 42~43)

•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소망과 신앙과 지식의 관계를 말씀하며 이 세 가지가 어떻게 깊고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설명했다. “신앙과 소망은 계속해서 상호 작용하며 언제나 정확하게 구별되거나 순서를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온전한 지식이 없을지라도 소망이 선사하는 활기찬 기대감은 ‘확실[히]’ 참됩니다.(이더서 12:4; 또한 로마서 8:24; 히브리서 11:1; 앨마서 32:21 참조)”(Ensign, Nov. 1994, 35)

타락 이전

타락 이후

1. 육체적 죽음이 없음; 아담과 이브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니파이후서 2:22 참조)

1. 모든 것들은 필멸의 몸을 갖게 되었으며 육체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니파이후서 9:6 참조)

2. 영적 죽음이 없음; 하나님의 면전에 거했다. — 이를 위한 신앙이 필요치 않았다.(앨마서 32:21 참조)

2. 아담과 이브는 주님의 면전에서 쫓겨나 영적 사망을 겪게 되었다.(교리와 성약 29:40~42 참조)

3. 제한된 선택의지로 인해 신성을 향한 진보는 불가능했다.(니파이후서 2:22 참조)

3.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따른 영원한 진보가 가능해졌다.(모세서 5:11 참조)

4. 아담과 이브는 자녀를 가질 수 없었다.(니파이후서 2:23 참조)

4. 아담과 이브는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모세서 4:22; 5:11 참조)

5. 그들은 죄가 없었으며, 선과 악, 기쁨과 불행을 알지 못했다.(니파이후서 2:23 참조)

5. 그들은 선과 악을 알게 되었고 기쁨과 불행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모세서 5:11 참조)

6. 그들은 노력 없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낙원에서 살았다.(모세서 3:8~9 참조)

6. 이 지구도 타락하여,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땀 흘려 일해야만 한다.(모세서 4:23~25 참조)

앨 32:22 또 이제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며, 또 너희가 기억하기를 바라노니,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에게 자비로우시니, 그러므로 그는 먼저 너희가 참으로 그의 말씀을 믿기를 바라시느니라. And now, behold, I say unto you, and I would that ye should remember, that God is merciful unto all who believe on his name; therefore he desireth, in the first place, that ye should believe, yea, even on his word.  
앨 32:23 또 이제 그는 천사들로 그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되, 참으로 남자에게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그리하시거니와, 이제 이것이 모두가 아니니, 어린아이들이 현명한 자와 학식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는 말씀을 받는 때가 많으니라.

“교회가 지닌 힘은 회원, 즉 교회 회원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는 확신에 있습니다. 이 사업은 전능하신 분의 사업이요,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살아계시고 그의 자녀들이 신앙으로 그를 바라볼 때 그들을 살피시며,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속주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시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개인적으로 얻는 것은 모든 후기 성도의 특권이고 기회이며 책임입니다. 간증은 … 우리 중 어느 누구라도 지닐 수 있는 가장 값진 소유물입니다.” (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 647쪽)

“사람의 마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실체에 대한 참된 증거가 있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이 함께 온다는 것을 나는 만족스럽게 여기며,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그것이 바로 스스로 후기 성도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모든 덕성이 자라나는 뿌리인 것입니다.”(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 648)

And now, he imparteth his word by angels unto men, yea, not only men but women also. Now this is not all; little children do have words given unto them many times, which confound the wise and the learned.

앨마서 32:23. 어린이들이 영감을 받다

• 어린아이들의 신앙은 종종 신성한 통찰로 이어진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어린아이들의 모범이 어떻게 어른들에게 가르침이 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어린아이들은 자주 ‘[그들] 마음의 생각과 뜻’을 주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나이가 차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들은 신앙으로 가득합니다. 교회 공식 부름을 받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지만 그들은 모범을 보이는 사람으로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특히 ‘훌륭하신 부모’(니파이전서 1:1)를 축복받았을 때 그 역할을 잘 해냅니다.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린아이들이 …… 말씀을 받는 때가 많[습니다.]’(앨마서 32:23) 예를 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니파이인 어린이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보여 주셨고, 그런 후 그 아이들은 어른들과 부모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보다 ‘더욱 큰’ 일들을 가르쳤습니다.(제3니파이 26:14)

지금 애리조나에 사는 낸 바커와 댄 바커가 입양한 여러 자녀를 인봉하는 일은 저에게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이제 갓 세 살이 된 네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집에 올 또 다른 여자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는 검은 머리에 눈동자도 검은 색이고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요.’

현명한 어머니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니?’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이층에서요.’

그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이층이 없단다.’ 하고 말했지만 곧 그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아차렸습니다.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바커 가족은 1995년 가을에 솔트레이크 성전 인봉실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온 소녀를,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은 색인 어린 소녀를 현세와 영원을 위해 자신들에게 인봉했습니다. 영감 받은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들에게 ‘크고 기이한 일들을’(제3니파이 26:14) 말하고 있습니다.”(닐 에이 맥스웰, 성도의 벗, 1996년 7월호, 69~70쪽)

주) (3니26:14,16) "또 이렇게 되었나니 앞서 말한 무리의 자녀들에게 예수께서 가르치시며 성역을 베푸시고, 그들의 혀를 풀어 주시매, 그들이 그 아버지들에게 크고 기이한 일들을 말하니, 참으로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나타내신 것보다 더욱 큰 일들이라. 예수께서 그들의 혀를 풀어 그들로 말할 수 있게 하셨더라. ... 보라, 이렇게 되었나니 다음 날 무리가 함께 모여, 이 어린아이들을 보고 들었으며, 참으로 유아들까지 그 입을 열어 기이한 일을 말하였으되, 아무도 그 말한 것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금하셨더라."

앨 32:24 또 이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고난을 당하고 쫓겨났음으로 인하여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게서 알기 원하였으니 - 이제 나는 내가 오직 참된 것을 좇는 것 이외에 너희를 판단하려 한다고 너희가 생각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And now, my beloved brethren, as ye have desired to know of me what ye shall do because ye are afflicted and cast out—now I do not desire that ye should suppose that I mean to judge you only according to that which is true—  
앨 32:25 이는 내 말이 너희 곧 너희 모두가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었다 하는 것이 아님이니, 이는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스스로 겸손하게 될 자가 너희 중에 있는 줄을 내가 진실로 믿음이니라. For I do not mean that ye all of you have been compelled to humble yourselves; for I verily believe that there are some among you who would humble themselves, let them be in whatsoever circumstances they might.  
앨 32:26 이제 내가 신앙에 관하여 이른 것같이 - 곧 그것은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한 것같이 - 내 말도 그러하니라. 신앙이 완전한 지식이 아닌 것처럼, 내 말의 확실함도, 너희가 처음부터 완전히 알 수는 없느니라. Now, as I said concerning faith—that it was not a perfect knowledge—even so it is with my words. Ye cannot know of their surety at first, unto perfection, any more than faith is a perfect knowledge.  
앨 32:27 그러나 보라, 만일 너희가 너희의 능력을 일깨우고 환기시켜, 참으로 내 말을 시험하기에 이르며, 아주 작은 신앙을 행사하려 할진대, 참으로 설혹 너희가 믿기를 바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을지라도, 이 바람이 너희 속에서 역사하게 하기를, 곧 너희가 믿어 내 말의 일부를 위한 자리를 내줄 수 있기까지 그리하라. But behold, if ye will awake and arouse your faculties, even to an experiment upon my words, and exercise a particle of faith, yea, even if ye can no more than desire to believe, let this desire work in you, even until ye believe in a manner that ye can give place for a portion of my words.

앨마서 32:27.“ 나의 말을 … 시험하며” :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 세상에서 그것의 진실됨을 시험해 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실험적인 방법에 대해 명백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말씀으로 원칙을 내려 주셨습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6~17) 다른 곳에서도 그분은 이와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요한복음 10:37~38) 사도 바울의 말씀인‘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데살로니가전서 5:21)라는 구절 역시 중요합니다. 경전 안에는 복음 생활의 효과가 그것의 진리의 증거가 되게 하는 변함없는 충고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또는‘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12)와 같은 것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진리를 시험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 1:5)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그는 그 구절에 나오는 약속이 사실인가를 시험하기 위해 숲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첫번째 시현을 받게 된 것입니다.”(존 에이 윗소, 증거와 화해, 26~27쪽)

앨 32:28 이제 우리는 말씀을 씨앗에 비유하리라. 이제 만일 너희가 자리를 내주어 씨앗 하나가 너희 마음에 심어졌다면, 보라 그것이 참된 씨앗, 곧 좋은 씨앗이라면, 너희가 너희의 믿지 않음으로 그것을 내어 버려, 주의 영을 물리치지 아니할진대, 보라, 그것은 너희 가슴 속에서 부풀기 시작하리니, 이 부푸는 움직임을 너희가 느낄 때에, 너희가 속으로 말하기 시작하기를 - 이것은 좋은 씨앗임에, 곧 그 말씀은 선함에 틀림없도다. 이는 이것이 내 영혼을 크게 하기 시작함이라. 참으로 이것은 나의 이해력을 밝혀 주기 시작하나니, 참으로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하는도다 하리라.

주) (마13:31~33)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Now, we will compare the word unto a seed. Now, if ye give place, that a seed may be planted in your heart, behold, if it be a true seed, or a good seed, if ye do not cast it out by your unbelief, that ye will resist the Spirit of the Lord, behold, it will begin to swell within your breasts; and when you feel these swelling motions, ye will begin to say within yourselves—It must needs be that this is a good seed, or that the word is good, for it beginneth to enlarge my soul; yea, it beginneth to enlighten my understanding, yea, it beginneth to be delicious to me.

앨마서 32:28~30. “자리를 내주어 씨앗 하나가 너희 마음에 심어[져]” 자라게 하라

•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커지는 것은 부드러운 마음이라는 비옥한 땅에 심은 신앙의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 중 하나이다.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신앙과 지식이 자라고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선행 조건을 설명했다. “우리는 …… 신앙의 모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매일 겸손한 기도를 드리며 힘과 용서를 구하여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을 극복함으로써 흙을 써레질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계명을 지킴으로써 모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십일조와 다른 헌금을 낼 때 주님께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가 책임을 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위대한 신권 권능을 불러올 수 있도록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영적인 씨앗을 키우기에 성전의 성소 안과 우리 가정만큼 더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제임스 이 파우스트,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57쪽)

• 신앙의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자라나지는 않는다.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씨앗이 자라는 동안 기다리는 인내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간증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경험을 통해 압니다. 오히려 간증은 앨마가 말한 것처럼 신앙의 씨앗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

몰몬경을 반복해서 읽고도 아직 강력한 증거를 얻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어떤 면에서 여러분은 큰 영광 중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득 찼으나 “이를 알지 못[한]”(제3니파이 9:20) 몰몬경에 나오는 제자들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십시오. 다음 성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지혜와 질서 안에서 행해지도록 할지니, 이는 사람이 그가 가진 힘보다 더 빨리 달음질함이 요구되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또 그는 부지런할 필요가 있나니, 그로써 그가 상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일은 반드시 질서 안에서 행해져야 하느니라.’(모사이야서 4:27)”(보이드 케이 패커, 리아호나, 2005년 5월호, 8쪽)

앨마서 32:28~35.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하는도다”

• 앨마는 미각이라는 개념을 간증이 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 또한 참된 교리를 분별하는 것에 관해 가르칠 때 미각이란 개념을 사용했다. “이것은 좋은 교리입니다. 맛이 좋습니다. 저는 영생의 원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맛볼 수 있습니다. …… 이 영생에 관한 말씀을 제가 받은 대로 여러분께 전할 때 여러분도 그것을 맛볼 수 있음을 압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다는 것도 압니다. 여러분이나 저는 꿀이 달다고 말합니다. 저는 영생의 영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 맛이 좋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제가 성신의 영감으로 받은 이 말씀을 여러분께 전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감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더 많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조셉 스미스, History of the Church, 6:312)

• 전 본부 청녀 회장인 자네트 헤일즈 베컴 자매는 경전을 읽는 것에 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영의 가르침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신앙을 실현하는 데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 딸 케런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아주 어렸을 때 처음으로 몰몬경을 읽기 시작했어요.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에는 니파이전서 3장 7절에 이르렀어요. …… 이것이 그렇게 유명한 구절인지는 몰랐지만 그 구절을 읽으면서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것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러나 그 깊은 감동은 실로 어떤 느낌 이상이었어요. 저는 부모님께서 빨간 연필로 경전에 표시하시는 걸 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얼른 일어나 집안을 샅샅이 뒤져 빨간 연필을 찾아내고는 엄숙하고도 진지한 마음으로 제 몰몬경에 그 구절을 표시했어요.’ 케런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경전을 읽을 때면 한 구절을 읽고 진한 감동을 받는 그런 경험은 반복되어 일어났어요. 얼마 안 가서 저는 그 느낌이 성신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자네트 헤일즈 베컴, 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75쪽)

앨 32:29 이제 보라, 이것이 너희의 신앙을 키워 주지 않겠느냐? 내가 이르노니, 그러하도다. 그러할지라도 그것이 완전한 지식으로 다 자란 것은 아니니라. Now behold, would not this increase your faith? I say unto you, Yea; nevertheless it hath not grown up to a perfect knowledge.  
앨 32:30 그러나 보라, 씨앗이 부풀고,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매, 너희가 반드시 말하기를 씨앗이 좋다 하리니, 이는 보라, 그것이 부풀고,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함이라. 또 이제 보라, 이것이 너희 신앙을 강하게 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이는 너희의 신앙을 강하게 하리라.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이것이 좋은 씨앗인 줄 내가 아노니, 이는 보라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함이라 할 것임이니라. But behold, as the seed swelleth, and sprouteth, and beginneth to grow, then you must needs say that the seed is good; for behold it swelleth, and sprouteth, and beginneth to grow. And now, behold, will not this strengthen your faith? Yea, it will strengthen your faith: for ye will say I know that this is a good seed; for behold it sprouteth and beginneth to grow.

“ 신앙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지며 그의 영의 안내를 간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형제나 자매라도 겸손하며, 열심히 기도를 하며, 임무에 충실하다면 이 교회에서 신앙을 잃을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임무를 충실히 행함으로써 신앙은 커져서 완전한 지식이 됩니다. ”                 -히버 J 그랜트 회장-

앨 32:31 또 이제 보라, 너희는 이것이 좋은 씨앗임을 확신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러하도다. 이는 모든 씨앗은 각기 그 닮은 것을 냄이라. And now, behold, are ye sure that this is a good seed? I say unto you, Yea; for every seed bringeth forth unto its own likeness.  
앨 32:32 그러므로 만일 씨앗이 자라면 이는 좋은 씨앗이어니와, 만일 자라지 아니하면, 보라 이는 좋은 씨앗이 아니니, 그러므로 버리우느니라. Therefore, if a seed groweth it is good, but if it groweth not, behold it is not good, therefore it is cast away.  
앨 32:33 또 이제 보라, 너희가 시험을 해 보아 씨앗을 심었고, 이에 그것이 부풀고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니, 이로 인해 너희는 그 씨앗이 좋은 줄을 반드시 알리라. And now, behold, because ye have tried the experiment, and planted the seed, and it swelleth and sprouteth, and beginneth to grow, ye must needs know that the seed is good.  
앨 32:34 또 이제 보라,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냐? 그러하도다. 그 일에 있어서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며, 너희의 신앙은 휴면 중에 있도다. 이는 너희가 앎으로 인함이니, 이는 말씀이 너희 영혼을 부풀게 한 줄 너희가 알며, 또 그것이 싹이 나서 너희의 이해력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너희의 생각이 넓어지기 시작한 줄을, 또한 너희가 앎이라. And now, behold, is your knowledge perfect? Yea, your knowledge is perfect in that thing, and your faith is dormant; and this because you know, for ye know that the word hath swelled your souls, and ye also know that it hath sprouted up, that your understanding doth begin to be enlightened, and your mind doth begin to expand.

주) "your faith is dormant"  'dormant' 자다의 뜻에서 a.1 잠자는 (것 같은); 수면 상태의; <싹씨 등이 겨울에> 발육 정지중인 2 휴지 상태에 있는(opp. active); 잠복중인  a ~ volcano 휴화산 3 움직이지 않는, 고정적인, <자금 등이> 유휴 상태의, 놀고 있는; <권리 등이> 미발동의 lie ~ 동면[하면] 중이다; 정지[잠복]하고 있다; 사용되지 않고 있다, (권리 등이) 행사되지 않고 있다

앨 32:35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실이니라. 이는 그것이 빛인 연고요, 또 무엇이든지 빛 된 것은 선하니, 이는 그것이 분별할 수 있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선한 것인 줄 너희가 반드시 알리라. 또 이제 보라 너희가 이 빛을 맛보고 난 후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냐?

O then, is not this real? I say unto you, Yea, because it is light; and whatsoever is light, is good, because it is discernible, therefore ye must know that it is good; and now behold, after ye have tasted this light is your knowledge perfect?

앨마서 32:35.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 앨마는 가난한 조램인들에게 말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참된지를 직접 분별해 보도록 요청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복음 원리를 대신 배워 줄 수는 없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우리 각자가 신성한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앨마는 신앙이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믿는 사람의 지적 경험과 정서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신앙이 실제로 지식이 되는지를 설명했다. 믿는 사람들의 이해력이 커지고 생각이 넓어지자 앨마는 이렇게 물었다.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앨마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분별할 수 있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선한 것인 줄 너희가 반드시 알’것이기 때문이다.(앨마서 32:35) 각각의 신성한 교리의 진실성은 사실상 ‘나는 안다!’는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는 확인과 확증 체계 안에서 우리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닐 에이 맥스웰, Things As They Really Are [1978], 10)

앨 32:36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의 신앙을 버려 두어서도 아니 되나니, 이는 너희가 다만 씨앗이 좋은 것인지 알기 위하여 시험을 해 보고자 씨앗을 심을 만큼 너희의 신앙을 행사한 것에 불과함이니라. Behold I say unto you, Nay; neither must ye lay aside your faith, for ye have only exercised your faith to plant the seed that ye might try the experiment to know if the seed was good.  
앨 32:37 또 보라,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매, 너희가 말하기를, 크게 주의하여 이를 가꾸어, 그것으로 뿌리를 얻게 하고, 그리하여 그것이 자라서, 우리를 위해 열매를 맺게 하자 하리니, 이제 보라, 만일 너희가 많은 보살핌으로 나무를 가꾸면, 그것이 뿌리를 얻겠고, 크게 자라 열매를 맺을 것이라. And behold, as the tree beginneth to grow, ye will say: Let us nourish it with great care, that it may get root, that it may grow up, and bring forth fruit unto us. And now behold, if ye nourish it with much care it will get root, and grow up, and bring forth fruit.

앨마서 32:21~37

앨마는 신앙과 지식을 어떻게 구별 지었는가?

앨마서 32:27~37.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할 때 개종이 일어난다

•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앨마가 말한 대로 시험해 보겠다는 의지는 개종으로 연결된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회원과 비회원 모두 기꺼이 말씀을 시험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전히 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앨마서 32:27 참조) 즉, 우리 정신과 마음이 진리를 알고자 하는 소망과 그 소망에 따라 기꺼이 행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교회를 알고자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그 시험은 몰몬경을 읽고, 그에 대해 기도하고, 조셉 스미스가 주님의 선지자였는지를 진지하게 알아보기로 약속하는 것처럼 단순한 일일 것입니다.

참된 개종은 영의 권능을 통해 옵니다. 영이 마음을 감동시킬 때 마음에 변화가 생깁니다. 회원이든 구도자든 자신에게 작용하는 영을 느낄 때, 혹은 생활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증거를 볼 때 영적으로 교화되고 강화되며 주님을 믿는 신앙이 커집니다. 개인이 말씀을 시험하고자 할 때 영과 더불어 하는 이러한 경험들은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이 참되다고 느끼는 방법입니다.”(엠 러셀 밸라드,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89쪽)

• 때때로 앨마서 32장 28절에 나오는 이 부푸는 움직임, 영혼이 커짐, 이해력이 밝아짐, 영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나 표현하기 힘들다고 해서 그 감정의 진실성이 퇴색하지는 않는다.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설명하는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무신론자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간증을 전했으나 그 사람은 그런 것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패커 회장은 자신의 간증과 지식을 소금이 어떤 맛인지 아는 것에 비유했다.(앨마서 30:15~16 해설 참조; 또한 “The Candle of the Lord,” Ensign, Jan. 1983, 51~52 참조)

앨 32:38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무를 소홀히 하여, 그 가꿀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보라 그것은 아무 뿌리도 얻지 못하리니, 태양의 열기가 와서 그것을 태우면, 그것이 뿌리가 없으므로 마르고, 너희는 이를 뽑아 내버리느니라. But if ye neglect the tree, and take no thought for its nourishment, behold it will not get any root; and when the heat of the sun cometh and scorcheth it, because it hath no root it withers away, and ye pluck it up and cast it out.

앨마서 32:37~38, 42~43.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 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교회 회원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이것이 ……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가 걷는 평화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룻밤 만에 효과가 나타나는 즉효약이 아닙니다. 최근에 제 친구 한 명이 간증을 굳게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는 조언을 청했습니다.

저는 그의 삶을 회복된 복음의 가르침에 더 가까이 일치시킬 수 있게 해 줄, 그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일들을 제언하는 성실한 답장을 썼습니다. 놀랍게도 바로 일주일 뒤에 그로부터 회신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네가 제언한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나?”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 전력 질주로 영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내심이 필요한 경주입니다. 우리는 이 신성한 복음 원리들을 적용하고 또 적용해야 합니다. 매일 그 원리를 우리 일상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아침에 씨앗을 뿌리고 낮에 옥수수 거두기를 바라는 농부처럼 복음에 접근합니다. 앨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에 비유하면서 씨앗이 자라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부지런함과 인내와 오래 참음’[앨마서 32:43]의 결과로서 점차적으로 열매가 달린 나무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축복들은 우리 마음에 씨앗을 심자마자 오는 것도 있지만, 씨앗이 부풀고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면 이로써 우리는 씨앗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제자의 길로 들어서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축복들이 우리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를 소홀히 하여, 그 가꿀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면’[38절] 그러한 충만한 축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씨앗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보살핌으로 나무를 가꾸[어], 그것이 뿌리를 얻[도록]’[37절]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라야 우리는 ‘감미로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감미로우며 …… 순결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순결한’ 열매를 취할 수 있으며, ‘이 열매를 배부르도록 흡족히 먹게되[어], [우리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할]’[42절]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성품을 연마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순화하는 이 여정의 가르침들이 필요합니다. 끈기 있게 제자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우리 신앙의 척도를 나타내 보이고 우리 자신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임을 스스로에게 입증합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거나 우리가 그분의 제자임을 선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종교의 상징들로 자신을 둘러싸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자가 되는 일은 앉아서 관람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우리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스포츠 경기를 보며 운동 선수에게 충고한다고 해서 건강의 유익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방관자로 서 있으면서 신앙의 축복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구경꾼 제자”가 예배의 주된 방법이 아님에도 오히려 그것을 선호합니다.

우리 종교는 간접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행하는 좋은 것을 관찰하는 것으로 복음의 축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인을 벗어나 우리가 가르치는 것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 지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이 걸으신 길을 걸을 때입니다.”(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제자의 길”,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76~77쪽)

앨 32:39 이제 이는 씨앗이 좋지 않았던 까닭이 아니요, 그 열매가 탐스럽지 못할 것이기 때문도 아니라. 다만 그것은 너희의 토지가 메마르고, 너희가 나무를 가꾸려 아니한 연고니,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를 얻을 수 없느니라. Now, this is not because the seed was not good, neither is it because the fruit thereof would not be desirable; but it is because your ground is barren, and ye will not nourish the tree, therefore ye cannot have the fruit thereof.

주) (막4:3~8)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앨 32:40 또 이러므로 너희가 신앙의 눈으로 그 열매를 고대하며, 말씀을 가꾸지 아니할진대, 너희는 결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딸 수 없느니라. And thus, if ye will not nourish the word, looking forward with an eye of faith to the fruit thereof, ye can never pluck of the fruit of the tree of life.  
앨 32:41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의 신앙으로 큰 부지런함을 가지고, 또 인내를 가지고 그 열매를 고대하며 말씀을 가꾼다면, 참으로 나무가 자라기 시작할 때 이를 가꾼다면, 그것은 뿌리를 내리리니, 보라 영생으로 솟아오르는 나무가 되리라. But if ye will nourish the word, yea, nourish the tree as it beginneth to grow, by your faith with great diligence, and with patience, looking forward to the fruit thereof, it shall take root; and behold it shall be a tree springing up unto everlasting life.

주) (니전15:36) "그러므로 악인들은 의인들로부터, 또한 저 생명나무로부터 배척되나니, 생명나무의 열매는 다른 모든 열매보다 가장 귀하며 가장 바람직한 것이요,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큰 은사니이다. 이같이 나는 나의 형들에게 말하였느니라. 아멘."  (교성6:13) "만일 네가 선을 행하고 참으로 끝까지 충실하게 견디면, 너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구원을 받으리니,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은사 중 가장 큰 것이니라. 무릇 구원의 은사보다 더 큰 은사가 없음이니라."

앨 32:42 또 말씀을 가꾸어 그것으로 너희 안에 뿌리를 내리게 하려는 너희의 부지런함과 너희의 신앙과 너희의 인내로 말미암아, 머지않아, 보라 너희가 지극히 귀하고, 감미로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감미로우며, 흰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희며, 순결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순결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이 열매를 배부르도록 흡족히 먹게 되리니, 너희가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리라. And because of your diligence and your faith and your patience with the word in nourishing it, that it may take root in you, behold, by and by ye shall pluck the fruit thereof, which is most precious, which is sweet above all that is sweet, and which is white above all that is white, yea, and pure above all that is pure; and ye shall feast upon this fruit even until ye are filled, that ye hunger not, neither shall ye thirst.

주)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앨 32:43 그때 나의 형제들아, 나무가 너희에게 열매 맺기를 기다린 바, 너희의 신앙과 너희의 부지런함과 인내와 오래 참음의 보상을 너희가 거두게 되리라.

앨마서 32:33~43

이 성구에서 앨마가 가르친 것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이 니파이전서 8장에 나오는 리하이의 생명 나무 시현을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Then, my brethren, ye shall reap the rewards of your faith, and your diligence, and patience, and long-suffering, waiting for the tree to bring forth fruit unto you.

앨마서 32:33~43. 말씀을 가꾸어야 하느니라

• 칠십인인 브루스 시 하펜 장로는 재배에 대한 앨마의 은유를 사용하여, 우리 생활에 복음의 축복을 가져오는 가꿈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설명했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 즉 부정적인 잡초를 제거하고 긍정적인 꽃을 재배함으로써 성장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다한다면 구주의 은혜는 두 가지 부분을 다 축복합니다. 먼저 그리고 반복해서 우리는 죄와 나쁜 선택이라는 잡초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잡초를 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고 자비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충분히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용서받는 것은 우리 성장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단지 빚을 갚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해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마음속을 깨끗이 하고 나면, 신성한 자질이라는 씨를 계속해서 심고, 잡초를 뽑고, 영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땀과 단련으로 그분의 은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발전할 때, ‘은혜의 꽃’[‘내 영혼이 햇빛을 받아”, 찬송가 153장]이 희망과 온유함처럼 피어납니다. 생명 나무가 이 마음 동산에 뿌리를 내려 너무나 감미로운 열매를 맺고 ‘그 아들의 기쁨을 통하여’[앨마서 33:23] 우리의 모든 짐은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랑의 꽃이 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사랑의 힘[모로나이서 7:48 참조]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브루스 시 하펜,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97쪽)

주) “ 이 훌륭한 설교에서 앨마는 씨앗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에 관한 일반적인 논평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초점을 둔 설교로 독자들을 옮겨 놓았습니다. ”    -제프리 R 홀랜드 십이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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