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전 니후 야곱 이노 예이 몰말 모사 3니 4니 이더 모로 TITLE

주석 앨마서 42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36장. 37장. 38장. 39장. 40장. 41장. 42장. 43장. 44장. 45장. 46장. 47장. 48장. 49장. 50장. 51장. 52장. 53장. 54장. 55장. 56장. 57장. 58장. 59장. 60장. 61장. 62장. 6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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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필멸의 생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기 위한 시험의 시간임 - 타락은 온 인류에게 현세적 및 영적인 사망을 가져왔음 - 구속은 회개를 통하여 옴 -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의 죄를 위하여 속죄하심 - 자비는 회개하는 자들을 위한 것임 - 다른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 아래 놓이게 됨 - 자비는 속죄로 말미암아 옴 - 진실로 뉘우치는 자만이 구원받음. 주전 74년경.

Mortality is a probationary time to enable man to repent and serve God—The fall brought temporal and spiritual death upon all mankind—Redemption comes through repentance—God himself atoneth for the sins of the world—Mercy is for those who repent—All others are subject to God’s justice—Mercy cometh because of the atonement—Only the truly penitent are saved. [About 73 B.C.]

주) 앨마서 42장 주석(영문) (www.josephsmith.com)

앨마서 42장. 공의와 자비의 율법 : "앨마서 42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율법에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공의는 간단하게 죄와 의로움은 각기 자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법령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님의 본성 중에는 완전한 공의로우심도 있다. 그분은“죄를 털끝만큼도”(교성 1:31) 묵과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완전한 사랑을 지니신 분이긴 하지만 인간의 죄의 상태를 무시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공의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데 대해서 형벌이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자비로우시다.

"앨마는 대속(구원의 계획)이 아니었던들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비참한 상태로 넘겨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앨마서 42:11, 니파이후서 9:8, 9 참조) 인류가 이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계획의 본질이었다. 그러므로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법에 따라 완전히 조화되는 구원의 계획을 주셨다. 대속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이러한 시험 기간 동안 회개할 수 있도록 방편이 마련되었으며, 공의의 율법을 깨뜨리지 않고서 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의 존재에 적용되는 이 자비로운 보상에 대한 조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회개하며, 침례를 받고 성신을 받아들인 뒤에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니파이후서 31:10~16 참조) 그러므로

"구원의 계획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를 통한 공의의 요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계획은 공의의 하나님이며 자비의 하나님을 동시에 가능케 하였다.(앨마서 42:1 참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시리라”(25절) 이 사랑의 행위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며 자신을“공의의 요구의 율법”(앨마서 34:16)에 내던지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구원도 있지 않으며 그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다.(교성 19:15~18 참조)" (몰몬경 학생교재 종교 121-122)

앨 42:1 또 이제 내 아들아,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바, 네 마음으로 염려하게 하는 것이 얼마간 더 있는 줄을 내가 아노니, 곧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것이라. 이는 죄인을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하시는 것이 공의가 아니라고 네가 생각하려 애씀이니라. AND now, my son, I perceive there is somewhat more which doth worry your mind, which ye cannot understand—which is concerning the justice of God in the punishment of the sinner; for ye do try to suppose that it is injustice that the sinner should be consigned to a state of misery.  
앨 42:2 이제 보라, 내 아들아, 내가 이 일을 네게 설명하리라. 이는 보라,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조를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사 그들이 취하심을 입은 땅을 갈게 하셨음이니 - 참으로 그는 그 사람을 이끌어 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 끝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사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느니라 - Now behold, my son, I will explain this thing unto thee. For behold, after the Lord God sent our first parents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ence they were taken—yea, he drew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end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tree of life—

에덴의 동산 -> 에덴 동산 (다른 곳이 모두 '에덴 동산'으로 번역되어 있음)

 
앨 42:3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이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던 것을 알고 있나니, 그가 그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의 열매를 취하여 영원히 살까 하여, 주 하나님께서는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사, 그로 그 열매를 취하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Now, we see that the man had becom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and lest he should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the Lord God placed cherubim and the flaming sword, that he should not partake of the fruit—  
앨 42:4 또 이리하여 우리는 사람에게 회개할 시간이 주어졌음을 알게 되나니, 참으로 시험의 시간이요,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길 시간이라. And thus we see, that there was a time granted unto man to repent, yea, a probationary time, a time to repent and serve God.

주) (앨34:32) "이는 보라, 이 생은 사람들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시간이라. 참으로 보라 이 생의 날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수행할 날이니라."

앨마서 42:1~10. “시험의 시간”

• 십이사도 정원회의 엘 톰 페리 장로는 필멸의 삶이라고 불리는 시험 시간이 존재하는 목적을 설명했다. “지상 생활의 주 목적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우리의 영이 우리의 육체와 하나가 되는 위대한 기회를 주는 데 있습니다. 영과 육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면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하며 성숙해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우리 존재의 시험 상태라 일컬어지는 일정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 기간은 우리가 영원한 삶을 얻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배움과 시험의 기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위해 마련하신 거룩한 계획의 일부입니다.”(엘 톰 페리,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16쪽)

• 칠십인으로 봉사했던 로날드 이 포울맨 장로는 필멸의 삶이란 상반되는 것들을 배우고 그 가운데서 선택을 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생에서 상반되는 것을 경험하고,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배우며,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시험의 시기는 전세에서 우리가 제안을 받고 수락했던 구원의 계획 중 일부입니다. 역경을 겪는 일은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고 이 세상에 오겠다고 선택했습니다.(니파이후서 2:11~16 참조)”(로날드 이 포울맨,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27쪽)

• 칠십인인 윌리엄 알 브래드포드 장로는 필멸의 삶이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생은 시험을 겪는 기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되는 법을 배우는, 놀라운 선물과 같은 시간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흐트러진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단순하고 곧으며 성령으로 환히 밝혀진 길입니다.”(윌리엄 알 브래드포드,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28쪽)

앨 42:5 이는 보라, 만일 아담이 즉시로 그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의 열매를 취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영원히 살아 회개할 기간을 갖지 못하였을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 역시 무효하게 되어 위대한 구원의 계획이 좌절되었을 것임이니라. For behold, if Adam had put forth his hand immediately, and partaken of the tree of life, he would have lived forever,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having no space for repentance; yea, and also the word of God would have been void, and the great plan of salvation would have been frustrated.  
앨 42:6 그러나 보라, 사람은 죽기로 정해졌고 - 그러므로 그들은 생명나무로부터 끊어졌던 것같이 지면으로부터 끊어져야 하느니라 - 이에 사람은 영원히 잃은 바 되었나니, 참으로 그들은 타락한 사람이 되었느니라. But behold, it was appointed unto man to die—therefore, as they were cut off from the tree of life they should be cut off from the face of the earth—and man became lost forever, yea, they became fallen man.  
앨 42:7 또 이제 이로써 너는 우리의 시조가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주의 면전에서 끊어졌음을 알게 되며, 또 이리하여 우리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좇아 복종하는 자가 되었음을 알게 되느니라. And now, ye see by this that our first parents were cut off both temporally and spiritually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thus we see they became subjects to follow after their own will.  
앨 42:8 이제 보라, 사람이 이 현세적 사망에서 구제되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그렇게 함이 위대한 행복의 계획을 깨뜨리겠음이라. Now behold, it was not expedient that man should be reclaimed from this temporal death, for that would destroy the great plan of happiness.  
앨 42:9 그러므로 영혼이 결코 죽을 수 없고, 타락이 모든 인류에게 현세적 사망과 함께 영적 사망을 가져왔으므로, 이 말인즉 그들이 주의 면전에서 끊어졌으므로, 인류가 이 영적 사망에서 구제될 필요가 있었느니라. Therefore, as the soul could never die, and the fall had brought upon all mankind a spiritual death as well as a temporal, that is, they were cut off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it was expedient that mankind should be reclaimed from this spiritual death.

주) (모세5:4) "그리고 아담과 그의 아내 이브가 주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은 에덴 동산으로 향한 길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주의 음성을 들었으나, 그를 뵙지는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주의 면전에서 차단되었음이니라."  (교성29:41) "그리하여 나 주 하나님은 그의 범법으로 말미암아 그를 에덴동산에서, 나의 면전에서 쫓겨나게 하였나니, 이로써 그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었느니라. 이것이 첫째 사망이니, 곧 내가 말하기를 너희 저주 받은 자들아 떠나가라고 할 때 악인에게 선포될 영적인 사망이요 마지막 사망인 바로 그 사망이니라."  (앨12:16) "또 이제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때 사망, 곧 둘째 사망이 임하나니, 이는 영적인 사망이라, 곧 현세적인 사망으로 자기 죄 가운데 죽는 모든 자가 또한 영적인 사망을 당할 때이니, 참으로 그는 의에 관한 것들에 대하여 사망을 당하게 되리라."

앨 42:10 그러므로 그들이 본성적으로 육신에 속하며 육욕적이며 악마와 같이 되었던지라, 이 시험의 상태는 그들에게 있어 준비를 위한 상태가 되었나니, 곧 예비적 상태가 되었느니라. Therefore, as they had become carnal, sensual, and devilish, by nature, this probationary state became a state for them to prepare; it became a preparatory state.  
앨 42:11 이제 내 아들아, 기억하라. 만일 구속의 계획이 없다면, (이를 버린다면) 그들이 죽자마자 그들의 영혼은 주의 면전에서 끊어져 비참하게 되리라. And now remember, my son, if it were not for the plan of redemption, (laying it aside) as soon as they were dead their souls were miserable, being cut off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앨 42:12 또 이제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자초한 바, 이 타락한 상태에서 사람들을 구제할 방편이 없었나니, And now, there was no means to reclaim men from this fallen state, which man had brought upon himself because of his own disobedience;  
앨 42:13 그러므로 공의를 좇아 이 시험의 상태, 참으로 이 예비적 상태에서 사람들이 회개하는 조건 위에서가 아니고는 구속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었나니, 이는 이러한 조건이 아니고는 공의의 일을 폐함이 없이 자비가 효력을 가질 수 없었음이니라. 이제 공의의 일은 폐하여질 수 없으리니,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시리라. Therefore, according to justice, the plan of redemption could not be brought about, only on conditions of repentance of men in this probationary state, yea, this preparatory state; for except it were for these conditions, mercy could not take effect except it should destroy the work of justice. Now the work of justice could not be destroyed; if so, God would cease to be God.  
앨 42:14 또 이리하여 우리는 모든 인류가 타락하였고, 그들이 공의, 곧 하나님의 공의에 붙잡여 있었음을 알게 되나니, 하나님의 공의는 그들을 영원히 그의 면전에서 끊어지게 하였느니라. And thus we see that all mankind were fallen, and they were in the grasp of justice; yea, the justice of God, which consigned them forever to be cut off from his presence.

붙잡여 -> 붙잡혀

 
앨 42:15 이에 이제 속죄가 행하여지지 않고서는 자비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지라, 그러므로 자비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세상의 죄를 위하여 속죄하시나니, 이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자, 또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고자 함이라. And now, the plan of mercy could not be brought about except an atonement should be made; therefore God himself atoneth for the sins of the world, to bring about the plan of mercy, to appease the demands of justice, that God might be a perfect, just God, and a merciful God also.

"그분은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그분의 속죄 희생은 지상에 살게 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한 위대한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온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의 삶이 베들레헴에서 시작되지도 않았고 갈보리에서 끝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엄숙하게 간증합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장자였고 육신을 입은 독생자였으며 세상의 구속주이셨습니다.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시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전15:20)습니다." (제일회장단 및 십이사도 정원회, 살아 계신 그리스도[2000년 1월 1일])

앨 42:16 이제 영혼의 생명과도 같이 영원한 형벌이 없이는 사람들에게 회개가 임할 수 없었나니, 이 형벌은 역시 영혼의 생명같이, 영원한 행복의 계획에 대한 반대로써 부가된 것이니라. Now, repentance could not come unto men except there were a punishment, which also was eternal as the life of the soul should be, affixed opposite to the plan of happiness, which was as eternal also as the life of the soul.  
앨 42:17 이제 사람이 죄 짓지 않고 어찌 회개할 수 있겠느냐? 만일 율법이 없다면 어찌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 형벌이 없이 어찌 율법이 있을 수 있겠느냐? Now, how could a man repent except he should sin? How could he sin if there was no law? How could there be a law save there was a punishment?

“사람이 고난을 받지 않는다면, 회개를 하지도 않습니다. … 사람은 그가 받는 고난을 통하여 그 사람의 모든 것에서 변화를 겪어야 하는데, 그런 다음에야 용서가 가능하게 됩니다”(The Teaching of Spencer W. Kimball, ed. Edward L. Kimball [1982], 99쪽)

앨 42:18 이제 형벌이 부가되었고, 사람에게 양심의 가책을 가져오는 공의로운 율법이 주어졌느니라. Now, there was a punishment affixed, and a just law given, which brought remorse of conscience unto man.

앨마서 42:18~30. 양심의 가책

•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양심의 가책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했다.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마치 ‘자, 조금 따끔할 수도 있습니다. ……’ 하고 말하면서 치료를 시작하는 의사가 된 기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양심에 가책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한1서 1:8] 그런 뒤에 그는 더욱 강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1서 1:10]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또 일부 사람들은 오랫동안 잘못한 일이나 회개하지 않고 내버려 둔 일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죄책감과 영의 관계는 고통과 육체의 관계와 같습니다. ……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릅니다. 때때로 혼자서는 복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을 해치고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고칠 수 없는 것들을 망가뜨립니다. 그러고 나면 혼자서는 치유할 수 없는 죄책감과 수치와 고통이 내면에 스며듭니다. 그때가 바로 속죄의 치유 능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교성 19:16]”(보이드 케이 패커,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25~27쪽)

• 스펜서 더블류 킴볼(1895~1985) 회장은 민감한 양심의 가치에 대해 말씀했다. “양심이라고 하는 민감하고도 강력한 지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해의 왕국의 불빛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확실히 그것은 인간에게 죄를 인식하게 하며, 필요한 조정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하고,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줄이지 않고 범법을 깨닫게 해 주며, 사실을 직시하고 필요한 형벌을 받게 해 주는 도구이다. 맨 먼저 죄를 뉘우친 후, 그릇된 행위를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이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 하지 않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깊이 생각할 때 비로소 용서받기 위한 해결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앨마가 아들 코리앤톤에게 ‘오직 진실로 뉘우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느니라.(앨마서 42:24)’라고 한 말에서 의미하는 바였다.(스펜서 더블류 킴볼, 용서가 낳는 기적 [1969], 142쪽)

앨 42:19 이제 만일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 만일 사람이 살인하였으면 그는 죽을 것이니라 - 그가 살인하면 죽을까 두려워하겠느냐? Now, if there was no law given—if a man murdered he should die—would he be afraid he would die if he should murder?  
앨 42:20 그리고 또한 만일 죄를 금하는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범죄 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And also, if there was no law given against sin men would not be afraid to sin.  
앨 42:21 또 만일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고, 만일 사람들이 죄를 범했다면 공의나 자비가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이는 공의나 자비가 피조물에 대하여 아무 권한도 갖지 못할 것임이라. And if there was no law given, if men sinned what could justice do, or mercy either, for they would have no claim upon the creature?  
앨 42:22 그러나 율법이 주어져 있고, 형벌이 부가되었으며, 회개가 주어졌나니, 이 회개를 자비가 주장하는 것이라. 그렇지 아니하면 공의가 피조물을 주장하며 율법을 집행하나니, 율법은 형벌을 가하느니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공의의 일은 폐하여질 것이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시리라. But there is a law given, and a punishment affixed, and a repentance granted; which repentance, mercy claimeth; otherwise, justice claimeth the creature and executeth the law, and the law inflicteth the punishment; if not so, the works of justice would be destroyed, and God would cease to be God.  
앨 42:23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시나니, 자비는 뉘우치는 자를 주장하며, 자비는 속죄로 말미암아 오느니라. 또 속죄는 죽은 자의 부활을 가져오며, 죽은 자의 부활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면전으로 다시 데려가나니, 이같이 그들이 그의 면전으로 회복되어, 그들의 행위대로 율법과 공의에 따라 심판받게 되느니라. But God ceaseth not to be God, and mercy claimeth the penitent, and mercy cometh because of the atonement; and the atonement bringeth to pas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bringeth back men into the presence of God; and thus they are restored into his presence, to be judged according to their works, according to the law and justice.

앨마서 42:23. “속죄는 …… 부활을 가져오며”

•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위대한 속죄 희생으로 부활이 가능해진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그분께서 자신의 생명을 모든 인간을 위한 희생 제물로 주셨을 때, 그분의 위대한 사랑은 죽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그 속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되었으며, 지상에 살았고 앞으로 살 모든 사람이 부활을 확신하게 된 은혜로운 행위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에 견줄 만한 행동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그 어떤 사건도 비교되지 못합니다. 완전히 비이기적이고, 모든 인류를 향한 한없는 사랑, 이것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전 인류에 대한 자비로운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 첫 부활절 아침은 부활과 함께 불멸에 대한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만인에게 부활이라는 축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과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고든 비 힝클리,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87쪽)

앨 42:24 이는 보라, 공의는 그 모든 요구를 행사하며, 자비 또한 그 스스로의 것을 다 주장함이니, 이리하여 오직 진실로 뉘우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느니라. For behold, justice exerciseth all his demands, and also mercy claimeth all which is her own; and thus, none but the truly penitent are saved.  
앨 42:25 무엇으로 너는 자비가 공의를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네게 이르노니, 아니라. 조금도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시리라. What, do ye suppose that mercy can rob justice? I say unto you, Nay; not one whit. If so, God would cease to be God.  
앨 42:26 또 이리하여 하나님은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로부터 예비된, 그의 크고도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나니, 이리하여 사람들의 구원과 구속과 또한 그들의 멸망과 비참이 이루어지느니라. And thus God bringeth about his great and eternal purposes, which were prepared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And thus cometh about the salvation and the redemption of men, and also their destruction and misery.

주) 회개한 자는 자비에 의하여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받는 것이다.  원래는 공의가 자비보다 우선 충족되어야 하는 원리이지만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회개할 경우 자비가 인간의 영혼의 온전한 대속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앨 42:27 그러므로 내 아들아, 누구든지 오고자 하는 자는 와서 생명의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며, 누구든지 오고자 아니하는 자는 오도록 강제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자기의 행위대로 자기에게 회복되리라. Therefore, O my son, whosoever will come may come and partake of the waters of life freely; and whosoever will not come the same is not compelled to come; but in the last day it shall be restored unto him according to his deeds.  
앨 42:28 가령 누가 악을 행하기 원하고, 그 생애에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면, 보라, 하나님의 회복을 좇아 악이 저에게 이루어질 것이니라.

If he has desired to do evil, and has not repented in his days, behold, evil shall be done unto him, according to the restoration of God.

“공의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균형입니다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이 대가를 받을 때.범죄에 형벌이 가해질 때.공의가 시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 …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보응을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 공의의 개념은 사람들이 저들이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경전 구절의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범법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며 자동적으로 형벌을 부과합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Sins, Crimes, and Atonment[교회 교육 기구 종교 교육자들에게 행한 연설, 1992, 2월 7인], 1~2쪽)

“공의는 또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지 확인할 것이며 그것이 제가 두려워하는 결과입니다. 저는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에 근거하여 볼 때 저의 영원한 목표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더라도 저는 베냐민 왕이 말한 바와 같이‘무익한 종’에 불과할 것입니다.(모사이야서 2:21 참조) 제가 영원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공의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Sins, Crimes, and Atonment, 2쪽)

“공의와 자비의 관계에 있어서, 속죄는 공의가 제 몫을 다 하게 하고 자비가 확대되게 하는 방편이다. 공의와 자비 그리고 속죄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영광스럽고 영원한 완전함을 구성하는 것이다.” (댈린 에이치 옥스, Sins, Crimes, and Atonment, 2쪽)

“회개한 사람은 구주께서 그 죄를 위해 고난을 겪으신‘것 같이’ 고난을 겪을 필요는 없다. 회개하고 있는 죄인들은 어떤 고난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들의 회개 때문에 그리고 속죄로 말미암아 구주께서 그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영원한 고통의 그 크나큰 ‘격렬함’의 정도를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회개한 죄인은 죄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과 고난의 과정을 겪게 된다. 그 사람은 앨마가‘진실로 회개한 자만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댈린 에이치 옥스, Sins,Crimes, and Atonement, 5쪽)

앨 42:29 그리고 이제 내 아들아, 나는 네가 더 이상 이러한 일로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만 너를 회개로 이끌어 내릴 그 괴로움으로, 네가 죄를 괴로워하기 바라노라. And now, my son, I desire that ye should let these things trouble you no more, and only let your sins trouble you, with that trouble which shall bring you down unto repentance.

주) (고후7:10~11)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 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앨 42:30 오 내 아들아, 나는 네가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하지 않기 바라노라.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함으로써, 네 죄로 인하여 지극히 작은 점에라도 네 스스로를 변명하려 하지 말라. 다만 하나님의 공의와, 그의 자비와, 그의 오래 참으심이 네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게 하고, 또 이로써 네가 티끌에까지 내려서 겸손하게 되도록 하라.

O my son, I desire that ye should deny the justice of God no more. Do not endeavor to excuse yourself in the least point because of your sins, by denying the justice of God; but do you let the justice of God, and his mercy, and his long-suffering have full sway in your heart; and let it bring you down to the dust in humility.

앨마서 42:27~30

이 구절은 선택의지와 책임의 관계를 어떻게 암시하는가?

“저는 여러분의 학생들이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느끼고, 그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느끼며 또 그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느끼도록 여러분이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사랑이 속죄에 나타나 있으며 또 우리가 회개의 원리를 실천할 때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회개는‘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로마서 3:23)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하나의 연속된 과정입니다. 완전한 회개가 가능하며 또 그 이후에는 용서가 확실히 주어진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십시오” (댈린 에이치 옥스, Sins,Crimes, and Atonement, 8쪽)

앨 42:31 또 이제 내 아들아, 너는 이 백성에게 말씀을 전파하도록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제 내 아들아, 네 길을 가서 진리와 진지함으로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하고, 위대한 자비의 계획이 그들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 있게 하라. 하나님께서 내 말대로 네게 허락하시기를 바라노라. 아멘. And now, O my son, ye are called of God to preach the word unto this people. And now, my son, go thy way, declare the word with truth and soberness, that thou mayest bring souls unto repentance, that the great plan of mercy may have claim upon them. And may God grant unto you even according to my words. Amen.

앨마서 42:11~31. 공의와 자비의 법

•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장로는 구주께서 희생을 치르셨기 때문에 자비가 공의의 법에 저촉되지 않고 베풀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모두는 일종의 영적인 채무를 진 채 삽니다. 계약이 만료되어 청산을 해야 할 날이 언젠가는 닥쳐옵니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마감이 임박하는 그 날이 이르면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찾을 것입니다.

빚을 갚아 줄 능력도 있고 대신 값을 치르고 기꺼이 계약 조건을 조정하실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영원한 율법에 따라, 자비는 베풀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 중재자가 없고 우리에게 친구가 없다면, 동정을 얻을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가차 없이 엄중하게 공의가 시행될 것입니다. 크든 작든 모든 범법에 대한 완전한 보상으로, 우리에게서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히 몰수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진리는, 영광스런 진리는 그러한 중재자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그분을 통해서, 영원한 공의의 법을 어기지 않고도 우리 각자에게 자비가 온전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 교리에서 핵심이 되는 토대입니다. ……

자비가 자동으로 베풀어지지는 않습니다. 자비는 주님과 성약을 맺을 때 적용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제시하신 관대한 조건, 즉 죄 사함을 위한 침수로서의 침례라는 절대 필수 요건이 따릅니다.

모든 인간은 공의의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 각자는 구속과 치유의 축복이라는 자비를 얻을 수 있습니다.”(보이드 케이 패커, 성도의 벗, 1977년 10월호, 56쪽)

•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다음과 같은 식견을 나누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완전했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므로, 마지막 심판 때에는 필멸의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한때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조차 전혀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니파이후서 9:14~15; 앨마서 5:15~19; 12:3~14; 42:23~26, 30 참조)”(닐 에이 맥스웰, 리아호나, 2000년 7월호, 88쪽)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구도자들이 여러분에게 몰몬경을 읽지 않았다거나 그에 대해 기도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 여러분은 매우 슬플 것입니다. … 우리는 자주 이 모든 것을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이것은 영원한 삶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영원한 앞날이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 그것은 이 구도자가 걷게 될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설령 그들이 그 점을 알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이 상황을 잘 통제하십시오. 권능과 권세로 가르쳤음에도, 그 계명을 지키고, 성약을 지키는 일을 향한 첫 번째 단계가 성공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 때 슬퍼해도 됩니다.”(제프리 알 홀런드, “성약을 맺고 지킴”[ “Making and Keeping Covenants”], 선교사 위성 방송,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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